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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영화 특별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4월
평점 :
― 이다혜기자/정세랑작가와 함께한 GV를 곁들여서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원작을 먼저 읽는 사람과 영화를 먼저 보는 사람. 하나의 스토리에 기반한 작품을 감상할 때에 어떤 매체로 그것을 먼저 접하는가의 순서는 감상에 있어 아주 중요하게 작용한다. 주요한 사건 구성을 이해하는 건 최초의 단 한 번 뿐이기에 우리는 때로 엄청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자주 볼 수 있는 사례는 연재 중이거나 완결된 소년만화가 애니(J-Animation)로 제작되는 케이스이다. 흑백 갱지의 얇은 책 속에 촘촘한 선화와 대사로 표현된 만화는 음악과 색이 입혀져 다채롭게 움직이는 영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좋아하는 캐릭터에 부여된 목소리와 화려한 액션이 거듭나는 경험은 대게 짜릿하거나 실망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테지만, 이것이 소설과 영화의 관계로 이동하면 그 인식의 차이는 좀 복잡하다.
영화를 먼저 보는 관객은 주어진 사건을 따라가며 실시간으로 주인공과 호흡을 같이 한다는 장점이 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연출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별다른 언어적 표현과 미사여구 없이도 관객은 몰입할 수 있다. 영화가 너무 좋아 관련 정보를 찾아보던 중 원작 소설이 있는 걸 발견한다면, 빈 곳을 채워넣듯 다시금 세밀한 감정선과 서사를 보충하며 경이롭고 완전한 감상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소설을 먼저 읽을 때면 독자는 글로 표현된 문장을 바탕으로 스스로 세계를 창조해내고 그 속에서 주인공과 교감하며 상상을 뻗어나간다. 그러고 나서 영화를 보게 되면 나만의 이미지가 재현이 됐을지, 차이가 있다면 어떤 점인지 차분히 관찰할 수 있다. 모름지기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이 복습 활동은 본인이 세운 세계를 좀 더 굳건히 만드는 경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소설 『거울 속 외딴 성』은 책 먼저 읽어야할까, 인기에 힘입어 나온 만화부터 읽어야할까, 아니면 최근에 개봉한 영화부터 봐야할까? 물론 책을 e-book으로 읽는 보기까지 더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얘긴 『다시, 책으로』(매리언 울프 저, 2019)나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나오미 배런 저, 2023)를 읽는 것으로 차치하도록 하고(다행히도(?) 『거울 속 외딴 성』은 e-book이 없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에겐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얼마나 많은지!
우선 나부터 말하자면, 명동CGV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이다혜 기자와 정세랑 작가가 진행한 GV에 참석하기 위해 후다닥 도서관에 가서 원작 소설부터 읽었다.
그렇다. 나는 원작부터 먼저 보는 부류에 속한다. 책을 읽지 않은 채 영화관에 가서 몰아치는 스토리라인과 흡입력을 온전히 느끼는 선택지도 있지만, 내 고집이, <해리 포터>의 연재를 실시간으로 함께했던 자들이 가진 성미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했다. 어떤 영화일지 미리 알아보고 싶기도 했고, 시간이 좀 남아서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GV의 문을 연 대화도 매체의 차이에서 따라오는 효과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다혜 기자는 애니메이션을 먼저, 정세랑 작가는 소설을 먼저. 직업상 특징 때문이었을까 헤아리며 그게 참 재미있다고 느꼈다.
내가 이 산업에 그저 소비자이자 관람자로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창작자의 시선이 궁금하기도 했다. 정세랑 작가는 소설가로도 유명하지만, 곧 열릴 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스타워즈>를 기념하여 만든 애니메이션 시리즈에도 참여했을 만큼 요즈음 영상 작업도 잦게 하는 편이기에 초대 손님으로 아주 적절했다(물론 요즘들어 신작 영화 GV에 가수나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을 초대하는 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하지만).
그의 대표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소설이 드라마화된 케이스로, 공개 후 호불호가 갈리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후 정세랑 작가는 인물의 외양적인 변화를 CG 처리 하거나, 장면마다 등장하는 엑스트라를 고용하기 위한 비용 등 제작비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버릇이 생겼다며 농담했다.
