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분야의 명저(名著)도 동영상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다만 그 작품을 소개하는데 필요한 이미지들을 찾는 게 조금 어려울 뿐. 그런데, 우리가 어릴 때 유난히 자주 들어 왔던 참신한 학습 방법 가운데 하나가 '시청각 수업'이었고, 시청각 도구를 활용한 수업의 대표적인 과목이 '과학'이었는데, 과학 명저를 설명하는 동영상을 만들기 어렵다는 건 묘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대화』라는 작품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과학 분야의 10대 명저'로 손꼽힐 만큼 탁월한 작품이다.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는 오랜 믿음을 마침내 무너뜨리는 '최후의 일격'이 그 책 속에 너무나 절묘하고도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 『대화』의 표지

 

이 책은 갈릴레오가 직접 교황으로부터 책을 써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나서 쓰기 시작했고, 교황청의 엄격한 사전 검열을 거친 끝에 1632년에 출간되었다. 그렇지만 갈릴레오는 끝내 이 책 때문에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종신형을 선고 받았고, 차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부끄러운 참회 성사를 하고 나서야 재판정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로마에서 종교재판을 받는 갈릴레오

 

 

로마 교황청은 차마 갈릴레오를 화형으로 단죄하지는 못했지만, 갈릴레오의 저서를 1822년까지 오래도록 금서 목록에서 풀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도 불변의 진실 앞에서 마냥 침묵할 수는 없었던지, 1992년에 정식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갈릴레오를 복권시켰다.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대에 진학했으나 곧바로 수학에 흥미를 느껴 수학자의 길을 걷게 된다. 피사 대학에서 수학 교수로 지내던 갈릴레오는 천문학에 뛰어들기 전부터 물체의 온갖 운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느껴 온갖 실험과 관찰에 몰두하게 된다.

 

 - 피사의 사탑으로 유명한 피사. 갈릴레오는 피사 대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쇠공을 떨어트린 실험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 실험을 통해 물체의 자유낙하 법칙을 발견함으로써 2,000년 가까이 인정받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틀렸음을 증명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피사 대학에서 쫒겨나게 된다. 1592년에 베네치아 공국의 파도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거기서 18년 동안 수학과 천문학을 강의하면서 물리학 연구에 온전히 매진할 수 있었다.

 

갈릴레오의 삶을 획기적으로 뒤바꾼 사건은 파도바 대학으로 옮긴지 18년째 되던 해인 1609년에 일어났다. 1600년대 초부터 네덜란드의 안경 제작자들이 발명한 망원경을 손에 넣은 그는 무려 30배나 성능이 확대된 망원경을 손수 제작하는데 성공한다. 이 망원경을 통해 갈릴레오는 말 그대로 인류 최초로 우주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는 그 이전에 태어난 사람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광경들을 생생히 목격하게 된다.

 

갈릴레오는 이 놀라운 발견들을 정리해서 1610년에 『별들의 소식』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유럽의 지식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2,000년 가까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는 모든 게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갈릴레오의 책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을 제작하기 바빴고, 갈릴레오는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 태양의 흑점

 

갈릴레오는 태양의 흑점들을 관찰한 결과들에 대해서도 책으로 출판했다. 갈릴레오가 점점 더 지동설을 주장하기 시작하자 로마 교황청의 입장을 옹호하는 여러 성직자들은 강력하게 저항했고, 갈릴레오는 직접 로마를 방문하게 된다. 교황청으로부터 지동설을 승인받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1616년에 로마 교황청의 종교 재판소에서는 도리어 갈릴레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하지 말라는 선고를 내린다.

 

판결문이 전달된 이후 교황을 알현하게 된 갈릴레오는 다행히 교황으로부터 신병을 보호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간신히 화를 면한 갈릴레오는 천문 관측을 통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뒷받침하는 온갖 증거들을 무수히 발견했지만 자신이 발견한 사실을 책으로 출판할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들과 공식적으로 논쟁할 수도 없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1620년대가 되면서 로마의 분위기가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판단한 갈릴레오는 『시금저울』이라는 책을 출판해서 새로운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게 헌정했다. 그 책은 주로 천체들의 움직임, 고체와 유체의 회전 등을 다루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의 천문학자나 철학자들에 대한 통렬한 풍자와 해학이 들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교황은 갈릴레오의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했고, 갈릴레오는 1624년에 다시 로마로 가서 교황을 알현하고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금지를 해제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 『별들의 소식』 표지

     이번에야 알게 되었지만 국내에서도 『시데레우스 눈치우스』라는 제목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교황은 그 요청을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론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이론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책을 써도 좋다고 친히 허락했다. 그러나 지구가 자전이나 공전을 한다는 게 사실인 것처럼 보여서는 절대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피렌체로 돌아온 갈릴레오는 일생일대의 위대한 작품을 쓰기로 즉시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해서 로마 교황청의 검열을 거쳐 출판을 허락받은 책이 『대화』였다.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이 유명한 책은 1632년 2월에 피렌체에서 1,000권이 인쇄되어 나왔다.

 

 - 눈이 덮힌 피렌체

이 책이 출판되자 갈릴레오의 친구들은 경탄을 쏟아 냈고, 갈릴레오와 격렬한 논쟁을 벌여 왔던 숱한 적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갈릴레오가 책을 쓰도록 허락했던 교황 우르바누스 8세마저 『대화』를 읽고 나서 격노한다. 지동설을 하나의 가설로서 다룬다는 조건으로 책의 출판을 허락했지만, 책의 내용은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지동설이 실제 사실이라는 점을 너무나 명백하게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교황이 스스로 강조했던 말이 책 속의 등장 인물인 머리 나쁜 심플리치오의 입을 통해 버젓이 발설된 점을 특히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건 마치 교황 자신을 천동설을 믿는 어리석은 심플리치오에 직접 빗댄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자신의 이상한 상상을 갖고 신의 전지전능하심을 제한하려 하는 것은 참람한 짓이다."

 

교황은 갈릴레오를 로마로 압송해 종교 재판에 회부하도록 명령했고, 종교 재판소는 갈릴레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으며, 갈릴레오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기나긴 참회 성사를 읽어 내려갔다. 이 재판이 끝나고 나서 갈릴레오가 재판정을 나서는 동안에 삼척동자도 다 아는 그 유명한 일화가 탄생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말을 갈릴레오가 희미하게 중얼거렸다는 것이다.

 

 - 로마 교황청의 심문을 받는 갈릴레오

 

이 유명한 종교 재판에서 갈릴레오가 남긴 참회 성사는 참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도그마에 갖힌 종교적 세계관과 엄밀한 관찰에 바탕을 둔 과학적 세계관과의 충돌 문제뿐 아니라, 천재 과학자가 발견한 새로운 진리가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얼마나 격렬한 저항과 맞닥뜨려야 하는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이 끝나고 나서 죽을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지만, 사람들과의 교유는 허용되었다. 그러자 차츰 동료 학자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유럽의 먼 나라에서 일부러 갈릴레오를 만나려고 찾아오는 학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그럴 때 갈릴레오는 동료 학자들에게 나지막하게 중얼거렸을 듯하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이다. 왜냐하면 갈릴레이의 명언은 훗날에 일부러 지어낸 게 아니라, 갈릴레오가 생존해 있을 당시에 이미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갈릴레오의 『대화』는 출판된 후 200년 가까이 금서로 묶였지만, 과학자 갈릴레오가 공식으로 복권되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세월이 필요했다. 1979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갈릴레이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이 실수였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특별위원회를 소집했다. 1992년에 이르러 마침내 갈릴레오는 복권됐다. 그가 로마의 미네르바 교회에서 참회성사를 한지 359년 만이었고, 그가 죽은지 350년 만이었다.

