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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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심상치는 않았지만 한편 유럽식 마법 이야기를 우리 청소년 소설에 어찌 버무렸을까 어설프지 않을까 의심도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공포스럽고 엽기적인 작품들은 아무리 잘 만들어진 것이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게 시작 부분의 빵집에서 나누는 대사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엽기스러운 척? 웬 위악? 해리포터의 아류? 뭐 이런 기분.. 

하필 그 서늘한 영화를 보러 간 날 읽은 이 책 

어제, 루마니아 영화 '사일런트 웨딩'을 보러 안국동에 가면서 지하철 안에서 이 책을 읽었다. 가는 내내, 이러다가 내가 정거장을 놓치면 어쩌나, 무지하게 신경을 쓰면서 읽어야 했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푹 빠져들게 재미있었다. 저주를 걸 수 있는 쿠키라든지 커다란 가마솥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마법사의 약물(그냥 물?)이라든지 낮에는 소녀로 변신하는 파랑새라든지, 얼핏 보면 해리포터 흉내를 냈을 법한 장치들의 유치함이 다 상쇄될 만큼, 주인공 소년이 겪는 고통은 현실 속에 가능하고도 남을 만한 이야기들이고 그것과 마법의 세계가 얽히는 과정은 이상하게도 자연스럽다. 

책을 4분의 1쯤 남기고 안국동에 도착해서 영화를 보았다. 조금은 코미디에 가까울 줄 알았던 영화는(도대체 세상에서 제일 유쾌한 결혼식이라는 둥 웃길 것처럼 광고한 거나 그렇게 영화 리뷰를 쓰는 사람들은 뭐냐 투덜투덜..) 너무나 충격적인 마지막 장면 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어두워진 길목은 아름답긴 했지만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는데.. 하필 곧 지하철에 올라타서 마저 읽은 위저드 베이커리는 주인공 아이가 몽마에 시달리는 장면, 엄마의 마지막을 꿈에서 만나는 장면이었다.  

나의 밤을 뒤척이게 한 아픈 소설 

나, 기가 약한가 보다. 상처받은 사람들, 피해갈 수 없는 잔인한 운명들로 잠자리까지 가슴이 아팠다. 무거웠다가 맞는 표현이리라.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고 처음부터 킥킥거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난 마지막 장면을 예감하고 있었다. 소설은 제목처럼 기괴함을 재미있는 장치로 삼을 게 뻔하다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난 이 두, 너무나 재미있고 너무나 공포스럽고도 잘 만들어진, 전혀 아무 관계도 없는 작품들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면 밤을 뒤척였다.

'위저드 베이커리'는사람들이 무겁거나 가볍거나 성장과정에서 한 번쯤 품을 수밖에 없는 비밀스러움, 공포, 꿈의 시달림을 다루어서 독자의 경험을 반추하게 한다. 경험의 끔찍함에는 객관성이 있을 수 있지만 본인에게는 하다 못해 만화책을 읽고 얻은 충격조차도 무거운 법이다.  또한 어린 날 품어보았던 유치하기 짝이 없으나 세계 공통이라 할 만한 환상들(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미워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우리 집 강아지가 사실은 밤마다 변신을 한다면 같은)을 적절하게 소설적 장치로 써낸 것 또한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힘이었다. 마치 원형처럼, (꼭 유럽식 마법사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성장기를 건드리는 갈망이 아닌가.  

성장기, 공포와 비밀의 기억

건드려진 것은 환상만이 아니다. 죄의식은 아니던가. 부모로부터 버림받음에 대한 공포와 부모를 포함하여 미워하는 이의 불행이나 죽음을 갈망한 것에 대한 죄의식, 자기 인생을 잘 펼쳐내지 못한 것에 대한 열패감, 이 모든 것이 사춘기를 끔찍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면서도 건너올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걸 건드리고 말로 끄집어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나 사실 사춘기때 나의 라이벌이었던 그 애가 없어져 버렸으면 하고 갈망했었어, 나 사실은 어렸을 때 저러다 엄마가 죽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웠었어, 이런 이야기는 다 지나고 난 후에도 차마 꺼내지지 않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걸 건드렸다. 이 소설은.  

