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내형제 그리운 얼굴들
그아픈 추억도
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 *

 

 

1987년 한 해 동안의 격동이 2017년과 비교될 만할까? 자세히 살피면 적지 않은 공통점을 찾아낼 수도 있지 싶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가 있다. 거기엔 '3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의 간극이 가로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군부 독재에 항거하다가 때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만큼 비극적인 경우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그토록 가슴아픈 사건을 다룬 영화 『1987』이 상영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지 보름이나 지났지만 선뜻 발걸음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자주 함께 영화를 봐왔던 아내는 대학 졸업을 1년 앞둔 딸과 함께 스페인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버렸고, 어느새 '1987년때 나의 처지'와 엇비슷한 나이가 된 복학생 아들은 '아빠 혼자 보고 와요' 라는 시큰둥한 말로 '동반 감상'을 가볍게 거부하고 만다. 이래저래 혼자 가야 할 판이다.

 

전방부대에 근무할 때 경험했던 '영하 26도'를 다시금 생생히 떠올릴 만큼 매서운 혹한이 찾아왔지만 밤늦게 홀로 영화관을 찾았다. 좋은 좌석을 골라 늦은 밤 '홀로' 차분히 감상하기 위하여 예매해둔 날짜가 마침 어젯밤이었다. 날씨 때문인지 제법 많은 좌석이 비어 있었고, 맨 앞에서 다섯 번째줄 한가운데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고작 스무남은 명쯤 되어 보이는 관객 가운데 맨 앞 좌석에 홀로 오도카니 앉은 꼴이 되었다. 시야를 방해하는 게 아무도 없어서 영화에 몰입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 악명 높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빠른 전개와 긴박감 때문에 금세 몰입되었다. '공안검사 최 환' 역을 맡은 하정우의 연기에 차츰 끌려드는가 싶다가 순식간에 '박처원 치안감' 역을 맡은 김윤석의 연기에 급속도로 빨려드는 느낌도 잠시였다. 군부독재 정권을 송두리째 뒤흔들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가증스런 은폐 조작과 '진실'을 밝히려는 거센 저항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현장들이 격랑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공안검사는 특유의 깡다구로 버텨보지만 역부족이고, 부검의는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당황하여 그만 '고문치사 정황'들을 누설하기에 이르고, 사건은 점차 일파만파로 확대되고 순식간에 '정권 안보 차원'의 문제로 급부상한다. 기자회견장에서 치안본부장이 '대학생 고문치사 사인'을 두고 어물쩡거릴 때 치안감이 해명했던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말은 다시 들어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혹하면서도 너무나 어이없다. 어느 누구나 인간은 '참나무나 진흙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가 있을 터이고, 친척이나 친구들도 여럿 있게 마련인데, 어떻게 저토록 뻔뻔스런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토록 어이없는 말은 '비극적인 사건을 둘러싼 온갖 은폐와 조작과 억압과 불의의 아주 자그마한 시작'에 불과했다. 군부정권과 검찰과 경찰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온갖 조작과 회유와 협박을 서슴치 않았고, 졸지에 자식과 조카를 잃은 박종철 군의 부모와 삼촌은 도리어 죄인처럼 따돌려지고 억압받는 신세로 내몰린다. 고문치사에 가담한 부하들을 입막음하기 위해 대공수사처 간부들은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기 위해 폭력은 물론 가증스런 협박과 회유를 서슴치 않는다.

 

이 와중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하고, 대학가의 시위는 나날이 더 거세진다. 이럴 때 바로 기름을 붓는 '대통령 특별 기자회견'이 열린다. 이른바 '4.13 호헌 선언'이다. 5.18 광주 학살이라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독재자의 가증스런 기자회견을 지켜본 국민들의 가슴은 순식간에 거센 분노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당시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4학년생이던 나는 '그날의 기분'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하던 따스한 봄날이었다. 연초부터 고문 치사 사건 때문에 가뜩이나 교내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차였던 터라, '호헌 선언'은 가슴 속에 흐르던 피가 거꾸로 치솟는 듯한 격분을 불러일으켰다. '저 놈이 마침내 실성했구나,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당장 저 살인마를 때려 잡으러 청와대로 쳐들어 가자..'  대통령 담화를 지켜본 학생들은 너나 할것없이 분노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

 

산발적으로 계속 이어지던 교내 시위는 어느새 일과가 되기 시작했고, 학과별 비상대책모임 등에서 '수업 거부'도 속속 결의되었다. 학내 시위는 차츰 교외 시위로 번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6.10 대규모 시민 항쟁'을 하루 앞둔 '출정식'에서 연대생 이한열 군이 최루탄에 맞고 의식불명에 빠지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마침내 6월 10일이 되자 그 무덥던 초여름의 날씨는 그날따라 오전부터 무더위로 푹푹 찌는 듯이 더웠고, 전국의 대학생이란 대학생은 모조리 시내 중심가로 쏟아져 나올 정도로 시위가 격렬하게 벌어졌고, 이른바 넥타이 부대 시민들까지 시위에 가세하면서 '시민혁명'이라는 역사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날 아침 일찍부터 교내에서 스크럼을 짜고 시위를 벌이다 이내 교문을 벗어나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면서 외쳤던 구호가 바로 '호헌철폐! 독재타도!' 였다. 피끓는 젊은이들이 분노를 가득 담아 외치는 그 절박하고 우렁찬 외침들을 어느 시민인들 외면할 수 있었으랴.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종로로, 무교동으로, 시청앞으로 떠밀리듯 밀려 갔고, 새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뜨거운 박수로 호응해 줄 땐 금방이라도 눈물이 솟을 만큼 감격에 겨운 기분도 맛봤다.

 

 

그날의 분노와 함성을 영화 속에서 다시 듣는 순간들은 정말로 감동이었다. 모든 걸 그 때 그 시절로 순식간에 되돌려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런 '감정이입'은 이미 대학 신입생 '연희'가 시위 현장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잘 생긴 대학생 오빠'를 만나던 순간부터 마음 속에서 시작되었던 듯하다. 신군부가 막 들어섰던 81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던 내가 더러 가담했던 시위 현장에서 우악스런 경찰한테 붙잡히기 싫어 도망치느라 오금이 저릴 정도로 죽자살자 내뺐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매캐한 최루탄 가스에 눈물콧물이 뒤범벅이 되어도 함부로 비비지도 못하고 수도꼭지 밑으로 얼굴을 들이밀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연희가 시위 현장에서 만났던 학생은 마침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연대생 이한열이었다. 그 오빠를 좋아해 써클룸까지 찾아간 연희는 '광주사태 비디오'를 난생 처음으로 보게 된다. 내가 입학한 81년부터 대학 축제때마다 대학가에서 단골로 상영되던 다큐멘터리 비디오였는데, 1987년까지도 '광주의 진실'은 어둠 속에서 몰래 겨우 들여다볼 수 있는 '금서' 같은 역사로 머물러 있었다. 

 

나는 광주 사태가 일어난 때만 하더라도 고3이어서 '세상 물정'을 자세히 몰랐지만, 10.26 이후 '국보위'를 통해 실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이 몹시 악랄하고 잔인하다는 사실을 5.17 사태 즈음부터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비록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는 고3 수험생이었지만, 5월 18일 밤늦도록 켜 놓은 라디오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오던 아나운서의 떨리는 목소리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광주 시내는 진압군과 시민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졌고, 수백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 시간 현재까지도 소요 사태는 진정이 되지 않고 있으며... 전남도청을 점거한 시민군들은 ... " 정규방송이 갑자기 중단되고 '긴급 뉴스'로 아주 긴박하게 전해지던 그 뉴스는 불과 4분 내지 5분도 못 되어 강제로 중단되었고, 라디오 방송은 다시 '편안한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했지만, 그때 새가슴처럼 팔딱거리던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마음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더랬다. 어떻게 한 나라의 군대가 자기 나라의 시민과 학생들을 향해 저토록 잔인하게 총탄을 무차별로 퍼부울 수 있단 말인가.

 

'4.13 호헌 성명 발표'를 영화 <1987>에서 다시 보는 건 여간 끔찍한 게 아니었다. 저 괴수같은 인간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더란 말인가.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또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과 학생들이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참담한 고통을 겪었더란 말인가. 그 비참하고 아픈 역사는 아직까지도 진행중이다. 그런데도 우린 아직까지도 저런 악당 하나 제대로 깔끔하게 단죄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야기가 너무 곁가지로 흐른 듯하다. 다시 영화로 돌아오자.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4.13 호헌 조치 발표에 뒤이은 6.10 시민 항쟁과 이한열 열사 시민 민주장을 정점으로 막을 내린다. 1966년 8월에 태어났던 연세대 2학년생 이한열 군은 1987년 7월 5일에 꽃다운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최루탄을 직격으로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면서 축 늘어진 모습으로, 안개처럼 자욱한 최루탄의 포연 속에서 친구의 부축을 받으며 끌려 도망치는 모습은 마침 현장에 출동했던 로이터 기자에 의해 촬영되어 온갖 신문들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아마도 당시에 중고등학교 정도 다녔던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다 기억할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장면을 실감나게 재연한 배우 강동원의 모습이 얼마나 그 당시 실제 상황과 유사한지 깜짝 놀랐다. 시위 도중 쓰러져 의식조차 희미해진 그 순간까지 그의 발에 신겨진 '연희'가 사 준 신발도 자못 감동적이었다.

