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전후를 살피도록 풍부한 판별력을 부여하신 분이,
그런 능력과 존엄한 이성을 주었을 땐,
사용도 못해본 채 곰팡이가 생기도록
하시려 함은 확실히 아니렷다.
<햄릿> 4막 4장, 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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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지겨울 만하지만, 그래도 또다시 유튜브 이야기를 쓰고 싶다.
책들을 소개해서 올리는 '북튜버들'이 어떤 책을 올리는가를 대략적으로나마 관찰해 보니, 크게 두세 가지 분파로 분류할 수 있을 듯했다. 첫째는 이름난 서양 문학 고전파, 둘째는 소위 자기계발서(성공 노하우, 돈 버는 법, 부동산 등 재테크 서적 안내), 셋째는 힐링파(감성적인 시나 에세이 위주의 소개) 등이었다.
동서양의 이름난 고전을 소개해 주는 채널들 가운데서는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나 사마천의 <사기>뿐 아니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등을 소개하는 분들도 눈에 띄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작품> 등을 소개하는 채널도 살필 수 있었다.
한 가지 특별한 예외라면, 인류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에 대해서는 무명의 독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컨텐츠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해당 분야의 전문 교수나 문학평론가 등이 참여하여 제작한 'TV 방송용 컨텐츠' 말고는 정말로 눈에 띄지 않았다. 옳커니! 여기가 '사각지대'구나, 싶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는 동안에 미리 수집해 둔 100장에 가까운 '사진이나 그림'들을 이용해서 '동영상 컨텐츠'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했다. 기존의 자료에 새로 추가할 내용도 거의 없었고(심지어 헨리5세, 헨리8세, 리처드 2세, 리처드 3세 등의 이미지까지 두루 확보되어 있었다!), 영상물에 얹을 컨텐츠도 별로 새로 보탤 게 없었다.
해당 이미지에 알맞은 '간략한 해설'만 덧붙이면 되는데, 그걸 최대한 압축하는 데만 힘이 들었을 뿐이다. 가끔씩 니체가 했던 말들을 찾아 덧붙이는 것만으로도 '아주 그럴싸' 했다. 배경음악은 둘 가운데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잔잔한 쪽으로' 결말을 보았다. 셰익스피어야말로 영국이 자랑하는 대문호이니, 그에 걸맞게 영국의 국민 작곡가인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써서 만들었더니, 영상물과 겉도는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리어 왕>이나 <오셀로> 혹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얘기하는데 어찌 <위풍당당 행진곡>이 어울리겠는가.)
두 번째로는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배경음악으로 넣고 만들어 봤는데, 이 또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분위기가 너무 강렬하여, 템페스트 이외의 다른 작품들에 해당하는 영상이 지나갈 땐 음악이 약간씩 겉도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행진곡'보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훨씬 더 낫겠다 싶어, 결국 베토벤의 곡으로 결말을 봤다.
다 만들고 나서 '업로드'한 뒤에 영상물을 틀어 보니,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내용을 코멘트에 담은 게 아닌가 싶은 후회가 뒤따랐다.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만 해도 무려 37편이나 되는데, 일반 독자들이 과연 구석 구석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들까지 해설한다고 해서 얼마나 피부에 와 닿는 게 있을까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이나, 작품이 쓰여진 배경 지식까지 설명하느라 괜히 쓸 데 없이 다른 고전들을 지나치게 자주 거명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고작 10분 남짓한 영상인 데다가, 거기에 무려 스무 편 이상의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 속에 굳이 셰익스피어 작품과 연관된 다른 책들까지 소개하는 과욕을 부렸으니,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셰익스피어를 더 알아보기도 전에 지레 겁부터 먹지나 않을까 도리어 걱정이 될 정도였다.
내가 이 짧은 영상에서 들먹거린 고전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싶어 다시 한번 찬찬이 세어 보니, 무려 열 권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셰익스피어만 해도 벌써 숨이 차오르는데, 듣기만 해도 머리가 아픈 책들을 거기다가 잔뜩 덧보탰으니, 일반 독자들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었을 게 불보듯 뻔하다.
(이 영상물에서 언급된 또다른 책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올라누스>와 관련이 있다.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로미오와 줄리엣>의 출처와 관련이 있다.
T.S. 엘리엇, <황무지>, <코리올라누스>와 관련이 있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셰익스피어의 전 작품들과 깊은 연관이 있지만, 특히 <코리올라누스>와 관련이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_셰익스피어 편>, 셰익스피어의 인물평과 관련이 있다.
니체, <선악의 저편>, <햄릿>과 관련이 있다.
니체, <이 사람을 보라>, <햄릿>과 관련이 있다.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오셀로>와 관련이 있다.
리비우스, <로마사>, <루크리스의 능욕>과 관련이 있다.
마키아벨리, <로마사 논고>, <루크리스의 능욕>과 관련이 있다.
파스퇴르나크, <닥터 지바고>, <로미오와 줄리엣> 설명에 동원되었다.
헤럴드 불름, <교양인의 책읽기>, <햄릿>과 관련이 있다,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헨리 4세>에 등장하는 '폴스타프'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동영상 카메라 한 대' 없이 꾸역꾸역 유튜브 영상물을 어거지로 만들어 내고는 있지만, 구독자는 생각보다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구독버튼 하나 누르는 게 그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알라딘 서재에서 2003년부터 활동해 왔지만 내 서재를 즐겨찿기 등록한 서재인이 무려(!) 1,321명에 달하는데, 유튜브에서 내 채널을 구독하겠다는 사람은 고작 40명에 불과하다. 구독자를 100명 혹은 1,000명 모으는 일이 이렇게나 힘이 들 줄은 차마 몰랐다! 그런데, 구독자를 수만 혹은 수십 만씩이나 거느린 괴물들은 도대체 무슨 재주를 타고난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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