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 동양고전총서 12
묵적 / 홍익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신영복 선생의 ‘강의’에서 처음 묵자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제자백가 중 한 이름으로 들었을 뿐이지, 묵자가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없었다. 하지만 ‘강의에는 묵자를 ‘노동자 계급’의 한 지도자 , 혹은 어쩌면 지도자 1명이 아닌 지도이념의 현현으로도 해석을 했다. 또한 묵가 사상은 ‘노동중심 사상’으로 해석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장하는 근거로는 묵(墨)이라는 글자의 의미를 일하는 사람의 검은 얼굴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지배계급의 최선호 사상이라 할 수 있는 유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근거가 된다. 그래서 언젠가 제대로 원본(이 아니라 완역본)으로 읽겠노라 결심하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원본은 아니고 해석본이긴 하지만 말이다.

 

묵자의 사상은 ‘겸애’로 집약된다. 사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들이 정치를 만나면 권력에 복무한다. 권력에 무릎 꿇지 않고 약자에게 봉사하는 사상은 없을까? 마르크스가 그런 역할을 하려 했다면 동양에서 묵자가 그것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고 싶어하는 것과 정말 그렇게 하는 것이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백성의 입장에서 혹은 또 다른 ‘올바른 권력 지향’의 입장에서 기득권에 맞섰던 사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나중에 오히려 권력자에게 악용된 사상이 얼마나 많은가. 읽을 때마다 헷갈리는 마키아벨리도 그렇다. 그람시는 마키아벨리가 결코 군주를 위한 군주론을 쓴 게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도 많은 권력자들이 금과옥조로 삼고 있고 글을 읽어보아도 군주의 통치법에 대한 코칭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그 반대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더라도 권력에 이용되었을 게 분명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드문 피지배자의 사상으로서 묵자의 사상은 참으로 귀하기 짝이 없다. 교과서에서는 단 한 줄, 아니 단 한 구절로 언급되고 말지만 말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감흥이 감격스럽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군왕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그야말로 ‘교과서적으로’ 나열한 데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의로운 자를 가까이 하라 하고 사치하지 말라 하고 공평한 정치를 하라 한다. 간사한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쓴소리를 귀담아 들으라 한다. 물론 때로는 마키아벨리처럼 그리 하지 않으면 망하고 마는 다른 군왕의 예를 들어가며 협박(?)을 하기도 한다. 통치의 기술로서도, 군주의 도덕률로서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 사상에서 신선함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수천 년 전, 민주주의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봉건세상에서 노예나 다름없었던 백성에 대한 겸애를 주장했다는 것이 신선한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미 수천 년 전에 누군가(혹은 누군가들)이 주장했고 간절히 바랐던 세상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가를 비판하는 부분이 신랄하고 참신해서 재미있었다. 공자를 비판하는 일도 기독교 신자가 아니면서도 예수를 비판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불편한 일이다. 근본적으로 공자사상이 조선 이후 우리 역사를 잘못된 길로 이끌었다고 믿는 사람도 많다. 공부를 안 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수긍이 되는 점이 많다. 여태까지는 유교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는 데 이용해 온 노론의 권력층이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근본적으로 유교는 지배계층에게 유리한 사상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 사이에 층하를 두고 그들 사이의 계율를 지켜야 도덕적인 것으로 강요하는 것이 충이요 효란 이름으로 미화되었다. 묵자는 그것을 대놓고 비판한다. 제사나 예악에 대한 비판은 형식적인 부분 같지만 중심에 놓고 보는 사람이 달라서 생긴 사상의 차이이다. 묵자가 ‘별애(차별)’하지 말라고 갈파하는 것은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전쟁을 반대하고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단순하고 인간적인 생각 아닌가? 하긴 지금 세상에도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사람들, 노동은 ‘우리’를 위해 누군가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나 신성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당연함이 당연하지도 않은 세상인 게다.

 

누구나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거지만 나 역시 묵자에서 다음 구절이 눈에 띄었다.

 

현명해지는 방법 - 힘이 있는 사람은 남을 돕는 데 힘쓰고, 재물이 있는 사람은 남에게 나누어 주는 데 힘쓰고, 올바른 도를 지닌 사람은 남을 가르치는 데 힘쓰면 된다.

