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n You Believe It?: 2: Book (Paperback) Can You Believe It? 2
Jann Huizenga 지음 / Oxford(옥스포드)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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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도서관에 있었는데 그냥 안에 있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빌려왔다. 실제로 있었지만 믿기지 않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다. 어느 고등학교에 다니던 성실한 17세의 고등학생이 사실은 31살의 범죄자였다는 게 밝혀졌다는 이야기 같은 등등이다. 

처음엔 이야기만 술술 읽었는데 알고 보니(그러니까 난 이 책이 그냥 영어공부 교재 - 미국에서 쓰이는 참고서나 교과서 쯤이겠거니.. 하고 빌려왔는데) idiom  중심의 워크 북이었다.그래서 본문 중에도 문맥 파악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낯선 표현들이 많았다.(참 신기한 것은, 모르는 표현인데 문맥상 다 이해가 되게끔 글을 써놓았다는 것...) 그런 표현은 밑에 설명이(물론 영어로) 되어 있다. 처음엔 재미로 읽다가 문제도 풀고(문제도 인터뷰나 퀴즈, 게임 식이다.) 뒤에 뒤적거려서 숙어 모아놓은 것만 공책 정리를 하기도 했다.  

진도는 빨리 나갔지만 사실 우리 딸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중1 딸이 맘 고 읽으려면 '읽기'보다는 공부가 될 것 같았고 평범한 중1에겐 수업이 아닌 자습용으론 쉬운 내용이 아니었기에 가끔 얘, 이 이야기좀 들어봐, 어떤 4살짜리 남자애가 고릴라 우리에 떨어졌는데 고릴라가 글쎄.. 이렇게 불러들이는 식으로 살짝살짝 읽혔다. 깨 너머로 책을 같이 읽던 딸이 내 해석 속도가 느리면 자기가 먼저 읽고 해석을 하기도 하고(뭐 대충이니까..) 그렇게 몇몇 이야기들을 함께 읽었다.  

영어 흥미있어 하는 중학생용 책으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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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진경문고 5
정민 지음 / 보림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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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교사이다. 정말 좋은 수업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고 준비될 때 가능하다.  이 책은 정민 교수가 정말 가슴으로 읽은 한시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잘 알고, 진정 사랑하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듣기 쉽게 쓴 책이다. 삐아제가 맞나, 아무리 어려운 내용도 잘 구성하면 대여섯 살 꼬마들에게도 가르칠 수 있다고 한 이가. 어려운 내용일수록 나이 어린, 혹은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일단 흥미를 끌어내는 것도 어렵고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도 어렵다.  

한시라니, 국문학을 전공한 나도 한시 관련 서적은 손에 잘 만져지지 않는데, 일부러 공부삼아 읽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데, 또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책 덮어버리면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아이들에게 한시라니.. 

한자와 한시의 구성과 글자의 뜻을 말하려 들면 참 무모한 시도였을 것이다. 물론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한시가 가지고 있는 글자마다의 뜻의 미묘한 차이(물론 어느 나라 어휘에나 그런 느낌이나 용처나 어감의 차이는 다 있게 마련이고 그 차이까지 느낄 수 있는 지경이 되어야 언어를 제대로 공부했다 할 수 있겠지)를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데에는 역시 한계가 있는 듯 싶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적어도, 한시가 말장난이나 풍류를 가장한 헛몸짓의 산물이 아니고, 그 안에 혼과 정을 실어냈던 문학작품으로서의 깊이를 지녔던 것이란 점, 그리고 그 안에 아주 재미난 이야기들이 담겨있음을 알게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훌륭하다. 

물론, 짧은( 5언 절구라 해도 다 해 봐야 20자밖에 안 되는 시들 아닌가) 시 안에서 종으로 횡으로 깊고 넓은 여러가지 정황들을 읽어내고, 아끼고 아끼고 다듬고 다듬어 짜낸 영혼의 피 한 방울같은 한 글자에 담긴 정신과 정서를 읽어내려니, 헤아린 사람의 마음이 앞질러 가기도 한다. 시를 지나치게 해석하려 들면 시인 스스로도 의도하지 않은 부분들이 평론가에게 읽히기도 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기도 하지 않는가(수능문제에 대한 최근의 논란 - 한 시인이 나도 의도하지 않은 내 시의 의도를 문제로 냈다고 일갈했다던- 이 떠오른다.).  

