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 2003 제2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종은 지음 / 민음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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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는 서울이 고향인 네 명의 별볼일 없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을 특성 짓는 것은 그들이 나고 자란 도시 '서울', 그리고 각자의 이름이다.

깨우쳐 나아가라는 뜻의 유진(諭進), 살펴 다스리라는 뜻의 찰리(察理), 기운을 불러 일으킨다는 뜻의 호기(護氣), 무리를 이끌라는 뜻의 중만(衆蔓). 작가는 각자의 이름을 얻게 되는 과정을 구성진 가락으로 풀어낸다.

물론, 이들이 이름에 걸맞게 살아온 것은 아니다. 어딘가 하자와 흠결을 갖고 있는 가정에서 자라서 모양꼴을 제대로 못 갖춘 성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찰리가 플랜A를 제출하기 시작하고 플랜K를 거치는 동안 계획은 점차 정교해 지는데, 계획이란 다름 아닌 은행 털기 따위이다. 찰리의 계획이 고속도로 휴게소를 터는 데 이르자 넷 모두가 계획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에 공감하게 되어 실행에 옮긴다. 

준비된 결말은 두가지인데 성공적으로 강탈한 돈을 가지고 건물을 사서 저마다 취향에 맞는 장사를 하며 살아간다는 해피앤딩, 그리고 죄다 경찰서에 굴비두름 엮이듯 잡혀가서 얼토당토 않은 범행동기를 댄다는 언해피 앤딩이 그것이다.

그런데 결말은 하나가 더 있으니, '그들이 휴게소를 털어 성공시킨다'는 것은 네 명이 버거킹에서 모여 나누던 잡담이라는 것이다. 잡담이 끝날 무렵 유진이 버거킹 영업이 몇 시까지 인지 묻고, 매출을 물은 다음 "야 셔터 내려!" 라며 버거킹을 털기 시작한다는 결말이다. 결말이 곧 시작인 구조인 것이다.

 

내 고향은 서울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을 때엔 본적지를 대거나, 오랫동안 살았던 지방 도시의 이름을 대곤 한다. 겨우 다섯살이 되기 전에 서울을 떠났기 때문에, 서울과 관련한 기억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고향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두번째 숫자'로 표기되어 있을 뿐 정서적으로는 나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내 고향이 서울이면서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서울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할 때가 있었다. 

작가의 문체는 구성진 가락을 띤다. 만연체이고, 만연체가 때로 그렇듯 비문이 드문 드문 섞여 있다. 이문구식의 해학도 얼핏 엿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느낌도 많이 든다. 해학이란 모름지기 비틀고 꼬고 과장하되 상황을 공감하게 만드는 기운까지 더불어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김종은은 공감하게 만드는 면에서 내공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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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만의 생각을 읽자 - 만화로 읽는 21세기 인문학 교과서 인문학의 생각읽기 3
윤순식 지음, 박지훈 그림, 손영운 / 김영사on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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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만(1875~1955)는 1929년, 그의 나이 54살에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작가 자신은 심사위원들이 <마의 산>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데 불만이었다고 한다.

그는 80년의 생애 동안 장편 소설 8편을 비롯 단편 소설, 희곡, 일기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자신의 서간문과 일기는 사후 25년 뒤 공개하라고 유언을 남긴다. 1980년에 봉인된 서고를 공개한 결과 동성애 관련 글이 많이 발견되어 그의 문학이 새로운 각도에서 활발하게 조명된다.


처녀작은 <타락>으로 1894년에 발표되었는데 한 순진한 젊은이가 어느 여배우에게 반하여 그녀와 첫사랑을 나누지만 그녀에게 애인 겸 후원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파멸한다는 내용이다. 3년 뒤인 1897년에 <키 작은 프리데만 씨>가 발표된다. 두 작품은 19세기 말 데카당스 느낌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