그런 의미에서 애니메이션은 제약 없이 자유롭단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고코로가 소원 열쇠를 가지고 시계탑으로 향하는 엔딩에서는 공중을 돌아가는 나선형 계단이 등장하는데, 이는 원작에는 없는 오리지널 장면이다. 현관문 밖으로도 못 나가던 고코로가 자기 의지를 보이는 순간이라 의미가 남다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하이라이트를 향해 나아가는 금빛 연출은 애니메이션이란 매체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또한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아키의 정체가 후반부에서 밝혀질 때에, 책에서는 성이 바뀐 이유 등을 들먹이며 반전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서는 이것을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다른 한편, 600 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소설이 영상화될 때 필연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책에서는 고코로가 학교에 가지 않을 때의 마음이라든가,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분노하거나 상심하는 등의 극적인 반응을 아주 자세하고 섬세하게 그렸으나, 영화에서는 감독이 이 과정을 고의로 잘랐다.
정세랑 작가는 읽는 데에 4시간 가량이 걸리는 이 두꺼운 책을 시각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장면을 가감할 지 조직하는 건 애정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일컬었다. 만약 모든 심리 서술과 대화를 그대로 옮겼다면 게으른 각색이 되었을 것이라며, 만약 주인공들이 어떻게 친해졌고, 고코로가 어떻게 집 밖으로 나가게 됐는지의 결심 등을 샅샅이 집어넣었다면 섬세한 내면을 표현할 수 있었을진 몰라도 시각적인 힘을 싣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애니메이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과감히 이야기의 어떤 부분을 빼버리는 것은 포기하는 것보다 의도에 가깝다.
이다혜 기자는 한 인물에 깊고 완전히 빠져드는 게 책이라고 한다면, 그 인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사건 중심으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애니메이션이랬다. 독서에 시간을 들이다보면 고코로의 심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읽다보면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바로 그 이유를 알기 때문이란 것이다. 바꿔 말하면 영화에서는 모든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압도적인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란 소리다. 마치 등교거부아들이 거울의 성 안에서 학교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그 상태만으로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서 저자 이나다 도요시는 대사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작품이 늘어난 현상이 영상 매체 감상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본래 영상 작품에서는 배우의 표정으로 슬픔을 드러내고, 땀을 닦는 동작으로 곤란한 상황임을 나타낸다. 배우가 “슬프다”, “어떡하지” 등을 입에 담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거울 속 외딴 성> 영화가 애니 <귀멸의 칼날>처럼 화려한 액션이 없어 정적이고 루즈하다는 평을 남겼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그런 움직임과 묘사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나머지 호흡과 쉼을 침묵으로 판단하게 된 지도 모른다. 억지스럽다거나, 뻔뻔하다거나, 플랫폼의 전환과 러닝타임의 한계로 당연히 따라올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눈에 불 켠 듯 찾아내고, 그 찝찝함을 관람하는 내내 곱씹는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하나도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니 요지는, 최선을 다해 선사받은 충분한 감동과 눈물을 잠자코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게 이 영화가, 이 전환이 쏘는 신호탄이지 않을까.
그래. 눈물. 이제 작품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책을 보면서 운 건 초등학생 때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다 베갯잇을 적신 이후로 처음이다. 당연히 영화를 보면서도 울었다.
『거울 속 외딴 성』은 같은 학교에 다니지만,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등교거부 학생 7명이 각자 방에 있는 거울을 통해 ‘거울의 성’에 초대받게 되고, 그 안에서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를 찾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제목에도 들어가고 작품에서 주요한 소재인 ‘거울’은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빛이 통과하는 창문과 달리 상이 거기에 반사된다는 점에서 많이 쓰이고 연출가들이 좋아하는 장치라 트위터와 인스타그램에 ‘영화속거울(@mirrorinfilm)’이라는 이름으로 영화 속 쇼트를 모으는 계정이 있을 정도이다.
『거울 속 외딴 성』의 거울도 어김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아상을 확인하는 비유의 대상으로 쓰인다. 7명의 아이들은 모두 거울 속에 들어가 자기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거나 도망친다.
거울 성에는 공용 공간 외에도 개인 방이 주어지는데, 각자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후카의 방에는 피아노가 있다든가, 동화책을 좋아하는 고코로의 방에는 빼곡한 책장이 있다든가 하는 식이다. 이는 모두 성의 지킴이 같은 존재인 ‘늑대님’이 마련한 것으로, 알쏭달쏭한 힌트를 던지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지만, 본인이 간절히 원한 시간일만큼, 아이들에게 성에서 적응하고 서로 알아가거나 열쇠를 찾을 시간을 넉넉히 준다. 이는 어른의 입장에서 무척 자상한 태도로 읽힌다.
지금의 우리에게 학교 폭력과 따돌림, 등교거부란 이슈는 전혀 생소한 주제는 아니다. 실제로 GV에 참석한 관객들의 입을 빌리면, 학교 밖 청소년이었다가 예술가가 되는 경우가 은근히 흔하다고 하니, 자신만의 속도로 목소리를 찾게 되는 이야기 속 아이들은 어떠한 과장도 없이 시선을 끌지 않고도 피해자 입장에서의 고통과 그 심각성을 충분히 보여준다. 이는 어른인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도 좋은 본보기가 되는데,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복수를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보다 섬세하고 복잡하며, 단정지을 수 없는 편이다.
