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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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쾡이 같은 눈

 

당연하지만 학자는 고귀하지 못한 종류의 병폐나 악습도 지니고 있다 : 그는 하찮은 질투심에 잔뜩 사로잡혀 자기가 오를 수 없는 높이에 있는 사람들의 저급함을 꿰뚫어보는 살쾡이 같은 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붙임성이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단지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의 붙임성이지, 도도히 흐르는 것 같은 사람의 붙임성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위대하게 흘러가는 인간 앞에서 그는 좀더 냉담해지고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이때 그의 눈은 기쁨이나 공감의 잔물결도 일지 않는 매끄럽고 언짢은 호수 같은 것이 된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6장 우리 학자들>, 제20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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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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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그 게임

 

심지어 오늘날 어떤 사람이 '현명'하게 살고 있다거나 '철학자'로 살고 있다는 칭찬을 듣게 될 때, 이는 거의 '영리하게 세상을 피해' 살고 있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혜라는 것, 이것은 천박한 사람에게는 일종의 도피처럼 보이며 좋지 않은 게임에서 잘 빠져나오는 수단이자 기교처럼 보인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자는 ㅡ 우리에게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가, 나의 친구들이여? ㅡ '비철학적으로' '현명하지 못하게', 무엇보다도 영리하지 못하게 살아가며, 인생의 수백 가지 시련과 유혹에 대한 짐과 의무를 느낀다 : ㅡ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모험을 감행하며 좋지 않은 게임을 한다 ……

 

- 니체, 『선악의 저편』, <제6장 우리 학자들>, 제20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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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인간에게서 훈육되어야만 하는지

 

한 비범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궤도에서 벗어나 퇴화하는지 바라보고 추측하고 함께 느껴야 하는 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고통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 자체가 퇴화했다는 전체적인 위험을 볼 수 있는 드문 눈을 가진 자, 우리처럼 지금까지 인간의 미래에 관해 유희를ㅡ어떤 손도, '신의 손' 조차도 한 번도 함께한 적이 없었던 유희를!ㅡ해왔던 무서운 우연을 인식한 적이 있는 자, '현대적 이념'이라는 우둔한 천진성과 맹신 속에, 더욱이 전체 그리스도교적 유럽적인 도덕 속에 감추어져 있는 운명을 추측하는 자, 이러한 자는 다른 어떤 사람도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불안감에 고통스러워한다. ㅡ 그는 힘과 과제들이 유리하게 집결되고 고양된 경우, 또한 어떤 것이 인간에게서 훈육되어야만 하는지 한눈에 파악한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관해 전체적으로 알면서, 인간이 최대의 가능성에서 아직도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그리고 인간이라는 유형이 얼마나 종종 이미 신비로운 결정과 새로운 길에 서 있었던지를 알고 있다 : ㅡ 그는 자신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생성 중에 있는 최고의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일에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부딪혀 깨어지고 부서지고 내려앉고 비참하게 되었는지 더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전체적인 퇴화는, 오늘날 사회주의적인 우둔한 자나 멍청이에게 그들의 '미래의 인간'으로 ㅡ 그들의 이상으로! ㅡ 나타나는 데까지 내려가며, 인간이 이렇게 완전한 무리 동물로 (또는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자유사회'의 인간으로) 퇴화하고 왜소화된다는 것, 이렇게 인간이 평등한 권리와 요구를 지닌 왜소한 동물로 동물화된다는 것은 가능하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한번 끝까지 생각해본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한 구토를, ㅡ 그리고 아마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제를 알아볼 것이다! ······

 

- 니체, 『선악의 저편』, <제5장 도덕의 자연사>, 제20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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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리 높여 말해도 좋겠는가?

 

