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는 시집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송승언의 <철과오크>, 황인찬의 <구관조씻기기>이외에는 구매조차 하지 않았다. 예전보다 시집에 대한 정보 얻기도 쉽지 않아진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2016년에는 시집을 좀 읽어야 겠다.

 

철과오크

 “요즘 사회는 혐오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 안에서 차별과 편견을 가진 나와 그걸 감시하는 내가 자꾸 분리가 되고 충돌을 일으켜요. 그런 싸움이 살면서 경험한 풍경, 문득 봤던 풍경과 겹쳐져서 이미지가 되는 것 같아요. 풍경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고 자라나고 성장하고 시들고 죽는 거죠. 무슨 의미든 보는 사람 삶의 경험이 거기에 빛처럼 스며들 수 있어요. 그런 풍경, 빈 공간을 많이 심어두려고 해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3172118145&code=960205

 

'단호한 감정 관찰' '말과 뜻과 방향을 제어하여 낯선 세계로 자신을 개방하는 독특한 힘' 등이다. 그는 사물과 자연, 관계의 풍경에서 의미를 지워내듯 최소화한 이미지를 담담하게 연다. 시집에 담긴 시 55편은 모두 '풍경의 지속―시선의 집중―시간의 채집―음악의 반복―시점의 전환―영원의 분절―죽음을 내재한 삶의 지속'이라는 재료와 의도, 설계와 구조를 띠고 있다.  http://news.mk.co.kr/newsRead.php?no=1224612&year=2015

 

송승언의 시가 사랑받는 까닭 중 하나는 반복을 통한 리듬감의 생성에 있다. “보이지 않는 길로 보이지 않는 차가 지나가고 보이지 않는 사람이 지나간다 보이지 않는 벤치에 들리지 않는 말이 있고 열리지 않는 창고에서 말이 되지 않는 사건이 일어난다 내용이 없는 수업이 있고 아무도 없는 교실이 있다”(‘피동사’)처럼 ‘없음’의 존재론이라 할 법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표제작은 일상의 반복이 쌓여 이루는 문명과 역사라는 거시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히고 있어 주목된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84171.html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안희연의 시는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여겨왔던 사물들, 또는 '저 삶은 너무 무기력하다'고 함부로 재단해왔던 이들이 실은 제각각의 캄캄함으로 끈질기게 빛을 빚어내고 있는 상황에 주목한다.(시사인 432호 별책부록 행복한 책읽기)

 

문학평론가 김수이는 "안희연의 시는 세계의 소멸과 존재의 몰락이 한꺼번에 진행되는 가장 어두운 세계의 흐릿한 삶 속에서 탄생한다"며 "가장 어두운 세계랑 폭력, 불의, 비양심 등의 윤리적 차원의 부정성이나 지배 논리, 구조적 모순 등의 사회·역사적 차원의 부정성을 초과하는 더 근원적인 부정성에 휩싸인 세계를 뜻한다"고 읽었다.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51002_0010325813&cID=10701&pID=10700

 

희지의 세계

함돈균 평론가는 이 시집을 일러 '헬조선 시대의 청춘 시집'이라 평했다. (시사인 432호 별책부록 행복한 책읽기)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가 ‘간결한 감각의 언어’로 흰 여백을 만들어냈다면, 두 번째 시집은 그냥, 시를 넘어, 시를 만들어냈다. 자유로워졌다.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722187.html

 

희지, 두희, 숙이 등 익명의 화자들에 이름을 부여하고, 이들로 시각적 장면을 환기시키는 이야기를 만든다. 인물들의 대화들을 시에 끌어오는 일도 잦다. 어떻게 보면 영화적이기도 하다.

=이름은 정서를 환기시키려는 차원에서 임의로 부여한다. 시에 서사를 도입하는 것은 관계성을 드러내려다보니 가져오게 되는 거다. 존 치버나 안톤 체호프의 단편을 읽다보면 빛을 발하는 어느 순간이 있는데, 시에서도 그런 표현을 하고 싶다.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1607

 

이번 시집 <희지의세계>를 통해 시인은,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에 돌입한다. 그것은 '매뉴얼화'된 전통과의 다툼이며, 전통에 편입하려는 본인과의 사투이기도 하다. 주체가 퇴조한 동시대 젊은 시인의 움직임 중에서 황인찬의 시는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을 보여 준다. http://ch.yes24.com/Article/View/29687

