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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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이 평론가로부터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가는 신문에 실리고 사람들은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론가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화가 스스로도 자신에게 '깊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순간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다. 좌절감에 빠져 인생을 허비하던 그녀는 결국 자살하고 평론가는 그녀의 그림에서 '깊이에의 강요'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처음과는 정반대의 평가를 내린다.

 

예술작품의 주체인 예술가와 이를 수용하는 객체인 독자, 혹은 관람자 사이에 평론가가 있다. 예술가와 관람자 사이에 존재하는 평론가가 수용자에게 불필요한 잣대, 혹은 자신만의 색안경을 들이밀 때 주체와 수용자의 관계에 왜곡이 일어난다.

 

<승부>

8월 어느 날 초저녁, 룩상부르 공원에서 체스 게임이 벌어진다. 한 사람은 동네에서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70대의 왜소한 남자 장, 도전자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젊고 매력적이며 시니컬한 표정의 젊은이이다. 사람들은 부지불식간에 젊은이가 장을 꺾어주길 바라고,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는 듯 젊은이의 한 수 한 수는 파격적이기만 하다. 젊은이가 자신의 말들을 희생시키며 두는 수들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언가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환호한다. 장 역시 젊은이와의 승부에 점점 압박감을 느끼고 더욱 신중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젊은이는 자신의 킹을 스스로 쓰러뜨림으로서 패배를 자인한다. 누군가는 젊은이에게 '자네는 지지 않았어'라고 얘기하기까지 한다. 장은 어쩐지 자신이 혐오스러운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하며 두번 다시 체스를 두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쩌면 체스에 미숙했고, 그래서 격식에 맞지 않는 수를 두었을지도 모를 젊은이에게 환호하는 군중들은 자신들이 장과의 승부에 이길 능력은 없지만, 젊은이를 엉뚱한 우상으로 만들어 그의 행동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여 해석한다. 심지어 헛된 바램이 깨어진 순간 조차 젊은이의 행동에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그가 승리자라고 치켜세우기까지 한다. 어쩌면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보수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이었다.

 

<장인(匠人) 뮈사르의 유언>

18세기 금세공 장인인 뮈사르가 책과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될 무렵, 우연히 세상이 조개껍질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계속 연구를 계속한 그는 세상이 점차 석회화 하여 조개껍질처럼 변하고 있고 심지어 사람도 태어나는 순간부터 조개껍질로 변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빗물을 마셔가며 석회화를 늦추고자 하나, 비밀을 알아챈 뮈사르는 다른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운 석회화 과정을 거쳐 결국 사망하고 만다.

 

세계가 돌조개로 점점 들어차 결국 석회화 되고 말 운명이고, 마찬가지로 유연하게 행동하고 사고하던 어린아이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딱딱한 돌조개와 같이 몸도 마음도 굳어가 결국 사망한다는 독특한 설정의 소설이다.

 

<문학적 건망증>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에세이로 과연 문학을 읽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책들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수년이 흐르면 책의 내용은 물론, 그때 받았던 인상마저 잊어버릴 것이 자명한데 문학을 계속 읽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한다.

어쩌면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어쨌든 '너는 네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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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워치 - 상 밀리언셀러 클럽 26
세르게이 루키야넨코 지음, 이수연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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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고대 어느 시기에 사냥감들의 주의를 돌리거나 전사들의 힘을 북돋우던 샤먼 중 일부가 어스름이라는 시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한다. 그들은 어스름의 영역에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해낼 수 있었고, 능력이 뛰어난 자들은 어스름의 영역에서 더 깊은 어스름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존재'로 불렸다.

어스름의 영역에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영향을 미쳤다.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태도 차이로 '다른 존재'들은 빛의 진영과 어둠의 진영으로 나뉘어져 전쟁을 벌였다. 각 진영은 자신들의 신념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 결과 혁명이 일어나거나 전쟁이 벌어졌다. 두 진영은 비극적 종말을 막기 위해 협상을 진행시켰고 그 결과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 행위, 사람들에 대한 영향력의 범위에 관한 경계를 상정하고 이를 철저히 지키기로 협약했다. 빛의 진영은 '야간경비대(Night Watch)'를 만들어 어둠의 세력을 감시하고, 어둠의 진영은 '주간경비대(Day Watch)'를 만들어 빛의 세력을 감시한다.