 

(제작 후기)

 

하나의 동영상을 제작하다 보면 뜻하지 않게 (남들의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별의별 짓을 하기 마련이다. 나는 갈릴레오의 『대화』를 소개할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내가 피렌체에서 직접 겪었던 짤막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고 싶은 욕심을 억누르기 어려웠지만, 내내 참았었다. 그때의 에피소드를 소개하자면 무려(!) 2001년에 찍었던 사진들을 뒤지고 찾아서 그걸 다시 디지털화해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요란을 떨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랴. 동영상을 만드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어코 그 사진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한참을 뒤진 끝에 몇 장의 사진들을 동영상에 담을 수 있었다. 그 누가 알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일지?

 

 - 베네치아 가는 길, 이 당시 아들 녀석은 초1, 딸이아는 유치원생이었다.

 

 - 햇살이 장난이 아니었던 로마의 스페인 계단.

    어린 녀석들을 데리고 뙤약볕 아래 온종일 도보로 강행군을 하느라 유럽 여행은 몹시 힘들었다.

 

 - 두 녀석들은 이름난 장소와 건축물들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비둘기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 사진을 찍는 건 특히 싫어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앞에서 겨우겨우 찍은 사진이 이렇다.

 

 - 도대체 사진을 왜 찍느냐, 우린 놀러 왔으니 제발 놀게 해주라는 식이다.

 

 - 그러다가, 딱 한번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갈릴레오의 무덤 앞에서였다.

    "아빠! 사진 한장 찍어줘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여행 중에 들었던 가장 놀라운 말이었다.

 

  - 갈릴레오의 무덤은 사진 한 가운데 보이는 '산타클로체 성당' 안에 있다.

     여기에는 갈릴레오 말고도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단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묻혀 있다.

     왜 나는 이들 거장들의 무덤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놓지 못했을까, 싶은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그렇게나 사진을 찍기 싫어하던 아들 녀석도 떡 하니 사진 한 장 남겼는데 말이다.

 

 

 * * *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음사에서 완역본으로 출간한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이 쓴 불후의 걸작 『로마제국 쇠망사』를 동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마침내 끝냈다. 겁도 없이 이런 대작을 소개하겠다고 무작정 덤벼들었다가 아주 식겁을 했다. 기번의 작품이 워낙에 대작인 데다가, 1,000년이 넘는 장대한 시간을 다루는 역사책을 영상으로 소개하려니 여간 품이 많이 드는 게 아니었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전6권> 4,150쪽이나 되는 책을 읽는 것만큼이나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이 힘에 겨웠다. 대본이야 진작에 써 놓은 리뷰를 바탕으로 적당히 편집하면 그만이지만, 방대한 역사책을 설명하는데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알맞은 이미지'를 찾는 작업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번의 역사책을 읽는 동안에도 숱한 인물이나 사건들을 찾아 일부러 여러 번 인터넷을 뒤졌지만, 막상 이 책을 좀 더 '디테일하게'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고 보니, 걸작품을 소개하는데 걸맞는 '좋은 그림들'을 찾는 작업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 영상을 만드는 도중에 들려온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 소식이 엉뚱하게도 영상 제작의 어려움을 한층 가중시켰다. 영상이라는 매체에 있어서 '디테일'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는 주지하다시피 '인류 역사상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인 5현제의 시기로부터 시작한다. 이걸 설명하는 대목에서만 당장 다섯 황제의 면면을 드러내야 한다. 책으로 읽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막연히 이름만 알았던 황제들의 실제 이미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이미지를 찾아 내고 나니, 이번에는 기번이 다루는 역사의 범위를 간단한 도식으로 그려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래야 시청자들이 단박에 이해할 테니까. 그렇게 해서 어설프게나마 그림을 하나 그려야 했다.

 

 

아무튼 영상으로 책을 소개하자면 이런 번거로운 작업은 피할 도리가 없다. 이런 식으로 이미지를 하나씩 만들어 내고 찾아 내다 보니 어느새 25분짜리 동영상에 채워넣을 이미지들이 곳간에 가마니 쌓이듯 차곡차곡 쌓이게 되었다.

 

 

 

 

 

 

 

 

이렇게 모은 이미지를 지금에서야 헤아려 보니 무려 232개나 되었다. 이미지 한 개에 평균 3분 정도씩 시간을 투입했다고 하더라도 무려 10시간이 넘는 막대한 시간을 쏟아부은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사진들이고, 내가 직접 사진을 찍거나 그려낸 이미지는 1할이 될까 말까 싶다. 이렇게 잔뜩 끌어모은 이미지를 내가 설명하는 '내레이션'에 맞춰 알맞게 딱딱 배치시키면 영상의 초벌 작업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고민이 생긴다. 특정 장면을 해설하는데 가장 적합한 이미지가 이것 말고 더 나은 게 어디 없을까 하는 욕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 혹은 광고를 찍을 때 똑같은 장면을 수십 번씩 반복해서 찍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글쓰기 작업으로 비유하자면 일종의 '퇴고'를 거치는 셈인데, 이럴 때 뭔가 물흐르듯 매끄럽게 연결되는 알맞은 이미지를 찾지 못할 때만큼 안타까운 경우도 없다.

 

가령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의 '몰락하는 로마'를 그려낸 이미지가 그렇다. 고트족의 왕인 알라리크의 세 차례의 침입으로 마침내 제국의 수도인 로마가 무참하게 짓밟히는 장면만큼 역사적인 장면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서로마 제국이 몰락하는 그 드라마틱한 장면을 도대체 어떤 경로로 찾아낼 것인가가 진짜 문제다. 내가 찾고자 애썼던 아래의 그림을 찾아내는 데는 결국 3분이 아니라 30분쯤은 걸렸던 듯하다. 그 덕분에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그린 그림들은 이것저것 실컷 구경할 수 있었지만 말이다.

 

<야만족에 의한 로마의 함락, 410년>

 

<로마제국쇠망사>는 또한 여느 문학작품 못지 않게 숱한 고대의 신화와 전설이 언급된다. 역사적인 사건과 장소를 신화와 전설 속의 이야기와 함께 맛깔스럽게 버무려내는 솜씨야말로 기번의 특출난 재능이자 이 작품을 역사서를 뛰어 넘어 문학작품으로까지 격상시키는 핵심 요소이다. 이런 설명에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게 또한 그런 장면에 딱 알맞은 이미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그림들이 그렇다.

 

<오뒷세우스 일행을 공격하는 외눈박이 거인 폴뤼페모스>

 

하르퓌아와 싸우는 아이네이아스와 동료들, 17세기경, 프랑수아 페리에

 

얼굴은 처녀이고 몸통은 독수리인 이 괴조(怪鳥)는 <아르고 호의 모험>에도 등장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에도 등장하는데, 기번은 바로 이 괴조의 이야기를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시킨 것이다.