 

나는 남을 가르치는 사람인데, 과연 올바른 도를 지닌 사람인가? 적어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책이 주는 지식의 축적보다 나에겐 더 큰 울림의 질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아이처럼 - 아이, 엄마, 가족이 모두 행복한 프랑스식 육아
파멜라 드러커맨 지음, 이주혜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의 육아법을 알 수 있었던 점이 아니다. 미국엄마들이 아이의 ‘성취’에 그토록 관심이 많다는 점에서 한국엄마들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저자는 육아법의 초점을 성취에 맞추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이의 생활습관에 초점을 두고 바라보는 그 안목이 없었다면 프랑스 엄마들의 육아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 세 가지는 첫째, 우리나라 엄마들의 조급한 육아태도가 놀랍도록 미국과 닮았다는 것, 둘째,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엄격함 속에서 민주적인 열망과 관용적 태도, 사회의 변혁이라는 과제를 함께 해결해 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점, 셋째, 프랑스의 육아법은 곧 프랑스 전체의 교육과 복지 정책을 반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한국이 미국을 롤모델로 삼아 자의든 타의든,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전사회적으로 미국화가 되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외형적인 교육제도뿐 아니라 자녀 양육의 태도까지도 쏙 빼닮았다는 것은 채 100년이 되지 않는 미국화의 역사가 참으로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다는 뜻인가 싶어 씁쓸하다. 80년대에는 종종 대학가에서 ‘신식민지’라는 표현을 썼었다. 미국의 영향력은 미국과 우리의 관계를 제국과 식민지의 관계로 보아도 무방할 만큼 엄청났고 지금도 그러하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덮으려는 일종의 “뺑끼칠”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80년 광주를 정점으로 미국의 제국주의는 조금씩이나마 극복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어쩌면 ‘식민주의’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보다 더 무섭게 교육에 파고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교육제도가 아닌 자녀 양육이라고 하면 더욱 무섭다. 적어도 미국학교 사회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교육이나 엄마들 치맛바람은 없으며 학부모 회의도 훨씬 건강하게 돌아간다고 들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아이를 기죽이지 않으면서 아이 중심으로 생각하고 아이를 자발적으로가 아니라 자유분방하게 키워 청소년 인성교육에 많은 문제를 확대시킨다는 점과 아이의 인성이나 철학을 고민하기보다 성취를 고민하고 자본주의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키운다는 점에서 우리는 굉장히 미국화된 것이 분명하다. 돌아보면 우리의 30년 전은 적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자기 자녀가 돈을 많이 벌기를 바라더라도 적어도 훈육을 할 때는 인성 바른 아이가 되라고 먼저 말하고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가정교육조차도 드물어지는 세상이 되었으니.

 

프랑스 가정교육이 엄격하다는 것이 그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진보성과 모순되는 듯이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다. 우리 나라의 소위 386 세대 부모들이 저지른 잘못 중에는 ‘민주적인 양육’이라는 미명하에 자녀들의 의사를 존중하다 못해 과보호하는 현상을 초래한 것이 있다. 물론 그 방식이 전적으로 잘못되었다기보다 사회 전체가 성장과 경쟁을 추구하는데 민주적 의사존중 방식을 가정의 자녀양육태도로 선택하면서 아이들이 혼란을 겪은 부분도 있다. 또한 많은 가정에서 정치의식과 상관없이 이전 부모세대(대개는 한국전쟁 직후의 보수성으로 자녀를 억압하던) 에 대한 반발로 자기 자녀에게 많은 자유와 기회를 주려했지만 방식에서는 별 고민없이 자녀들을 분방하게 열어놓았던 지금의 4,50대 부모들의 실패일 수도 있다.

하여간 우리가 그런 사회적, 가정적 교육의 실패와 정치와 교육의 모순된 혼란을 겪는데 비해 프랑스는 정치적으로 대체로 진보적이면서 가정교육에서는 대체로 보수적인 듯이 보이는 모순을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가정에서 부모가 너무 엄격하면 아이들이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행동거지의 틀‘(카드르)를 엄격하게 지워주고 사회정치적으로는 자유로운 발언의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 흔한 말로, 사실은 보수정치권에 많이 악용되는 구호로써,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말을 곡해만 하지 않는다면 엄격할 때 엄격하게 질서와 배려를 가르쳐야만 진정한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견해를 가져본다.

