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매뉴얼>은 유럽연합에 역사와 배경 그리고 운영원리 및 현재의 문제를 잘 짚어주는 책이다. 물론 몇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 지금의 브렉시트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영국이 EU와는 겉돌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유럽연합내 모든 나라가 유럽연합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국가의 정부의 성격에 따라 유럽연합과 대치되는 결정들을 내리곤 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조약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그 때마다 그 조약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유럽연합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겠지만, 유럽연합의 모태는 유럽석탄공동체이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지대, 여기에 몇 나라가 같이 엮여 있다. 석탄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해 연합체를 만든다. 거기에다 2차대전 후 서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크게 있었다.  특히 2차대전 후 유럽의 안정을 위해 프랑스는 독일을 묶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전범국이었던 독일 입장에서도 다른 유럽나라들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했다. 그렇게 유럽연합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전쟁에서 패하지도, 점령당하지도 않았던 영국은 다른 유럽인과 주권을 공유할 의사가 없었으며,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와의 신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5)

 

그럼에도 영국은 1975년에서야 유럽연합에 가입하는데 경제적 이유가 컸다.

모네의 전통을 따르는 연방주의자 답게 그의 최종 목록에는 단일시장, 단일통화, 공동방위정책 제도 개혁 등이 포함됐다. 이것은 연방주의 방향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처 총리는 연방주의에 대해 드골과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통화, 방위, 제도 관련 프로젝트에 반감을 표시했다.동시에 급진적인 경제자유주의자였던 그녀는 단일시장을 무역 자유화 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다.(42)

 

 하지만 기존 유럽과 영국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노동계층과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금융업 및 자유경제를 추진하던 영국의 경제관은 유럽연합과 확연히 달랐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규제철폐(Deregulation)와 유연성을 강조했는데, 그 이면에는 이것들이 유럽 경제를 좀 더 경쟁력 있게 만들고 고용을 증가시키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노동시장은 경제의 단순한 한 부분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이런 영국의 접근 방식은 미국 경제 철학과 유사했기 때문에 앵글로-색슨 방식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독일의 주요 모델이었던 라인란트(Rhineland), 접근법이라고 알려진 또 다른 접근 방식도 있다. 노동시장에서 강조되는 것은 유연성 보다 연대감과 사회적 보호이다.(144)

 

이런 다른 경제관으로 영국은 유럽연합과 마찰을 일으킨다. 완전자유경쟁시장을 원했던 영국이 유럽과 대립했던 부분은 농업이다.

농민의 소득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싼 가격과 그 가격으로 생긴 잉여생산물에 자금 지원을 해주는 보조금으로 유지됐는데, 이 보조금은 공동체 납세자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정책은 공동체 초기에는 그럭 저럭 유지됐지만, 영국의 공동체 회원국이 된 이후부터는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식 자유무역 모델은 가격이 대폭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영국이 공동농업정책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곧 수입 식품에 수입세가 붙어 식량 가격이 높아지는 것, 공동체 예산에 영국이 수준 높은 기여를 한다는 것, 그리고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기 때문에 공동체 예산에서 받는 수령액이 적다는 것 등 삼중의 타격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은 대처가 1979년 영국 총리가 된 이후 5년간 다른 많은 공동체의 사업을 볼모로 우리 돈을 돌려줘"라 고 주장하던 전투의 출발점이었다. (120)

 

영국은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에 관심이 없었고, 특히나 정치, 국방 등에 있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만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경제적 주권에서도 분명히 독자권을 갖고자 했는데, 그래서 파운드를 계속 사용하게 된 것이다.

 

<차브>라는 책을 보면 브렉시트에 앞장섰던 백인노동차계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EU매뉴얼>은 유럽연합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 중에 영국과 유럽연합에 대한 부분을 읽어볼 수 있다. 영국 내부적으로도 유럽연합과 함께 하기 힘들었지만, 외부적으로도 영국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지 못하게 계속 외부인으로 남아있었다. 브렉시트를 단순히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실 1980년대 선거에서도 쟁점이 브렉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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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 에그시는 차브다. 특별한 일자리 없는 젊은이. 한편에서는 차브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지만 실제 차브의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영화 '트랜스포팅'이 차브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차브>는 처음에는 젊은 노동계급이라는 뜻이었지만 어느 샌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 (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깊이가 부족하지만, 차브에 대한 정의는 제대로 잡은 기사가 있다.