 

☞ 셰익스피어의 『태풍』속에 나오는 마녀새 이야기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대목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교 역사에 대한 분석>인데, 이런 설명에 뒤따르는 이미지 또한 내 입맛에 맞게 딱딱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가 마침내 공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니케아 공의회를 둘러싸고 벌어진 극심한 이단 논쟁,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박해,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다툼 등을 묘사한 그림들이야 (잘만 찾아보면) 숱하게 널려 있겠지만, 그런 이미지들 가운데 내게 딱 알맞은 이미지를 금세 찾아내는 게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잠깐 동안의 설명을 위해 무한정 시간을 쏟아부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이런 과정에서 애써 찾아낸 많은 이미지들이 결국 영상에 쓰이지 못하고 버려진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도 등장하는 <멜크 수도원>

 

이 작품은 또한 숱한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격찬을 받은 작품이어서, 그런 인물들을 소개하는 것도 빼놓기 어려웠다. 에드워드 기번과 거의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볼테르,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를 비롯, 나폴레옹, 토머스 칼라일, 윈스턴 처칠, 버지니아 울프, 아놀드 토인비 등등이 그런 인물들인데, 이런 인물들의 이미지 또한 일일이 찾을 수밖에 없었다. 작업의 초창기에 녹음을 마친 내레이션에 그런 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버젓이 담겨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인물들의 실제 이미지를 영상에서 쏙 빼놓을 수 있겠는가.

 

<로마제국 쇠망사>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사마천의 <사기>와 비교될 만큼 방대한 작품이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는 각고의 노력(?)을 들여 동영상을 하나 만들어 올렸지만, 내가 아무리 고생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건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쇠망사>를 완성하기 위해 24년 동안 바친 엄청난 노고에 비하면 참으로 보잘 것 없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는 작가가 기울인 엄청난 노고와 작품의 명성에 걸맞는 만큼 많은 독자들로부터 읽히지는 않는 듯하다. '없는 게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그 유명한 유튜브에서조차 아직까지는 이 책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내가 힘들여 만든 동영상만이라도 하나의 자극제가 되어 이 걸작을 읽는 독자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아, 참... <로마제국 쇠망사>를 소개하는 동영상에는 '제92회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영광의 작품상을 수상하는 감격적인 장면도 등장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소개하는 영상에 뜬금없이 웬 기생충이냐고? 그 이유를 여기서 굳이 밝힐 필요는 없지 싶다. 동영상을 보시는 분들은 그 이유를 십분 공감하리라 믿는다.

 

 

 

 * *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0-02-20 18: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수고 많이 하셨네요. 이미지 뽑고 선별하고 편집하고 보통일이 아닙니다. 귀한 작업 나중에 찬찬히 보고 듣고 즐기겠습니다. 지금은 페이퍼만 읽고 제가 다 신나서ㅎㅎ

oren 2020-02-20 20:0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정말 보통 일이 아니더라구요. 저 두툼한 책도 읽었는데 고작 20 분짜리 영상 하나 못 만들 소냐, 하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아주 혼쭐이 났습니다. 무모한 시도였지만 다 만들어 올리고 나니 쫌 뿌듯한 보람도 느낍니다. 영상을 보시는 분들께서 얼마만큼 공감해 주실지는 몰라도요.^^

막시무스 2020-02-20 18: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정말로!

oren 2020-02-20 20:06   좋아요 2 | URL
저는 오히려 동영상을 만들면서 다시 한번 에드워드 기번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단순히 책을 읽고 리뷰나 페이퍼를 작성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직접 만드는 일이 얼마만큼 더 ‘작품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지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해가 어설프면 결국 동영상 속에 그 밑천이 훤히 다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걸 절감했으니까요.^^

Falstaff 2020-02-20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이고... 저는 몇년째 쇠망사를 읽을까 말까 고심을 하다하다하다하다 아직 결정을 못짓고 있는 상태인데요, 오렌님께선 동영상까지. 후덜덜합니다
제가 걱정하는 건, 하필이면 그 출판사에서 그 시기에 찍었다는 건데요, 저는 쇠망사는 읽지 않아 모르겠는데, 책을 찍은 시기가 책의 장정은 가장 화려했지만 교정 교열이 가장 안 좋았던 때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완전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특히 비슷한 시기에 나온 사기, 별로 좋지 않아서 쇠망사를 포기했는데, 아... 고민됩니다.

oren 2020-02-20 21:34   좋아요 2 | URL
<쇠망사>를 앞에 두고 읽을까 말까를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그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그 어떤 책이든 안 읽은 책 빼고는 두루 섭렵하시는 팔스타프 님께서 이 책을 앞에 두고 고민하신다니, 과연 이 책의 무게감을 알 만합니다.^^ 저는 민음사에서 나온 <사기(본기, 세가, 열전)>을 읽을 때에도 교정과 교열에 별 불편한 걸 못 느꼈고, <로마제국 쇠망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다가 오탈자를 발견한 기억이 있지만, 눈살을 찌푸릴 만한 구석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 영상 한번 보시고, 이참에 용기 내셔서 단번에 쫙 한번 끝까지 내달려 보시지 그러세요? 기번의 문장이 워낙 좋아서, 문장의 힘에 이끌려서라도 손쉽게 갈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고대 그리스 비극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런데 이 유명한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태어난 것일까? 소포클레스가 지은 순수 창작품일까? 아니면 고대로부터 전승되어 온 '전설이나 설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일까? 아니면 실존 인물이었을까?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으나, 나는 '실존 인물'에 매우 가까운 정도로 판단하고 있다. 그 주요 근거는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이전부터 쓰여진 여러 문헌에서 '오이디푸스 왕'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나 자주 등장하기 때문인데, 마치 트로이아 전쟁이 '신화나 전설 속의 이야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독일 고고학자인 슐리만에 의해 실제로 엄연히 존재했던 '고대 유적'으로 발굴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이디푸스 왕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은 고대로부터 너무나 유명한 탓인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도 등장하고,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헤로도토스의 『역사』,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도 끊임없이 등장한다. 또한 소포클레스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도 '오이디푸스 왕 일가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 있으며, 소포클레스보다 좀 더 뒤에 활약했던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작품에도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과 연관된 작품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왕' 하면 그저 소포클레스가 순수하게 독창적으로 지어낸 작품으로만 알고 있는 듯하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년 이상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까마득한 과거에 '비극 경연 대회'에 올려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니, 그런 작품들이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그 작품을 일부러 찾아서 찬찬히 읽는 독자들도 많지 않을 뿐더러,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가 시대를 달리 하는 여러 고대의 작품들에도 다양하게 실려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품들은 대개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트로이아 서사시권' 작품들과 '테바이권 서사시'를 바탕으로 쓰인 작품들로 대별되는데, 테바이권 서사시 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가 바로 '라이오스 왕 일가의 3대에 걸친 비극'이다.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고대 그리스 비극> 33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현존하는 비극 33편 가운데 '테바이권 서사시'를 다루는 작품은 불과 6편에 불과하다. 그나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3부작'(『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을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 역할을 떠맡고 있는 셈인데, 이들 작품보다 몇 십 년 전에 쓰여진 아이스퀼로스의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라는 작품도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떠맡고 있다.

