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두 번째 이야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2
정여울 지음 / 홍익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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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이번 5월 동유럽에 갔다 왔다.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편이고 배낭여행까지는 아니어도 자유여행을 자주 다녔건만, 새로운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긴장된다. 그러고 보면 한때(지난 여름, 가을) 늘 유럽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던 내가 떠오른다. 유럽에 대한 판타지 같은 것을 갖고 있었던 걸까? 그냥 여기 아닌 다른 세상을 꿈꾼 것일까? 하여간, 그런 꿈꾸는 목록 중에 동유럽도 들어있었다.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을 보면서, 과거 사회주의 치하의 폴란드, <사일런트 웨딩>을 보면서 음울하나 소박한 루마니아, 그런 동유럽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분위기는 고스란하지만 서유럽처럼 상업성에 물들지는 않은... 모든 여행이 다 그러하겠지만 환상일 것이다. 쿠바처럼, 글에서 본 그대로의 여행지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동유럽, 언젠가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렵사리 이번 5, 황금연휴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책 속에서 소개한 김소연 시인의 <어떤 날>이 재미있었다. 김열규 선생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문학이라는 게 늘 피안을 꿈꾸는 일이라 말했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밤마다 시달리듯이 꿈을 꾸는 것도 어쩌면,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문학의 꿈을 대신하는 일이 아닐까. 여행도 어쩌면 쓰는 일 대신이 아닐까. 글을 쓸 수 없는 이들이 자기 대신 다른 이가 써준 시를 읽고 소설을 읽듯이 여행을 가면서 문학적 꿈을 대신 이루려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의 나

여행지에서의 나

어깨에 보이지 않는 짐 한가득

어깨에 최소한의 짐

침묵하고 있는 심장

들떠있는 심장

모두가 너무 가깝지만 모두가 멀기만 하다

모두가 너무 멀어서 모두가 그립다

감정노동만으로 쉽게 피로해진다

걷고 걸어서 피곤해진다

아무리 피곤해도 불면증

누우면 곧장 잠

내일 스케줄이 부담스럽다

내일 스케줄이 호기심 가득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즐겁다

머릿속이 북잡해진다

머릿속이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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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혁명사 -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여정 쿠바 바로 알기
아비바 촘스키 지음, 정진상 옮김 / 삼천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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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월의 쿠바 여행기의 일부를 먼저 소개한다. 체 게바라의 유해가 묻혀 있는 산타클라라를 다녀온 부분이다. 노엄 촘스키의 딸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는 쿠바 혁명을 전반적으로 조망할 때 주로 그 시스템을 말하지만 또한 그 안에 있는 혁명정신을 놓지 않는다. 쿠바 혁명 정신의 두 줄기는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이다. 이런 게 정말 혁명이구나, 싶은 뭉클함이 있다. 남의 나라 성공한 혁명에 대한 부러움 때문만은 아닌 그 무엇이 있다.

 

쿠바 여행기 8. 체 게바라를 다시 생각함

 

동트는 아름다운 비달광장은 잠시 고요했다. 잠시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있다. 새벽 3시까지 아마도 호텔 지하의 클럽에서 나는 소리인 듯한 라틴음악이 우리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밤중이나 새벽은 고요한 줄만 알고 살았건만... 그래도 아직 어둑한 아침의 광장은 가로등빛만 고요하고 저 먼 하늘이 동이 틀락 말락하니 아름답다. 감탄이 절로 난다. 참 예쁘게 잘 만든 광장이다. 광장이라지만 광화문이나 시청광장처럼 크지도 않다. 뜨리니닷의 마요르 광장도, 아바나의 빠르끄 쎈뜨랄도 조촐하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작은 공원같은 느낌...

 

하지만 아름다운 비달광장의 고요는 금방 끝난다. 공원 나무에서 잠자던 쿠바 새들이 아침이 왔다고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한다. 나무 하나가 저 새들을 감당할까 싶을 만큼 어마어마한 새들이 공원에 산다. 무서울 정도로 지저귄다. 밤 세시에서 아침 여섯 시까지, 하루 딱 세 시간 조용한 곳, 쿠바...

 

나는 여행을 다니는 동안 매일 밤 간단한 일기를 썼는데 산타클라라에서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체 게바라가 대통령으로 온다 해도 자유를 포기할 수는 없다. 무상의 질 높은 교육과 의료를 주면서 자유와 맞바꾸자 해도 거부할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독선에, 오만에, 고집불통 역사왜곡 대통령이라니...’

