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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전하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평점 :
* 큰 따옴표 안의 문장들은 전부 본문/작가노트/해설 내 인용구입니다.
한 개인이 지금까지 경험한 각종 에피소드를 마구 끄집어내게끔 하는 작품들은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고 텍스트에 자신의 인생을 반영하게 해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도 그러하다. 가까이에 존재할 법한 인물들, 독특하고 유일한 캐릭터지만 어쩐지 누군가의 옆에 분명 있을 이들을 등장시키며 기억 저편 속에 한 번쯤 느끼고 겪어봤을 상황들이 서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 몇가지 단편들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인상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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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영, 그녀는 조명등 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세상에서 혼자만 늙어가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하는 대학교에서 근무하며, 본인이 그 캠퍼스를 거닐던 시절 “영원히 졸업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나이 많은 학생” 같던 교수 장 피에르를 떠올린다. “특권층만 가질 수 있는 우울감”으로 청춘을 오래도록 애도하며 그리워하던 장 피에르. ‘나’는 “아직 노트르담이 불타지 않았”던 파리에서 절친한 연수와 소원해지며 경멸감과 상실감, 질투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처럼 불쾌하게 공존하며 결국 존경심으로 엮여버린 감정은 코너에서 멀어져가는 두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에서야 “나를 키운 것이 나를 모욕하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점차 사라져간다.
어쩐지 실패한 동경의 미래 같은 이 단편은 그 나이대라면 흔히 가져봄직한 짝사랑을 나열한다. 둘도 없는 친구를 잃고 싶지 않고, 멋있는 선생에겐 특별하게 사랑받고 싶은 제자의 마음을 잔잔하고 냉정하게 전시하며 추억 속에 묻어뒀던 얼굴들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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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멜라, 나뭇잎이 마르고
과연 이 세상엔 사회의 비정상성에 의해 거절되고 애써 무시했던 관계들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만약 체가 남자였다면, 혹은 좀더 평범한 여자였다면 다르게 말했”을 지 스스로 반문하는 앙헬은, 지금 이 사회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장애물을 그제야 짚어본다. 사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술 좀 작작 마시라”는 핀잔에 담긴 의미는 더 이상 서로의 취한 모습을 보여주지 말자의 뜻을 표방하면서, 어떻게 보면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주로 취하는 술과 담배를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보다 과도하고 아무렇지 않게 해대는 체에게 애써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란 걸. 자신에 대한 헌신을 굳이 모른 척하진 않았지만, 본인도 딱 그만큼만 보답해왔다는 걸. 아슬아슬한 둘의 관계는 마지막 문단에서 종지부를 찍는다. 앙헬이 빈 잔을 채우며 권해도 거절하는 체. 체는 이제는 더이상 좋아하는 감정을 채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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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형,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게임처럼 자식의 인생도 단계를 차곡차곡 밟아 퀘스트-보상 프로세스로 키우려는 ‘극성맘’이란 위치는 “남성 주체가 되면 적어도 여성인 성인에게는 맞설 수 있다는 위계를 배운” 아들과 그 또래 친구, 과외 선생이랍시고 찾아온 대학생의 만행을 한 번에 납득하지 못한다.
