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것이 문제로다.

 - 셰익스피어, 『햄릿』 중에서

 

 * * *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 「마음」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이지요. 그가 사망한지 벌써 100년도 더 지났지만 그의 명성이나 위상이 흔들린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의 작품은 중고생들의 교과서를 통해 세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읽혀졌고, 그의 얼굴은 1,000엔 권 지폐를 가장 오랫동안 장식했습니다. 도대체 이 작가는 무슨 이유로 이토록 일본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을까요?

 

그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서양 문물을 직접 배워오도록 영국으로 파견한 국비 유학생의 원년 멤버였습니다. 비록 신경쇠약으로 중도에 귀국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유학 경험은 작가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었지요. 나쓰메는 유학 시절에 이미 선진 문물을 모방하고 뒤따라가기 바쁜 조국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터였습니다. 그는 일본이 피상적인 근대화를 추구한 나머지 서양에 대한 정신적인 예속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본 학계는 그의 논설과 강연을 이내 '문명 비판'이라는 층위로 격상시켰고 그는 점차 국민적 지식인으로 떠올랐지요.

 

국민 작가라는 칭호는 자연스레 정치적인 이념과 결부되기 마련이었습니다. 민족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혹은 국가적 신념과 결부된 나쓰메의 작품들은 차츰 '소세키 신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지요. 일본인들은 어느 공동체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나쓰메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열도가 러일 전쟁의 승리에 한껏 들떠 있던 바로 그 즈음 처녀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년)로 뜻밖의 성공을 거둔 나쓰메는 그 직후 잇따라『도련님』과 『풀베개』 등을 써냈고,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 교수라는 명예로운 자리마저 가볍게 내던지고 《아사히 신문》에 소속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는 좀 더 원대한 포부를 향한 발걸음을 내디딘 셈이었지요. 창작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스스로 맹세했네. …… 단지 엄청나게 격변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만큼 나의 감화를 받고, 내가 얼마만큼 사회적 존재가 되어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삶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고 싶다네.

 

한 자루의 붓을 들고 낡은 세상을 뜯어고치고 자신이 꿈꾸는 멋진 세상을 그려보고픈 당찬 포부가 그대로 묻어나는 이런 출사표야말로 나쓰메의 본심이었습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일본인들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그들로 하여금 서양 문명을 극복하도록 부단히 독려했습니다. 비록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이 총칼을 들고 서양과 직접적인 전쟁에 나선 적은 없었지만 문화 전쟁에서는 늘 그들에게 뒤처져 있다는 열패감이 그를 지배했고, 그는 문학을 통해서라도 서양에 대적할 정신적인 힘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1914년에 발표된 『마음』은 여러 다른 인기작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정받는 작품이지요. 왜냐하면 나쓰메 문학의 본령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자라는 상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 특유의 시대적 불안과 문화적 소외감이 등장 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이상화하고 싶었던 인물들의 성격적 특징들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이상적인 성격적 특질들을 『마음』을 바탕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꾸준히 용맹 정진하고, 추호도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금욕적이면서도 도의적이고, 향상심을 잃지 않고 맹진하는 인간 유형. 이런 유형은 작중 인물인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암중 모색하는 '나'에게서는 아직까지 쉽사리 발견되지 않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도 성격과 자질은 충분히 갖춰졌지만 여전히 실현되지는 못합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언제나 선생님보다 앞서 있었지만 끝내 '사랑 때문에' 자결로 생을 마감한 K의 경우가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성격적 특질들을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K의 안타까운 죽음이 선생님의 삶을 끊임없이 압박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로 보여집니다. 작가가 『마음』을 통해 일본의 독자들에게 부단히 일깨우고 호소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두 사람의 '참을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에 있었던 듯싶습니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되지요.

 

나는 그분을 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이는 세상 사람들을 의식해서 삼간다기보다 나로서는 그렇게 부르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글을 쓸 때도 그런 마음은 같다. 어색한 이니셜 따위는 도무지 쓸 마음이 들지 않는다.(16쪽)

 

이렇게 시작되는 『마음』의 전체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화자인 '나'는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생기발랄한 학생입니다. '나'는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어떤 중년 남자를 알게 되지요. 그저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 그를 관찰하던 나는 며칠 후부터 그와 함께 해수욕을 즐길 정도로 가까워집니다. '나'는 나중에 도쿄에 돌아와서도 선생님 댁을 다시 찾게 되지요.

 

선생님은 이렇다할 직업도 없이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도쿄의 주택가에서 조용하고 단촐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대체로 비사교적인 데다가 사람들에게 냉담한 편이지요. 그의 일상에서 주목할 만한 유일한 특징이 하나 있다면 매달 어김없이 정해진 날짜에 조시가야 묘지에 성묘를 간다는 점입니다. 물론 선생님은 그 묘지의 주인공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소설속 주인공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오는 것조차 거북해 하지요.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24∼25쪽)

 

선생님의 마음은 도무지 오리무중입니다. '나'는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 '학생이었을 때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왜 지금과 같은 성격으로 바뀌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가 대학생일 때 겪었던 친한 친구의 갑작스런 변사가 한 원인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지요.

 

주인공인 '나'는 도쿄에서 학업을 마치고 잠시 고향에서 지내기 위해 낙향합니다. 더군다나 아버님은 최근에 신장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데 병세가 위중했습니다. 병환 중에도 아버지는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아주 꼼꼼히 읽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메이지 천황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병세도 갑자기 악화됩니다.