 

(맨 왼쪽에 있는 학생은 1987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 간부였는데 영화 『1987』에서 치안본부장 배역을 맡았다. 가운데는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던 우상호 민주당 의원.)

 

이 영화를 보면서 '옛날 생각'이 너무 많이 떠올라 참 많이 놀랐다. 고3때 나는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5.18 광주사태 이후로 강제로 정권을 탈취한 신군부에 항의하는 표시로 '교련 수업'을 거부했던 일까지 떠올랐다. 교련복을 입은 채 교련 시간 내내 학교 운동장에 모여 앉아 아무런 구호도 없이 '침묵 시위'를 벌였던 일. 고3때 한문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허구헌 날 '내 아들놈이 서울서 대학 댕기는데, 맨날 데모만 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데이, 니들은 지발 서울로 올라가거등 데모할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레이~' 했는데, 이듬해 내가 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바로 한문 선생님의 아들이 내가 입학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일(그 선배는 고교와 대학 동문이라 지금도 가끔 만난다), 대학 1,2학년때 시위를 벌이다 구속되거나 강제 징집을 당해 군대에 끌려갔던 많은 학우들, 군대에서 자주 만났던 '강제징집으로 끌려온' 운동권 출신의 선배님, 사회생활 이후 차츰 운동권에서 멀어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 간 많은 친구들의 모습까지도.

 

다른 한편으로는 30년 전에 우리가 살던 당시의 생활상도 생생하게 되떠올릴 수 있었다.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한 학기 등록금이 40만원 남짓 했던 듯하고, 학교 앞 하숙비가 월 3만 5천원 정도 했던 일. 하숙집 전화기는 아줌마가 철저히 감시하기 때문에 시골에서 상경한 고향 친구들이나 미팅에서 만난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올 때도 눈치를 봐야 했던 일, 학교앞 커피숍엔 별로 가지도 않았지만 커피엔 언제나 계란 노른자를 띄워 주던 일, 커피 한 잔 값이 120원이었다가 150원으로 오르고 나중에는 무려 200원까지 올랐던 일, 학교앞 분식집에서 파는 떡라면이 250원, 백반이 400원쯤 되었던 듯하고, 주머니엔 회수권과 천 원짜리 한 두장이 고작일 정도로 늘 '돈이 궁했던' 일까지도...

 

그러고 보니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싶다. 내 아들이 어느새 대학을 다니다 군대를 다녀온 뒤에 다시 복학을 했으니, '한 세대가 대략 30년'이라는 말이 진정 실감이 난다. 영화 <1987>의 주인공이자 이미 고인이 된 박종철 군(1964.4.1∼1987.1.14)이나 이한열 열사(1966.8.29∼1987.7.5)도 나보다 어린 나이였는데, 그들이 의로운 죽음으로 고인이 된 지도 벌써 30년이나 지났으니 나도 결코 적게 산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영화를 '홀로' 너무 진지하게 몰입해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몇 차례나 눈시울을 붉혔더랬다. 박종철 군의 시신을 부검하는 장면에서 삼촌이 홀로 입회하여 울먹거리는 모습이나, 시신을 화장한 뒤 차가운 얼음으로 덮인 강 위에 유골을 뿌린 박종철 군의 아버지가 끝내 강물 속으로 허우적거리며 걸어 들어가 얼음 위의 유골을 쓸어 모으며 "잘 가그래이! 철아!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 라고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목이 꽉꽉 잠기기도 했다.

 

 

 

영화로 다시 보더라도 30년 전에 이 땅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는 여간해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이없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지만, 그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나온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현실은 영화보다 조금이라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고 말할런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만큼 험악한 격동의 세월을 겪어 왔으니까. 그런데 참 묘하게도 그로부터 꼭 30년 만에 '1987년에나 겨우 구경할 수 있었던 대규모의 시위'가 서울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재연되는 기적같은 일이 발생했다. 우연 치고는 참으로 놀라운 우연이었다.

 

우리에게 1987년이 두고 두고 재조명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주 명백하다. 한 나라의 시민들을 올바르게 다스릴 최소한의 자격이나 능력이나 양심이나 도덕성조차 갖추지 못한 무능하고 악랄한 권력자가 함부로 시민들을 다스리고 억압할 때, 그토록 부당한 권력자의 횡포에 맞서는 시민들은 언제나 깨어날 준비가 되어 있고, 일단 깨어나기만 하면 그런 불의한 권력자를 내쫓을 충분한 힘과 의지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유효하기 때문이다. 비록 아무리 큰 희생이나 고통이 뒤따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언제나 국민에게 있기 때문이다.

 

비록 30년 전에 많은 사람들의 크나큰 희생으로 얻은 결과가 고작 '대통령 직선제'일 뿐이었고, 그해 말에 치러진 대통령 직선제의 결과가 또다른 군부 정권으로 재연장되는 어이없는 결과로 이어졌고, 그 이후에 마침내 탄생한 문민정부마저 '군부정권이 저지른 온갖 죄과에 대한 충분한 단죄'에까지 이르지 못했더라도, 1987년 그날의 희생과 함성이야말로 오늘날의 우리가 바로 여기서 이만큼 살 수 있도록 만든 중대한 토대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도 영화 <1987>을 보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30년 전에 일어난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 영화 <1987>이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로부터 두루 큰 호응을 얻는 건 조금 뜩밖인데 무엇보다도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력 덕분이지 싶다. 그것 말고도 나처럼 1987년을 직접 맞닥뜨려 경험하지 못했던 젊은 층 관객들에게까지 충분한 공감을 얻게 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동안 각종 기록물들을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알아 왔던 '80년대의 엄혹한 군부정권 시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당시 상황들을 아주 잘 그려냈기 때문이다. 마침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풍경들 중에는 지난 9년 동안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생생히 목도했던 온갖 추악하고 가증스런 일들과도 적잖이 닮아 있기도 하고.

 

그러나 80년대 군부정권 시절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50대의 장년층들이라면 아무래도 여느 관객들과는 감회가 사뭇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그땐 등교를 위해 전철역에서 내려 학교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책가방을 검색당하는 게 일상사였고, 청바지에 하얀 헬멧을 쓴 백골단이 수시로 교내로 진입해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해 가는 일도 너무나 자주 봤었으니까 말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교황이 방한하기라도 할라치면 많은 학우들이 긴급 수배되기 일쑤였고, 그들은 몇 달씩 변장을 하고 산사로 숨어 들어가 지내기도 했었다. 

 

1년 쯤 전에 광화문 광장에 촛불을 들고 운집했던 시위 인파가 하룻밤에만 200만 명을 넘긴 적도 있었다. 나와 같은 50대의 장년층들까지 나서서 무려 30년 만에 '다시 광장에 모여' 목청껏 '정권 퇴진'이라는 똑같은 구호를 절박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영화 <1987> 속에서 다시 찾아 내고 홀로 마음 속으로 흐뭇한 기분을 느꼈다. 왜냐하면 영화 <1987> 속에 나타난 대한민국의 모습에서나 2016년 겨울쯤에 우리가 보았던 대한민국의 모습에서나 둘 모두에서 명백히 발견되는 뚜렷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이게 나라냐' 라는 물음이었고, 그런 불의에 저항했던 몸부림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1년 전 그 매서운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화문 광장에서 양희은의 <상록수>와 <아침 이슬>을 감격에 겨워 함께 목놓아 따라 불렀던 많은 이들 또한 <1987>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우리들 몸 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음을 알고 기뻐했음에 틀림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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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일세대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from 연의야, 사랑해^^! 2018-02-13 16:11 
    <세대 문제 Das Problem der Generationen>는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1893 ~ 1947)이 저술한 책으로 '세대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기존의 방법론을 종합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만하임의 '세대론(世代論)'의 특징과 <세대 문제>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책이 씌여진 1920년대 말에는 '실증주의적(positivistschen) 세대론'과 '낭만
 
 
겨울호랑이 2018-01-13 19: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1987년 당시에는 중학생이어서 당시의 상황은 간접적인 체험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다만, 1987년 대통령 직선제, 88년 5공 청문회 등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기억의 출발점이 6.10 민주항쟁으로 기억됩니다... 그 이후 시간이 흘러 민주화가 정칙되었다고 믿었는데. 이후 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며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가진 의문 중 하나가 6.10 민주항쟁을 주도한 세대가 시간이 흘러 급격하게 우경화되면서 이명박, 박근혜를 지지했는가?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시대와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만일 그렇다면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본의 아니게 글이 무거워졌네요. oren님 글을 읽다보니 평소 가졌던 물음이 떠올라 몇 자 두서없이 적습니다...

oren 2018-01-13 21:09   좋아요 1 | URL
6.10 민주항쟁을 주도한 세대가 시간이 흐르면서 ‘급격하게 우경화된‘ 거라고 섣불리 일반화하는 데는 다소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변하기 마련인 것도 사실이지요. 단지 그 방향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겠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DJ와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에 ‘악랄한 북한 정권에 너무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듯한 경향‘에 크게 실망한 ‘민주 세력‘들도 아예 없지는 않았을 듯하고요.

