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몽 1 - 신화에서 역사로 다시 태어난 위대한 불멸의 영웅
홍석주 지음, 최완규.정형수 극본 / 황금나침반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나라에 의해 조선이 멸망한 뒤 동이족의 청년 영웅 해모수는 부여국 왕자 금와 등과 더불어 다물군을 조직, 망국 조선 부흥 운동을 펼친다. 다물군의 세가 점차 커지고 마침내 한나라가 설치한 군현을 공격하려던 시점에 해모수는 어린 시절 친구 양정의 음모에 걸려들게 된다.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눈마저 멀게 된 해모수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한편, 비류수 가 서하국 군장 하백의 딸인 유화는 해모수의 아이를 잉태하는 데 그 아이가 바로 주몽이었다. 금와는 자신의 절친 해모수의 연인인 유화를 궁을 받아들이고, 주몽 역시 자신의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부여국 대사자 부득불은 부여가 동이족과 엮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망국 조선이 부응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부여와 대립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신녀 여미을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래서 이 둘은 상처 입은 해모수를 산 속 모처에 감금했고, 주몽은 독을 써서 없애려 했다. 주몽은 목숨은 잃지 않았지만 온 몸의 기혈과 맥이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게 되어 연약한 상태가 되었다.


주몽은 장성한 뒤 큰형 대소와 작은형 영포로부터 핍박 받는다. 원래부터 나약한 체질이었던 주몽은 자신의 뜻을 적극적으로 펼치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우연히 산 속에 갇힌 해모수와 조우하고, 그에게서 무술을 전수받는다. 그리고 막혔던 기혈과 맥도 뚫게 된다.


그 후 졸본의 계루국에서 온 소서노와 사랑을 하게 되지만 대소가 소서노에게 집적대는 바람에 소서노는 원치 않는 사람과 결혼하게 된다. 주몽 역시 한백 고을의 군장 예천의 딸 예소야와 혼례를 치르는데, 나중에 예소야가 낳은 아들이 유리이다.


주몽이 밖으로 떠도는 사이 '금와-대소'간에 1차 권력 투쟁이, '금와-부득불' 사이에 2차 권력 투쟁이 벌어진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주몽이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정작 주몽은 새로운 나라를 창업하겠다며 부여를 떠난다. 


후에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졸본으로 간 주몽은 상처한 소서노와 재혼하는데, 소서노가 데려온 아이가 바로 비류와 온조이다.


---


라고, 소설 <주몽>은 쓰고 있다. 


철기를 기반으로 강력한 무력을 앞세운 한이 아직 강력한 철기를 손에 쥐지 못한 조선과 부여를 핍박하던 시기의 일로, 나중에 주몽 역시 철기를 손에 쥐면서 동아시아에 강력한 국가를 건립하니 바로 고구려이다. 비류와 온조는 유리가 나타나자 남쪽으로 내려가 백제를 건국하는 데 소설은 바로 직전에서 끝이 난다.


역사적 진실과 거리가 먼 저급한 민족주의 위에 무협지와 출애굽기의 각종 모티프를 적절히 버무려 되는대로 써 내려간 소설로, 문학적 가치도 역사적 고증도 철저히 외면했다는 점에서 나름 뚝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4450453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레이어
최재경 지음 / 민음사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김유노는 JJ 물산에서 최고로 잘 나가는 MD였다. 하지만 어느 날, 323만원 짜리 에어컨이 32만 3천원으로 홈페이지에 게시되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 경쟁사가 32만 3천원짜리 에어컨에 1천건 이상 주문을 때려 박았다고 했다.

