붉은 수금 미도리의 책장 11
쓰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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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픽 디자이너인 주인공 이리에 사토루코는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요절한 시인 사무카와 겐지의 일기를 발견한다. 겐지의 손자에게 일기를 전해주러 간 카페에서, 비올라다감바 등의 현악에 노래가 가미된 콘소트(Consort) 연주를 듣게 된다. 사무카와 고스케는 그런 현악기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퉁명스러운 고스케와 이리에가 가까와 질 것을 예감이라도 한 듯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충고를 한다. 그리고, 고스케는 이리에에게 붉은색 수금(竪琴)을 선물한다.

도메키 마나부는 헤어진지 3년이 된 남자친구로 이리에와 그는 불륜 관계였었다. 그가 다시금 이리에의 삶에 틈입하려 하고 스토킹 기미까지 느끼게 되자 고스케는 이리에에게 공방에서 당분간 지내도 좋다고 말한다. 고스케는 자신의 할아버지가 사랑한 것은 이리에의 할머니일지도 모르고, 자신은 겐지의 친 손자가 아닐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말한다. 겐지의 시에 종종 등장하는 나라를 뜻하는 한자는 할머니의 이름이기도 하기에, 어쩌면 시는 다시 해석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리에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고스케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즈음 고스케를 초청하는 이탈리아로부터의 전화가 걸려온다. 고스케는 떠나기로 결심하고, 둘은 마지막으로 고래소리를 듣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여행중 고스케가 약년성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할때의 괴로움을 견디는 것이 어떠한지 알고 있기에 둘은 헤어지기로 한다. 여행이 끝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중 이리에에게 겐지의 일기를 해석하던 교수가 일기에 남은 연필자국을 베껴서 보내준다.

거기에는 겐지가 사토루코의 할머니에게 '나, 영원히 당신 안에 깃들어 있으리'라고 쓴 글이 쓰여있다. 그리고 고스케로부터 전화가 온다. 새치료법을 시도해보기로 했으며 장기전이 될지도 모르는데 옆에서 구경하고 싶어할 취향이 별난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사토루코는 보고 싶어요 라고 어린아이처럼 울부짖는다.

 

무척 간결하면서 섬세한 문체가 특이하다.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웠고 문체 역시 그러했기에 작가가 여성인줄 알았으나 의외로 남성 작가였다. <루피너스 탐정단> 시리즈로 유명한 추리작가라고 하는데 이 작품은 상당히 절제된 느낌의 연애소설이다.

소설에서 가장 공감을 한 부분은 이리에가 가정이 있는 도메키 마나부와 사귀는 설정과 고스케와 헤어지기로 마음먹는 부분이다. 전자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읽은 이후 관대해진 탓이 있고, 후자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영향이겠다. 

겐지의 일기에서 연필에 눌린 자국을 복원하는 장면은 작가가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에서 대출카드 뒷면 연필 초상화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고, 둘이 헤어진 채로 끝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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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의 카드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2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 / 해문출판사 / 199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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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터나씨는 완전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알고 있다면서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초대된 인물은 먼저 탐정인 포와로, 추리소설가인 올리버 부인, 경찰총경인 배틀, 그리고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레이스 대령 4명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셰이터나가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한 예순살 된 로리머 부인, 의사인 로버츠 박사, 군인인 디스파드 소령, 그리고 아리따운 아가씨 앤 메리디스가 초대 받는다. 

네 명이 브릿지 게임을 마치고 난 후 셰이터나가 칼에 찔린 채 발견된다. 포와로 등은 네 명의 용의자를 상대로 조사를 시작하는데 저마다 과거에 석연치 않은 사건에 연관되어 있다.

먼저 디스파드 소령은 치정과 연관된 죽음에 연관이 있고, 로버츠 박사 역시 환자와 불륜관계 끝에 환자 부부가 사망한 사건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또 앤 메리디스 역시 잠시 일했던 집의 주인이 시럽병에 든 페인트를 먹고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포와로는 그날 브릿지 게임의 점수표를 조사하는 것과 그날 방안에서 어떤 물건이 있었는지 질문을 함으로서 용의자 개개인의 성격을 파악하려고 한다.