나 역시 다른 교사나 부모에 비하면 너그러운 양육 교육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는 엄한 교사나 부모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따지고 지도하려 애쓴다. 나의 교육방식은 정치의식에 비하면 좀 보수적인 것 같기도 하다. 가령 아이의 복장을 단정히 하기를 요구하고 어른에게 공손하기를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하지만 대체로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과 훈육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공교육이라는 틀 자체가 가지고 있는 비민주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교육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입장인데 이런 모순 속에서 나는 어떻게 공교육의 질서 속에 아이들이 자본주의적으로 이용당하지 않으면서도 배려의 규칙을 배우게 할까를 고민한다. 

 

어린 자녀의 양육이 다 끝난 나에게 이 책은 별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비록 탁아소나 유치원 수준의 언급에 불과하긴 해도 프랑스의 교육제도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극복이 되었다. 학교급식과 교사의 전문성은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교육의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미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교사는 그다지 위상이 높은 직업이 아닌 것으로 안다. 교사가 전문성이 떨어지고 자존심이 떨어지는 사회에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학교 시설이 다른 어떤 건물보다 후진 나라에서 교육이 잘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는 아직도 교육후진국이 맞다. 좁고 더러운 교실에서 40명 가까운 아이들이 몰려 있고 비싸고 질낮은 밥을 먹으며 자존감이 낮은 교사들의 가르침을 받는다. 초중등 교사들을 흔히 ‘방학과 철밥통’을 누리는 철면피들이라고 일반인들은 생각하지만 방학과 연금이 없다면 그리 교단에 서고 싶을 이유가 별로 없는 게 대한민국 교실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만큼 교육적 보람이나 전문가적 자존심을 지킬 수 없을 만큼 무너진 게 공교육 현장이다. 교사들의 잘못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시스템의 잘못이 더 크다.

누구라도 교무실에 와서 일년만 교사 노릇을 해보라. 아이들 다루기 힘든 것을 떠나 잘못된 관행과 무의미한 행정업무에 무너지는 수업을 온몸으로 아프게 겪을 것이다. 그것을 고쳐보려는 노력은 처절하게 짓밟힌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학교를 이렇게 망친 주범들은 모든 잘못을 교사들 개개인의 잘못으로 여기게끔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교사들이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니고 교사들이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무엇보다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야 할 전교조가 가장 욕을 먹어 싸다. 성과없는 노력을 20년이나 해온 세월이 야속하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뒤에 대안도 없다는 점이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이지 교사 개개인의 무력함이나 비리는 제도가 개선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될 문제라고 본다. 프랑스 어린이집 교사들의 전문가적 자존심, 그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이 책에서 가장 부러웠던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읽고 있는 책 중 바로 이 책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절반 못 되게 읽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다. 이 책이 무자비한 살육의 주인공인 아이히만의 지극한 평범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읽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최근에 읽은 이 장면에 나는 주목한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소개, 혹은 이주시키는 것을 주업무로 하여 그 방안을 고심했다고 하다.(심지어는 폴란드의 유대인들을 마다가스카르에 이주시키려 했단다.) 하지만 결국 히틀러가 그들의 ‘이주’가 아닌 ‘학살’을 결정하고 아랫것들에게 명령을 전하는 과정에서 아이히만은 충격을 받는다. 뭐, 비인간적인 행위를 해야만 하는 고통 따위라기보다 그 앞에 구축했던 자신의 계획들이나 방안들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에 대한 허무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치가 사용하는 표현 중에 ‘언어규칙’이란 게 있었단다. 우리가 일상어로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을 그들은 ‘언어규칙’이라고 불렀단다. 대표단이 추가로 방문하기를 원한 베르겐벨젠 수용소에 발생하지도 않은 전염병 티푸스가 발생했다는 식의 거짓말.... 아이히만이 구사하는 언어에는 구호와 관용구가 많았다고 하는데 바로 나치의 ‘언어규칙’에 참으로 적합한, 이상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가령 ‘최종해결책’이란 말은 유태인에 대한 학살을 의미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현재 딱 여기까지 읽었다.) 나는 지난 5년간,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실종되고 언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일에 대해 동료랑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생각난다. 동료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무상급식을 두고 ‘망국적 포퓰리즘’이라 표현하는 것을 두고 이 땅에서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생하고 있다면서 개탄했다. 나는 한 2년 전쯤인가,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성공한 한나라당의 김무성 의원이 그 날치기를 두고 ‘이것이 정의다!’라고 할 때, ‘말’이 가지는 신성성과 주술성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몸으로 느꼈던, 몸이 아팠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둥  어록을 남긴 MB를 비롯하여 많은 아류들이 말을 유린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학교에서 가장 거짓말 잘하고 사람들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사람이 ‘순수하고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말이란 게 선점한다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저들이 전략적으로 저런 표현을 선점하는 것을 넘어서서,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정말, 자기는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그는 믿고 있는 것이리라, 정말, 그는 다른 교사들이 자기처럼 순수하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아아, 어쩌다 말은 이렇게 되었는가. 말이란 것은 늘 옳지, 거짓임을 스스로 알아도 그걸 감추려고 노력할 뿐이고 사람들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알아보긴 하되 그의 권력이 무서워서 표내지 못할 뿐인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혼탁한 세상은 말이 혼탁하여 바닥까지 진심으로 거짓을 진실이라 믿고 말한다. 또한 그렇게 도와주는 강력한 나팔수가 있다. 스스로에게 먼저 ‘이 거짓은 진실이다, 이 거짓은 진실이다. 그러므로 거짓이 진실이다.’라고 울부짖어 각인시키고 다시 태어나 해맑은 얼굴로 ‘저는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살아왔습니다.’라고 가슴 벅차게 외치는 것이다.

