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합시다
이철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당과 여당, 그리고 각 정당내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질이다. 꼴보기 사납나? 난, 싸움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뭐 새누리당이야 사람으로 모이니 정책 보다는 사람들간의 헤게모니 싸움일 것이고,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은 각 계파마다 생각이 다르다. 당연히 싸움이 날 수 밖에 없는 구조 아닌가. 사람도 지역문제를 우선에 두는 사람이 있고, 경제문제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듯이 말이다. 열심히 싸우는 게 정치인의 바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그런 싸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누가 생떼를 쓰는지, 누가 다른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의회는 원래 시끄러운 도떼기시장이다. 지역에서 각 세력과 대표들이 와서 자원을 배분받기 위해 법을 만드는 이곳에서는 서로 많이 가져가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다. 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말이다. 싸운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다. 국회에 모인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며, 따라서 누군가의 이익을 지켜줘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16쪽)

 

우리나라 진보의 역사는 짧지 않다. 보수가 오랫동안 권력을 잡아서 그렇지, 진보 역시 오랫동안 존재한 엄연한 정치집단이다. 그러나 최근의 선거를 보면 지고만 있다. 김대중, 노무현의 리더십을 넘어서는 인물도 보이지 않고, 정책도 시민과 유리되어 있다. 자신들만의 세상에 갖혀 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최근 안철수의 탈당으로 새정치에 사람들이 모여들고는 있지만 내부의 혁신이 없는 새정치가 어떤 정책이나 리더십을 보일 지 걱정된다.

 

진보는 자신이 옳은 쪽, 선한 쪽이라는 믿음이 교조로 굳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진보에 팽배해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선거 때 마다 '어떻게 박근혜에게 표를 줄 수 있느냐'는 식의 얘기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유권자에게 투표는 가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선이고 악이냐를 따지는 과넘이 아닌 누가 현실적인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까를 가리는 관점에서 '왜 박근혜를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고 얕보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중을 욕할 게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탓해야 한다. 독재자의 딸에게 표를 던질 정도로 진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19쪽)

 

 

 2000년대 이후로만 보면 의제도 잘 설정하는 등 시민에 대한 전략, 선거에 대한 전략은 진보보다 몇 수 위다. 시민들이 원하는 바를 콕 집어낸다. 하지만 태생적 한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한민국 보수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사림, 그중에서도 노론이 대한민국 보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 중 300년 가까이 집권한 노론은 조선 말 나라를 잃자 곧 친일파로 변신한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중심의 통일 노선과 충돌하는 이승만 중심의 단정 노선의 주축이 되는데 이들이 바로 친미 세력으로 발전한다. 이처럼 노론, 친일, 단정, 친미로 이어지는 일련의 세려이 대한민국 보수의 역사, 보수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근대사로 들어오면 이들은 '성장'이란 아젠다를 내세운 산업화 세력으로 발전한다.
...
북한을 공포의 대상으로 이용하는 반공논리는 한편으로는 야당을 믿을 수 없다는 논리로 발전하기도 한다.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기보다는 여전히 상대를 부정하는 논리로 자신의 정당성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보수의 태생적 비극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보수가 승승장구하는 것은 도대...체 왜일까? 이런 논리가 그나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산업화와 고도성장 덕분이다. 보릿고개를 넘겼다는 자부심은 보수의 존재 이유가 됐다. 문제는 이것이 생명을 다했다는 것ㅇ다. 우리 사회의 담론은 산업화를 거쳐 이미 민주화로 넘어간 지 오래다. 그런데 보수는 산업화 이후 다른 어젠다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이다.
....
지금의 새누리당은 역대 여당 중 가장 공격적인 여당이라 할 만하다. 야당도 아닌 여당이 싸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긍정적인 자기 플랜이 없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시대 담론을담보하지 못한 부작용이 지금의 호전적인 여당을 만들어냈다. (107~109쪽)

 

이명박 정부를 넘어 박근혜 정부에서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관료사회의 부활이다. 행정부를 입법부, 사법부의 위에 두는 행포 역시 관료사회와 다르지 않다.