 

<나만의 운명>

주인공 안톤은 중급 수준의 능력을 지닌 빛의 경비대원으로 사무요원이었으나 스승인 보리스 이그나치예비치(치프)의 명에 따라 야전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엄청난 크기의 저주 기둥을 머리 위에 달고 있는 여성 스베틀라나를 지하철에서 발견하고 구해주려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역사를 빠져 나온 안톤은 아직 어린 예고르라는 '다른 존재' 소년을 여자 흡혈귀로부터 구해 낸다. 

엄청난 크기의 저주 기둥이 곧 폭발을 일으킬 것이 예견되자 안톤은 올빼미 형상을 한 올가라는 요원과 함께 그녀를 찾아 나서는데, 안톤과 대화를 거듭할수록 저주 기둥이 사그러드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소년 예고르에 대한 위해 시도가 계속되고 결국 주간경비대와 야간경비대가 전투에 이르게 된다.

야간경비대는 주간경비대의 치프인 자불린 등과의 전투에서 한시적인 승리를 한다. 안톤은 스베틀라나의 저주 기둥을 만든 이가 암흑쪽 주술사가 아니라 스베틀라나 자신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잠재적인 능력이 향후 두 경비대 진영 전쟁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을 예측한 자불린이 예고르라는 매개변수를 끼워 넣어 혼동을 주려 했었던 것이다. 

 

<아군 속의 아군>

어둠의 세력 일부가 부정기적으로 살해되자 주간경비대는 야간경비대측에 이를 정식으로 문제 삼는다. 야간경비대 측도 내부 소행을 염두에 두고 조사를 진행하는데 뜻밖에 알리바이가 전혀 없는 인물은 안톤 한 명 뿐이다. 야간경비대가 안톤을 범인으로 몰아세울 경우 안톤의 기억을 통해 주간경비대의 중요 기밀이 누출될 것이 우려되어 치프는 안톤을 여성요원 올가의 몸과 뒤바꾸고 스베틀라나와 함께 할 것을 요구한다. 스베틀라나와 함께 있는 동안 다음 살인이 일어나면 안톤은 누명을 벗으리라는 생각이었으나 기대와 달리 또 다시 어둠의 세력 구성원이 살해당하고 안톤은 자불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안톤이 억울하게 붙잡힐 경우 스베틀라나가 성장 도중 전투에 참가하여 일이 잘못될 것이 예상되자 진범이 잡힐 때까지 안톤은 도피를 계속한다. 마침내 야간경비대는 진짜 범인이 막심이라는 인물로 부정기적 능력 표출자임을 밝혀낸다. 또 한번의 작은 승리를 기뻐하는 안톤에게 치프는 이 모든 계획이 주간경비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모든 것은 스베틀라나의 등급 상승을 위한 아군측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오직 내 사랑을 위하여>

스베틀라나와 운명으로 묶인 안톤은 언젠가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뛰어넘고 헤어지게 될 운명임을 알고 괴로워한다. 게다가 스베틀라나의 부정을 목격하기까지 하자 안톤은 그녀와의 엇갈릴 운명을 괴로워하며 홀로 모스크바로 돌아간다. 본부에서 꾸미고 있는 계획이 전령꾼이 가지고 온 분필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 안톤은 조사를 거듭하고, 그 결과 스베틀라나가 그 분필로 새로운 운명을 쓰려함을 알게 된다. 그 분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여마법사에 한정되고 스베틀라나가 그 여마법사로 낙점되어 수년간 양 진영이 전투를 벌여온 것이었다. 새로운 미래를 쓰려하는 야간경비대와 이를 저지하고자 하는 주간경비대가 조우한 장소에 안톤이 나타난다. 안톤이 스베틀라나를 저지하기는 커녕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은 운명일 뿐이라고 말한 이후 스베틀라나 역시 분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서 어둠의 세력 승리로 끝이 난다. 그러나 스베틀라나가 떨어뜨린 분필이 반토막인 것을 안톤이 보게 되고 치프는 인간세상의 미래를 위해 분필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하나뿐인 연인 올가의 복권을 위해 다른 장소에서 분필을 사용했고 한바탕 소동은 교란을 위한 것이었음을 고백한다.