그의 첫 장편은 1901년에 발표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다. 부제는 '한 가문의 몰락' 이었는데, 뤼베크 시민의 가정을 모델로 4대에 걸친 한 시민 계급 가문의 몰락 과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덴브로크 가문 사람들은 1, 2대(代)때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부를 축적하고, 3대 때에는 시정 장관이 될 정도로 성공하지만 4대인 '하노'에 이르러 상인 기질이 섬세하고 유약한 예술가 기질로 변하고 만다. '하노'는 어린 나이에 죽고, 이로써 부덴브로크 가문은 몰락하고 만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은 부르주아 계급의 필연적 몰락을 나타내는 리얼리즘 작품의 본보기로 사회주의 비평가들에게 극찬을 받았고, 후기 시민 계급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이런 이유로 1901년 이후 작품은 5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작품은 토마스 만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데, 토마스 만이 17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가업으로 100년 이상 이어오던 곡물상회가 파산하자 가족이 모두 뤼베크를 떠나 독일 남부로 이사를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화재보험회사의 견습 사원으로 취직한 그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는데 이런 경험이 작품의 바탕이 되었다. 또 이러한 토마스 만의 경험이 독일 북부의 현실적인 성향을 극복하고 남부의 예술적인 성향으로 변신하는 과정이라고 분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독일 북부와 남부의 서로 다른 모습이 심화되어 창작된 소설이 1903년 발표된 <토니오 크뢰거>이다. 건전하고 행복한 시민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그 속에 뛰어들 수 없는 예술가의 숙명적인 고독과 고뇌를 그린 이 작품의 모티프는 그 이후로도 토마스 만 작품에서 자주 차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서술방식을 '아이러니'라고 표현했는데, 사물의 상반되는 두 측면을 다룰 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음으로써 양면을 모두 볼 수 있게 해주는 서술 방식이다. 즉, 양극적 모순 속에서 깊은 고뇌를 통해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토마스 만의 산문 정신이자 소설 기법인 것이다.

1912년, 37세 때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발표한다. 소설은 탁월한 예술가인 '에센바하'가 베네치아에서 만난 미소년 '타치오'에게 반해 예술가적인 냉정함을 잃고 타치오와 인간적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무기력과 탈진상태에서 죽음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쇼펜하우어, 바그너, 니체의 영향을 받았는데 쇼펜하우어로부터는 염세주의를, 바그너로부터는 '음악에 대한 도취를 통한 죽음에의 동경'을, 니체로부터는 '삶의 이념'을 물려받는다.


한편, 토마스 만의 형 하인리히 만(1871~1950)은 독일 시민 계급의 봉건적 노예근성과 비민주적 사고 방식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비판하였다. 그는 권위주의적 국가와 파시즘의 폭정에 반대했기 때문에 사회 참여적인 프랑스 문학에 가까왔다. 반면, 토마스 만은 초기에 정신적, 미학적 문제에만 집중했다.

1918년 토마스 만은 <한 비정치인의 고찰>이라는 책에서 보수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두 진영의 논쟁을 독일 문학사에서는 <형제 논쟁>이라 부른다. 

하지만 1924년, 토마스 만이 49세가 될 때 큰 변화가 일어나는 데 장편소설 <마의 산>을 발표하면서 부터였다. <마의 산>에서도 과거에 중요시 하던 '시민성과 예술성', '생과 죽음', '문명과 야만' 등 양극적인 문제를 놓고 고뇌하는 모습이 나오지만 과거의 많은 것들과의 결별이 드러난다. <마의 산>에서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의 입을 빌려 "인간은 선과 사랑을 위해 결코 죽음에 자기 사고의 지배권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현실 참여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특히 1차 세계대전을 다룸으로써 사회와 시대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1930년, 55세가 되던 해 발표한 <마리오와 마술사>라는 단편소설에서는 나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그렸고, 나치 반대 강연에도 나선다. 그러던 중 1933년, 토마스 만이 스위스에 있을 때 나치가 집권하고 토마스 만은  귀국을 포기하게 된다. 1938년까지 스위스에서 지내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한다. 형과 화해한 토마스 만은 1940년부터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이라는 방송에서 연설을 했다. 창작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고, 망명해 온 작가들에게 생활비 지원 등 많은 도움을 준다. 그 중에는 브레히트도 있었다.