회사를 짤린 김유노는 소일거리 삼아 <벼룩시장>에서 본 광고에 따라 "뷔페 요리를 함께 먹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곳에서 또래인 제인을 만난다. 둘은 한 때 외교관을 지냈고, 의원이라 불리는 노인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뷔페를 먹는다. 노인은 유노와 제인에게 시종일관 흥미를 나타내더니 헤어질 때 쯤 '돈 받고 노는 일이 있다' 면서 명함을 한 장 건넨다. 명함에는 '축복의 섬' 이라는 글자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둘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축복의 섬'에 전화를 걸었고, '재미 성향 검사'를 통과한 후 '돈 받고 놀아주는 사람', 즉 플레이어가 된다. 신규 플레이어들은 클럽 "보헤미안 오렌지"에서 첫 미팅을 가졌는데, 미팅에 나온 팀장 혜리는 자신을 성전환자라 스스럼 없이 밝히며 플레이어의 역할과 임무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그날 밤, 유노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플레이어를 그만두는 편이 좋다"는 은밀한 경고를 받지만,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압도적인 특전과 보상을 뿌리칠 수는 없었다.

처음 주어진 3단계 임무는 타인을 대신해 무언가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유노는 반년 전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중년 사내를 위해 제주도에서 비싼 스포츠카를 빌려 여행을 했다. 유노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고, 욕망의 즉각적인 충족이 주는 쾌감을 만끽했다. 몇 차례 3단계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을 때 유노에게 2단계 임무가 주어졌다. 2단계 임무는 타인이 욕망하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한경희라는 중년의 여성과 소도라는 외딴 섬에서 관능적인 경험을 치룬 유노는 그때부터 자신이 생각하는 '놀이'와, '축복의 섬'이 제시하는 '놀이'에 어딘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바로 그 즈음, 성전환자인 혜리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혜리는 과거 신태우라는 이름을 썼고, 직업은 고등학교 선생이었다. 그는 플레이를 거듭하다 마침내 성전환까지 하게 되었는데, 성전환 하기 전만 하더라도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가겠다는 결심이 확고했으나 최근에는 성정체성에 혼란을 느꼈다. 특히 미니라는 플레이어의 유혹에 굴복하고, 유노와 충동적인 잠자리를 가진 이후에는 한층 괴로워하던 차였다. 

그리고 플레이어로서 동지의식을 느꼈고 희미하게 이성으로서 호감을 품었던 제인이 페이스 오프 임무를 받고 유노를 떠나게 된다.

유노는 '축복의 섬'이 표면에 내세우는 목적 외에 뭔가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을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쩌면 혜리의 사망 원인도 자살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었다.

그 과정에서 유노는 '축복의 섬'에 약간의 의심을 품고 있는 절친 상인과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유노와 상인이 '축복의 섬' 본거지를 마침내 찾아냈을 때 그곳에는 자신이 처음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만났던, 한 때 외교관을 지냈고 의원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었다. '축복의 섬'을 만들고 지휘한 장본인은 바로 그 노인이었던 것이다. 


------


'논다' 는 것이야 말로 가장 반자본주의적인 활동일지도 모른다. 물론 과거 어느 때인가, '생산'과 '논다'는 것이 어느 정도 교집합을 가졌던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논다'는 것은 생산으로 부터 완전 유리되어 온전히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활동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공 유노 앞에 한 노인이 '돈 받고 노는 일'이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유노마저도 굴복시키는 마법을 일으킨다. 

물론, 공짜는 없었다. 부르주아지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대치의 자극도 모자라 종종 마약에 탐닉하듯, 그들은 타인의 놀이를 질료로 삼아 욕망 자극의 불쏘시개로 삼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희생자인 플레이어들은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혼동하여 선전환 수술을 받기도 하고(혜리), 자신이 매일같이 보던 여자를 다른 여자와 착각하기도 한다(유노).


