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추석 연휴다. 책을 좀 읽을 여유가 될지 모르겠다.

 

EBS에 통찰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월,화 밤 12시가 넘어서 시작하고, 1시 즈음에 마치는 프로그램인데, 최근에는 두 명의 전공자가 나와서 서로의 의견을 강의한 후 약간의 질문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일종의 교양프로그램이다. 바로 전에는 지중해문명을 두고 미술사학자와 역사학자가 강의를 맡았다.

 

이번 통찰의 주제는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이다. 제목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 거린다. 일단 강의를 맡은 두 교수님의 책을 준비했다. <세상물정의 물리학>, <김상욱의 과학공부>  일종의 과학에세이, 칼럼 같은 글인데,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8월말 간송전에 다녀오면서 이번에는 꼭 간송에 대해 읽어야지 생각하고 든 책들이다. 간송의 삶을 다룬 <간송 전형필> 그리고 간송 작품들을 다룬 <간송미술 36>, <고화정담>, <그림소담>이다.

 

간송 전형필은 간송미술관을 설립했다. 일제시대 거부였던 그는 일찍부터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알고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구한다. 일본 경매장에서 참여해 일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들여오는데도 큰 일을 했다. 그가 단순히 부가 많아 문화재를 소장한 것은 아니다. 해방후에는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는데, 문화재가 일본으로 넘어갈 일은 없다고 본 것이다. 또한 유명인들의 작품만을 소장한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예술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훌륭하지 않더라도 시대적으로 의미가 있거나 대표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구해냈다. 그리고 간송미술관의 전문가들이 우리 문화예술의 해석에 대한 성과를 내기도 한다. <간송미술36>, <고화정담>, <그림소담>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가운데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을 설명하는 책이다.

 

추석연휴에는 예술의 전당 서예미술관에 방문해서 민화구경을 할 생각이다. 전시구성은 책가도와 문자도가 중심이라는데, 딱 이 주제를 다룬 <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를 읽을 생각이다. 또한 민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민화, 가장 대중적인 그리고 한국적인>을 읽을 텐데 두 책은 정병모라고 민화 연구의 대가의 글이다.

 

이외에 <민화에 홀리다> , <허균의 우리민화 읽기>를 같이 읽을 생각이다.

 

일단 9월엔 한국화에 푹 빠질 생각이다. 고전역학, 양자역학은 잘 모르겠다. 왠지 발 잘못 담갔다고 빠져나올 수 없을수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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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현 2016-09-2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제 12회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시를 품은 물리학`이라는 주제로 김상욱 물리학자의 강연이 있습니다! http://onoffmix.com/event/76806 여기에서 신청 가능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강연과 전시가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화정담 - 간송미술관의 다정한 그림 간송미술관의 그림책
탁현규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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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畵情談 : 옛 그림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정겨운 이야기

 

라는 뜻의 <고화정담>은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작품 중 30 작품에 대한 소개이다.

사군자, 영모, 진경산수, 풍속, 도석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나누고 설명한다. 조선 그림을 주제별로 크게 구분해서 알려준다.

 

1년에 몇 번씩 큰 전시회를 통해 서양화가들의 유명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만, 우리의 옛 그림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눈에 담을 기회도 많지 않고, 그래서 지나쳤던 옛그림들. 하지만 <고화정담>을 통해 우리 옛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림 하나 하나가 갖는 의미가 남다르고,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이 어떤지 조금씩 트이는 기분이다. 우리가 알던 몇 몇 작가들 외에 심사정, 김득신 등의 그림을 접하는 것 또한 쏠쏠한 즐거움이다. 알아간다는 즐거움.

 

 사군자편은 4편의 그림을 설명한다. 사군자는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조선의 선비정신과 빗대어 선비들이 줄곧 그려낸 그림이다. 그중 심사정의 그림에 대한 설명이다.

