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깜빡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너무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할 수 있을 것 같은 몸은
마구 담배를 피워댔다 유리창에 얼핏
비친 몸이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옆에 앉은 손님이 말을 건네왔지만
내가 없었으므로 몸은 대꾸하지 않았다
우산 없이 젖은 귀가를 하려 했을 때
어딘가로 뛰쳐나간 내가 막막하게 그리웠다

  詩 박성우
 

 

 

 

 

............................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는 박성우의 시<거미>의 마지막 행은
마지막 버스만큼 씁쓸하고 황량하다. 거기에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금 전 읽은 시를 자꾸 읽고 또 읽고 다시 보게 된다.
일상 한 켠을 긁어 모아 언어로 짜놓은 시어들이 거미집처럼 얽혀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이 여기 모여있다.

그의 첫 시집 <거미> 의 연작시집 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는 뜻이리라.
조금 더 깊어졌거나 처음 보는 언어들도 전학생처럼 더러 앉아있다.

여전히 농촌의 따스한 굴뚝 연기도 사투리로 피어난다.
도시에서 지친 핼쓱한 군상들도 또 찾아왔다.
지치고 외로워보이지만 쓸쓸함이 없다면 내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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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3-27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치고 워로워보이지만 쓸쓸함이 없다고 꼭 내일이 없는 사람들일까요..^^
전 유쾌해질려고 노력하는 사람중에 하나인데..^^

플레져 2007-03-27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차장님 오늘도 야근하세요?
쓸쓸함을 두려움과 절망으로 바꿔주세요.
두려움없이, 절망없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절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오늘이니까요. ㅎㅎ

이리스 2007-03-27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을 내자구요! ^_^

2007-03-27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7 2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플레져 2007-03-28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아자! ^^
 

                              
  얼마전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디비디를 구입한다는 페이퍼에
  메피스토님이 명작들이 줄줄이 나온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댓글을 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디비디로 만나고 싶은 영화들을 몇 편 꼽아봤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도리스 되리의 "파니 핑크" 다.
 
  절친한 선배언니는 스물 아홉이 되던 해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옥탑방에서 주택의 1층으로 이사한 언니 집에서 나는 이 영화를 실컷 보았다.
언니는 틈만나면 파니 핑크 비디오를 켜놓았다. 밥을 먹는 언니의 뒤에서, 빨래를 개키고 책을 뒤적이는 언니의 뒤에서 파니 핑크가 움직이고 있었다.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가 흐르고 파니의 친구 오르페오가 생일축하 케잌을 들고 나타날때면 어김없이 하던 일을 멈추고 말끄러미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어느날 내가 스물 아홉이 되었을 때 나는 파니 핑크를 떠올렸다. 
파니는 성장이 멈춘 사람처럼 여전히 사랑을 찾아 헤매고 있었고 
나는 사랑따윈 필요없어 라고 외치고는 연애와 관련된 모든 것을 끊었다.
소개팅이나 우연한 만남을 거절한 후 일중독자처럼 일에만 매달렸는데
불쑥 그이가 나타나버렸다. 바로 그날 선배언니를 불러 그이를 소개시켜주었고
언니는 우리 두 사람을 축복했다. 
언니가 오르페오처럼 생일 케잌이라도 들고 나타났더라면 참 좋았을텐데...ㅎㅎ

드디어 나온 디비디! 당장 장바구니다. 오늘의 횡재.

 애니 프루의 시핑뉴스.
 영화로도 유명하지만 소설의 진가는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덤으로 브로크백 마운틴, 이 딸려온다. 
 덤은 내 눈에 이쁜 친구에게 줄까 한다. 흐흐.

 

 


  이병률의 여행기, 끌림.
  다 읽은 지 며칠 되었다. 리뷰를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읽고 있으면 절로 시인이 되는 것 같은 책.
  사진을 전면에 깔고 그 위에 글을 얹은 편집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끌림에서는 제법 잘 어울린다.
  50개국을 여행한 것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 나라를 돌면서 기록을 남겨놓은 것이 젤로 부럽다. 
  한 권 책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도.