1943년, <요셉과 그 형제들>이 발표된다. 토마스 만은 나치의 폭정이 너무 가혹해서 직접 거기에 저항하는 묘사를 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였기에 유대 정신을 그려 나치의 반유대감정과 교묘히 대비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하였다. 이와 비견되는 작품이 1939년에 발표된 <바이마르의 로테>라는 소설이다. 괴테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 되었을 무렵 로테가 그녀의 딸과 바이마르에 와서 괴테와 만나고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인데 여기서도 역시 나치의 박해를 직접적으로 다루진 않는다. 하지만 토마스 만은 이런 내용을 통해 나치의 야만성을 유럽 문화의 신화적 세계와 찬란한 독일 문화의 전성시대와 비교하고자 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던 1943년 독일 망명 문학의 금자탑이라 할 수 있는 <파우스트 박사>를 집필하고 1947년에 발표한다. 부제목은 '한 친구가 이야기하는 독일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의 생애'였는데 이 소설에서도 나치의 박해와 야만성은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천재적 음악가 아드리안 레버퀸은 더 이상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없게 되자 악마와 계약하게 된다. 즉, 의식적으로 성병에 감염되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독일인의 성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음악이라 생각하였다.

1951년 <선택받은 사람들>을 발표한다. 근친상간이라는 죄를 지은 죄인이 속죄 후 신의 은총을 받고 교황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후로도 1953년 <기만당한 여인>등 몇 작품을 발표하지만 이 시기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파우스트 박사>였다. 이후로도 활발한 강연 활동을 벌이다가 1955년 8월 22일 혈전증으로 취리히 시립병원에서 생을 마감했고, 취리히 근교 소도시 교회 묘지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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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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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 아들이 미국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기사. 연이어 자신이 7급 공무원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는, 다소 생뚱 맞은 이야기. 다음 장의 액자 속 이야기에서는 적그리스도니 소크라테스니 하는, 다소 자의식 과잉의 등장인물들이 맥락 없이 떠들어 대고 있다. 다소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이 구성은 소설을 읽다보면 서로 연관을 갖기 시작한다.


화자인 '나'는 7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고, 일면 마초적인 인물로 별명은 적그리스도이다. 인서울 대학에 다니고 있지만 이렇다 할 열정은 없다. 세속적인 성공을 쫓아 아첨을 일삼는 부류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렇기에 대기업에 취직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모아 놓고 인생 선배로서 그럴싸한 소리를 뇌까릴 때 대놓고 비아냥 거릴 수가 있었다.

이때 화자의 발언에 온도 차는 있지만 동조하여 자취방을 찾아든 이가 휘영, 병권, 그리고 세연이다. 이 중 세연이 가장 주목할만한 인물인데, 그녀는 빼어난 머리도 좋고 얼굴도 예뻤다. 그녀 주변에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는데 매우 추악한 소문부터 그녀의 뛰어난 능력을 간증하는 소문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그런 세연이 학교 연못, 그것도 불과 50cm에 불과한 연못에 빠져 죽는다. 여러가지 정황상 자살이었다. 세연은 죽기 전 '나'와 휘영, 병권 등에게 인터넷 예약 메일로 유서와 잡기 묶음을 남긴다. 묶음 중 일부는 암호가 걸려 있었는데, 암호는 '잡기 속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면서 재키(세연), 소크라테스(휘영), 재프루더(병권), 루비(추윤영), 하비(?), 제리(?), 메리(?)가 아닌 누군가' 였다. '나'인 적그리스도는 암호가 아니었다. 


세연이 죽기 전 '나'에게 소개해주고 간 여자가 추윤영이다. 그녀는 세연 못지 않게 예뻤고 세연을 추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세연은 추윤영에게 '나'와 사귀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추윤영은 '나'와 사귀기 시작한 뒤로 관계에 몹시 집착했고, 자신을 세연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애걸한다. 세연은 추윤영에게 자신을 따라 자살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추윤영과 동거하며 7급 공무원 준비를 시작한다. 2년쯤 흐른 뒤 추윤영이 공부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보다는 처음부터 느꼈던 찜찜함과 욕정적인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 욕망에 글자 그대로 '도망친다'. '나'는 가까스로 7급 공무원에 합격하고, 추윤영은 미국으로 유학간다.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공무원 생활과 '내'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휘영은 잡지가 기자가 되어 일간지 기자를 동경하며 살았고, 병권은 공인회계사 준비를 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whydoyoulive.com이라는 자살 사이트가 열린다. 세연이 사망한지 5년이 되던 즈음이었다. 자살선언문이 사이트에 올라오는데, 간략히 요약하자면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이룰 것도, 변화시킬 것도 없다. 기껏해야 이미 다 이루어진 세상을 잘 굴러가도록 하는 노예 역할이 주어졌을 뿐이고, 그 과정에서 충족감을 느낀다고 해도 비루한 감정일 뿐이다. 따라서 자살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질 수 밖에 없다'는 모순되는 듯 하면서도 일면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단서 조항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자살의도를 오해하지 못하도록 가장 완벽한 상태에서 죽어야 한다' 가 달려 있었다. 즉, 취업에 실패했다거나 금전적인 문제가 생긴 직후 자살선언에 따라 죽어봤자 언론과 사람들은 '돈에 쪼들렸거나 우울증이 원인이 되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오도한다는 것이다. 이 사이트에는 세연의 잡기가 매일같이 조금씩 올라왔다. 세연은 자신을 뒤따라 자살하도록 암시를 걸고, 윽박지르고, 심리적으로 약한 면을 건드리고, 추종자의 애정을 이용해 왔다. 그녀가 그들에게 암시하고 약속을 받아낸 시점이 자신이 자살한 뒤 5년 뒤였다.

