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만이, 그리고 그보다 좀 덜하지만 옹고집은 모든 기회에 억눌러서 나오지도 크지도 못하게 막아야 할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그들과 함께 커 간다. 그리고 주둥이에 이런 못된 버릇이 생기는 것을 놓아 두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놀라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 몽테뉴

 * * *

 

사람이 취할 현명한 태도의 하나는, 상대에 대해 위협하는 언사를 쓰거나 모욕하는 말은 절대로 삼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다고 해서 적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협하는 말은 도리어 상대를 더 조심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모욕을 하면 점점 더 분격을 돋구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분을 곯려 주려고 마음 먹게 하는 결과가 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 (중략)

 

 


이 점에 대해서 아시아에서의 유명한 예를 들기로 하겠다 …… (중략)

 


위의 사실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대개 군대의 명지휘관이라든가 뛰어난 정치가란, 자기네끼리나 적을 향하고 있을 때나, 시민이나 병사들이 이 같은 모욕이나 욕지거리를 내뱉는 일이 없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 두는 법이다. 그것은, 적을 향해 이런 언사를 사용하면 지금 말한 것처럼 터무니없는 변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는 이 역시 그 결과가 더 엉뚱한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누군가 뛰어난 인물이 나서서 어떤 수단을 강구해 두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지게 된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노예로 편성된 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노예군이란 로마인이 병사들의 부족으로 고민한 결과 노예에게 무기를 들려서 편성한 것이었다. 그가 취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가 상대를 노예 출신이라고 헐뜯는 짓을 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명령한 일이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로마인은 남을 헐뜯거나 남의 수치를 비웃는 것은 지극히 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본심을 말할 때는 물론이고 농담할 때라도,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고 화나게 만드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말(타키투스, 《연대기》XV,68)에 있듯이 '야비한 농담이란 그것이 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때는 더욱 가시 돋친 뒷맛을 남기는 법'이다.(406∼408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 《정략론》 제2권, <제26장 경멸, 험구를 일삼으면 미움을 산다>


(나의 생각)


역사를 살펴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토록 닮았을까' 싶은 대목을 마주치기 마련이다. 마키아벨리가 쓴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략론』제1권 제7장에 나오는 <탄핵권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또다른 대목에서는 '우병우'를 떠올리게 만들고, 어떤 대목에서는 '인명진' 혹은 '김문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다음 대목이 무려 500년 전에 마키아벨리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숱한 사람 사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정계에만 들어가면 재야 때의 뜻은 어디로 가 버리는지."(274쪽)


제2권 제26장의 내용을 인용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 대리인단을 떠맡은 일부 변호사의 '막말'이 생각나서이다. 그들은 그게 자신들한테 얼마나 불리한지조차도 모르는 듯하다. 하기야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장본인 또한 '일찌감치 접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아직도 아니라고?

 

 


 * * *


적을 향해 업신여기는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완전히 이긴 듯한 기분이 들거나 헛된 승리의 환상에 도취해 버린다. 그래서 우쭐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렇듯 헛된 승리의 환영에 도취하면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환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분수를 벗어나게 만들어 버리므로 어쩐지 미지의 훨씬 더 좋은 것이 잡힐 듯한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추구하다가 모처럼의 확실한 성과조차 놓치게 되어 결국은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치고 마는 결과가 흔히 있다. 이런 환영에 들뜬 사람들은 자기의 국가마저 해치는 일이 매우 많은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고금의 실례에 비추어서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론만으로는 명확하게 이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네에서 로마 군을 격파한 한니발은 카르타고로 사절을 파견해서 승리를 보고하고 지원을 구하게 했다. 이에 대한 방침이 카르타고 원로원에서 심의되었다. 개중에서도 나이 많고 현명한 시민인 한논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했다.


"이번 승리를 잘 이용해서 로마와 화평을 맺도록 합시다. 싸움에 이겼다는 것을 뒷받침으로 한다면 조건이 좋으므로 화평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깊이 쫓다가 지고 나서 화평을 맺으려 하면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리니까요. 왜냐하면 카르타고가 로마를 충분히 격파할 임이 있다는 것을 로마에 깨닫게만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카르타고인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승리를 장악한 이 마당에서는 너무 많이 바라다가 결국에 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티투스 리비우스, 《로마사》XXⅢ,11∼13)

그런데 실제로는 이 제안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렇듯 화평을 맺을 좋은 기회를 놓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카르타고의 원로원은 한논의 제안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던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 오리엔트를 정복했을 때 …… (중략)

 


1512년의 일인데, 에스파냐 군은 피렌체에 미디치 가를 복귀시킨 다음 …… (중략)

 


자기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군대에 공격당하는 군주가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큰 실패는 화목을 거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방 쪽에서 신청이 있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제시된 내용이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받아들이는 쪽이 유익한 조건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리자의 몸의 일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니발은 영광과 함께 16년간을 지낸 이탈리아를 뒤로 하고, 카르타고인의 요구에 따라 조국 구제를 위해 귀국해 보니, 눈에 비친 것은 하스드루발과 시파쿠스의 패전이고 누미디아 왕국의 상실이었다. 그리고 카르타고인은 그 성벽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겨우 구제의 길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은 한니발 자신과 그 군대밖에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조국이 최후의 막다른 곳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덮어 놓고 모든 것을 결전에 거는 것을 피하고 다른 수단을 써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조국을 구제할 길은 화평에 있지 전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순순히 평화를 구했다. 그런데 그의 화평 신청이 로마인에게 거부되자, 패전이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전쟁을 피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길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또 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명예로운 패배가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니발같이 기력이 충실하고, 또 무패의 군대를 이끈 명장이라도 패전을 당하면 자기 조국이 노예의 처지로 떨어지고 만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쟁보다도 우선 화평 공작을 구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한니발 정도의 기력도 없고 그의 경험의 발꿈치에도 못 따라가는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이란 자기의 희망을 어느 선에다 멈추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실패해 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제 실력을 냉정하게 측량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한없는 희망에 기대를 걸다가 결국은 파멸하고 마는 것이다.(408∼411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 《정략론》 제2권, <제27장 너무 과하게 바라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된다>


(나의 생각)


마키아벨리가 달아놓은 제목만 봐도 너무 웃긴다. "너무 과하게 바라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된다"니. 하기야 지금이라도 너무 늦지는 않지 않을까, 이리저리 재면서 뒤늦게 '본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뭐? 아직도 아니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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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자의 이름과 그 사람이 쓴 대표적인 작품의 이름, 이 두 가지만 딸랑 알고 있는 경우만 하더라도 도대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인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겐 마키아벨리와 그가 쓴『군주론』도 그런 경우의 하나였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가볍게(?) 뛰어넘어서,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한『로마사론』속으로 풍덩 몸을 담그고 보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가 내게는 어느새 몹시도 매혹적인 인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앞으로 차차 밝히겠다.


