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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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숙명적인 방식의 자기불손

 

그리하여 교회의 가치평가를 위해 마침내 '탈세속화', '탈관능화'와 '보다 높은 인간'이 하나의 감정으로 융합하게 되었다. 만일 사람들이 에피쿠로스의 신 같은, 비웃는 듯하고 무관심한 눈으로 유럽 그리스도교의 기이하게 고통스럽고 조야하기도 하며 또한 섬세하기도 한 희극을 조망할 수 있다면, 끝없이 놀라워하며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결국 인간에게서 하나의 숭고한 기형아를 만들려는 의지가 18세기 동안 유럽을 지배해왔던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누군가가 정반대의 욕구, 즉 더 이상 에피쿠로스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신적인 해머를 가지고, 그리스도교적인 유럽인(예를 들어 파스칼)이 그런 것처럼 이렇게 거의 자의적으로 인간을 퇴화시키고 위축하게 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고 한다면, 그는 여기에서 분노와 동정, 놀라움으로 소리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오, 그대 바보들이여, 그대 오만하고 불쌍한 바보들이여, 그대들이 여기에서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것이 그대들의 손에 맞는 작업이었던가! 그대들은 그대들에게서 무엇을 끄집어 냈던가!" ㅡ 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 그리스도교는 지금까지 가장 숙명적인 방식의 자기불손이었다. 인간을 예술가로 조형할 수 있기에는, 인간은 충분히 고귀하지도 준엄하지도 않다. 숭고한 자기 극복으로 천태만상의 실패와 몰락의 중요한 법칙을 지배할 수 있기에는, 인간은 충분히 강하지도 멀리 내다보는 시야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위계 질서와 위계의 간극을 보기에는 인간에게 충분한 품위가 없다 : ㅡ그러한 인간들이 그들의 '신 앞에서의 평등'으로 지금까지 유럽의 운명을 지배해왔다. 즉 마침내 왜소해지고 거의 어처구니없는 종족, 무리 동물, 선량하고 병들고 평범한 존재가 육성될 때까지 말이다. 오늘날의 유럽인들이 그들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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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치 평가를 전도시키는 것

 

전체를 결산해보면 지금까지의 종교, 즉 절대 권한을 가진 종교들은 '인간' 유형을 낮은 단계에 머물게 한 주요 원인이 되었다. ㅡ 이것들은 몰락해야만 했던 것을 너무 많이 보존해왔다. 사람들은 그것들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이 감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의 '성직자들'이 지금까지 유럽을 위해 행해왔던 모든 것 앞에서 빈한해지지 않도록,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넉넉하게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그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억압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홀로 독립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지팡이와 의지할 것을 주었고, 내면적으로 파산한 사람들과 광포해진 사람들을 사회에서 이끌어내어 수도원과 감화원으로 유도했던 것이다 : 양심을 가지고 그와 같이 원칙적으로 병든 자와 고통받는 모든 자를 보존하기 위해, 다시 말해 행위와 진실에서 유럽 종족의 열등화를 위해 작업하는 것 외에 그들이 해야만 했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모든 가치 평가를 전도시키는 것 ㅡ 그들은 이것을 했어야만 했다! 그래서 강한 사람을 부서지게 하고, 모든 자기 주권적인 것, 남성적인 것, 정복적인 것, 지배하고자 하는 것, '인간'이라는 최고로 성공한 유형에 고유한 모든 본능을 불확실성, 양심의 궁핍, 자기 파괴로 꺾이게 하는 것, 아니 지상적인 것에 대한, 대지를 지배하고자 하는 모든 사랑을 대지와 지상적인 것에 대한 증오로 역전시키는 것 ㅡ 이것을 교회는 스스로의 과제로 제기했고, 또한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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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

 

다른 모든 종류의 동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서도 넘쳐나는 덜된 자, 병든 자, 퇴화되어가는 자, 허약한 자, 고통이 필요한 자가 있다. 성공한 경우들은 인간에게서도 언제나 예외이며, 심지어 인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동물이다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더 드문 예외이다. 그러나 더욱 좋지 않은 것은 어떤 인간에 의해 구현되는 인간형의 종류가 더 많아질수록, 그가 성공하지 못할 개연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 우연적인 것, 즉 인류라는 전체 가계 운영에 포함되어 있는 부조리의 법칙은 그 삶의 조건이 예민하고 복잡하여 계산하기 힘든 차원 높은 인간에게는 파괴적인 작용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장 무서운 힘을 나타낸다. 앞서 언급된 두 위대한 종교들은 이제 이렇게 실패한 경우가 넘쳐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이 종교들은 단지 어떤 방식으로만 보존할 수 있는 것을 보존하고 삶에 결부시키려고 한다. 사실 종교들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종교로 근본적으로 그들의 편에 서 있다. 어떤 병에 고통받고 있는 것처럼 삶에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의 언행이 옳았음을 인정하며, 다른 모든 삶의 감각은 거짓된 것으로 여기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관철시키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아끼며 보존하는 이러한 배려를 ㅡ 이것이 다른 모든 사람과 더불어 최고의 인간 유형에, 지금까지 언제나 또한 가장 심하게 고통받는 인간 유형에 적용하고 적용해왔던 한 ㅡ 여전히 아주 높이 평가하고 싶어할지 모른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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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매달리게 하는 기술