 

온갖 것들의 낮

그러나 미세하게 , 유계영의 시는 조금 더 회화적이며, 조금 더 불안하고, 조금 더 어긋난다. 나는 이 세부들이 조금 더 읽 히고 조금 더 주목받고 조금 더 밀고 나가야 할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밀고 나간다는 문장의 주어는 물론 유계영이다. <온갖 것들의 낮>이 조금 더 일찍 나왔으면 어땠을까…. '한 아이는 반드시 백발로 태 어날 겁니다'(시 '백발' 중에서) 같은 문장 참 좋다. http://media.daum.net/life/outdoor/leisure/newsview?newsId=20151216161505869

 

 

     

 

 

     

 

 

어린 당나귀 곁에서

고향의 토속어와 일상 언어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언어감각이 일품이다. 작고 여린 것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여기는 시인은 낮은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삶의 소소한 풍경들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가련한 생명들을 사랑과 연민으로 품어 안는다. 그럼에도 시인은 정치적인 시편을 시집에 함께 실었다. 새로운 형식의 시적 정치성이 묻어난다. http://news.mk.co.kr/newsRead.php?no=1224612&year=2015

 

서정시의 위기가 운위되는 세태에 김사인의 시들은 여전히 서정의 몫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웅변한다. 인간과 사물의 특징을 따뜻하면서도 섬세하게 포착하는가 하면,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불교적 정신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 또한 이 시집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23456.html

 

 

생활이라는 생각

이현승 시인(2002년 ‘문예중앙’으로 등단)의 세 번째 시집 ‘생활이라는 생각’은 “절박한 삶”에 얽매여 세상 밖으로 망명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부끄러움을 찾아 떠나는 한 운명론자의 기록이다. 현실에 머무는 것은 생활이고, 떠나고 싶은 것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생각에 그칠 뿐이다. 결여의 상태인 것. 그에게 생각이란 현실회피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하나의 강박”(‘이동’)이다. 그리고 “어디쯤에서 돌아온 자리를, 또 떠나온 자리를 보”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그가 “떠나지 않는 이유는 여기가 이미 바깥”이고, “참으로 이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생활이라는 생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5111719080533326&outlink=1

 

개천은 용의 홈타운

늦깎이로 등단했음에도 어느덧 시력 사반세기에 이른 최정례(사진)가 자신의 여섯번째 시집에서 심드렁한 어투를 자주 구사하는 것이 시 쓰기에 대한 권태와 염증의 발로는 아닐 터이다. “나는 시 같은 걸 한편 써야 한다”(<나는 짜장면 배달부가 아니다>)라거나 “어떤 시는 오래 공들여도 거기서 거기다/ 억울한 생각이 드는데 화를 낼 수도 없다”(<동쪽 창에서 서쪽 창까지>) 같은 구절은 차라리 시적 갱신을 향한 의지와 모색의 증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행갈이가 주는 긴장과 여백 효과를 포기한 채 때로는 자유연상을 방불케 할 정도로 분방하고 방만한 산문투의 진술들은 사실은 세계의 비참과 인간의 한계에 대한 치열한 고투의 결과로 읽어야 마땅하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6771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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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2016
김윤이 외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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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전망에 대한 책들을 읽다 보면 책 마다 특징이 있는데, <트렌드코리아>가 너무 가볍고, 그리 크지 않은 것을 부각시킨다면 <빅픽처>는 사회의 주요 이슈를 잘 짚어낸 느낌이다. 억지로 엮어낸 <트렌드코리아>에 비해 목차도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잘 들어온다.

1부 경제 생태계를 바꾸는 특이점 

2부 특이점과 마주한 사회

1부는 기술과 경제를 중심으로 한 트렌드 변화를 이야기하고, 2부에 들어서면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빅데이터, 사물인터넷,3D프린터등이 최근 몇년간 트렌드의 주요 이슈였다면 이제 주요이슈는 인공지능과 자율주행자동차가 아닌가 싶다.