그런데 나는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의 말미에 딸린 105쪽 분량의 <마키아벨리에 대하여>를 무려 세 번씩이나 거듭해서 읽는데 더 열을 올렸다. 내게는『군주론』보다 '군주론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에 항상 바싹 따라 붙게 마련인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은 '이름'만 간략하게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정도이다. 그들을 대충이라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플라톤(특히 『국가』와 『고르기아스』),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 단테(『신곡』),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데카메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미켈란젤로(<천지창조>),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봄>), 갈릴레이, 셰익스피어(<리처드 3세>). T.S.엘리엇, 볼테르, 루소, 헤겔, 야콥 부르크하르트(『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등


방금 언급한 인물과 작품들 가운데서도 앞서 이야기한 경우가 거듭 반복된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만 아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오래 전에 '피렌체'를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록 마키아벨리의 무덤까지는 찾아가지 못했지만 단테의 생가에는 들렀었다.(그런 경험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결국 단테의『신곡』도 읽었다.) 그리고 피렌체 땅을 밟았을 때만 하더라도 '과학자'가 확고한 꿈이었던 아들(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을 위해 갈릴레이의 무덤까지 데리고 가기도 했었다. 또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도 봤고, (그보다 며칠 앞서) 로마에 들렀을 때에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도 직접 봤었다. 그러니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야기가 내게는 '이탈리아 여행의 추억'까지 곁들여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이름'만 들어왔던 체사레 보르지아를 마키아벨리의 생생한 필치로 직접 만나는 것도 반가웠고, 메디치 가문의 여러 인물들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복잡한 정치 환경을 헤아려 가면서,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혁신적인 정치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고자' 애쓰는 마키아벨리의 치밀한 연구를 살펴보는 일도 몹시 흥미로웠다. 하지만 『군주론』은 단기간에 너무 바쁘게 쓴 작품인 탓인지 '치밀한 논리 구성'이 돋보이는 웅장한 작품은 아닌 듯해서 약간 아쉬웠다. 냉혹하리만치 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솔직한 표현들이 조금의 체면치레나 가식도 없이 그대로 서술된 문장들이 가득차 있어 놀라웠지만 단지 그 '규모'가 미흡하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로마사론』을 읽어 보니 과연 '섬광처럼 번뜩이는' 마키아벨리의 혜안이 곳곳에서 번뜩이는 모습과 함께 웅장한 대건축물을 바라보는 듯한 치밀한 구성에 금세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얼마나 깊이 읽었고, 그가 익힌 역사적 사례들을 '당대의 정치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시켜 관찰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결국 그런 역사 연구를 통해 '동서고금을 통한 불변의 진리'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려고 엄청나고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던 셈이고, 그런 통찰에 가장 도움을 준 인물이 바로 로마의 역사가였던 티투스 리비우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키아벨리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또한 그가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만나는 장면이다. 마키아벨리의 어린 시절의 일은 수백 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부친인 베르나르도의 《회상록》이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발견되면서 비로소 밝혀졌다고 한다. 그 기록에 따르면 1486년, 마키아벨리가 17살 때, 이버지를 대신하여 리비우스의 『로마사』의 제본을 제본소에서 받아온 대가로 포도주 3병과 식초 1병을 받았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훗날 가장 기댔던 인물이 리비우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도 하나의 '운명'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실로 엄청난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리비우스의 『도시의 건설로부터』 (Ab Urbe Condita)는 총 142권으로 되어 있다. 아이네이아스가 로마를 건설한 기원전 753년부터, 드루수스(Nero Claudius Drusus Germanicus) 장군이 죽은 기원전 9년까지, 총 745년의 역사를 기록한 참으로 방대한 역사서다. 불행하게도 35권만 현존하고, 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권에서 10권까지 기술된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전 293년까지, 그리고 21권에서 45권까지 기술된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167년까지가 남겨졌다. 비록 그 내용은 4세기에 만들어진 ‘요약’(Periochae)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원래 책과 일치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소실된 부분이 있다. 현존하는 저술을 통해 로마 공화정의 시작과 절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리비우스 - 로마는 재건될 수 있을까? (정치철학 다시보기, 2016. 7. 15.)


