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액자 정원에 선 적이 있다. 깃발 들고 찾은 효도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 폭의 명화 같은 아름다운 정원과 마주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정원 앞에 서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오직 미술관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정원 앞에만 서면 참으로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오직 미술관 안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정원 앞에만 서면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그나마 느릿느릿 흘러가던 시간마저 멈춰 버린다. 오직 정원과 마주한 나만 보이는 그곳은 아다치 미술관이다.(140쪽, 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west)

 

관내에 들어서면 '고산수정(故山水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웅대함이 보는 이들의 감탄과 감동을 자아낸다. 고산수정은 아다치 미술관의 메인정원이라 할 수 잇는 곳. 창문 너머로 정원 풍경을 감상하자니, '림파(일본화 일종)'의 병풍이 떠오른다. '창문'이라는 커다란 액자 속에서 사계절의 변화와 빛의 음영이 오묘하게 어우러진 한폭의 그림이 담긴 듯 하다. 희미한 빛이 스며들면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소나무가 모습을 내민다.(108쪽, 일본 소도시 여행)

 

 

 (170쪽, 허영만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

 

조금은 망설였다. 여기를 가봐야 하나. 독도문제로 유쾌하지 않은 시마네현에 위치하기도 했고....

 그런데 딱 허영만화백의 그림의 말이 꽂혔다. 다음 일정을 포기하고 조금 오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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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돗토리에 다녀왔다. 일본에서도 시골에 속하는 돗토리현은 인구 60만의 작은 도시이다.

 

돗토리현을 검색하다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가 운영하는 빵집이 오카야마현에서 돗토리현으로 옮긴 것을 알게되고는, 돗토리행 여행가방 한켠에 집어 넣었다. 경로상 일정에 넣기는 힘들지만, 또 모르지 않나 싶었다. 행여나 발걸음을 하게 된다면 사인을 받아오는 기쁨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부정이 판을 치는 세태가 싫어 ‘바깥’ 세상으로 탈출하려고 제빵 기술을 배웠는데, 그 ‘바깥’ 세상이어야 할 빵집 공방마저 경제 시스템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가혹한 노동과 부조리한 경제구조, 위협받는 먹거리…. 이런 실상을 접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삶의 철학은 더욱 굳건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탄생한 빵집 ‘다루마리’에서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감, 서툰 작은 정의감을 실천하게 된다. "

 

 

돗토리현 출신으로 세명의 유명한 만화가가 있다. 명탐정 코난의 아오야마 고쇼(青山剛昌), 고독한 미식가의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ー)와 7-80년대에 유행했던 게게게노 기타로의 미즈키 시게루(水木しげる)가 있다.

돗토리현의 두개의 공항 이름이 요나고기타로 공항, 돗토리코난 공항이다.

 

돗토리현을 다룬 책은 없다. 돗토리를 다룬 책들을 찾아볼 수 밖에 없는데..

 

<만화공화국>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돗토리현 출신 만화가들이 소개된다.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 + 도시 전체가 만화 테마파크인 그의 고향 돗토리
요괴들과 함께 즐겨 보자,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
만화가 다니구치 치로 + 만화 속 거리를 걷다 
< 명탐정 코난>, 오쿠에이정을 살리다

 

<허영만의 맛있게 잘 쉬었습니다>에서는 '창문을 열면 낭만과 운치가 가득한 곳'이라는 제목으로  오카야마·시마네·돗토리의 세현을 소개한다.

 

상대적으로 설명이 잘 된 책은 <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west>라는 책이다. 돗토리, 시마네현을 다룬 책을 찾기 힘든 지금 그나마 참고하기에 괜찮은 책이다.

 

<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west>와 <일본 소도시 여행>이라는 책을 읽으며 일본 소도시에 대한 로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도쿄 이런 곳에는 별로 흥미를 못느끼고, 매번 덜 알려진 일본의 지역들을 검색하는 데에는 바로 소박하면서도 나름의 특색을 간직한 일본의 소도시가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다음엔 어디에 갈지...... (솔직히 <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west>를 전부 찾아다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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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4-28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정민의 돗토리현 러블리여행인가 보고 시게루의 요괴길 가고 싶었어요. 저 어릴 때 동네 만화방에서 시게루와 초능력을 가진 소년만화, 이 만화를 그린 사람이 누군지 몇년간 칮았는데 실패했어요. 제 기억에는 윤으로 시작되는 만화가였는데, 엄청 좋아해서 그 곳에 한번 가 보고 싶더라구요. 근데 빵집 주인공이 돗토리현이군요. 저도 그 책 읽고 인상적이었는데.... 게다가 코난까지!!

