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각본
박찬욱.정서경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영화 <헤어질 결심> 스포일러 주의!

정확한 대사가 다분히 인용되었으며, 장면에 대한 설명과 감상이 적나라하게 이어집니다.



극장에서 영화의 완성본을 보는 관람객은 영화를 ‘영상’으로 인식한다. 움직이는 인물들, 지나가는 풍경, 흐르고 머무르는 말소리, 잔잔하게 깔리는 배경음악.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엮여 창조되고 편집된 영상 한 편을 온전하게 구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어떤 대상을 촬영하여 영사기로 쏘는 이 ‘영화’란 기록물은 촬영물이기 전에 글의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주로 관람하는 영화들은 각본, 콘티, 스토리보드 등을 반드시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인지 그걸 처음 안 사람처럼 <헤어질 결심 각본>을 읽었다. 영화를 좋아하긴 해도 전공자도 아니고, 나름의 평론을 쓸 만큼 전문성도 있는 게 아니어서 차려본 예의라고는 재관람밖에 없어서 그랬나. 예전부터 시중에 출판되고 판매되어 온 각본이 많단 걸 분명히 알고는 있었는데, 왜인지 그걸 이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숨겨진 감정선들, 미묘하고 사소한 묘사와 표현들. 배우의 연기만으로는, 감독의 연출만으로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들이 비하인드 인터뷰나 코멘터리 같은 동종의 매체가 아닌 수단을 통해 극장에 다시 찾는 것보다 더 많이 느껴지고 되짚게 되었다. 예를 들면 화가 나고, 심장이 찌르르하고, 끔찍한 동시에 사랑스러움을 나타내는 문장들. 그걸 알아차릴 수 있었던 부분들을 마음대로 몇 가지로 분류해보았다.




  • 각본에는 이유가 적혀있다.

    • 바람에 머리칼이 엉망. 말소리도 자꾸 흩어지니 크게 외치는 수밖에. / p.8
      • 세찬 바람에 등장인물의 머리칼이 헤쳐지고, 목청을 돋운다면 관객은 별다른 생각 없이 ‘아, 바람소리 때문에 잘 안 들리는구나’라고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각본에는 이유가 설명으로 적혀있다.
    • 사진을 이어서 보다가 어느 순간 못 참겠다는 듯 태블릿 PC를 돌려놓는 서래. / p.19
    • 벌떡 일어서 의자와 테이블을 거칠게 차 버리는 수완. 서류들이 바닥에 흩어진다. 테이블이 없어지자 벌겨벗겨진 기분이 드는 지구. 가랑이를 오므린다. / p.49

  •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감정이 기인한 까닭을 별달리 설명하지 못하니까.

    가벼이 지나가거나 캐릭터의 성격이나 특성에 따라 자연스레 나온 것만 같은 장면들도 사실은 의미가 있다. 의문스러웠던 태도나 동작을 마침내 제대로 바라보고 속사정을 파헤쳐보게 된 기회.

    • 미세하게 끄덕. 그 단호함에 깊은 인상을 받은 해준 / p.18
      • 단호함 때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단 걸 알아챌 수 있는 관객이 얼마나 될까?
    • 노동으로 너덜너덜해진 반창고를 보란 듯이 휙 떼어내는 서래. / p.35
    • 거울 앞에서, 저 예의 바른 형사는 뭘까. 저 맛있는 초밥은 뭘까. 의문을 지워 버리려는 듯 열심히 이를 닦고 헹구는 서래. 방수 밴드 꺼내 상처 부위에 조심스럽게 붙인다. 갸웃하더니 향수를 꺼내 귀 뒤에 뿌리고는 밴드 위에도 살짝 뿌리고 가만 들여다본다. 정말 방수가 되나 시험해 보듯. / p.42~43
    • 왼쪽 가슴에 손을 얹는 해준. 심장이 찌르르. / p.57
    • 운전하는 해준. 화가 났다. 아내한테 거짓말을 해서. 안개 때문에 더 빨리 갈 수 없어서. / p.62
    • 오른 층계 ― 138층. 절망감에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 p.105
    • 당연히 해준 옆자리로 가 앉는 서래. / p.107
      • 당연한가? 서래의 치기처럼 보일 수 있었던 행위가 사실은 당연했다.
    • 당신을 끌어안고 행복하다고 속삭인 일이요? (’행복’을 언급해 놓고는 더 화가 나) 내가 품위 있댔죠? / p.109
    • 해준 엄마한테 전화 좀 해, 말 안 해도 기다리셔. 하주 (그 거짓말에 웃다가 엄마 핑계 대는 아빠 맘 알아채고) 아빤 별일 없으세요? / p.110
    • 고급 옷에 보석을 착용하고 화장한 서래, 해준을 보고 당황하지만 그 부부가 다정한 것을 보고 재빨리 호신의 손 찾아 잡는다. / p.124
    • 해준이 무안해하거나 말거나 무표정으로 천천히 팔을 들어 옷장을 가리키는 서래. / p.135
    • 서래 (사태의 심각성을 잘 파악 못한 듯) 삼 일 있다 관광 가이드 일이 있는데 그때까진 풀려날까요? 어이없어 하는 해준. 체포 처음 해 보는 형사처럼 ‘다음 절차는 뭐더라……?’ 생각하다 수갑을 꺼내면서 한 발짝 다가간다. / p.143
    • 해맑은 서래 표정에 당황하는 해준, 굳었던 결심이 도로 무너지려 한다. / p.166

  • 사랑에 빠지고 파괴되는 과정의 서술

    영화를 볼 적에는 해준과 서래가 갑작스레 사랑에 빠지고, 돌연 밀어내는 듯한 인상을 받았는데, 각본을 짚다보니 꽤나 초반부터 적나라하게 감정이 드러나는 부분이 더러 있다. 뺨을 붉히거나, 눈이 부신다던가 하는 표현들은 글 속에만 존재할 수 있고 영화 속에서 티나게 드러난다면 자칫 촌스러울 수 있어 잘 알아채지 못 했던 것 같다.

    • 크게 숨을 들이쉬어 체취를 맡으며 뺨을 붉힌다. / p.32
    • 서래, 처음으로 해준을 향해 미소를 보낸다. 해준. 잠시 눈이 부시다. / p.39
    • 수사기록철로 얼굴을 가리고 코를 벌름거리며 향수 냄새 맡는 해준, 돌아온 결혼반지를 본다. / p.43
    • (싱긋 웃는 서래를 보면서 심장이 또 찌르르 하지만) 어디 뒀어요, 펜타닐? / p.66
    • 서래에게 문자한다. ‘자요?’ 답 기다리는 해준 뒤로 이층에 불이 켜진다. 마당의 해준을 내려다보는 정안의 실루엣, 해준은 못 본다. 알림음이 들리자 재빨리 확인하는 해준. ‘어이, 불면증. 내 차도 부탁(부탁하는 이모티콘)’ 정안에게서 온 문자다. 놀라는 해준, 돌아본다. 창가에 선 정안을 향해 엄지척 해 준다. 손 흔들고 사라지는 정안, 이층 불 꺼진다. 큼직하고 더러운 정안의 차를 돌아보는 해준. 쩝. 문자 도착 알림음에 또 놀란다. 이번엔 서래. ‘병원. 화요일 할머니가 위독하세요ㅠㅠ’ (…) ‘그럼 월요일 할머니는요?’ ‘아, 걱정이에요.’ ‘내가 가 볼까요?’ ‘정말요?’ ‘잠 못 자 죽어가는 형사보다 산 노인이 중하지 않겠습니까.’ (…) 한숨 쉬는 해준, 양동이의 물을 정안의 차에 확 끼얹는다. / p.95
      • 아내 정안의 부탁엔 ‘쩝’ 하고 못 내켜하곤 대충 물을 확 끼얹더니 서래의 문자엔 되려 나서다.
    • 서래 여보, 그 형사님이셔, 나 의심했던. ‘여보’에 마음 무너지는 해준. / p.125
    • 눈에는 눈물 가득. 해준은 그녀가 끔찍하다. 무시무시한 살인범임을 확신하는데도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감정을 꾹꾹 누르며 ― / p.133




이 밖에도 영화에 나온 몇몇 장면에 대해 풀이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었다.