어쨌든 희망을 갖고 살아야 할 삶의 무게가 

위선도 없지만 함부로 위악을 떨지 않는 것도 미덕이다. 어쨌든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 인생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아무리 지독한 경험을 한 청춘일지라도 자기 삶에 새 살을 돋게 할 생명의 의무, 삶의 의무를 너무 자연스럽게 느끼게 한다. 물론 반가운 마음과 따뜻한 기억으로, 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양육과 보호과 격려의 따뜻함을 부모 대신해 준 공간으로 다시 달려가는 '위저드 베이커리'의 정체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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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에니어그램 상대를 아는 에니어그램 - 바람직한 관계를 만드는 아홉 가지 방법
레니 바론.엘리자베스 와겔리 지음, 주혜명 외 옮김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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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상담교사 공부를 한 직후에 친구의 권유로 (친구가 에니어그램 강사다.) 8시간짜리 지도자 과정을 공부했다. 한 시간 강의를 빠져서 자격증은 못 받았지만. 솔직히 그 때 나는 상담공부 과정에서 각종 심리검사들을 거치며 조금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의 성격 혹은 심리, 병리학적 정신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유형화하는 방식은 참 다양하고 꽤 정확하지만 그렇게 분석해서 뭘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회의에 자꾸 빠지곤 했었다. 이 사람이 INTJ유형이든 5번 유형이든 우울감이 높게 나오든, 그림 검사에서 사회성이 결여되었다고 나오든, 그것이 그 사람의 문제를 정작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 사람은 숲의 젖은 바람을 좋아하고 가끔 흙을 주물러 뭔가 만들 줄 알고 밤을 새며 시를 베껴 적어 친구를 위한 시집을 만들 줄 아는 사람, 이 아니라16가지 유형 중 하나, 9가지 유형 중 하나, 다섯 가지 영역 중 어떤 영역의 IQ가 평균 이상이거나 이하인 사람, 이렇게 분류된다는 것이 참 우습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삐딱한 마음으로 강의를 듣긴 했지만 강사는 내내 에니어그램이 사람들을 유형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던 것은 마음에 남아 있다. 나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관계를 풀어가는 첫 걸음이다. 학급에서 도저히 나와 맞지 않는 학생을 만난다. 그 아이에 대해 힘들어 하고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저 아이는 9번 유형인데 1번 유형인 나를 담임교사로 만났으니 녀석도 힘들겠구나,  녀석의 성취동기를 좀더 북돋워 주면서 천천히 함께 나아가야겠다... 이런 지향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에니어그램이라는 것이다. 

그 공부로부터 세월이 좀 흘렀다. 상담실에서 상담을 하고 교사연수를 하다보니 에니어그램을 더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에니어그램을 아는 것은 사람을 분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혹은 교사들)의 말문을 터 주는 데 좋은 바탕이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 한다. 자세히, 분석적으로 알고 싶어한다. 더구나 다른 이와의 관계, 그리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받는다면 더더욱 흥미를 가질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미국인인 듯 싶은데, 에니어그램을 이론으로만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생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던 것 같다. 책 속에 나와있는 척도나 해석하는 방법들이 다른 두꺼운 책들보다 간명하고 재미있으면서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들이 많다. 표현도 정확하고 재미있는데 저자의 공인지 번역자들의 공인지는 잘 모르겠다.  

집에서 재미삼아 식구들과 모여서 유형을 맞춰보고 체크도 해 보고 서로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았다. 1번 유형인  엄마와 8번 유형인 둘째 동생은 함께 사는데 자주 티격태격한다. 둘 다 힘유형이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 5번 유형이면서 4번 날개가 발달한 나는 4번 유형인 아들과 서로 부딪치기도 하면서 묘한 공감대가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한참 즐거웠다. 분석적이어서 재미있다기보다 화기애애해서 좋았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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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일주일 안에 피아노 죽이게 치는 방법
전지한 지음 / 에듀박스(주)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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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 하면서 책을 샀다. 뭐야, 책 제목에서 객기가 느껴지네, 하지만 속는 셈 치고 , 얘기나 한 번 들어볼까? 뭐 이런 기분? 

앞의 소설은 (나쁘진 않았지만 내 관심사가 아니라서) 이 사람이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피아노를 가르쳐주고 싶은 것인데 그것을 좀 부드럽게 녹아넣으려는 장치려니 싶어서 대충 읽었다. 아니 사실은 이야기 속에 군데군데 피아노 치는  법이 나올 줄 알고 별로 흥미가 없었지만 열심히 읽다가 거의 끝무렵에 뒤에 따로 교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정리를 하고 교본으로 넘어갔다. 정말 일주일에 가능하리라 믿지는 않았다. 여기서 일주일이란 미친 듯이, 아니 적어도 열심히 일주일을 몰입했을 때, 라는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즐기면서 연습을 한다면 일주일은 부족할 게 분명하다. (만약, 여자친구에게 이벤트라도 열어주어야 한다든지 하는 간절한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일주일만에도 가능할 것 같다. 진짜로!) 