雨香 2016-04-29 00:48   좋아요 0 | URL
맞는지는 모르지만, 게게게의 키타로(게게게노 키타로)의 만화가는 미즈키 시게루인데, 시게루 로드가 그의 만화책 요괴들 동상으로 꾸며놓았습니다. 러블리여행의 모습과 같습니다.
 

한국경제신문사는 사실 신문이라고 하기 좀 그렇다. 최대주주는 현대자동차이고, 삼성,SK,LG가 2대주주이다. 그리고 나머지 지분은 전경련 회원사들이다. (전경련.. 어버이연합에 데모하라고 돈 대준, 그것도 차명계좌로,, 차명계좌는 불법이다.)

 

한국경제신문출판사는 한국경제신문사의 자회사이다. 작년 이들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왜곡 번역해 재번역하는 굴욕을 겪었다. 위대한 왜곡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런데 바로 얼마전 한국경제신문사가 출간한 마이클 샌덜의 '왜 도덕인가'가 짜집기 번역으로 도마위에 올랐다.

 

김 교수는 “번역서(한경BP가 번역 출판한 <왜 도덕인가>)의 1부는 원서 2부의 글들을 새로운 범주를 만들고 순서를 바꾸어 새로 편집했고, 이 가운데는 1부의 글들도 절반 정도가 포함되어 있다. 번역서의 2부는 원서 3부의 일부만 옮겨 놓았다. 번역서 3부의 글은 도입부의 글로, 그리고 11장, 12장, 13장으로 분리하여 수록했다”고 말했다. 원서의 내용을 자르고 붙여 사실상 다른 책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원서 <공공철학>의 1장과 2장은 ‘미국의 공공철학 탐색’, ‘개인주의를 넘어: 민주당과 공동체’ 이지만 번역서인 <왜 도덕인가>의 1장과 2장은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4102002001&code=940100

 

이런 출판사는 퇴출되어야 맞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먼저 이 출판사의 책을 사지 말아야 한다.

(물론 대기업들이 좋아할 만한 책을 내고, 대기업들이 대규모로 주문하니 망할일은 없겠지만)

 

         

 

 생각해보니 한국경제신문출판사가 내놓은 마시멜로 이야기는 번역자 논란이 있었다. 실제 번역자는 따로 있고, 아나운서가 번역한 것 처럼(나중에 ***외 번역으로 재 출간했지만)

 

베스트셀러를 많이 낸 출판사이다. 관심있는 책들도 많은데, 그냥 관심만 갖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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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erguy 2016-04-2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때 언급된 것 중에 하나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실시하는 나라였다. 일단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베트남의 경우는 유엔의 권고에 따라 국정제에서 검인정제로 바꾸려는데, 한국의 사례를 참고하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은 거꾸로 검인정제에서 국정화로 가고 있다.

 

물론 국정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이 있긴 하지만, 국민 전체가 얼마 되지 않아 자유발행을 하는 것이 비효율적인 나라이다. 아이슬란드 같은 나라

 

미국, 영국, 프랑스는 국정제를 실시한 적이 아예 없다. 일본, 독일은 20세기 초 국정제를 실시한 적이 있다. 두 나라의 국정제를 통해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나치 정권은 자신의 이념을 담고 권력을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교과서를 만들어 학교에서 가르치게 했다. 모든 과목에 걸쳐 국정도서가 개발되었다. 이 중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독본과 역사 교과서였다. 나치 독일은 1939년에 학생들이 배우는 독본교과서로 <영원한 민족>을 만들었다. 이 책은 나치의 세계관과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반다원주의, 애국주의, 반유대주의가 이 책의 특징이다.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인종주의 성격을 드러냈다. 또한 전쟁을 미화하고, 전쟁 중에 용기와 대담성, 자신보다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강조했다. 히틀러를 우상화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51쪽)