시작은 그럴싸하게 전개되나, 후반부로 갈 수록 호흡이 딸려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허덕이다가, 부랴부랴 마무리를 짓고 마는 작가의 뒷심 부족이 아쉽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4291590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Getting Old Is to Die for (Mass Market Paperback)
Rita Lakin / Dell Pub Co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5세의 글래디와 73세의 에비는 자매 지간으로 팜비치의 고급 실버타운에서 살고 있다. 글래디는 남편을 1961년도에 불운한 사고로 잃었고, 에비는 남편 조와 이혼한 처지라서 둘 다 현재는 싱글이었다. 자매는 여생을 흥미진진한 일에 몰두하고자 했고, 고심 끝에 글래디 골드 앤 어소시에이츠 탐정소를 열게 된다. 자매와 세 명의 노파로 구성된 할머니 탐정대는 소소한 사건들을 의뢰 받아 최선을 다해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글래디는 잭이라는 전직 경찰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전 남편의 그림자가 여전히 글래디 주변에 어른거렸다. 둘 사이는 어느 순간 교착상태에 빠진다. 

잭은 40년도 전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을 해결함으로써 자신들의 관계를 진전시키고자 한다. 다이아몬드 반지 대신 글래디의 남편을 누가 살해했는지 밝혀 냄으로써 프로포즈 선물을 대신하겠다는 잭의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리타 라킨은 드라마 극본가, TV 프로그램 구성작가, 스토리 에디터와 프로듀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한 작가이다. 노파들로 이뤄진 탐정단이 활약하는 글래디 골드 시리즈로도 유명한데 2005년도에 발표한 첫 시리즈 <Getting Old Is Murder>를 시작으로 2018년 <Getting Old Will Haunt You> 까지 총 9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내 남편 살인사건>의 원제는 <Getting Old Is To Die For>로 글래디의 전 남편을 살해한 범인을 현재의 남자친구가 찾아낸다는 스토리이다. 하지만 수수께끼 풀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그냥 남편이 구해준 여학생을 스토킹하던 남자가 범인이었고, 여학생은 무서워서 입을 다물었을 뿐), 노파들이 의뢰받아 해결하는 사건들도 시시하기 짝이 없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42246539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림픽의 몸값 1 오늘의 일본문학 8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964년 여름, 도쿄는 가뭄으로 제한급수가 실시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땅을 적시는 것은 비가 아니라 공사장 인부들의 땀이었다. 올림픽을 두달 여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던 것이다. 

수도고속도로가 새로 놓이고, 모노레일과 신칸센이 개통을 앞두고 있었다. 요요기 체육관과 무도관도 이 때 완공된 건물들이다. 그 건물과 도로 주변을 혼다 S600 스포츠카가 질주했고, 관광객들을 아사히 펜텍의 일안 레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 나온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사용하기도 했다. TV에서는 드라마 <소용돌이 치는 바다>가 한창이었고, 가수 사카모토 큐의 '위를 보며 걷자'가 '스키야키'라는 이름으로 빌보드 핫100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헤이본 펀치>와 같은 남성잡지는 물론이고 <장미족>과 같은 동성애 잡지도 유행하는 등 도쿄는 새로운 건물과 문화를 일으켜 세우며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완전한 새로운 도시로 거듭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시기, 아키타의 구마자와촌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머리로 도쿄대에 입학한 뒤 지금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 시마자키 구니오의 형이 사망한다. 그 사건이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근간부터 뒤흔들게 될 사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시마자키 구니오의 형 하쓰오는 건설 인부로, 수도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다. 어느 날, 그가 취직한 야마신 흥업에서 전보가 날아든다. 하쓰오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야마신 흥업에 따르면 하쓰오는 두 타임 연속 일하는 '통 일'을 반복하다가 심장마비에 걸렸다고 했다. 고향의 노모와 형수는 도쿄에 와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시마자키가 형의 유골을 수습해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시마자키의 형이 기거하던 합숙소는 고향 아키타 출신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취업한 곳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 소식을 묻는 고향 아낙의 요청으로 시마자키는 그 합숙소를 찾아가게 된다. 

합숙소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다소 충격을 받은 시마자키는 충동적으로 그곳 현장에서 여름 한 철 일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자신의 학비를 대기 위해 형이 했던 고생을 조금이라도 체험해야한다는 의무감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도로서 실천을 통해 사상을 검증하겠다는 호승심 등이 더해진 결과였다. 