 

사실 아이스퀼로스의 그 작품도 고대의 비극 경연 대회에서 한 세트를 이루는 4부작인 <비극 3편 + 사티로스 극 1편> 가운데 1편일 뿐이었고, 다른 세 작품이 망실되었기 때문에 홀로 덩그러니 외따로 떨어져 쓰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원래는 제1부 <라이오스>, 제2부 <오이디푸스>, 제3부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사티로스 극 <스핑크스>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스토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고대 그리스의 천재 시인이었던 소포클레스의 '너무나도 독창적인' 순수 창작품으로 오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아무튼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은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테바이 왕조의 출발점인 카드모스 왕 때 저지른 과오가 '인과응보' 격으로 라이오스 왕에게 '신탁'으로 내려졌다고 하며, 제 아비를 죽이고 제 어미와 결혼하게 될 자식을 낳을 운명이었던 라이오스 왕은 그런 엄청난 운명을 피하기 위해 자식 낳기를 한사코 꺼리다가 결국 오이디푸스를 낳았는데, 이 자식을 낳자 말자 부하를 시켜 키타이론 산에 내버렸다는 것이고, 그 때 혹시나 몰라 어린 아이의 발목에 구멍까지 뚫어서 나무에 붙들어 매어 놓았는데, 그 자식이 기어이 양치기 목동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의 궁궐에 입양되고, 그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되자 코린토스의 궁궐을 떠나 테바이까지 갔다가, 거기서 괴조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영웅이 되어 홀로 남은 왕비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해서 15년 정도는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양치기 목동에게 구출되는 오이디푸스)

 

그러다가 다시 나라에 큰 역병이 돌자 다시금 '신탁'을 묻게 되고, 신탁에서는 선대왕인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아내 징벌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신탁을 듣고 해결사를 자청한 인물이 바로 오이디푸스였고, 그가 사건을 파헤칠수록 점점 더 자기 자신이 범인임을 알게 되고(그는 테바이의 왕이 되기 전에 이미 '운명의 삼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자신의 아버지를 사소한 시비 끝에 살해했다.), 결국 왕비인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달아 죽고, 자신은 죽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황금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장님이 되어 테바이에서 자청하여 추방된 끝에 안티고네와 함께 방랑길을 떠나 콜로노스에서 죽는다는 얘기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이 떠난 이후의 테베는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이 서로 번갈아 1년씩 통치하기로 했으나, 형인 에테오클레스가 통치한지 1년이 지나도록 왕권을 물려주지 않자 동생인 폴뤼네이케스가 아르고스로 망명하여, 거기서 테베를 공격할 원정군을 모집하게 되고, 그들이 일으킨 전쟁 이야기가 바로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에 담겨 있다. 거기서 오이디푸스 왕의 두 아들은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게 되고, 섭정을 맡은 크레온은 자신의 조국을 침략한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은 매장하지 말 것을 국법으로 공표하지만, 누이동생 안티고네는 '국법 보다 혈육의 정이 우선'이라며 기어코 오라버니의 시신을 매장하게 되고, 그녀는 끝내 사형을 언도받은 끝에 목을 매 자결한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이토록 라이오스 왕 일가의 비극은 '막장 드라마 중에서도 최고봉'을 자랑하지만,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 또한 이에 못지 않다. 펠롭스 가문의 저주로도 불리는 그 비극에서는 형제간의 왕권 다툼이 결국 아이를 삶은 고기를 바치는 것부터 시작되어, 자신의 정부(情夫)와 짜고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편(아가멤논)을 죽이는 클뤼타임네스트라의 이야기,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친모를 살해하는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 남매의 이야기(『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등으로 이어진다.

 

아무튼 이런 얘기들을 두루 담아서 『오이디푸스 왕』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는데, 어떤 분이 정말로 날카로운 질문을 하나 던져왔다. 오이디푸스 왕이 어머니와 결혼하여 낳은 네 명의 자식은 '소포클레스의 창작'이냐, 아니면 그 전부터 전해온 이야기냐? 오래 전부터 전해온 이야기라면 그 출전은 어디냐? 라고 질문해 온 것이었다.

 

 

그래서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제23권 678행 ∼680행에도 등장하고, 『오뒷세이아』의 제11권 271행 ∼280행에도 나온다는 답글을 금방(?) 달았더니(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는 어디쯤에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가 나온다는 얘기는 일부러 뺐다.), 이번에는 '오뒷세이아'를 통째로 외운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 책의 11권에 나오는지 알았느냐고 되묻는 질문이 달렸다.

 

암튼 알라딘 서재에서는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질문들을 잇따라 받고 보니, 조금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왠지 신선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덕분에 이런 기상천외한 글까지 쓰게 되고...

 

 

 

 * * *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2-10 0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도 막장이라 생각 정리를 위해 이 집안의 가계도를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ㅋㅋ

oren 2020-02-10 09:49   좋아요 1 | URL
반유행열반인 님께서도 ‘가계도‘까지 그려보셨군요!
저런 그림을 한 번 그려보면 머리에 콱 박혀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점이 있어서 좋더군요.^^

로쟈 2020-02-10 0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독 눌렀습니다.^^

oren 2020-02-10 09:58   좋아요 1 | URL
로쟈 님께서 구독까지 눌러주시니 영광입니다!!

로쟈 님의 반갑기 그지없는 댓글을 보면서 문득 <이태원 클라쓰>를 떠올렸습니다.
손님도 없는 썰렁한 포차인 ‘단밤‘에 70만 팔로워를 지닌 막강 인플루언서 조이서가 도와주러 나타난, 딱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그리고, 박새로이가 이태원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했던 말도 떠올랐고요.

“쉬울 거라 생각 안했어, 어렵게 하면 되지, 돼, 당연한 거야.”

2020-02-10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2-10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20-02-12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십니다.
좋은 정보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20-02-12 23:25   좋아요 0 | URL
동영상 편집 기술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여, 표현하고 싶은 내용들을 마음껏 담아내지 못해 늘 아쉽답니다. 늘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이나 예술이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 * *

 

책 소개 동영상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점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름난 문학작품일수록 유튜브에 동영상을 만들어 올릴 때는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사실도 거듭 느낀다. 자칫하면 작품에 담긴 내용 자체를 왜곡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심지어는 오독했으면서도 그걸 도리어 자랑스레 떠벌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영상이 아니라 활자화된 글이라면 나중에라도 대처하기가 아주 쉽다. 아무 때나 자신의 오류를 발견하는 즉시 흔적도 없이(!) 자신의 문장들을 고치거나 없애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상은 한번 업로드한 이후에는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기가 몹시 어렵다. 그 영상을 송두리째 삭제하기 전까지는.

 

수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한 명망(?) 있는 유튜버가 올려 놓은 동영상에서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게 분명해 보이는 '형편없는 오독'을 발견할 때에는 쓴웃음이 나온다. 구독자들의 수준이 유튜버를 따라 형성되는지는 몰라도, 그런 동영상에 덕지덕지 달린 수많은 댓글 중에서 따끔한 비판 한 마디 없는 걸 보면 더욱 씁쓸하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나름대로 상당한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어떤 영상을 살펴 보고는 쓴웃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부터 앞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 자체를 바꿔 놓은 정도는 실수나 애교로 봐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등장인물들 사이의 '만남' 자체를 뒤죽박죽으로 순서를 뒤바꿔 놓은 부분은 너무 엉성해서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여주인공인 안나가 갑작스레 모스크바로 친정 오빠와 올케 언니를 만나러 오게 된 계기, 올케 언니를 만나기 앞서 기차역에서 우연히 브론스키부터 먼저 만난 경위, 안나가 키티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무도회에 갔다가 도리어 브론스키에 매혹되어 키티의 훼방꾼으로 뒤바뀐 아이러니, 안나가 자기도 모르게 브론스키에게 매혹된 자신의 모습에 당혹해 하며 서둘러 모스크바를 떠나 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가지만, 귀가행 기차 안에서 또다시 브론스키를 만나 점점 더 그에게로 빠져드는 모습 등등을 (작가가 그려놓은) '사실임직한 순서 그대로' 정확하게 해설하지 않고도 이 작품에 대한 해설이 가능할까.