당신이 먹으려고 살상하는 건 내가 뭐라고 못하죠. 근데 말이야, 내가 밥 주니까 고맙다고 선물을 하는 거라면 그럼 됐어. 진짜로. 나에게 선물이 꼭 하고 싶다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난 좀 갖고 싶네. / p.57

  • 서래는 매일 아침 먹이를 주던 고양이가 고마움의 표시로 까마귀를 물어오자, 중국어로 고백한다. 그러면서 땅에다 그 사체를 묻는데, 결국 나중에는 자신도 모래사장에 묻힌다. 해준에게 주는 선물일까. 선물을 묻어버리니까.


우리 팀장님이요, 이렇게 호구 같아 보여도 사실은 무서운 분이에요. 다음에는 서래님 꼭 잡으실 거예요. 다음 남편 죽일 땐 조심하세요. / p.78

  • 다음에는 꼭 잡을거란 수완의 지나가는듯한 말을 기억하고 다음 남편을 죽인걸까. 그렇게라도 해준을 보기 위해서.


바다로 가요. 물로 들어가요. 내려가요. 점점 내려가요. 당신은 해파리에요. 눈도 코도 없어요. 생각도 없어요. (중국어로)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아요. 아무 감정도 없어요. 물을 밀어내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밀어내요. 나한테. 내가 다 가지고 갈게요. 당신한텐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 p.87~88

  • 영화는 산에서 시작해 바다에서 끝이 난다. 아마 기폭제가 된 건 서래의 자장가. 증거는 녹색으로 보였다 파랑으로 보였다 하는 서래의 드레스. 결국에는 해준의 죄책감이나 불명증 같은 모든 것을 서래가 가져갔구나. 저 깊은 바다로.


테라스 / 서재 ― 정안 집 (밤) 파도 소리 들리지만 안개 탓에 바다는 안 보인다. 그래도 바다를 향해 난간에 기대선 해준. / p.60

호미산 앞 주차장 (밤) 바람에 실리지 않고 천천히 떨어지는 눈, 이포와는 달리 사물이 선명하게 보이는 맑은 공기. / p.163

  • 처음에 해준이 기도수를 발견한 비금봉에서는 해가 떴다가 안개로 사라졌고, 이포에서는 자욱한 안개가 걷힐 줄 모르고, 호미산은 눈이 와도 공기가 맑다. 그러다 ‘서래 나는 왜 그런 남자들하고 결혼할까요? ……해준 씨 같은 바람직한 남자들은 나랑 결혼해주지 않으니까. (’바람직한’ 대목에서 어처구니없어 픽 웃을 수밖에 없는 해준)’이란 대목이 나온다. 서래에게 ‘바람’직한 남자가 안 와서 이곳 호미산에는 바람이 안 부나. 모든 게 말장난이다.




나는 이제 안다. 어떤 영화가 너무 좋아서 각본까지 찾아 읽는다면, 그 사람은 장시간의 고민과 무수한 인력의 협업과 노력끝에 만들어진 작품의 토대를 (아마 감독이나 각본가의 사소한 생각까지) 한층 한층 살펴보고싶단 의미라는 걸. 영상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읽어야했단 사실이 참 묘하다. 아마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단 점이 공통점이 있어 그럴까.

처음 영화를 보고 나올 적에는 꽤 잘 만들어진 영화이고, 평균 별점이 높을 수밖에 없지만 최고점은 못 주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각본을 읽고 나서는 이 영화가 좋아 죽을 것 같았다. 한동안 얼핏 읽고 넘어간 대사가 머릿속에 한참을 맴돌아서 몇 번을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종지에는 다시 한 번 극장을 찾았지만 (그것도 영자막을 함께 상영해주는 곳으로) 각본을 읽을때만큼의 감동을 받진 못했다. 찾아보니 표현의 유연성이 없고 고정적인 문자언어와 감각적 판단에 따라 자유롭게 해독 가능한 영상 언어의 차이라는데, 결국 이 두 가지가 모두 섞여 호감도를 급격히 올렸단 사실이 색달랐다. 똑같은 시각자료더라도 정보 처리 속도가 감상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한가보다. 또 기회가 된다면, 좋아하는 영화의 각본을 찾아 더 다채롭게 사랑해봐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스에프널 SFnal 2022 세트 - 전2권 에스에프널 SFnal
켄 리우 외 지음, 조너선 스트라한 엮음, 장성주 외 옮김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스에프널(이하 SFnal)은 편집자 조너선 스트라한이 한 해 동안 출판된 SF 단편 소설 가운데 몇 개의 수작들을 한 권에 모은 결과물이다. 작년, 그러니까 2021년에 시리즈의 첫 번째 판이 나왔으니 이 거창한 결과물은 일종의 따끈따끈한 신간 잡지라고 볼 수 있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이 전집의 존재를 처음 알게된 건 올해 6월에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이하 SIBF)에서였다. 어마무시한 인파를 자랑하며 성공리에 마무리된 박람회는 사실 공간의 구성과 크기 외에는 작년과 별반 다를 게 없었으나, 그곳에서 흥미로웠던 곳을 꼽자면 독립출판사 협동 부스를 제외하곤 SF 출판사들이 거의 유일했었노라 결론지을 수 있겠다.
그도 그럴게 어렸을 적부터 <스타워즈>, <스타트렉>, <백 투 더 퓨처>, <쥬라기공원>, <매트릭스> 등과 같은 영화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SF를 좋아할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밝히자면 아무래도 나의 특성, 그러니까 공학도란 특성에 꽤나 긍지가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어떤 주제가 튀어나와도 나름의 세월간 학습된 이해도와 분석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남들에 비한다면 장르 소설에 거리낌 없는 편이 아닌가 항상 넘겨짚어왔다.
그래서 SIBF에 어김없이 참여한 출판사 ‘허블’ 부스에 우연히 들렀다가 낮과 밤의 아름답고 현대적인 도시를 표현한 표지에 넋이 나간 건 어쩌면 이치에 가까운 일이었다. 뒤이어 사로잡힌 건 당연하게도 크게 인쇄된 소개글.

“SF 팬을 위한 가장 환상적이고 눈부신 수작!” 
“SF 마니아를 위한 가장 도전적이고 강력한 문제작!”

유혹적인 문구와 함께 끝없이 펼쳐져있는 두 권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자 상주하던 직원은 이때다 싶어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고, 평소 같으면 흔한 홍보로 치부했을 그 감언이설은 어쩐지 더 마음속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곧바로 6월과 7월의 독서모임 대상 도서로 선정하게 됐으니까.
반기의 전환점이자 (언제나 갱신되는 듯한) 예년보다 무더워진 더위는 많은 사건들을 만들었고, 이런 시기에 SFnal을 읽는동안 어쩌면 SF 소설을 이렇게나 각 잡고 읽은 건 거의 처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물론 어디서 주워 듣고 흘겨본 것들이 많아 한 번쯤 봤을만한 인상이 드는 단편도 있었고, 지니고 있던 자부심이 누추할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도 분명 존재했으나, SF 소설에 입문하고 싶은 사람이나 한 해의 추이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훌륭하게 추천해줄 수 있는 책이란 총평을 시작으로 우선 첫 번째 판에 수록된 작품들에 대해 짧은 감상문을 써볼까 한다.