 

그 무렵 신문은 사실 시골 사람들이 날마다 기다릴 만한 기사로 가득했다. 나는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꼼꼼하게 읽었다, 읽을 시간이 없을 때는 슬쩍 내 방으로 가져와 빠짐없이 훑어보았다. 나는 군복을 입은 노기 대장과 궁녀 같은 차림을 한 부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132쪽)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멀리 타향에 나가 있는 형과 매형이 불려오고, 하루하루 병세가 위중한 가운데 어느날 선생님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습니다. 양복 입은 사람만 봐도 개가 짖는 곳에서는 전보 한 통조차 대사건이었지요. 전보에는 잠깐 만났으면 하는데 올 수 없겠느냐고 간단히 쓰여 있었습니다.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부탁에 응할 수 없다는 상세한 설명을 담은 긴 편지를 보내지만 그 후로 별다른 답장을 받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병환이 마지막 일격을 앞둔 시점에 뜻밖에도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두툼한 편지가 등기로 배달됩니다. 그 편지에는 뜻밖에도 자신의 자살을 암시하는 문장이 들어있었지요. 주인공은 만사를 제쳐두고 황급히 도쿄행 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품안에서 다시 꺼내 찬찬히 읽기 시작한 편지는 결국 '선생님의 유서'였지요. 거기엔 자신의 지나온 과거가 소상히 담겨 있었지요.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지금에서야 죽기로 결심했는지 하나도 숨김없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는 수천만 명이나 되는 일본인 중에 오직 자네에게만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네. 자네는 진실하니까, 자네는 진실하게 인생 자체에서 살아 있는 교훈을 얻고 싶다고 했으니까.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내가 어둡다고 한 것은 물론 윤리적으로 어둡다는 것이야.(151쪽)

 

 

편지 내용은 길게 이어집니다. 선생님은 스무살도 안 되어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부모를 잃고 나서 한동안 숙부가 자신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야 도리어 숙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인간 부류를 통째로 불신하게 되지요.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한 그는 고향을 영영 떠나 홀로 도쿄에서 대학을 다닙니다. 적당한 하숙집을 물색하던 그는 청일전쟁때 전사한 남편 때문에 마땅한 수입이 없던 아주머니의 집으로 들어가지요. 그 집에는 학교에 다니던 하숙집 아주머니의 외동딸과 하녀까지, 여자 셋이서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다다미 여덟 장이 깔린 널찍한 하숙방으로 이사한 뒤로 조금도 불편한 점 없이 학교에 다니던 그는 이내 한 집안 식구처럼 그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가씨와도 곧잘 차를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눌 정도가 되면서 선생님은 차츰 하숙집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지요. 그런데 하필 그 무렵 그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을 중대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같은 고향 출신이자 같은 대학에 다니던 K라는 친구가 부모와 갈등 끝에 의절하다시피 하면서 오갈데 없는 처지로 내몰리자 그 친구를 하숙집으로 데려온 것이지요. 그게 바로 운명적인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남몰래 아주머니의 딸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아주머니로부터 자신의 딸을 '빨리 치워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그로서는 K가 자신의 연애 경쟁 상대가 되리라고는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K는 태생부터 스님의 아들이었던 데다가 보통의 승려보다 훨씬 승려다운 성격을 지녔고, 스스로도 장차 종교적인 방면이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려는 고상한 인품을 지닌 친구였으니까요.

 

K는 악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정진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머리속엔 온통 훌륭한 사람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과묵하면서도 사교에 서투른 그런 친구를 보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바로 그의 친구였고, 하숙집 아주머니와 아가씨였습니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전혀 엉뚱한 데서 문제를 일으키지요. 선생님의 눈에 비친 K의 행동들은 차츰 의심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합니다. 그는 이제 영락없이 오셀로의 처지로 내몰리지요. 질투심에 사로잡혀 결백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그 오셀로 말입니다. 다음 대목만 읽으면 인간의 정념 중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질투심이 이제 막 독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눈앞에서 선하게 보이는 듯합니다. 

 

어느 날 나는 간다에 볼일이 있어 귀가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늦어졌다네. 잰걸음으로 대문 앞까지 와서 격자문을 드르륵 열었지. 그와 동시에 나는 아가씨의 목소리를 들었네. 목소리는 분명히 K의 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지. …… 나는 들어와 바로 격자문을 닫았네. 그러자 아가씨의 소리도 금방 그치더군. 나는 그때부터 하이칼라여서 벗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상화를 신고 있었는데, 내가 허리를 굽히고 구두끈을 푸는 동안 K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평소처럼 K의 방을 지나가려고 장지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두 사람이 앉아 있더군. K는 여느 때처럼 이제 오나, 라고 말했지. 아가씨도 앉은 채 "오셨어요?" 하고 인사하더군.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그 간단한 인사가 내게는 좀 딱딱하게 들렸네. 내 고막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어조로 울렸지.(205쪽)

 

이때부터 급작스럽게 조성된 선생님과 K 사이의 팽팽한 긴장 상태는 늦여름에서 이듬해 봄에 이르기까지 숨막힐 정도로 길게 이어집니다.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지요. 의심은 의심을 낳고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한 질투심은 꺼질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무턱대고 K를 추궁할 수도, 그와 담판을 벌일 수도 없었지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아주머니에게 고백하고도 싶지만 끝내 결행에 이르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엔가 K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됩니다. 자신이 하숙집의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얘기였지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숙집 안주인과 아가씨에게까지 직접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상황이 진척된 게 아니라는 사실뿐이었습니다. 자신의 연인을 한순간에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선생님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K를 경계하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그가 아가씨를 포기하도록 잔인한 말까지도 서슴치 않지요.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인간은 쓰레기다."라는 K의 평소 지론까지 곁들이며서 말이지요.

 

교묘한 방법으로 K를 궁지로 몰던 선생님은 마침내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칠 계획에 착수합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아주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요청하지요. 아주머니도 시원스럽게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합니다. 당사자의 의견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면서.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K는 자신의 방에서 자살하고 말지요. 그가 친구에게 남긴 유서에는 아가씨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단지 "의지와 실천력이 박약해서 도저히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고백만 있었을 뿐이고, 친구에게는 도리어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어준 후의에 감사를 표한다는 내용까지 덧붙이고 있었지요.

 

사건은 원만하게 수습되지만, 자신의 비열한 행동 때문에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힌 선생님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친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밝히지 못합니다. K의 자살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내막조차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하숙집 아가씨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선생님과 결혼하지요. 결혼 이후 아내와 함께 할 때마다 언제나 그 두 사람 사이에 K의 죽음이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선생님은 뿌리 깊은 죄의식에 시달립니다.