그럼에도, 그것이 문제를 만들기 위한 문제이거나 상업적인 의도로 과대포장되어 팔리게 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아니라면, 시는 쓴 사람 뿐 아니라 읽는 이의 것이기도 하다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시인은 의도하지 않았으나 독자인 나의 경험과 감정선에 그 시가 닿아 일으키는 정서적 스파크라는 게 있다. 독자들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던 자기 안에 숨겨진 시성, 혹은 시에 대한 이해의 샘물을 찾아 한시의 깊은 물줄기와 그것을 이어 아름다운 시적 감수성의 물꼬를 트게 하려는 진정하고도 따뜻한 노력을 정민교수가 한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가 많다. 정지상 귀신이 김부식의 시를 뛰어넘더란 이야기는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수업시간에 한 번쯤 활용하고 싶은 일화이고 아비 그리울 때 보라던 임경업 필사본 이야기도 아이들과 박씨전같은 고전소설 가르칠 때  들려줄 만한 이야기이다. 책 뒤의 한시 원문과 시인들에 관한 정보도 매우 유용하다.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사주기 전에 부모가, 교사가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나라 어른들도 중고등학교 시절 한시나 우리 옛사람들의 문학에 대해 재미있게, 가슴으로 배울 기회는 없었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이들 핑계를 대고라도 우리들이 먼저 가슴과 머리를 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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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유혹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5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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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이야기로서의 소설의 기능을 무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문학'이라 하기에 민망한 소설들이 넘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소설을 만나면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다. 그래 본래 소설이란 이런 것이었어야 했다, 그런 느낌..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 맛보았던 희열을 기억한다. 최후의 유혹에서 다시 카잔차키스의 문체를  느낀다.  논란이 되었던 소설이었다 한다. 그래, 앞 부분에서 예수를 묘사하는 부분이 충격적이었는데 역시나 그랬구나... 뮤지컬 수퍼스타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무대에 올랐을 때 서구 사회가 빠졌던 충격과 같은 맥락의 그것이다. 예수의 신성 대신 인간적 면모와 고뇌를 부각시킨 점. 

돌이켜 보면 사춘기 시절 나의 종교적 방황의 뿌리에도 그것이 있었다. 나는 지금도 예수를 사랑하지만 그가 겪었던 인간적인 고뇌에 더 마음이 쓰이고 감정이입이 된다. 나는 시인은 아니지만 이것은 시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아마도 정호승이 그런 감정이입으로 '새벽'이란 시를 썼을 것 같다.) 또한 나는 그런 유약한 인간으로서의 고뇌를 딛고 사회적으로 약자의 편에 섰던 예수를 진정 존경하고 마음으로 흠모한다. 다만, 내가 그를 신의 아들로, 신앙의 대상으로 숭앙한다는 신념은 들지 않는다. 그래서 교회는 가지 못한다. 

소설로 돌아가자. 목수인 예수는 십자가 형틀을 만드는 사람이고 하느님의 부름에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환자로 묘사된다. 그가 겪는 자기 운명에 대한 두려움은 과도하게 크다. 운명을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다 결국 하느님을 찾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것은 소설적 상상의 산물이지만 꼭 소설대로가 아니었다 해도 예수가 사람의 몸을 입고 서른 세 해를 산 이상 분명 인간이 느껴야 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는  가졌을 것이다. 무섭게 그것들을 겪었고 싸웠는데, 결국 이겨내고 승리한 것이 아니라고 고통 속에서 죽었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위대했던 것이다.  

소설가는 예수의 고통을 따라갔다. 쓰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싶다. 예수가 사막에 갔을 때 죽은 염소(양?)의 시체를 발견한다. 사람들이 자기 죄를 다 짊어지워주고 사막으로 내쫓아 버렸던 짐승은, 사실은 자기 자신은 아무 죄도 짓지 않았음에도 비참하게 죽어 있었다. 그렇게 무고한 짐승을 보내놓고 사람들은 자기 죄는 사함을 받았다고 기뻐하면 개운해 했을 것 아닌가. 죽은 짐승의 시체를 보면서 예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래, 어찌 보면 예수는 인류에게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자신은 순결하면서도 인류의 죄를 대신 다 짊어지고 혼자 산화해 버려야 했던.. 