일은 쉽지 않았다. 일륜차를 끌다가 블록을 엎기 일쑤였다. 게다가 건설 현장 내에는 '히에라르키(계층간 차별의식)'가 만연해 있었다. 하청 회사 직원은 원청 회사 직원에게 찍소리도 못 했고, 원청 회사에서도 대학을 나온 먹물과 노동자는 서로 말을 섞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노동자들끼리의 착취도 있었는데, 히구치라는 반 야쿠자가 건설현장에 신참이 나타나면 도박참여를 강권한 뒤 사기도박으로 돈을 빼앗아갔다. 시마자키도 여기에 당해 1만 6천엔의 빚을 지게 된다. 한달을 꼬박 일한 돈 전액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차츰 올림픽이 민중에게 강요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쿄라는 중심도시가 주변도시로부터 빨아인 부가 왜 핏빛을 띠는지, 정직하게 노동하는 사람이 왜 가장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필로폰과 같은 마약에 중독되어 끝내 '심장마비사' 처리 되는지 알게된다. 철도 전문 소매치기(하코시) 무라타씨와 만나 동료를 얻게되고, 다이나마이트 12발까지 손에 쥐게 되자 시마자키는 도쿄대 졸업으로 보장된 미래를 거부하고 단독으로 혁명의 대열에 참가하기로 결심한다. 


------


출신성분은 일본 최하층 계급이지만 가스미가세키의 한 자리를 원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도쿄대생 시마자키 구니오. 그가 가정사를 계기로 일본 자본주의의 모순을 깨닫고 급기야 테러리스트로 변모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출신 성분만큼이나 모순된 과정을 거치는데, 시마자키는 안보투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면서도 강단 사회주의자 교수 밑에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배우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이론적으로는 전학련 투쟁가들보다 훨씬 세련된 면모를 갖췄지만, 이를 혁명 운동에 접목시켜야 한다는 관념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중반, 일본의 급진파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요요기파(공산당사가 요요기역 인근에 있었다)와 반요요기파로 완전히 분화되어 대립하던 시기였다. '공산당 무오류'를 주장하는 요요기파를 급진적 학생들은 극도로 경멸했고, 반대로 요요기파는 이들을 '극좌 트로츠키스트'로 매도했다. '극좌 트로츠키스트'로 매도된 이들도 실상 내부를 보면 그들의 헬멧 수만큼이나 다양한 섹트가 있었고, 대립, 심지어는 살인까지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분화 정도만 따지자면 세계 어느 급진 진영보다도 다양했다.


이들은 1960년 안보투쟁을 필두로, 1961년 정폭법 반대, 1962년 대관법 투쟁, 1963년 원자력잠수함 기항 저지투쟁, 미소핵실험 항의, 1964년~65년 한일협상 저지투쟁(그렇다, 일본 좌익은 한일협상이 자본주의적 이해에 기반한 반민중적 협상이라고 평가했다) 등 다양한 투쟁을 벌였다.

언뜻 초식동물처럼 보이는 현재의 일본 급진세력이 사실 아사마 산장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스탈린주의자부터 적군파테러리스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사회 곳곳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좌익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활동에 유독 '올림픽 반대 투쟁'은 없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을 오쿠다 히데오는 파고들어 소설화했다. 2권에서 시마자키 구니오는 도쿄대의 좌익 동아리와 조우하는데, 이들을 오쿠다 히데오는 '유치한 수준에서 혁명 놀이 하는 그룹'으로 평가한다. 좌익 동아리 리더는 올림픽이야 말로 일본 자본주의 상부구조 완성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올림픽'이라는 프로파간다를 해체하려다 역풍을 맞으면 좌익은 100년 동안 미움을 받을 것이라며 전략과 전술을 혼동한다. 그러면서도 다이나마이트를 요구하는 소아병적 발상을 보인다. 이런 소아병적 발상이 적군파로, 그리고 아사마 산장의 살인 사건으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외로운 혁명을 수행하던 시마자키 구니오는 평범한 대학을 나와 보통의 사고방식을 갖춘 형사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시마자키 구니오가 공안부 형사의 총에 맞는 것이 아니라는 점, 이것이야 말로 시대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룬 일본은 좌익들의 저항을 70년 초 완전 분쇄하고 거품경제로 접어든다. 전공투로 칭해지던 그 거대한 저항은 그 후 50년간 침묵하게 된다.