차브의 등장 계기는 1979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집권이다. 대처의 민영화 정책으로 광산업 등 제조업 노동자들이 실직하면서 이들이 주로 거주하던 도시 외곽의 임대주택 밀집지역이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폭력과 마약에 노출된 실직자의 자녀가 바로 차브의 모태. http://news.donga.com/3/all/20150316/70139293/1

 

차브는 1970-80년대 대처 정부에서 그 기원이 있다. 대처는 중간계급의 확장을 위해 노동계층을 아예 없애는 전략을 썼다. 또한 대처는 금융, 서비스업을 영국의 먹거리 산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계층과의 전쟁을 치뤘고, 산업혁명의 전통을 가진 영국의 노조는 망가져 버렸다. 망가진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광산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 모두 그 근본을 잃어버렸다.

 

노조와 산업을 무너뜨리고, 바로 대처의 유명한 세제개편이 일어난다. 모두에게 공평한 세금. 기존에 있었던 부자에 대한 세금은 대폭 낮추고, 부가세 등 간접세 비중을 높여 부자들의 세금을 모든 사람에게 전가한다. 물론 그들의 논리는 낙수효과이다.

(관련된 내용 발췌는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32330 )

 

이후로 노동계층은 고숙련 고임금에서 일자리가 없고, 그 마저도 저임금체계에 빠진다.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교육을 시킨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는 빈곤계층으로 떨어지게 된다. 복지수당에 기대어 생존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비난하고 희화화 한다. 차브.

언론과 미디어는 부당하게 복지수당을 챙기는 이들을 비난한다. 차브계층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이를 차브계층과 엮어서 방송하기에 바쁘다. 중간계층, 고소득계층의 범죄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잘못일 뿐이지만, 빈곤층에서의 범죄는 계층 전체가 엮여서 비난받는다. 게다가 그들은 의욕도 없고, 노력도 안하는 집단이라고 매도당한다.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그러나 이런 악마화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의제를 갖는다.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의는 특정한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이 빈곤이든 실업이든, 혹은 범죄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서진 영국(Broken Britain)에서 희생자들은 자기 자신들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다. (270쪽)

(관련된 내용은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37445,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29077  )

 

노동계층의 기반을 둔 노동당도 차브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당 역시 차브에게 빈곤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는다. 진보집단 역시 차브를 비난한다. 그들을 산업에 밀려난 노동계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이들로 폄하해 버린다. 노동당/진보에게마저 버림받은 차브계층에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극우정당이다. 예전에 노동당을 지지하던 이들이 정반대에 있는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41692 )

다수의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당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당이 더 이상 자기들 편에서 싸우지 않는다고 느낀다. 일부는 무관심에 굴복했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할 서사를 빼앗긴 사람들은 다른 논리를 찾고 있다. 무거운 책임을 추궁받는 것은, 대처가 벌인 계급전쟁에서 승리한 부유층들이 아니다. 수백만 노동계급의 좌절과 분노는 그 반격의 칼끝을 이민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325쪽)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자, 많은 이들이 영국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영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을 잃은 영국의 입장에서 EU는 고소득층만 자유로운 이동으로 혜택을 입을 뿐이다. 노동계층은 저임금 일자리를 가지고 다른 유럽인 혹은 이민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영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 차브 는 KBS TV책을 보다에서도 다뤄졌던 책이다.

http://www.kbs.co.kr/1tv/sisa/tvbook/view/vod/2404883_920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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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에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유는 영국내 극우세력의 부상이다. 산업혁명의 종주국으로 산업의 주역이었던 노동계층이 대처의 노동계급 말살 정책으로 광산업, 제조업은 사라졌고, 저임 노동자로 전락했다.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밖에 없던 백인노동계층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 극우세력이 거들었고.