마키아벨리가 쓴『로마사론』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총 142권 가운데 현존하는 35권, 그 가운데서도 '초편 10권'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미루어 짐작해 봐도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거의 줄줄 외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을 책 속에 쉴 새 없이 쏟아내고 분석한다. 그가 살던 시대의 혼란스러운 정치 환경 때문에라도 그는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군주론』에서도 거듭 주장했듯이, "군주는 역사서를 읽고, 그것을 통해 위인이 남긴 행동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티투스 리비우스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두 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플루타르코스와 몽테뉴를 꼽고 싶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몽테뉴의 『수상록』도 내게는 '이름'만 알려진 작가로 머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몽테뉴'의 경우에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1980년 겨울에 만났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무려 '10대'였다! 그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이 여럿 있으니 말이다. 플루타르코스와 티투스 리비우스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인데, 몽테뉴는 그 두 사람을 특별히 좋아했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살짝 비켜가기는 하지만, 마침 마키아벨리의 『로마사』에도 '플루타르코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그 대목을 여기에 잠깐 인용해 보고 싶다. 마키아벨리가 그 두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직접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로마 인민이 그 광대한 영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는, 최대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로서 플루타르코스는 다음의 내용을 들고 있다. 즉 '로마가 차지한 어느 승리를 보더라도 모두 행운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라고 로마 인민 스스로가 말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와 같은 행운이 초래된 것도, 인민이 다른 신은 다 두고라도 첫째로 '운명의 여신'의 신전 건립에 열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티투스 리비우스도 플루타르코스의 이런 생각에 가까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사서에서 로마인 등장 인물들의 입을 빌려 말했던 것을 검토해 볼 때, 로마가 가지고 있던 실력을 운이 좋다는 것과 결부시키지 않고 실력만을 운운하는 예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이런 의견에 찬성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의견에 가담할 사람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로마 정도의 발전을 이룬 공화국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어떤 공화국이라도 로마와 같은 큰 목적을 향해 국가 체제를 정비한 자가 없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대제국을 지배하여 다스렸던 것도 그 군사력 때문이고, 또 일단 성립한 대제국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대국가를 운영해 나간 그 솜씨와 로마의 기초를 쌓은 사람이 궁리해 낸 독특한 방법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지면을 할애할 작정이다.(312∼313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2권 제1장 <로마인이 광대한 영역을 확보한 것은 실력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운이 좋았기 때문인가>



티투스 리비우스와 플루타르코스에 대해서 덧보태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일례로,『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50명의 인물이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에 거의 다 등장할 정도인데, 그만큼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도 밀접하다. 플루타르코스가 리비우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둘은 생몰연대도 매우 가깝다. 이 두 사람에게 매료되었던 마키아벨리와 몽테뉴도 생몰연대가 매우 가깝다.) 대략 이쯤에서 접어야 마땅하다 싶다. 왜냐하면 내게 이 글을 쓴 동기를 만들어 준 '글뭉치' 하나를 여기에 마저 꺼내 놓아야만 내가 이 글을 끝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여기서 자꾸만 더 옆길로 샌다면 이 글은 너무나 길어질 게 뻔하다.


내가 말하는 글뭉치는 바로 몽테뉴의 『수상록』에 담긴 '티투스 리비우스' 관련 기록이다. 물론 이 글뭉치는 내가 몇 년 전에 『몽테뉴 수상록』을 읽고 나서 후끈 마음이 달아 올라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필사해 둔 것이며,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새로 첨가한 대목은 전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아예 몽테뉴의 『수상록』은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런 글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게 된 것도 다 '글뭉치' 때문이다.



 * * *


(몽테뉴의 수상록에 담긴 티투스 리비우스 관련글)


신념은 신의를 불러온다 144

너무 상냥하고 잘 살펴보는 예지는 고매한 사업에는 치명적인 적이다. 스키피오는 시팍스를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군대를 남겨 두고, 새로 정복해서 치안이 아직 의심스런 스페인을 떠나서 아프리카 땅으로 건너가던 때에, 단지 배 두 척을 가지고 적의 땅이며 야만인 왕의 세력권이고 신의도 믿을 길 없는 곳에, 아무 보증도 없이 인질도 잡아 두지 않고, 다만 자신의 위대한 용기와 자기 행운과 높은 희망이 약속하는 바를 믿고 뛰어들었다. "우리가 보여 주는 신념은 신의를 불러온다."(티투스 리비우스)



철학의 분석을 공부하게 173

나는 티투스 리비우스의 작품 속에 다른 사람이 읽지 못한 수백 가지 사물들을 읽었습니다. 플루타르크는 이 작품 속에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 외에도 수백 가지 사물들을 읽었고,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던 것 이상의 사연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순수한 문법상의 공부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속에 우리들 천성의 가장 심오한 부분들이 침투되어 있는 철학의 분석을 공부하게 합니다.



건강을 가장 가벼운 병만큼도 느끼지 못한다 528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 냉담하고 둔감한 취미를 갖는 것이 주는 편리함은 역시 그 결과로 해서 좋은 것과 유쾌한 것을 누리는 경우에도 예민하지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게 만드는 불편함을 이끌어 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비참한 조건으로는 즐겨야 할 것보다도 피해야 할 일이 더 많고 극도의 탐락은 가벼운 고통만큼도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게 되어 있다. "인간은 고통보다도 쾌락의 감각이 적다." (티투스 리비우스) 우리는 건강을 가장 가벼운 병만큼도 느끼지 못한다.


속인과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 688

한 아르팡의 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 전체에서 사람 열두엇만 뽑아 내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경향과 행동의 판단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어렵고 중대한 문제인데, 우리는 그것을 무지와 부정과 무절제의 원천인 속인과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에 맡긴다. 한 현자의 인생을 광인들의 판단에 매이게 하다니, 그것이 될 말인가?

"군중의 의지보다 더 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티투스 리비우스)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 870

나라가 동란에 빠지고 국민이 분열되어 있는 마당에 박쥐같이 휘뚝거리며 마음이 어느 편으로 움직이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훌륭하다거나 명예롭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중도를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길도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운의 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이다."(티투스 리비우스)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 997

이것은 날마다 경험하는 바이지만, 우리가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보다 더 위험한 경지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 위대한 장수의 증언이다. "대개 공포심이 덜할수록 위험을 덜 당한다."(티투스 리비우스)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 1161

플라톤은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병폐를 고치려고 폭력으로 평화를 문란케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고, 국민을 살육하고 피를 흘려 가며 하는 개혁을 용인하지 않았다. ······ 나는 이 방면에는 플라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부터 플라톤주의자였다. ······

나는 이런 일에 참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이런 가장 못된 사태를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행위를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택하며, 아주 확실하게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가장 명백한 원칙을 가지고 자기 영혼의 구제를 찾고, 하느님이 자기에게 맡겨 주신 정부와 관리와 법률을 둘러엎고, 어머니(조국)의 사지를 찢어서 옛날의 적에게 갉아먹게 던져 주고, 동포애를 골육상쟁의 증오심으로 채우고, 마귀와 광귀들을 원군으로 청하면서, 하나님의 법의 거룩한 평화와 정의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이해력이 우둔한 수작을 본 자가 하나라도 있을까 자주 의심을 품어 본다.