나는 체르니 100번 중반 정도의 피아노 지식과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중등학교 음악 수업 시간에 들었던 것들이 머리에 남아 있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샵, 플랫, 마이너조차도 그다지 어려운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요즘 나는 기타 연습을 간간히 하고 있는데 솔직히 기타의 코드를 익히면서도 그 개념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코드의 의미와 개념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런다고 기타 코드 잡는 실력이 연습도 안 했는데 늘진 않는다. ^^;)   

와, 신기하네, 이러면서 이메진과 가시나무 등을 연습하다가 왼손 반주 연습을 위해 동영상도 들어가 봤다. 영상을 보면서 연습하니 더 잘 된다. 전지한 씨가 이 책을 쓰고 영상을 만드느라 들인 시간과 공로가 과연 큰 돈이나 명예가 되어서 돌아갔을까, 너무 수고를 한 게 아닐까 싶어 고맙고 미안하다. 그러고 보면 이 사람은 정말, 이렇게 쉽고 재밌게 피아노를 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사람들은 왜 모를까, 안타까워 하면 가르쳐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것 같다. 정말 새롭고 신기한 것을 알 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순수하게 알려주고 싶어질 때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매일 연습할 여건이 아니라서 진도가 끝까지 잘 나가지는 못했다. 정말 피아노를 유려하게 치려면 쉬운 방법이라도 여러 번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그래야 손에서 자연스레 소리나 나는 것이지 악보대로 코드대로 틀리지 않고 쳐냈다고 멋진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으로 잘 따라가 '배우긴' 했는데 '익힘'은 덜 했다. 그래도 참 흐믓하다. 만약 이 책을 실용서라고 불러야 한다면 이 책은 내가 만난 실용서 중에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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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놀이 공원 - 심리학자들과 떠나는 환상 여행 사계절 지식소설 1
이남석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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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쏟아져 나오는 청소년 소설들을 열심히 읽고 있다.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지, 상담실에 독서치료용으로 둘 만한지, 우리집 아이들에게 권할 만한지 보려고.  

기존 청소년 권장도서라는 것들이 대개는 너무 어려운 것들이 많아서 그 반작용으로 요즘에는 아이들 입말과 아이들 경험을 살린 책들이 많이 나온다. 그 안에 담긴 말들은 매우 거칠고 아이들 생각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미명 아래 내용은 조잡하기 짝이 없다.  그런 류의 청소년 소설이 아니면 학습적인 내용을 아이들이 읽기 쉽게, 재미나게 기획한 것들이 많은데, 그런 것들도 결국 어른이 아이 옷이나 만화같은 복장을 한 느낌이 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거칠거나 우스꽝스러운 요즘의 청소년 소설들 

우선 이 책은 역사도 아니고 과학도 아니고, 심지어 철학도 아닌 심리학을 청소년용으로, 소설로 풀어썼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자아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은 거의 없고 어른들도 어떻게 이끌어주어야 할지 난감한데 자아찾기를 도와줄 수 있는 심리학 소설이라니, 그것도 환상과 놀이공원과 감동이라는 단어가 어우러지는 소설이라니! 

나는 이 소설을 술술 읽었다. 재미가 있어서라기보다 이런 심리학 이론을 이런 식으로 놀이공원의 아이템으로 이끌어내다니 대단한 걸, 하는 마음과 어려운 이론을 쉽게, 비유적으로 풀어쓰는 솜씨를 구경하는 즐거움이 쏠쏠했던 것이다.  특히 에릭슨 이론을 서바이벌 게임으로 비유한 것이 그럴 듯했다.  이렇게 보니 심리학 이론이란 것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전반적인 흐름이 일관성이 있는 것도 좋았다.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심리학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심리학은 학문일 뿐, 혹은 남의 마음을 이해하는 도구일 뿐 그 자체가 심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도구가 되기는 어렵다. (물론 끊임없이 자기를 모델로 생각하며 공부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저자가 '심리학은 외로움을 줄이는 학문'이라 생각했듯이 청소년들이 덜 외롭게 청소년기를 이겨낼 수 있는 데 심리학이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즉 '딱딱한 고목이 아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학문이 되도록, '상처를 어루만지고 우울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꽉 잡아주는 손길'이 되려고 진심을 다한다.  