 

독일사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제국주의로의 길>은 대표적인 역사교과서로 꼽힌다. 이 책은 당시 독일, 즉 나치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인간 발달의 가장 높은 단계로 여기고, 독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국가로 성장했는지 서술했다. 지난 날에 대한 반성 없이 현재 사회를 발전의 관점에서만 보고, 이런 과정만을 서술해야 한다는 '긍정의 역사관'이었다. (52쪽)

 

학교교육을 통해 새로운 체제에 충성하고 히틀러와 그의 권위에 복종하는 마음을 독일인들에게 내면화시키고자 했다. 히틀러에 대한 충성 고백이 역사교육에서 이루어졌다. 제3제국의 건설과 히틀러의 업적이나 영웅성은 교육의 중요한 주체가 되었다. 소독일주의로 독일을 통일한 비스마르크 보다 히틀러가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되었다. 교육은 히틀러 우상숭배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53쪽)

 

일본의 경우

교과서 의혹사건이란, 교과서에 천황을 모독하는 내용과 성풍속을 어지럽히는 내용이 들어 있으며, 채택과정에서 뇌물이 오갔다는 것이었다. 메이지 정부는 기존의 검정 제도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면서 국정제를 도입했다. 이를 두고 일본 한계에서는 검정제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국정제를 추진했다기보다는, 국정제 반대 목소리를 누르기 위해 이 사건들을 이용한 것이라고 해석한다.(56쪽)

 

전시에서 학교 교육의 목표는 충성스럽고 용감한 전사를 길러내는 것이었다. '성전'에 참가하여 천황을 위하여 죽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도록 교육했다. 교과서에서 천황은 '살아 있는 신'으로 신격화되었다. 학생들은 학교에 걸린 천황과 황후의 초상화인 어진영에 참배를 해야 했다. 교과서는 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신민의 도리라고 강조했다.(58쪽)

 

이처럼 교육은 청소년들을 전쟁의 총알받이로 삼는 데 이용되었다. 일본 청소년은 물론 식민지 조선의 청소년들조차 태평양 전쟁을 '성전'으로 받아들이고 천황의 병사로 전쟁에 참가하여 목숨을 바침으로써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였다.(59쪽)

 

일본과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가 국사교과서 국정제를 추진한 것은 사회적 분쟁이 심한 때가 아니었다. ··· 오히려 특정 집단이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사회에 전파하고 권력을 굳건히 다지기 위해 도입한 것이 교과서 국정제다. 교과서 국정화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과 사회 통합이었다.(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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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육으로 읽는 한국현대사 - 국민학교에서 역사교과서 파동까지
김한종 지음 / 책과함께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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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국사교과서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정으로 발행되었다. 국사교과서가 원래부터 국정도서였던 것은 아니다.
...

1973년 2월 16일에 문교부는 중학교 국사 교과서 11종에 대해 개편을 지시했다. '①유신정신의 반영, ② 새마을, 수출증대, 교육재료 보강, ③급변하는 국제사회에 적응, ④변동된 교재 및 통계 보완 ⑤ 국사교육 강화'내용을 반영하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정책을 선전, 홍보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라는 노골적인 지시나 마찬가지였다. (208-209쪽)

 

국사교과서가 국정화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바로 박정희가 종신독재를 꿈꾼 유신정권의 시점이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검인정 체제였지만, 국정화까지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역사는 지난한 싸움의 연속이다. 해방후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육자들은 식민사학의 극복을 위해 싸웠다. 조선은 어쩔 수 없이 식민지가 되었다는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조선후기를 연구해 조선후기 '자본주의의 맹아' 등의 연구결과를 내놓았지만 '정체성론'과 '타율성론', '당파성론' 등 시민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인식까지 바꾸기는 힘들다.