1. 인간과 협업하는 모든 AI가 명심해야 할 50가지 사항, 켄 리우 (★★★★)
‘머신 러닝 모델’이란 새로운 데이터를 분류하거나 특정 패턴을 찾기 위한 일종의 함수 혹은 프로그램이다. 여기서 SVM, kNN, 랜덤 포레스트와 같은 기법들을 하나하나 읊지는 않을테지만 중요한 건 이 ‘머신 러닝 모델’이란 것은 최적의 의사 결정과 예측을 수행하도록 훈련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학교에서 배운 바로는 그렇다.
그런데 “인간과 협업하는 모든 AI가 명심해야 할 50가지 사항”에 등장하는 WHEEP3은 분류, 인식, 변환과 같은 기능 외에 새로운 관념들을 생성해내는 데에 능력을 발휘하고, 심지어 (진위 여부에 상관 없이) 책까지 출판한다. 이런 창조에 가까운 행위는 우리가 이제껏 정의한 머신 러닝 모델이란 개념의 또다른 업적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인가?
작품에서 그려지는 WHEEP3의 파장은 최근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는 DALL-E(영어로 텍스트를 입력하거나 이미지를 삽입하면 알아서 그림을 생성해주는 AI)의 기능과 거의 유사해보인다.
그렇다면, 어떤 기계 혹은 프로그램이 인간이 고유하게 창작한 작품들을 본 떠 무언가 새로운 형태로 결과물을 창출해낸다면 이는 인간의 것, 혹은 인간으로부터 생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나?
이런 불안감과 공존하는 경외감은 한계를 뛰어넘는 세상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만들기도 하지만, 변화와 그 정체성의 지속에 대해 다루는 ‘테세우스의 배’를 떠올리게 한다.
‘테세우스의 배에서 낡은 판자를 하나씩 갈아끼우다 원래 배의 조각은 하나도 남지 않은 배1을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 낡은 판자들로 테세우스의 배와 똑같이 만든 배2가 있다면 이 둘 중 무엇이 테세우스의 배인가?’
비록 아주 짧고 대부분 어떤 정보의 나열뿐이지만, 수많은 철학적 고민을 던지기에 한참을 머리에 수놓으며 읽었다.

2. 우주로 간 인어, 이윤하 (★★) 
 떠나간 자가 돌아오는 이유는 언제나 하나로 귀결되는 듯 하다. 함께하기 위해, 공유하기 위해. 동화가 바탕이 되는 SF에 다양성과 기술이 존재함에도 이 근본은 변하지 않아 다행이다.

3. 근로 종족을 위한 안내서, 비나 지에민 프라사드 (★★) 
혹시 로봇 혹은 어떤 기계 장치 같은 무생명 동체끼리도 연애가 가능한건가요? ‘멘토십’을 가장한 사랑을 하여라. 강아지 좋아하는 xx 중에 나쁜놈은 없으니! 

4. 나는 마인더가 싫어요, 수전 파머 (★★★★) 
제목이 제법 유치한 것 치고는 품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 현대적이다. 이 시대에 필요한 쟁점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우리는 보아야하고, 들어야하고, 배워야하며, 이야기해야 한다. 그게 투쟁 끝에 얻어낼 수 있는 권리라 하더라도.
언젠가 누가 유명한 관용문인 ‘모르는 게 약인 행복한 바보’와 ‘아는게 힘인 불행한 천재’ 중 어떤 걸 선택하겠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나의 대답은 후자였다.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과 진짜 모르는 것 사이엔 큰 간극이 있다. 세상의 더러움도, 사람의 추악한 이면도 분노하며 넘어가야 한다면 제법 억울하다. 보다 지혜로워지고픈 욕망이 우선시 되어야 한단 말이 아니다. 단지 속은 채로 지내지 않기 위해, 좀 더 유연하고 여유로운 사고관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선 지식이 밑받침 되어야 한다.

6. 우리의 문제들이 자살합니다, 칼 슈뢰더 (★★★)
그들이 알아서 자각하고 삭제되길 갈망한다니. 그만큼 똑똑해진 세상 속에서도 근원을 해결해낸 사람은 없고, (대부분 피해자인) 투쟁자들만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게 해피엔딩 속에서도 착잡하구나. 

7. 스파클리비츠, 닉 울븐 (★★) 
AI가 소꿉친구가 되는 미래 세대는 마치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라 부르던 옛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한 공동육아에 대한 개념은 전혀 새롭지 않으나, 그 책임 분배가 미묘한 감정으로 분산되어 있는 게 괜히 보는 사람도 찝찝하게 만든다.

8. 그것은 크루든 팜에서 왔다, 맥스 배리 (★★★★★) 
트럼프는 그 어느 장르에서건 우습게 비유되는 게 끔찍이도 웃기다. 그것이 우주적 다양성과 미디어매스의 편파적 세뇌에 관한 얘기임에 더 그렇다.

9. 에어바디, 사밈 시디퀴 (★) 
작가는 증강현실(AR)이나, 가상현실(VR) 같은 기술이 아닌, ‘가상 슈트’라는 개념을 들먹이며 비록 전혀 다른 육체로 섹스를 해도 결국에는 사랑을 나눈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성별, 신체적 특징, 얼굴 등이 달라도 인간이 가진 정신이나 영혼이 어떤 특색과 개성을 분간해낼 수 있는 유일한 고유성이라는 뜻인데, 이에 비동의하는 행위가 어쩌면 정체화의 자유를 부정하는 일이라면 말을 더이상 아끼도록 하겠다.

10. 이 별들 너머에 다른 사랑의 시련이, 우스만 T. 말릭 (★★★) 
뒤죽박죽 어지럽고 불온한 마음들. 상대성 이론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최근 토이스토리에 기반을 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를 떠올리게 한다. 

11. [플라이트 X]를 찾아서, 니언 양 (★★) 
보물선을 찾는데에 집착하고 몰두하는 이야기는 이제와선 썩 진부한 것 주제인 것 같은데 최첨단 기술이 씌워지니 괜히 희망을 품게 된다. 

12. 아버지, 레이 네일러 (★★) 
인간과 기계의 유대 형성 가능 여부, 또 어떤 기계에 프로그래밍 된 내용은 어쩌면 완전삭제가 불가능하단 점을 들며 인간의 트라우마 및 기억 잔존과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싶었던걸까. 그런 의미에서 영화 <탑건>에서 톰 크루즈가 자신의 전투기코를 쓰다듬던 장면과 영화 <애프터양>이 보여주고 싶어했던 부분들이 상통했다. 

13. 타오르라, 또는 에피소드로 살펴보는 샘 웰스의 생애, A.T 그린블랫 (★★) 
그래. SF는 기계나 최첨단 기술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태초부터 특이한 세계관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발현했단 점에서 만화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와 유사해 보인다. 이런 작품들에서 우리가 가져가고 읽어야 할 건 다양성인가?

14. 소중한 실패, 리베카 캠벨 (★)
대체 뭔 얘기인지…. 수많은 사람, 장면, 나무, 시간대가 등장한다. 바이올린의 얘기인가. 추억과 깃든 정에 대한 세월인가. 







에스에프널(이하 SFnal) Vol.1이 보다 다채롭고 새로운 얘기의 묶음이었다면, Vol.2는 좀 더 지금의 우리와 맞닿아있는 글들로 엮여있다. 주제를 크게 보자면 문화, 인종주의, 다양성과 정체성, 자유와 권리 등으로 간추릴 수 있겠다. 이는 현시대에서도 충분히 복잡하고 걸핏하면 논의가 불거지는 사회 현상과 관념인데, 그것들을 미래주의적 관점으로 탐구했단 점에서 어쩌면 SF란 장르는 아예 허구의 세계를 그리는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장장 1천 페이지에 걸쳐 편찬된 28편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 어떤 굴레 속에서 돌고 있는 것만 같은 감상을 받았단 뜻이다.
무엇이든 많이, 또 오래 보면 그 패턴이 보이고 연출된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 책에 수록된 단 하나의 단편을 읽는 동안에도 여타 SF 소설, 드라마, 영화와 같은 작품들이 두세편, 많으면 5편 이상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러니 오늘날의 SF는 자꾸 무언가를 상기시키고 연결되어있다고 보면 되는 것일까?


1. 알약, 메그 엘리슨 (★★★) 
누가봐도 미국인이 쓴 글이지만 어쩐지 한국 SF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보일법한 주제이다. 그만큼 투명하게 읽힌다.
소재의 특성 때문인지 정세랑 작가의 단편 <리틀 베이비 블루 필>이 떠올랐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작은 하늘색 알약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해 만들어진 기억력 증진 약과, 임상 시험을 통해 검증된 비만 치료용 지방 세포 배출 약. 결국 후대 사회에서 변질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단 공통점에서 함께 읽어보면 좋음직할 글이다. 과연 '더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들이 정말 그 목적을 달성한 게 맞는지, 그 본질을 잊어버린 건 아닌지 짚어보면서.

2.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찰리 제인 앤더스 (★★)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에서는 ‘겔렛’의 촉수를 이식받으며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의 감각과 기억을 공유받을 수 있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쩐지 김초엽 작가의 단편 <숨그림자>와 닮아있다. <숨그림자>에서는 진화 인류의 원형 입자 언어, 즉 발성 없이 호흡으로 하는 대화란 장애물에 부딪히는 원형 인류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두 작품 모두 단절과 연결을 소통의 수단을 통해 묘사하고 있다. 