디스파드 소령과 관련된 과거 사건은 오해로 판명된다. 하지만, 로버츠 박사는 면도솔에 비탈저균을 오염시키고 예방접종 대신 장티푸스균을 주사한 것이 드러난다. 또한 포와로는 앤 메리디스가 도벽이 있는 것을 알아내어 주인을 살해했던 과거를 밝힌다.

그리고 그때 로리머 부인이 포와로를 불러 자신이 과거에 남편을 살해한 전력이 있고, 셰이터나 역시 살해했다고 자백한다. 포와로는 자신이 추리해오던 것과 다른 결론에 놀라 로리머 부인을 추궁하자, 로리머 부인은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우연히 메리디스가 시체에 손을 댄 것을 목격한 후 메리디스의 장래가 안타까와 대신 자백했음을 고백한다.

다음 날 로리머 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메리디스는 자신의 과거를 떠들고 다닐지도 모르는 친구 로다를 배에서 밀어 죽이려 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죽고 만다.

그리고, 포와로는 로버츠 의사를 로리머 부인 살해 범인으로 지목한다. 로버츠 의사는 가짜 유서를 쓰고 자신이 편지를 받은 척 하여 아침 일찍 로리머 부인을 방문한 후 그녀에게 독약을 주사하여 살해한 것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26번째 작품이자 20번째 장편, 포와로가 나오는 13번째 장편이다.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의 고질적인 문제, 거꾸로 짜맞추기가 역시나 느껴지는 작품이다. 셜록 홈즈가 몇 차례 언급되는 등 코난 도일 경에 대한 자격지심도 느껴지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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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개정신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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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자살 시도가 실패한 후, 주인공 유정은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대신 한 달 간만 자기를 도와달라는 모니카 고모의 청에 따라 구치소에 다니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사형수 윤수를 만난 유정은 세 명을 살해하고 심지어 17살짜리 여자애를 강간하기까지 했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에 싸인다. 유정은 열 다섯살 나던 해에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한 아픔이 있다. 사실을 들은 유정의 엄마는 철없는 어린애의 몽상이라는 식으로 사건을 덮으려 하였고, 오빠들 역시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로 유정은 가족들과 단절되었고, 삶을 방관자처럼 살았으며, 사랑하는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윤수는 모니카 고모와의 면회를 거북해했고, 자기를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짐승처럼 혁수정에 묶여 빵을 먹는 윤수를 본 유정은 그의 모습을 거북해 한다. 하지만 고모로부터 구치소에 있는 사람들 중 영치금을 거의 못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윤수의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조금씩 그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살해당한 가정부의 어머니가 구치소를 찾아와 서럽게 울면서 윤수를 용서하자 윤수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모니카 고모가 아파서 구치소에 올 수 없게 되자 유정은 홀로 윤수를 만나러 가기 시작하고, 어느 날 자신의 과거와 아픔을 이야기 한다. 윤수는 용서 받은 이후 남을 용서하기 시작하고, 세상을 용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살아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깨닫는다.

한 때 사형수였던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의 임기 동안에는 사형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김영삼 대통령 임기 말, 미뤘던 일을 해치우듯 사형집행이 통보되고 그날 밤 유정은 엄마를 용서하려고 마음 먹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기에, 그 일을 하면 윤수를 하느님이 살려주시기라도 하려는 듯. 하지만 다음날 예정대로 윤수는 처형된다. 동생 은수가 눈이 멀었던 것이 못내 맘에 걸렸던지 안구를 기증하였고, 그가 남긴 영치금은 시골 학교의 처마를 올리는 데 보태진다. 그리고 윤수가 남긴 노트에는 그가 유정을 사랑했다는 말이 적혀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원 가는 기차 간에서 약간 눈물을 질금거렸던 듯도 하다. 최루성 장면이 많아서이기도 했고, 내 개인적인 감상도 한 몫 했으리라. 공지영 작가를 싫어하기 때문에 트집을 잡으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냥 무난하게 스토리가 전개되고 무난하게 끝이 난다.