  ‘언어규칙’, 이 거짓 ‘말’의 시대가 이제 비로소 끝나기는커녕, 이제 비로소 본격화되기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함이 자꾸 나의 입을 닫게 만든다. 입을 닫고 절필, 묵언해야 하는 것일까? 벗들은, 아니다, 우리 그러면 안 된다고 분명 입을 모으실 것을 알지만 나는 자꾸 눈을 감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발장, 세 번의 기도

레미제라블을 두 번 보면서 여전히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나를 보고, 옆의 선생님이 묻는다. “샘, 두 번 보신다면서 여전히 눈물이 나요?(처음 보는 그녀는 마음이 짠했다면서)”

그런데, 뭐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엉엉 울다시피 하긴 했지만 특히나 유난히 눈물이 나는 대목은 처음 보았을 때나 두 번째 보았을 때나 같은 장면이었다.

장발장은 세 번 홀로 기도한다. 주교로부터 은식기 선물을 받고 나서 자신을 참회할 때, 장발장이라 오해받은 사내가 나타났다는 자베르의 말을 듣고 어쩌면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이제는 양지바른 삶을 살지, 아니면 양심의 소리를 들을지를 고뇌할 때,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코제트를 이제 그녀의 남자에게 보냄으로써 자기 생의 유일한 기쁨을 놓아야 하는 건지를 고뇌할 때...

이 모두는 선택의 기도였다. 나쁜 삶과 바른 삶 사이에서, 자기의 이익과 올바름 혹은 타인의 이익 앞에서,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의 기도... 기도는 곧 독백이고 고뇌이다. 생각과 사색과 성찰의 과정 없이도 쉽게 판단을 내리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 시간이 짧은 사람은 세간에서는 강인한 사람이라 하고 결단력이 있다고 칭송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시간이 긴 사람일수록 염치를 알고 두려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고뇌 끝에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이겠지만.