야심과 탐욕과 잔인성과 복수심은 그 자체로서 본연의 기세를 충분히 갖지 않았다. 그런 것을 정의와 신앙의 영광스런 자격으로 뜨겁게 해 주고 부채질해 주자. 도리에 어그러지고 흉악함이 합법적으로 되고, 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도덕의 망토를 입는 꼴보다 더 괴악한 사태를 상상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신보다 더 심한 기만은 없다. 그것은 신들을 구실 삼아 범죄를 은폐한다."(티투스 리비우스) 플라톤에 의하면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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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마무리하고 뒤늦게 '사진 촬영'을 위해 몽테뉴 수상록을 꺼냈다가 거기서 정말 뜻밖에도 '마키아벨리'를 만났다. 난 정말 몽테뉴(1533∼1592)의 책 속에 마키아벨리(1469∼1527)가 언급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몽테뉴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리 속에 '마키아벨리'는 그저 그림자 같은 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마키아벨리 Machiavelli, Niccolo 1469∼1527 이탈리아 정치 사상가 · 역사가, 피렌체 출생. 인문주의 교육하에 그리스, 라틴 고전 작가를 섭렵함. 광범한 독서로 인간 심리를 깊이 규명, 현실과 시대 풍조를 명민(明敏)하게 관찰했다. 피렌체 공화 정부에 들어가 국가적 중대사가 일어날 때마다 외교 사절로서 절충 역할을 해냈음. 《군주론》을 제출하여 국가의 성격과 종류, 국가 권력의 획득 방법과 유지, 국가 상실의 이유 등을 전장(全章)에 걸쳐 논하고, 정치 활동의 법칙은 도덕과 종교에서 분리되어 순수한 정치적 행위와 그 경험에서 추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주나 정치가에겐 목적 수행을 위해서라면 반도덕적 행위도 용납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에서 '마키아벨리즘'이란 어휘가 나왔다. 문학 분야에서는 여성을 조소하고 비난하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풍자한, 《군주론》을 이상화한 여러 저술이 있다. 특히 《피렌체사(史)》전8권은 과학적 근대 역사의 시초라 함.(1296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인명 찾아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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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2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각 개인의 평전도 뛰어나지만 다른 시대, 공간을 뛰어넘는 두 인물의 비교가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역사의 순환, 반복 또는 다른 선택의 결과를 통해 많은 통찰을 준다고 여겨집니다. oren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7-02-25 23: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절묘하게 짝지어 놓은 ‘대비 열전‘은 두 인물들에 대한 비교에서 역사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이 가득차 있더군요. 각 인물들에 대한 아주 상세한 <전기>에 비해 <두 인물간의 비교>는 때때로 그 분량이 너무 적어서 도리어 아쉬움이 느껴질 때도 있더군요^^
 


(밑줄긋기)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


피렌체의 신국가 조직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완벽한 계획안은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친 건의서에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군주론』을 헌정받은 우르비노의 공작 소(小) 로렌초 메디치가 죽은 뒤(1519년) 씌어진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가 제안한 수단과 방법도 모두 도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화국을 세워 메디치 가를 계승시키고자 한 것, 그것도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한 것을 관찰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교황과 그의 특별한 추종자들과 피렌체의 각종 이해관계에 대해 이보다 더 정교히 만들어진 방책은 생각하기 힘들다.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153쩍)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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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그밖에 그가 피렌체를 위해 제안한 많은 원칙과 세부적인 설명과 비유와 정치적인 관측은 『로마사론』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예컨데 그는 단속적이나마 진보를 계속하는 공화국의 발전법칙을 인정하면서, 국가는 유동적이고 변신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갑작스러운 사형선고나 추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 따라, 다시 말해 개인의 폭력과 외국의 간섭("모든 자유의 죽음")을 차단하려면 미움받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법상의 고소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렌체에는 지금까지 그 자리를 대신해 비방만이 있었다. 그는 또 공화국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큰 역할을 하는 부득이하고 때늦은 결단도 빼어나게 기술한다.(153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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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위대함


마키아벨리가 날카로운 관찰가라는 것, 그것은 그의 사무가 기질이나 재능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영국의 시인 비평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T.S. 엘리엇(1888∼1965)은 마키아벨리의 진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견유가(세상을 비꼬고 냉소적으로 보는 것)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에게는 견유주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생활이나 성격에는 그의 견해의 명석한 거울을 흐리게 할 만한 한 점의 약점이나 결점도 없다. 분명 세세한 점에서는 언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면 의식적인 냉소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그의 견해 전체는 그와 같은 감정적인 색채로 더럽혀져 있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같은 인생관은 순진한 상태라고 표현해야 할 영혼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의 정직성과 일반적으로 인간의 심정이 지니는 허위, 부정직,변절 등과 비교해 보고 그 차이가 막대하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의 보기 드문 위대함을 깨닫는 것이다."(《다른 신을 찾아서》) (60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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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편지들 가운데 1513년 12월 10일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요즘은 아침에는 태양과 함께 일어나서 늘 나무를 하는 나의 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럭저럭 2시간가량을 어제의 일을 정리하거나 나무꾼과 시간을 보냅니다. 숲을 나서면 나는 샘으로 갔다가 전에 장치해 두었던 새 올가미로 갑니다. 반드시 단테나 페트라르카의 시집을, 때로는 티브루스나 오비디우스 그 밖의 시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뭔가를 들고 가서 그들의 연정과 사랑을 읽고, 그리고 나의 경험과 함께 떠올리면서 한동안 즐거운 추억에 잠깁니다. 그런 다음 길가의 주점에 가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 나라의 진기한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인간의 다양한 취미와 발상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덧 식사시간이 됩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 누추한 별장과 나의 보잘 것 없는 재산이 제공해 주는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주점으로 돌아가지요. 해가 저물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갑니다. 입구에서 먼지와 진흙이 묻은 평상복을 벗고 예복으로 갈아입어 위엄을 갖춘 다음 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맞아줍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이고 나만을 위한, 나에게 익숙한 음식을 나에게 줍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취했던 행동의 동기를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4시간 동안 나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도 않고 고통도 잊고, 가난을 두려워않고, 죽음마저도 개의치 않게 되어 이 사람들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고 마는 것입니다."(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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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을 특징짓는 '포르투나' '네체시타' '콰리타 디 템피' '비르투' 등은 반드시 엄밀한 개념구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곳저곳의 문장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체로 '시류'라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대응하는 방식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즉 일반법칙을 세우기가 어렵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한편으로는 포르투나와 네체시타, 다른 한편으로는 콰리타 디 템피와 비르투가 있어서 그것들이 함수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통찰한 것은 무척 독창적인 생각이다. 독창적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의 역사철학자가 말하는 그런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서재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면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이론구성과 분석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럴 짬이 없다. 그의 사색은 항상 현실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론 따위는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의 《군주론》25의 맺음말은 그의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인생관에 가깝다.