 

결혼할 때 아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둘이서 K의 묘에 다녀오자는 말을 꺼내더군. 나는 까닭도 없이 그저 가슴이 철렁했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거냐고 물었지. 아내는 둘이서 묘를 찾아가면 K가 무척 기뻐할 거라고 하더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는데 왜 그런 얼굴을 하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지.

 

아내가 바란 대로 둘이서 조시가야에 갔네. 나는 K의 새 묘석에 물을 끼얹어 깨끗하게 씻어주었지. 아내는 묘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을 꽂았지.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합장을 했네. 아내는 필시 나와 결혼한 전말을 알리면 K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속으로 그저 내가 잘못했다고 되풀이할 뿐이었네.(262쪽)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건 그저 외관에 그칠 뿐이고,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매달 한 번씩 친구의 묘소를 찾을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한편 숙부로부터 당한 배신감 때문에 인간들을 경멸했던 자신이 바로 그런 경멸의 대상이 된 점을 깨닫고 부끄러워합니다. 그런 불행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오던 그는 메이지 천황의 병사 소식과 노기 장군의 순사(殉死) 보도를 접하고 마침내 자신도 죽기로 결심하지요. 그가 낙향해 있는 '나'에게 전보를 보낸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으로 시작되어 천황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군.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우리가 그 후에 살아남는 건 결국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내 가슴을 쳤네. 나는 분명히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지. 아내는 웃으며 상대해주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나에게 그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놀리더군.(271쪽)

 

나쓰메의 소설에 깊이 매료된 일본 독자들은 아마도 이런 대목에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역사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정반대의 묘한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싶습니다. 앞서 등장했던 '나'의 아버지도 병환 중에 들려온 천황의 붕어 소식에 충격을 받고 급작스레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무렵에 배달된 선생님의 편지 속 내용에서 그런 모습이 거듭 반복되기 때문이지요. 기억의 밑바닥에서 가라앉은 채 썩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순사(殉死)라는 말이 선생님과 강하게 결부된 모습은 다음 대목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지났지. 천황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 밤 나는 여느 때처럼 서재에 앉아 예포 소리를 들었네. 나에게는 그것이 메이지 시대가 영원히 사라졌음을 알리는 소리로 들렸지. 나중에 생각하니 노기 대장이 영원히 떠난 것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네. 나는 호외를 들고 무심코 아내에게 순사다, 순사다, 하고 말했지.

 

나는 신문에서 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써서 남긴 글을 읽었네.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래 사죄하기 위해 죽자, 죽자,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의미의 구절을 보았을 때 나는 무심코 손가락을 꼽아 노기 씨가 죽을 각오로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 보았지. 세이난 전쟁은 1877년에 일어났으니 1912년까지 35년의 거리가 있네. 노기 씨는 그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는 그런 사람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순간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했네.(272∼273쪽)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선생님은 죽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일이 '인간을 아는 일'에 헛수고는 아닐 거라며, 모든 것을 자네 가슴에 묻어두라는 부탁을 끝으로 편지를 맺지요.

 

이 작품은 독자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 '선생님'과 'K'라는 두 젊은이의 내면에 자리잡은 이기심과 윤리 의식 사이의 맹렬한 투쟁,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빚어진 뿌리깊은 죄의식이 압권인 소설입니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사이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삼각관계에서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책략들을 동원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이지요. 또한 경쟁자가 있든 없든, 그 과정이 조용하거나 떠들썩하거나 관계없이, 구애 과정은 언제나 자연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렬한 본능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런 싸움에서 돌연 패배한 친구의 급작스런 자살이 행복을 구가해야 마땅할 나머지 두 사람마저 끝내 비극으로 몰아간다는 이야기는 너무 암울하지요.

 

그런데,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천황의 죽음과 노기 대장의 순사 이야기는 너무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봉건적 군신 관계를 상징하는 '순사' 풍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와 '선생님'의 자살 동기에 동시에 드리워져 있지요. K의 죽음만 순수할 뿐 나머지 두 사람의 죽음엔 마치 충군애국의 이념이나 명예를 위한 자기희생의 색깔이 너무 짙게 채색된 느낌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천황과 선생님과 아버지의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는 생각이야말로 군사부 일체라는 케케묵은 충효사상의 재현일 테니까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마음』은 정진, 자활, 맹진, 금욕, 도의, 향상심 등으로 대표되는 K의 덕목들을 적잖이 강조합니다. 그는 그토록 권장할 만한 훌륭한 성품들을 두루 지녔으면서도 끝내 실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도 의연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탓할 뿐이었지요. 선생님 또한 자신의 삶에 그 어떤 오점 하나라도 남길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로 자신의 비겁함과 죄과를 참회하는 구도자적 모습을 보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들을 주목해서 살펴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나쓰메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 이후에 쓴 『마음』을 통해서 비로소 오래 전부터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마음 속의 다짐 일부를 마침내 실현한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삶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겠노라'던 그 다짐 말입니다.

 

이것으로 마음에 대한 작품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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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09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마음이 이렇게 번역본이 많은 줄 몰랐어요.
이게 영화로도 만들어졌군요.
또 이걸 어떻게 편집하셨습니까?
영화와 함께 오렌님 얘기 들으니 좋으네요.^^

근데 오렌님은 알라딘 TV에 올리지 않으시나봐요.
알라딘 TV에서 못 보겠던데...
제가 못 찾는 걸까요?

oren 2020-08-09 18:22   좋아요 2 | URL
<마음>의 번역본은 이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저는 판매량 상위 12개 판본만 링크해 둔 것이고요.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 있고,
지금까지 팔린 책의 부수가 1,700만 부라고 들었어요.
아마도 나쓰메의 모든 작품들이 지금껏 팔린 부수는 수억 부에 이를 듯해요.
나쓰메 또한 워낙에 다작 작가이니까 말이죠.

알라딘 TV에 영상을 올리시는 분들은 아마도 자기 고유의 채널이 없어서
알라딘 TV라는 채널에 얹혀 사는, 쉽게 말하자면 ‘임차인‘ 비슷한 셈이지요.
저야 제 채널이 버젓이 있는데,
굳이 남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알라딘 TV에 제 영상을 올릴 까닭이 없지요.
유튜브에서는 자기 자신의 채널을 만드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고,
채널 성격에 따라 한 사람이 여러 브랜드 채널을 개설할 수도 있답니다.
 