 

판타지 소설의 완성도는 무엇보다 작가가 만들어낸 독자적인 또 하나의 세계가 얼마나 완결적인 구조인가 하는데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지의 제왕>은 하나의 전형을 창출하였고, 70년대 부터 개정이 거듭되고 있는 <던전 앤 드래곤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때 Sony Online Entertainment 사의 <Everquest>에 빠져들었던 때가 있었다. 또 다른 세상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또 다른 자아를 선물해주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러시아 판타지라는 것에 무척 호기심이 동해서 읽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구분을 위한 기호에 불과하고 실제 어느 편이 옳은지, 그리고 선한지는 알기가 어렵다. 게다가 그들의 행동이 인간 세상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할 때에는 더욱 답하기가 어렵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기회가 된다면 시리즈의 나머지 두 편도 읽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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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상어 - 사메지마 형사 시리즈 01 뫼비우스 서재
오사와 아리마사 지음, 김성기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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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사메지마는 국가공무원 상급시험에 합격한 후 큰 탈만 없다면 캐리어로서 고속 승진을 거듭할 예정이었다. 어느 날 동료가 공안부 내부 암투에 휘말려 자살하고, 그가 남긴 유서가 양쪽 파벌 모두에게 폭탄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 상부에서는 유서의 회수에 혈안이 된다. 하지만 사메지마가 자신이 맡아둔 유서를 내놓지도, 파벌에 가담하지도 않자 상부에서는 그를 신주쿠경찰서 방범과로 내치게 된다. 직급은 과장과 같은 경감이지만 파트너도 없이 홀로 수사를 하고 야쿠자에게도 예외를 두지 않는 그를 경찰과 야쿠자 모두 꺼리며 '신주쿠 상어'라는 별명을 붙여 준다.

사설총기 제조업자인 기즈를 쫓던 어느 날, 신주쿠 인근을 순찰 돌던 외근 경찰관 두 명이 살해 된다. 사메지마는 기즈가 만든 총기가 범행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수사를 계속한다. 경찰 살해가 연쇄살인으로 이어지자 경찰을 동경하는 오타쿠의 개입으로 수사는 혼선을 빚기도 한다. 며칠간의 잠복 끝에 기즈의 작업장을 발견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난입하지만 함정에 빠져 도리어 살해당하기 직전, 사메지마는 방범과장 모모이에게 구출 받는다. 모모이는 '시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만년 과장으로 자신의 아들이 사망한 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되었지만, 실은 경찰관으로서의 신념과 의지를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기즈의 동성애자 애인인 가즈오가 그와 다툰 후 총기를 훔쳐내 친구 스나가미에게 전달했음을 알게 된다. 특별수사본부는 스나가미가 범행 직전 신주쿠에서 야쿠자에게 린치를 당했고, 자존심이 강한 스나가미는 기존에 갖고 있던 경찰에 대한 반감과 자신이 보호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겹쳐 경찰 살해에 나선 것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린치 당한 날 그가 콘서트에 갔다 오는 길이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건의 대미를 마쓰기 유리의 콘서트 장으로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메지마는 스나가미의 집으로 가서 그가 듣던 워크맨을 플레이해 보고 경찰이 전혀 엉뚱한 콘서트 장으로 갔음을 알게 된다. 스나가미는 사건 당일 자신의 애인인 쇼가 보컬로 있는 '후즈 허니' 공연을 보러 갔던 것이고, 자신이 야쿠자에게 맞고 있던 스나가미를 구해준 일을 떠올린다.