3. 오징어 퀴니가 클로부차를 잃어버린 사연, 리치 라슨 (★★★) 
역시 내가 아는 SF는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와 가깝기 때문에 새롭거나 놀라운 점은 없어도 읽는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사실 이런 글은 SF라고 분류되기보다도 일반 케이퍼물로 분류돼도 무방할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엔딩은 어쩐지 넷플릭스 스페인 드라마의 대표격인 <종이의 집> 1부의 스토리와 비슷했다.

4. 드론을 두드려 보습을 만들지니, 세라 게일리 (★★) 
제목의 기발함과 다르게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드론에 대입되었을 뿐이다.

5. 경이로운 랄피의 마지막 공연, 팻 카디건 (★★) 
이것이야말로 영화 <프리가이>의 악몽편. 초고교급 절망. 

6. GO. NOW. FIX, 티몬스 이사이아스 (★★)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면 귀여울 것 같다. <러브, 데스 + 로봇>의 다음 타자. 

7. 반짝반짝 빛나는…, 앨러스테어 레이놀즈 (★★★) 
어쩌면 우리는 로봇 속의 뇌? 인간 속의 로봇? 고전이다.
다만 흥미로웠던 것은 그 뛰어난 인공지능체와 프로세서들의 집합인데도, 인간을 완벽히 속이거나 흉내내기 위해선 장장 반세기가 걸린다고 설정한 부분이었다. 종지에는 로봇들 자체의 고유성을 포기해야 했던 것도. 

8. 배상금을 지불하는 방법: 다큐멘터리, 토치 오녜부치 (★★★☆)
기발하다! 정치와 인종주의와 알고리즘의 합작이라니. 당최 무슨 소린가 싶다가 엔딩크레딧 올라갈 때 비명질렀다.
“알고리즘에 해결책을 주문한다는 것은, 결국 인종주의가 논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과 관계에 따르는 조건문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요. 그래요, 물론 인종주의에도 그 나름의 내적 정합성은 존재하지만, 그건 악몽 속에서나 기능하는 논리입니다. 그 논증 과정은 자동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p.289)

9. 유창한 독일어, 매리언 데니즈 무어 (★★☆) 
인종의 얘기가 이어지는구나. 좀 더 기술의 활용성에 대해 서술하고 설득했으면 좋았을텐데. 이 작품에서 떠올랐던 서사와 캐릭터는 영화 <쥬라기월드>의 블루.

10. OSOOSI의 승천, 오지 M. 가트렐 (★★☆) 
신화와 고대신을 메타포로 이용하는 작품들은 그 설화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에겐 대게 짜릿할 것이다. “내 생명을 바치는 일은 쉽다. 진짜 문제는 부수적 피해다.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는 무고한 자의 희생이다.”(p.359)라는 문장에서 잘 드러나있듯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단 결과는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이 생각났다.

11. 노란색이 있는 현실, 모린 맥휴 (★★)
그래서... 뭐란 말인가? 인간의 제한된 인지 능력의 한계를 받아들이자? 동물학대를 금하자? 마치 ‘식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란 논쟁을 처음 접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12. 슈뢰딩거의 이변, 진 두셋 (★★★★)
물리 법칙과 철학과 서술 방식이 한데 융합하여 폭발한다. 서사를 짚으며 개념을 따라가고 관념을 깨부수고 의심하고 뒤집히는 경험은 더없이 새롭고 익숙하다.

13. 폭발하는 미드스트라스, 앤디 듀닥 (★★★) 
시간이 멈췄단 점에서 고대 로마의 도시 폼페이가 기억나고, 그런 중 신도들이 존재한단 점에서 만화 <대다크>가 떠오르며, 계층에 따른 공간의 분리가 있단 점은 애니메이션 <아쿠다마 드라이브>를 상기시키고, 거대한 폭발과 시간의 뒤틀림이 동시에 발생하는 점은 영화 <매트릭스4>가 생각난다.
공통적인 점은, 너무나 많은 작품들과 모티프가 한데 뒤엉킨다는 것. 엮여있구나. 우리의 세계는.

14. 바레인 지하시장, 나디아 아피피 (★★★☆)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낙원은 멀리있지 않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손길은 결국 현대 혹은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유대임을 여실히, 동시에 행복한 방향으로 보여준다.



언어에는 공감과 표현이 필요하다. 대화란 정보 이상의 것들을 나누는 행위다. - P185

사상의 자유 시장이 다 뭐야. - P232

바리는 마음이 불안해질수록 정신이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고, 그럴수록 머릿속은 더욱 뒤죽박죽이 돼갔다. - P263

뉴턴 역학의 반증 불가능성이야말로 그가 학을 전공으로 택한 이유였다. - P263

알고리즘에 해결책을 주문한다는 것은, 결국 인종주의가 논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인과 관계에 따르는 조건문으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고요. 그래요, 물론 인종주의에도 그 나름의 내적 정합성은 존재하지만, 그건 악몽 속에서나 기능하는 논리입니다. 그 논증 과정은 자동화하는 것이 불가능해요. - P289

내 생명을 바치는 일은 쉽다. 진짜 문제는 부수적 피해다.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는 무고한 자의 희생이다. - P359

복잡한 사회 및 정치, 문화 관련 사안을 미래주의적 관점에서 탐구하는 열정을 품고 있다. - P5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의 : 30대 남성 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큰 따옴표 내 구절은 모두 책에 나온 인용구입니다.

> ‘22/04/22 온라인 독서모임 북클럽웨비나와 함께.



'희망'이란 단어는 자칫 잘못 사용하면 어째 교훈적이거나 낙천적인 어조가 될 수 있으니 직접적인 사용은 피하는 편이지만, 독후감을 작성하며 제목을 정할 때 여러 말들을 이리 조합하고 저리 붙여보다가 결국엔 빼지 못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책이다. 건조하나 아름답다.


이렇게 표현한 가장 큰 연유로는 글쓴이가 내내 어쩌면 인생의 밑바닥을 쳤을 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해 밝히지만 마냥 슬프거나 비장한 어투로 그들을 어떤 현상, 또는 어떤 대상으로써 규정하고 설명하려 들지 않아서이다. 다시 말해, 오랜 시간에 걸쳐 노마드와 워캠퍼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기까지 하나 본인을 주인공의 입장에 내세우지 않고, 그렇다고 제 3의 관찰자나 사회비판자의 관점도 아닌 위치에서 덤덤하게 기록을 읊고 또 곁에서 묵묵히 지지하는 역할을 고수하며 도로 위 찬란한 삶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에 겪게 된 어려움을 받아들인 뒤 후련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어느 경로로 그렇게 되었는가?


어느 순간부터 자가 마련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성공의 증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주住가 한낱 자동차인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은퇴라는 개념이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평생 세 번의 직업을 가지게 된다’라고 말하는데, 그 중 마지막 임기에 밴 한구석에서 식사와 취미 활동과 수면을 취하는 미래를 마주하고 싶진 않을 것이란 소리다.


아마 이것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의 문제도 아니고,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다. 다만 이 공감의 부재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노출되지 않는 홈리스, 하우스리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의해 발생한다.


완독을 하고 난 뒤 남은 거라곤 겨우 역지사지와 감정 이입을 통한 미니멀리즘의 재고가 다일 수도 있다. 허나 비록 소비가치관에 대한 통찰만이 이 책이 남겨주는 감계가 되더라도, 지구 저편의 어느 무수한 사람들은 동종의 생활 방식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엮이고, 개성을 드러내고, 때론 메마르고, 때론 희망차게 RV를 타고 달린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해서 지워지지 않는 생활 방식도 분명히 있는 법이다.


우연찮게도 이 책을 읽을때에 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를 반복 재생했는데, 지금도 독후감을 쓰는 내내 틀어놓고 있다. 그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How many special people change? How many lives are living strange?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별해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삶을 살까?

‘Cus people believe that they're gonna get away for the summer.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젊음을 느낄거라고 믿고있으니까.

But you and I, we live and die. The world's still spinning round.