사형 제도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해 본 계기는 팀 로빈스 감독의 <데드맨워킹>이었다. 매튜라는 사형수가 헬렌 수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는 두 명의 여인을 강간한 후 살해한 자인데, 그는 헬렌 수녀에게 자신이 돈이 없어 변호사를 사지 못했으며 무죄라고 주장한다. 주범이 따로 있다고 호소하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동안 사형은 예정대로 다가오고, 매튜는 자신이 죽음이 두려워 거짓말했을 뿐이고 범죄를 저질렀음을 고백한다.

사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데드맨워킹>의 표절, 혹은 공지영 버전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조금은 든다. 특히 강간 살인이라는 범죄 내용과 주범은 돈이 많아 빠져나간다는 설정은 똑같다. 다만 <데드맨워킹>은 대담하게도 매튜가 나치추종자인데다가 강간살인을 한 주범임을 드러내면서까지 정면으로 사형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윤수가 사실은 종범, 혹은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는 설정이 다르다면 다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조금 쉬운 길을 택한 느낌이다. 만약 윤수가 강간살인의 주범이라면 윤수의 죽음이 그렇게까지 슬프지 않을지도 모르고, 소설의 내용 상당부분이 설득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런 상황에 정면 도전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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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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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

주인공 고즈에는 전문학교를 나와 조그만 회사에 근무하며, 언젠가는 결혼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동생 미도리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고즈에는 미도리의 남자친구가 자기의 남자라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꿈속에서만 살다가 평생 남자를 못 만나고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그런 숙명을 옛날부터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o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스물 다섯살의 조제는 어릴적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후 할머니와 살아가고 있다. 조제의 본명은 구미코이다. 하지만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 마음에 들어 조제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츠네오는 같은 동네에 사는 대학생으로 조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주었다. 때때로 조제의 집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고장난 집을 고쳐주기도 한다.

츠네오가 졸업과 취직 때문에 오랜만에 조제를 찾았을 때, 조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보잘 것 없는 집을 얻어 가구 대신에 종이상자를 놓아 살아가고 있었다. 츠네오에게 조제는 악을 쓰며 가버리라고 말하다가 막상 가려는 츠네오에게 가지 말라고 또 떼를 쓴다. 츠네오는 '텔레비전도 팔아버렸고, 라디오도 망가졌고, 나 너무 외로워...' 라고 말하는 조제가 가엽다가도, '어, 그럼 내가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대신이란 말이야?'라고 묻자, '그래. 이 라디오는 대답을 해줘서 좋아'라고 말하는 조제가 귀엽다.

조제는 동물원에 가고 싶어하고 그곳에서 호랑이를 본다. 호랑이를 본 조제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을 때. 무서워도 안길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한다. 둘은 수족관에도 간다. 그리고 조제는 자기가 느끼는 지금의 행복한 상태가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후로도 조제와 츠네오는 같이 살아간다. 결혼도, 호적신고도, 하지 않았지만.

 

o 사랑의 관

남편으로부터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듣고, 결국 이혼하게 된 우네는 자신이 그 말로 인해 상처받았음을 느낀다. 이복 언니인 큰언니 소개로 만난 남편이었기 때문에 다른 형제들과도 소원해지고 말았다. 하지만 큰언니의 아들인 열아홉의 유지에게 우네는 에로틱한 감정을 느낀다. 우네는 자신에게 성적 호기심과 열망을 느끼는 유지에게 한껏 공상에 빠지도록 할 수도 있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어쩌면 자신이 진짜 이중인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매년 9월에 떠나는 호화로운 여름휴가에 유지를 오도록 한다. 우네는 두번 다시 유지와 관계를 맺지 않을 것이기에, 유지와 맺게 될 관계가 극한의 열락으로 가리라 느낀다.