"나는 용의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과단으로 흐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그녀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때려눕히거나 들이받거나 할 필요가 있는데 운명은 냉정한 방식으로 가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게 되는 것 같다. 요컨대 운명은 여성과 비숫하고 젊은이의 벗이다. 즉 젊은이는 사려는 깊지 않고, 거칠기 짝이 없으며, 지극히 대담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64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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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가 전제 권력을 유지하려고 사용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수단 가운데서도 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는 교활하게도 자기가 인민 측을 편들고 있는 사람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가 이런 짓을 한 것은 십인회에 재선을 노렸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를 귀족을 반대하는 측의 우두머리로 추대시키기 위해서도, 또 자기를 뜻대로 지지하는 여당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 특유한 수법이 빈틈없이 사용되었다.


여기까지는 아피우스도 잘해 냈으나, 내가 이미 말해 둔 경위로 갑자기 성격을 확 바꾸고, 평민의 벗에서 평민의 적으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263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1장 <겸양에서 오만으로, 동정에서 잔혹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은 생각이 얕고 무익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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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


십인회를 둘러싼 이상과 같은 문제를 검토해 보면, 사람이란 제아무리 선량하게 태어나고 제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해도, 아주 쉽게 타락해 버리고 또 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아피우스가 자신의 신변 호위를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은 청년들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약간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다는 조건만으로 참주 정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판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십인회의 멤버였던 퀸투스 파비우스도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도 본래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사소한 야심 때문에 분별을 잃은 데다가 아피우스의 악덕까지 물들어서 타고난 미덕도 내동댕이치고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게 되어 아피우스와 똑같이 되고 말았다.(263∼264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2장 <인간이란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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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2-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저 또한 저렇게 행동했던 적은 없었는가, 흠칫 놀라게 됩니다. 헌데 진화심리적학적 시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저러한 추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화는 도덕, 윤리, 양심적 측면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고 동시에 부도덕, 비윤리, 비양심, 교활함, 간교함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니까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두 범주 간의 길항작용 때문에(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번식하고 생존해왔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번식과 생존에 불리하더라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매사를 조회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변신과 변절의 치밀한 계산과정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역설에 마주치는군요. 정말 딜레마 중의 딜레마 같습니다.

oren 2017-02-25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저 대목을 인용했던 이유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변신 과정‘이 생각나서였답니다. 어느덧 탄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내내 지켜보면서, 어느새 ‘가면‘이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만 여러 정치인들의 추악한 몰골도 함께 떠올랐고요. 그런데, 그런 변신 또한 개체의 생존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처절하기도 하더군요. 사태가 어쩔 수 없이 파멸로 다가갈 때 온갖 추악한 자구책을 총동원하는 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그게 결국은 자신의 명예만 더 더럽히는 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땡스투는 살아 있다?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좋은 점 한 가지는 '책 제목'을 슬쩍 비틀기만 해도 생각보다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는 점이다. 아무리 국어 시간을 재미 없게 보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까 하는 말이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우리를 단번에 까닭모를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 강렬한 문장들을 누가 모르겠는가. 어느날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 한 조각'과 함께 그 산문 속을 나뒹굴던 슬픈 구절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지 못한 사람 또한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을 바라보면서 문득 까닭모를 슬픔을 느낄 때, 우리가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를 떠올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안톤 슈낙의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는 문장까지 다 떠올릴 필요도 없다. 그럴 땐 그냥 아무렇게나 슬픔 속에 그저 잠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어느날 문득 방 한 켠에 잔뜩 쌓아둔 '책의 무덤' 속에서 발견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하릴없이 저런 이상한 제목을 내세워 그 이야기를 여기에 꺼내보는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알라딘 적립금'을 바라볼 때마다 슬픔에 잠길 때가 있었다. 사고 싶은 책들은 많은데 적립금은 늘 부족하기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은 적립금이 너무 풍족하게 쌓여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며칠 전부터 알라딘으로부터 이상한 문자가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라딘 마일리지 ***점이 곧 사라질 예정입니다.'

 

처음엔 무시했다. 그까짓 거 얼마나 된다고... 그런데 며칠 지나니 또다른 '소멸 예정 안내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래도 무시했다. 소멸 예정일이 아직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며칠 지나니 또다른 액수의 '소멸 예정 메시지'가 들어왔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칫 어영부영하다가는 '진짜로' 마일리지를 허공에 날리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마일리지'를 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일리지 등이 쌓인 적립금'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최근 몇 달 동안 책을 거의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제의 신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구매의욕을 느끼지 못하겠고, 오래된 책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으니, 새로운 책을 구태여 살피고 고를 생각도 별로 없었다.


이미 방 한켠에 쌓인 책탑도 늘 부담스러웠다. 나는 저 책들을 볼 때마다 '안정된 주거지'를 마련해 주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저 책들을 볼 때마다 조금 안쓰럽다. 어딘지 모르게 한 켠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도 들고, 가끔씩은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마저도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책들이 바로 '나를 슬프게 하는 책들'이라고 단정지을 정도는 물론 아니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언제부터 저 책들이 저기에 내려앉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책들은 아직도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늘 저기에 머무르고 있다. 주인이 자리를 잡아주기 전까지는 언제까지나 저기서 '하얀 탑'을 쌓아올리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설명글을 달고 나니 문득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슬쩍 비튼 느낌도 든다. 어느새 '슬픔'이 밀려온다.)