예수여, 당신은 그렇게 가고, 그리하여 우리 인간들은 깨끗해졌나이까, 그래서 지금 세상은 좀 나아졌나이까, 이렇게 묻고 싶은 마음은 반항심일 수도 있다. 왜 그렇게 아프셨냐고 묻는 것은 그러나 사실은 사랑이다. 인간 예수에 대한... 기독교인들이여, 인간인 예수를 아프게 사랑하는 이 마음에 대해 무슨 질책도 비판도 평가도 하지 말아달라. 종교적 해석을 하고 싶지 않다. 카잔차키스의 소설에 대해서도 내 마음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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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 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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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잘못 돌아가면 바로잡아야 하지만 바로잡기의 첫째 단계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이게 바탕이 되어야 대안이 나온다. 물론 그 대안을 실천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실천력이 다 갖춰져야 문제는 해결이 되겠지. 우리 사회는 다 준비가 되었다가도 실천에서 가로막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잘못의 원인을 규명하고 문제를 분석하는 단계부터 제대로 되지 않았었다.  

우리에게 머리 좋은 인재나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이념의 트라우마는 뛰어난 지성인들이나 학자들조차도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사회의 문제를 파헤치는 일을 못하게 했다. 간혹 그것을 해낼 수 있었던 사람들(리영희 선생같은 분들)이 있었지만 매우 극소수였거나 극악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얼마 안 되는 그들도  함께 논의하고 논쟁할 동지들이 거의 없다 보니 논리를 발전시키기 위한  자기검증 과정이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심한 경우에는스스로 권력화되면서 자기모순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순혈주의가 비뚤어진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변질되어 사회의 집단적 광증으로까지 나타나는 대한민국에서, 우리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비판할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지성들이라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었기에, 넓게 통일과 민주를 이야기할지언정 민족주의 자체에 대해 논의하거나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유기체 자체의 도덕성(외부에 대한)을 건드릴만한 쟁점은 피해가기 일쑤였다. 그것을 박노자는 당당하게 건드린다. 독도나 베트남 문제, 중동 파병, 우리 내부에 들어와 있는 다문화가정이나 이주노동자 문제를 떳떳하게 말하지 않고 민주와 통일을 말하는 것 혹은 '대한민국의 영광된 미래'를 말하는 것은 마치 개인의도덕성을 담보하지 못하면서 운동과 도덕성을 논하곤 했던 과거 운동권진영의 자기모순과 닮은 듯 보인다.

박노자를 읽으면서, 한국인의 혼을 지닌 이 사람, 핏줄은 결국 우리 민족이 아니잖은가, 참 아깝다, 라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도 역시 순혈주의의 아집에 빠진 사람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제3의 한국인이기에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는 말을 할 수 있다. 만약 박노자가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이었다면 아무리 천재적인 두뇌와 통찰력을 지녔더라도 대한민국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박노자가 러시아에서 온 사람인 것은, 아까운 일이 아니라 고마운 일인 것이다.  

 

1. 우리는 우리가 사는 사회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문제 많은 이 사회를 고치려는 열정이 생긴다. 그래서 노력한다... 

2. 우리가 사는 사회는 문제가 많다. 이것은 애정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기 위한 필생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성을 통해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려 노력해야 한다. 

1.이 감성적 접근이고 2.가 이성적 접근이라면 근현대사의 진보진영의 문제해결 방식은 감성 논리였고 박노자는 이성 접근이었다. (그렇다고 박노자에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후자는 드물었기에 더욱 귀하기도 하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기도 한다. 원래 내 안에서 일어나는 자기비판과 성찰이 더 아픈 법이다. 그래서 박노자를 더욱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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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디자인
하라 켄야 지음, 민병걸 옮김 / 안그라픽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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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을 바꿔 한국인 디자이너가 이런 관점으로 이런 디자인 책을 썼다면 별 거슬림없이 읽었을 수 있겠다. 한국적인 것을 어떻게 디자인해 낼 것인가, 또한 그것을 상품화할 것인가, 간단히 추려서 이런 기조의 책일 수 있었을 터이니. 

책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그냥 디자인 일반에 대한 에세이를 기대하고 샀던 나의 기대와 책의 내용이 달랐던 것 뿐이다. 하지만 디자인 전선에서 뛰는 사람들이나 공부하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 나는 주로 사진과 그림들을 중심으로 보았다. 글의 내용은 디자인 강의같은 전문적이거나 지엽적이거나 한 내용들이 많았다. 또한 하라의 디자인들은 매우 일본스럽다. 소위 말하는 젠 스타일의, 지나칠 정도로 여백을 강조하는 깔끔한 그만의 디자인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이방인에게는 어쨌든 그 일본스러움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그저 그의 디자인 감각과 창의성을 배우고 싶을 뿐이다. 디자인 공부를 하려 하는 아들에게 도판을 중심으로 한 번 훑어 보라고 권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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