 

o 그 정도 일이야

가오리는 여섯 살 어린 호리 씨가 좋아지고 만다. 남편은 일과 친구에 빠져서 충족한 삶을 누리고 있고, 가오리는 자기대로 약간은 체념한 상태이다. 호리 씨와 놀러 간 축제에서 손가락 돼지 인형인 치키를 산다. 둘은 치키가 말하는 것처럼 흉내내며 자신들의 내밀한 대화를 한다. 둘은 돼지 인형을 매개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며 아슬아슬한 경계를 걷는다.

 

o 눈이 내릴 때까지

마흔이 넘은 오바는 가정이 있는 이와코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포목점에서 조용히 일하는 오바는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돈을 착실히 불려왔고 조용히 자기를 가꿀 줄도 안다. 이와코는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에 대한 꿈을 갖지 않는다. 결혼에 대한 꿈을 품지 않게 되자, 자유로운 기분이 들고 즐거움을 느낀다.

가정이 있는 오바와 만나면서 이와코는 '언제 헤어져도 좋아'라는 생각을 하며 철저히 즐겼기 때문에, 만나는 그 순간에도 그가 먼 과거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생기도 없는 미래까지 같이 가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런 오바를 만나는 이와코는 언제나 처음 만나는 여자와 같다는 생각을 하고, 오바는 언제나 부끄러움을 느낀다.

 

o 차가 너무 뜨거워

이제는 유명 드라마 작가가 된 아구리에게 칠년 전에 자기를 떠난 요시오카가 연락을 해온다. 만나자는 요시오카의 말에 아구리는 저도 모르게 들뜨고 만다. 하지만 막상 만난 요시오카는 어딘지 모르게 갑자기 늙어버린 느낌이다. 요시오카는 아버지가 물려준 중소기업을 기획 사기를 당해 모두 날려버리고 아내에게 이혼당한 상태이다. 그는 아구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사달라며 애원하고, 아구리는 요시오카가 차라리 다시 성공하여 그 무신경과 어린애 기질로 자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한다.

 

o 짐은 벌써 다 쌌어

아내가 집을 나가고 자녀가 있는 히데오에게 시집 간 에리코는 아이들을 떠맡을 용기까지는 나지 않아 따로 살림을 차려 둘이서 살아간다. 어릴 적 아이들이 간혹 놀러오기도 했지만 히데오는 옛날 가정과 현재의 가정을 엄격히 분리했기 때문에 에리코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집을 나갔던 아내가 갈 곳이 없어지자 다시 아이들 집으로 들어오고, 둘째 아들이 말썽을 피우는 등 가정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 생기자 히데오가 짊어진 고통도 함께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o 사로잡혀서

미노루의 우유부단한 성격에 자기 본위의 어린애 같은 면을 한 때 리에는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노루가 거래처 여자애와 바람을 피우고 임신까지 시킨 후 자기가 어떻게 하면 좋냐며 리에에게 고백하자, 그것은 비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뭐든 금방 털어놓고 마는 경박한 성격 때문이라 느낀다. 이혼을 하고 떠나는 날 마저 도시락을 싸달라는 둥, 다시 놀러오고 싶다는 둥 자신의 감정만을 소중히 여기는 미노루와 비슷한 수준의 여자애를 생각하자 문득 리에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o 남자들은 머핀을 싫어해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일에 빠져있는 마흔두 살의 렌은 미미라는 여자친구와 별장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으면서도 일에 빠져 별장으로 올 수가 없다. 미미는 렌이 별장에 자신의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을 느낄 뿐 실제 별장으로 오지는 않고 일만 할 뿐이다. 급기야 자신의 조카 시몬을 보낸다. 미미는 시몬을 위해 머핀을 만들지만, 시몬이 머핀을 싫다고 하자 사실 자신도 머핀을 보기에 그럴 듯 해서 만들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미미는 시몬과 함께 별장을 떠난다.