모든 사람과 사물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무인화, 에너지와 친환경, 바이오혁명, 이것들이 현재 기술혁시의 핵심이며 다가올 미래의 키워드이다. 무인화는 인공지능, 초연결사회, 빅데이터와 모두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개 이상의 센서를 장착한 무인자동차는 센서로 감지한 정보와 지보를 결합해 스스로 최적 경로를 판단하여 주행하고 제어하게 된다. 상세하고 정확한 지도는 막대한 용량을 소모하며 계속 업데이트가 되어야 하므로 클라우드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와 지도를 불러다 사용하게 될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도로상황, 보행자 인식이 난제이므로 지도 외에도 센서를 이용한 섬세한 환경 인식기술이 필수이다. 자동차 스스로 많은 데이터를 생산하고 이는 네트워크를 통해 빅데이터화 된다.(21쪽)

설명과 같이 자율주행자동차는 그동안 개발되고 있는 과학기술이 총합체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과제가 여전히 너무 많다. 우선 차량 자체를 보면 레이더 등 최첨단 센서는 너무 비싸고 컴퓨터 연산장치의 신뢰성은 아직 부족하다. 구글카의 지붕에 장착된 레이저 스캐너의 가격은 약 8,000만원이고, 그 외 센서까지 포함하면 약 1억 6,000만원으로 센서가 차량 가격보다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인프라 측면을 보자. 차량의 정확한 위치 측정에 필수적인 위성항법장치GPS 좌표의 위치 오차가 약 10~15미터로 정밀도가 낮고, 수치 지형도에는 차선이 표시되어 있지 않다.(27쪽)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자율주행자동차가 서서히 다가올지, 급격하게 다가올지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최근 사회현상 중에 하나는 바로 공유사회이다. 우버, 에어비앤비 등 공유경제가 갑작스럽게 등장했다. 다른 트렌드책들이 그 현상을 앞다퉈 소개하려고 할때 <빅픽처>는 한걸음 더 나가 기존 사회에 어떻게 부딪힐지를 고민했다. 이번에는 공유경제가 오히려 지금의 저성장 시대와 맞물려 사회적인 이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왜 확산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적도 함께.

물론 이러한 일자리의 확대가 직업의 안정성 및 가계 수입의 저하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저성장·저물가·저금리 등 3저 시대를 통과하고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가 제대로 창출되지 않는 상황이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경제는 가파르게 성장하던 시기를 지나 저성장기에 접어들었고, 세계 경제의 중심축인 미국·유럽·일본 모두 장기 침체를 겪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저성장의 영향으로 가계 수입이 줄면서, 이미 갖고 있는 자원이나 노동력을 활용하여 소비 비용을 줄이거나 추가 소득원을 마련하려는 개인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기술 발전 때문이든, 세계적인 불황 때문이든 공유문화는 널리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셈이다. (38쪽)

 

2016년 한국사회에 영향을 끼칠 중요한 사건중에 하나는 바로 선거구 문제이다. 여당과 야당의 첨예한 대립뒤에 선거구 조정의 문제가 있다. 지금 현재 선거구의 인구차가 너무 커서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구수대로 그냥 조정할 문제는 아니다. 겉으로는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문제로 비쳐지지만, 사실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와 크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지역구 국회의원은 지역과 인구 두 가지를 모두 대표해야 한다. 2014년의 결정에 의해 인구에 대한 대표성은 평등하게 나누어질지 모르지만, 지역 대표성의 평등성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송파를 대표하는 3명의 국회의원이,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을 대표하는 한 명의 국회의원보다 지역을 이해하기도 쉽다. 지역이 작게 나뉘면 국회의원이 지역 민심을 파악하기도 훨씬 용이하고, 같은 행정구역 내 주변 지역구와의 연결성도 증가한다. 3명의 국회의원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원내에서 같은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와 반대로 농어촌 지역의 국회의원인 경우, 우선 돌아봐야 할 지역이 매우 넓어진다. 주민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을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소비해야 한다. 다른 행정구역 여럿을 하나의 지역구로 두고 있기 때문에 상대해야 할 행정부의 관료의 숫자도 늘어난다. 한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일이 동일 지역구 내 다른 지역에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지역구를 나누면 이러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138~139쪽)

 

몇 해 전 <넛지>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행동경제학이 주목받고 있다. 그 사례로 제시된 것이 암스텔담 화장실에서 남자 소변기에 파리 모양 그림을 넣었더니 주변으로 소변이 흐르는것을 방지한 것이었다.