  하진의 남편 고르기
  중국계 작가인 하진의 소설은 현대문학에서 한 편씩 소개되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이 책을 권해주셨다.
  야금야금 읽고 있는데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식사랑' 이라는 단편을 잠깐 소개하자면,
  아이가 없는 중년의 부부가 있다.
  어느날 젊은 장교 부부가 두살배기 아이를 위탁해온다. 
  부부는 아이를 돌보며 아이가 주는 사랑에 젖는다. 
  아이를 아들삼으라는 말에 부부는 거절한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아이는 자신의 자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품에 안고 있고, 내 피를 받아 태어난 아이는 아니어도 사랑이란, 자식사랑이란
자식을 낳은 부모가 아니어도 가질 수 있는 것. 사랑은 참 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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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3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KEINER LIEBT MICH. 저는 파니 핑크라는 제목보다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가 얼마나 절망스럽게 칠흑같이 느껴졌는지, 독일어 원제가 더 좋았어요. 그 영화가 좋으셨다면, 도리스 되리 감독이 쓴 책 `나 이뻐?'(제목이 정말 이렇습니다)를 추천합니다.

마늘빵 2007-03-2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파니핑크 좋아라 합니다. 알려지지 않은 동일명의 밴드도 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음악은 참 좋습니다. 쥬드님 말마따나 나 이뻐, 도 보고 싶어지는군요. 그건 몰랐는데.

stella.K 2007-03-23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에요. 맨끝에 저리 쓰신 걸 보니 2탕도 있나 보죠? 흐흐.

비로그인 2007-03-23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진의 남편 고르기. 궁금해지네요^^

Mephistopheles 2007-03-24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도 재출시된다죠..호호호

mong 2007-03-24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봄과 함께 등장하셨군요!
시핑뉴스....기대중이어요 ^^

플레져 2007-03-24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드님, 원제가 매력적이지만 너무 많은 걸 노출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ㅎㅎ
도리스 되리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감독이고 소설가여서
나 이뻐? 는 완전 소중 소설집 중에 하나여요 ^^ 다른 정보도 있음 갈쳐주세요.
되리의 다른 책들이 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아프락사스님, 밴드 파니 핑크라... 참 괜찮은데요? 저는 만약 분식집을 차린다면 파니 핑크, 라고 하려고 했었어요 ㅎㅎ 나 이뻐, 강추에요.


스텔라님, 잘 지내셨죠?
2탄은 안쓸래요. 동하면... 쓰겠지만 ㅎㅎ


바랍난책님, 음... 좋아하실 거에요.
하진의 다른 소설집 <피아오 아저씨의 생일파티> 도 추천해요.


메피스토님, 어. 그 영화는...처음 들어요. 호호 ^^;;


몽님, 아휴. 너무 오랜만이네요.
참 신기해요. 어제 몽님 생각이 나더라구요.
이렇게 만날거라는 선몽(?) 이었나봐요 ㅎㅎ

2007-03-26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owup 2007-03-26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 프루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전 좀 설렁설렁 읽었나 봐요.
생각만큼 깊은 감동을 못 받았거든요.
그냥 내 수준이려니 생각하면 되는데.
다른 사람의 리뷰들을 읽다 보면, 그리고 따옴표에 묶인 문장들을 보면
제가 엉터리로 읽은 게 좀 아쉽더라구요.
언제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파니핑크]는 우리(?) 또래의 여자들에게 사랑에 관한 복음서가 아니었나 싶어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사랑의 출발점을 알려 주는.
플레져 님은 이병률 씨 글을 꽤 맘에 들어해요. 그죠?
덩달아 들썩.
하진이나 쑤퉁처럼 최근에 소개되는 중국 작가들 책을 좀 읽어봐야겠어요.

2007-03-26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6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daytripper 2007-03-28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니 핑크 출시 소식, 완전 감동입니다.. 덕분에 장바구니에 넣습니다.. 감사합니다..
참, <나 이뻐> 강춥니다.