 

'전망 좋은'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꼿꼿이 서 있거나 혹은 (서 있는 책들 위에) 떠받들려 편히 누워 있는 다른 책들에 비해 저 책들의 신세는 얼마나 가련한가.


 

 

어쨌든 저렇게 책탑을 쌓고 누워 있는 책들 가운데서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한데, 또 책을 사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마일리지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서 억지로 책을 사야 하는 '이상한 처지'에 갑자기 내몰린 것이다.

 

나는 여태 한 번도 책을 억지로 강요당하면서 사 본 기억이 없다. 책을 고르고 사는 일은 늘 즐거웠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을 골라 사는 일이 고역으로 뒤바뀌었다. 어쨌든 나는 책을 골라야 했다! 푼푼이 모은 돈을 한 푼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너무 늦지 않게 필사적으로 책을 골라야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르고 고른 책들은 '언젠가는 내가 꼭 읽을 책들'이라고 기필코 확신하는 책들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다섯 권을 골랐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으로도 봤던 작품인데, 여태 읽어보지 못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을 읽을 때 사무엘 베케트가 마침 더블린 태생이자 제임스 조이스의 조수로도 일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랬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니체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인물이다. 그 두 사람은 한때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수로 함께 활동했었다. 니체는 그의 강의에 매료되어 교수 신분이지만 학생들과 함께 그의 강의를 찾아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부르크하르트의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정략론』을 살펴보다가 뜻밖에 다시 마주친 책이다. 부르크하르트는 마키아벨리에 대해 심도깊게 분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위인이란 무엇인가』는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번에『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으면서 에머슨이 바로 그 책에 완전히 매료됐던 사람이란 걸 발견하고 결국 구입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젠가는' 읽을 책이라서 아직은 틈나는 대로 계속 모으고 있는 중이다. '먼 훗날 읽을 책들'을 느릿느릿 장만해 가는 즐거움도 맛볼 겸.)


이렇게 심사숙고한 끝에 다섯 권을 골랐고 오래도록 쌓아놓기만 했던 적립금 잔액(83,930원)도 한 순간에 5,420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겨우 책 한 권 살 형편도 못 되는 적립금 잔액은 나를 다시 슬프게 한다! 'TTB 광고 간판'까지 만들어 몇 달 내내 내걸어 봐도 고작 10원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니까 말이다.


내가 책을 주문할 때 'Thanks to' 버튼을 일일이 눌렀다는 점도 마저 밝히는 게 좋겠다. 비록 책을 구매하는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별다른 혜택이 없지만, 글 작성자에겐 '뜻밖의 소득'인 '땡스투 적립금'이 분명 쌓일 테고, 그 분들이 쓴 글 덕분에 내가 책을 구입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책을 구매할 때 '땡스투 버튼'을 눌러주는 정도의 서비스는 마땅히 해드려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땡스투 적립금'이 나도 모르게 불어나 있을 때 맛보는 기쁨을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1년 내내 쌓이는 적립금이라고 해봐야 『고도를 기다리며』한 권 사 볼 액수에 겨우 미칠까 말까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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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쓴 글에 대해서까지 '땡스투' 버튼을 눌러준 분들께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고마움'을 느낀다. 알라딘에 글을 써 올린 보람을 새삼 음미하는 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내 방 한 켠에 쌓인 책들이 '다섯 권' 늘었다. 저 책들이 서로 누르고 눌리며 낑낑거리는 듯한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가끔씩 저 책들이 내게 전해주는 알 수 없는 '무게'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내 방안에 머물고 있는 책들 가운데 저 책들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하는 책들은 별로 없다.

(가장 무거운 책들을 맨 아래에 쌓아 두는 게 맞겠다 싶지만 그게 뜻대로 지켜질 리는 없다. 아직은 책탑이 안정적인 자세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짓눌리는 책들한테 미안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쌓아올리기엔 무리다 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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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2-16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굉장합니다.
저두 한달에 한번은 구입해요. 언젠가 읽겠죠?

oren 2017-02-16 16:00   좋아요 2 | URL
언젠가는 읽히겠죠?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요.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왕창 내다버릴 궁리도 하고 있답니다^^

qualia 2017-02-17 14:05   좋아요 0 | URL
oren 님, 책 내다버리지 마세요. 헌책방에 갖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헌책방에 갖다주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면 도서관에 기증하면 웬만한 책들은 거의 다 폐기처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한 대학도서관에 가서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고물폐지로 처분해 커다란 트럭으로 실어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이 좁아 소장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울나라 도서관 대부분이 자료 보관/기록 보존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책들을 땅 속에 묻어 폐기처분한 도서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러나 헌책방에 갖다주시면 언젠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사다가 읽게 될 것이란 얘기죠. 헌책방에선 폐기처분되는 불상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헌)책들이 폐기처분되는 비극을 면하고 새 주인을 만나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oren 2017-02-17 15:43   좋아요 0 | URL
‘책의 보고‘여야 할 도서관에서 책을 그토록 야만스런 방식으로 매장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끔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내다버릴 책들은 ‘사 두고도 오래도록 읽지 않은 책들‘인데, 한때 화제를 모으면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진 책들이 많습니다. 헌책방에 갖다주면 흔쾌히 받아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qualia 님 말씀대로 해봐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cyrus 2017-02-16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땡스투 적립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땡스투 적립금이 많이 받는 책은 독자들이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신간도서의 리뷰나 신간도서가 포함된 페이퍼가 땡스투 적립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간도서에 대한 소개가 한 줄 없는 페이퍼나 알라딘 책 소개를 똑같이 복사해서 붙여쓰는 페이퍼가 땡스투 적립금을 받는 상황이 솔직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올해도 미운 털 많이 박힐 겁니다. ㅎㅎㅎ

oren 2017-02-16 18:16   좋아요 1 | URL
구매자에게도 똑같이 지급했던 땡스투 적립금이 어느날 갑자기 글 작성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쪽으로 바뀐 건 지금도 여전히 아쉽더군요. 그렇게 제도가 절름발이 식으로 바뀌고 나서 ‘땡스투 적립금‘을 주목적으로 하는 불순한(?) 글쓰기가 많이 줄어든 점은 환영할 만했지만요^^

