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의 경쟁 - 진화하는 기술, 사라지는 일자리, 인간의 미래는?
에릭 브린욜프슨 & 앤드루 매카피 지음, 정지훈 외 옮김 / 틔움출판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제목은 Race against the Machine이다. 번역은 <기계와의 경쟁>으로 되어 있지만, '기계와의 경주'가 어울려보인다. 책 자체가 기계와의 경쟁보다는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책은 경제침체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경제침체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기계의 변화를 인간이 못 쫓아가서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침체론자는 미국의 중간 소득 감소와 전체적인 경제 성장 둔화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뤄져 왔음을 잘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은 기술혁신의 속도가 늦어진 것을 원인으로 생각하지만 우리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인류가 쫓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간단히 말해, 사람이 기계와의 경주에서 패한것이다.(33쪽)

 

기술혁신은 체스판의 후반부와 같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기술적 실업의 발생이다.

 

기술이 계속해서 발달하고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을 기계가 위협하기 시작하면, 미래 어느 순간부터는 점점 더 많은 일이 기계의 몫으로 넘어갈 것이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이 같은 사실이 이미 증명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비숙련 노동자 임금은 계속해서 낮아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급여 수준이 최저 생활비 이상이 될 때 기술적 실업이 발생하며 (84쪽)

 

기술적 실업은 우리가 겪고 있는 실제 위협이다. 이 위협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술 변화가 만들어내는 3가지 승자와 패자 집단을 올바르게 정의해야 한다. (1) 고숙련 근로자대 저숙련 근로자 (2) 슈퍼스타 대 기타 일반인 (3) 자본 대 노동.(85쪽)

 

1. 고숙련 노동자 대 저숙련 노동자

흥미로운 것은, 높은 교육을 받은 근로자의 경우 공급이 늘어도 이들의 임금은 계속 올랐다는 것이다. 공급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도 급여가 계속 올랐다는 것은 숙련된 근로자에 대한 상대적 수요가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최소한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가장 낮은 임금을 받게 되었고, 이 같은 변화는 전체적으로 소득 불균형을 심화시켰다.(87쪽)

 

2. 슈퍼스타 대 기타 일반인

많은 산업 분야에서 소수의 승자가 대부분의 보상을 가져간다. 대중음악가, 프로 운동선수, 전문 경영인 등을 생각해보라. 기술은 정보 상품 뿐 아니라 비즈니스 프로세스 그 자체를 복제한다. 그 결과 한사람의 재능, 통찰력, 결정이 한 국가 혹은 전 세계 시장에 영향을 준다. (91쪽)

기술의 발전으로 단 한명이 판매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값싸고 쉽게 복제할 수 있다면,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드는 한 사람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다음 품질의 제품을 생산하는 사람은 시장의 아주 적은 부분만을 확보할 뿐이다. (92쪽)

실제 일반 근로자와 CEO의 월급을 비교해보면, 1990년에는 70배의 차이를 보였지만 2005년에는 300배까지 늘었다. .. 이런 현상이 정보통신 기술의 활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다른 경영진의 급여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기술의 도움으로 창업주, CEO, 엔터테인먼트 스타, 그리고 금융 부문의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장을 오가며 자신의 능력을 확대 재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그 이전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보상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94쪽)

 

3. 자본 대 노동

기업 순이익이 국내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0년 사이에 최고치였다. 반면에 노동에 대한 각종 보상은 임금과 모든 수당을 포함해도 50년 중 최저치였다. 노동보다 자본이 점점 더 큰 몫을 가져가고 있다.(97쪽)

 

기술의 발전은 불평등한 세상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현재의 기술혁신은 이런 불평등을 더 가속화시킬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인류가 쫓아가지 못해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과 제도의 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결국 교육이나 제도가 아무리 변화한다고 해도 기술혁신의 속도를 쫓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의 등장은 분명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들의 해답중에 하나는 인간과 기계가 협조할 수 있다고 본다. 기계의 도움과 인간의 판단이 결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인간과 기계의 체스경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 뒤의 체스경기에서는 인공지능과 인간이 함께 조를 이룬 팀들이 좋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장점을 더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경제적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저자들의 해답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계를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를 맞이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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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기계와의 경쟁>은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영어 원제는 Race against the machine이다. <기계와의 경쟁> 보다는 '기계와의 경주'가 더 어울린다. 저자는 결국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계시대가 급격하게 도래할 수 있다고 본다. 체스판의 후반부를 그 예로 든다.

이 이야기는 체스 발명가와 그 나라 통치자와의 거래에서 시작되었다. 그 나라 황제는 체스 게임을 너무나 좋아서 체스 발명가에게 어떤 보상을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갖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물었다. 그러자 체스 발명가는 다음과 같은 규칙에 따라 쌀을 달라고 했다. 체스판의 첫 번째 사각형에 쌀을 한 톨 놓고, 두 번째에는 두 톨, 세번째에는 네 톨 ... 이렇게 정확히 두 배씩 늘어나도록 쌀을 다음 사각형에 쌓아서 달라는 것이었다.

.....