관료 중심의 국가 발전은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으로 성장하는 데는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조직이 전문화될 수록 더 큰 역량이 발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접어들어 사회가 다원화되기 시작하면 관료 중심체제는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법안을 만들어내는 전문적인 테크닉보다 서로의 입장이 상충되는 이해관계자들이 집단적으로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걸러내는 작업이 더욱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다름의 문제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은 전문화된 관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일은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몫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의 논의를 통해 걸러져야 한다. 따라서 한 사회가 발전할 수록 관료의 손에서 선출직 대표에게로 권한이 넘어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210쪽)

 

사실 관료주의의 결과는 1997년 IMF 경제위기였다. 그리고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에서 부활한 관료주의 이명박정권에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고, 나라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관료주의의 폐해를 시민들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가난한 홍길동이 자기 삶을 바꾸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개미처럼 일해서 열심히 부를 축적하는 것, 흔히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이다. 개미처럼 일하면 성공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을 채찍질하는 자기계발서가 유행하던 시대, 이른바 국민성공시대도 있었다. 성패의 기준을 내 노력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시대에도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였을 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맛봐야 했다.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계층간의 이동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져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을 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아메리칸 드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자 자기계발서가 퇴조하고 인문사회 서적이 부상했다. 개인의 실패에 대한 문제를 사회구조 속에서 찾고자 하는 노력이 나타났다. 개인의 행불행의 문제는 이제 사회적 해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외침이 커졌다. 제레미 리프킨의 비유를 빌리면, 아메리칸 드림이 아닌 유러피안 드림을 꿈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사회를 꿈꾼다면 경제와 정치의 긴장관계는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정치는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결국 정치 시스템을 이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64쪽)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나라 정치를 한번에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은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는지도 보이고, 지역감정의 근원을 알수 있는 등 참 유용하다. 그리고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랄 같은 사실은 내가 정치를 외면할수록 누군가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사회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몇 가지 안 된다. 시위에 나서는 직접적 행동도 있고, 단체를 만들어 활동할 수도 있지만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 중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쉬운길이 투표나 정치참여다. 어차피 내 삶에 영향을 주는 법률은 국회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그 국회에서 내 입장을 살펴서 법을 만들도록 하는게 유효한 방법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적 결정이 미뤄지지는 않는다. 많이 가진 이들이 더 열심히 투표하는 현상에서 알 수 있듯이, 불행하게도 정치는 참여하는 이들의 의견만 반영되기 마련이다. 결국 내 삶을 돕겠다고 하는 정당과 후보에 표를 주고, 지지를 보내는 정치참여야 말로 내 삶을 바꾸는 가장 쉽고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그래서 싫어도 외면해선 안되는 것이 정치다.(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다. 사실 먹고, 자고, 싸고 다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것은 없다. 국민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정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불신은 너무 심하다. 아마도 정치를 고귀한 것으로 생각해서 인 것 같다. 정치는 고귀하지 않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르니, 매일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서로 타협하는게 정치다.

"의회는 원래 시끄러운 도떼기시장이다. 지역에서 각 세력과 대표들이 와서 자원을 배분받기 위해 법을 만드는 이곳에서는 서로 많이 가져가기 위해 싸울 수 밖에 없다. 비록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말이다. 싸운다는 것은 노력한다는 뜻이다. 국회에 모인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며, 따라서 누군가의 이익을 지켜줘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싸워야 한다." (16쪽, 뭐라도 합시다)

 

몇 권의 책을 골라봤다. 제목으로 보자면 <이철희의 정치썰전>으로 정치를 드러봤으니, <뭐라도 합시다>의 방법은 바로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그랫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이다.

 

물론 내용은 그렇지는 않다. 한결같이 정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왜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야당에 대한 아쉬움과 비판도 담겨있다. 이기는 야당을 갖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정치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건 로또 당첨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정치가 달라지면 그때 정치에 관심을 갖겠다는 자세는 쇠붙이가 썩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를 바꾸려면 보통의 시민이 정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정치인의 놀이로 왜곡되지 않고 보통사람의 일상이 된다.