부모님과 대체 스쿨의 선생님에게조차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 영역을 침범당하는 일을 겪은 고코로는 내향적인 사람이 자기방어적 표현과 발언을 못 할 때 얼만큼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 아키란 캐릭터도 의붓아버지의 위협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오고, 우레시노의 빵셔틀, 스바루의 무관심, 리온의 단절, 이 모든 것들을 다룰 때에 어른스러운 태도가 깔려있어 다시 읽어도 좋을 책이다.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지만, 그 나이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게 GV에서의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이들은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성을 떠날지, 소원을 이루는 대신 모든 기억을 잃을 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들의 우정은 나이 차이 때문에라도 한시적인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할 수 없고, 스치듯이 만날 수밖에 없는 인연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인간 관계의 한시성을 뚜렷히 보여주면서도 이 또한 의미가 있단 걸 말해준다. 어떤 관계가 너무 좋다면 계속 유지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욕심 때문에 변질되거나 무너지는 경우도 빈번한 걸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일전에 참여했던 프로그램에서 정세랑 작가에게 질문한 적이 있다. 지금 쌓고 있는 모든 인간 관계가 지친다고. 그랬더니 작가는 이렇게 답변하였다. 사실 그 관계가 본인에게 안 맞을 수도 있어요. 억지로 붙들고 있을 필요 없어요. 그래, 정말 그렇다.
이에 더해, 같은 지역의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설정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까닭은 그들의 이야기는 지금뿐만이 아니라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같은 고통 속에 있다 해도 그 해결책이 아이들을 몰아세우는 방식으로는 쓰이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책은 분명히 얘기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마주칠 갈등을 두고 ‘너는 매일 싸우고 있잖아. 싸우지 않아도 돼.’라고 말해줘야한다고. 싸워야만 하고 이기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결국은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필승의 방법을 가르치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들이 어떻다 해도 너는 존중받아야 하며, 지금 겪는 일은 마음을 충분히 이해받아야 하는 고통이라고 얘기해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해, 라고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다혜 기자는 이런 류의 작품을 '소원을 비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불렀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은 비록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어도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단 걸 깨달을 때라면서, 강력한 목표인 '소원'을 향해 달려갈 때 결국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를 구하기 위해서, 우정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타인을 위해서 두려움을 뛰어넘었을 때 이야기는 해피 엔딩으로 향한다. 상투적인 신파일지라도, 어김없이 감동을 주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 모두에겐 소원이 있고, 어쩌면 고민하는 사람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나도 청소년으로 돌아간다면, 청소년문학을 사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마음껏 울고 위로받아도 된다고 알려주고 싶다. 굳이 어른들이 권장하는 책을 따라 읽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테다. 빨간모자와 늑대와 어린양들을 사랑해도 된다고. 공감하고 슬퍼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용기를 내고 응원하는 건 진짜 용감한 일이라고 꼭 알려주고 싶다. 싸울 의지가 있다는 건 정말로 멋진 일이야.
p.s. 정세랑 작가는 동 작가의 <슬로하이츠의 신>, <야미하라>, <호박의 여름>도 추천하였다. 아마 청춘과 호러, 종교를 혼재하며 장르를 눈속임하는 추리 소설에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취향을 저격했으리라(『슬로하이츠의 신』은 타 프로그램에서도 추천한 적이 있을 정도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블러드 차일드』 뒷편에 실린 「마사의 책」도 추천하셨으니 참고하실 분들은 읽어보셔라. 나 또한 단순히 소원을 다룬다는 점에서 영화 <3000년의 기다림>과 소설 『마법소녀 은퇴합니다』가 떠올랐기 때문에 같이 추천해본다.
스바루가 나쁜 게 아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지, 자신은 언제까지 이대로일지 모르는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보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조여든다. 갑자기 초조해지고 두려워진다. - P456
성 안의 다른 친구들 또한 주위에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그 사람이 그 아이들의 힘이 돼주기를, 하고 바란다. (…) 아키는 자신은 힘들 거라고 했었다. (…) 가능성을 생각해주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다는 얘기다. 아키는 어떻게 될까. 다른 모든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각자에게는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 너도 네 인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라.’ ‘똑바로 해라.’라고 야단치는 것으로 끝. 즉 아무도 나를 위해 필사적으로 애써주지 않는다고 스바루는 생각한다. 그런 게 편하긴 하지만 한편 (…) - 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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