행동경제학은 또한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데 주목한다. 여기 5만 원이 있다고 하자.  ··· 대부분의 사람들은 5만원이 생겼을 때의 긍정적 감정보다 5만 원을 잃었을 때의 부정적 감정을 크게 느낀다. 왜 똑같은 금액인데 사람들은 손실에 더 민감할까? 행동경제학은 개인의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할 때 이러한 요인을 함께 고려한다.

개인의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한 가지 요인은, 사람들이 사회적 시선이나 평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전통 경제학이 '합리적 인간이라면 주변의 시선이나 평판에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기계적으로 단정짓고 실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동떨어진 분석을 하고 있을 때, 행동경제학은 다양한 요인을 고려한 폭넓은 분석으로 사람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이해하려 했다. 그 결과,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훨씬 다양하게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159쪽) 

 

그런데 이미 영국이나 미국정부는 이 행동경제학을 활용하고 이다.  넛지의 저자는 리처드 쎄일러와 캐스... 영국의 캐머런 정부는 넛지팀을 가동하고 쎄일러 교수의 조언을 듣고, 세금을 제때에 납부하도록 독려하는 것부터 임산부의 금연을 높이는 정책까지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캐스 선스타인 교수를 통해 행동경제학 원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근거중심주의에 따른 정책을 펼친다.

영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근거 중심주의라는 대원칙을 세우고 행동경제학 및 사회과학의 연구 성과를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했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한국 정부도 비영리 단체나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저출산 문제·저소득층 학생들의 교육 성취도 문제·청년실업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기조가 쉽게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정책의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뜻이다. 수십 억, 수백 억 예산이 들어가는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 효과가 없다면 그 원인은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과정도 없이 밀실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정책은 예산낭비일 뿐 아니라 국민에게 불편함만 가져다 줄수도 있다. 한국 정부도 미국 및 영국의 사례처럼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똑똑한 정부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정부 정책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파급력을 생각할 때, '똑똑한 정부'의 사회적·경제적 가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 될 것이다.(176~177쪽)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대통령 시절이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분 대통령은 독서로 유명했고, 한분은 앨빈 토플러, 또 한분은 제레미 리프킨에 관심이 많으셨으니, 충분히 행동경제학에도 관심을 쏟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빅픽처2016>은 제목만큼이나 큰 그림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트렌드코리아>가 트렌드라 할만한가 싶은 것들을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라면 이 책은 과학기술에서 정치경제까지 모두 조망한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문제에 대한 지적도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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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16 -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2016 전망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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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트렌드 코리아>는 많이 부족해보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들 읽히는지, 실제로 소비 트렌드와 관련된 한국인들이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럼에도 내가 해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혹시나 나중에 보고서에 써먹을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물론 그래본 적은 없지만,

 

그간의 비판때문이었을까 이번 <트렌드코리아2016>은 반성을 하려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트렌드라고 무조건 보여주려는 행동에서 벗어난 것 같다.

사회문화를 관통하는 트렌드 속에는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는 시대의 그늘이 숨어있기도 하다. 호화스러움을 지양하고 평범함을 추구하는 2015년의 소비 시장 역시 그 이면에는 평범함 조차 누리기 힘든 사람들의 절절한 호소가 숨어 있었다. 실제로 2015년 10월, 한국소비자원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최근 1년간 소비 생활 만족도는 10.9% 하락했으며 소비 생활 양극화지수는 1994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갈수록 소비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만족스러운 소비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평범함은 과시의 대상으로 올라설 만큼 성취하기 힘드, 평범하지 않은 가치가 되고 있는 것이다. (164쪽)

그런데 사실 소비양극화가 최고에 올랐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 책의 가치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것 아닐까. 결국은 트렌드라는 것은 어떤 대중성을 가져야 하는데,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은 평균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고, 당연히 트렌드는 일부 상위 소비트렌드만을 반영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을텐데.