https://blog.naver.com/rainsky94/2224116880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 전2권 세트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서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앤드리아는 코네티컷 주 에이본에서 자랐는데, 이는 고등학교 때 온갖 운동을 하고, 끼리끼리 모여 놀며,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술 파티'를 즐겼다는 의미이다. 학교 갈 때는 스웨트 팬츠를 입었고, 토요일 밤에는 청바지를, 댄스파티에서는 드레스라 칭할 만한 것을 입었다. 앤드리아는 이후 브라운 대학-온갖 유형의 예술가와 사회부적응자, 그리고 컴퓨터 괴짜들이 모여드는-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여행을 다녀왔다. 인도 여행에서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앤드리아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은 <뉴요커>지에 기사를 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커리어를 위해 온갖 잡지사에 편집 어시스턴트로 일하고 싶다는 이력서를 집어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엘리아스 클라크'에서 앤드리아에게 면접 기회를 주었고, 면접 과정이 신통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앤드리아는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 프리스틀리를 위해 어시스턴트로 일할 기회를 잡게 된다.


인사과 직원의 말에 따른 미란다 프리스틀리는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에디터 중 한 사람인데, 그녀가 날마다 헤내는 모든 업적을 옆에서 돕는 일은 '백만 명쯤 되는 여자들이 너무도 하고 싶어하는 일' 이라고 했다. 계약기간은 1년이었고, 그 1년을 잘 마친 선임 어시스턴트들은 에디터로 승진하는 등 고속 승진 가도를 달렸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앤드리아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수행 비서나 할 법한 일들이었다. 앤드리아의 아침 식사를 대령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 오고, 옷들을 세탁소에 맡기고, 일정표를 업데이트 하는 따위였다. 

앤드리아는 정확하게 지시하는 법이 없었다. 이를 테면 최근 자신이 신문에서 본 퓨전 레스토랑에 관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책상에 올려놓으라는 식이었다. 언제, 어떤 신문에서, 어떤 종류의 식당을 봤는지 묻는 것은 금기였다. 그리고 종종 지시는 엉뚱하게 이뤄지기도 했다. 맨해튼에서 무언가를 찾아오라고 해서 온 신경을 거기에 쏟고 있는 앤드리아에게 '워싱턴에서 그 가게를 찾는 게 그렇게도 힘든 일이냐'고 소리지르는 식이었다.

또한 그녀의 업무 범위는 직장에서의 일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녀의 쌍둥이 딸들을 위해 해리포터 신간이 서점에 깔리기도 전에 구해와야 했고, 그 집 강아지를 동물병원에서 찾아와야 했으며, 시동생을 위한 파티도 지원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정한 불가능에 가까운 시간 내에 처리되어야 했다. 할 수 없는 이유를 대는 것은 해고를 종용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미란다 프리스틀리는 심지어 앤드리아와, 그녀의 동료 에밀리를 같은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녀에게 있어 에밀리든, 앤드리아든,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충족시켜주기만 하면 되었고,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면 교체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앤드리아는 매일 매일 미란다의 폭압에 시들어갔다. 정해진 식사 시간도, 정해진 퇴근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좋은 점도, 굳이 찾자면 얼마쯤 있었다. 그것은 앤드리아가 타운카를 자신의 전용 차처럼 타고 다닐 수 있다는 점과 패션에 관한한 무엇이든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경비 처리를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미란다는 앤드리아가 자신의 일을 신속히 처리하길 원했고, 런웨이에서 자신을 위해 일하는 데 촌뜨기 처럼 입는 것은 못 견뎌 했으며, 경비 처리에 신경 쓰다가 자신의 요구사항이 그르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란다는 이런 이유로 갈 수록 하이패션으로 치장하게 되었고, 같은 이유로 절친 릴리, 그리고 남친 알렉스와 멀어지게 된다. 도저히 그들과의 친교를 다질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란다 프리스틀리의 그림자가 앤드리아의 삶을 거의 잠식해 들어가 이제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이 그녀의 박자에 맞춰졌을 무렵, 앤드리아는 그녀와 함께 파리의 패션쇼에 가게 된다. 원래는 동료 에밀리가 함께 가기로 했었으나 단구증가증에 걸려 드러누웠기 때문이다. 