 

조지 오웰의 대표작인 『1984』를 소개합니다.

 

조지 오웰이 1948년에 완성한 『1984』는 너무나 정치색이 짙은 소설이어서 일반적인 문학 작품과는 사뭇 동떨어진 느낌을 줍니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의도한 정치적 신념이 예술적 목적을 압도한다고나 할까요? 『1984』는 그만큼 암울한 분위기를 띄고 있으며, 우리가 이미 지나온 바 있는 '1984년의 세계'에 대해 얼마쯤 안도해도 좋을 만큼 디스토피아적입니다.

 

조지 오웰은 영국이 지배하던 식민지 인도에서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 영국의 이튼 스쿨을 다녔으나,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다시 버마로 건너가 경찰에서 5년간 근무했습니다. 그는 '버마 시절'을 겪으며 영국의 식민 지배 가치관을 거부했으며, 자기 자신을 아나키스트 혹은 사회주의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는 1930년대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에도 공화파로 참전했는데, 그 때의 경험으로 그는 '전체주의 정치사상'에 대하여 깊은 혐오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미 1945년에 발표한 『동물농장』을 통해 '소련 공산주의에 대한 통렬한 풍자'로 일약 유명해진 터였습니다. 그보다 4년 뒤에 발표한 『1984』는 앞선 작품보다 훨씬 더 나아갔습니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일상이 낱낱이 감시되고, 사상 경찰에 의해 생각할 수 있는 자유마저 통제됩니다. 극단적인 전체주의 사회인 오세아니아에선 심지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성욕마저 통제합니다. 체제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사람들은 당국에 의해 체포되고, 구금되고, 가혹한 고문을 거쳐 결국 사회에서 '증발'되고 말지요.

 

소설 『1984』에서 그려진 암울한 모습들은 과거에 일당 독재와 비밀 경찰을 통해 끔찍한 정치체제를 유지했던 많은 공산권 국가들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구 소련, 동독, 동유럽 공산 국가들과 구 소련 연방을 이뤘던 여러 공산국가들이 대표적이지요. 구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도 『1984』에 그려진 암울한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건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분단 국가요, 3대에 걸쳐 절대 권력이 세습되고 잔학한 통치가 이뤄지는 북한입니다. 조지 오웰의 상상력이 어쩌면 이토록 오늘날의 북한의 모습과 쏙 빼닮았는지 경이로울 지경이지요.

 

소설의 주인공인 윈스턴 스미스는 외부 당원입니다. 서른 아홉 살인 그는 1930년경에 지어진 승리 맨션 7층에 홀로 살고 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어디에든 거대한 컬러 포스터가 붙어 있습니다. 복도 한쪽 끝 벽에도 걸려 있고, 엘리베이터 맞은편 벽에도 붙어 있습니다. 포스터에서는 언제나 커다란 얼굴이 그를 노려보고 있지요.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글과 함께 말이지요. 또한 윈스턴이 생활하는 곳곳엔 어디서나 '텔레스크린'이 그를 감시합니다. 텔레스크린은 수신과 송신을 동시에 수행합니다. 이 기계는 윈스턴이 내는 소리가 아무리 작아도 낱낱이 포착하지요. 

 

소설의 배경인 1984년의 런던은 전체주의 초국가인 오세아니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입니다. 윈스턴은 300미터나 하늘 높이 솟아 있는 피라미드 모양의 웅장한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의 일터는 진리부였습니다. 그 건물의 전면에는 당의 세 가지 슬로건이 우아한 필체로 쓰여 있었지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런던에는 외형과 규모가 진리부와 비슷한 건물이 세 동이나 더 있었고, 이 건물들에는 모든 정부기관이 들어 있었습니다. 보도 · 연예 · 교육 및 예술을 관장하는 진리부(眞理部), 전쟁을 관장하는 평화부(平和部),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애정부(愛情部), 경제 문제를 책임지는 풍요부(豊饒部)가 그것이었지요. 이 이름들은 신어로 각각 '진부', '평부', '애부', '풍부'라고 불렀는데, 가장 끔찍한 곳은 허울좋은 명칭이 붙은 애정부였습니다. 

 

윈스턴이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는 사각지대에서 시도하는 최초의 반항은 '일기'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일기 쓰기는 불법이 아니었지요. 그러나 발각될 경우 사형 아니면 적어도 강제노동 25년 형의 선고를 받을 만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종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결단력이 필요한 중대 행위'였으니까요. 그가 서툴게 쓴 글씨는 '1984년 4월 4일'이었습니다. 일기 쓰기를 통해 그는 좀 더 구체적으로 체제에 맞설 수 있는 방법과 행동들을 탐색하기 시작하지요. 

 

윈스턴은 진리부의 기록국에서 일하고 있지요. 정정이 필요한 논문이나 뉴스 기사들을 수정해서 '과거를 날조'하는 일이 주된 업무였습니다. 정정된 기사들을 바탕으로 신문을 다시 인쇄하고, 원래의 신문을 폐기하고 정정된 기사가 실린 새 신문을 신문철에 꽂습니다. 이같은 과정은 신문뿐만 아니라 일반 서적, 정기간행물, 팸플릿, 포스터, 전단, 영화, 녹음테이프, 만화, 사진 등 그 모든 것에 적용되었습니다.

 

그들은 근무시간 도중에도 틈틈이 '이 분 증오(Two Minutes Hate)'를 통해 체제 전복을 도모했던 반역자인 골드스타인을 향해 극도의 집단적인 분노와 증오를 표출함으로써 '체제 수호'를 위한 정신 교육에 동원됩니다. 반역자들에 대한 증오가 절정에 달할 때면 으레 빅 브라더의 얼굴이 스크린에 나타나지요. 그들 가운데 누군가 "나의 구세주여!'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립니다.