 

<트렌드코리아 2015>는 골목에 대한 부분을 말한다. 골목의 재발견, 재탄생. 하지만 골목의 재발견은 골목을 키워낸 소규모상인들 혹은 원 거주민들이 쫓겨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그런 과정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나로써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관심있는 주제이다.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일본 도쿄의 '가구라자카'의 사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가구라자카는 도쿄 신주쿠의 길이 700m짜리거리다. 대표 골목으로는 게시야 신도, 숨바꼭질 골목, 효고 골목 등이 있다. 일본의 여타 다른 번화가와 달리 이 골목길에서는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친 에도 시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다른 지역의 복합 개발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1990년대부터 전통 건물과 경관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서 고층 건물 등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며 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에도 시대부터 계속되어온 전통적인 골목길에 자부심을 가져왔던 주민들의 굳은 의지로 거리의 정체성과 스토리를 지켜내며 이제는 그대로의 생명력과 개성을 유지하는 일본의 대표적인 골목길로 자리잡은 것이다. (186~187쪽)

읽다가 한숨이 나왔다. 우리나라 골목과 과연 무슨 관계가 있길래 에도시대 골목을 예로 드는 것인가? 2-3백년 된 골목과 이제 2-30년된 한국의 골목이 어떻게 엮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 골목이면 북촌 한옥마을 정도 아닌가. 현재 뜨고 있다는 골목과는 전혀 관련없는 것으로 해답이라고 제시하는, 책상위에 앉아서 나온 답이다. 딱!

 

예년에 비해 <트렌드코리아>의 재미는 덜한 것 같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들어맞는다고나 할까. 이상하게 올해에는 어떤 물건 혹은 브랜드, 실제 상점과 같은 실체보다는 현상에 주목한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비가 감소하니 소비트렌드 역시 수축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책 한권을 담아내기 힘들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중에 몇 가지 흥미를 끈 현상들이 있다.

 

많은 연구결과에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고 관련 질환의 발생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수준의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경제적·사회적으로 상위에 있는 집단들은 빠르게 대처하고 곧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하위 집단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양극화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위험 인식의 심리적 불안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시사한다. (235쪽)

 

이런 불안사회에서 위험이 닥쳤을 때 의지할 사라,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불안을 더욱 가중시킨다. 때로는 불안이 도를 넘다보니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움직임에 불신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자신의 불안을 누군가 이용하는 것에 과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실제로 위험이 닥쳤을 때, 늘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졌을 때, 오히려 그 위험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다는 것이다. 불안에 대한 역치가 오히려 불안에 대한 둔감한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244쪽)

이러한 지적을 정치권과도 엮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테러방지법이니 하면서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법으로도 관리가 가능한 것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이 들어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현 정부 들어서 안전이라는 이름을 행정안전부라는 이름까지 만들어냈지만, 세월호 처리과정 등에서 보여주는 것을 보면 불안에 대한 역치로 불안에 둔감한 정부가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메르스와 관련해서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정부와 관련 당국이 처음부터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즉, 무능한 자들이 관리하기 때문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저자들의 생각역시 정부당국을 대변하여 단순히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과학책등을 찾아보며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있어빌리티를 N포세대의 현상으로 설명할 때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을 좀 놀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기성세대가 구축한 성공의 프레임과 프로세스에 반감을 느끼는 젊은 세대는 오래 인내하고 한단계씩 쌓아가는 삭의 입지전적인 성공담론을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성실과 겸손이 미덕이던 산업화 시대에는 인내하며 살아야 가능했던 성공의 매뉴얼도 유효기간이 만료됐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취업할 수 없고, 아무리 노력해도 환경을 바꿀 수 없는 가혹한 현대에 달관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기약없는 희망을 접었다. 대신 당장 눈앞에 필요한 것과 재미를 추구하고, 자격지심을 감춰줄 '있어빌리티'를 연마한다. 생활수준은 향상되었고 그에 따라 미적 감각은 높아져가는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보니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극복하고자 포장하는 달관형 제스처가 하나의 현상이 된것이다. (369쪽)

 

이 책에서 그나마 관심있게 읽은 부분은 육아에 대한 부분이다.