플레져 2007-03-28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른거리님, 파니 핑크와 나 이뻐의 팬들이 많아서 반갑습니다 ^^
 

벚꽃이 피었네

 

벚꽃이 피었네 연한 붉은 색으로 물든 거리
고개에 피었네 멀리서 종이 울리네

남자는 칼을 휘두르며
여자를 위해 오늘밤도 목을 벤다
사랑은 끝없는
고독일 뿐

벚꽃이 피었네 어슴푸레한 봄 안개
새가 흐느껴 우네 사랑하면 마음이 들뜬다고

남자는 불안해서 미쳐 날뛰고
여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나머지
만개한 꽃 아래의 두려움과 닮았네

벚꽃이 피었네 지옥 괴물의 거리
시체가 비웃네 목숨이 아까운 게지 하고

벚꽃이 흔들리네 바람 한 점 없는데
주르르 넘친다 피에 물든 비녀

활짝 피거라 꽃잎은 춤추듯 떨어지고
손바닥이 꽃이 된다
동정 원망
그 가슴에 상처를 주고 싶다
흐드러지게 피고 춤추듯 낙화하고
이 몸 바람이 되네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사람의 목숨도 진다

벚꽃이 피었네 온 세상을 뒤덮었네
벚꽃이 졌네 아무 것도 남지 않았네


가사 : 다카라노 아리카
작곡 및 편곡 : 히사이시 조
보컬 : 마이

  명절 연휴, 이쁜 동생에게서 선물 상자가 도착했다. 
  지난 계절을 한몸이 되어 보냈던 동생. 본 지 참 오래됐구나 싶다.
  가까이 있으나 동생도 나도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막 사랑에 빠진 그녀의 시간을 아껴주고 싶었다고 하면... 믿어줄까?
  나 또한 갑자기 분주해진 일상이라, 다급해진 일상이라 간혹 문자로, 메신저로 안부인사를 해왔다. 맛난 초콜릿 두 상자와 함께 배달된 히사이시 조의 두 장의 앨범. 
문득, 동생이 보고싶다. 메신저로 불러내 아무 얘기나 하고 싶어진다.

음악만 듣다가 해설집을 읽는데, 거기 써 있던 저 가사. 가사를 읽는데 마음이 막, 막, 메어지더라.
그 소설, 사카구치 안고의 "벚꽃 만발한 숲 아래" 가 퍼뜩 떠올랐다.   
해설집 안쪽을 뒤적이자 과연, 사카구치의 소설을 읽고 감동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이라고 한다.

평온한 선률 사이로 哀 가 흘러나오는 음반이다.
가만가만 듣고 있으면 김사인의 시처럼 '가만히 좋아하는' 그 무엇이 될 것 같다. 
누구에게도 그런 존재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다는 자책은 어느 통로에서 나왔는지.
마음에 놓여진 여러 갈래의 통로들이 삐걱인다.
헤어진 연인 있거든 이 음반은 피했으면 좋겠다.
아니, 너무 명랑한 제 자신을 숨기고 싶을때 들어도 좋겠다.
차분하고 고요한, 고요하나 망가진 마음만 피하면 좋겠다.

곧, 벚꽃 피겠다.
그 가슴에 상처를 주고 싶은 맘, 이라... 어찌 이리도 내 맘을 잘 표현했을꼬. 허허허. 

상처를 주어도 갈라지지 않는 얼음짱이 문제인지
상처주는 기술이 부족한 탓인지.

설령, 벚꽃이 져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해도
벚꽃이 피어야하겠지. 그래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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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달 2007-02-2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예요. 플레져님 ^-^

물만두 2007-02-2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부터 따끔거리게 하심 어쩌라구요^^;;

2007-02-21 1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1 18: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07-02-2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동네인가 싶었는데,,,,벚꽃 소식은 좀더 기다려야겠네요.^^

Mephistopheles 2007-02-2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사가...너무 살벌해요...(약한 척)

플레져 2007-02-2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달님, 안녕 ^^ 해피뉴이어!