 

우리의 여주인공(!) 안나가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니고 브론스키 백작이 가장 먼저였다. 그런데도 안나가 모스크바에서의 볼 일을 다 끝내고 페테르부르크로 되돌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브론스키를 만났다고 해설하는 동영상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옳은 일일까. 등장 인물들 사이의 '만남의 순서' 자체를 뒤바꿔버린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 해설 동영상'이 이미 수 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에 의해 수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검색 상위 노출의 혜택'을 꾸준히 누릴 듯한 이 기묘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알라딘의 책소개에도 나와 있듯이, 『안나 카레니나』는 어쨌든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가운데 하나다.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가 남긴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위선, 질투, 신념, 욕망, 사랑 등 인간의 감정과 결혼, 계급, 종교 등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구조에 대한 톨스토이의 모든 고민이 집약된 소설이다. 동시대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로부터 '완벽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와, 러시아 출신 소설가인 나보코프로부터 '톨스토이 스타일의 정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 알라딘 책소개 중에서 

 

이런 걸작 소설에 대한 '작품 소개'를 한답시고, 리얼리티가 생명인 소설에서 '리얼리티 자체'를 뒤바꿔 버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톨스토이가 그토록 강조했던 '단 한 가지 필수적인 사항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너무 배치되는 게 아닌가.

 

이런 불편한 얘기는 이쯤 하고, 차제에 다시 한번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적 위상에 대해 생각해 보자. 나도 이번에야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나의 나이브한(?) 생각보다는 훨씬 더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일부러 직접 만들어 본) 다음의 표다.

 

 

놀랍게도 『안나 카레니나』가 영미권 유명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작품들' 중에서도 '최고'로 뽑힌 것이다. 『마담 보바리』 가 뜻밖에도 2위였고, 『전쟁과 평화』가 3위였다. 나는 <최고 작품 20선>에 뽑힌 작품 가운데 세 작품(7위, 10위, 19위)만 빼놓고는 다 읽었는데, 이 가운데 몇몇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로 바꾸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이 있지만, 구체적으로 콕 집어내듯 어떤 작품을 빼고 어떤 작품을 대신 집어넣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뜻 밝히고 싶지 않다.(너무나 개인적이면서도 주관적인 판단이고, 내 생각에 선뜻 동의해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지도 않기 때문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주인공으로 나서서 '영화화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기회에 살펴 봤더니, 안나 카레니나 역을 맡았던 여배우들은 과연 쟁쟁했다. 그레타 가르보(1935년), 비비안 리(1948년), 소피 마르소(1997), 키이라 나이틀리(2012년) 등이 그 주인공들이었다.(소피 마르소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작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만들 때 주로 사용했던 이미지들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으로 나섰던 2012년작 영화를 많이 참고했는데, 『안나 카레니나』를 읽을 때 상상했던 안나의 이미지와는 조금 벗어나지만, 뜻밖에도 안나의 내면 연기를 아주 훌륭하게 표현해 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제일 아쉬운 건 '레빈의 시골 생활'을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다. 레빈이 여름철마다 농부들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풀베기에 열중하는 장면, 애완견과 함께 멧도요를 사냥하는 장면 등등은 『안나 카레니나』에서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명장면인데도 불구하고, 작품 소개 동영상에서는 그걸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24분짜리 동영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이미지 컷은 대략 200장 가까이 소요됐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그림도 따로 만들어 봤다.

 

 

이 작품을 해설하면서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와의 비교 설명도 조금 덧붙여 봤다. 톨스토이의 다양한 이미지도 찾아 보고, 『전쟁과 평화』의 육필 원고, 『안나 카레니나』의 육필 원고 이미지까지 찾아 넣었다.

 

이렇게나 열심히(!) 동영상을 만들어 올렸지만, 업로드한 지 무려 24시간이나 지났는데도 '조회수'는 고작 50회 남짓이다. 도대체 왜 이토록 『안나 카레니나』에게 무관심한 걸까. 이 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탓은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위안으로 삼아 본다. 바이러스는  참으로! 밉다!!

 

 

 

 * * *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20-02-04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마지막 말씀이...ㅋㅋㅋㅋ
이렇게 열심히 만드시는데 조회수 50이라니 기운 빠지긴 하시겠어요.
그러고 보면 알라딘 서재가 처음 생기고 서재질 시작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그때만해도 하루 조회수 50이면 꽤 괜찮은 수치였던 것 같은데...
저는 하도 와 봐주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걸 더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아마 처음이라 그럴 것이고 차츰 늘어나리라 믿습니다. 오렌님 글은 이미 이곳에선 정평이 나 있지 않습니까?
좀 더 욕심을 내신다면 직접 출연하시는 건 어떠실까요?
카메라가 다소 부담되시겠지만 유튜버가 화면에 등장하는 것과 안 하고는 차이가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유튜버는 카메라는 보고 말하는 거지만 독자는 직접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습니까?
용기를 내보심이...!ㅎ

그렇지 않아도 오늘 EBS에서 <지식의 기쁨>란 프로의 지난 방송분에 윤새라 교수의 ‘톨스토이를 읽다‘가 있어
봤습니다. 그분도 ‘안나 카레니나‘를 언급했는데 톨스토이가 8부는 자비를 들여 따로 출간했다고 하더군요.
왜냐면 그때 톨스토이는 반전주의자가 되었는데 8부가 그런 내용을 그리고 있는데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전을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라 편집자와 뜻이 안 맞아 자비출판을 했다고 하더군요.
암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유튜브도 번창하시길 기원드립니다.^^

oren 2020-02-04 15:41   좋아요 2 | URL
알라딘 서재 초창기 시절엔 누구나 그런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저도 초창기 1년 내지 2년 동안은 하루 방문자수가 5회를 넘긴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으니까요. 나중에 하루 50회 혹은 100회를 넘어가는 걸 보면서 신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었고요.

