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중심주의에서의 탈피.
생계에 대한 중압감 또는 물신주의(物神主義)라는 다소 낡은 표현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어쩌면 우리는 지나치게 현실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이겨 생존을 쟁취해야 하고, 휴식하기보다 준비를 해야 하며, 채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다시 경쟁으로 내몰린다. 이 모든 과정이 스트레스를 만들고, 그것은 경제적으로 처분해버려야 한다. 

그러니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세상을 상상하거나, 다소 허황된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차근차근 풀어낼 여유조차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생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의심은 가시지 않는다. 걱정은 정말 생존에서 비롯되었는가? 혹시 공포 때문은 아닐까. 정말 위협당한 것이 아니라,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 우리를 생계 유지에 급급하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이성을 제압하여 승리를 거두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공포와 힘”이라는 히틀러(Adolf Hitler)의 말은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러한 공포는 문학에도 영향을 주었다. 지난 세기, 우리 문단을 사실상 주도했던 리얼리즘도 결국 생존에 대한 추구와 그를 위한 지난한 쟁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 문단의 토양이 SF처럼 현실을 벗어난 상상은 자라기 어려운 환경으로 고착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러하다면 앞으로 문학의 지향점은 ‘서정’이 되어야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생존 경쟁에서 이완되기 위해서는, 일단 현실에서 벗어나 여유를 되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로 SF가 보완해야 할 내용이 된다. 그동안의 SF가 새로운 과학기술 소개와 알레고리를 통한 현실 비판 등의 역할을 수행했다면, 앞으로의 SF는 삶을 위무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를 위한 도구는 다시, ‘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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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이발소 1
하일권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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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참신하지만, 스토리 전개나 연출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역시 웹으로 봐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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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김삼순
지수현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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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가 이정도면 대단하니 만족하라고? 천만에, 그런 태도야말로 자기비하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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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멈추는 날 - The Day the Earth Stood Stil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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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과 사상에는 공감. but 지나치게 손쉬운 용서와 화해. 난 이 영화에게 그럴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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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카의 혼 1
타카타 야스히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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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본 만화의 근성이 음악과 만났다.
제목부터 근성을 보여준다. 팍팍!  

'혼(魂)'이라니, 이 낱말처럼 일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가 또 있을까?

논의의 범위를 '일본 만화'로 한정하면 위의 설명은 더욱 타당해지리라고 믿는다.
다음 작품들 간의 유사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 <마징가>를 필두로 한 각종 슈퍼로봇 시리즈, <내일의 죠>의 뒤를 따르는 각종 스포츠만화, <쇼타의 초밥(Mr.초밥왕)>을 비롯한 많은 수의 요리만화…  
이 복잡다단한 소재와 주제를 가진 작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야 말로, '혼'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근성'과 '도전'을 핵심으로 하는 소년 만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스토리텔링 또한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친구가 생기고, 그들의 도움으로 더 큰 난관을 해결한다는 '에스컬레이트 시스템'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단순히 소년 만화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1.  주인공이 이미 소년이 아니다.

소년 만화의 주인공은 소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체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모무한 도전은 소년이 해야 아름답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모든 걸 불태워야 하는 도전을 계속하는 것은 어리석을 뿐더러, 구차하기까지 하다.  

소년은 아무리 모든 걸 불태워도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할 수 없지만,
어른은 모든 것이 불타버리는 순간 에너지가 고갈되어 버린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내일이 없다.
소년은 내일을 위해 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무모해도 아름답다.
하지만 어른은 오늘을 견디며 살 뿐이고, 그렇기 때문에 무모해지면 구차해진다.  

<내일의 죠>는 소년에서 시작해 어른이 되어 끝난다.
그가 마지막 게임에서 왜 모든 것을 불태웠는지를 생각해보라.
그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  
세계 무대로 나서는 순간, 그는 소년의 세계를 뛰어넘었다.
죠가 아름다운 이유는 마지막까지 불탔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끝내 소년으로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엔카의 혼>에서 주인공의 위치는 분명히 소년은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 셀러리맨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과 같은 핏줄을 가진 작품으로 <시마과장> 시리즈를 꼽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는 이 둘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본다.
둘 다 셀러리맨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으나, 삶을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소년처럼 무모하게 부딪히기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이야 둘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도 무모하다고 느껴지는 한계의 상황에서,
시마는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권모와 술수를 동원하기도 하고 그에 따라 성공과 실패를 경험한다.
하지만 <엔카의 혼>에 나오는 타츠는 어떤 한계가 오더라도 자신의 마음은 굽히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를 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그의 마음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다.

문제는 그의 마음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그것은 곧 '좋은 노래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다.
이런 순도 높은 열망은 어른의 마음이 아니라, 소년의 마음이다.  

즉, 그는 셀러리맨의 탈을 뒤집어쓴 소년인 것이다.
이것이 소년이 아닌 주인공이 소년 만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유이다.  

 

2. 쇠퇴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

주인공의 소년성보다 중요한 것은
노래 중에서도 노쇠한 장르인 엔카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 말고도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는 많다.
그러나 여타 작품들이 다룬 음악은 대부분 젊은 장르, 록 또는 힙합이다.  

그에 비해 엔카는 낡디 낡은 장르,
작품 속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것처럼 노쇠한 자들을 위한 노래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지향점은 '도전'이나 '대결'에 있지 않다.
오히려 '부활', '화해', '해소'에 스토리텔링의 핵심이 놓인다.  

사라지는 것들의 쓸쓸함이 주는 매력,  
어쩌면 엔카(트로트)에서 이별을 많이 다루는 이유도 그 때문은 아닐런지? 

 

소년의 마음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어른,
늙고 쇠퇴하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이해하는 어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삶을 살아내야만 하는 어른,

... 이 만화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한,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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