만두님, 봄이 오면 그때 생각해 보죠 모 ^^;;


사진의 장소는 창경궁, 2년전 사진이네요, 속삭님...ㅎㅎㅎ
기억력은 좋으신데 사진 장소만 틀리셨습니다 ^^
히사이시 음악을 영화 볼 때만 듣다가 찬찬히 감상하니 참 좋드라구요.
낭군님의 감수성이 짐작이 가네요.


잉문공부장관님, 벚꽃 좀 늦게 피우라 해주세요,
아직 봄이 오면 안될 것 같아요.


메피스토님, 약한 마음 착한 마음? ㅎㅎ
살벌한 것이 사랑인지도...

2007-02-22 1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3 0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4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8 0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8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2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3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5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05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1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1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3-21 2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아. 세상에.
  나왔구나, 나왔어! 
  나른한 일요일, EBS 세계의 명화에서 보았던 영화. 
  텔레비전 앞을 지나던 찰나였는데, 주저앉아 보고 말았던 영화.
  그날의 화창했던 날씨가 떠오르는 건
  영화의 모노톤 색채때문일지도 모른다.
  컬러 영화인데 나는 갈색 모노톤으로 기억하고 있는 영화.
  폴란드의 베로니카, 프랑스의 베로니카.
언뜻 마주쳤다 헤어지는 두 베로니카는 어릴때 상상했던 외계의 나라와 같은 구조였다.
소년중앙, 에서 보았던 얘기는 이렇다. 내가 이곳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나와 닮은 한 아이가
달나라 토끼의 마을쯤에서 캡슐 안에 들어가 책을 보고 있다고.
나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지만 그 아이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캡슐에 입력된 무엇으로 인해 절로 책장을 넘긴다고. 책장 하나 넘기는 것조차 수고롭게 느껴졌던 건 아닌데, 나는 그 아이가 무척 부러웠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내 안에는 나와 같은 아이가 마뜨료쉬까처럼 들어있는데
내가 잠든 사이 이탈하여 그날 내가 저지른(?) 일들을 구경한다고.

키에슬롭스키의 영화 중에서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 과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소장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들뜨게 만드는 영화.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훔쳐온 책. 
  21일에 내게로 올 예정.

 

 

 

  사유의 열쇠, 김성곤.
  영화 관련 철학 서적을 펴낸 저자의 책 이후로 오랜만에 읽는다.
  21일에 내게로 올 예정.  

 

 

 

  바람에 휘날리는 비닐시트, 모리 에토.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이 늘어났다.
  그중에 한 사람. 기억해야 할 작가, 모리 에토. 
  나오키상 수상집이고 세 편을 읽었는데... 뭐라 말 할 수 없는 통찰력에 감탄.
  아주 일상적인 소재를 소설화 시킨 것도 장점이지만
  역설적으로 소설이란 이런 것, 이라고 말하고 있다. 
  울컥하는 건 왤까.

 

  죽이러 갑니다, 기쿠다 미쓰요.
  대안의 그녀, 이후 그녀의 팬이 되버렸다. 
  죽으러 갑니다, 가 아니라 죽이러 간다니 웬지 안심.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21일에 내게로 올 예정.

 

 

  빠지다, 가와카미 히로미.
  나카노네 고만물상의 그 작가. 
  얼핏 이러저러한 구조, 라는 건 알겠다.
  그 깊은 의미와 사유는 조금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역시, 빠지게 만든다. 
  나머지 이야기들이 남아있다.
  아껴 읽는 중.
  그 분께 선물 받은 책.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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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2-15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 둘..명화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는 DVD가 점점 많아지더라구요..^^
(덕분에 지갑 털리는 부작용도 발생하지만요..ㅋㅋ)

플레져 2007-02-15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가운 소식이라 흥분했어요 ㅎㅎ
기다리다 지쳐서 잊어버린 목록들이 있는데 (왜 메모를 안했을까!)
제 기억력을 복원시켜줄 겸 빨리 출시 되었음 좋겠어요.
(아..지갑..)