 

옅은 먹으로 국화 잎을 툭툭 쳐내고 바위도 붓으로 최소한으로만 그었다. 먹빛도 묽어 단단한 느낌은 커녕 곧 뭉크러질 것만 같다. 위쪽 국화 잎은 반을 잘라 다 그리지 않았으며 꽃봉오리는 점 몇 개로 단순화했다. 국화 잎이 너무 무성해 약간 비대한 듯 느껴져 단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이 심사정 묵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닮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것. 국화 옆 바랭이풀은 먼저 갈색으로 잎을 그리고 그 위에 먹선을 그었고 바위도 마찬가지인데 먹선을 약간 어긋나게 그어 입체감을 주었다. 심사정이 줄겨 사용한 방법이다. 그리고 바위 주변에 녹색 점을 찍어 먹색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났다.(30쪽)

 

 

동물을 그린 영모화는 그림을 그리는 도화서 화원들이 주로 그렸다. 물론 사대부도 동물을 그렸다. 윤두서의 군마 같은 작품이 그렇다. 솔직히 군마를 보고 놀랐다. 단순하면서도 살아있는 듯한(똑같이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눈을 자꾸 돌리게

했다.

사군자에서 의미를 담았듯이, 동물에게도 그 뜻을 담았다.

 

그런데 도화서 화원들은 조금 다르게 영모화에 접근했다. 초상화에서 중요한 것이 수염이었는데, 수염으로 원근감 등을 표시할 뿐 아니라, 인물의 특징도 잡아냈다.

초상화에서 알맹이는 얼굴이고, 얼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눈동자이지만 가장 공들여야 하는 것은 수염이다. 가늘고 길며 꼬불꼬불한 수염이 한 올 한 올끊이지 않아야 하고 엉켜서도 안 되며 흑백이 섞여야 하고 바람도 통해야 하니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먹의 농담도 일정해야 한다. 먹을 묻혀 정신을 바로잡고 비단 위에 수없이 붓질해야 초상화가 비로소 완성된다.  화원들이 도화서에서 그린 여러 그림 가운데 초상화가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화원들은 수염 그리는 데 선수였다. 

그렇다면 이 수염 그리는 솜씨를 발휘할 수 있는 그림은 무엇일까. 당연히 털 짐승 그림이다. 그래서 각기 전념하던 털 짐승 그림이 있었다 정홍래는 매, 김두량은 개, 변상벽은 닭과 고양이를 잘 그렸다. (70)

 

 

진경산수화가 의미있는 것은 실제로 우리 땅을 그렸기 때문이다. 중화사상이 가득했던 조선초중반 해도 중국책에 있는 중국의 산과 강을 그렸다. 겸재가 이 땅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우리 눈으로 우리땅을 그려냈다는 것이다.

우리 옛 땅의 모습이 그림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담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단순하게 그려내 그림에 예술성을 덧 붙였다.

 

저 기와집엔 양반이 살 테고 초가집엔 평민이 살 텐데, 그래서인지 기와집 자리는 전망 좋고 양지바르다. 재밌는 건 기와집이건 초가집이건 모두 드러난 집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히 모두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러면 재미가 없다.  저 나무 뒤에 기둥은 이럴 것이고, 지붕은 저럴 것이다 등등 감상자에게 상상할 여지를 주어야 그림이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산등성이에는 솔들이 한줄로 빼곡해 산 전체에 솔 향기가 가득한데 마을 뒤는 산이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넓고 푸른 강이 흘러가니 청탄마을 사람들에겐 이곳이 무릉도원일 것이다. 산주름에 먹점을 찍어 키 작은 잡목을 그렸고, 저 멀리 있는 산자락은 주름만 있고 먹점은 찍지 않았으며 뒤에는 주름마저 사라지고 더 멀리는 청색으로 물들였다. 이 보다 박진감 넘치는 원근법을 따라 할 화가는 많지 않다. (116, 겸재 녹운탄)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볼 때면 항상 놀랍다. 다른 그림들이 전체적인 느낌, 분위기에 주목해서 본다면 신윤복의 그림은 선과 색체, 그리고 살아움지이는 듯한 움직임까지.

사람을 묘하게 그림에 붙들어매는 능력이 있다. 부분 부분을 보는 것 자체가 예술이다.