 

장발장은 그 세 번의 고뇌에서 피눈물을 흘리는데 모두가 아팠겠지만 특히 가짜 장발장이 나타났을 때 그 앞에 서서 내가 진짜 장발장이요, 하고 자신을 드러내기까지의 시간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야 순식간에 그 장면이 지나가지만 소설 속에서 장발장은 그 시간을 너무나 고통스럽게 보내야 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버렸고 법정에 증언하러 가는 멀고도 먼 길에 마차가 고장났을 때, 하늘이 그의 길을 가로막아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코제트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그의 연장선상이기도 하지만 혁명 전야에 코제트가 사랑하는 마리우스가 잠든 모습을 보면서 장발장이 부른 ‘Bring him home'은 진정한 부성(父性)의 노래이다. 정치가 어찌 되었든 혁명이 어찌되었든, 저 젊은 것들이 아프지 말게, 죽지 말게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기도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그런 기도를 하고 싶었으리라...

 

유다의 독백, 예수의 기도

내가 처음 뮤지컬을 접한 건 중2 때였다. 80년대 초반, 학교에서 단체관람을 갔다. 뮤지컬도 아닌 ‘록 오페라’라는 이름이 붙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젊은 시절 작품이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교회 전단지를 주워 읽고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이 교회에 제발로 걸어가 1년을 다닌 전력이 있는 어린 영혼이었다. 엄마가 절에 다니셔서 기독교를 극구 반대했음에도 겨울방학 새벽 5시에 민병철영어 카세트 껍데기에 손바닥 반만한 신약성서를 숨겨 새벽예배를 다녔던 아이가 나였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교회에 걸어들어갔다가 걸어나온 과정도 자발적이긴 했지만 어쨌든, 영적인 존재에 대한 고민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동시에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충격이었다.

나중에야 그것이 기독교에서 아주 싫어하는 작품이란 것, 최근 들어서야 그것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을 원전으로 하여 유럽을 일대 충격에 빠뜨린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기독교적인 내용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주님, 내 공포를 기도로 위무할 수 있게 해주었던 나의 예수님, 그러나 그 사랑이 정말 ‘보편적’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에 떠나왔던 그 교회의 주인... 그에 대한 그리움과 회한에 가슴이 떨렸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 뮤지컬을 이화여대 무용과 학생들이 공연하는 무용과 외국에서 들어온 작품, 영화를 포함해서 열 번도 더 본다. 여기서 가장 마음이 아픈 대목은 두 군데. 예수를 고발하기 전 유다의 마지막 독백, 그리고 예수가 끌려가기 전 게쎄마네에서 올리는 기도이다. 물론 창작자의 의도도 거기에 집중이 되어 있다.

 

이 작품이 반기독교적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히 지옥에서 살아야 할 유다에게 ‘고뇌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점, 그리고 한 점 고민 없이 완벽한 ‘신의 아들’ 예수를 인간의 육신을 지고 고뇌하는 ‘사람의 아들’로 표현했다는 점일 것이다.

예수가 게쎄마네에서 올린 기도의 핵심은, 자기가 배신당하리란 것, 죽으리란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것임을 그가 예측하고 잠시 망설였다는 것,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김동인도 카잔차키스도 앤드류 로이드 웨버(아니, 가사를 팀 라이스가 썼으니까 그의 이름을 불러야 맞겠다) 지어낸 내용이 아니다. 그 창작자들이 성서를 읽으면서도 어느 부분에 대해 고민하면서 읽었을까가 핵심일 것이다. 그가 정말 신의 아들이라면 그는 왜 자기 죽음 앞에서 약해졌을까, 라는 고민을, 성서를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지 않았을까.

어쨌든, 종교적 논쟁은 차치하고, 나는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어 다른 버전의 이 작품을 볼 때나, 언제나 두 사람의 독백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기도란 저런 것이다. 가장 첨예한 기로에 섰을 때 나오는 것, 내가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절박한 순간이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에게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순간이 있긴 했다. 나의 기도는 그 어린 날 금방 멈추어 버렸지만 그 이후로도 가끔 영혼이 가장 나약하게 벌거벗은 날갯죽지 위로 온통 가을비를 온몸으로 다 맞아야 할 때가 되면 다시, 내게 기도할 신이 있었더라면, 하고 간구하게 된다.