그러나 6.10 항쟁을 겪은 친구들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줄기차게 ‘사회 변혁 운동‘에 계속 몸담고 있는 경우도 더러 있었고, 아직까지도 골수 전교조 간부로 남아 있는 친구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은 ‘체제 순응적‘이라기 보다는 ‘현실 순응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지요. 심지어 80년대 초중반 ‘의식화 이념교육‘을 주도했던 친구조차도 일찌감치 사회에 진출하자말자 전혀 다른 삶으로 방향을 바꾸는 경우도 봐왔으니까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반체제적 경향‘에 남아서 늘상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걸 포기하지 않고 있기도 합니다. 80년대에 아까운 목숨을 잃은 민주열사들의 추모 행사에도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분들을 가끔 만나면 ‘구도자적인 삶‘을 사는 성직자 같다는 느낌도 갖게 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3 22:19   좋아요 1 | URL
^^: 제 글을 다시 읽어보니 마치 50대 이상만 우경화된 것으로 표현된 것 같습니다. oren님 말씀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보수화‘되었다는 것이 보다 나은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oren님 말씀처럼 제가 개별적으로 6.10 민주화 운동 세대분들을 많이 알지 못해 지난 선거 표심으로 일반화된 모습만 읽을 수 있어 섣부르게 내린 결론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년 세대에서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있다는 면에서 볼 때, 이는 세대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 여겨집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1987년을 겪은 우리 나라의 세대부터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지나간 이야기고, 지금부터라도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oren 2018-01-13 22:19   좋아요 1 | URL
‘새는 좌우의 두 날개로 난다‘는 얘기가 문득 생각납니다. 어느 나라, 어느 세대든 주기적으로 이쪽 저쪽으로 쏠림현상이 반복되면서 나타나는 걸 두고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묻거나 탓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저토록 몰상식한 극우 경향의 대통령이 선출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어느 한쪽으로 오래도록 치우치다 보면 자연스레 피로감이나 부작용 또는 불합리한 점들이 유달리 돋보이게 마련이고 그런 반작용 때문에 그 반대 성향의 정권이 다시 선출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1987년을 주도한 세대들은 어느새 서서히 무대에서 퇴장할 나이에 접어들고 있으니 만큼 앞으로는 좀 더 젊은 세대들이 이 나라를 떠받쳐 나가야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3 22:52   좋아요 1 | URL
다른 한 편으로 저는 1987년 6.10 민중항쟁을 보며, 백제 근초고왕 때 태자(후에 근구수왕)이 수곡성을 점령하고, 평양성을 쳐서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후 퇴각하면서 ‘후에 누가 이 땅에 이를것인가‘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생각해 봤습니다. 나중에 수 세대 후에 백제 무령왕 때 고구려 수곡성을 치게 되지만, 백제 동성왕-무령왕 때의 중흥은 그 이전 세대인 근초고왕 시기에 다져놓은 힘이 없었더라면 아마 힘들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1987년 6.10 민주항쟁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일대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ps.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살아서 이 사건을 보셨더라면 ‘묘청의 난‘ 보다 더 높게 평가하시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봤습니다.무리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요. oren님을 비롯한 선배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oren 2018-01-13 23:25   좋아요 1 | URL
공감합니다.^^ 어떤 일이든 원인이 없으면 결과가 있을 수 없듯이, 6.10 항쟁이 ‘한국의 민주화‘에 결정적인 분수령이 되었다는 걸 부정하기 힘들겠지요. ‘87년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생들은 ‘반체제 민주화 운동‘에 가담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정치 현실에는 무관심한 채 ‘공부‘만 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에 늘 시달려야만 했는데, 그 이후에는 그런 고민조차 다 사라질 정도로, 어쨌든 민주화가 차츰 뿌리를 내리고 대학에도 평화가 찾아왔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라도, 1987년과 2017년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던 대규모 민중 시위는 원인과 양상은 사뭇 달라도 본질적으로는 크게 다른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선 1987년의 희생이 그만큼 풍성한 자양분을 후대에 제공한 셈이라고 봐야 옳겠지요.

겨울호랑이 2018-02-13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근 카를 만하임의 <세대 문제>를 읽고 oren님 글이 생각나 관련 내용을 먼 댓글로 달았습니다. 항상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이달의 페이퍼 당선을 축하드리고 행복한 설 연휴 되세요^^!

oren 2018-02-25 16:41   좋아요 1 | URL
이미 오래 전에 카를 만하임이 『세대 문제』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바로 그 ‘세대 문제‘를 명쾌하게 밝혀 놓았군요.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만하임의 책과 주장을 일목요연하게 살펴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소크라테스 선생, 그대도 명심해두시오. 사람은 자기가 죽을 때가 되었다 싶으면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일이 두려워지고 염려되기 시작하는 법이라오. 저승에 관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이승에서 불의를 행하는 자는 저승에 가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이야기를 지금까지는 웃어넘겼으나, 죽을 때가 가까워지면 혹시 그런 이야기들이 참말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괴로워지기 시작한단 말이지요.

 - 플라톤, 『국가』, 330d

 

 * * *

 

우리는 죽어서 다들 어디로 갈까? 아무도 그걸 모른다. 죽은 사람만이 가는 곳을 산 사람이 어떻게 알겠는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죽는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저승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해 이승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묻고 답하는 건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도 우린 늘상 궁금해 한다. 저승에선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고. 우리는 결국 모두 죽게 마련이니까.

 

사람이 죽으면 마치 '저승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여행을 나서는 기분이 얼마나 천차만별이었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처럼 "이제야 멋진 여행이 시작되는군..." 하면서 기대감에 가득 찬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한 인물들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겁을 잔뜩 집어먹었음에 틀림없다. 고대의 시인 호메로스도 바로 그 점을 놓치지 않았다. 누구나 피할 수 없다는 그 막다른 여행지에 막 도착했을 때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겁나게(?) 묘사해 놓았으니 말이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자(死者)들의 종족들이 무시무시하게

고함을 지르며 몰려들었소. 나는 ……

…… 파랗게 겁에 질렸소.

 - 『오뒷세이아』, <11권>

 

 

살아 생전에 저승까지 여행한 인물들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꾀많은 오뒷세우스였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끝난 뒤 곧바로 귀향길에 올랐지만 이내 거친 풍랑에 좌초된 끝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마녀 키르케를 만나 1년간 동거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귀향길을 재촉하겠다는 오뒷세우스에게 키르케가 내려준 지침은 '저승에 가서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자세히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도 호메로스를 본받아 『아이네이스』의 주인공 아이네아스를 살아 생전에 기어이 저승으로 보낸다. 그가 저승에 내려갔을 때의 풍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죽은 혼백들은 '강변'에 무리지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강을 건너도 좋다는 허락을 받기까지 100년 동안 기다려야' 했다.

 

 

어머니들과 남자들과 지상에서의 삶이 끝난 고매한 영웅들과

소년들과 결혼하지 않은 소녀들과 부모가 보는 앞에서

장적 더미 위에 올려진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숲 속에서 첫가을 추위에 우수수 떨어지는

나뭇잎만큼 많았고 ……

그들은 먼저 건너가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서서

저편 강가에 대한 사랑으로 손을 뻗어 내밀고 있었다.

 - 『아이네이스』, 제6권

 

 

단테가 이 두 선배 시인들을 놓치지 않고 『신곡』에서 이 모습들을 재현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아예 '저승 투어의 가이드'로 고용할 정도였다. 단테가 지옥의 문을 통과한 후 아케론 강가와 죽은 자들의 무리가 있는 곳에 이른 장면은 이렇다.

 

 

마치 가을날 나뭇잎이 떨어져 나가듯이,

하나 그리고 또 하나가, 마침내 나뭇가지가

땅 위에 깔린 모든 번뇌들을 볼 때까지 …….

 - 단테, 『신곡』, <지옥편> 제3곡

 

 

단테가 『신곡』에서 궁극적으로 그리려고 애썼던 이미지는 결국 단순하면서도 명확하다. 이승에서의 올바른 삶이 결국 저승에서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얘기다. 이만큼 익숙하면서도 진부한 주제도 찾기 힘들다. 바로 '권선징악'이다.