카스피 2017-02-1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책탑 대단하시네요.개인적으로 사진속으 마하바라타가 제일 탐나네요^^

oren 2017-02-16 18:18   좋아요 1 | URL
『마하바라타』는 큰 맘 먹어야 읽을 수 있는 작품일 듯해서 아직은 저도 구경만 하고 있답니다^^

[그장소] 2017-02-1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남의책장은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내려앉은 책들도 와~ 부럽고 좋네요. ( 응?) 내 책장도 아니건만..

oren 2017-02-16 18:20   좋아요 1 | URL
남의 책장 속에 담긴 책들은 슥~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더군요.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말이지요^^

양철나무꾼 2017-02-16 1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책들도 그렇지만 책탑을 저렇게 이쁘게 쌓을 수 있다니...
님을 존경하게 되는거 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거 반...그렇습니다.
전에 서재 공개하는 페이퍼 때도 눈이 호강했는데, 요번에도 호사를 누리네요. 고맙습니다, 꾸벅~(__)

oren 2017-02-17 12:24   좋아요 1 | URL
책탑이 평상시에도 저런 모습일 리는 없겠지요.
사진에 담기 위해 이번에 자세를 조금 가다듬었다고 보셔도 됩니다^^

책읽는나무 2017-02-16 2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늘 현학적인 리뷰를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내공들이 서재와 책탑을 구경하다보니 역시!! 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도 양철나무꾼님처럼 깔끔하고 예쁘게 쌓아놓은 책탑에 감탄했습니다.
부러운 책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구경하기 힘든 남의 귀한 책들 구경 잘하고 갑니다^^

oren 2017-02-17 13:28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 님 반갑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베어드는 ‘현학적인 냄새‘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는데, 그게 여간해선 고치기 힘든 악습으로 어느새 굳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한 권의 책과 새로운 기원



내가 한창 '청춘'을 보낼 때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나는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뭔가 모를 불안을 느끼곤 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갑작스레 병역을 마치기 위해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나만 혼자 전방부대에서 낙오자처럼 뒤로 처져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걱정을 했더랬다. 그래서 그때 갑자기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반쯤은 '공부삼아서' 그랬다고 쳐도 좋았다.


PX에서 구입한 대학노트를 낙서장 겸 '독서노트'로 삼았다. 언제 어디서 주워들은 문구인지는 몰라도 '칸트의 묘비명'까지 떡하니 내걸어 놓았다. 1984년 가을이었으니 상병 계급장은 달았을 듯하고, 전역을 1년 가량 앞둔 때였다.



(독서노트 앞표지를 넘기면 컬러 내지가 한 장 더 있었다. 거기에 내 소속/이름과 함께 저런 걸 적어 놓았었다.)


그 당시에 내가 주로 읽었던 책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이었다. 그 책은 내가 입대하기 전에도 가끔씩 들춰본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나와 함께 자취를 하던 형이 큰 맘 먹고 '전집'을 한꺼번에 마련해 놓은 덕분이었다. 나는 읽고 싶은 책들을 두어 권씩 골라서 형한테 편지를 보냈고, 형은 그때마다 그 책들을 어김없이 소포로 내게 보내줬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책들을 단 한 권도 간수하지 못했지만, 그 책들의 목록은 아직도 '독서노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서노트'에 기록해 놓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목록. 그 당시 책들은 대개 세로로 쓰여진 데다가 국한문 혼용이 기본이었다.)


이 때 읽었던 책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책들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Ⅰ,Ⅱ』, 플라톤의 『국가』,『소크라테스의 변명』, 홉즈의 『리바이어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분』, 막스 베버의『사회경제사』, 슘페터의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등이다. 그런데, 독서노트를 살펴 보면 내가 꼭 《세계사상전집》만 읽은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사상전집'보다는 '문학'이 훨씬 더 읽기 쉽고 재미있었으니 당연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독서 취향'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제는 어느덧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괜한 불안감도 다 사라지고 없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세계사상전집》류의 책들에 대해 좀처럼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2010.12.31 '독서노트'에 적어 놓은 메모이다.





오래 전에 내가 독파하리라 마음먹었던《세계사상전집(전32권)》은 어느새 홀연히 내 곁을 모두 떠나고 말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되찾지 못해 그렇게 안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다행히 그와 비슷한 역할을 떠맡아 주는 책들을 적잖이 갖고 있다. 그건 바로《동서문화사 월드북》이다.


여러 해 전에 나는 이 책들을 한꺼번에 몽땅 구입해서 동네 도서관에 기증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전집의 권수가 179권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살펴보니 그 목록이 무려 259권으로 불어나 있다. 대략 5년 만에 80권이나 불어난 셈이다.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을 책들의 목록'이 풍성해지는 걸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는 별로 없을 듯하다. 죽기 전에 다 읽으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 문득 심심풀이삼아 그 목록에서 내가 읽은 책들을 다시 꼽아 보니 대략 60권쯤 되는 듯하다. 까마득한 옛날 군복무 시절에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을 바라볼 때만 하더라도 저 많은 책들을 도대체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격세지감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저 목록에서 내가 숱하게 눈독을 들이고도 여태까지 읽지 못한 책들도 무려 200권 가량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과연 어느 세월에 나는 저 책들을 '제법' 읽을 만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 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그래도 나는 희망마저 버리지는 않겠다. 그리고 나는 이미 스스로 위안을 얻는 방법까지도 일고 있다. 내가 이번에 기댈 사람은 예전에도 여러 차례 불러냈던 클리프턴 패디먼이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2017년 2월 현재까지 내가 읽은 고전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겹치는 책들>
(다른 출판사의 판본을 통해 읽은 책들도 많지만 일부러 '월드북 시리즈'의 이미지와 상품으로 표시해 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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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2-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깊은 독서 성찰은 시간의 깊이와 여러 분야의 폭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네요^^: 귀한 자료 통해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11 11:34   좋아요 1 | URL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니 문득 ‘가고 없는 날들‘과 ‘떠나고 없는 책들‘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그래서 옛날 추억을 더듬거리다가 이런 글까지 남겨보게 되는군요. ㅎㅎ

cyrus 2017-02-11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정도면 oren님 같은 애서가들이 한 번쯤 도전해볼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일부 어떤 책은 번역에 문제가 있고, 오자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특히 제가 읽은 동서문화서의 막심 고리키 선집은 최악이었습니다.