 

소설의 주된 밑그림은 결핍과 비정상, 이루어질 수 없음 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소설 속 주인공들은 그런 굴절된 상태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

 

작가는 몇 가지 패턴을 통해 이를 그려내고 있는데 먼저 근친상간과 관련된 욕망이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의 고즈에는 동생의 남자친구를 열망하고, <사랑의 관>의 우네는 조카와 관계를 맺는다. 고즈에가 동생의 남자친구와 육체관계를 맺는 것 까지 상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까지 나아가기 전(방어기재의 작용?) 결국 혼자 살게 될 것을 어렴풋이 안다고 느낀다. 우네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조카를 유혹한다.

 

다음으로 불륜관계인데 <그 정도 일이야>와 <눈이 내릴 때 까지>에서 관능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정도 일이야>에서 가오리와 호리씨는 치키라는 새끼 돼지 인형을 매개로 불륜을 욕망하는 둘 사이의 대화를 도덕의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관능적으로 처리하고, <눈이 내릴 때 까지>에서는 불륜관계를 통해 적극적인 행복을 맛보고 있는 사람을 여자인 이와코로 내세우고 있다. 피동적으로 그려지며 가정 있는 남자의 처분만을 바라는 여성이 아니라 불륜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순간을 탐닉하는 여성을 그려내고 있다.

 

한편 <차가 너무 뜨거워>와 <사로잡혀서>에서는 자기밖에 모르는 어린애 같은 남성을 등장시키고, 한때 그런 남성의 에고에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던 여성이 결국은 쓰디쓴 댓가를 치른 후 자아들 찾고 과거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표제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 조제는 그래서 자기가 느끼는 행복이 '죽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끝나는 '죽음의 세계' 이후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기에, 자기와 츠네오의 관계를 어떤 틀에 가두어(결혼, 호적신고 등) 깨어질 수도 있는 무엇인가로 만들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과연 옛날 이야기처럼 '그후로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일까? 

그후로 어쨌다는 이야기가 다나베 세이코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후로 행복하게 살았던, 죽도록 불행했던 그것은 문제가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순간이고, 이 순간이 불안하면 불안할 수록, 비정상적이면 비정상적일수록 에로틱하고, 관능적이고, 충만한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슬펐다. 소설 자체가 슬펐고, 이 소설을 슬픈 이야기로 읽을 수 밖에 없는 나의 조로(早老)함이 슬펐으며, 겪지 않아도 되었을 일들과 소설 속 주인공을 꼭 닮은 사람이 떠올라 슬펐다.

 

10년쯤 전에 E.L.보이니치의 <등에>를 읽으면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깊은 슬픔을 느낀 것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거기 나오는 노래가 생각 난다.

 

난 행복한

등에 한 마리

내가 살든,

내가 죽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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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살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6
크리스토퍼 부시 지음, 남정현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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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독자에게 대담한 도전을 한다. 

먼저 <프롤로그를 대신하여>라는 권두의 글을 통해 이곳에 모든 해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언급을 한다. 그리고 정부의 특수 임무를 맡은 듯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이 시작되면 작가의 도발이 다시 한번 이어진다. 완전살인을 하겠다는 범인의 편지가 대담하게 신문사로 배달된 것이다. 그리고 그 예고대로 토머스 리치레이라는 사람이 살해당한다.

토머스 리치레이는 부유한 자산가로 그에게는 처자식이 없고, 유산을 물려받을 친족으로 네 명의 조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조카들과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고, 최근에 그 집의 가정부와 결혼을 하려는 시점이었기에 유력한 용의자는 네 명의 조카로 좁혀진다. 하지만 네 명의 조카 모두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알리바이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작품을 주로 써온 크리스토퍼 부시는 1934년 <백 퍼센트의 알리바이(The case of the 100% Alibis)>와 같은 작품에서도 완벽한 알리바이로 수사가 벽에 부딪히고, 주인공이 트릭을 붕괴시켜 나가는 내용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국내에 번역된 책은 <완전살인> 한 권 뿐이다.

완전살인에서도 완벽한 알리바이가 해체되면서 권두에 나오는 특수 임무 이야기가 무엇을 뜻하는지 밝혀진다. 사전 자체에 박진감이 없고, 알리바이를 해결하기 전까지 지나치게 이야기를 끄는 점 등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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