 

기록국 사무실에서 진행된 '이 분 증오' 활동 시간에 윈스턴이 만난 인상적인 사람이 둘 있었습니다. 복도를 오가며 자주 얼굴을 마주친 여자는 창작국에서 근무하는 스물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습니다. 윈스턴은 행동이 민첩하고 대담해 보이는 그녀가 처음부터 싫었습니다. 윈스턴은 특히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을 싫어했지요. '고집스럽게 당에 충성하는 사람들, 슬로건을 곧이곧대로 신봉하는 사람들, 아마추어 스파이들, 이단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여자들, 그것도 젊은 여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오브라이언'이라는 내부 당원이었습니다. 뭔가 대단히 중요하면서도 은밀한 직위에 있는 남자였지요. 그가 오브라이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정치적인 신조가 불완전하리라는 은밀한 믿음, 아니 단순히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텔레스크린이 없는 데서' 단 둘이 만날 수만 있다면, 한번쯤 말을 걸어봄직한 사람이었지요.

 

윈스턴은 그날 오전 중에 있었던 '이 분 증오' 시간에 일어났던 여러 풍경들을 떠올리면서도 무의식중에 계속 일기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는 큼직한 대문자로 보기 좋게 다음과 같이 똑같은 글을 되풀이해서 일기장에 적어 넣었습니다.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

 

이렇게 무의식중에 밖으로 표출되기 시작된 윈스턴 스미스의 '반체제 의식'은 뜻밖의 일로 한층 탄력을 받게 됩니다. 사무실 복도에서 가끔씩 마주치던 검은 머리의 대담한 여자(줄리아)가 어느 날 자신과 갑작스럽게 맞닥뜨려 쓰러지는 그 짧은 틈을 이용해 자신의 손에 몰래 '종이쪽지'를 건네 준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쪽지엔 놀랍게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었지요. 사실 윈스턴은 기혼자였지만 아내 캐서린과 헤어진 지 오래였습니다. 당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은 대신, 아이가 없다면 차라리 별거를 하라고 권했지요. 당에서는 '남녀 간의 애정'조차 통제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글로 인해 살고 싶은 욕망이 불타오른 윈스턴은 '온갖 현실적 제약과 난관'을 뚫고 감시의 눈을 피해 그녀와의 밀회를 즐깁니다. 누구보다도 열성 당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보여왔던 그녀에 대해 오랫동안 사상 경찰이나 스파이단의 정보원으로까지 오해했던 윈스턴은 그녀로부터 뜻밖의 고백을 듣게 되지요.

 

 

"당신 얼굴에 쓰여 있는 걸 봤어요. 그래서 기회를 노렸죠. 저는 얼굴만 보고도 당의 충복이 아닌 사람을 금방 알아맞힐 수 있어요. 당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놈들'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윈스턴과 줄리아의 밀회는 점점 더 위험한 국면으로 빠져듭니다. 둘만이 밀회를 즐길 수 있는 방을 빌리기에 이른 것이지요. 둘은 그것이 미친 짓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것은 '일부러 무덤으로 가는 계단을 밟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지요. 윈스턴과 줄리아는 채링턴 씨의 상점 2층에 있는 방에서 더 자주 밀회를 즐겼고, 두 사람은 거기서 사카린 대신 설탕을, 싸구려 커피 대신 진짜 커피를, 흑딸기 이파리가 아닌 진짜 홍차를 즐겼으며, 줄리아는 얼굴에 화장을 하고 향수까지 뿌렸습니다. 거기서만큼은 당의 동지가 아니라 진짜 여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윈스턴에게 마침내 고대하던 순간이 왔습니다. 오브라이언에게서 기대했던 메시지가 온 것이지요.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부름에 응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겼지만, 이제는 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여겼습니다. 윈스턴과 줄리아는 오브라이언을 만나러 내부당원의 으리으리한 저택을 찾아가고, 방문객을 맞은 오브라이언은 텔레스크린을 미리 끄는 친절까지 베풀지요. 윈스턴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방문 동기를 말합니다..

 

오브라이언은 와인을 대접하며 그들을 냉담하게 환영합니다. "자, 건강에 좋은 것이니 마십시다. 우리의 지도자, 임마누엘 골드스타인을 위해!" 라고. 그리고는 골드스타인이 쓴 '그 책'을 보내 줄테니 읽고 다시 돌려달라고 말합니다. 얼마 후 윈스턴은 '그 책'을 은밀한 방법을 통해 전달받습니다.

 

책의 제목은 《과두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였습니다. 소설에서는 윈스턴이 줄리아에게 이 책을 읽어준다는 설정으로 무려 43쪽에 걸쳐 책 내용이 아주 길게 이어집니다. 윈스턴이 먼저 펼친 [제3장, 전쟁은 평화]에서는 '전쟁의 본질'을 다루고, [제1장, 무지는 힘]에서는 '계급투쟁의 본질'을 다루는데, [조지 오웰이 쓴 정치철학 강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내용이 체계적이면서도 깊이 있고 논리정연합니다. 반체제 인사인 골드스타인이 쓴 그 책의 내용이야말로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1984년의 역사적인 배경과 정치·경제적인 제반 환경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있어서 소설 『1984』를 한층 더 깊숙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독자들을 이끄는 훌륭한 교재가 되는 셈이지요.

 

채링턴 씨의 2층 방에서 밀회를 즐기던 윈스턴과 줄리아는 끝내 그곳에서 사상 경찰에게 체포되고 맙니다. 방을 선뜻 빌려줬던 채링턴 영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서른다섯 살쯤 된, 빈틈없고 냉정한 얼굴의 소유자로 드러나지요.

 

소설의 제3부는 거의 전부가 감방 안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는 윈스턴의 이야기뿐입니다. 반역죄를 저지른 정치범이자 사상범인 윈스턴에게 가해지는 모진 고문은 뜻밖에도 오브라이언의 몫이었습니다. 애정부에서 그를 만난 건 이미 관례적인 예비 심문에서 주먹과 곤봉과 쇠몽둥이와 구둣발질에 만신창이가 된 이후였지요. 오브라이언의 전기 고문은 마치 '학생과 선생 사이처럼' 진행됩니다. 윈스턴은 과거에 일어난 명백한 사실에 대해서조차 부정을 강요하는 오브라이언의 심문에 대해 완강히 거절합니다. 그건 당에 반항하는 일이었지요. 오브라이언이 새삼 당의 슬로건을 상기시킵니다.