하지만 너와 난 그냥 살다가 죽겠지. 그럼에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

We don't know why. Why, why, why, why.

우린 왜 그런지 모르지. 왜, 왜, 왜, 왜

갤러거 형제가 노래한 것처럼 특별하거나 비정상인 삶 모두 살아가고 있다. 어쨌거나 세상은 돌아가기에.


그럼 “무력한 희생자들도, 걱정 없는 모험가들”도 아닌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정해져있을까? 아니, 과연 우리가 향해야 할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도로 위, 갓길, 대형마트 주차장 한 켠, 넓은 공터, 부지, 사막. 미국의 곳곳에 도처한 이 장소들은 노마드가 언제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며 언어 유희와 유머가 항상 공존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공동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작가의 말마따나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험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힘겹게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데에 힘을 싣는 게 바로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인류의 놀라운 능력”은 상호간의 “많은 가르침과 조언, 자원, 그리고 기꺼이 들어줄 귀를 가진 깊이 있고 다양한 부족들이 밖에 있기에 증명”된다.


그렇다. <노마드랜드>는 행복한 삶이든, 불행한 삶이든, 그 순간 순간들을 감내하면서 웃음 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 사람간의 관계에 있단 걸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기에 나는 ‘희망’이란 한 낱말로 이 주제를 관통하고 묘사하고자 한다.


그러니 우리도 자기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켜보거나 다양한 관심사를 가져보자. 그러면 언젠가 허탈한 순간이 도래한다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보일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자유 공간으로 주차 구역이 있다는 사실에. - P16

여성의 생애 임금은 더 적고, 누적 저축액도 적다. 그리고 여성의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 ―남성보다 평균 5년 더 오래 산다― 그 돈은 더 먼 미래까지 버텨줘야 한다. - P71

그들은 사회적 계약에서 자기 몫의 의무를 다했으나 시스템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 P127

"중국산 쓰레기 열네 통이 카트에 실려 있죠. 우울한 건, 그 모든 물건이 결국 쓰레기 매립지로 가게 되리란 걸 내가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물건이 거기 도착할 때까지 들어간 모든 자원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냥 ‘쓰고 버리자’인 거예요." - P168

그게 다 뭐란 말인가? - P187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는데요? 내가 물었다. 수치스러움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추운 날씨로부터. 그의 대답이었다. - P217

‘부적응자’란 패배자나 낙오자라는 뜻이 아니다. - P248

내가 찾아낸 대부분의 자료들은 워캠핑을, 미국인들이 집값 때문에 전통적인 주거지 밖으로 밀려나 최저임금을 벌려고 분투하는 시대의 생존 전략이라기보다는, 쾌활한 생활방식처럼, 혹은 심지어 기발한 취미처럼 느껴지게 했다. - P269

이토록 많은 가르침과 조언, 자원, 그리고 기꺼이 들어줄 귀를 가진 깊이 있고 다양한 부족들이 밖에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이것은 예전 중산층 계층의 진화일까? 우리는 현대판 수렵-채집자 계층의 등장을 보고 있는 것일까? - P290

"공유지의 무단 거주자로서 여기저기 잠깐씩 옮겨 다니면서 살고, 기생(氣生)식물처럼 뿌리가 없으며, 세금도 전혀 내지 않으면서 새로운 종류의 자동차 빈민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떠돌이 무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 P332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미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싫어하도록 강요받는다(…). 가난했으나 (…) 누구보다도 존중받아 마땅했던 사람들에 관한 민간 전승이 다른 모든 국가에는 있다. 가난한 미국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조롱하고, 자신보다 잘사는 사람들을 예찬할 뿐이다. - P337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 반면 우리는 여기 앉은 채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거예요. - P347

그는 소비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짧은 삶을 얼마나 많은 쓰레기로 채우는지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 P388

그 창고는 그런 쓰레기를 사기 위해 자신의 신용을 사용하는 구매자들을 노예로 만들었어요. 그들이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들이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게 하고요. - P390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는가? - P400

이것은 임금 격차가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단절이다. - P4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50 거주불능 지구 -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큰 따옴표 안의 문장들은 전부 본문 내 인용구입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국내에서는 울진 대형 산불이 발생했고, 꿀벌 군체가 실종되었으며, 카페 실내에서는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못하는 법안이 시행됐다. 국외적으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발발했으며, 마치 영화 '돈 룩 업'처럼 기후과학자인 피터 칼머스가 체이스은행 입구에서 평화시위를 하다 체포됐다. 우리가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단 점도 기후 변화가 "국지적인 재해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독립된 단서 같은 게 아니"며, 이젠 보고싶은 모습을 선택해서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그림자가 일상의 코앞까지 닥쳐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일련의 사태들은 익숙해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자각하고 도덕적 양심 속에서 행동해야 한단 걸 의미한다.


그럼 채식과 미니멀리즘을 삶의 모토로 삼고 있으나 관련 전문 서적을 고르는 데에는 한참을 망설였던 나에게 <2050 거주불능 지구>는 해답을 주었을까?


사실 어마어마한 시간을 투자해 완독을 하고 난 뒤 든 생각은 '그래서 결론이 뭔데?'였다.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양식 조정은 전체적인 수치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오직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확장될 때만 의미가 있다"면, 일개 동아시아-대한민국-서울의 일반 회사원인 난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어렸을 적에는 막연히 환경주의자가 되고 싶었다. 아마 책이나 미디어에서 빙하가 녹고 오존에 구멍이 뚫리는 모습을 목도한 후였을 것이다.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는 증거는 대략 10살 정도의 어린 소녀에게 꽤나 충격이었다. 환경오염 때문에 인간이 멸종되고 말 거라는 주장은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후대의 일 같이 느껴지는 동시에 퍽 무시무시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에 대한 논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협소해 거의 매번 해수면 상승 문제에만 한정돼 있었"을지라도 코카콜라 광고에 나오는 귀여운 북극곰이 살 터전이 없어진단 사실만으로도 지구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인간의 잘못이 크고, 결국 인류란 집단 속엔 내가 구성원으로서 포함되어 있으니 죄책감으로 앓았다.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면 메탄이 방출될 수 있다는 점"은 몰랐는데도 그랬다.


마냥 불편하기만 했던 마음은 어느 날 하교를 하던 중 친구와 골목길을 걸으며 “넌 장래희망이 뭐야?” 란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환경운동가가 되고 싶어."라고 대답하며 어쩐지 전환되었다. 누구보다 당찬 대답에 나조차 깜짝 놀라고 말았던 것 같다. 왠지 단언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자기 인생 살기 바쁜 어른들을 대신해 나라도 뭔가를 바꿔보고 싶었다. 그맘때쯤 좋아했던 스파이더맨과 같은 히어로의 마음이 발동했달까. 그때부터 미래에는 보다 나은 세상이 되어 있으리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첫걸음으로 나무젓가락과 같은 일회용품을 기피하게 됐고, 혹여 바닷속 물고기들이 죽을까 봐 샴푸도 엄청 조금씩 사용했다.


문제는 입시와 마주하게 되자 당장의 진로 설정과 자기 계발에 몰두하게 되었단 거다. 그토록 이해할 수 없었던 '자기 인생 살기 바쁜 어른'이 되기 위해 이상에 가깝던 꿈은 성적에 맞춰 좀 더 현실적인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 세월은 야속히 흘렀고, 궁극적 고향인 지구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은 이미 한참을 무뎌진 채 겨우 남은 양심만을 건드릴 뿐이었다.


20대를 맞아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그 앞 작은 원룸에서 자취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요리에 취미가 없다는 걸 핑계 삼아 배달음식을 꽤나 자주 시켜 먹었다. 설거지가 귀찮다는 까닭으로 일회용품을 사용한 건 덤.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걸 쓰지 않는 것도 환경오염이라고 일컬으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그래도 한 번 쓴 종이컵은 아깝다며 두세 번 정도 쓰고 버렸다. 딴에는 그것도 나름의 재활용 방법이었다. 이래봬도 어렸을 적 꿈이 환경운동가였으니까.