32번째 사각형을 지나자, 황제는 발명자에게 40억 톨의 쌀을 줘야 했다. ... 이 상태로 체스판의 후반부로 넘어간다면, 둘 중의 한명은 커다란 곤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커즈와일은 무엇인가 두 배씩 지속해서 증가하면, 즉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면, 처음에는 그리 눈에 띄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속임수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지적했다. 기하급수적 증가의 초기 단계에서는 선형적 증가 곡선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증가폭은 우리의 직관과 기대를 크게 무너뜨린다. 작은 한 톨의 쌀이 에베레스트 산 크기의 쌀 더미를 만들 듯, 컴퓨터 기술의 기하급수적 발전은 과거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여러 가지 일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52~53쪽, 기계와의 경쟁)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발전만이 아니다. 두 책이 모두 이야기하는 것이 1970년대 이후 미국의 전체적인 부는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하위 80%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자동화와 더불어 이런 추세가 강해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의 시대 역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기계에 밀려야 하는가? 저자들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인공지능이 체스에서 인간을 이긴 이후 체스경기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조합일 때 가장 강력함을 보여줬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사실 체스판의 후반부는 이미 시작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 두 책의 내용이 너무 비슷하다. <제2의 기계시대>는 <기계와의 경쟁>의 증보판 정도의 느낌이다. 게다가 저자가 같은데 <기계와의 경쟁>은 앤드루 매카피, <제2의 기계시대>의 앤드루 맥아피로 표시되어 있다. 큰 문제가 없다면 전작의 명명은 따라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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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년의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일본 최대의 사구로, 동서16km, 남북으로 2km에 달하는 웅대한 모래언덕이 펼쳐지고 있다. ...

이 모래언덕은 중국산맥에서 흘러내린 센다이 강과 바람이 옮기는 모래가 유구한 세월동안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 웅대함 앞에서 여행객들은 말을 잃는다. 특히 거센 바람이 불면 나타나는 신비적 모래에술 '풍문(風紋, 모래 위에 생기는 물결무늬)'은 그야말로 자연이 창조해 낸 최고의 예술이다. (287쪽, 일본소도시여행)

 

 

"이 사구는 일본 서쪽 주고쿠 산지의 화강암이 풍화하며, 강으로 흘러내려 해안에 쌓이면서 형성된 대표적인 해안사구이다. 바닷속의 모래를 파도가 밀어내고, 해안선에 퇴적된 모래를 다시 바람이 내륙으로 쌓아올리면서 언덕을 형성한 것이다.
.....
돗토리사구는 하나의 거대한 산과 같이 장막처럼 펼쳐져 있는데, 남에서 북으로 2.4㎞, 동에서 서로 16㎞에 달한다. 특히 이곳은 크게 3개의 사구가 행렬로 이루어져 있는데, 동해의 푸른 바다와 거의 수평을 이룬다. 이를 해안 쪽에서부터 제1, 제2, 제3 사구열(砂丘列)이라고 부른다. 이 중 가장 높은 모래언덕은 60m에 이른다. 최대 높낮이 차이는 90m로, 일본의 전통 바리때인 스리바치와 비슷한 꼴로 움푹 파인 지형도 유명하며, 특히 '큰 스리바치'라고 불리는 지형의 높이는 40m에 달한다."
http://m.media.daum.net/…/society/newsview/20140905104416239

한국에서 불과 1시간 거리(물론 요나고공항에서 1시간은 달려야 하지만)에서 사막을 만날 수 있다. 사실은 해안사구이다. 자연의 경이로움을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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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구치 지로의 '열네 살'. 도쿄에 사는 마흔여덟 살의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만화다. 돌아가신 어머님을 모신 절에 들렀다가 잠깐 잠이 들어 깨어나 시간을 거슬러 1940년대 고향인 구라요시로 와버린다. 중학생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친구들, 첫사랑과 재회하고 부모님의 고뇌 등을 통해 현대인에게 고향과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묻게 된다는 줄거리이다.

....

그저 간장과 술 창고가 들어서 있던 옛 풍경을 가진 마을이 보존을 잘 한 덕분에 지금은 '그리운 풍경'의 하나로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곳. 있는 그대로 수수하게 어제도 오늘도 내일고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을 '열네 살의 고향은 시라카베도조군이다. (114쪽, 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시라카베도조군은 어떻게 보면 발전하지 못한 시골동네이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멈춘 느낌이다.

 

돗토리현 유명한 만화가를 배출했다. 그 중에 한명이 다니구치 지로谷口  ジロ一이다.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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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5-0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만화 읽고 참 찡하더라고요. 나의 열네 살은 어땠는가, 싶기도 하고...

雨香 2016-05-01 10:48   좋아요 0 | URL
만화가는 알고 있었습니다만, 열네 살이라는 만화는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림으로 만나는 장소도 새로울 것 같습니다.
 

 

에도시대 이전에 축성되어 당시의 천수각이 남아 있는 성은 전국을 통틀어 열두 개 뿐이다. 마츠에 성도 그 열두 개뿐인 성의 하나다. 밖에서 볼 때는 5층인데 내부에 들어가면 6층인 천수각에 오르면 마츠에 시내의 사방팔방을 파노라마로 볼 수 있다.(144쪽, 때때로 일본 시골 여행 west)

 

천수각 양식은 사방을 전망할 수 있는 망루에서 시작된 복합적인 것으로, 일본에 현존하는 천수각 중 히메지성이나 마쓰모토성 등과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모모야마시대 초기의 장중하고 웅대한 모습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성 바깥벽은 대부분 검게 칠한 두꺼운 판자로 덮여있는데, 이는 무엇보다 안정감을 주면서 튼튼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5층 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6층으로 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또한 히메지성이나 하코네성처럼 흰 벽으로 된 부분이 적고, 대부분 '아마오이타'라는 검고 두꺼운 판자로 덮여 있다. 이 덕분에 오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115쪽, 일본 소도시 여행)

 

마쓰에성은 시마네현에 있다. 전형적인 일본 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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