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소포클레스가 지은 순수 창작품일까? 아니면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전설이나 설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일까? 아니면 실존 인물이었을까?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으나, 나는 '실존 인물'에 매우 가까운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그 주요 근거는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쓰여진 여러 문헌에서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자주 등장하기 때문인데, 마치 트로이아 전쟁이 '신화나 전설 속의 이야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독일 고고학자인 슐리만에 의해 실제로 엄연히 존재했던 '고대 유적'으로 발굴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이디푸스 왕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은 고대로부터 너무나 유명한 탓인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도 등장하고,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헤로도토스의 『역사』,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또한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도 '오이디푸스 왕 일가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있으며, 소포클레스보다 좀 더 뒤에 활약했던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에도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과 연관된 작품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왕' 하면 그저 소포클레스가 순수하게 독창적으로 지어낸 작품으로만 알고 있는 듯하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년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까마득한 과거에 '비극 경연 대회'에 올려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니, 그런 작품들이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그 작품을 일부러 찾아서 찬찬히 읽는 독자들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시대를 달리 하는 여러 고대의 작품들에도 다양하게 실려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품들은 대개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트로이아 서사시권' 작품들과 '테바이권 서사시'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들로 대별되는데, 테바이권 서사시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가 바로 '라이오스 왕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이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대 그리스 비극> 33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존하는 비극 33편 가운데 '테바이권 서사시'를 다루는 작품은 불과 6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3부작'(『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인데, 이들 작품보다 몇 십 년 전에 쓰여진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라는 작품도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사실 아이스퀼로스의 그 작품도 고대의 비극 경연 대회에서 한 세트를 이루는 4부작인 <비극 3편 + 사티로스 극 1편> 가운데 1편일 뿐이었고, 다른 세 작품이 망실되었기 때문에 홀로 덩그러니 외따로 떨어져 쓰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원래는 제1부 <라이오스>, 제2부 <오이디푸스>, 제3부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사티로스 극 <스핑크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스토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고대 그리스의 천재 시인이었던 소포클레스의 '너무나도 독창적인' 순수 창작품으로 오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아무튼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테바이 왕조의 출발점인 카드모스 왕 때 저지른 과오가 '인과응보' 격으로 라이오스 왕에게 '신탁'으로 내려졌다고 하며,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결혼하게 될 자식을 낳을 운명이었던 라이오스 왕은 그런 엄청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식 낳기를 한사코 꺼리다가 결국 오이디푸스를 낳았는데, 이 자식을 낳자 말자 부하를 시켜 키타이론 산에 내버렸다는 것이고, 그 때 혹시나 몰라 어린 아이의 발목에 구멍까지 뚫어서 나무에 붙들어 매어 놓았는데, 그 자식이 기어이 양치기 목동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의 궁궐에 입양되고,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자 코린토스의 궁궐을 떠나 테바이까지 갔다가, 거기서 괴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영웅이 되어 홀로 남은 왕비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해서 15년 정도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양치기 목동에게 구출되는 오이디푸스)
그러다가 다시 나라에 큰 역병이 돌자 다시금 '신탁'을 묻게 되고, 신탁에서는 선대왕인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 징벌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신탁을 듣고 해결사를 자청한 인물이 바로 오이디푸스였고, 그가 사건을 파헤칠수록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범인임을 알게 되고(그는 테바이의 왕이 되기 전에 이미 '운명의 삼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신의 아버지를 사소한 시비 끝에 살해했다.), 결국 왕비인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달아 죽고, 자신은 죽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황금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테바이에서 자청하여 추방된 끝에 안티고네와 함께 방랑길을 떠나 콜로노스에서 죽는다는 얘기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이 떠난 이후의 테베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 번갈아 1년씩 통치하기로 했으나, 형인 에테오클레스가 통치한지 1년이 지나도록 왕권을 물려주지 않자 동생인 폴뤼네이케스가 아르고스로 망명하여, 거기서 테베를 공격할 원정군을 모집하게 되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 이야기가 바로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에 담겨 있다. 거기서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은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게 되고, 섭정을 맡은 크레온은 자신의 조국을 침략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말 것을 국법으로 공표하지만, 누이동생 안티고네는 '국법 보다 혈육의 정이 우선'이라며 기어코 오라버니의 시신을 매장하게 되고, 그녀는 끝내 사형을 언도받은 끝에 목을 매 자결한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이토록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은 '막장 드라마 중에서도 최고봉'을 자랑하지만,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 또한 이에 못지 않다. 펠롭스 가문의 저주로도 불리는 그 비극에서는 형제간의 왕권 다툼이 결국 아이를 삶은 고기를 바치는 것부터 시작되어, 자신의 정부(情夫)와 짜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아가멤논)을 죽이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모를 살해하는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남매의 이야기(『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등으로 이어진다.
아무튼 이런 얘기들을 두루 담아서 『오이디푸스 왕』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어떤 분이 정말로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왔다. 오이디푸스 왕이 어머니와 결혼하여 낳은 네 명의 자식은 '소포클레스의 창작'이냐, 아니면 그 전부터 전해온 이야기냐? 오래 전부터 전해온 이야기라면 그 출전은 어디냐? 라고 질문해 온 것이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제23권 678행 ∼680행에도 등장하고, 『오뒷세이아』의 제11권 271행 ∼280행에도 나온다는 답글을 금방(?) 달았더니(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어디쯤에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가 나온다는 얘기는 일부러 뺐다.), 이번에는 '오뒷세이아'를 통째로 외운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 책의 11권에 나오는지 알았느냐고 되묻는 질문이 달렸다.
암튼 알라딘 서재에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질문들을 잇따라 받고 보니,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왠지 신선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덕분에 이런 기상천외한 글까지 쓰게 되고...
유튜브 동영상 링크 주소는 ☞ https://youtu.be/KZxqeGxCFBg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