 

이런 이해 없이 너무 단순하게 브렉시트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동계급으로서의 자부심은 지난 30년간 산산조각 났다. 노동계급이라는 것은 차츰 버려야 할 정체성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공장과 공영주택을 기반삼아 조직된 커뮤니티의 오랜 유대는 깨져버렸다. 과거 바킹이나 대거넘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노동계급이란 정체성은 삶의 중심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소속감과 자존감 그리고 지역의 다른 주민들과의 연대감을 의미했다. 이 자부심이 사 라지고 생겨난 진공상태의 일부를 영국 민족주의라는 잠에서 깬 야수가 채운 것이다. (345)

무엇보다 위험천만한 것은 요령있는 신진 포퓰리스트 우익의 등장인데, 그들은 계급에 대해 거리낌없이 얘기하며, 노동계급이 지닌 문제들에 대해 반동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악마화와 그들의 정체성 파괴를 맹렬히 비난한다. 그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전통적인 정당인 노동당이 그들로부터 등을 돌렸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이 갖는 불만의 근본원인이 되는 뿌리깊은 경제 이슈 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자신들의 포퓰리스트적 공격목표를 이민과 문화적 이슈들로 돌릴 수도 있다. 이민자들은 경제적 고통의 원인으로 지목당하고, 다문화주의는 '백인'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훼손한 다는 이유로 맹공격을 받는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이유, 그리고 포퓰리스트 우익들이 노동계급 커뮤니티를 잠식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당이 노동계급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 특히 주거,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등에 대한 답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당은 더 이상 노동계급이 정체성의 근거로 삼을 지배적 서사를 제공하지 못한다. 과거 노동당을 자연스럽게 지지했던 너무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당은 부자들과 대기업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비쳐진다. 의심할 바 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당은 더 이상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당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공정하게 말하면, 이 현상은 영국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전통적 좌파정당들의 드라마틱한 우경화가 서유럽 전체에 걸쳐 극우세력에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스의 붉은 벨트에서 융성하고 있는 국민전선이나, 이탈리아의 선동적인 북부동맹이 그런 예다.

 

 극우의 부상은 더욱 큰 위기를 예고하는 하나의 징후다 그 위기란 노동계급의 대표성 위기다. 정치의 영역에서 축출되고, 정체성이 파괴되며, 사회 안에서 누려온 권력이 축소되고, 그들의 관심사가 외면 받고 있음을 생각할 때, 국민당 같은 정당에 투표한 노동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수도 있다. 많은 수의 노동자들은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고 투표를 거부하며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또다른 다수의 노동자들은 탐탁하지는 않지만 차악으로서 노동당에 투표하고 있다. 우익 포퓰리즘의 부상과 대중의 정치적 소외, 비관주의와 냉담함은 영국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위기에 처한 것은 노동계급의 미래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가 위태롭다. (365)

 

다수의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당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당이 더 이상 자기들 편에서 싸우지 않는다고 느낀다. 일부는 무관심에 굴복했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할 서사를 빼앗긴 사람들은 다른 논리를 찾고 있다. 무거운 책임을 추궁받는 것은, 대처가 벌인 계급전쟁에서 승리한 부유층들이 아니다. 수백만 노동계급의 좌절과 분노는 그 반격의 칼끝을 이민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3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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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현실을 <차브>는 잘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영국은 만들어진 영국일 수 있다. 게다가 노동계층을 대변한다는 노동당조차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그런부분을 중심으로 페이퍼를 작성중이다. <차브>중에 특정 주제에 해당부분 발췌식으로...

 

실제 <차브>에서는 노동당 조차 중간계층을 대변하려 하지 노동계층을 대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노동계층이 골수 우익집단을 선택하기도 한다.(이는 다음 글에 발췌하는 것으로)

 

앞서 대처는 가난을 사회 구조의 문제가 아닌 개인이 열심히 살지 않은 탓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보수당과 언론을 그렇게 만들어냈다. 이후 노동당 역시 가난은 빈곤계층의 잘못으로 몰고 갔다. 어찌보면 영국에서 빈곤계층을 그 누구도 대변해주지도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노동당 정치인들은 형편없는 학교 성적이나 가난이 대물림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노동계급 내 '열망의 빈곤'을 분석하기도 한다. 가령, 신노동당 전 교육담당 비서 앨런 존슨(Alan Johnson)은 “특히 오늘날 노동계급 아이들 세대에 팽배한 열망의 빈곤"을 비난했다. 산업의 파괴에 따른 일자리와 직업연수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계급 아이들의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2008년 출간된 정부 보고서는 옛 산업지대에 거주하는 노동계급의 이른바 '부족한 열망'을 강조했다.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이런 지역에서 열망을 가지기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 한지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런 식의 접근은 대처주의 시대에 극히 전형적인 것이었다 노동계급이 직면한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책임은 정확히 그들 자신의 것이라는 말이다. 