 

서양 철학의 전통을 송두리째 떠맡은 인물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 플라톤이다. 그를 빼놓고 '권선징악'을 얘기할 수는 없다. 그가 『국가』에서 '정의와 불의'를 둘러싸고 그토록 기나긴 대화를 끈기있게 이끌어낸 목적도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삶'에 촛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영혼 불멸'까지도 확신했던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가 죽어서도 '신들과 함께'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이승'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두고 방대한 지침들을 책으로 남겨 놓았다고 해서 조금도 놀랄 일은 아니지 싶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무려 2,400년 전에 쓰인 플라톤의 『국가』속에 담긴 '놀라운 저승 이야기'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최신 인기 영화인 <신과 함께>와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다. 저승에 가면 무엇보다도 우선 재판관부터 만난다는 설정, 판결 과정엔 '이승'에서 살았던 과거 행적이 하나도 남김없이 낱낱이 밝혀 진다는 얘기, 저승사자가 저승의 판관들을 돕는다는 얘기, 부모에 대한 효도나 불효, 혹은 살인 행위등은 특별한 고려 대상이므로 '가중 처벌'이나 '특별 사면 요건'이 된다는 얘기, 이승에서의 물리 법칙을 벗어난 공간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얘기 등등이 너무나 흡사하다.

 

설마 고대 그리스 인물 가운데서도 그토록 고매한 플라톤이 지어낸 이야기가 <신과 함께>와 닮으면 얼마나 닮았을까 하고 의심부터 앞세우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국가』속에 담긴 '저승 이야기'를 무삭제판으로 옮겨 보았다. 물론 2,400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낯선 지명과 인물들도 적지는 않다. 그러나 이미 <신과 함께>라는 영화를 보신 분들은 플라톤이 들려주는 '저승 이야기' 속에서 많은 공통점들을 넉넉히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신과 함께>라는 만화의 작가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지만 플라톤이 그려낸 에르 신화를 읽어 보면 마치 원작자가 플라톤의 『국가』를 아주 심도있게 연구한 것이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어쩌면 인류의 마음 속에 오래 전부터 깊숙하게 각인된 '저승에 대한 공통적인 개념'이 그만큼 뿌리가 깊고, 그 연원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는 물론이고 플라톤과 호메로스까지도 맥이 닿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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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국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물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 게 특징이다. 또한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는 하나하나가 정밀한 시계의 부품처럼 서로 긴밀한 연관관계를 맺으면서 맞물려 있다는 점도 놀랍다. 그런데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대화가 마침내 다음과 같은 기나긴 저승 이야기로 '대미'를 장식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플라톤 版 <신과 함께>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로울 줄이야.

 

"그렇다면" 하고 내가 말했네. "정의 자체가 가져다주는 좋은 것에 더하여, 신들과 인간들이 살아생전에 올바른 사람에게 주는 상과 보수와 선물은 이상과 같은 것들이네."

 

"그리고 그것들은 매우 아름답고 건실한 것들이에요" 하고 그가 말했네.

 

"하지만 그것들은" 하고 내가 말했네. "올바른 자와 불의한 자가 각각 사후에 받게 될 것들에 견주면 수에서나 크기에서나 아무것도 아니라네. 자네들은 이에 관해서도 들어야 하네. 우리의 논의가 올바른 자와 불의한 자에게 빚지고 있는 것을 다 갚을 수 있도록 말일세."

 

"말씀해주세요. 내가 이보다 더 가까이 듣고 싶은 것도 많지 않을 거예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알키노오스의 이야기37가 아니라 어떤 용감한 남자, 즉 팜퓔리아38 출신인 아르메니오스의 아들 에르39의 이야기일세. 에르는 언젠가 전사(戰死)한 적이 있는데, 열흘 뒤 시신들을 수습할 때 다른 시신들은 이미 썩어가고 있었지만 그의 시신만은 썩지 않았네. 고향으로 운구된 그는 열이틀째 되던 날 장례를 치르기 전에 화장용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있다가 되살아나서 저승에서 본 것들을 들려주었네.

 

에르에 따르면, 그의 혼은 다른 많은 혼들과 함께 길을 떠나 어떤 불가사의한 장소에 도착했대. 그곳에는 땅에 구멍 두 개가 나란히 있고, 그 맞은편 하늘 쪽에도 다른 구멍 두 개가 나 있었대. 이들 하늘쪽 구멍들과 땅 쪽 구멍들 사이에는 재판관들이 앉아 있었는데, 이들은 판결을 내린 뒤 올바른 자들에게는 판결 내용을 나타내는 표지를 앞에 달고 하늘로 통하는 오른쪽 길로 올라가도록 명령하고, 불의한 자들에게는 이들 역시 지금까지 행한 모든 것을 나타내는 표지를 등 뒤에 달고 아래로 내려가는 왼쪽 길로 가도록 명령했대. 한데 에르가 재판관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그는 저승의 일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사자(使者)가 되어야 하는 만큼 저승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보라고 이르더래.

 

그리하여 그는 혼들이 재판받은 다음 하늘 쪽 구멍 하나와 땅 쪽 구멍 하나를 통해 떠나가는 모습을 봤으며, 나머지 두 구멍 가운데 땅 쪽 구멍에서는 때와 먼지에 찌든 혼들이 올라오고, 하늘 쪽 구멍에서는 정결한 혼들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더래.  그런데 도착하는 혼들은 언제나 긴 여행에서 돌아온 듯이 보였고, 이 초원에 도착한 것을 몹시 기뻐하며 마치 축제장에 도착한 듯 그곳에서 야영하더래. 서로 아는 혼들끼리는 인사를 나누었고, 땅 쪽에서 온 혼들은 다른 혼들에게 그곳 사정을 묻고, 하늘 쪽에서 온 혼들은 땅 쪽에서 온 혼들에게 그곳 사정을 묻더래.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한쪽에서는 천 년이나 걸린 지하 여행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겪었는지 회상하고는 비탄의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하고, 하늘 쪽에서 내려온 혼들은 그곳에서 누린 행복과 그곳에서 본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광경을 이야기하더래.

 

글라우콘, 이런 것들을 세세히 다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네. 그가 들려준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네. 혼들은 누구에게 무슨 불의를 저지르건 그 하나하나의 불의와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열 번을 되풀이해서 차례차례 벌을 받아야 한대. 그러니까 자기가 저지른 불의에 열 배로 보상하기 위해, 인생을 백 년으로 치고 백 년마다 한 번씩 벌을 받아야 한대. 예컨대 국가나 군대를 배반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게 만들거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그 밖의 다른 악행에 가담한 자들이 있다면, 이들은 이러한 모든 악행 하나하나에 대해 열 배의 고통을 받아야 한대. 마찬가지로 선행을 행한 적이 있거나 올바르고 경건하게 처신한 적이 있으면, 같은 비율에 따라 그에 대한 보답을 받는대. 에르는 그 밖에도 태어나자마자 죽었거나 잠시밖에 살지 못한 영아들에 관해서도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지만 여기서 언급할 가치는 없네. 또한 그에 따르면, 신들에 대한 경건이나 불경, 부모에 대한 효도나 불효 또는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훨씬 더 큰 보답이 주어지거나 더 큰 벌이 내려진대.

 

에르에 따르면, 자기는 어떤 혼이 다른 혼에게 아르디아이오스41 대왕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 자리에 있었대.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아르디아이오스라는 자는 그때부터 천 년 전에 늙은 아버지와 형을 죽이는 등 불경한 짓을 많이 저지르고 팜퓔리아 지방에 있는 어느 나라의 참주가 됐대. 그런데 에르에 따르면, 질문을 받은 혼이 이렇게 대답하더래. '그자는 여기에 오지 않았고, 아마 오지 못할 걸세. 우리는 끔찍한 광경을 많이 봤는데 이것도 그중 하나일세. 우리가 다른 고통을 모두 받은 뒤 출구 가까이 다가가서 막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그자가 다른 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눈에 띄었네. 이들은 대개 참주들이었지만, 사인(私人)으로서 큰 죄를 지은 자도 더러 있었네. 이들은 이제는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었지만, 출구가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네. 출구는 개과천선이 불가능한 자나 아직은 충분히 벌 받지 않은 자가 나가려고 하면 노호했으니까.' 질문 받은 자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더래. '그러자 그곳에 대기하고 있던, 보기에 불과 같은 사나운 자들이 그 소리를 알아듣고 그중 일부는 꼭 붙잡은 다음 데리가 가버렸지만, 아르디아이오스와 다른 자들은 손발과 머리를 함께 묶고 나서 쓰러뜨리더니 마구 때렸네. 그러고는 출구 밖으로 끌고 나가 길가의 가시덤불42로 그들의 살을 훑으면서, 지나가는 자들에게 그들이 왜 끌려가는지 설명하며 그들은 이제 타르타로스43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했네.' 에르에 따르면, 그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공포를 경험했지만 누구에게나 가장 두려웠던 것은 출구를 지나 위쪽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 노호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대. 그래서 출구가 침묵할 때 각자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올라갔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벌과 보상은 이상과 같은 것이었으며, 축복도 거기에 상응하는 것이었대.