추윤영이 사이트에 자살예고문을 올린 후 물에 빠져 죽고, 대기업 회장 아들(그가 하비였다)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형태의 자살을 성공시킨다. 얼마 뒤 병권이 자살한다.

우연한 계기로 암호가 풀린다. 재키,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등의 별명은 모두 케네디 암살과 관련된 이름들이었으므로 빠진 이름은 캐네디였다. 잡기를 읽은 후 '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내기 위해 사이트에 도발성 글을 올리고, 사이트 운영자(그녀가 메리로 보인다)가 '나'에게 연락을 해온다. 약속 장소에 간 나는 그녀가 세연과 너무 닮아서 놀라고 만다. 그녀는 자신이 세연의 동생이라고 했다. 그녀가 제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자의식 과잉의 억지 논리로 사람들을 자살로 내몰지 말라며 3년 내에 다른 형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소리친다. '나'는 나중에서야 그 장면과 음성이 모두 녹화되어 사이트에 올라가 결과적으로 자살사이트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떠올리며 whydoyoulive.com과는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처음엔 이 책도 <철수사용설명서>와 같은 부류의 책인가 싶었으나 그것은 오해였다. 하지만 썩 와닿는 소설도 아니었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는데, 한수산의 <부초>가 자꾸 떠올랐다. 왜 한수산의 <부초>가 떠올랐을까, 나는 한수산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점심 먹고 멍하게 있다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수산이 <부초>를 쓰기 위해 써커스단을 따라다니며 취재하며 근성을 보였던 데 반해 최근의 한국소설들은 머리 속에서 씌여진다. 그럴싸한 책을 인용하고, 짜집기하고, 이럴것이다 저럴것이다 해가면서 한 권의 책이 레포트 씌여지듯 완성된다. 그리고 평론가들은 문제작이다, 공론을 일으켰다 하면서 상을 준다. 어쩌면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라서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이런 박한 평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럴 땐 내가 옛날 사람같다고 느낀다.

아니면 작가가 기자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국회의원 보좌관을 쓰레기쯤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나는 기자도 보좌관과 오십보백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행태는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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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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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고급 아파트에서 헬스센터 경영자의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된다. 욕조의 물을 분석한 결과 장기보존액 성분이 발견되었고 신체의 절단면은 메스로 그은 듯 깨끗했다. 그리고 수술할 때 사용되는 라텍스 장갑의 흔적도 발견된다. 얼마 뒤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는데 이번에는 몸통이 없었고, 연이어 왼팔과 오른팔 그리고 왼다리와 오른다리가 사라진 시체가 발견된다. 사라진 신체 부위를 모두 합하면 한 사람분이 되는 기묘한 사건이었다.

경시청은 가부라기를 수사본부의 대행으로 지목하고 본격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가부라기의 옆에는 행동파인 마사키와 최고학부를 나온 엘리트 히메노, 그리고 과학수사 전문 프로파일러 사와다가 함께 한다.


한편, 한 남자가 병상에서 깨어난다. 그의 기억은 온통 뒤죽박죽이었고 몸통과 팔, 그리고 다리는 남의 것을 이어붙인 양 부자연스러웠다. 자신을 다카사카 시온이라 소개한 의사는 남자에게 만능세포를 이용하여 신체를 붙여주었다고 한다. 남자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

재활을 시작한 남자가 만난 유일한 환자는 시즈라는 열여덟의 소녀뿐. 하지만 그녀는 곧 퇴원하고, 남자는 그녀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다. 그 과정에서 신체 일부가 없어져버린 기묘한 살인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피해자들 모두가 과거에 한 병원에서 근무했던 의사의 손자들이었다는 것도 알게된다.