붕당정치는, 국왕이 자기 마음대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으로 한정되기는 하지만 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립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정치이며 집단 간의 경쟁으로 올바른 정치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있다고 해서 역사인식 자체가 정말로 달라지는지는 의문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붕당정치는 정서적으로는 여전히 당쟁으로 다가온다. 권력을 잡기 위한 다툼은 추하고,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선한 편과 악한 편을 가린다. 숙종조에 있었던 서인과 남인의 대립에서,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비교하면서 여전히 '인현왕후는 선, 장희빈은 악'으로 다가온다. 서인과 남인의 정책, 정치적·경제적 기반 등을 알고 있더라도, 그것은 역사지식이지 역사의식의 내면화로 이어지지 않았다. (169쪽)

 

역사교육의 거대한 걸림돌은 식민사학 뿐만 아니라 일제가 그랬던 것 처럼 지배층은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교육하려고 한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정권은 영구집권을 위해 역사에 깊숙히 개입한다. 삼별초의 몽골항쟁이나 충무공 이순신 등에 대한 무인들의 성과를 대대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군사정권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 역사학계는 민중사학이 등장한다. 민중사학은 역사 주체를 지배층이 아닌 민중으로 보고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근현대사 부분에서 성과를 보였다. 민중사학 덕에 사회동요 등으로 설명되던 역사교육이 사회구조의 변동 등으로 바뀌었고, 일제시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이 추가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사교과서의 현대사 기술은 경제성장 논리로만 설명되었다. 하지만 보수지배층은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거부감을 갖게 되고 1990년대 국사교육 준거와 관련된 파동이 일어난다.

 

1980년대 특징중의 다른 하나는 재야사학자라 불리는 사이비사학자들의 영향력 확대이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한단고기 등 상고사 내용을 바탕으로 위대한 한민족을 이야기하는데, 박정희 정권에 이어 무력으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과 결탁한다. 이들은 강한 민족주의적 성격을 보여 12,12 군사정변과 5,18광주항쟁으로 정통성이 부족했던 전두환정권에 의해 역사교육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최근까지도 한사군 등과 관련해 여전히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중사학에 의한 근현대사 연구결과가 미미하게나마 교과서에 반영되기 시작한 건 보수우익에는 충격이었던 것 같다.

국정교과서 비판을 그대로 보아 넘길 경우, 앞으로 더 큰 폭의 개정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민중사관에 대한 비판과 국사 교과서 개편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교육과정 개정이나 국사 교과서 개편을 둘러싸고 장차 겪게 될 대립을 예고하는 것이었다.(292쪽)

 

1990년대에 그간의 연구성과를 반영한 '국사교육 내용 준거안'이 발표되었다. 새로운 준거안은 먼저 용어의 변경을 시도하였다. 5·16은 쿠데타로 제주4·3항쟁등이 그 예이다. 그리고 냉전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고자 했다. 모스크바3상회나 한국전쟁 중 민간인학살 등에 기술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준거안에 대한 보수언론들은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국사교과서 내용 자체도 아니고,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준거안 시안을 놓고 언론은 왜 이처럼 극렬한 반응을 보인 것일까?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는 단지 국사 교과서 내용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당시의 사회상황과 정치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준거안 파동은 1980년대 중반부터 나타나는 역사학계의 진보적 움직임과 역사 교과서 비판의 반작용이었다. 일부 정치·사회 세력은, 준거안과 같이 국사교과서가 서술될 경우에 자신들의 존립근거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예를 들어 반탁운동은, 우익 세력이 자신들이 대한민국을 세운 정통 세력임을 주장하는 근거였다. '반탁=우익=애국, 친탁=좌익=매국'이 오랫동안 이들의 존재가치를 뒷받침해주었다. 이들에게 모스크바 3상회의를 달리 해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5·16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5·16은 당시 상황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선전되었다.그러기에 5·16을 '군사혁명' 또는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준거안 시안대로 서술하면 5·16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쿠데타로 전락할 상황이었다. 이는 5·16을 기반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였으며 이후에도 권력을 유지하던 사람들에게는 존재를 위협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330~331쪽)

 

이런 보수우익의 반응은 2000년대 중반에 있었던 금성출판사 역사교과서 문제와도 맥을 같이한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서는 더 이상 검인정 교과서 체제에서는 이런 역사적 연구결과들이 교과서에 반영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논란은 식민지 시대부터 계속되었다. 일제, 군사정권, MB, 박근헤 정부. 역사교과서를 대하는 태도가 어찌도 이렇게 똑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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