페미니즘이 2030 여성들 사이에 유행처럼 자리잡아 갈 땐 미디어가 우습게 여기는 명품백을 든, 소위 '된장녀'에 대한 이미지를 타파하고자 에코백을 수집하듯 사들이기도 했다. 미술관 전시 굿즈로 나온 에코백, 여행지에서 발견한 에코백, 아이돌 굿즈 등 종류도 다양하게 모았다. 이왕 들고 다닐 거 더 예쁜 제품을 찾아 나섰다. 재질과 크기도 워낙 다양해서 흐물흐물한 에코백, 어깨끈이 긴 에코백, 색이 화려한 에코백 등 적재적소에 매치할 수 있는 독특한 제품을 발굴하는 데 몰입했다. 이름에서부터 ‘에코’자가 들어가니 친환경 이미지를 풍긴 탓도 컸다. 많이 사면 살수록 다다익선이라고 여겼다. 그때는 '그린 워싱'에 대한 개념이 없었고, 역시 환경운동가에게 걸맞은 소비를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기만했다.


들어야 할 가방이 많아지니 그에 맞는 옷도 필요했다. 여태껏 엄마가 사주거나 만들어준 옷을 헤질 때까지 입었던 내가, 학교 안팎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패션에 대한 관심을 키워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남들처럼 치장하고 유행을 좇는 게 주체적인 성인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자주 입는 브랜드를 유심히 보았고, SNS에서 ‘트렌드템’이라고 소개되는 액세서리는 분기별로 꼭 샀다. 그렇게 옷장에 수많은 옷들이 쌓여갔지만 남들처럼 한철 입고 버리기는 안 한다며 자위했다.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선 무언가를 비워내는 것보다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이대로 놔두면 어쨌든 오래오래 입는 꼴이니 결국 비전 있는 선택이라고 눈가림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내가 버리지 못했던 건 하나 둘씩 사 모은 에코백이나 옷들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사 모으는 버릇이었다.


영국 환경청은 이미 2011년에 ‘수명 주기 평가’ 연구에서 환경에 악영향을 주는 순서가 비닐봉지(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종이봉투, 면 재질의 에코백 순이라고 밝힌 바 있다. 각 제품 생산 시 발생하는 탄소의 양을 고려한다면 비닐봉투를 한 번 사용할 때 종이봉투는 3번 이상, 에코백은 131번 재사용돼야 환경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덴마크의 환경 및 식품부에서도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진 에코백은 비닐봉지(저밀도 폴리에틸렌·LDPE)보다 2만 번 넘게 재사용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정보를 어느 기사에서 처음 읽었을 때 내가 한 건 다른 것도 아닌 셈이었다. 만약 하나의 에코백을 하루 동안 사용하는 것을 한 번이라 가정한다면, 총 54년이 걸리는 2만 번의 재사용까지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럼 그것을 131번 넘게 들고 다닌 적은 있는가 반추하면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가 않았다.


21세기의 패션 산업에 물든 버릇은 더 심각했다. 부담 없이 쇼핑할 수 있는 SPA 브랜드가 대중적으로 등장한 이후부터 옷을 더 쉽게, 더 싸게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돈 없는 학생 신분이었던 나는 각종 값싼 의류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저렴한 폴리에스터는 면 섬유의 세 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하며, 세탁 시에는 미세 플라스틱 조각을 떨어뜨려 바다를 오염시킨단 건 당연히 몰랐다. 부자재·섬유 제조, 염색 공정 등에서 배출되는 쓰레기와 화학물질, 폐수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연청, 진청, 찢청, 배기 스타일 등 가짓수도 다양한 청바지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 무려 물 1,500L가 사용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들이 하나씩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꼬박꼬박 사 모은 적이 있으니. 그동안 얼마나 지속적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미쳤던걸까.


2018년 쓰레기 대란과 실내 매장 내 일회용 컵 규제 시행 이후 텀블러와 에코백 판매가 증가했단 사실은 나의 경각심을 더욱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유기농 작물에 대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소규모 농가에서 비닐하우스부터 만드는 것도, 바이오 연료를 위해 열대우림을 밀어내고 경작지를 조성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녹색 소비’가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전락한 사회에서 지갑을 여는 것만으로는 환경오염의 탈출구가 될 수 없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그간 작게나마 환경주의적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을 다시 정의할 필요를 느꼈고, 내가 소비했던 건 결국 친환경 제품이 아니라 잠재적 쓰레기였다는 걸 인정했다.


사실 그맘때엔 코로나19로 인해 미니멀리즘 성향이 대중 사이에 폭넓게 확산되던 참이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으니 옷을 사지 않아도 됐고, 재정 긴축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이유로 밥도 거의 집에서 해먹었다(팬데믹 사태가 이어질수록 감염 위험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일회용품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건 여기서 차치하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던 인간의 본질, 즉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갑작스러운 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더 이상 타인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행하던 소비현상을 과하게 하지 않아도 됐다. 누군가는 맥 빠질 그 상황을 나는 기회로 여겼다. 비로소 실천하는 환경주의자가 되겠노라고 굳게 결심한 것이다.


물론 미니멀 라이프와 비거니즘으로의 전향은 한순간에 이뤄지진 않았다. 한참 살아갈 인생에서 물욕과 육류를 없애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화 <어벤져스>에 비유하자면 나의 환경주의적 결심은 타노스가 손가락을 한 번 튕겨 세상의 절반을 사라지게 해 이로운 미래에 도달하는 것보단 그 결과를 위해 인피니티 스톤을 찾고 적들과 싸우는 과정과 더 닮아 있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밝히는 일이 보기보다 꽤 어려웠단 소리다.


왜냐하면 갓 사회에 나온 나는 힘없는 신입사원일 뿐이었고, 사내 식당에서 제공되는 식단은 정해져있었다. 가치관을 당당히 피력할 여력이 없었기에 입사한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는 식판 위에 올라온 돈까스를 억지로 씹어먹어야 했다.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헛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있자니 2018년 겨울, 평창에서 올림픽 자원봉사자로 일했을 때를 반추하게 됐다. 당시 근무자들에게 배급되는 식사는 큰 프랜차이즈 업체로부터 일괄 배급되는 도시락 형태였는데, 1-2주 정도 지나자 채식 식단도 제공되기 시작했다. 듣자하니 어느 비건 봉사자의 건의로 이뤄진 수요 조사로 시행된 결과였다고 했다. 물론 국제적인 행사이니만큼 다양성 존중이 큰 까닭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그 배경과는 상관 없이 자신의 소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한 모습이 퍽 멋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 우연이 아닐 회상을 발판 삼아 나는 친한 회사 동료들을 시작으로 주변에 차츰 채식주의자란 사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에 상응하는 반응에 어떻게 마주해야 할 지 몰라 멋쩍게 웃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왜 고기를 안 먹어?', '우와 처음 봐.', '너는 지구를 사랑한다는 애가 플라스틱 빨대는 써도 돼?'. 등등.


상처였다. 정말 말그대로 마음의 상처였다! 응원이나 지지는 커녕 구경거리 취급을 받거나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나는 니들뿐만 아니라 니네 후손들까지도 어떻게든 살려볼려고 고기도 안 먹고 텀블러도 들고 다니는데, 자기들은 하는 것도 없으면서 꼬투리만 잡고…. "무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3분의 1이 식품 생산 과정에서 비롯"된다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마다 수확량이 10퍼센트씩 감소"한다는데, "경작에 적합한 토지마저 순식간에 황무지로 뒤바꾼다는 점에서 열기 자체보다 가뭄이 식량 생산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는 거 알아? 너 <설국열차>처럼 바퀴벌레 영양갱만 먹고 싶어? 해양 플라스틱 오염의 15~31%가 가정 및 산업용 제품에서 방출된 미세한 입자 때문인데, 이러다 니 창자에 미세플라스틱만 가득 차면 어쩔래!!! 막 소리치고 싶었으나 그땐 이 책을 읽기 전이라 팩트로 맞받아칠 역량이 안 됐다.


'인간 무익론'에서 "정치적 우울감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생명체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할 때 경험하는 감정을 뜻하며, 절망감과 무력감마저 사실은 항의의 절규인 셈"이라 했는데,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겉핥기 식의 개념과 단순한 마음가짐만으론 아무것도 보호하지 못했다. 저자의 말마따나 "기후변화를 완전히 부인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체념하는 태도보다는 반쯤 무지하고 반쯤 무관심한 태도가 전염병처럼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한 명의 의지만으론 세상을 바꾸기에 역부족이었다. 분명 샤르트르는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지성'이라 일컬었건만, 이상향은 꿈을 꾸는 행위가 아닌 행위의 증거로 삼는 계기여야 했다.