 

각 집단은 초원에서 이레를 머문 뒤 여드레째 되는 날 그곳을 떠나 다시 여행을 계속해야 했는데, 이들은 길을 떠난 지 나흘째 되는 날 어떤 곳에 도착했대.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은 곧은 광선이 기둥처럼 위에서부터 하늘 전체와 대지를 꿰뚫고 뻗어 있는 것을 보았대. 그 광선은 무엇보다도 무지개와 비슷했지만 더 선명하고 더 순수했대. 하룻길을 더 가서 광선이 있는 곳에 도착한 그들은 광선 가운데에 서서 하늘의 띠의 양 끝이 하늘에서 뻗어 내려와 있는 것을 보았대. 이 광선은 삼단노선45의 아랫부분에 두르는 밧줄처럼 회전하는 천구 전체를 졸라매는 하늘의 띠이기 때문이래. 또한 그 양 끝에서 필연의 여신 아낭케46의 방추(紡錘)가 뻗어 있는 것을 봤는데, 이 방추에 의해 모든 천구가 회전하게 되어 있더래. 이 방추의 굴대와 갈고리는 아다마스47로 되어 있었지만, 회전바퀴는 일부는 아다마스로, 일부는 다른 소재로 되어 있더래.

 

이 회전바퀴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대. 모양은 여기에 있는 것과 같지만, 에르가 들려준 이야기로 미루어 이 회전바퀴는 마치 꽉 끼여 있는 그릇들처럼 속을 몽땅 드러낸 하나의 커다란 회전바퀴 안에 그보다 작은 또 다른 회전바퀴가 끼워져 있었던 것 같네. 이런 식으로 세 번째 바퀴와 네 번째 바퀴가 끼워지고, 그 밖에도 다른 바퀴 네 개가 더 끼워져 있었던 것 같네. 회전바퀴는 모두 여덟 개였는데, 이것들은 꽉 끼워져 있었기 때문에 위에서 보면 그 가장자리들이 원(圓)으로 보였을뿐더러, 전체가 여덟 번째 바퀴를 관통하는 굴대를 중심으로 연속된 표면을 가진 단 하나의 회전바퀴를 이루고 있었다니 말일세.

 

이들 회전바퀴 중에서 맨 마깥쪽 첫 번째 것의 가장자리 원이 가장 넓고, 여섯 번째 것이 두 번째로 넓고, 세 번째로 넓은 것은 네 번째 것이고, 네 번째로 넓은 것은 여덟 번째 것이고, 다섯 번째로 넓은 것은 일곱 번째 것이고, 여섯 번째로 넓은 것은 다섯 번째 것이고, 일곱 번째로 넓은 것은 세 번째 것이고, 여덜 번째로 넓은 것은 두 번째 것이었대. 또한 가장 큰 회전바퀴의 가장자리는 번쩍번쩍 빛나고, 일곱 번째 회전바퀴의 가장자리는 가장 밝고, 여덟 번째 회전바퀴의 가장자리는 일곱 번째 회전바퀴에 반사되어 색채를 얻고, 두 번째와 다섯 번째 회권바퀴의 가장자리는 서로 비슷한데 다른 것들보다 더 노르스름하고, 세 번째 회전바퀴의 가장자리는 가장 하얀빛을 띠고, 네 번째 회전바퀴의 가장자리는 불그스름하고, 여섯 번째 회전바퀴의 가장자리는 세 번째 회전바퀴 가장자리 다음으로 가장 희었대. 방추 전체는 같은 방향으로 회전 운동을 하는데, 회전하는 방추 전체 안에서 안쪽의 일곱 원은 전체와 반대방향으로 천천히 회전하더래. 그리고 이 일곱 원 중에서 바깥쪽에서 여덟 번째 것이 가장 빨리 움직이고, 일곱 번째와 여섯 번째와 다섯 번째 것이 그다음으로 빠른데, 이것들은 함께 움직이더래. 회전운동에서 세 번째로 빠른 것은 그들이 보기에 전체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네 번째 것이고, 네 번째로 빠른 것은 세 번째 것이고, 다섯 번째로 빠른 것은 두 번째 것이더래. 그리고 방추는 아낭케 여신의 무릎에서 돌고 있더래.

 

방추의 원마다 세이렌50이 한 명씩 타고 앉아 원과 함께 돌면서 단 하나의 소리, 단 하나의 음을 내는데, 이 여덟 음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화음을 이루더래. 이들 주위에는 다른 세 여신이 같은 간격을 두고 각자 자기 옥좌에 앉아 있었는데, 이름이 라케시스, 클로토, 아트로포스51인 이들은 아낭케 여신의 딸들인 운명의 여신들52소복 차림에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더래. 이들은 세이렌들의 화음에 맞춰 라케시스는 과거의 일을, 클로토는 현재의 일을, 아트로포스는 미래의 일을 노래하더래. 그리고 클로토는 방추의 바깥쪽 가장자리들에 오른손을 얹으며 이따금 같이 돌리고, 마찬가지로 아트로포스도 안쪽 가장자리들에 왼손을 얹으며 같이 돌리고, 라케시스는 양쪽 가장자리들에 양손을 번갈아가며 얹더래.

 

그곳에 도착한 혼들은 곧바로 라케시스 앞으로 나아가야 했는데, 어떤 대변자가 먼저 그들을 정렬시킨 뒤 라케시스의 무릎 사이에서 제비와 삶의 견본들을 가져오더니 높은 단(壇) 위에 올라 다음과 같이 말하더래. '이는 아낭케 여신의 따님이신 처녀신 라케시스의 분부이시다. 하루살이 혼들이여, 죽게 마련인 족속의 죽음을 가져다줄 또 다른 주기(周期)가 시작된다. 수호신53이 너희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수호신을 선택할 것이다. 첫 번째 제비를 뽑은 자가 먼저 삶을 선택하라. 일단 선택하면 그는 반드시 그 삶과 함께해야 한다. 미덕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각자가 미덕을 존중하느냐 경시하느냐에 따라 미덕을 더 많이 갖거나 더 적게 가질 것이다. 책임은 선택한 자에게 있고, 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대변자는 제비들을 그들 모두를 향해 던졌는데, 모두들 자기 옆에 떨어진 제비를 집더래. 그러나 에르는 대변자가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집지 않았대. 하지만 제비를 집은 자들은 자기 순번을 알게 되었대. 그러고 나서 이번에는 대변자가 그들 앞 땅바닥에 삶의 견본들을 갖다놓았는데, 그 수는 그곳에 있는 혼들보다 훨씬 많더래. 견본들은 여러 가지였는데 모든 동물의 삶은 물론이고 인간의 삶도 없는 것이 없더래. 그 중에는 참주들의 삶도 있었는데, 평생 동안 계속되는 것들도 있고, 도중에 망해서 가난과 추방과 거지 신세로 끝나는 것들도 있더래. 명망가들의 삶도 있었는데, 더러는 잘생긴 외모나 강한 체력이나 경기(競技)로 유명해진 자들의 삶이고, 더러는 가문이나 선조들의 미덕으로 유명해진 자들의 삶이더래. 또한 그런 점에서 유명하지 못한 자들의 삶도 있었는데, 그 점에서는 여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였대. 그러나 거기에 혼의 성향은 포함되지 않았는데, 다른 삶을 선택한 혼은 필연적으로 다른 혼이 되기 때문이네. 그 밖의 다른 점에서 삶들은 섞여 있었는데, 부와 가난이 섞인 것도 있고 질병과 건강이 섞인 것도 있으며, 이런 것들을 적당량 가진 것들도 더러 있더래.

 

여보게 글라우콘, 인간에게는 모든 운명이 바로 이 순간에 달려 있는 것 같네. 그러므로 선한 삶과 악한 삶을 구별하여 가능한 모든 삶 중에서 언제 어디서나 더 선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고 찾아내게 해주는 공부가 있다면, 우리는 저마다 다른 공부는 다 뒤로 미루고 그런 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이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된 모든 것이 함께 또는 따로따로 훌륭한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칠는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네. 우리는 또한 아름다움이 가난이나 부나 여러 성향의 혼과 결합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좋은 일이 생기는지 나쁜 일이 생기는지 알아야 하네. 또한 좋은 가문과 나쁜 가문, 시인으로 남는 것과 관직에 진출하는 것, 체력이 강한 것과 약한 것, 이해가 빠른 것과 느린 것 등등 혼의 선천적인 또는 후천적인 모든 특성이 혼합될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도 알아야 하네. 그래야만 우리는 이 모든 점을 고려하여 혼을 더 불의하게 만드는 쪽으로 인도하는 삶은 더 악한 삶이라 부르고 혼을 더 올바르게 만드는 쪽으로 인도하는 삶은 더 선한 삶이라고 부르면서, 혼의 본성과 관련하여 더 악한 삶과 더 선한 삶 중에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해질 것이네. 우리는 살아생전에나 죽은 뒤에나 이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네. 따라서 우리는 이 점을 철석같이 믿고 저승으로 가야 하네. 그곳에 가서도 부나 그와 비슷한 다른 악에 현혹되어 참주적인 행위나 그 밖에 그와 유사한 행위에 빠져들어 돌이킬 수 없는 악행을 수없이 저지르고 우리 자신은 더 큰 불행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말일세. 그래야만 우리는 그런 일들에 항상 중용을 지키며, 금생에서나 내생에서나 되도록 양 극단을 피할 수 있을 것이네. 그것이 인간에게는 최고의 행복에 이르는 길이니까.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사자에 따르면, 그때도 대변자는 이렇게 말하더래. '마지막에 온 자라도 현명하게 선택하고 진지하게 살아간다면 결코 나쁘지 않은 바람직한 삶이 마련되어 있다. 맨 먼저 선택하는 자는 방심하지 말고, 맨 마지막에 선택하는 자는 낙담하지 말지어다.'