“플레이어인 내가 주입하지 않은 자기만의 의지와 욕구가 캐릭터에게 있다는 것을 감지할 때의 공포를 상상”했단 점에서 이 글은 영화 <프리가이>를 떠올리게 한다. “자기 극복의 퀘스트와 보상의 문제”가 “성장과 경쟁”이란 잘못된 전제를 기본 원리로 두기 때문에 개발자와 엄마의 시선은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건형은 어느정도 뻔할 뻔한 내레티브를 “중산층 기혼 여성 보호자”란 젠더적 변수를 이용해 캐릭터가 기획 의도와 다르게 엇나가는 점 및 오히려 창조자를 유희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현대의 오락문화를 꼬집고는 이를 깨부시지 않고 서사를 마무리한다. 그렇기에 한없는 모성애의 주체자로 칭송 받아 온 엄마란 존재를 단순히 XX란 이니셜로 치환하며 지워진 건 승자의 영광과 기분 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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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제, 0%를 향하여
영화에 대한 애착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관에서 느꼈던 공기가 몸 어딘가에 박혀있을 것이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사람들. 나와 한 공간에 있다가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된 사람들. 또 만났지만 또 만나더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
몇 년 전 여름의 뉴욕을 여행할 때 하루종일 비가 와 아무것도 할 수 없자 친구들과 브로드웨이의 어느 극장에 갔던 때가 기억이 난다. 양 손으로 안아야만 들 수 있었던 사이즈의 팝콘통, 거의 드러눕다시피 앉아야 했던 오래된 관람관, 자지러지게 웃으며 스크린 속 주인공에게 ‘Good Boy’란 칭찬과 더불어 엄지를 치켜올리던 옆자리 뚱보 아저씨. 자막조차 나오지 않던 원화라 20% 이상은 못 알아들었지만 그때의 유쾌한 분위기는 아직까지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런 적도 있다. 중학교를 다닐 때 쯤 엄마의 손을 잡고 대구의 독립영화관 ‘동성아트홀’에 방문해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보다 까무룩 잠들었던 토요일 정오. 그리고 그곳의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 운영 유지 여부가 불투명하단 소식을들었을 때의 뒤숭숭함. 그 무렵 CGV에서 주최한 반지의 제왕 3부작 무비올나잇에 기껏 참여해놓고는 하품을 쉴 새 없이 하다 나오던 새벽의 찬 기운. 누가 영화 얘기만 하면 애가 재밌어서 어쩔 줄 몰라했다던 어린 날의 나.
그때 나와 한 공간에서 호흡하고 같은 순간에 동질감을 느끼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유명해지면 유명해져서 머물 수 없었고, 유명하지 않으면 유명하지 않아서 머무를수 없”는 곳에 있지는 않는지. 안부가 궁금하다. 다들 잘 지내시죠?
7편의 작품들을 연달아 읽다보니 요즘의 한국 문학계는 의도적으로 다양성과 소수자성을 품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는 듯하다. 이걸 모아서 시상하고 펴냄으로써 일각에서 나온 비판을 흔쾌히 수용할 정도로 문집을 관통하는 주제가 끝내주게 좋았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기술된 문장의 질을 우선 따지기보다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배치된 구성과 페르소나가 연속해서 이어지며 피로감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그만하라거나, 지겹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보편적으로 배부한다고 당연스레 익숙할 수 있는 시기가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앞서 서술했다시피 개인의 경험을 반추하게 하는 독서 경험은 충분히 환영한다. 그렇게 곱씹다보면 고개를 끄덕이느라 머리에 힘을 주지 않아도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러워질 날은 반드시 올 거니까.
대학교란 참 이상한 곳이었다. (...) 학생들과 나란히 언덕길을 오를 때마다 나는 세상에서 나 혼자만 늙어가고 있다는 기분에 사로잡혔고 (...) - P13
저런 우울감은 특권층만 가질 수 있는 거라고. - P23
아직 노트르담이 불타지 않았고, 배는 침몰하지 않았고, 방사능 오염도 없었으며, 북극의 빙하에도,내 인생에도 약간은 희망이 있었던 그런 시절. - P45
가까운 친구 이상의 무엇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지? 그러니까 관계 증명을 위해서라도 섹스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P129
당신은 계속해서 대화창에 엄마를 입력한다. XX. XX. XX. XX. - P230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나는 사람들. 나와 한 공간에 있다가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된 사람들. 또 만났지만 또 만나더라도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사람들. 몸짓들. 오직, 잔상으로만 기억될 얼굴들. - P282
유명해지면 유명해져서 머물 수 없었고, 유명하지 않으면 유명하지 않아서 머무를 수 없었다. - P284
공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고, 입김은 그걸 알게 해주잖아요.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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