 

만일 그러한 고귀한 혈통을 지닌 개인이 높은 정신성으로 인해 은둔적이고 명상적인 생활에 기울어지고,(선택된 제자나 수도원의 수도사들에 대한) 가장 정교한 성질의 지배만을 남겨놓을 경우, 종교 자체는 조야한 지배의 소란스러움이나 노고를 벗어나 안정을 취하게 하고, 정치적인 모든 작업에 반드시 따라오게 마련인 더러움을 벗어나 순수하게 하는 수단으로조차 이용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브라만 승려들은 이것을 알았던 것이다 : 종교 조직에 힘입어 그들은 왕을 임명할 권한을 백성에게 부여했지만, 그들 스스로는 좀더 높고 왕을 초월하는 과제를 지닌 인간으로 멀리 떨어져 밖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느꼈던 것이다. 그런 동안 종교는 지배받는 사람들의 일부에게도 언젠가 지배하고 명령하는 것을 준비하는 가르침과 기회를 준다. 즉 서서히 등장하는 계층과 신분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며, 그들 안에서는 행복한 결혼 풍습에 의해 의지의 힘과 즐거움과 자기 지배의 의지가 항상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 ㅡ그들에게 종교는 더 높은 정신성의 길을 가도록, 위대한 자기 극복, 침묵, 고독의 감정을 시험하는 충분한 자극과 유혹을 제공한다 : ㅡ 어떤 종족이 자신의 천민 출생을 극복하고 지배자가 되고자 하며, 언젠가 지배권을 획득하기에 이르고자 한다면, 금욕주의와 청교도주의Puritanismus는 거의 불가결한 교육 수단이고 향상의 수단이다. 마지막으로 평범한 사람들, 즉 봉사하고 일반적인 유용성을 위해 존재하며, 단지 그러한 한에서 존재할 만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종교란 자신의 상황과 천성에 무한한 만족과 다양한 마음의 평화, 복종의 고귀함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겪는 행복과 고통 이상을, 모든 일상이나 총체적인 영혼의 천박함이나 전체적인 반(反)동물적인 빈곤함을 변용하고 미화하며 정당화하는 무엇을 부여한다. 종교 그리고 삶에 대한 종교의 중요성은 이와 같이 항상 고통받는 인간들에게 태양빛을 주며, 그들 자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 있게 한다. 이는 마치 에피쿠로스 철학이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곤 했던 것처럼, 즐겁게 하고 순화시키며 마치 고통을 이용하는 것처럼 하면서, 마침내 아주 성화(聖化)하고 정당화시킨다. 아마 그리스도교나 불교에서 경건함에 의해 더 높은 사물의 가상적 질서로 들어가도록 가장 비천한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들이 참혹하게 사는 ㅡ 바로 이러한 참혹성이 필요한 것이다! ㅡ 현실의 질서에 만족하도록 하고 스스로 매달리게 하는 기술만큼 존중해야 할 것은 없을 것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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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위조 가운데 가장 철저한 위조에 대한 예술가의 경배이자 도취

 

세계를 심층적으로 통찰한 사람은 아마 인간들이 피상적이라는 사실에 어떤 지혜가 있음을 알아차릴 것이다. 인간에게 덧없고 경솔하고 거짓된 것을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보존 본능이다. 우리는 여기저기서 철학자에게서나 예술가에게서 정열적이고 과장된 '순수 형식'에 대한 숭배를 발견한다 : 이와 같이 피상적인 것에 대한 숭배가 필요한 사람이 불행하게도 언젠가 그 피상적인 것 아래의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삶의 모습을 위조하는 의도에서만 (마치 삶에 대한 끈질긴 복수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찾는 이들 화상당한 어린이들, 즉 천부적인 예술가들에게조차도 위계 질서가 있다 : 우리는 그들이 어느 정도까지 삶의 모습을 위조하고 희석하고 저편 세계의 것으로 만들며 신격화된 삶의 모습을 원하는지에 따라, 거기에서 삶이 그들에게 가한 고통의 정도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ㅡ 우리는 종교적 인간die homines religiosi을 최고의 서열에 두거나 예술가들에게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생존에 관한 종교적인 해석을 이빨로 물어뜯을 것을 강요하는 치유할 수 없는 염세주의에 대한 깊은 불신의 두려움이 있다 : 그것은 인간이 충분히 강해지고, 견고해지며 충분히 예술가가 되기 전에, 우리가 너무 일찍 진리를 획득하는 것은 아닌지를 예감하는 저 본능이 지닌 두려움이다 ······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경건성, '신 안에서의 삶'이란 이때 진리에 대한 두려움의 가장 예민한 최후의 산물이며, 모든 위조 가운데 가장 철저한 위조에 대한 예술가의 경배이자 도취이며, 진리를 전도하고자 하는 의지이자 어떤 경우에도 비진리를 향하는 의지처럼 보인다. 아마 지금까지는 인간 자신을 미화하는 데 경건함보다 더 강력한 수단은 없었던 것 같다. 이 경건함을 통해 인간은 예술, 표면적인 것, 색채의 유희, 선한 것이 될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제3장> 종교적인 것, 제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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