(7쪽, 뭐라도 합시다)

 

 

선진국에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정부 수반에 오른 정치인들이 꽤 많다. 영국의 존 메이저는 47세에, 토니 블레어는 44세에 각각 수상이 됐고, 버락 오바마는 47세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부터 지역사회 혹은 정당의 기초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경력을 쌓아왔다. 존 메이저가 시장통에 설치된 연단 위에 올라가서 연설을 하기 시작한 것은 21세 때였다. 토니 블레어는 22세에 노동당에 가입해서 정치를 시작했고, 오바마도 대학 재학 중이던 20세에 첫 정치 연설을 했다. (307쪽)

 

우리가 경쟁해야 할 국가의 정치인들이 20년 이상 경험을 쌓고 전문성을 키운 사람들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다른 분야에서의 경력을 토대로 정치를 시작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지기까지 한다.(308쪽)

 

정치는 전문적인 영역이다. 경험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격이 고매하다거나 머리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 명성을 쌓은 사람들이 정치판에 와서 실수를 저지른 후에 흔히 "이번에 많이 배웠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다. "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란 공적인 일이고 그 결과는 사람들의 삶에 즉각 영향을 미친다. (309쪽/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종필의 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이종필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상대성이론을 향한 일반인들과 이종필교수의 열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쓰기는 스타일이다 - 책읽기에서 글쓰기까지 나를 발견하는 시간
장석주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읽기와 쓰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17쪽)

 

맥락의 독서법은 이것과 저것,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의 상호 관련성을 이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삶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깊게 만든다. ... 문장의 수사법과 기교를 익히기 전에 먼저 다양한 맥락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19쪽)

 

책읽기는 나와는 다른 타자와의 접속, 그리고 세계와의 접속을 의미한다. 아울러 책읽기는 "자신의 무의식을, 그 욕망을 텍스트에 직접 접속하는 것"인데, 마치 "찌르듯이, 어쩌면 찔리는 듯 이루어지는 접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강렬한 경험이다. 즉 진짜 제대로 된 책을 읽는 일은 의식과 무의식에 텍스트가 찌르듯이, 혹은 찔리는 듯이 밀려들어오는 것이고, 자기고 모르게 제 안의 인지적 지형을 바꾼느 압도적인 경험인 것이다.(24쪽)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겹쳐질수록 우리 경험의 시공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책읽기는, 즉 유한한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몇 겹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25쪽)

 

내 경험에 비춰 말하자면,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서 책읽기를 선택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기보다는 본능이지 운명이다. 책읽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제 삶의 작은 틈새들과 주름들 안으로 숨어서 남들이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삶을 사는 자들이다.(25쪽)

 

 

추상 개념들과 관념들을 무작정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구체적 경험에 귀를 기울여라. 경험이 만들어내는 삶의 이야기, 경험이 들려주는 지혜의 말들, 풍부한 독서를 통한 다양한 간접경험. 이런 것들이 글쓰기의 아주 중요한 자산이다. (77쪽)

 

 

눈으로만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언어의 소리 그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 언어란 메세지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언어 자체가 메시지이다. 언어의 형식은 소리이다. 운문뿐 아니라 산문에서도 말의 소리와 리듬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메시지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인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말의 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언어는 의미와 소리가 결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성이나 의미는 홀로 고립될 수 없다. 즉 두요소가 하나로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좋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104쪽)

 

또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문장뿐만 아니라 각 문단 간에도 리듬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문단은 문장들의 한 묶음으로, 하나의 생각, 하나의 주제를 이루는 단위이다. 글의 흐름이 달라지는 곳에서는 꼭 문단을 나누어야 한다. (105쪽)

 

시는 즐거움을 주는 언어의 놀이이다. 있음의 오롯함이고, 그 있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어떤 시는 사물을 꿰뚫고 지나가는 직관의 순간을 보여주고, 어떤 시는 상상력의 다채로움과 오묘함을 보여준다. (167쪽)

 

 

스타일이란 작품의 내적 구정 원리요, 형식을 지배하는 원칙이다. 작가의 의지와 개성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게 좋은 스타일이다. 작가의 스타일이란 바로 작가 자신이다.(194쪽)

 

바흐의 음악과 베토벤의 음악이 다르다고 느낄 때 그것은 두 거장의 음악 스타일이 드러내는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당신이 무엇을 아느냐는 핵심적인 요소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다. 스타일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바탕과 관련이 있다. 당연히 스타일은 작가의 개성과 기질의 차이에서 달라진다. 스타일은 그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사람의 전부를 말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스타일인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195쪽)

 

김연수의 문장들은 보고 겪은 것들에 대한 반향을 품어 안는다. 그 문장들은 감각적인 디테일에서 돋보인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한마디로 "감각적인 표현으로서의 치환"이다. 그는 사물과 현상들, 그리고 사람의 일들을 감각의 그물로 포획해서 디테일이 풍부한 문장으로 그려내는데, 그게 바로 김연수의 스타일이다.