꽤 그럴 듯한 놀이공원의 비유 

실은 읽는 내내 꽤 그럴 듯하게 비유된 놀이동산의 기획에 감탄하면서도 심리학에 대한 기존의 지식이 전혀 없는 청소년들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심리학 교양강좌쯤을 들은 1,2학년 대학생들이라면 꽤 괜찮게 읽을 법 하다. 하지만 중고생이? 물론 그들은 거꾸로 이 소설을 읽은 것을 계기로 하여 나중에 심리학에 관심을 가질 수는 있을 것 같다. .. 이렇게 조금 비판적으로 이 책을 다 읽은 나는 저자 후기에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따뜻한 손 내미는 심리학'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썼다는 저자의 말에 솔직히 감동 받았다. 나는 내 아들을 포함해 주변 아이들에게 이 책을 검증 받아볼 생각이다. 청소년들도 재밌게 감동적으로 이 책을 읽어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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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개정판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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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잠시, 전공과 매우매우 거리가 멀지만 시대적 요청(!)에 따라 ‘한경전’이니 ‘자구발’이니 하는 책들을 꽤 열심히 읽었던 이래, 경제 관련 서적을 멀리 하고 산 지 오래 되었다.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정도였으려나? 나는 ‘경제’와는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의외로  이 조직의 재발견도 참 재미있게 읽었다. 앞부분의, 개론서처럼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별 친절한 용어 정리 없이 소개하는 부분(그들 대부분이 미국계였던 것 같다)이 좀 지루했지만 거기를 지나자 곧바로 한국 경제와 특히나 한국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각종 조직(군대나 학교, 민노당이 언급되는 참신한 사태라니!)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해간다.  자기 입장을 잘 드러내지 않고(아, 뒤로 가면  입장과 감정이 좀 드러난다. 냉소적이었다가 비판적이었다가 살짝 격앙된 어조였다가, 등등).
 

삼성과 민노당에 대한 언급이 특히 재미있었고 끝부분에서 우리나라 조직(주로 기업을 언급한 것이지만 다른 조직에도 얼핏 적용이 되는)들의 특성(대략 기억하건대, 이기적이고 마초적이고 군대와 흡사하고.. 등등, 시스템의 문제라기보다 거의 문화적인 문제에 가까운 특성들)에 매우 공감이 가기도 했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이다.(내가 여자이고 자녀를 둔 엄마이기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를)

우선, ‘우리나라는 대학진학률이 80%이고 연기금 수백조원을 지니고 있으며 교육을 잘 받은 여성 노동자와 이십대, 그리고 숙련된 고령 노동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경제가 발전하지 않거나 문제가 있다면 이것은 이와 같은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즉, 경제적 조건이 나쁜 게 아니라 위기대처법을 모르는 게 한국경제의 위기이다.’ 대략 이런 내용.

문제는 시스템? 위기대처법? 

내가 어렸을 때는 나라가 발전(경제적 발전이겠지)하려면 국민이 교육을 많이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 같다. 일제 강점기에, 안창호 선생이, 나라를 빼앗긴 것은 국민이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청년 교육을 강조했다는 것과 비슷한 논리일 수 있는데, 실제로 주변에서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이므로 어린 마음에도 고개가 끄덕여졌더랬다. 이후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뜨거웠고 그 뜨거운 교육열의 열기를 거쳐온 세대가 바로 우리 세대이기도 했는데, 마치 우리나라 7,80년대의 경제성장이 그런 교육열과 비례하는 듯한 생각을 하도록 만들기도 했다.(여기서 잠깐, 샛길로 잠시 비껴가 본다. 어느 때보다도(사)교육 열풍이 그야말로 폭풍과 다름없는 21세기 초반의 한국을 거치고 나면 우리에게는 정말 장밋빛 인생이 펼쳐지려나? 살인적인 분량의 공부를 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우리나라 정치경제를 짊어질 조만간의 미래는 엄청난 역동성을 가질 것인가? 이에 대해 막연하게라도 긍정적인 예감을 가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교단에 서서 교육이란 것을 담당한 장본인으로서, 교육의 힘이 곧 국가의 힘이라고, 확신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교육받은 인력은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경제적인 개념으로, ‘효율적으로’ 그것을 경제 동력으로 만드느냐 못하느냐는 다른 문제일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자본(인적)’이 없어서가 아니라 ‘조직’과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한국 경제는 암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엊그제 신문에서 한 미국인이, 한국에는 고학력 실업여성이 많아서 (사)교육 열풍이 뜨겁다고 쓴 글을 보았는데, 다 공감할 수는 없지만 부정할 수만도 없는 현상인 것 같다.