 

그렇습니다. 당이 현재를 지배하고 있으므로, 모든 과거는 당의 뜻대로 조작되고, 날조되고, 바뀌어야 합니다. 그게 바로 과거를 지배하는 일이니까요. 오브라이언은 '네 개의 손가락'을 윈스턴에게 펼쳐 보이면서 그게 '다섯 개'라고 대답하도록 끈질기게 강요합니다. 당이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라고 말하면 결국 '다섯 개'가 맞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윈스턴은 전기 고문의 다이얼이 최대치에 이를 때까지도 '다섯 개'라는 대답을 선뜻 내놓지 못합니다. 그게 네 개인데 어떻게 다섯 개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식으로 오브라이언의 고문은 계속됩니다.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하는 도중에도 간간이 자못 친절한 태도로 윈스턴과 길고 긴 대화를 나눕니다. 온갖 사상범들을 잔인하게 고문할 게 아니라 간단히 없애버리면 그만일 텐데, 왜 당국은 그토록 힘들여서 정치범들을 고문하고 심문하는지, 당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지, 우리는 왜 권력을 원하는지 등에 관한 '고문실의 대화' 속에는 오웰의 예리하고도 깊이 있는 통찰들이 담겨 있지요.

 

윈스턴은 오브라이언의 가혹한 고문 때문에 점차 '당에 대한 이해와 수용' 쪽으로 기울지만 끝내 감정적인 벽을 넘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오브라이언에게 '빅 브라더를 증오한다'고 고백하고 '마지막으로 밟아야 할 단계'인 공포의 101호실로 끌려가지요. 거기서 가장 끔찍한 공포와 전율을 마주한 그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순간에 줄리아마저 배신합니다. 모진 고문과 세뇌교육 끝에 정상적인 사고 능력까지 망가진 채 석방된 윈스턴은 과거 반체제 인사들이 자주 드나들던 체스넛트리 카페에서 술로 허송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애정부로 돌아가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범자로 만듭니다. 그리고는 총살을 당하지요.

 

소설 『1984』는 고도로 정보화된 미래 사회에 대한 암울한 예언이나 경고를 담은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소설에 담긴 '고도로 억압되고 통제된 감시 사회'는 과거의 숱한 공산권 국가들뿐 아니라, 2020년 현재까지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북한 정권의 가공할 만한 지배 체제를 거듭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인간의 얼굴을 짓밟고 있는 구둣발'이 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이지요. 오웰이 상상했던 1984년의 공포스런 정치 체제는 다행히 1980년대 후반에 진행된 소련 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급격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일부 국가들의 암담한 현실은 여전히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게다가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는 통치자가 핵무기 버튼까지 움켜쥔 채 전세계를 상대로 거대한 게임을 벌이는 듯한 모습을 현실에서 지켜보게 될 줄 그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요.


조작과 날조, 감시와 통제, 억압과 처벌로 유지되는 끔찍한 사회를 차츰 견디다 못한 주인공 윈스턴이 오랫동안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어 왔던 오브라이언으로부터 도리어 끔찍한 고문을 당하고 끝내 제거되는 이야기는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윈스턴이 '반체제 혁명을 꿈꾼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줄리아마저 고문 과정에서 끝내 배신하고, 석방된 이후에 우연히 서로 조우했을 때조차 이내 서로 냉랭하게 돌아서는 모습은 너무 황량하고도 서늘합니다. "그런 일이 닥치면 누구라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겠죠."라는 그녀의 말이 귓가에서 온전히 다 사라지기도 전에 텔레스크린에서는 마치 그들 두 사람을 비웃는 듯한 음악이 흘러 나옵내다.

 

울창한 밤나무 아래

나 그대를 팔고, 그대 나를 팔았네…….

 

물론 가장 진한 아이러니는 빅 브라더를 타도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오브라이언을 만나기를 갈망했고, 그로부터 온갖 고문과 심문을 당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선생님에게 배우는 학생처럼' 사상 교육을 받은 윈스턴이 마침내 죽는 순간에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사실입니다. 이보다 더 완전한 파멸과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을까요. 가눌 수 없는 허탈감이 밀려드는 소설의 맨 끝줄을 온전히 다시 음미하기 위해서라도 소설의 맨처음으로 다시 되돌아갔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요. 기나긴 여운이 남는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인용하면서 작품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부질없는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 안을 떠나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며 지내온 유랑의 삶이여! …… 그러나 잘되었다. 모든 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브라더를 사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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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8-01 0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 님의 북리뷰 기다렸었어요!!!^^

oren 2020-08-01 12:26   좋아요 0 | URL
라로 님, 반갑습니다.^^
북리뷰는 꾸준히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있는데,
매번 알라딘에 올리지는 못하고 있네요.^^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를 소개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거기서 삶을 마감한 피렌체 토박이였습니다. 그래서 피렌체의 역사는 마키아벨리의 생애와 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지요.

 

피렌체는 봄의 도시이자 꽃의 도시입니다. 토스카나 주의 북방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알바노 산맥을 끼고, 서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아르노 강이 피렌체를 적시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에트루리아가 세력을 떨치던 곳인데, 수세기 동안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대한 도시국가였던 그들도 결국 BC 4세기 무렵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지요.

 

피렌체는 흔히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라는 이름이 따라붙습니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절은 인간의 정신이 바야흐로 '중세의 미망'에서 막 깨어나던 시기였습니다. 고대 로마가 멸망하고 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확고하게 다져 놓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에 비로소 사람들이 질문을 품고 강력하게 반기를 들던 때였습니다. 르네상스에 도화선을 붙인 건 페트라르카였습니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 단테가 마중물을 부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요. 단테는 처음으로 '고대'를 문화생활의 전면에 힘차게 밀어넣었던 인물이었습니다. 페트라르카는 고전들을 예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중세 학자들이 고전들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통합하려 애썼지만, 그는 고대의 시나 역사, 철학 등을 그 자체로 고대 문명의 '빛나는 본보기'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보는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관이 '1천 년 동안이나' 맥이 끊겨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도 페트라르카였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이어받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니 온갖 고전 작가와 작품들이 그를 자극했음은 당연했습니다. 1486년 그의 나이 열일곱이던 때,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제본했는데, 그 우연한 일 때문에 그는 리비우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는 뛰어난 문헌학자였던 포조 브라치올리니가 1417년에 발견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직접 필사할 정도로 고대 로마의 철학에 매료되었습니다. 바티칸 국립 도서관에 지금도 남아 있는 그 책의 필사본이 바로 마키아벨리가 쓴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었으니 말이지요.