 

문장이란 시간의 압축이고, 시간의 경과 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의 메아리를 경청하는 일이다. 그것은 욕망과 동기들의 화음을 듣고 받아 적는 일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작가란 날마다 무엇인가를 쓰고 고치는 사람을 뜻한다.(198쪽)

 

 

글쓰기란, 문장의 예술이자 기술이며 제작이다. 누구나 훈련을 쌓고 연습을 하면 좋은 문장 쓰는 법을 익힐 수 있다. 단, 그것을 배우는 데는 일생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할지라도 지레 포기하지 마라. 글쓰기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공부요, 평생 그것을 배울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다.(10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민적 글쓰기 -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삶을 바꾼 쓰기의 힘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민을 처음 알게 되는 것은 저자의 책에서 흑역사로 나오는 한겨레신문 칼럼을 통해서 였다.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케이블TV에 그가 나왔다. 수줍은 태도로 애정어린 마음으로 기생충을 설명하는데, 그 때 처음 서민과 기생충에 관심이 생겼다. 아... 기생충에 대한 나의 생각이 선입견이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어느샌가 그는 유명한 방송인이 되었다. 서민같은 외모. 과학자(의사이기도 하지만)가 재미로 방송을 종횡무진하는게 나쁘지 않았다. '기생충 한마리 키워보실래요?' TV를 보면서 '네' 할뻔 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글에서 나온다. 90년대 진중권, 강준만, 박노자, 유시민의 글에 푹 빠져 살았다면 2000년대는 생각보다 심심했다. 물론 괜찮은 글쟁이들이 나오긴 했지만, 그리고 2010년대 중반 빵! 하고 서민이 나타났다.

 

 

그의 글 중 미국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성추행을 한 사실을 다룬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http://seomin.khan.kr/195 를 통해 웃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놀랐다. 이거야 말로 촌철살인이다.

 

 

사실 서민은 몇 권의 책을 낸 경력이 있다. 소설 <마태우스>가 있었고, <헬리코박터를 위한 변명>, <대통령과 기생충>이 있다. 물론 본인은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하여간, 서민은 본격적인 글쓰기 훈련에 들어간다. 종이신문 칼럼을 열심히 읽고, 블로그에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알라딘서재에서 그의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책에서는 바로 다음에 읽기를 강조한다. 즉, 글쓰기 훈련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머리속에 집어넣고 생각할 것이 많아야 한다는 것을 바로 뒤에 붙여서 이야기한다.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체가 화려한가'가 아니라, 글에 '자기 생각을 담고 있는가'다. 자기 생각이 없으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글이란 독자와 대화하며 독자를 설득하는 수단인데, 자기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대화와 설득이 가능하겠는가?

...

경험이 많으면 자기 생각이 만들어지고, 자기 생각이 있으면 글쓰기도 잘한다. 하지만 삶이란 유한한 법이고, 온갖 경험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글을 잘 쓸 정도로 여러 경험을 하려면 최소한 일흔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그때쯤엔 펜을 들 힘이 달린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함으로써 주인공의 경험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통로다.

(139~140쪽)

 

내가 최근 빠져 있는 그의 글은 일종의 정치풍자글이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조금은 거창해 보이지만, 글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누구나 한번쯤 가져봐야 할 질문이다. 조지 오웰의 네 가지 동기가 나의 사례에 딱히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이 프레임으로 이야기하자면, 네 번째 이유인 '정치성'에 가깝다. 정치성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타인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적극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의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면서 설 영향을 주고 받는 쌍방향적 소통이 전제된다. 나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의 가치들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삶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고양시키는 것이다. (19~20쪽)

 

<서민적 글쓰기>는 두 파트로 나뉜다. 글쓰기에 대한 생각(본인의 감추고 싶은 과거를 포함한, 그런데 감추고 싶어하지 않는)과 실제 글쓰기를 하는 방법이다. 첫번째 파트는 그냥 쭉 읽게 만든다. 두번째 파트는 뭔가 노트를 하고 싶어진다.

 

이제 서민의 칼럼이 책으로 묶여 나오길 기대해본다.

그의 전매특허 '돌려까기'에 제대로 맞아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