 

신윤복의 그림은 그림의 가치도 뛰어나지도 우리 문화를 담아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당시 문화가 그림속에 담겨있다. 신윤복의 그림은 예술이자, 역사이다.

 

신윤복 그림에는 200년 전 의복, 춤, 음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장도 없고 생략도 없다. 따라서 오늘날 좋은 옷을 지어 입으려는 이, 잊힌 춤을 다시 살리려는 이, 옛 가락을 내일로 전하려는 모든 이들은 신윤복 그림을 의지하면 어긋나지 않는다 또 제대로 된 조선 역사극을 만들려고 하는 이 또한 신윤복 그림울 기준으로 고증하면 탄탄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198)

 

 다섯번째 주제인 '도석'은 쉽게 말해 달마도사 등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에서 불교 및 도교사상이 그림에 자리잡기는 힘들었는데, 유교의 틀에서 자유로운 화원들은 달마대사나 동자승을 종종 그렸다. 단순히 중국의 소재가 아닌 각자에 맞게 발전시켜서 그렸다.

 

놀라운 것은 맹호도에서 수백 번 붓질로 털 하나하나를 그려 살아 있는 호랑이를 그려낸 김홍도가 이번에는 붓 몇 번 대지 않고 역시 살아 있는 호랑이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둥글둥글하며 성근 삽살개의 털을 그리는 것처럼 먹으로만 슬렁슬렁 돌렸는데 영락없는 호랑이다. 바로 이 점에서 김흥도는 대가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확인할 수 있다. 대가는 양쪽 끝점을 모두 아우르는 이의 다른 이름이다. 수없이 붓질해 완성한 호랑이와 쓱싹 붓 질몇번해서 그린 호랑이 둘 다 기운생동하다 이 둘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 또한 옛 그림 특유의 매력이. 겸재 정선의 소나무 역시 솔잎 하나하나를 그린 것과 붓을 뉘어 툭툭찍어 그린 것이 모두 있었다. 호랑이 꼬리는 굽이치며 솟구쳐 용맹함이 여실하고 날카 운 발톱은 땅을 굳건히 움켜쥐어 안정감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김홍도의 솜씨는 나한의 옷 선에서 드러난다. 

 

부드럽게 흐물흐물 몸을 따라 흘러내리지만 역시 모든 것을 다 갖췄다. 그리고 나한의 옷 선이 이래야만 호랑이 털과 어울릴 수 있다. 그래서 나한과 호랑이는 한마음 한몸이 된다. 더군다나 모두 먹빛 하나이기 때문에 둘은 더욱 쉽게 결합된다. 나한의 얼굴이 김홍도의 달마도해에 나오는 달마 얼굴과 비슷한 걸로 봐서 김홍도가 스님 얼굴로 좋아한 도상인 듯하다. (245-246)

 

<고화정담>은 이야기하듯 쓰여있어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한번에 읽고 말 것이 아니다. 옆에 두고 조금씩 읽어봐야 할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읽어도 좋고, 필요한 부분만 시간 날때 접하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보면 우리 옛 그림에 대한 눈이 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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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매뉴얼 - 유럽연합이란 무엇인가 한겨레지식문고 6
존 핀더.시몬 어셔우드 지음, 도종윤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EU매뉴얼>의 뒷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우리는 유럽연합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 책은 한-EU FTA가 체결될 때 쯤 유럽연합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소개한 책의 번역본이다. 유럽연합에 대해 알려주는 책인데, 브렉시트가 발생한 2016년에 읽어도 손색이 없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가 발생했을 때 언론이나 SNS를 보면서 많이 놀랐다. 영국이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정말 그럴까? (<차브>라는 책이 영국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 브렉시트 뒤에 영국에서 구글검색어는 "유럽연합", "유럽연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는 것을 들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유럽연합이 무엇인지 알면서 그런말을 하는 걸까? 유럽에는 문외한인 우리나라에 과연 유럽연합 전문가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있을텐데 미국전문가들에 밀려 그동안 존재감이 미약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유럽연합에 잠깐 접할 기회가 있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레포트), 그 때 알게 된 것이 유럽연합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달라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당시 읽은 내용 중에는 대륙(독일-프랑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을 영국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대륙 역시 영국을 미국의 첩자 정도로 불신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2016년 다시 EU를 다룬 책을 몇 권 들었다. <EU매뉴얼>은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을 이해하는 텍스트, 교과서에 가깝다. 비록 작은 판형에 두께는 얇지만 포스트잇으로 표시한 곳만 서른 곳이 넘을 정도로 공부할만한 책이다.