oren 2017-02-11 11:58   좋아요 3 | URL
저도 무작정 동서문화사 월드북을 추천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랍니다. 다른 훌륭한 번역본을 도저히 찾기 어려울 때 <동서문화사 월드북>이 훌륭한 선택지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답니다.(제가 지금 다시 살펴봐도 이 목록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으로 읽은 책들은 몇 권 되지 않네요. 몽테뉴의 <수상록>, 쇼펜하우어의 책,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 다윈의 <종의기원>, 아우렐리우스와 키케로의 책,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번역‘때문에 책을 읽는 데 곤란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데, cyrus 님께서는 밝은 눈으로 번역의 여러 문제점들을 찾아 주셔서 다른 독자분들이 책을 고르는 데 많은 도움을 드리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플라톤에게서조차도 흠을 찾아내는 사람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얘기는 이럴 때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 싶기도 합니다.^^
* * *
하지만 티마이오스가 그런 말을 《역사》에 쓴 까닭은 필리스투스 글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 고치게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조차 흠을 찾아내는 그 사람의 글쟁이 기질 때문이리라.

나는 이처럼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다른 사람 책과 경쟁을 일삼는 일은 어떤 경우에든 학식이나 자랑하려는 천박한 짓이라 여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로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일 때에는 더 의미 없는 일이 되리라.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니키아스 편> 중에서

qualia 2017-02-11 21:49   좋아요 2 | URL
oren 님의 플루타르코스 경구 인용은 저한테도 뜨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철학자와 편집자들의 주된 관심사와 업무 중 하나가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흠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석과 비판, 교정과 완벽 추구의 정신입니다. 따라서 플루타르코스의 경구는 맥락과 문맥을 살펴 다중적 의미로 이해하고,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심지어 플루타르코스의 저러한 견해는 비판받을 여지도 있습니다.

철학자나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독자들 가운데는 아주 섬세하고 민감한 독서감각을 지닌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책을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읽게 됩니다. 단지 따지기 위해, 흠을 찾아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섬세하고 민감한 독서감각이 책이나 글을 그냥 읽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죠. 해서 그런 심성이 분석과 비판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겠죠.

oren 2017-02-12 00:49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제가 부분적으로만 인용했던 플루타르코스의 문장은 전후 맥락을 모두 생략한 채 인용하기에는 조금 무리다 싶어서, 저도 인용하기 전에 여러 번 망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역시나 제가 염려했던 대로 qualia 님께서는 바로 그런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구요. 어쨌든 플루타르코스가 저 문장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제가 여기서 다시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기는 힘들겠습니다만, 플루타르코스가 ‘티마이오스의 역사 서술 방식‘에 대해서 작심하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조차 흠을 찾아내는 그 사람의 글쟁이 기질‘이 아니었나 싶구요. 그런데, 전혀 다른 측면에서 제 인용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면, 플루타르코스의 티마이오스에 대한 비판은 사실 ‘번역 비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제가 인용했던 부분의 앞뒤 여러 문장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 보니, 맥락으로 보아 앞서 인용했던 저 문장들과 두루 함께 살펴봐야 할 부분들이 참 많네요.. 그 가운데 앞부분만이라도 조금 더 덧붙여 ‘넓은 이해‘를 구해 보고 싶습니다.^^
* * *
그런데 투키디데스는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매우 처절하고도 생생한, 아름답고 세련된 묘사를 알맞게 사용해 읽는 이 마음을 움직였지만, 나는 그런 글재주와 다툴 생각은 없다. 또 나는 티마이오스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역사》를 기술해 투키디데스보다 뛰어난 문장력을 선보였고, 필리스투스를 군말이나 늘어놓는 초보자로 만들었다. 그는 두 역사가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썼던 육지와 바다에서의 싸움에 대한 기록과 그들의 공개 연설들 안에 자기 묘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시인 핀다로스 시구에 나오는 사람처럼 되었을 뿐이다.

맨발로 뛰며 리디아 전차와 경쟁하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치졸하고 어설픈 작가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치 시인 디필루스 시구와 같다.

시킬리아산 비곗덩어리로 가득찬 둔한 머리

캐모마일 2017-02-11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저도 독서 노트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위 사진처럼 멋있는 서채에 수준 있는 고전은 아닐지라도
조금씩 실천해 가야겠네요.
귀감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12 00:44   좋아요 0 | URL
제 경험에 비춰봐서는, 독서 노트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겨보는 것도 꽤나 유익하더군요.

pb 2020-03-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블로그는 안하시나요?

- 2024-03-09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존경합니다 기록사진과 목록에 담긴 정성과 진심이 느껴지네요.. 은은하게요..
저도 고전부터 파려고 합니다. 두려움에 쫓겨사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명상과 함께 스토아철학책들을 푹 익혀먹으려고 합니다. 오랜시간, 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고전들은 그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하고요. 세네카의 이 인생론과 몽테뉴의 수상록으로 시작하려고요. 타타르인의 사막도요. 나심탈레브의 추천도서대로 읽고 있습니다. 말이 너무 많았네요 언젠가 한번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oren 2024-03-12 18:24   좋아요 0 | URL
정성이 가득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고전의 향기‘ 따라 즐거운 독서 산책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