 

마초 냄새 물씬 풍기는 제목을 달고 있는 <신주쿠 상어>는 오사와 아리마사의 사메지마 시리즈 중 제1권이다. 야쿠자에게도 예외 없는 수사를 벌이고 승진은 커녕 만년 경감으로 끝날 운명은 <공공의 적> 강철중을 떠올리게 한다. 또 캐리어 제도의 모순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춤추는 대수사선>이 떠오른다. 오타쿠의 수사 개입 역시 소소한 재미를 제공하는데, 여러 모로 그 후에 제작된 수사물 영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신주쿠 상어>는 1990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과 일본추리작가협회상, 1991년에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를 차지하며 오사와 아리마사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주었고 1993년 사메지마 시리즈 4번째인 <무간 인형>이 나오키상을 수상한다. 그 후 2004년에 <판도라 아일랜드>로 시바타 겐자부로 상, 2006년 <낭화>로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을 수상한다. 노블마인에서 새로이 사메지마 시리즈를 발간하기 전 국내에도 몇 권 소개된 적이 있으나 현재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미야베 미유키, 쿄고쿠 나츠히코와 '다이쿄쿠구'라는 공동사무실과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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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펭귄클래식 38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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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자마이카에서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자 기존 노예소유주들은 노동력을 상실하게 되고, 그 결과 농장들은 파산에 처한다. 새로운 영국인들이 자마이카로 몰려와 농장들을 헐값에 사들이고, 기존 백인들은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그들은 부유한 영국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은 흑인도 아니었다. 그들의 자녀는 크리올이라 불리며 영국 본토 국민보다 열등하게 여겨졌고, 비록 피부색은 희더라도 혼혈일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주인공 앙투아네트 역시 아버지 코즈웨이가 사망하고 노예 해방이 이루어지자 '하얀 바퀴벌레'로 불리며 원주민의 분노와 새로 이주한 백인들의 멸시 어린 시선을 견뎌야 했다. 어느날 흑인 소녀 티아가 옷을 훔쳐가 남루한 옷을 입고 들어오자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아네트는 새로 이주해온 부유한 백인 메이슨과 결혼한다. 그러나 메이슨은 원주민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여 경솔한 언행을 일삼았고, 아네트는 끊임 없이 불안에 시달린다. 어느날 원주민들의 방화로 집이 불타고 앙투아네트의 백치 동생이 사망하자 아네트는 이성을 잃고 만다. 메이슨은 그런 아네트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그녀를 감금하고 미친 여자로 치부하고 만다. 아네트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흑인들에게 겁탈 당하다가 결국 사망한다.

양부 메이슨이 죽으면서 재산의 반을 앙투아네트에게 남겨주자 옛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로체스터라는 남자와 결혼한다. 로체스터는 장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기존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부유한 여성과 결혼하고자 했고, 아버지와 형의 권유가 있자 앙투아네트와 결혼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혼혈일지도 모르는 크리올에게 돈에 팔려 결혼했다 점을 컴플렉스로 갖게 된다. 이 때 그에게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드는데 자신이 앙투아네트의 배다른 오빠라고 주장한 그는 앙투아네트의 가계가 정신병력이 있을 뿐 아니라 앙투아네트 역시 혼혈일지 모르며 성적으로도 문란하다는 암시를 한다. 로체스터는 자신의 컴플렉스에 투서 사건이 겹치자 앙투아네트의 재산을 모조리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로부터 모든 관심을 거두어 들인다.

로체스터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앙투아네트는 크리스토핀에게 주술의 일종인 오베아를 실행시켜 줄 것을 부탁하지만 효력은 하룻 밤 동안의 폭력적인 성행위로 끝나고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를 옆방에 둔 채 아멜리라는 하녀와 불륜을 저지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불러 달라는 앙투아네트의 요청을 묵살한 채 버사라고 부른다.

크리스토핀의 간절한 애원에도 불구하고 로체스터는 앙투아네트를 영국으로 데리고 가 그곳에 감금한다. 앙투아네트는 광녀로 취급되고, 자신을 찾아온 양오빠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기까지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앙투아네트는 자신이 손필드 저택에 불을 지르는 꿈을 꾸다가 깨어난다.

 

소설은 <제인 에어>를 알고 있어야만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가 있다. 작가 진 리스는 <제인 에어>를 읽고 단지 영국의 시각에서만 쓰여 있음에 분개하여 <제인 에어>의 전편을 쓰기로 한다. 거기서 선택된 인물이 바로 버사 메이슨이다. 그녀는 <제인 에어>에서 제인과 로체스터가 결혼하는 데 걸림돌이며 손필드 저택에 방화를 저지르는 미친 크리올 여성으로 그려진다. 브론테는 방화의 이유를 버사 메이슨이 크리올이자 광녀이기 때문이라고 단순히 설명한다.