 

유럽연합은 왜 만들어졌을까? 유럽에서는 유럽 연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왔다. 그렇지만 국가의 주권이라는 부분에서 협의점을 찾기 힘들었다. 유럽연합을 주도했던 프랑스도 드골대통령 체제에서는 연방주의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초창기(1950년대)에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연합체의 성격을 가졌다. 일단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프랑스-독일 국경의 석탄을 개발하기 위한 유럽석탄공동체가 그 시초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1차대전후 프랑스는 독일 관리에 실패했고, 독일에 의해 2차 대전이 발생했다. 프랑스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독일을 관리하기 원했고, 2차 대전 후 경제 복구는 서유럽의 공동의 숙제였다. 독일 입장에서도 전범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유럽과 손을 잡기는 힘들었다. 유럽공동체라는 우산아래 자연스럽게 유럽에 포함되고 싶어했다.

 

그런데 영국은 달랐다.

전쟁에서 패하지도, 점령당하지도 않았던 영국은 다른 유럽인과 주권을 공유할 의사가 없었으며,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와의 신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5)

영국은 처음부터 유럽연합에 부정적이었고, 유럽연합에 일원이 되어서도 계속 유럽연합과 갈등을 일으킨다. 경제를 보는 관점자체가 영미식과 대륙식이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결국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겉돌게 만들고, 궁극에는 브렉시트로까지 연결해서 봐야 한다.

 

(다시 유럽연합 이야기로 들어가면) 유럽공동체를 구속력이 있는 체제로 만드려는 노력은 수십년간 계속되었다. 로마조약이 체결되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체결되지만 각 조약들은 어떤 나라에서는 부결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소련의 해체다.

 

89년의 사건은 전대미문의 격변이었다. 소비에트블럭이 해체되어 공동체가 동유럽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고, 독일의 통일 또한 가능해졌다. 그러나 콜 총리는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했다. 공식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프랑스가 점령국으로서 독일 통일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브란트 의해 시작되고 추구되던 정책, 즉 유럽공동체와 프랑스-독일의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동유럽 관계를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미테랑은 단일통화가 독일이 공동체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므로, 따라서 독일 통일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마스트리트 조약이었다. 마스트리트 조약은 유로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뿐아니 라, 다른 권능과 제도 개혁도 규정했다. 공동체에는 교육, 청소년, 문화, 공공 보건 같은 분야와 관련해 일부 권한이 주어졌다. 각료이사회에서 가중다수결 투표의 범위를 더 넓히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도가 강화됐다. 유럽의회의 기능은 여러 분야의 법률에서 각료이사회의 결정뿐 아니라, 유럽의회의 승인까지 요구하도록 하는 '공동 결정' 절차를 통해 향상됐다. 또한 유럽의회는 신임 집행위원 임명에 관한 승인, 불승인 권한도 확보했다.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두 개의 기둥(pillar)이 마련됐는데, 하나는 공동 외교안보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 , 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 및 내무 협력(Cooperation in Justice and Home Affairs, GJHA,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범죄 문제에 관한 경찰 및 사법 협력'으로 명칭이 바뀜)' 이라고 불리는 자유로운 이동, 역내 치안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두 기지는 공동체 제도와 연관되긴 했지만, 정부간주의가 그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 기둥, 공동체 등으로 불리는제1기둥과 다른 두 기둥 을 합쳐 거대한 전체 구조를 유럽연합이라고 이름 붙였다. (48-50)

 

물론 유럽연합이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마스트리히 조약이 거부된 국가들이 있으며(수정후 통과), 많은 나라들이 간신이 통과되기도 했다. 유럽내에서도 유럽연합 반대가 심했다.