'열망있음', 대 '열망없음'의 대립구도는 대처리즘 시대에 드러난 노동계급의 균열을 이용하려는 신노동당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신노동당 정치인들이 '열심히 일하는 가족'이라고 부르면서 부정하게 복지금이나 타내는 수많은 게으른 사람들의 반대편에 세워놓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방편인 것이다. 복지 식객을 때리는 것이 백만장자가 아닌 저임금 노동자의 지지를 끌어내기에 더 매력적인 방법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적은 임금을 받으려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돈으로 흥청망청 사는 부자들에게 분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실 산업의 붕괴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노동계급 공동체에게 복지에 대한 공격이 돌아갔다. 옛 산업지대는 실업자와 복지기금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가장 많았다. 사라진 일자리를 대체할 만한 안정된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신노동당의 접근방식은 그들을 연약한 노동계급이라 낙인 찍었고 악마로 만들고 말았다. (130-131)

 

신노동당의 복지정책은 무능하고 열망이 없으며 얻어먹기만 하고 비정상적인 데다 무질서하다는 일련의 차브이미지를 노동계급에 부여하는 데 기여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보수당이 아 닌 노동당에서 나옴으로써 노동계급 사회와 개인을 향한 중간계급이 가진 수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은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이런 공 격은 직접적인 공격보다 더욱 교묘하다. 신노동당의 기반이 된 많은 철학들은 중간계급 승리주의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 철학들 은 넝마를 걸친 채 남아 있는 노동계급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중산층 영국'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136)

 

노동계급 아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부족하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는 정치인과 논평가들은 종종 핵심을 놓치고 있다. 대체 무엇을 희망하란 말인가? 예전에 그렇게 많이 존재하던, 좋은 급여를 제공하는 양질의 노동계급 일자리들이 전국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소멸해 버렸다는 것은,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한 뒤 슈퍼마켓이나 콜센터 같은 곳을 제외하면 갈 곳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259)

공공부문 삭감이 진행됨에 따라 상황은 한층 암울해 보인다. 공공부문은 수년 동안 졸업식을 갓 마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선택지였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것이다. 만약 여러 해의 학업 기간을 거친 뒤에도 안정되고 벌이도 좋은 일자리를 얻을 개연성이 낮다면, 대체 왜 그런 과정을 밟아야 하나? 결국 하게 되는 일이 가게 점원이라면, 수년 동안 뼈빠지게 학교 다니는 수고를 감수하는 것은 시간낭비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기를 바란다면, 기대할 만한 무엇 을, 그 아이들에게 줄 필요가 있다. (261)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그러나 이런 악마화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의제를 갖는다.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의는 특정한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이 빈곤이든 실업이든, 혹은 범죄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서진 영국(Broken Britain)에서 희생자들은 자기 자신들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다.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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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이라고도 불리는 마거릿 대처를 다시 봐야 한다.

 

일각에서는 그녀를 영국의 망국병을 해결한 것으로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영국의 제조업 기반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산업의 기본은 제조업이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대처의 정책은 나라를 망치는 정책이다.

 

그리고 대처가 나쁜 건 노동계층을 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을 단지 그들의 잘못으로 생각한 것인데, ....

 

과연 다른 책들은 어떻게 다룰지 .. 이런 내용을 지적하는 다른 책들이 있을까?