 

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피렌체 공국도 공화정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로, 다시 소델리니 정권에서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으로 여러 차례 정치적 변화를 겪었습니다. 주변의 강대국들인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침입도 잦았습니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동향을 예민한 감각으로 살필 수 있게 만든 건 그가 피렌체 정청에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는 서기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정치 현장'을 몸소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직접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로마 교황청 등으로 동분서주했으며, 14년 동안 공화정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체사레 보르자와 만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궁정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가 열정을 쏟은 분야는 '군사위원회'의 사무였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피렌체는 군사력을 '용병부대'에 의존했는데, 그는 언제나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할 것을 끊임없이 주창했습니다.

 

그가 『군주론』을 집필한 동기는 소델리니 정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자신의 면직이었습니다. 18년 만에 메디치가가 정권을 되찾게 되자 새 정부는 마키아벨리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시켰습니다. 로마 근교의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서재 책상 앞에서 고대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겪고 관찰해 왔던 현실 정치와 접목시키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지리멸렬한 조국의 현실과 찬란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과의 간극이 너무나 컸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구체화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훌륭한 타개책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쓴 책은 『로마사론』, 일명『리비우스에 관한 담론』이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그는 로마 공화정의 온갖 훌륭한 법률과 제도와 군대와 인물들을 무수히 살폈습니다. 또한 로마가 멸망한 이후 여러 나라로 쪼개진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깊이 생각한 온갖 책략들을 현실에 투영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활약할 무대'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군주론』이라는 더없이 솔직하고도 대담한 책을 써서 권력을 잡고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 전하를 위해 바쳤습니다. 그 짧은 책에는 국가의 성격, 그 종류, 유지 방법, 상실 이유 등에 대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지요. '권력'이라는 마신(魔神)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 책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합리주의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정치가의 냉혹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 탄생했던 것이지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개념이나 '정치학'의 원리는 상당 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었지만, '근대 국가의 탄생'을 재촉시킨 마키아벨리즘이 오래된 전통적 국가관을 한 순간에 쓸데 없는 소리에 가깝도록 몰아부친 셈이었습니다. 이 책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1532년에 인쇄된 이 책은 로마 교황청이 서둘러 금서에 올릴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습니다. 혹자가 말한 대로,『군주론』이 겪은 역사가 그대로 유럽 정치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 군대'를 강화하고, 무력을 앞세워 이웃 약소국가들을 강제로 삼키기 시작하였고, 서유럽 열강들은 멀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손길을 뻗쳐 식민지 확대에 열을 올렸습니다. 모스크바까지 점령했던 나폴레옹에 뒤이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겪었던 것도 마키아벨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마키아벨리의 영향은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군비 경쟁과 군사력의 극대화에 기반한 열강들의 세력 다툼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일 뿐입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는 얘기이지요. 『군주론』의 끝부분만 보더라도 그런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야만적 지배는 누구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 높은 당신 일가가 정의의 싸움을 일으킬 때의 그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 책무를 담당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이 내건 기치 아래서 조국이 고귀하게 빛을 발하고, 당신의 편달 아래서 페트라르카의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미덕은 광포에 대하여 무기로써 맞서지 않느니. 싸움은 조용히 그만두라."고 썼으니 말이지요.

 

『군주론』과 그 책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는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논쟁 거리였습니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일반 독자들이 살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독자들이 마키아벨리와『군주론』을 둘러싼 오해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쓴『로마사론』을『군주론』과 함께 읽는 일입니다. 오랜 시간의 연구와 노력끝에 완성한 『로마사론』을 읽어보면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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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놀랄만큼 성실하게 티투스 리비우스의『로마사』를 공부했습니다. 아쉽게도 리비우스의 방대하고도 탁월한 역사서인『로마사』는 지금 온전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와 리비우스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서로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로마사론』만 읽어도 그의 진면목은 물론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습니다. 『로마제국쇠망사』라는 불후의 대작을 남긴 에드워드 기번이 마키아벨리를 그토록 칭송했던 이유 또한 그가 남긴『로마사론』때문이었지요.

 

마키아벨리가 쓴『로마사론』은 전3권(제1권 60장, 제2권 33장, 제3권 49장)에 이르는 방대한 저작입니다. 그 책의 핵심 주제는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정 체제의 수립 및 발전 전략'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미 『군주론』에서 군주정 체제에 관한 이론과 책략들을 충분히 서술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전공 분야인 '로마 공화정'을 바탕으로 '공화정 체제의 우수성'과 '저해 요인 및 발전 전략'을 더없이 치밀하고도 풍성하게 펼쳐놓을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역사를 이끈 숱한 인물들에 대해서라면 마치 그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훤히 꿰뚫는 듯한 마키아벨리의 명민(明敏)한 관찰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만듭니다. 숱한 장(章)에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인용하는 대목들은 마키아벨리의 칼날처럼 예리한 분석 포인트와 절묘하게 결합됩니다. 수많은 군대지휘관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명연설'은 전장의 생생한 현실로 다시금 독자들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명성을 얻는 법, 평판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법, 위험에 대처하는 법,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법, 상황에 대한 오판이 초래하는 영향 등은 훌륭한 처세술을 전수받는 느낌도 갖게 만듭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긴 장인 <음모에 대하여>를 읽으면 마치 제갈공명을 앞에 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군대의 규율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주 자신의 태만과 통찰력 부족을 한탄해야 할 때는 언제인지, 나가서 싸울 것이냐 적을 끌어들여서 싸울 것이냐의 선택 문제, 진지의 구축과 요새의 필요성, 대포의 효용 등등은『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를 훨씬 더 능가할 정도여서, 그가 얼마나 탁월한 전술가요 책략가인지를 느끼게 해줍니다.