제인은 영국 식민지 드메라라에서 노예 착취를 통해 벌어들인 삼촌의 돈으로 경제적 자립을 획득하고 로체스터 역시 크리올인 버사 메이슨과 결혼함으로서 자마이카 노예의 피와 땀을 돈으로 환산한다. 진 리스가 도미니카를 방문했을 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크리올 상속녀들이 영국 남자와 결혼한 후 '광녀'로 낙인 찍혔음을 알게 되는데 그 점에 착안하여 광녀 버사 메이슨의 이야기를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에 담아내고 있다.

역자 윤정길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The Second Sex)>를 인용하면서 로체스터의 행위를 타자를 통한 주체의 확립이라 설명하고, 그녀를 광녀로 치부하여 감금시키고 침묵시킴으로서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고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확립하려 했다고 설명하는데 무척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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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세요
쓰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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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서 버림받아 육아원에서 살아온 리리카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외로움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가 실패한다. 그런 그녀에게 나가사와 모토지로 라는 이름의 남자가 편지를 보내온다. 그는 리리카가 '인간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라고 써 보냈고,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인 리리카는 답장을 보낸다.

둘은 서로 진실만을 이야기 하되 절대로 만나지 않을 것을 전제로 편지를 주고 받는다. 리리카는 모토지로에게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고 그에게 고민을 털어 놓으면서 점차 사람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회복해 간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보육교사가 된 리리카는 아버지가 주는 따뜻한 느낌이 그리워서 원생의 아버지와 불륜에 빠지고,그 일이 들통이 나 술집에 나가게 되는 등 위태로운 생활이 시작된다. 모토지로는 그런 그녀에게 섣불리 그만두라고 하는 대신 따뜻한 애정으로 위로하면서 '힘 내지 않아도 좋다'라고 말해준다.

리리카는 우여곡절 끝에 생부를 만나게 되고 관계를 회복해 가는 한편 다시 보육교사 자리를 얻게 된다. 그리고 모토지로와 리리카는 각기 다른 사람을 만나 연애를 시작한다. 모토지로의 답장이 뜸해지고 그 이유가 모토지로가 새로 사귄 여자친구 후키가 루게릭병에 걸려 2년도 채 살지 못하며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리리카는 자신이 모토지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토지로를 찾아 하코다테를 찾아간 리리카는 모토지로를 만날 수가 없었고 그가 보내 온 편지와는 많은 것이 다르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 한다. 그리고, 모토지로의 어머니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모토지로는 리리카의 친 오빠였고 루게릭병에 걸린 것은 모토지로 자신이었다는 것. 실의에 빠져 자살하려고 한 여동생에게 어떻게든 희망을 주기 위해 편지를 보냈지만, 자신이 몹쓸 병에 걸려 곧 죽을 것을 알렸을 때에 여동생이 상처입을 것이 두려워 이야기를 꾸며냈다는 것이다. 결국 모토지로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다가 죽고, 남은 리리카에게 모토지로의 일기장이 배달된다.

 

편지를 주고 받는 모토지로와 리리카는 애틋하다. 아니, 마음을 전하는 것은 언제나 애틋하다. 뒤늦게 전달될 때는 더욱. <별의 목소리>에서의 문자 메시지나, <러브 레터>-그러고 보니 츠지 히토나리는 나카야마 미호의 남편이다- 에서 대출카드 뒷면의 연필 초상화가 그런 느낌을 주는 이유도 그 도착의 엇갈림에 있는 것은 아닐까.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에 <사랑을 주세요>의 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어 흥미가 동했다. "그때 나를 구원해준 건 책이었어요. 도서관에 쌓이 수많은 책들. 그 책들은 내가 내 의지로 손에 들지 않으면 결코 문을 열어주지 않는 참된 친구였어요. 그들은 거짓말을 하는 법이 없거든요. 아니, 그 반대지요. 좋은 소설이란 완벽한 거짓말로 꾸며진 또 하나의 진실이니까요." 

내용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지만 잠깐 동안 서정적인 영화를 한 편 보는 느낌은 좋았다. 물론, 책은 어느 누구도 구원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구원은 현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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