학력수준과 문화자본이 높아진 똑똑한 젊은 부모들은 아이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기르는 경쟁을 시작했다. 이렇게 정성 들여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을 보면 마치 검증된 공법을 총동원해 건축물을 설계하고 시공해나가는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이에 이런 자녀들을 빌딩 건축하듯 하나씩 하나씩 공들여 키운 아이라는 의미로 건축의 '아키텍처Architecture'와 아이의'키즈kids'를 붙여 '아키텍키즈Architec-kids'라 명명하고자 한다. 부모의 계획에 따라 설계된 도면을 바탕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길러지는아이들이 바로 '아키텍 키즈'다.(375쪽)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에 태어나 본격적인 치맛바람·바짓바람 속에서 성장한 1세대가 이제 부모가 되었다. 소싯적에 <수학의 정석>을 풀던 세대가 '육아의 정석'을 찾아 나선 것이다. 좋게 보자면 과학적이고 열정적이며, 나쁘게 보자면 지나치게 경쟁적이고 극성스러운 일부 신인류 부모들의 새로운 육아법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384쪽)

 

 

올해는 실질적인 실체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이 많이 보여 실망이다.  즉, 현실적인 소비가 한계에 드러났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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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트렌드 2016 - 모바일, 온디맨드의 중심에 서다
커넥팅랩 엮음 / 미래의창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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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트렌드코리아 같은 경우에는 필독서로 자리 잡았지만, 읽어보면 의아한 내용이 많다.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도 강하고, 실체가 없는 내용이 대부분이라서.

그러나 <모바일트렌드>는 모바일 전망의 요약된 백과사전이라 할만하다. 이 분야의 전문적인 서적을 읽을 필요가 없다면 이 책 한권이면 정보 습득에 충분하다.

 

관련기사 내 손안의모바일, 이젠 금융 서비스까지 품다 

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510060231255&code=930201&med=khan

 

현재 핫한 주제인 핀테크, 인터넷은행 등 궁금해할만한 내용이 전부 들어 있다.

 

2016년 모바일트렌드의 주제어는 '모바일, 온디맨드의 중심에 서다' 이다. 이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모든 기술, 서비스가 모바일로 집중되는 것 같다. 그만큼 일상생활에 가까이 와 있다 볼 수있다. 특히 O2O가 가능해지면서 모바일은 온디맨드 그 자체이다.

 

우버로 대변되는 온디맨드 서비스. 우버의 모습은 온디맨드 기업들이 현재 어떤 위치이고, 어떤 방향으로 변해가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은 '모든 것이 우버화되고 있다(There's an Uber for Everything now'는 기사를 통해 우버 서비스의 무서운 파괴력을 보도한 바 있다. 제2의 우버를 표방한 스타트업들이 쏟아지고 있으며 BMW, 포드 등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까지도 우버식의 차량 공유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이제 우버는 '우버화uberification/uberization'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공유경제 자체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52쪽)

 

우버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유통업으로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국 내 일부 지역과 스페인 바로셀로나,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음식 배달 서비스인 우버이츠를 시험중이다. 또한 인근 약국 등에서 생필품을 사다주는 우버코너스토어, 교통 체증이 심한 뉴욕 맨해튼에서는 주로 명품을 취급하는 길트그룹과 제휴를 맺고 자전거 택배 서비스인 우버러시 등을 운영 중이다. (57쪽)

 

하지만 온디맨드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외려 새로운 법적인 문제와 기존 사회 구정원과의 갈등 등이 드러나고 있다.  

온디맨드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이슈들은 여전히 법적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누구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flexible worker)'는 강점은 거꾸로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서비스 제공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규제와 충돌한다. 그리하여 기존의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했던 사업자들과 이해 충돌이 생겼고, 새로운 서비스 제공자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다보니 탈세 논란도 일었다. 또한 점차 온디맨드 서비스를 부업이 아니라 생계유지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이들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와 일정치 않은 수입 등으로 인한 사회적 안전망도 논란이 되고 있다. (86쪽)

 

사람들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만들어내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 큰 것은 모바일이 기준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로화면에 익숙해왔던 지금과 달리 모바일에 맞춰 세로화면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트위터가 2015년에 인수한 페리스코프는 세로 화면을 주된 비율로 내세우고 있다. 세로 화면은 모바일 중심 시대에 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마트폰에서 가로로 회전하는 추가 동작을 하지 않고도 촬영한 그래도 화면을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2012년에 인수한 인스타그램도 2010년 설립부터 5년간 고수한 정사각형 화면 비율을 버리고, 2015년 8월부터는 가로세로 비율이 다른 사진과 동영상 업로드를 모두 허용하기로 정책을 바꾸었다. 화면 비율에 따라서도 이미지가 전달하는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모바일 이용자의 편의와 표현의 자율성을 고려했다고 할 수 있다.(161쪽)

가로 세로가 무슨 의미냐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사진이나 동영상은 기본적으로 가로가 중심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꽤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모바일 사용자들에 맞춰 변한 사례이다.