 

영국 노동계급을 향한 모욕 중 가장 끔찍한 것은 산업과 노조에 가해진 대처의 두 갈래 공격일 것이다. 사회를 황폐화한 주원인은 단지 국가의 제조업을 구조적으로 폐기 처분했기 때문이 아니며-물론 이것은 실업과 가난, 그리고 그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로 공동체 를 파괴시켰고 그 때문에 나중에 큰 비난을 받았다-노동계급의 정체성 자체를 맹공격했기 때문이다. (72)

대처 정부는 이런 기억들을 가차없이 조작했다. 정부의 목적은 노조를 영원히 괴멸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법안은 고용주들이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을 해고할 수 있도록 했고, 해고 수당을 경감해주었다. 또한 노동자들이 다른 노조의 파업을 지원하지 못하게 했고, 법원이 노조의 자금을 압류하지 못하도록 하는 보호조치를 철회했으며 노조에 엄청난 벌금을 물릴 수 있도록 했다. (74)

 

다시 정리하자면, 영국 산업이 황폐화된 것은 정부의 정책 때문이지 역사의 행진 때문이 아니다. 서구의 다른 어떤 나라도 제조업이 그렇듯 단기간에 무너지지 않았다, 2009년 폭발한 금융위기에 대응했던 방식을 한번 되돌아보자, 1980년 대처리즘이 제조업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반면, 신노동당 정부는 탐욕과 어리석음 때문에 파국의 경각에 매달린 은행에 세금 수백만 파운드를 쏟아 부었다. 왜냐고? 은행은 무너뜨리 기엔 너무 거대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야기를 제조업에 대해저도 할 수 있겠죠”라고 그레이엄 터너는 말한다. “세계는 결국 회복되었고, 만약 제조업을 더 지원했다면 그렇게 많은 일자리를 잃지는 않았을겁니다.” (79)

노조와 산업에 대한 대처의 공격은 산업 노동계급에 패배를 안겨 주었다. 노동계급 정체성의 중핵을 이루던 고임금의 숙련된 직업들은 그렇게 뿌리가 뽑혔다. 노동계급과 연관된 모든 것들은 사라져버 혔다. (80)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부자들에게 삽으로 퍼주는 게 정부의 목표가 되는 뻔뻔스런 일이 역사상 처음으로 벌어졌다. 첫번째 예산편성에서 최고소득층의 근로소득세(83%)와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97%)은 60%로 삭감되었으며 법 인세는 52%에 서 35%로 감면되었다. 1988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니겔 로슨(Nigel Lawson)은 한술 더 떠서 최고 세율을 40%로 줄였다. 조프리 하우 재무장관은 “세무구조를 기업에 걸림돌이 되지 않게끔 바꿔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완고하게 고집했다. 하지만 대처가 벌인 계급전쟁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세부담을 부자에게서 모든 사람들에게 확대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91)

 

어떻게 정부가 부자들의 뒤를 밀어주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었을 까? 대처주의자들은 낙수효과 즉, 최고위층에 쌓인 부가 점점 아래로 떨어진다고 주장하는데 이런 현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대처리즘은 실패한 경제정책 대신 희생자들을 공격했다. 희생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건 희생당한 개인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대처 철학의 핵심에는 가난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누군가 가난하다면, 그건 그들의 개인적인 실패 때문이다. “오늘날 이 나라에 근원 적인 가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대처는 언젠가 말했다. “서구 사회에 남겨진 문제는 가난이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어떻게 투자할지, 수입을 어떻게 지출할지 몰라서 생기는 가난은 있다. 하지만 가난은 정말 근본적으로 성격과 인품의 결함일 뿐이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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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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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6-09-01 13:10   좋아요 0 | URL
대처가 금융업과 서비스업을 미래 영국을 먹고 살릴 산업으로 생각한 듯 합니다. 특히 책 후반부에 보면 노동당이 집권하고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나옵니다. 저도 어릴 때 대처에 대한 전기를 읽었고, 존 메이저 등의 전기를 읽었는데, 참 뭐랄까. 제조업을 산업의 기반으로 생각하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대처는 영국의 산업을 망친 장본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니네 2017-01-23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된 노동에 반해 적은 돈에. 처우도 열악하고 인격모독도 수시로 발생하는 그런 제조업이 과연 산업의 중심일까요?

그렇담 제조업을 기피하는 우리네 한국 젊은이들은 인격적으로 잘못된 자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