유튜브에서 얼굴을 (고의든 아니든) 드러내지 않고 영상을 만든다는 건 유튜버로서는 ‘심각한 손실‘이 아닐 수 없지요. 영상통화를 할 수 있는데도 음성통화만 고집하는 것과도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유튜브 영상에서는 유튜버의 생생한 표정과 아이컨택과 몸짓 등등이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일 테니까요. 저도 그 점은 충분히 알고 있는데, 화면에 얼굴을 드러내고, 시청자들과 눈을 맞춰 가면서 ‘설명‘을 하자면, 지금보다 추가적인 장비가 상당히 들어갈 듯해서(웹카메라, 마이크, 조명, 프롬프터 등) 일부러 자제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8부에 나오는 내용 가운데 ‘톨스토이의 반전 사상‘이 실려 있어서, 편집자가 강하게 출판을 반대했다는 얘기는 저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영상을 만들면서, 다른 영상들은 하나도 참고하지 않았는데(심지어 영화조차도 챙겨보지 못했고요.) 윤새라 교수님의 영상을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여러모로 유익한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Mind 2020-02-05 0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알라딘이 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렇게 탁월한 글을 읽고 “좋아요”밖에 누르지 못하니까요. 알라딘은 페이스북처럼 좋아요 · 최고예요 · 웃겨요(재밌어요) · 멋져요 · 슬퍼요 · 화나요 같이 다양하게 글을 추천하거나 비추천할 수 있도록 추천 기능 설정을 개편해야 합니다. 알라딘은 너무나 시대에 뒤처지고 있어요. 알라딘 블로그 글을 누군가가 공유했는지도 알 수 있도록 (페이스북처럼) 개편해야 합니다. 이모지(emoji)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필수적으로 설정해놔야 하고요. 알라딘은 책 파는 데만 신경 썼지 (알라딘 매출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블로거들의 블로그 활동을 위한 블로그 웹 페이지 개편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합니다. 알라딘 블로그는 너무나 구시대적이고 휙휙 돌아가는 시대의 혁신적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와 같이 울나라 인터넷 기업들 웹 페이지 운영 대부분이 한심스러운 수준이지만, 알라딘은 뒤처지지 않으려면 정말 블로거들의 블로그 활동을 위해 뭔가 대대적인 개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 진출은 꿈도 못 꾸고(안 꾸고) 걍 국내 소규모 인터넷 서점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무튼, oren 님의 유튜브 채널 운영 방법이랄까 동영상 제작상의 다양한 전략과 방법론이랄까, 이런 걸 몇 번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기회를 내지 못했네요. 걍 개인적 의견입니다. 제 얘기가 틀리거나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한데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oren 님 생각은 저와 다를 수도 있을 겁니다. 다른 독자분들이나 시청자분들도 제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있겠죠. 하니 걍 이런 의견도 있구나 참고만 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① 목소리 톤(음색 · 음정 · 음강도 · 빠르기 · 리듬 등등)에 대해서 고민하셔야 할 듯합니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다시 말해서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자기 목소리를 일상에서의 그 모습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아마추어라고 봅니다. 유튜브는 일종의 치열한 경쟁의 장이기 때문에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점검하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남들보다 앞서 갈 수 있고 더 많은 시청자와 구독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얘기를 접했을 때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걸 누구는 모르겠냐고들 반응하는데요. 그런 반응은 사후약방문적이고 후험적인 것이며 뒷북치기식 반응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평이한 사항이라도 먼저 깨닫고 먼저 실제에 적용해야 비로소 알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② 제가 볼 때 oren 님 목소리는 일상에서는 정말 인간적이어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한테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한데 유튜브 동영상에서의 oren 님 목소리는 다른 수많은 유튜버들의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를 고려할 때 다듬어야 할 여지가 많다는 얘깁니다. oren 님의 원래의 일상적 목소리에서 검토와 훈련을 통해 훨씬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시청자들의 귀를 좀 더 유혹하고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뭔가 끌리는 소리로 청각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음색 · 음정 · 음강도 · 빠르기 · 리듬 등등을 섬세하게 개발해서 구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냉정하게 평가하건대 oren 님의 목소리 톤은 아직은 개선할 부분이 많다고 봅니다. 물론 목소리에서의 열세를 내용으로, 오로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칸텐츠(콘텐츠)로 극복하고 승부하겠다는 생각도 분명 일리는 있죠. 하지만 거기에 다수 시청자가 원하는 목소리를 뽑아내 입힌다면 정말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즉 음색을 oren 님 원래 목소리에서 조금 더 맑고 투명하게 뽑아낼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 각자는 자기 목소리 음색이 어떤지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고 봅니다. 자기 머리통이 소리통이 되어 들리는 자기 목소리는 일종의 공명음이기 때문입니다. 입 밖으로 발설돼 나가 타인의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와 공명음으로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는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애초에 우리 모두는 자기애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좋은 감각으로 느낄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자기 목소리를 녹음기나 동영상으로 객관화해 들어도 이미 자기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해서 내 목소리가 남한테도 내가 듣는 것처럼 좋게만, 최소한 별다른 이상 없이 들리리라는 무의식적 혹은 무자각적 심리 상태를 우리는 분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 착안해 oren 님께서도 자신의 음색이 어떤 음색인지 다각도로 파악해 가다듬고 조율할 방도를 생각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③ 음정 · 음강도(강약) 등도 좀 더 부드럽게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상황과 때에 따라 적절히 구사해야 하겠죠. 말의 빠르기 대해선 아마도 사람들 의견이 양분될 텐데요. 제 의견은 우리 한국인들은 대체로 말하기 속도가 느리다고 봅니다. 인터넷 혁명 시대, 클릭 하나로 빛의 속도로 세계와 소통하는 시대를 맞아 한국인들은 좀 더 빠르게 말을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말을 빨리 한다는 건 생각의 속도가 그만큼 빠르다는 걸 의미하겠죠. 생각의 속도가 빠르다는 건 그만큼 배경 지식과 견문과 통찰력 등이 더 풍부하고 더 앞선다는 걸 의미할 겁니다. 이런 사실은 말 빠른 사람이 더 앞서 나갈 수 있다는 걸 의미하겠죠. 이런 논리가 모든 경우, 모든 상황, 모든 맥락에서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빠른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커다란 강점이 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인 듯합니다. 해서 유튜브 시청자들한테도 풍부한 내용을 빠르게 전달해주는 동영상이 훨씬 더 강점을 지닐 것이라 봅니다. 물론 깊은 사유와 느린 음미가 그 본질이랄 수도 있는 문학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말 빠른 전달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올 우려도 있지요. 하지만 유튜브 문학류 동영상의 주 핵심은 ‘소개’ 혹은 ‘길잡이’ 혹은 ‘맛보기’에 있다고 봅니다. 또한 유튜브 동영상 시청자들도 호흡이 짧고 감각적인 것에 더 잘 반응하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휙휙 옮겨가길 밥 먹듯이 하는 부류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들의 성향에 맞춰 빠르게 소개해주고 빠르게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그 하나의 방안이 말을 빠르게 하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호흡 짧고 감각적이고 변덕 심한 유튜브 시청자들을 효과 높게 만족시켜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 대해 (oren 님의 말하기 속도가 그닥 느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oren 님께서는 깊게 고민해보셔야 할 듯합니다.

④ 말하기의 리듬 또한 우리 현대 한국어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죠. 한데 이것도 어느 정도의 훈련으로 충분이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말의 빠르기에 말 그대로 ‘리드미컬한’ 리듬과 가락(박자나 장단)을 넣어준다면, 문학 작품을 설명해주는 동영상의 경우 그 효과는 크게 배가되리라 봅니다.

⑤ 목소리 연기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oren 님께서 세계 명작들을 소개해주실 때 작품 속 대사들을 낭독하거나 연기해주시는데요. 제 판단에는 너무나 서툴고 투박하고 딱딱하고 어설프게 들립니다. 이왕 할 거면 성우처럼, 영화나 극 중의 배우처럼, 대사에 맞는 감정을 넣고 연기력을 발휘해 아주 프로답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 성우나 배우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oren 님께서 목소리 연기를 그럴듯하게만 해주신다면 유튜브 시청자들한테 더 많은 재미와 즐거움을 주고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모으리라 봅니다.