 

하지만 모바일 세상을 보는 것이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모바일계에서는 전혀 선진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물론 아는 사람들은 아이폰이 세상에 선 보였을때 이미 우리나라는 모바일계에서 뒤쳐졌다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는 중국의 모바일 발전이 너무 무섭다. 샤오미를 필두로한 하드웨어는 곧 따라잡힐 것이고,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중국에 많이 뒤쳐져 있다.

온디맨드 서비스 선진국으로 중국을 빼놓을 수 없다. 중국의 온디맨드 서비스는 우리나라보다 3~5년 정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2010년 이후, 중국 내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남에 따라 요식 업체들이 O2O 마케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최대 커머스 기업인 알리바바는 온디맨드 서비스 시장 선점을 위해 중국 최대 가전 유통회사인 쑤닝원상과 상호 지분투자를 통한 제휴에 나섰고, 백화점을 보유한 인타이 쇼핑의 최대 주주로 올라서는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지배력을 높여 온디맨드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 (30쪽)

 

2015년 3월에는 알리바바가 독일 하노버에서 개막한 정보통신전시회 세빗에서 안면인식 결제 시스템을 공개하기도 했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기조 연설에서 안면인식 결제인 스마일 투 페이를 직접 시연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전면 카메라를 통해 안면을 인식하는 기술로 알리페이 앱을 통해 중국 내에서 테스트를 거쳐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한다.(224쪽)

 

이외에도 모바일결제, 핀테크, 인터넷뱅크 등 최근의 이슈들도 소개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인터넷은행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국내 대부업체의 일본계 기업 비중이 50%를 넘어섰고 제1금융권과 제2금융권 간의 금리 격차가 심한 현실을 감안한다면 중금리 대출을 주로 하는 인터넷 전문은행에게 인가를 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261쪽)

 

모바일 환경, 기술, 생태계는 분명 급격한 변화와 발전을 이룰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혁신이 지속되려면 모바일의 혁신 역시 가속회 되어야 하는데 이제는 모바일 혁신이 정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 계속 발전할 지 아닐지 관심을 갖고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스마트폰 산업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줄을 잇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이를 쇄신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스마트폰 시장의 저성장이 고착화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뼈아프다. 저성장의 원인으로 신제품을 기다리는 대기 수요나 경기 불황과 같은 단기적 측면이 아닌 스마트폰 자체의 혁신 부재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스마트 폰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먹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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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부탁해 - 권석천의 시각
권석천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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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정치관련 책들과 읽는게 맞는게 싶지만, 실은 정치 이야기이다. 정치란 우리 삶이니까.

 

기본적으로 정의는 정치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면에서 언론은 그 역할을 저버렸다. 세월호 참사현장에서 나온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니다.  

그 폐해는 정치의 영역에서 특히 심각하다. 매체 성향에 맞는 정치인 잘못은 눈감아주면서 성향이 다른 정치인에겐 시퍼런 칼날을 들이댄다. '종북 대 애국', '독재 대 민주', '친노 대 친박'으로 나누고 재단함으로써 진영논리를 확대 재생산한다. 그 결과 사안은 같은데 해석은 정반대다.(339쪽)

 

그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정의라는 이름을 사람을, 사회를 단죄하는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고, 스스로가 그 권력에 도취되어 있다. 정의를 말 할 수 있는 집단이 아닌 것이다.  

몸통은 검찰권이다. 임용된 지 몇달 안 된 실무수습 검사가 어떻게 검사실에서 피의자에게 성행위를 요구할 수 있는가. 특수부 부장을 지낸 검사가 어떻게 차명계좌까지 만들어놓고 기업과 다단계 사기범 측근의 돈을 받은 것인가. 그런 일들을 가능하게 한 건 검사들 손에 쥐어진 힘이었다. 검찰이 마음먹기에 따라 수사 대상과 범위가 달라지고 기소 여부가 결정되면 적용할 법조문이 가려지는 현실, 권한을 앞세워 권력과 돈, 향응을 추구하고 싶은 일부 검사들의 욕망을 수준 이하의 동료들이 폭로한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행정부가 국회를, 사법부가 국회를 압박하는 것이 너무 당연히 여겨진다. 국회의원들은 없어져야 할 것으로 보는데, 어떻게 보면 일반 국민들의 입이 될만한 국회를 깔보는 행동일 수 있다. 자기네들 리그에 붙여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의를 위해서는 삼권분립이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불체포 특권을 두고 있다. 1당 독재였던 소련 헌법에도 "최고회의 대의원은 최고회의의 동의없이 체포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었다.