고심 끝에 남자는 자신을 '데드맨' 이라 칭하며 가부라기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만, 메일을 받은 가부라기는 큰 의문에 빠지고 만다. 남자의 말은 조리가 있었고 신뢰할만 했지만, 그가 기억하고 있는 주변적인 일들은 모두 40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2012년도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으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대가의 기개에 눌리지 않고 우직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점성술 살인사건>은 점성술에 사로잡힌 화가가 자신의 딸들을 이용해 완벽한 존재를 만들려는 광기에 사로잡히고, 화가가 남긴 수기대로 훼손된 딸들의 시체가 일본 각지에서 발견되는 내용이다. 40여년간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이 미타라이 기요시에 의해 해결되는 내용이다. '아조트' 라는 명칭이나, 40년의 시간 역시 <점성술 살인사건>에 대한 오마주이다.


소설 속에서 가부라기는 본능적으로 애브덕션이라는 추론법을 사용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불가해한 현상 A가 관찰되었는데 어떤 가정 B를 세우면 A는 당연한 귀결이 된다. 그렇다면 가정 B는 옳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인데, 실제 사례로는 해왕성의 발견을 들 수 있다. 천왕성의 궤도에서 설명할 수 없는 흔들림이 관측되자 프랑스 천문학자인 위르벵 르베리에와 영국 천문학자 존 애덤스는 '천왕성 바깥쪽에 미지의 행성이 존재하고, 그 인력이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 가정하고, 가공의 행성 궤도를 정확하게 계산해낸다. 이 가설은 독일 천문학자 요한 갈레가 두 사람이 계산한 궤도 위에서 해왕성을 발견하여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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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차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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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시자(幻視者)로 일컬어진 불세출의 화가 후지누마 잇세이는 생전에 자신이 본 환상을 화폭에 담았는데 공개되지 않은 유작 <환영군상>은 마니아층 사이에서 풍문으로만 떠도는 걸작이었다.

그에게는 후지누마 기이치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었는데 십여 년 전 자동차 사고로 얼굴과 양손을 크게 다친 후 외따로 떨어진 곳에 수차관이라는 저택을 짓고 아버지의 작품을 대부분 되사들였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씩 아버지와 연고가 있던 마니아들에게만 작품을 공개했다.

기이치의 아내는 이제 갓 열아홉살이 된 유리에라는 앳된 여성이었는데 아버지의 제자 시바가키 고이치로의 딸이었다. 얼굴을 하얀 가면으로 가리고 휠체어에 탄 마흔줄의 기이치와 앳된 아내는 누가 보아도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작품 공개를 이어가던 1985년, 이 수차관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난다. 가정부 네기시 후미에가 탑에서 떨어져 사망했고, 후루카와 쓰네히토라는 중이 사라졌으며, 마사키 신고라는 잇세이의 제자가 토막난 채 난로에서 발견된 것이다. 시체가 마사키 신고라는 것은 잘리워진 채 난로 앞에 놓여있던 약지로 알 수 있었다. 경찰은 막연히 사라진 후루카와 쓰네히토가 살인범이라 단정하고 사건을 종결시킨다.

1986년, 작품을 공개하기로 한 시기에 시마다 기요시라는 불청객이 찾아든다. 그는 경찰의 지인으로 후루카와의 친구라고 했다. 그는 후루카와가 결백하다는 전제 하에 1985년도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조사한다. 그러나 그 해에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통근 가정부 노자와 도모코가 목이 졸려 살해당고고, 유리에의 방에서 미타무라 노리유키가 망치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기이한 구조의 저택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의 진범을 짚어내는 시마다 기요시와 미래를 예견한 그림 <환영군상>이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본격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의 작품에는 폭우나 폭설, 그리고 외따로 떨어진 기이한 저택이 등장한다. 그 후 수수께끼 풀이를 위한 오래된 수법을 여과 없이 전개하는데, 본격물은 새로운 트릭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는 약점은 있지만 밀실 트릭을 좋아하는 고정팬들이 있다는 장점도 있다. <수차관의 살인>은 미스터리 애독자라면 중반부 즈음에는 범인을 눈치챌 것이다. 가면과 바꿔치기 트릭은 오래된 트릭 중 하나이다.

 

http://blog.naver.com/rainsky94/220495698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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