⑥ 앞으로 oren 님께서 직접 출연해 얘기해주는 동영상 제작으로 나아가시리라 예측이 되는데요. 그런 때를 대비해 앞에서 제가 말씀드린 사항들을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목소리 동영상’을 제작해나가는 동안 적극적으로 반영 · 적용하셨으면 합니다. 일종의 ‘목소리 디자인’ 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고 봅니다. 칸텐츠(콘텐츠) 디자인과 영상 편집 디자인 못지않게, 아니 그와 동등한 중요성으로 목소리 디자인 개념을 챙기셔야 할 줄 압니다.

이상 (다른 드릴 말씀도 많았는데 쓰려고 하니까 싹 사라져 버리네요) 제 개인적인 의견이었습니다. oren 님께서 이미 고려하고 계획 · 추진 중인 내용도 있고,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있을 줄 압니다. 아무쪼록 (칸텐츠 측면에서는 여타 유튜버들보다 훨씬 윗길을 가시는) oren 님께서 훌륭한 유튜버로 성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oren 2020-02-05 13:06   좋아요 1 | URL
조목조목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귀중한 말씀들을 어쩌면 이토록 조리 있고도 귀에 쏙쏙 박히도록 말씀해 주시는지요. 일부러 청해서라도 이런 조언들을 듣고 싶었는데, 자원(自願 & 自遠)해서 소중한 말씀을 남겨주시니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알라딘의 블로그 활동에 대한 무신경한 대응은 저도 적극 공감합니다. 알라딘에는 단순히 책을 구매하기 위한 이용자들도 많겠지만, 구매와 더불어 블로그 활동까지 곁들이는 분들도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블로그 활동까지 적극적인 분들은 책 구매량 또한 상당한 경향이 있고요. 그런데도 알라딘은 충성스런(?) 알라디너들의 블로그 활동에 대해 정말 너무 무신경한 듯합니다. 자신들의 플랫폼에 양질의 컨텐츠와 이용자들을 붙잡아 두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다른 많은 플랫폼들과는 너무 다른 행태들 때문에, 오랫동안 알라딘에서 블로그 활동을 했던 사람들마저도 ‘미련을 접고‘ 떠나가는 분들도 많은 듯하고요. 저 역시 알라딘에 오래 머무는 동안 적잖은 글을 쓰고는 있지만 알라딘으로부터 ‘블로그 활동‘에 대해 적극적인 지원을 받거나, 육성된다는(?) 느낌 같은 건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글쓰기를 적극 지원하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계속 생겨나고, 네이버나 유튜브처럼 직접적으로 ‘광고수익을 쉐어하는‘ 플랫폼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이용자들을 끌어들이는 모습들을 보면, 알라딘의 디지털 마인드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고개가 갸웃거려 지기도 합니다. 알라딘 얘기는 이쯤 하고요.

제 유튜브 채널에 대한 귀중한 조언들에 대해서도 답변을 드려 보겠습니다.

우선, 유튜브 영상에서 목소리나 음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오디오가 동영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50% 이상이라고도 말하더군요. TV나 유튜브 영상물들이 아무리 넘쳐흘러도 여전히 라디오를 애청하는 사람들이 많고, 유튜브 영상에서도 영상 보다는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중시하는 구독자들이 상당하니 말이지요.

그런데, 목소리는 훈련에 의해서도 개선되고 향상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유튜브를 시작해 보라는 주위의 권유를 받았을 때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 제 목소리였습니다. 사투리 억양도 있는 데다가, 발음이 다소 부정확하거나, 음정의 톤이나 음색이 너무 조용한 편이어서 강약조절이나 악센트가 너무 부족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아무튼 무턱대고 영상을 하나하나씩 만들다 보니까, 다른 인기 유튜버들의 영상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는 ‘제 목소리‘에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컨텐츠는 나름 봐줄 수 있을 듯한데, 목소리가 너무 전달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제 스스로도 느끼게 되더군요. 그래서 영상을 새롭게 만들 때마다 조금씩(!) 목소리의 톤이나 억양, 혹은 감정들을 담아보려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제 영상을 보고 들을 때마다 ‘목소리 연기 실력‘이 너무 형편없다는 느낌은 지우기 어렵더군요.

여기에는 하드웨어적인 요소도 얼마쯤 작용하는 듯합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유튜브 장비라고는 친구한테 빌린 ‘2만 원짜리 핀 마이크‘ 하나가 전부인데, 인기 유튜버들은 상당히 좋은 성능의 마이크를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초보 유튜버들의 영상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오디오‘ 부분이 현저히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 그 부분은 녹음 장비는 물론 녹음 환경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듯합니다.(저 역시 아직까지도 몰래 숨어서 녹음하다시피, 간신히 짬을 내어 조용하게 녹음하는 처지니까 말이지요. 초보 유튜버들은 심지어 건물의 옥상이나 지하 주차장의 자동차 안에서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분들도 심심찮게 보이더군요.)

어차피 유튜버로서 문학작품을 좀 더 호소력 있게 전달하려면 ‘목소리 연기‘는 필수인 듯합니다. 저보다 몇 달 앞서서 유튜브를 시작한 제 친구 왈, 유튜버는 어차피 ‘1인 크리에이터‘이면서 동시에 ‘작가, 연출가, 배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더군요. 배우처럼 연기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에는 정말 공감합니다. 앞으로 가장 신경써야 할 부분이 ‘목소리 디자인‘이라는 말씀에도 공감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참 많이 듣는 편인데,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는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멘트에 대해서 유심히 듣게 되더군요. 그들의 ‘귀에 착착 감기는 목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탐이 나고 부럽더군요. 그런데 그런 아나운서나 배우들도 정말 10년, 20년씩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끝에 그런 경지에 올라섰다고 생각하면 너무 지나치게 부러워할 일만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유튜버의 경우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영상 제작 스킬‘뿐 아니라, ‘목소리 연기를 포함한 오디오 부문‘에서도 초보 유튜버와 인기 유튜버들 사이에는 누가 보더라도 확연할 정도로, 상당한 차이가 느껴지니까 말이지요.

Mind 님의 소중한 조언들을 두 번, 세 번 거듭 읽으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글을 쓸 때는 무신경하게 넘어갔던 많은 부분들이, 동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고스란히‘ 백일하에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컨텐츠의 깊이나 퀄리티뿐 아니라, 그 컨텐츠를 설명하는 배우 또는 성우(결국 유튜버 자신이지만요)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얼마나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더욱 실감하게 되고요.

까마득한 옛날 고대 비극 시인들이 그저 단순히 시만 잘 쓴 게 아니라 ‘운율을 담은 노래가락처럼‘ 음송하는 실력 또한 얼마나 뛰어났을까를 생각하면, 요즘 유튜버들의 낭송 수준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그만큼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이야기의 전달능력‘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 어디에서도 구해 들을 수 없는 알차고도 귀중한 댓글 남겨주셔서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카스피 2020-02-05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알단 안나 카레리나를 필두로 러시아 문학들은 현재 입장에서 본다면 초 장편이라 일반 독자들이 제목을 들었지만 실제 읽은 분들은 적어서 아마 쉬이 관심을 가질수 없기 떄문일 겁니다.저한테 안나 카레리나는 뭐랄까 지루함이 대명사처럼 느껴지는데 러시아 영화 안나 카레리나에서 눈길의 마차 장면 클로즈업만 30분이나 나와서 책을 읽을 엄두를 못냈기 때문이죠.
그나저나 영미권작가들이 뽑은 최고 작품중에서 다른것은 그렇다 쳐도 롤리타가 들어있는 것은 참 의외입니다.국내에선 소아성애 변태문학쯤으로 치부되는 책인데 말이죠.

oren 2020-02-05 23:13   좋아요 1 | URL
영미권 작가들이 뽑은 세계 최고의 문학작품 가운데 TOP 10 안에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무려 넷이나 뽑힌 것도 그렇고, 1위와 2위 작품이 모두 ‘불륜 소설‘로 분류되는 작품이라는 점도 좀 특이하긴 하더군요.