어떤 다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우리 ㅡ , 이런 우리에게는 민주주의 운동이란 정치 조직의 타락 형식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타락 형식, 즉 왜소화 형식으로, 평균화와 가치 하락으로 생각된다 : 우리는 우리의 희망을 어디에서 붙잡아야먄 할까? ㅡ 그것은 새로운 철학자들을 향해 희망을 거는 것이며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즉 대립적인 가치 평가를 하는 동인이 되고, '영원한 가치'를 다시 가치 평가하며 전환시키는 데 충분히 강하고 근원적인 정신의 소유자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다. 수천 년의 의지를 새로운 궤도 위에 올려놓게끔 하는 강제와 매듭을 현재에서 맺는 선구자, 미래의 인간에 희망을 거는 것이다. 인간에게 인간의 미래를 자신의 의지로 만들 것을, 인간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치며, 훈육과 육성이라는 위대한 모험과 총체적인 시도를 준비하는 것, 그리고 이로써 지금까지 '역사'라고 불려왔던 저 무서운 무의미와 우연의 지배를 종식시키는 것 ㅡ '최대의 다수'라는 무의미는 그 마지막 형식일 뿐이다 ㅡ : 이를 위해 언젠가는 새로운 종류의 철학자와 명령하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며 그 모습에서 보면, 일찍이 지상에서 감추어진 무섭고 호의적인 정신으로 있었던 모든 것은 창백하고 왜소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눈앞에 떠다니는 것은 그러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 ㅡ 그대들 자유로운 정신이여, 내가 소리 높여 말해도 좋겠는가?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해야 하고, 부분적으로는 그러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용해야만 하는 환경을 말이다. 이러한 과제를 이루려는 강제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높이와 힘에까지 한 영혼이 성장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방법과 시련에 관해 말이다. 그 새로운 압력과 해머 아래 양심이 단련되고, 마음이 강철로 변하게 되는 가치를 전도함으로써, 양심은 그러한 책임의 무게를 견디게 되는 것이다. 다른 한편 그러한 지도자들이 나타나는 것이 필요한데, 그들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실패로 돌아가 퇴화할 수도 있는 무서운 위험성이 있다. ㅡ 그대들 자유정신이여, 그대들은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걱정이며 우울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것이 우리의 삶의 하늘을 지나가는 무겁고 먼 사상이며 뇌우인 것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5장 도덕의 자연사>, 제20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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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운동 비판

 

민주주의 운동은 그리스도교적 운동의 유산을 상속한 것이다. 그러나 조급한 사람과 앞에서 언급한 본능에 시달리는 병자나 중독자에게는 속도가 아직도 너무 느리고 졸릴 정도라는 사실, 이것은 현재 유럽 문화의 뒷골목을 방황하는 무정부주의자의 개들이 더욱 광포하게 으르렁거리며 더욱 이빨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 이들은 겉으로는 평화롭고 근면한 민주주의자이나 혁명을 주창하는 이데올로기 사상가와는 반대로 보이며, 더욱이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부르며 '자유로운 사회'를 바라는 어리석은 사이비 철학자나 형제애를 꿈꾸는 몽상가와도 반대로 보이지만, 사실 자율적 무리의 사회 형식 외에 어떤 다른 사회 형식에 대해서도 근본적으로 또 본능적으로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그들과 하나이다('주인'과 '노예'의 개념마저 거부하기에 이른다. ㅡ 신도 주인도 없다는 것이 사회주의적 형식이다 ㅡ ). 어떤 사람은 모든 특별한 요구, 모든 특별한 권리와 특전에 대해 맹렬하게 저항한다(이는 결국 모든 권리에 저항함을 의미한다 :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에게도 더 이상 '권리'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ㅡ). 또한 어떤 사람은 처벌하는 정의에 대해 불신하고 있다(마치 그것이 약자에 대한 폭력이며, 모든 이전 사회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에 부당함이 있는 것처럼 ㅡ). 그러나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동정의 종교를 믿으며 오직 느끼고 살아가고 고통받는 한 동감한다(이는 아래로는 동물에까지 이르며, 위로는 '신'에까지 다다른다 : ㅡ '신에 대한 동정'이라는 탈선은 민주주의 시대의 것이다 ㅡ ). 어떤 사람은 동정을 외치면서 동정에 초조해하고 고통 일반에 대해 죽을 정도로 증오하며 이 점에서 방관자로 남아 있을 수 없고 고통받게 놓아둘 수 없는 거의 여성적인 무능력 안에 있다. 어떤 사람은 원하지 않은 우울함과 유약함에 빠져 있으며, 거기에 속박되어 유럽은 새로운 불교에 위협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은 마치 공동의 동정이라는 도덕을 신봉하고 마치 이것이 도덕 자체인 것처럼 생각하고, 절정, 인간에 의해 이른 절정, 미래의 유일한 희망, 현존하고 있는 자들의 위로제, 이전의 모든 죄에서 위대하게 해방된 것처럼 보고 있다 : ㅡ 어떤 사람은 전체적으로 구제자로서의 사회를 믿으며 즉 무리를 믿고 '그 자신'을 믿는다 ······

 

 - 니체, 『선악의 저편』, <제5장 도덕의 자연사>, 제20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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