그때부터 환경에 관련된 기사와 뉴미디어 글들을 끝없이 읽어가기 시작했다. 각종 계정들을 팔로우하고, 여러 연합과 단체에 후원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린피스 서울사무소에서 진행한 배우 류준열의 인터뷰를 읽게 됐는데, 그 시기의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을 쓰고 안 쓰는지 얽매이기보다는 스스로 환경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죄책감을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환경 보호를 하고 싶지 않거든요.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병에 든 물을 마셔야 하는 상황에서 죄책감을 가지게 되면 너무 스트레스가 되잖아요. (중략) 누군가의 행동으로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잖아요.


진짜 그랬다. 시작이 미약했고 스스로를 의심하는 일조차 더러 있었더래도 채식 생활이 계속되자 같이 살게된 친구들의 식성이 조금씩 바뀌었고, 주변 동기들은 불필요한 컵홀더는 자연스레 챙기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약속 장소는 채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식당 위주로 배려해줬다. 환경 관련 포스팅에 멘션하고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늘었다.


혹자는 이 소중한 인연과 변화가 "소비 행위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며 또 한편으로는 미덕을 과시할 수 있는 아주 현대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깟 미덕 좀 과시하면 어떤가. 개인의 소비 선택이 아주 작은 요인에 불과할지라도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 "미래를 조금도 바꿀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다가는 그 가능성마저 정말로 닫혀 버릴 것이다". 다시 말해, 환경주의 운동은 당장 거리로 나가 피켓을 들고 싸우길 바라는 투쟁도 아니고 일부의 이상주의적 지향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정부와 기업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게으른 환경주의’ 혹은 ‘에코의 함정’이라고 불리듯 우리의 경각심을 지우는 일이다. "우리의 책임을 다음 세대 후손에게, 마법 같은 혁신을 일으킬 기술자에게, 당장의 폭리에 집중하는 정치인에게" 미룬다해서 총망라적인 재앙이 우리 모두를 표적으로 삼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우리 모두가 숨이 막힐 정도로 거대한 고통을 나눠 갖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는 책임을 나눠가지는" 수밖에 없기에 나는 친구들의 움직임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자신이 알고 있는 바를 무시하고 넘어가지 말았으면 한다. 맹목적이고 무비판적 소비와 섭취가 지속된다면 자연에서의 자원 착취가 반복될 것이고, 더 많은 생산과 더 큰 이윤을 위한 과잉생산구조가 굳어진다. 어떤 물건이든 아예 사지 말란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을 꾸준히 쓰지 않는다면 오히려 자원 순환에 역효과가 발생함을 유의해야한다.


마땅히 나아가는 방향이 자연에 완전히 무해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인 걸 나도 잘 안다. 업사이클링이나 리사이클링에도 크고 작은 노고가 소요되며, 대뜸 채식을 시작하고자는 결정도 쉽지 않다. 분명 미니멀리즘이나 무소유 같은 키워드와 동떨어져 살고 있다고 의식한 적도 있을 것이다. 날이 무더워지기 시작한만큼 "에어컨과 선풍기를 작동하는 데 사용되는 전력량이 이미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10퍼센트를 차지"한단 논점을 꾸준히 상기시키기도 곤란하다.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된 시점에서 '보복 소비'란 키워드는 애써 무시하고 싶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거창한 계획이나 혁신적인 변화 외에 쉬이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시사점이 존재함은 희망적이다. "모든 종류의 인간 활동을 모든 차원에서 완전히 새롭게 뜯어고쳐야"하며, "새로운 대안을 도입할 때마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기업체는 물론 이전 생활양식에 만족하던 소비자층의 현상 유지 편향과도 싸워야"하겠지만, 구매하지 않는 용기와 육식 없는 월요일을 지켜야 할 이유는 분명 실재한다.


물론 이 흐름이 지나치게 거대하고 예측이 어려워 감이 안 잡힐 수도 있다. "한 추산에 따르면 현재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속도는 지난 6,600만 년 중 어느 시점보다도 10배가량 빠르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기후변화가 느리게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불안할 만큼 빠르게 나아가며, 기후변화를 막아 줄 혁신이 빠르게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만 믿기 힘들 만큼 느리게 다가온다". 빌 맥키번은 천천히 거둔 성공은 실패나 다름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세계적인 규모로 재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문제는 말 그대로 해결 불능 상태가 된다. (중략) 우리가 2075년에 내리는 결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아무리 신소재가 개발되고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의 수가 증가했다 하더라도 어렸을 때 그렸던 희망찬 지구의 미래는 돈으로 살 수 없게 되었단 뜻이다.


한없이 포용력이 높은 것만 같은 자연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탄소 농도가 높아질수록 작물의 이파리는 두거워지는 경향"이 있고, "두꺼운 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이 떨어져", 결국 "21세기 말에는 매년 63억 9,0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흡수되지 못한 채 공기 중에 추가로 남게된다"는 사실은 위안보다는 공포로 돌아온다.


더 자세하고 잔인하게 말해볼까.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대신 짧게나마 동물의 고통에 공감"만 하던 감정이입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몇 십년 전, 열 살이었던 어린 소녀가 살던 지구의 건강 상태에 비해 지금의 상황은 훨씬, 훨씬 더 악화되었으며 절망적이란 건 이제 다들 알 것이다. 북극곰이 살 곳이 없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해양 생물 4분의 1을 지탱하고 있는 산호초 군락이 '대량 백화 사태'를 겪고 있다. 당장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기온을 상승시키고, "기온이 상승할수록 화재는 더 자주 발생"해 불타는 건 지구뿐만이 아닌 당장 우리들의 집이 되었다.


바다 근처에 살지 않기 때문에 지금 밟고 있는 그 땅은 해수면 아래로 가라앉지 않을거라고? 불길에 휩싸인 산길이 먼 지방의 일 같다고? 이 모든 건 급격한 경제 속도로 두꺼운 스모그에 둘러싸인 중국 탓이라고? 특정 지대 혹은 단 한 국가가 얼마나 뒤쳐져있는가를 지적할 시간에 "2017년 캘리포니아 주에 기록적인 화재 철이 닥치자 샌프란시스코의 공기 질은 같은 날의 베이징의 공기 질보다 나빠졌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당장 세계 미세플라스틱 오염지역 순위권에 한국이 2~3위(인천-경기 해안, 낙동강 하구)에 올라있단 자료도 같이 보면 더 좋고.


절대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지구온난화는 이전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무차별적으로 날뛰기 시작"했으며, "자신이 경험한 세계만 가지고 기후가 온화하다고 안심"할 때가 아니다.


"기온이 4도 증가한 세계에서 들끓는 자연재해를 그냥 '날씨'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면 마이너스 배출이나 화성으로의 이주 같은 "엄청난 속도의 기술적 탈출이 성공할거라는 기대" 또한 더더욱이 버리는 편이 낫다. 비록 지구 공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질수록 영양소 전반이 감소"하며, "이산화탄소 농도가 930ppm(오늘날의 2배)에 이르면 인지 능력은 21퍼센트 떨어진다" 해도 표면에 물도 없고 식물도 없으며 여름의 적도조차 밤 기온이 영하 73도까지 떨어지는 화성에서 사는 것보다 지구의 황폐한 환경 위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생존 가능성이 높으니까. "우리 중 누구도 지구 외에는 우리 '집'이라고 부를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기후라는 것이 원래 이렇다고 납득하거나, 현실적으로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거나, 받아 마땅한 결과라며 기괴한 안락함을 느끼거나,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점차 줄여 나가거나, 아니면 그냥 현실을 보고도 모른 체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무감정 상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당장 바로 앞에 놓인 미래에만 타협하면서 그 뒤에 이어질 미래를 이전보다 별일 아닌 것처럼" 여긴다면 지구가 1도 뜨거워진 벼랑(현재)에 서서 "미래를 내다보면 2도 뜨거워진 지구는 악몽 같아 보일 것이며, 3도, 4도, 5도 뜨거워진 미래는 더욱더 그로테스크해 보일 것"이다.


