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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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예 하나(222쪽) : "상승하는, 그리고 이 상승과 함께 개별적인 하강을 포함하는 이 운동의 방향." 120쪽에는 더 강력한 예가 있다. "칸트의 마지막 전환은, 우리가 발견한 것처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미래의 삶의 벌판 저 멀리에다 그 길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새가 아니라면, 아무도 이 안개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전환! 하강을 포괄하는 방향들! 지름길로서 가장 유리한 전환들, 벌판 저 멀리에다 길을 잡아야 하는 전환들! 어떤 벌판 위인가? 미래의 삶의 벌판 위! 제기랄 모든 지형학이라니, 빛을! 빛을! 이 미궁 속에서는 어디에 아리아드네의 실이 있는가? 아니다. 아무도 그렇게 글을 써서는 안 된다. …… 언어는 선조로부터 물려 받아서 자손에게 남기는 상속 재산이며, 신성하고, 귀중하고, 훼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대하듯 언어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이 든 사람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들의 귀가 둔해졌다면, 질문하고 사전을 찾아보고 좋은 문법서를 사용하라. 그러나 밝은 대낮에 감히 죄를 범하지 말라! 예를 들면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말한다.(136쪽) : "자신과 인류에게서 떼어버리는 것이 모든 깨달은 사람들의 노력이어야 할 망상." 이 문장 구조는 틀렸다. 삼류 작가의 성숙한 귀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그의 귀에 대고 다음과 같이 소리쳐줄 것이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어떤 사람으로부터 떼어놓든가" 아니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어떤 사태로부터 떼어놓는다". 그러므로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나의 망상, 그것으로부터 스스로와 인류를 떼어놓는 것" 혹은 "하나의 망상, 그것을 자신과 인류로부터 떼어놓는 것". 그러나 그가 써놓은 언어는 룸펜의 은어다. 이렇게 문체상으로 둔감한 사람이 신조어나 변형된 옛 단어들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자신이 마치 제바스티안 프랑크Sebastian Frank인 것처럼 "평준화하는 사회민주주의의 의미"(279쪽)에 관하여 말할 때, ·…… 그는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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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정말 나쁜 책만 읽어왔다는 것

 

 ㅡ (73쪽) : "그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예수 자신의 예상대로 된다." 이처럼 통속적이지 않은 사태에서 이와 같이 통속적으로 장사꾼처럼 표현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자신이 평생 동안 정말 나쁜 책만 읽어왔다는 것을 드러낸다. 슈트라우스의 문체는 도처에서 나쁜 독서를 입증하고 있다.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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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는 어떤 것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

 

같은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의 가르침들은 몇몇의 나뭇잎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만약 이 나뭇잎들이 단단하고 견고한 표지처럼 그의 부활에 관한 맹신에 의하여 합쳐지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보존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에 관해 말하는 자는, 바로 뒤에서 그것을 제본소의 작업으로 합쳐질 수 있는 종이잎으로 이해하는 한, 독자의 상상을 잘못 인도한다. 주의 깊은 저술가는 독자를 의심스러운 상태로 내버려두거나 잘못 인도하는 일을 무엇보다 두려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유는 어떤 것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비유 자체가 불명료하게 표현되어 미혹시킨다면, 비유가 없을 때보다 더 사태를 애매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의 "고전적 작가"는 주의 깊지 못하다. 그는 "우리의 원천의 손"(76쪽), "원천에서 모든 손잡이의 결여"(77쪽), 그리고 "욕구의 손"(215쪽)에 관하여 용감하게 말한다.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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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가해진 수치스러운 폭행

 