 

이렇게 유럽연합이 만들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럽연합은 조약이고, 그 조약에 합의한 나라의 연합체에 불과할 뿐이다. (?) 그런데 이 유럽연합의 힘이 커졌다. 마스트리히 조약은 기본적으로 유로 단일 통화 체제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가 자체적인 화폐권 그리고 통화 조절을 통한 경제정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로단일통화에는 독일의 영향력이 많이 반영되었는데, 안정적인 통화관리가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유럽연합의 국가들은 국가 재무건전성에 대한 기준이 많다. 이 점이 지속적으로 유럽연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단일 통화 자체가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단일 통화로 인한 남유럽의 경쟁력 상실이 그대로 독일의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재무건전성에 대한 협약이 유럽내 힘의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실제 독일-프랑스가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을때 두 나라는 리스본 조약을 통해 조약을 개정해 버렸지만, 남유럽 국가들에게는 그런 자비는 전혀 없었다. 유럽연합이 제도 보다는 힘의 균형에 의해 운영된다. 

(관련해서는 <유럽연합의 종말>이라는 책이 잘 지적한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24206 )

 

이외에도 <EU매뉴얼>은 유럽연합이 돌아가는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중요한 지적 중에 하나는 바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다. 터키는 1990년대 부터 유럽연합 가입 협상중이지만, 쉽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터키의 정치, 민주 문제이지만,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이 지지부진한 것은 다른 이유이다.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의 인구수에 비례해 의석수를 갖는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독일이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지고 있고, 그 다음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독일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가진다. 그런데 터키가 들어오게 되면 의석수 배분에 문제가 생긴다. 독일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가지게 되는데 거기에 무슬림 성향이 강한 동유럽 국가들과 연합하게 되면 기존 독일-프랑스의 장악력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이 유럽연합에 긍정적인 것은(브렉시트를 비난하는 것은) 국제 헤게모니의 균형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중 패권 사이에 유럽이 기능을 해주는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그 기능을 분담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럽연합은 생각보다 약한 공동체 연합이다. 내부적인 문제는 심각하다. 독일의 안정적인 경제와 복지는 남유럽 국가들의 고난과 노동착취 위에 서 있다. 특히 그리스 위기 이후 유럽연합의 힘이 독일로 쏠리는 느낌이다. 실제 유럽집행위원회 요직 중에 하나가 미르켈 총리의 아바타 같은 사람이 선정되었다.

사실 나는 유럽연합을 우려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전범국이라는 딱지 때문에 군사력은 절대 갖고 있지 않지만... 어쨌거나 유럽연합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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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유럽연합 EU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50년대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지만 정작 연합체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연방주의자들과 국가주의자들의 대립도 강했지만, 무엇보다 유럽연합을 만들기 위한 공동통화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을 구성하는데 앞장 선 프랑스와 달리 서독은 마르크화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상황이 반전된다. 통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서독은 프랑스의 협조가 필요했고, 프랑스는 단일통화 사용으로 궁극적으로 독일을 유럽국가내에 묶어 둘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두번의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감안하면)

 

기존 유럽공동체 EC에 공동 외교,안보와 사법협력이 이루어지면서 유럽연합의 기틀을 갖게 된다. 물론 이 조약이 유렵연합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에도 조약들이 개정되었으니까...

 