그렇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불륜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문학성이나 예술성이 너무 뛰어나서, 세계 최고의 작품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문학성과 예술성이 뛰어날 뿐더러, 결코 소아성애자의 변태성욕을 다룬 소설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왜곡되어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봅니다. 저도 그 작품은 한 번밖에 읽지 못해서 그 소설의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번 혹은 세 번쯤 읽고 그 작품에 대한 리뷰나 소개를 할까 맘 먹고 있는데, 변태문학으로 알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 작품의 1/10이 아니라 1/100도 읽지 못하고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싶습니다.^^ 결코 만만한 작품이 아니라는 얘기이지요...
 

 

여행지에서 겪은 일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며 흥분 상태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 일행 네 명이 난생 처음으로 베를린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겪은 온갖 이야기만큼은 몹시 특별했다고, 아직까지도 나는 믿고 있다.

 

우리 일행은 2014년 여름에 독일을 중심으로 해서 자동차로 완전히 한 바퀴를 뺑 도는 '17일 동안의 장기 투어'를 떠났는데, 첫 도착지인 뮌헨에서부터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게 만드는 상황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 구글 지도로 살펴본 '여행 예정 경로'
 

 

 

허츠에 미리 예약해 놨던 '짐칸이 넉넉한 4인승 자동차' 대신 벤츠에서 나온 신형 미니밴부터 부담스러웠다. 출고된지 6개월도 안 된 최신형 미니밴을 '추가 요금' 없이 이용하라는 권유마저도 달갑지 않았다. 장거리 이동에는 무척이나 좋겠지만, 도심지의 좁은 주차장을 들락거릴 때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터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용했던 벤츠 미니벤, Viano)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아우토반을 시속 250km까지 뿡뿡 내달려도 소음과 진동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땐 마냥 좋았으나, 유럽에서도 오래된 여러 도시의 좁은 주차공간을 드나들 때마다 몹시 신경이 쓰였다.

 

첫 번째 '주차 사건'은 바로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에 벌어졌다. 호텔 종업원이 우리가 타고 온 차를 보더니, 호텔에 딸린 지하 주차 공간으로 내려가라면서, 호텔 건물을 끼고 한참이나 돌아 들어가는 '복잡한 동선'을 가르쳐줬다. 간신히 지하주차장 입구를 찾아 내려가면서도 조마조마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몹시 좁았기 때문이다.

 

커브길을 따라 지하로 2개층 정도를 내려가니 거기서 다시 커브로 꺾어 들어가는 출입구에 차량 제어바가 나타났다. 버튼을 누른 뒤 제어바가 올라가자 우리는 차를 조심조심 들이밀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탄 차가 예상보다 '덩치'가 너무 컸다. 차량의 우측 전방과 좌측 후미가 동시에 주차 제어 시설에 '꽉' 끼고 말았다. 주차 시설의 경광등이 삐뽀~ 삐뽀~ 울리고, 차는 꼼짝달싹도 못하고, 우리 뒷편으로 쭈욱~~ 주차를 위해 내려오는 차들은 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기다리고... 정말로 난감했고, 진퇴양난이었다.

 

간신히, 간신히, 상황을 수습했다. 우리 뒤로 뒤따라 들어온 차량들을 일일이 뒤로 물린 끝에, 간신히 움직일 공간을 확보한 우리는 (차량 손상을 최소화하는 범위 내에서) 용감히 후진을 해서 화물차가 이용하는 통로로 간신히 우회해서 빠져나왔다. 무턱대고 지하 주차장으로 안내해준 호텔 종업원이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간신히 주차를 하고 나서는, 그날 저녁에 벌어지는 <2014 브라질 월드컵>을 구경하러 나섰다. 그날은 마침 독일과 프랑스의 8강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우리는 모든 시름을 잊고 축구 경기를 맘껏 즐겼다. 그리고 그 경기가 끝난 뒤 독일 축구팬들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마구 쏟아져 나와 즐겼던 '뒷풀이'에 기꺼이 동참했다.

 

그렇게 베를린에서의 첫날 밤이 지났고, 이튿날이 되자 우리는 본격적으로 베를린 시내 투어에 나섰다. 그러나 둘째날은 첫째날보다 더 험악한 사건, 사고들이 줄을 이었다. 둘째날의 당혹스러움은 저녁 식사때까지 줄곧 이어졌다. 한낮의 대소동을 간신히 수습하고도 모자라, 안도의 저녁 식사를 즐기다가도 난데 없는 봉변을 겪었다. 베를린에서도 가장 오래된 맛집이고, 식도락가였던 나폴레옹뿐만 아니라 베토벤과 찰리 채플린까지 즐겨 찾았다는 그 유명한 식당을 간신히 찾아간 우리는 '이론상으로나 가능한 헤프닝'을 실제로 겪었다.

 

그 당시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뜻밖에도 밀란 쿤데라의 소설 『불멸』을 읽을 때였다...

 

 

 

 * * *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20-01-27 19: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월드컵에 독일이 한국에 지고, 조별 꼴찌로 탈락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ㅎㅎㅎㅎ

oren 2020-01-27 20:0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그토록 강해 보였던 게르만 전차군단이 4년 만에 녹슨 고철 덩어리처럼 허약한 모습을 보일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2014년 저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 축구팬들 가운데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데 깜짝 놀라게 되더군요. 심지어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짜리도 손흥민을 잘 알고 있더라구요. 그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프레이야 2020-01-3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과 일주일 전 베를린에 다녀와서 귀 쫑긋하고 잘 듣고 보았습니다. 저 레스토랑을 미리 알았더라면 가보았을 걸 아쉽네요. 겨울이라 날씨가 별로여서 감기도 들어버리고 좀 그랬네요ㅠ 오렌님 구수한 말투로 유튜버로서 완전 자리 잡아가시는 거 같아요. 유머와 재미 그리고 책여행이 아주 잘 어울리고 영양가도 높아요. 구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

oren 2020-01-30 23:22   좋아요 1 | URL
불과 일주일 전에 베를린을 다녀오셨다구요? 정말 정말 깜놀이네요. 베를린이 무슨 이웃동네도 아닌데 말입니다. 저 식당을 제대로(!) 촬영한 동영상을 외국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봤는데, 어찌나 감회가 새롭던지, 눈물이 다 나올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아무리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도 포크 통을 내리치던 그 용감무쌍하고 겁없던 40대 여종업원은 찾지 못하겠더군요. 이번 영상은 최대한으로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자 갖은 애를 쓴 덕분에, 그나마 재미있게 봤다는 반응을 얼마쯤 얻는 데 성공하긴 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지속성 있고 영양가 있는 영상을 만들어 보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채널을 구독해 주시고 성원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