선진국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노동조합을 임금, 생산 강도, 불량률 등의 표준을 정하고 노동자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중추적 협의기관으로 인정한다는 부분도 매우 공감이 된다. 소위 ‘자본가’가 이득도 없이 자비심이나 도덕률 때문에 노조를 인정하거나 대우해 주지는 않는다. 완벽하게 경제논리만으로 계산을 해보았을 때도 노조와 공존공생하는 것이 이득임을 잘 알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도 그런 깨달음을 얻기까지  많은 아픔들을 겪었다.  노동자들의 희생도 만만치 않았다. 한국에서는 그와 같은 과정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해야겠는데, 우리나라가 서구 선진국들의 근대화를 어설프게나마 집약적으로 짧은 시간에 (시행착오가 있었든 어쨌든지 간에) 받아들였지만 유독 노동조합에 대한 부분은 더 더딘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념적인 집단공포증이 여기 작용하고 있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지혜로운 기업인이라면 그들이 서구선진국 사람들을 흉내내듯 아침에 우아하게 헬쓰를 하고 우아한 자동차를 타고 우아하게 고급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타고난 듯 자연스레 누리듯 노조에 대한 품위있는 대응도 불가능하진 않을 터인데 어째서 ‘노조’라는 말만 나오면 공황증 환자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다. (물론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서구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양비론은 옳지 않다고 본다. 우리나라 노조운동과 관련된 문제의 근본 원인과 책임은 기업과 정부 쪽에서 더 많이 지고 있다. 쉽게 말하면 칼자루를 그들이 쥐고 있다는 뜻이다.)   

쌍용차 사태의 전후사정을 잘은 모르나 식수와 의약품 반입도, 의료진의 출입도 불허한다는 뉴스를 듣고, 전쟁통에도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치료와 생명살리기의 미담은 있었건만, 21세기 민주사회가 2차세계대전 당시의 전장만도 못한가 싶어 한숨이 났다. 이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수준이라기보다 정치의 수준이고 문화의 수준이기도 하다. 고도의 경제적 효율을 구축하는 삼성의 무노조 정책은 치밀하고 영악한 조직운영 방식이 아니라 문화적 수준의 미성숙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엄마형 조직의 발전성 

또 하나, 아빠형 사회, 엄마형 사회, 형제형 사회라는 비유가 참 재미있었다. 한국은 군대나 학교,  정당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진보단체조차 수직적이고 마초적인 ‘아빠형 사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서의 공동체적인 ‘엄마형 사회’가 얼핏 보면 느려 보이고 규율(군기?) 없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이요, 경제적 효율을 지닌 사회일 것이나, 우리 사회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든 조직구조이기도 하다는 지적이다. 여초현상이 두드러진 학교조차, 여선생님들이 많아져서 어머니 품처럼 이해력이 큰 공동체의 모습을 띄지는 못한다. 관리자의 자리에 진출한 많은 여선생님들은 고스란히 ‘가부장’적인 태도를 학습하여 기존 사회에 순종한다. 왜, 따뜻하고도 엄격한 모성적 지도라는 것은 불가능한가?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모계사회의 우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고민하자는 뜻이다. 좀더 창의적으로 생각하자는 뜻이다. 하긴, 80년대 중등교육을 받은 우리도 창의력의 회색지대를 통과해 왔지만 오늘날의 청소년들이라고 해서 과연 창의적 사고의 세례를 받고 있다 할 수 있을까. 가장 창의적인 녀석들은 그들이 받은 사교육의 분량과 반비례하는 그들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주변에서 온통 걱정을 들으며 사춘기를 거쳐 가느라 온몸에 가시 상처 투성이다. 이것을 잘 통과하는 몇 안 되는 녀석들에게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걸기에는 그들이 너무 소수라는 것도 참 가슴 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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