"재난을 탓할 만한 장본인을 설정하지 않고는 인류가 그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러니 앞으로 우리들의 성찰과 발자국이 모여 큰 웅덩이를 만들어내길. 그리고 그것이 참호가 되어 훌륭한 방어책이 되길 바란다. 한 방에 지구 온난화를 뚝딱 고쳐내는 철없는 히어로는 될 수 없어도 지구의 훌륭한 조력자 정도는 누구나 충분히 될 수 있다.



  • 커스틴 브로디 (Dr. Kirsten Brodde). (2017, 03-09). 당신이 입은 미세섬유, 바다를 죽인다. GREENPEACE.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5449/blog-plastic-microfibres-harming-our-ocean/
  • 유지연. (2020, 06-07). 최소 131번 써야 비닐봉지보다 낫다···놀라운 '에코백의 역설'. 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795563
  • 박소희. (2018, 06-09). [박소희의 시니컬] 에코의 함정, 녹색 탈을 쓴 소비자본주의. 그린포스트코리아. http://www.greenpost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90484
  • 박성은. (2017, 09-09). [디지털스토리] 옷 한벌 만드는데 고작 1주일…환경 파괴 부른다.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70908163300797
  •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2021, 04-22). 5년 차 환경운동가, 류준열 후원자의 용기있는 인터뷰. GREENPEACE. https://www.greenpeace.org/korea/update/17336/blog-ce-ryu-jun-yeol-interview-earthday/



지구온난화가 저기 외딴 북극에서나 펼쳐지는 이야기라느니, (...) - P15

대기 중에 배출된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됐다. - P17

어떤 결과가 초래될 지에 대한 논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협소해 거의 매번 해수면 상승 문제에만 한정돼 있었다. - P24

기후변화는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전 지구상에 동시에 일어나는 무언가인 셈이다. - P41

지구온난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깊이 생각할 시간, 깊이 생각할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지구온난화를 논하기만 하면 되는 입장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입장이다. - P52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양식 조정은 전체적인 수치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오직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확장될 때만 의미가 있다. - P61

기후변화에 자기 자신이 책임과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이해하기보다는 순수한 희생양을 가지고 윤리적인 고민 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편이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P64

주어진 도구로 말하자면 우리는 이미 빈곤, 전염병, 여성 학대 같은 문제를 해결할 도구도 가지고 있다. - P76

기후변화를 완전히 부인하거나 반대로 완전히 체념하는 태도보다는 반쯤 무지하고 반쯤 무관심한 태도가 전염병처럼 널리 퍼져있다. - P91

GMO에 대한 문화적 반감이 이미 너무나 커져서 홀푸드마켓에서는 자사 브랜드 탄산수를 ‘GMO 무첨가 탄산수‘라고 광고할 지경이다. - P94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최악의 결과가 고작 몇 미터의 해수면 상승이라고 생각하자 바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P97

기온이 4도 증가한 세계에서는 지구환경 곳곳에서 수많은 자연재해가 들끓다 보니 사람들이 자연재해를 그냥 ‘날씨‘라고 부를 것이다. - P123

소비 행위가 한편으로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며 또 한편으로는 미덕을 과시할 수 있는 아주 현대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 P140

중국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세계의 중심 도시가 태양을 가릴 정도로 두꺼운 잿빛 안개 속에 뒤덮인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는 지구의 공기 상태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한 나라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즉 중국이 선진국 가운데 삶의 질 면에서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를 지적했다. - P157

산업화를 통해 남반구의 수십 억 인구를 중산층으로 끌어올린 대신 치르게 될 대가는 바로 기후변화다. (...) 인류의 진보에서 비롯된 지구온난화가 우리를 다시 폭력으로 몰아넣으리라는 점이다. - P196

자원 전쟁은 보통 자원을 늘려 주지 않는다. 많은 경우 오히려 자원을 소멸시킨다. - P196

지구온난화가 이런 식으로 소비자 계층 개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물론 잘사는 사람들 사이에 피어오르는 묘한 금욕적 자부심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지구온난화를 지나치게 좁은 시야로 바라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 P205

당신은 뜨거운 지구에 관해 ‘읽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그 위를 ‘살아갈 것‘이다. - P209

대중문화의 한 가지 역할은 겉으로는 문제에 주의를 이끄는 듯해도 실제로는 늘 주의를 돌릴 만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 P219

기후재난에서는 수십억 명이 존재하기 때문에 도덕적 책임이 전 지역에 여러 세대에 걸쳐 분산된다. 물론 책임이 균등하게 분산된다는 뜻은 아니다. (...) 책임 분배가 소득이 불평등하게 분배된 양상과 밀접히 관련되기 때문에 (...) 시스템이 문제라고 말한다고 악당의 이름이 딱 떠오르지는 않는다. - P225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대신 짧게나마 동물의 고통에 공감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동물에게 감정이입 하는 편이 이상할 만큼 쉽게 느껴지는 것이다. - P229

기후처럼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자연적인 시스템보다 인터넷이나 경제 같은 인위적인 시스템을 더욱 견고한 존재라고 인식하거나 심지어 아예 건드릴 수조차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 P244

실리콘밸리 기술자가 슈퍼 인공지능을 상상할 때 떠올리는 것은 어떤 제한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본주의다. - P261

기후변화 대책으로 우주여행을 제안하는 사람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 P265

25년에 걸쳐 전 세계 에너지 사용량 중 재생에너지 사용량 비율은 거의 조금도 증가하지 않았다. - P268

우리는 기후변화가 느리게 나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불안할 만큼 빠르게 나아간다. 기후변화를 막아 줄 혁신이 빠르게 다가온다고 생각하지만 믿기 힘들 만큼 느리게 다가온다. 우리가 얼마나 급한 상황인가를 고려한다면 특히 더 느려 보인다. (...) "우리가 세계적인 규모로 재빨리 행동하지 않으면 문제는 말 그대로 해결 불능 상태가 된다. … 우리가 2075년에 내리는 결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 P270

새로운 대안을 도입할 때마다 기존에 자리 잡고 있던 기업체는 물론 이전 생활양식에 만족하던 소비자층의 현상 유지 편향과도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 P272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말로만 하는 동정, 편리한 진영 논리, 윤리적 소비에 참여하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는 정치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신념 (...) - P281

개인이 식단을 바꾸는 정도로는 그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정책을 바꾼다면 가능하다. - P282

밀 경작 때문에 오늘날 ‘국가권력‘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출현했으며 결과적으로 관료주의, 억압, 불평등까지 뒤따라 나왔다. - P297

현대인으로 하여금 물질적 진보의 속도를 확신하게 했던 산업화와 경제적 성장의 역사는 잠깐을 넘어 찰나에 가깝다. 그 찰나 사이에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후재난의 시대에 다다른 것이다. - P299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우리 모두가 ‘산업혁명‘이라는 죄목으로 형을 살고 있는 죄수가 되며 역사는 일종의 교도소로 여겨진다. - P303

지구온난화에 의한 인류 문명의 몰락을 거의 필연적인 비극으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거의 신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여섯 번째 대멸종이 순식간에 지구를 청소하고 나면 새로운 종이 생겨나고 새로운 생태적 지위가 형성되면서 오히려 ‘자연은 번성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P311

정치적 우울감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생명체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할 때 경험하는 감정을 뜻한다. 절망감과 무력감마저 사실은 항의의 절규인 셈이다. 그렇다. 정치적 우울감은 자신이 어떻게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도록 만든다. 그런 절망과 회의 속에는 중요한 깨달음이 하나 묻혀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내에서 의미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곧 ‘인간성‘이라면 우리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P322

우리는 기후라는 것이 원래 이렇다고 납득하거나, 현실적으로 예산을 고려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거나, 받아 마땅한 결과라며 기괴한 안락함을 느끼거나,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을 점차 줄여 나가거나, 아니면 그냥 현실을 보고도 모른 체함으로써 새로운 종류의 무감정 상태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 P324

지구온난화가 가르쳐 주는 교훈은 서로 모순적이어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동일한 위기로부터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이며 또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동시에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 인간이 문제를 초래했다면 되돌릴 수도 있어야 한다. - P331

당신은 당신이 보고 싶은 모습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살고 싶은 행성은 선택할 수 없다. - P3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