 

에르에 따르면, 대변자가 그렇게 말하자 맨 먼저 선택하는 자가 곧장 앞으로 나아가더니 가장 큰 참주제를 선택하더래. 그는 어리석음과 탐욕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선택했고, 그래서 제 자식들의 고기를 먹을 운명과 그 밖의 다른 불행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대. 그러나 그는 시간 여유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가슴을 치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더래. 그리고 대변자가 미리 일러준 말을 귓등으로 들은 그는 자신의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리기는커녕 운수와 수호신들과 자기 아닌 모든 것을 원망하더래. 그는 하늘 쪽에서 도착한 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전생에서는 질서정연한 국가에 살면서 지혜를 사랑하는 일 없이 습관적으로 미덕에 관여했던 자래. 대체로 말하면 하늘 쪽에서 도착한 자들 가운데 적잖은 자들이 그런 실수를 저질렀는데, 그들은 고난을 통해 단련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반면 땅 쪽에서 도착한 자들은 대부분 자신들도 고통받고 남들이 고통받는 것도 보아왔기에 섣불리 선택하지 않더래. 이런 이유도 있고 제비뽑기의 운도 있고 해서 대부분의 혼들에게 악한 삶과 선한 삶이 뒤바뀌더래. 만약 누가 이승에 올 때마다 언제나 건전한 생각을 갖고 지혜를 사랑한다면, 또한 선택을 위한 순번이 마지막 쪽에 속하지만 않는다면, 저승으로부터의 보고로 미루어 그는 아마도 이승에서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나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올 때나 땅속의 험한 길이 아니라 하늘의 순탄한 길을 지나게 될 테니 말일세.

 

에르에 따르면, 개개의 혼들이 자신들의 삶을 선택하는 광경이야말로 참으로 볼 만하더래. 그것은 가련해 보이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광경이었대.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이 전생의 습관에 따라 선택하더래. 이를테면 그는 일찍이 오르페우스54에게 속했던 혼이, 오르페우스가 여자들의 손에 죽은 까닭에 여자의 배 속에 잉태되었다가 태어나기 싫어서 백조의 삶을 선택하는 것도 보았대. 그는 타뮈리스55의 혼이 꾀꼬리의 삶을 선택하는 것도 보았대. 그는 또한 백조가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인간의 삶을 선택하고, 마찬가지로 다른 음악적인 동물들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대. 스무 번째 제비를 뽑은 혼은 사자의 삶을 선택했는데, 그것은 무구 재판을 잊지 못해 인간이 되기가 싫어진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56의 혼이었대. 그다음 차례는 아가멤논57의 혼이었는데, 이 혼도 자기가 당한 불행 때문에 인간 종족이 싫어져서 독수리의 삶을 선택하더래. 중간쯤의 제비를 뽑은 혼들 중에는 아탈란테58의 혼이 있었는데, 이 혼은 달리기 선수에게 주어지는 큰 상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그것을 집더래. 에르는 그다음으로 파노페우스의 아들 에페이오스59의 혼이 손재주가 뛰어난 여자로 바뀌는 것을 보았고, 저 멀리 마지막 순번 쪽에 서 있던 어릿광대 테르시테스60가 원숭이로 바뀌는 것도 보았대. 그때 마침 모든 혼들 가운데 맨 마지막 순번을 뽑은 오뒷세우스의 혼이 선택하기 위해 앞으로 나섰는데, 전쟁의 갖가지 노고를 잊지 못한 그는 명예욕도 시들해져서 아무 걱정거리 없는 사인(私人)의 삶을 찾아 한참 헤매다가 그런 삶이 다른 자들에게 무시당한 채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을 겨우 발견하고는, 자기는 설사 첫 번째 순번을 뽑았어도 같은 것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기꺼이 그 삶을 선택하더래.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더러는 인간이 되고 더러는 다른 동물이 되었는데, 불의한 것들은 야수가 되고 올바른 것들은 유순한 동물이 됨으로써 온갖 가능한 혼합이 이루어지더래.

 

모든 혼이 삶의 선택을 마치고 제비 뽑은 순서대로 라케시스 앞으로 나아가니, 라케시스는 그들에게 각자가 선택한 수호신을 삶의 수호자로, 선택한 것의 집행자로 붙여주더래. 그러자 수호신은 자기가 맡은 혼을 먼저 클로토에게 안내하여 방추를 돌리고 있는 그녀의 손 밑으로 데려감으로써 그 혼이 추첨을 통해 선택한 운명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더래. 그리고 수호신은 클로토에게 인사하고 나서 이번에는 실을 잣고 있는 아트로포스에게 혼을 데려가 주어진 운명의 실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더래. 거기서부터 수호신은 뒤돌아보지 않고 아낭케 여신의 옥좌 밑으로 가서 그곳을 통과했는데, 다른 혼들도 모두 통과하자 그들은 다 함께 푹푹 찌는 무시무시한 더위를 뚫고 망각(妄却)의 들판61으로 나왔는데, 그곳에는 나무는 물론이고 무릇 땅에서 자라는 것은 하나도 없더래. 저녁이 되지 그들은 어떤 그릇으로도 그 물을 담을 수 없는 무념(無念)의 강62가에서 야영했대. 각자는 이 강물을 일정 양만큼 마셔야 했는데, 지혜의 도움을 받지 못한 자들은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마셨대. 그리고 그 물을 마신 자는 누구나 모든 일을 잊어버렸대.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이 되자 천둥이 치고 땅이 흔들리더니 별안간 각자가 태어나기 위해 유성처럼 사방으로 날려가더래. 에르 자신은 강물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어디로 어떻게 해서 몸속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고, 이른 아침에 갑자기 눈을 떠보니 자기가 화장용 장작더미 위에 누워 있더래.

 

그리하여 글라우콘, 이 이야기는 없어지지 않고 구제되었네. 그리고 우리가 이 이야기를 믿으면, 이 이야기는 우리를 구제해줄 걸세. 그리하여 우리는 망각의 강을 무사히 건널 것이고, 우리의 혼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네. 따라서 내가 충고하고 싶은 것은, 우리는 혼이 불멸하며 어떤 악도 어떤 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향상의 길을 나아가며 가능한 방법을 다해 지혜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네. 그래야만 우리는 이승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경기의 우승자들이 상을 타가듯 우리가 나중에 정의의 상을 탈 때도, 우리 자신이나 신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네. 또한 이승에서도, 앞서 우리가 이야기한 천 년의 여로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걸세."(576∼591쪽)

 

 - 플라톤, 『국가』, <제10권>

 

(주석)

 

37. '알키노오스의 이야기'란 오뒷세우스가 귀향하던 도중 스케리아(Scheria) 섬에 표류하여 그곳 왕인 알키노오스에게 들려준 이야기로, 『오뒷세이아』9∼12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길고 지루한 이야기라는 뜻도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알키노오스의 이야기'와 에르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저승에 다녀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아무래도 알키노오스 왕보다는 그의 외동딸이 더 유명한 듯하다. 오뒷세우스와 결혼하고 싶어했던 그녀의 이름은 나우시카 공주다. 니체도 한 마디 남겼다. '사람들은 오뒷세우스가 나우시카와 이별했을 때처럼, 그렇게 삶과 이별해야 한다. ㅡ 연연해 하기보다는 축복하면서' 라고.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나우시카'는 여전히 공주로 등장한다.)

 

38. 팜퓔리아(Pamphylia)는 소아시아 남해안 지방으로, 그 남동쪽에 퀴프로스(Kypros) 섬이 자리 잡고 있다.

 

39. 에르(Er)는 히브리계 이름인 것 같다. 『누가복음』3장 28절 참조.

 

42. 아르디아이오스(Ardiaios)에 관해서는 달리 알려진 것이 없다.

 

42. 가시덤불(aspalathos)을 고문 도구로 보는 이들도 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가시덤불이 등장한다.)

 

43. 타르타로스(Tartaros)는 신들에게 대항하거나 큰 죄를 지은 자들이 영겁의 벌을 받는 저승의 가장 깊은 곳이다.

 

45. 고대 그리스의 전함

 

46. Ananke.

 

47. adamas.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견고한 금속으로, 강철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50. 세이렌(Seire 복수형 Seirenes)은 지나가는 선원들을 노래로 유혹하여 난파당하게 한다는 요정이다. 『오뒷세이아』12권 39∼52행 참조.