파리에서도 미란다의 무리한 요구는 계속 되었다. 그런데 그 때, 아주 약간의 변화가 감지된다. 미란다가 앤드리아에게 런웨이에서 일한 지 얼마나 되었는지, 그리고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물었던 것이다. 그녀는 앤드리아의 삶에 아주 약간의 관심을 보였던 것 뿐이지만, 그녀가 암시하는 바는 매우 강력해 보였다. 그녀는 원한다면 <런웨이> 내에서 승진을 시켜줄 수도, <뉴요커>지의 유력한 사람에게 앤드리아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다고 암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한다. 앤드리아의 오랜 친구 릴리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켜 코마 상태에 빠진 것이다. 앤드리아는 파리에서 며칠 더 머물며 장래를 보장 받을 지, 아니면 당장 자신의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달려갈지 결정해야 했다. 

다음 날, 앤드리아는 미란다에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가 코마 상태에 빠졌지만 남기로 결정했다'고 고백한다. 미란다는 매우 만족하며 앤드리아의 결정을 칭찬한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앤드리아를 다시 하녀처럼 부리며 무리한 요구를 해 댄다. 바로 쌍둥이 딸의 여권이 만료되었으니 당장 갱신하라고 소리치며 발작을 시작한 것이다. 앤드리아는 불가능한 요구를 당연한 권리인 듯 요구하는 미란다에게 '엿 먹으라'고 말해준 뒤 미국으로 돌아온다.


릴리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한다. 남친 알렉스와는 서먹해 진다. 미란다는 그 후로 앤드리아에게 복수를 하지는 않았다. 물론 11개월에 달하는 그녀의 봉사를 인정하여 업계에 영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었다. 앤드리아가 쓴 짤막한 소설을 좋게 본 쎄븐틴의 편집자가 자신도 미란다의 어시스턴트 출신이라며 기뻐했던 것이다. 앤드리아의 새로운 커리어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베스트 셀러를 한 10년 쯤 뒤에 읽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일단 느긋하게 읽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시간이라는 훌륭한 비평가의 도움을 받아 책의 가치를 좀 더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가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패션계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동감 있게 포착해 냈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실제 작가는 <보그>지의 편집장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1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구성이나 주제의식은 다소 산만하다. 러브라인은 엉망이고, 미란다-엔드리아의 대립 구도 외에 공을 들인 관계도 거의 없다. 입체적인 인물과 사건이 전혀 없이 평면적으로 진행되는 점도 단점이다. 이는 작가의 심리묘사 기술이 아직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것 때문으로 보인다. 그래서 엔드리아가 <런웨이>를 박차고 나오는 부분도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표현되는데, 독자는 '겨우 이런 식으로 나오려고 11개월을 고생했다고?' 하는 아쉬운 마음을 품게 된다.

<아메리칸 사이코>와 같이 일정한 지향점을 향해 이미지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비싸고 예쁜 것', '일상에서 보기 힘든 것' 으로 한정하다 보니 울림이 작다. 소설 보다는 영화로 시각화 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