2007-02-20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2-21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7-02-2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이러 갑니다는 지금 읽고 있답니다.
좋던데요?^^

플레져 2007-02-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저두요! ^^

DJ뽀스 2007-03-02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20살 즈음에 프랑스 문화원에서 봤던 베로티카의 이중생활
그 충격은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네요 ^^:

플레져 2007-03-0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스님, 어제 드디어 이 영화를 봤답니다.
다시 보면서... 참 묘했던 것은,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그장면, 베로니카와 베로니끄가 만나는 그 장면에 대한 느낌이 참 다르더라는 것이었지요. 제게는 커피색 모노톤으로 새겨진 그 장면이 그렇지만은 않았더라는 것... 물론 화질의 차이는 있겠지만 ^^;; 좋았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미미달 2007-04-04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이러 갑니다' 앞에 '지금'이라는 말 붙이지..... 라는 이상한 아쉬움 -_ - ;;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내 나쁜 몸이 당신을 기억해
온몸이 그릇이 되어 찰랑대는 시간을 담고
껍데기로 앉아서 당신을 그리다가
조그만 부리로 껍데기를 깨다가
나는 정오가 되면 노랗게 부화하지
나는 라벤더를 입에 물고 눈을 감아
감은 눈 속으로 현란하게 흘러가는 당신을
낚아! 채서!
내 기다란 속눈썹 위에 당신을 올려놓고 싶어
내가 깜박이면, 깜박이는 순간 당신은
나락으로 떨어지겠지?
내 이름을 길게 부르며 작아지겠지?
티끌만큼 당신이 작게 보이는 순간에도
내 이름은 긴 여운을 남기며
싱싱하게 파닥일 거야

나는 라벤더를 입에 물고
내 눈은 깜빡깜빡 당신을 부르고
내 기다란 속눈썹 위에는
당신의 발자국이 찍히고

 

    詩 박연준

 

 

 

 


***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등단작인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을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어찌 이리 귀여울꼬.
어찌 이리 앙증맞고 기발할꼬. 게다가 푸릇한 나이라니!

시인의 시집은 덜 여문 열매처럼
막 동그라진 꽃봉오리처럼 설익었다.
파닥파닥한 기운도 펄펄,
정제되지 않은 (혹은 정제, 를 거부하는) 시어들과 은유들, 이미지들.

시인은 1980년생.
시인의 말은 넘치는 젊음과 끼가 포진해 있다.


■  시인의 말

스물다섯 때, 시가 몸살나게 좋았다.
그랬으니 신생아처럼 하루 스무 시간 잠으로 보내는, 아버지 발아래 엎드려 자꾸만 연필을 들었다.
나는 아버지의 시든 발목, 혈관 깊숙이 빨대를 꽂아, 공들여 시를 뽑아먹었다.
시를 뽑아먹을수록 나는 통통해지고 아버지는 아무렇게나 툭, 툭, 부러졌다.
그게 마음이 아프다.


정말 신이 나서 쓴 시들이라는 걸 금세 눈치챈다.
덤블링, 공중곡예는 기본.

두번째 시집은 어떤 모양일까.
비명이 아닌 속삭임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게 될지도.
부디, 그 파닥거리는 신선도는 유지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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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7-02-06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플레져님.....제목만 보고 화장품 부작용을 연상....한.....저는.....ㅡㅡ;;;;

플레져 2007-02-06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ㅎㅎㅎ
그렇네요, 그게. 정말...ㅎㅎ

물만두 2007-02-0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눈썹이라... 읽어보고 싶네요^^

비로그인 2007-02-06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거의 모르지만, 읽고는 갑자기 `좋구나' 싶었어요.

2007-02-06 1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7-02-06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예뻐요. 어쩐지 관심이 가는걸요. :)

땡스투가 적립되면 저인줄 아세요. 호홋 :)

Mephistopheles 2007-02-06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0이 훌쩍 넘은 지금 여전히 시하고 친하지 않은 메피스토...^^

2007-02-13 1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