 

51. Lachesis('배분하는 여자'), Klotho('실 잣는 여자'), Atropos('되돌릴 수 없게 하는 여자').

 

52. Moirai.

 

53.daimon.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태어날 때 운명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배정된다고 믿었다.

 

55.타뮈리스(Thamyris)도 뛰어난 가인인데, 무사 여신들에게 음악 경연을 자청했다가 지는 바람에 눈이 멀고 음악적인 재능까지 박탈당했다고 한다. 『일리아스』2권 594행 이하 참조.

 

56. 텔라몬(Telamon)의 아들 아이아스(Aias)는 트로이아 전쟁 때 아킬레우스에 버금가는 장수였다. 아킬레우스가 죽은 뒤 그의 무구를 둘러싸고 아아이스와 오뒷세우스 사이에 재판이 벌어졌을 때 그리스군 장수들이 오뒷세우스에게 표를 몰아주자, 아이아스는 충격을 받아 자살한다.

 

57. 아가멤논은 트로이아 전쟁 때 그리스군 총사령관으로, 귀향하던 날 아내의 손에 살해당한다.

 

58. 아탈란테(Atalante)는 미녀 사냥꾼으로 달리기 선수였다.

 

59. 에페이오스(Epeios)는 트로이아의 목마를 만든 목수이다.

 

60. 테르시테스(Thersites)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인들 가운데 제일 못생긴 험담가이다. 『일리아스』2권 212행 이하 참조.(소포클레스의 비극 『필록테테스』에도 등장하는 인물이다.)

 

61. Lethes pedion,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nes), 『개구리』186행에 처음 나오는 말이다.

 

62. Ameletes potamos. 망각의 강(ho tes Lethes potamos)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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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야말로 바로 철학의 대명사이다. 그 이름은 인류의 영광임과 동시에 어느 의미에서는 불명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뒤에 나타난 로마인들도 앵글로색슨인들도 기본적으로는 플라톤이 개척한 사상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문장의 박력은 마치 한꺼번에 떨어지는 별똥별의 엄청남을 생각하게 한다. 그 사고의 확고함은 마치 별들이 그 안정된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유연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플라톤>

 

 * * *

 

플라톤의 <대화편>은 얼핏 보면『논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둘 다 대화체로 쓰인 데다가, 사람 이름이 붙은 <대화편>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주된 화자가 '스승'인 공자와 소크라테스인데 반해 그들이 책을 직접 저술하지 않았다는 점도 닮았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논어』보다는 훨씬 방대해서 모두 56편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특히 『법률』이 12편이고 『국가』도 10편을 차지한다. 그런데 『국가』와 『법률』을 각각 1권의 책으로 보고, 플라톤의 대화편을 총 <36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이걸 각각 주제별로 4부작으로 묶어서 총 9부작으로 재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많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대표하는 작품이 『국가』라는 작품이다. 이 책을 요약하는 설명은 거의 똑같다.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에 대해 논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대화'를 주도한 소크라테스가 '이상 국가'에 이르는 수많은 곁가지 설명들을 아낌없이 펼쳐놓은 덕분에 이 책은 온갖 서양 사상의 원형들을 두루 폭넓게 담은 거대한 호수와 같은 책으로 변했다. 그러니 플라톤 이후에 등장한 거의 모든 '철학'이나 '정치사상'을 다룬 책들은 도무지 이 책을 벗어날 길이 없었고, 아무리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려 애를 쓴 사상가라 하더라도 결국 이 책의 영향 아래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원조가 바로 이 책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워낙 방대한 데다가, 특히 초반부터 다소 빡세게(?) 전개되는 '정의와 불의'에 대한 까다로운 논의는 이 책에 대한 일종의 '진입장벽'이 된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나 '태양의 비유' 등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 이 책의 중반부에서 전개되는 '까다로운 남녀 평등 문제'나 '아내와 자식들의 공유 문제'를 조심스레 다루는 부분은 아예 맛도 보지 못하는 독자들도 드물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까다롭고도 무거운 철학적 주제들을 숱하게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플라톤의 뛰어난 산문 실력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플라톤의 문답식 대화 속에는 알게 모르게 은근한 유머와 재치도 적잖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어 유희까지도 구사되어 있을 정도로 문학적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으면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친숙한 이웃집 동네 아저씨처럼 돌변하고, 그가 들려주는 진지한 철학 이야기는 어느새 평범한 소시민들의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의 생성과정은 다음과 같네. 그는 잘못 다스려지고 있는 나라에 살기에 명예나 관직이나 소송이나 그 밖에 그와 비슷한 일을 기피하며 성가신 일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손해 보기를 원하는 선량한 아버지의 젊은 아들일 경우가 종종 있네."

 

"그런 그가 어떻게 명예 지상 정체적인 인간이 된다는 거지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래서 내가 대답했네. "첫째, 그는 어머니의 불평을 들음으로써 그런 인간이 되네. 어머니는 남편이 아무런 관직도 맡지 않아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네. 그다음, 어머니는 남편이 재물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사적인 송사에서나 공적인 집회에서 모욕을 당해도 대항하는 일 없이 그 모든 것을 태연히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고 있네. 어머니는 또한 남편의 생각이 언제나 그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아내인 자기를 무시하지도 않지만 존경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이 모든 것에 화가 난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둥 너무 안이하다는 둥, 그런 경우에 여자들이 흔히 늘어놓는 불평들을 쏟아내는 거지."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여자들은 그런 불평을 많이 늘어놓는데, 그야말로 여자다운 불평들이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또한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집에서는 하인들도 가끔 호의를 가장하여 아버지가 듣지 않는 곳에서 아들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네. 하인들은 아버지가 채무자나 가해자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나중에 성인이 되면 이들을 응징하라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아들을 부추기네. 마찬가지로 아들은 밖에 나가서도 시내에서 제 할 일만 하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리며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그러지 않는 자들은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듣네. 이와 같이 젊은이가 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한편, 아버지의 주장을 듣고 아버지의 생활태도를 가까이에서 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생활태도와 비교하게 되면, 그는 양쪽 모두에게 끌리게 되네. 말하자면 아버지는 그의 혼의 이성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들은 욕구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을 키우는 거지. 그래서 그는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들과 교제한 탓에 결국 양쪽으로 끌려서 그 중간에 자리 잡게 되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양쪽의 중간인 승리를 좋아하는 기개적인 부분에 맡기게 되어 교만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인간이 된다네."

 

"선생님께서는 그의 생성과정을 아주 정확하게 서술하신 것 같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449∼450쪽)

 

 - 플라톤, 『국가』, <제8권>

 

 

그런데 위와 같은 재미있는 대화를 읽다 보면 새삼 '소크라테스가 과연 저런 말을 저토록 천연덕스럽게 했을까' 싶은 의구심도 살짝 든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인류가 배출한 최고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정생활만큼은 '악처에게 내내 시달린' 사람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가정생활'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을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나아가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고 위엄을 갖춘 인물이었다. … 언젠가 알키비아데스가 그에게 집을 지으라며 넓은 땅을 제공해 주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신발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자네가 나에게 직접 신발을 지어 신으라면서 무두질한 가죽을 제공해 준다 한들, 내가 그것을 받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겠는가."

 

또 그는 가게에서 팔리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자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에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은 것일까?" 라고. 그리고 그 이암보스조의 시를 끊임없이 읊었던 것이다.

 

은 접시도, 자줏빛 옷도,

비극작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살아가는 데는 쓸모없는 것들.

 

(100∼101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두 명의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도 한다. 즉, 최초의 아내는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는 람프로클레스를 얻었다. 두 번째 아내는 미르토로서 그녀는 '의인(義人)' 아리스테이데스의 딸이다. 그녀를 지참금 없이 얻었는데 이 아내에게서는 소프로니스코스와 메네크세노스가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최초로 결혼한 것은 미르토라고 하고, 또 두 사람을 동시에 아내로 두었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아테네 사람은 인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 숫자를 늘리려고 결혼은 한 명의 아테네 시민 여성과 하지만, 자식은 다른 여성에게서 낳아도 괜찮다는 의결을 했으며,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101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나아가 그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미 고령인데도 리라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크세노폰도 <향연>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춤을 계속했는데, 그것은 몸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빼고, 그것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과일을 비싼 값에 산 사람들은 막상 그 계절이 오면 실망하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또 언젠가 청년의 덕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도를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또한 에우리피데스가 그의 극 속에서 덕에 관해,

 

이런 것은 떠나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제일이다.

 

라고 한 것을 읽고, 소크라테스는 달아난 노예를 찾지 못할 때는 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덕은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채로 놔두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에서 나가바렸다.

 

결혼하는 것인 나은 일일까,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그에게 물었을 때, "어떻게 하든 자네는 후회할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가 부자를 식사에 초대했을 때, 크산티페가 대접할 음식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으로 봐줄 것이고, 하찮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마음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라고.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살아가지만, 자신은 살기 위해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은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려 하고 있어요" 라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정당하게 죽음을 당하기를 바라고 있었던가 보군" 이라고 대답했다.(104∼105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처음엔 잔뜩 잔소리를 퍼붓다가 나중에는 그에게 물을 끼얹기까지 했던 크산티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 봐, 내 그동안 수없이 말하지 않았나. 크산티페가 징징 울기 시작하면 비를 내리게 한다고."