당신은 학생 투의 표현으로 "먼저 여러모로 오해하고" (더 나은 표현으로는, 오해되고), "그런 다음에는 적대시되고 반박되어 불편한 상태로 옮겨진 교훈시"라고 말한다. 게다가 24쪽에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그 견고성을 부드럽게 하려 했던 날카로운 궤변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을 통해 그 견고함을 완화시키는 견고한 것을 알지 못하는 불편한 상태에 있다. 물론 슈트라우스는(367쪽) 그뿐만 아니라 "뒤흔듦에 의해 부드러워진 예리함"에 관해 말한다. ㅡ (35쪽) : "여기에 있는 사무엘 헤르만 라이마루스 같은 사람과 저기에 있는 볼테르 같은 사람은 대체로 양 국민에게 아주 전형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한 사람은 항상 한 국민에게만 전형적일 수 있지만, 양 국민에게 전형적으로 다른 사람과 대립할 수 없다. 이것은 한 문장을 절약하거나 속이기 위하여 언어에 가해진 수치스러운 폭행이다. ㅡ (46쪽) : "그러나 이제 이러이러한 사실은 단지 몇 년 동안만 슐라이어마허 사후에 처리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처럼 날림으로 일하는 불량배에게는 물론 낱말의 위치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 "슐라이어마허 사후"의 위치는 잘못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본래 "단지 몇 년 동안만" 앞에 와야 하는데 여기서는 그 뒤에 있는 것이다. 그것은 북소리로 귀가 무뎌진 당신 독자들에겐, 바로 "∼까지"라고 말해야 할 곳에서 "∼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관없는 일이다.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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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발을 뒤로 물려라!

 

끝으로, 우리는 이미 약속한 문체 견본의 모음을 우리의 고전적 산문 작가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쇼펜하우어라면 아마 이것에 완전히 일반적인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지금 시대의 룸펜 언어에 대한 새로운 예문들." 왜냐하면 우리는 다비드 슈트라우스를 위로하기 위하여, 만약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은 그처럼 글을 쓰고 있으며, 일부는 그보다 훨씬 더 형편없이 쓰고 있다는 것과 장님들 사이에서는 애꾸라도 왕이 된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그에게 한쪽 눈이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면, 참으로 많은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슈트라우스가 모든 독일어 파괴자 중에서 가장 무도한 헤겔주의자들과 불구인 그 후계자들처럼 글을 쓰지는 않기 때문이다. 슈트라우스는 적어도 이 수렁에서 다시 빠져나오려고 했고, 일부분은 이미 빠져나왔지만 단단히 땅 위에 서 있으려면 아직 멀었다. 사람들은 그가 청년 시절에 헤겔적으로 말을 더듬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당시 그의 몸 안에서 무엇인가가 탐구되었고, 어떤 근육이 늘어났다. 당시에 그의 귀는 북소리를 듣고 자라난 아이의 귀 같이 둔감해져서 예술적으로 부드럽고 강력한 음향의 법칙들을 다시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좋은 본보기를 따라 엄격한 훈련을 통해 교육 받은 저술가는 바로 이 법칙들의 지배를 받고 살아간다. 이로써 그는 문장가로서 최고 재산을 모두 상실했고, 일생 동안 신문의 문체라는 불모의 위험한 유사(流沙) 위에 앉아 있도록 선고 받았다 ㅡ 만약 그가 헤겔적 진창에 다시 빠져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재 몇 시간 동안 유명해졌고, 어쩌면 사람들은 그가 명사였다는 사실을 차후 몇 시간 동안 알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밤이 찾아오고, 밤과 함께 망각이 찾아온다. 또한 우리가 그의 문체상의 죄를 블랙리스트에 기록하는 이 순간 이미 그의 명성은 쇠잔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독일어에 죄를 범한 자는 우리가 가진 모든 독일적 특성의 신비를 모독했기 때문이다. 독일적 특성만이 온갖 민족의 혼합과 변천을 관통하여 스스로와 독일 정신을, 마치 형이상학적 마법을 통해 그렇게 한 것처럼, 구원해냈다. 만약 독일적 특성 자체가 현재의 독신(瀆神)적인 수법으로 몰락하지 않는다면, 이 정신을 미래에도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신들이 더 좋은 것을 보내주리라. 가라, 피부가 두꺼운 둔감한 짐승아, 가라! 바로 이것이,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했고, 위대한 시인이 노래를 했고, 위대한 사상가가 글을 썼던, 독일어다. 앞발을 뒤로 물려라!" ㅡ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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