 

『로마사론』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공화정에 대한 뜨거운 옹호'와 '민중의 자유 수호'였습니다. <민중의 잘못은 군주의 잘못에서 생긴다>는 주장이나,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는 표현을 마주하면 그가 과연 『군주론』을 쓴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로마가 발전을 거듭했던 이유도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집정관으로 뽑히는 구조와 민중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호민관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보았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사령관의 지휘권 연장'을 로마 공화정 붕괴의 '시발점'으로 보았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임기 1년의 두 집정관 체제가 '현장의 필요성' 때문에 '지휘권 연장'을 편법으로 용인함으로써 그 지휘관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는 장교들이 등장하게 되고, 결국 군대의 사병화가 시작되었다고 본 것이지요. 마리우스와 술라가 집정관을 맡게 된 이후에 나타난 결과는 결국 참혹한 내전이었습니다.

 

그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경쟁하게 되었고, 소(小) 카토나 브루투스와 같은 고결한 인물들이 나타나 '공화정 수호'를 위해 분기했지만, 끝내 카이사르에게 무너지고 만 것도 결국 시대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진단이었습니다. 카이사르야말로 마키아벨리에게는 '로마 인민의 자유'를 끝장내고 로마를 '노예 상태'로 전락시킨 원흉이었던 셈이었지요.

 

"이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첫 번째 참주가 되고, 그에 따라 로마의 자유는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게 되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어찌보면 '권력의 진실'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합리적이고 덕성 높은 사람이었으며, 인간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권모술수와 음모와 책략의 대가로만 인식되는 게 현실이지요.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발견한 많은 전공자들이 그 점에 대해 억울해 해도 충분한, 그런 인물이 바로 마키아벨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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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TV를 별로 시청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몰랐지만, 미스터 트롯 열풍이 대단한 듯하다.

 

나와 거의 똑같은 날에 구독자 1,000명을 돌파한 어떤 유튜버 분은 <정동원의 인기 비결 3가지> 영상 하나가 대히트를 치는 바람에 순식간에 구독자 8,000명을 돌파했다. 요즘 그 유튜버 분을 흉내내는 사람들이 참 많아졌다. <신라의 달밤>을 부른 조명섭 씨를 소개하는 유튜버 분들도 부쩍 늘어났다. 고민고민 끝에 나도 하나 만들어봤다.

 

<막걸리 한 잔>, <찐이야>, <니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노래로 오랜 세월 동안 겪었던 무명 가수의 설움을 단번에 날려버린 가수 영탁이 마침 고교 후배여서, 그런 인연에 기대어 만들어본 영상이다.

 

이 영상이 업로드 하루 만에 조회수 1,000회를 가뿐하게 넘기는 걸 보면, 대중들의 인기가 참으로 대단하다는 걸 절감한다. 동영상 내용 중에 모교를 너무 미화하는 듯한 내용이 담기는 바람에 '자뻑이 흠'이라는 댓글도 받았는데,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조금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게 보는 사물들도 남들이 보면 도리어 기분 나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그 댓글에 공감한다는 댓글을 달아드렸다. 진짜로 공감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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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6-25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영상을 재밌게 봤습니다. 이렇게 안동과 영탁 가수를 연결해서 잘 설명해 주신 오렌 님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싶네요.
굿 아이디어였어요. 안동의 자랑은 곧 우리나라의 자랑으로 들었습니다. 베리 굿!!! 입니당~~

oren 2020-06-29 16:37   좋아요 1 | URL
영상 재미있게 보셨나요?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에 비해 이런 영상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어요. 뜻밖에도,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 만들기가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네요. 지금도 조지 오웰의 <1984>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드는데, 힘들어 죽을 지경입니다요. ㅎㅎ
 

 

4년 전쯤에 우연히 발견한 글 한 편이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하다. 붉은돼지 님께서 올리신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에 관한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불현듯 아토스에 대한 기억들이 몇몇 떠올라, 아토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이 책 저 책을 마구 뒤져봤더니 놀랍게도 무려 일곱 권에서 '아토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한 때는 그저 아토스가 무슨 자동차 이름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수다에 관하여』라는 책에도 아토스가 언급되어 있다. 사진에서는 그 책이 빠져있다.)

 

그 때 쓴 글을 바탕으로 아토스에 대한 영상을 하나 만들어봤다. 그런데 그 영상을 악전고투 끝에 다 만들고 나서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난 뒤 영상 공개 시간까지 예약해 둔 사이에, 저작권 침해 경고가 날라왔다. 자세히 알고 보니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주제가인 '조르바의 춤'이 결정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기껏 만들어 놓은 영상을 다시 해체하고 수정하는데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영화 《300》과 《제국의 부활》에 이어 《그리스인 조르바》로 영상의 대미를 장식하려던 내 야무진 꿈은 저작권이라는 드높은 장벽 앞에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유튜브 영상들을 조회해 보면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그 멋진 장면과 음악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데, 왜 하필 내가 만든 영상에 담은 2분 남짓한 영상만이 문제라는 것인가. 아무튼 그 영상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담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여기서라도 다시 올려놓아야 겠다.

 

 

맨 처음 영상은 이렇다. 그 멋진 《조르바의 춤》과 음악이 등장해야 할 대목에 그게 안 나온다!

https://youtu.be/u-U19KvREPw

 

 

두 번째 영상은 '아토스'를 담은 수많은 영상 중에 하나 골라본 것이다.

 

세 번째 영상은 흑백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다.

이토록 멋진 영상과 음악을 내 영상에 담지 못한 아쉬움이 참으로 크다.

 

 

네 번째 영상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소개하는 어느 북튜버의 최신 영상이다.

아직은 채널의 구독자수도 얼마 되지 않고 영상도 몇 개 없지만,

꼼꼼한 영상 제작과 똑 부러지는 나래이션 때문에 즐겨 찾는 채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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