 

2001년이었던 것 같다. 남편과 유럽여행을 갔다. 유럽에서 현지인보다 샌들에 선글라스 차림을 한 한국 젊은이를 더 많이 만나는, 유명한 관광지를 섭렵하고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는... 뭐 그런. 여행이었다. 바티칸 시국에 가 세상에서 제일 큰 교회라는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다. 성지가 아니라 박물관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이었다. 유명한 피에타 상을 지나 대다수가 반바지 차림인 관광객들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가다 보니 관광객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곳이 나온다. 기도소란다. 여긴 신도들만 들어가는 곳이란다. 경호원인지 경비인지, 잘생긴 이태리 남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입구를 막아서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가 막으면 돌아섰을 것었다. 물론 나는 모자도 쓰지 않았고 반바지도 입지 않았지만 조그만 동양여자가 현지의 신도들과 구분이 안 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경비는 나를 막지 않았다.

관광객이 북적이는 밖과는 달리 무서울 정도로 조용한 기도소에 들어간 나는 길고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기도를 시작했다. “먼 길을 걸어서 아주 오랜 시간을 지나 주님 앞에 다시 앉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기도는 나의 어머니와 나의 딸 이야기로 오래 계속 되었다. 나에게 만약에 어딘가에 가서 약발이 잘 듣는 기도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강렬하게 기도드리고 싶은 존재가 바로 그 때 다섯 살 된 딸아이였다. 그 아이를 위한 기복을 올리려다 엄마 생각이 났다. 이기적인 모성은 제 딸 걱정이나 하지 그 딸과, 나 자신의 원천인 엄마 걱정 따위는 한 적도 없었던 게다. 그리하여 딸과 엄마를 함께 기도의 말풍선 안에 넣긴 했지만 나는 감히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도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얄팍한 이기심 따위나 챙기려고 지구 반대편에 와서 무릎을 꿇고 있는 내가 참으로 하찮게 여겨졌을 뿐이다. 그런 참회만으로도 나는 오래오래 눈물의 기도를 올렸다. 결국 아무 것도 ‘기복’하지도 바라지도 못하고 ‘반성’만 하다가 나왔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이 자주 생각난다. 너무나 바빠서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조차 거의 없이 살아온 지난 삶이었다. 가장 치밀하게 혼자가 되는 그런 시간을 나는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벌레처럼 자기 집 안에서 몸을 또르르 말고 아무 생각 없이 평안하게 살다 가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인지라 지닐 수 밖에 없는 ‘영혼’은 각박한 세상에서 ‘옳게 삶’과 ‘편하게 삶’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고민도 없이 바로 선택의 길로 가는 사람들, 고민을 하되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른 길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아픔 속에 순정하게 빛나는 영혼들 중에 나도 작은 빛 하나이고 싶다. 물론 그런 기도 끝에 내린 결론은 ‘옳은 길’이어야 한다. 자꾸만 편한 길, 불의는 못 본 걸로 하려는 길, (그 동안 한 게 뭐 있다고) 잠시 쉬어가겠노라는 길로만 가려는 나약한 요즘의 나는 아마 그래서 나 대신 처절하게 흘리는 저들의 눈물에 기대어 덩달아 회한의 눈물을 흘리나 보다. 정작 내가 흘려야 할 피눈물은 덮어둔 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누구는 이계삼을 일컬어 잠수함의 토끼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나는 이 사람의 예민한 촉수가 세상만사에 닿아 있는 게 너무나 놀라웠다. 고뇌하는 교사였다가, 지금은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사람은 세상 모든 일을 ‘고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냥 ‘사색’을 하는 게 아니라 ‘고뇌’하는 게 보인다.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보인다. 어린 날, 넘어져서 까진 무르팍, 살껍질 벗겨진 채로 날바람을 맞을 때의 쓰라림을 기억한다. 이 사람의 촉수는 그냥 더듬더듬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그대로 자기 것으로 맞이한다. ‘소위 밀양 사건’의 가해자 중 하나인 제자에게 보내는 편지는 그답지 않게 문장이 허방지방하는데, 아이에 대해서 보듬다가 야단치다가 안타까워하다가 허탈해 하다가,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게 꼭 아이 부모 같은 자세다. 제자의 잘못, 세상의 비난에 그를 감싸지도 돌이키지도 못해 하는 그는 절대 쿨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제는 많은 ‘교사’들이 자기 학생들이 겪는 고통이나 저지른 잘못에 대해 얼마나 ‘이성적으로’ 대하는가. 가슴으로 화내고 아파하고 해결하려 애쓰는 교사들이 점점 줄어드는 요즘 세상에 이 사람은 너무 예민하다.