 

크산티페가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알키비아데스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아니, 나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어. 도르래가 삐걱삐걱 계속해서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리고 자네도"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거위가 꽥꽥 우는 것을 참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알키비아데스가, "하지만 거위는 나에게 알과 병아리를 낳아줍니다" 라고 하자, "나에게도 크산티페는 자식을 낳아 주었다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되받았다.

 

그는 자주 기질이 억센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은 마치 기수가 야생마와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기수들이 이들 말을 길들이고 나면 다른 말도 쉽게 탈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와 같아서 크산티페와 사노라면 다른 사람들과는 원만히 지낼 수 잇을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다.

 

위의 내용 및 이와 비슷한 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하거나 행한 것들이다. 이는 퓨티아(무녀)가 (아폴론의 신탁을 묻는) 카이레폰에서

 

소크라테스야말로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사람

 

이라는 저 유명한 대답을 했을 때 증명된 사실이다.(106∼107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한편, 플라톤의 『국가』는 유독 시인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 담긴 책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호메로스의 싯구들을 조목조목 끌어다 놓으면서, "우리는 호메로스와 다른 시인이 신들에 대해 무식하게 다음과 같은 실언을 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네." 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오죽하면 니체가 이런 플라톤을 두고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어쨌든 호메로스에 대한 불타는 경쟁심 때문에 플라톤은 한동안 시를 쓰기도 했고, 나중에는 비극까지도 썼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문학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철학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소크라테스 때문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꿈속에서 새끼백조를 무릎에 안고 있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깃이 생기고, 날카롭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날 플라톤이 그에게 제자로 들어왔으므로 이 사람이야말로 꿈에서 보았던 그 새가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알렉산드로스가 <철학자들의 계보>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처음엔 아카데메이아에서, 이어 코로노스산 부근의 정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받들어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비극을 놓고 상을 다투던 때에 디오니소스의 극장 앞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매료되어 시 작품을 불속에 던져 넣고 이렇게 말했다.

 

헤파이스토스여, 이리로 와주십시오.

플라톤은 지금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그 뒤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179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그리스 철학자 열전』을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손수 지은 플라톤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포이보스(아폴론)가 헬라스땅에 플라톤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의 영혼을 글자로서 어찌 치유할 수 있었으랴!

포이보스에 의해 태어난 아스클레피오스가 몸의 의사인 것과 같이,

플라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의 의사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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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8-01-08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볼 때 마다 읽고 싶음 책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8-01-08 22:2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사 놓고 가끔씩 펼쳐보기만 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 떠올라 괴로울 때도 있었고요.^^
* * *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 『월든』
 

 

(밑줄긋기)

 

"어떤가?" 하고 내가 물었네. "어떤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요. 하지만 자기 생각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의견으로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옳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가?" 하고 내가 말했네. "지식이 결여된 의견이란 모두 추악하다는 것을 자네는 깨닫지 못했는가? 그중 아주 훌륭한 것들조차 눈이 멀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느냐는 말일세. 아니면 자네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사물에 대해 올바른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란 실수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장님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자네는 다른 사람들한테서 밝고 아름다운 것을 들을 수 있는데도 추악하고 눈멀고 등이 굽은 것들을 보고 싶다는 것인가?"(371∼372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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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철학적 품성들

 

"철학적 품성들은 철학에 가장 어울리는 배필인데도, 철학은 그들에게 이렇게 버림받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홀로 남게 되네. 그 결과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에게 맞지도 않고 건실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는가 하면, 친척 없는 고아나 다름없어진 철학은 철학대로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자들을 만나 욕을 보게 되고, 자네 말처럼 철학 비방자들이 철학에 퍼붓는다는 그런 비난을 받게 된다네. 철학과 함께하는 자들은 더러는 무용지물이고, 대부분은 갖은 고생을 겪어 마땅한 자들이라는 비난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철학 비방자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그도 그럴 것이,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아름다운 이름들과 장식으로 가득한 이곳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감옥에서 신전으로 도주하는 죄수들처럼, 자기들의 전문 기술을 버리고는 얼씨구나 잘됐다 하고 철학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전문 기술에서는 가장 유능한 자들이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철학이 비록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해도 다른 전문 기술에 견주면 아직도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네. 그래서 품성이 불완전할뿐더러 마치 몸이 기술과 직업으로 망가친 것처럼 그런 기술이 지니게 마련인 천한 성격 때문에 혼까지 불구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이 명망이 유인하는 것이라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당연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이들은 방금 감옥에서 풀려나와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신랑처럼 차려입고는, 주인 딸이 고아가 된 것을 기화로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돈 많은 작은 몸집의 대머리 땜장이와 비슷해 보이는데, 자네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 부모한테서는 어떤 자식들이 태어날 것 같은가? 서자나 볼품없는 자식들이 태어나지 않을까?"

 

"당연하지요."

 

"어떤가? 교육에 어울리지도 않는 자들이 교육에 접근하여 어울리지 않게 결합한다면, 어떤 사상과 의견을 낳을까? 그들은 진실로 궤변이라 불리어 마땅한 것을 낳고, 순수한 것이나 참다운 지혜를 내포하는 것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겠지?"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아데이만토스, 그렇다면 철학과 결합하기에 적합한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남았네. 그것은 마음이 고상한 데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성격이 국외로 추방당한 결과 그를 타락시키려는 자들이 없었기에 타고난 품성 그대로 철학에 머무른 경우이거나, 또는 위대한 혼의 소유자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국사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우일 것이네. …… 나처럼 신의 암시를 받은 경우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걸세. 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신의 암시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이들 소수의 일원이 된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감미롭고 축복받은 것인지도 맛보았겠지만, 대중의 광기도 충분히 보아왔을 것이네. 그는 또한 건전한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정치가나, 자기와 함께 싸우며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투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오히려 그는 야수들의 무리 사이에 떨어져 함께 불의를 행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광포한 가운데 혼자서 이에 항거할 수도 없는 사람처럼, 친구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도 전에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네. 이 모든 점을 심사숙고한 끝에 그는 조용히 자기 일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먼지나 폭우를 피해 담벼락 밑에 서 있는 사람처럼 남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생활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만 부정과 불경행위에 오염되지 않고 이 세상을 살다가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할 것이네."

 

"하지만 그가 가장 작은 일을 해놓고 세상을 떠난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를 만나지 못했으니 가장 큰일을 해놓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네.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에서는 스스로도 더 성장하여 자신도 구하고 공동체도 구하게 될 테니 말일세. 이상으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이 그런 비방을 듣게 되었으며, 어째서 그것이 부당한지 충분히 논의한 것 같네."(350∼354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그게 어떤 부분인가요?"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철학을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일세. 무슨 일이든 큰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람들 말마따나, 아름다운 것은 진실로 어렵기 때문일세."

 

"그렇지만 증명이 완결되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나를 방해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능력의 부족일세. 자네는 내 열성을 직접 보게 될 것이네. 자, 자네는 내가 얼마나 대담하게 거리낌 없이 말하는지 눈여겨보게. 나는 국가가 오늘날과는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철학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오늘날 철학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 불과하네. 이들은 소년시절과 가사를 볼보고 돈벌이를 시작하는 시기 사이에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다가가다가 철학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바로 이들이 철학의 대가(大家)로 간주되고 있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란 논리적 논의를 뜻하네. 이들은 훗날 철학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토론을 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하면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로 여긴다네. 이들이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여가가 날 때 틈틈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세. 그리고 이들은 노년에 이르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꽃이 꺼져버리는데, 다시 점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태양보다 더 심하게 꺼져버린다네."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와 정반대로 대해야지. 소년시절이나 청년시절에는 그 나이에 걸맞은 교양이나 지혜에 관여해야겠지. 아직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는 철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몸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다가 나이 들어 혼이 성숙해지기 시작하면 혼의 단련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나 기력이 쇠하여 정치적 봉사와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되면 그때는 철학의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여가 시간을 제외하고는 철학 이외의 다른 일에 몰두해서는 안 되네.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고, 죽은 뒤에는 저승에 가서 자기가 살아온 삶에 합당한 운명을 부여받게 될 걸세."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선생님, 내가 보기에 선생님께서는 과연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트라쉬마코스를 비롯하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보다 더 열성적으로 선생님 말씀을 반박하며 믿으려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여보게, 자네는 나와 트라쉬마코스 사이를 이간하지 말게나. 우리는 방금 친구가 되지 않았는가. 전에도 서로 적이었던 적은 없지만 말일세. 나는 트라쉬마코스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세(來世)에 이런 토론을 하게 될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해주기 전에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네."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영원(永遠)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세. 그 이유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실현된 것을 그들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네."(355∼357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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