1989년의 사건은 전대미문의 격변이었다. 소비에트블럭이 해체되어 공동체가 동유럽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고, 독일의 통일 또한 가능해졌다. 그러나 콜 총리는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했다. 공식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프랑스가 점령국으로서 독일 통일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브란트 의해 시작되고 추구되던 정책, 즉 유럽공동체와 프랑스-독일의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동유럽 관계를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미테랑은 단일통화가 독일이 공동체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므로, 따라서 독일 통일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마스트리트 조약이었다. 마스트리트 조약은 유로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뿐아니 라, 다른 권능과 제도 개혁도 규정했다. 공동체에는 교육, 청소년, 문화, 공공 보건 같은 분야와 관련해 일부 권한이 주어졌다. 각료이사회에서 가중다수결 투표의 범위를 더 넓히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도가 강화됐다. 유럽의회의 기능은 여러 분야의 법률에서 각료이사회의 결정뿐 아니라, 유럽의회의 승인까지 요구하도록 하는 '공동 결정' 절차를 통해 향상됐다. 또한 유럽의회는 신임 집행위원 임명에 관한 승인, 불승인 권한도 확보했다.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두 개의 기둥(pillar)이 마련됐는데, 하나는 공동 외교안보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 , 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 및 내무 협력(Cooperation in Justice and Home Affairs, GJHA,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범죄 문제에 관한 경찰 및 사법 협력'으로 명칭이 바뀜)' 이라고 불리는 자유로운 이동, 역내 치안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두 기지는 공동체 제도와 연관되긴 했지만, 정부간주의가 그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 기둥, 공동체 등으로 불리는제1기둥과 다른 두 기둥 을 합쳐 거대한 전체 구조를 유럽연합이라고 이름 붙였다. (48-50)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찌보면 지금의 브렉시트가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부터 절반의 찬성과 절반의 반대로 이루어져 EU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부호가 지속적으로 따라왔다.  

 

1992년 2월 마스트리트 조약이 서명됐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93년 11월 발효됐다. 덴마크에서는 두 번의 국민투표가 실시돼 첫 번째 국민투표에서는 부결됐으며, 약간의 손질을 거친 후에야 두 번째 국민투표에서 통과했다. 프랑스는 유권자들이 근소한 차이로 국민투표를 거쳐 받아들였으며, 런던에서는 하원에서 비준 과정이 위태로웠고, 독일에서는 헌법재판소에서 기나긴 심리를 거친 후에야 이 조약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기각됐다. 이런 소동은 유럽연합에 대한 시민의 호응이 회원국 대부분에서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특히 연방주의를 지향하던 사람들에게 는 경고로 보였다.(51쪽)

 

마스트리히 조약에 대한 설명 블로그 : 마스트리히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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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이란 유럽 연합(European Union) 회원국 간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하는 국경 개방 조약이다. 유럽 각국의 자유로운 인적 교류를 목적으로 가입국 간 국경을 철폐하고 정보를 교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솅겐조약에 가입된 솅겐국가(Schengenland) 범위 안에서는 한 국가를 여행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솅겐조약 가입국 사이에는 별도의 출입국심사가 없으며, 이동 시 여권이나 비자 등이 필요하지 않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d672

 

유럽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약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을 제대로 알기 힘들다. 그중에 자유로운 통행과 관련된 조약이 솅겐조약이다. 셍겐은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룩셈부르크 지역이다. 이곳에서 자유로운 통행에 대한 조약을 맺는다. 유럽여행을 가서 별도의 비자없이, 검문없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이 조약 때문이다.

 

기사 : <브렉시트> 반난민·이민 정서 표출에 '이동자유' 솅겐조약 위기

 

1958년 이미 로마 조약은 회원국 간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있는 네 가지 자유에 상품, 서비스, 자본과 함께 사람을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서 '사람'은 노동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권리에 한정된다. (152)

그러나 연방주의적 색채가 강했던 회원국은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고 했다. 즉, 회원국 간 상호 국경 통제를 폐지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1985년과 1990년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솅겐에서 체결된 솅겐 협정에 법적인 표현으로 등장했다. 솅겐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을 나란히 접하는 상징적인 마을인데, 이들 세 나라에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합류해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에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과 유럽자유무역연합(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EFTA) 회원국이 참여해 가맹국 수는 종종 솅겐 지대(Schengenland)라고 불릴 만큼 많아졌다. 

 

솅겐 협정은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는 국경 검문에 관한 것이다. 즉 , 솅겐 지대에서는 역내 국경 검문을 철폐하고, 역외와 통하는 국경에 순회검문소를 설치하며 난민·이민·타국인이 이 지역 안에서 거주 및 이동할 때 적용할 규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153쪽)

 

셍곈조약 등에 설명된 블로그 : 솅겐조약은 무엇인가?

 

The Schengen Area
  Schengen Area
  Countries with open borders
  Legally obliged to j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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