왕이 마음대로 의원들을 가둘 수 있는 시대도 아닌데 이 특권이 왜 필요할까. 3권 분립에 따른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행정부나 사법부가 수사,재판을 통해 의회 기능을 무력화하고 의원, 특히 야당 의원을 정치적으로 탄압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173쪽)

 

그리고 그 행정부의 권력이라는 것도 잘못됐다. 사실 국민들은 권한을 준것이지, 그들에게 권력을 준것은 아니다.

나는 공권력이란 말은 되도록 쓰이지 않았으면 한다. 국민이 정부에 위임한 건 권력이 아니다. 권한이다. 권한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공이란 수식어도 부적절하다. 공이 무조건 사 위에 있다는 발상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건 이른바 공권력이 과거만큼 유능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75쪽)

 

게다가 세월호 사건을 통해 행정부의 무능이 그대로 드러났다. 관료주의의 폐해까지도 말이다.

"관료는 민원인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사례로 다룬다"고 갈파한 적이 있다.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도 현장의 해경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 청와대 관료들 눈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던 건 아닐까. 승객, 승무원 476명은 '집계해서 위에 보고해야 할 숫자'였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인재는 사람이 일으킨 재앙에 머물지 않는다. 비인간화된 사회와 교육이 빚어낸 인간성 소외의 재앙인 것이다. 사회를 이끄는 엘리트들의 공허한 눈빛은 수많은 사람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시험에 나오지 않을 질문에 호기심을 느끼지 못하듯, 인간에 대한 열량을 소비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40쪽)

 

 

그렇다고 미래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이미 사회는 다양성을 잃어버렸다. 상위계층이 모든 것을 점점 장악해 나가고 있고, 그 토대가 바뀔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관심은 10~20년 후 대원외고 출신이 법조계의 주축이 됐을 때 재판과 수사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 것이냐다. 과거 경기고는 전국, 각계각층에서 충원됐다. 가난한 수재가 적지 않았다. 성향도 이질적이었다. 인권운동의 상징인 고 조영래 변호사, 정통보수를 대편하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진보사법의 대표 주자 박시환 전 대법관, 안대희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학교 출신 법조인이다.

반면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출신은 계층적 동질성이 강하다. 특목고 입학생 중 절반가량이 서울 강남 3구에 거주한다. 부모가 법조인, 의사, 교수와 같은 전문적인 경우가 많다. 기성 법조인들은 "재판, 수사하는 자와 받는 자의 출신 계층이 다르다는 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111쪽)

 

문제는 개개인들 역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그 사회에 낙오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자녀의 성공을 원하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도 스스로를 속이는 능력에 가깝다. 자기소개서는 "내가 아닌 나"를 거리낌없이 적어낼 줄 알아야 이기는 게임이다. 봉사도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활동이어야 한다. 술자리에서 "계층사다리가 사라졌다고 개탄하면서도 내 스펙이 아들딸에게 세습되는 건 당연하게 여긴다. 아이들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이 없기'를 바라거나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다가는 이 사회에서 갑으로 살기 힘들다는 사실을(24쪽)

 

저자가 이렇듯 한국사회를 비판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월호에 대한 충격때문이다. 세월호는 사회의 많은 것들이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그렇게 가슴아픈 현실의 민낯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사람에 대한 연민을 담고 있다.

 

 

 일단 권석천의 글에는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보는 듯 하지만 실은 사람에 대한 연민이 담겨 있다.

법망을 조임으로써 범법자는 끝까지 단죄하되 공포의 희생자는 막는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아무리 소수의 일이라고 해도 당사자에겐 인생이 걸려 있다.(322쪽)

 

정의로운 사회는 멀기만 한 것일까?

'정의가 이기는게 아니다. 이기는 게 정의다.' 이 지랄 같은 상식을 깨는 건 슈퍼 히어로 한두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면서 같은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어깨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우린 결국 서로에게 정의를 부탁해야 하는 존재다. (4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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