 

그리고 그 많은 사안들. 우리가 살아가려면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은데 그건 즐기고 누릴 것들에 대한 포기도 포함하지만 아파하고 고민해야 할 것에 대해서도 선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크기, 머리의 크기, 발의 크기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신문에서 쏟아지는 그 많은 이슈들에 다 분노하다가는 마음이 지쳐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런 부당한 일들에 대해 욕을 하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린다. 사람들이 너무 빨리 잊는다고 욕하지만 사람들이 다 마음에 담고 고민하기에 너무 많은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는 게 맞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모르겠다, 요즘 사람들 몸의 크기는 다를 바 없으나 마음이 자꾸 작아지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고, 이계삼 같은 이는 인간이 본래 가져야 할 마음의 크기를 아직도 안고 있어 이 세상 짐을 다 짊어져야 하는 건지도 ....

 

윤동주의 순수가 오히려 저항이 되었다고, 나도 국어시간에 가르치곤 했지만 실감을 하지 못했었다. 예민하고 순수한 것이 힘이 되는가? 너무 맑아서 강하다고 나도 힘주어 말했지만 윤동주는 내게 너무 먼 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변방의 사색을 읽으면서 윤동주의 힘은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무릎을 쳤다. 이계삼이 날카로운 글을 쓰니까 무슨 ‘논객’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의 글을 많이 읽어 보지 않고 이 나이도 젊은 사람을 무슨 일종의 문화권력처럼(어쨌거나 고민깨나 한다는 교사들 사이에서 그는 명망가이니까) 여기면서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는 수줍고 맑은 사람이다. 아니, 나도 개인적으로는 그를 모른다. 연수 때 먼 발치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그때 받은 인상은 글과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성과 감성을 문필에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지만 화려한 능력으로써가 아니라 자기 아픔 때문에 사람들 마음을 울려 이름을 얻은 사람이다.

 

이계삼은 불편하다.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교육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계삼의 글을 읽으면 '동지를 만났구나'라고 마음이 흐믓해지는 게 아니라, '어쩌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심각하구나, 그리고 저토록 처절하게 고민하는 그에 비해 나의 고민은 참으로 얕구나...'하는 반성이 든다. 그의 글은 온통 이 땅의 교육(특히 학교교육)은 이제 더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아마도 '사망선고'까지는 아니겠으나 절망의 상처를 대충 덮고 어설픈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망이라고, 차라리 이만큼이나 잘못되었고 이만큼이나 비참하다고 다 까발리고 인정하고, 거기서 다시 시작하자고 그는 외친다.

 

마치 경주마가 안대를 하고 달리듯이 좁은 눈으로 내가 있는 학교 내가 아이들을 만나는 교실만을 보고 그래도 학교는 따뜻한 곳이고 교사 한 사람 한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희망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나는 참으로 부끄럽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희망을 놓을 수도 없다. 내가 수십 년 동안 믿어오고 기대하던 것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그로 인해 보아야 하는데, 그에게 당신이 틀렸다고, 당신은 너무 비관적이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러기에 그의 논리는 너무나 정연하고 그의 고민은 너무나 진실되기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다. 마치 공부도 잘하는 아이가 인간성마저 좋으면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면서 미워할 수도 없는데 미운 것 같은 마음이랄까. 장발장 앞에 영혼의 무릎을 꿇은 자베르의 심정이 이와 조금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자베르가 아니다. 나는 교육에 대해 잘못된 신념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옳은 방향의 고민을 하던 사람이었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에 있어 이계삼만큼 깊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그가 보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차례다. 내가 몰랐던 것은 무엇이고 그가 과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그리하여 함께 이 교육불가능을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에 대해 모색할 차례다. 아니, 누가 그랬던가, 모색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하라고. 그는 이미 하고 있는 '행동', 나는 망설이고 있는 그 '행동', 양상은 다양할지라도 이제 그 '행동'을 할 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