 

체 게바라를 다시 생각함

무슨 근거인지는 모르겠으나 체 게바라가 한 말이라고 알고 있었던 말이 하나 있다.

모든 권력화를 지양한다

꽤 오래 전부터 나는 나름대로 이 말을 내 삶의 지표 중 하나로 삼았다. 혹여 내게 알량한 권력이나 권위가 주어지더라도 그것으로부터 의연하게 살겠노라는 자기 다짐일 뿐 아니라 어떠한 권위주의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 같은 것으로써. 체 게바라의 말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한 걸 보면 그저 그의 전기문을 읽다 정리가 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카잔차키스가 묘비명에 쓴 말,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처럼 진짜 무서운 사람은 어디에도 마음이 얽매이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아무 욕심 없는 사람처럼 무섭고 멋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 말을 체가 했든 안 했든 그는 스스로 가질 수도 있었던 권력과 거리를 두었다. 호사가들은 체 게바라 일찍 죽지 않았으면 피델과 어떤 관계가 되었을까, 이런 상상을 하기도 하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에 가서 죽게 된 데에는 피델의 음모가 있었다는, CIA의 이간질에 의한 더리dirty’한 가십도 있지만 그의 죽음은 참으로 그다운 행적의 정점이다. 오래 살아서 쿠바의 미래를 밝게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죽어서도 쿠바를 이끄는 삶의 원동력(학생들이 수업 시작할 때 우리는 체처럼 될 것이다라고 외친다는데,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할까, 이 아이들은!), 심지어는 티셔츠 속에서 쿠바인들을 먹여살리기까지 하는 훈훈한 사람이란 말이다.

 

2005년 즈음이던가. 신영복의 <강의>와 더불어 장 코르미에의 <체 게바라 평전>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체 게바라가 누구인가. 그는 쿠바 사회주의 혁명의 장본인이다. 좀 단순하게 말하자면 공산주의자인 그의 평전이 레드 콤플렉스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정체성을 알고도 그토록 많은 이들이 그를 높이 평가했다는 것인지, 이념성을 제거하고 낭만적 혁명의 겉만을 핥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베스트셀러의 속성 그대로 좀 있어 보이는 책을 들고 다니고 싶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인지... 그 현상은 지금도 내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체 게바라 평전>현실과 이념 모순도 그렇지만 신영복의 <강의>가 베스트셀러인 것도 고개가 갸웃거렸다. 인문학을 전공한 내가 읽어도 빠르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다. 말하자면 공부가 필요한 책이었는데 그 책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 그런데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세상을 달리 보고 세상을 다르게 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책은 왜 읽는 것인가에 대해 조금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체 게바라의 낭만에 대하여어~’

대중이 체 게바라를 사랑하는 것은 그의 이념 때문이 아니다. 그를 민중에 대한 따뜻한 박애와 감성을 지닌 실천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라는 말에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당당히 체 게바라를 좋아한다고 말해도 무탈한 이유도 그가 가지고 있는 낭만주의적인 이미지 때문이리라. 총의 이미지와 시의 이미지가 결합된, 민중에 대한 애정과 의사 출신이라는 출신성분이 어우러져 더욱 고상하게 보이게 하는... 그래, 네가 그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거겠지, 설마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는 건 아닐 터이지? 이런 시선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위험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사회주의자라는 이념의 아이콘으로보다는 이상을 꿈꾸었고 그것을 이루려 노력했던 인간으로 여긴다. 폭넓은 이상을 품는 사는 이는 얼마나 되며 더구나 그 이상을 이루려 온 몸으로 실천하는 이는 얼마나 되려나. 게다가 그 이상을 이룬 사람은 또 얼마나 되겠나. ‘우리 모두 꿈을 꾸자고 속삭이기도 하고 외치기도 하는 달콤한 선동가. 하지만 그는 또한 리얼리스트이기도 했다. 그가 특별한 것은 이루지 못한 꿈의 안타까운 아름다움이 아닌, 꿈꾸고, 실천하여 결국은 이루어 낸, 독특한 현실주의적 낭만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한 그는 분명 쿠바의 경체 시스템을 만드는 이데올로그이기도 했다. 이전에 책에서 읽었겠으나 그냥 무심히 넘기고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이미지와 환상()인 잔영 때문에 놓쳐버린 바, 그는 그냥 꿈만 꾼 사람도, 실천만 한 사람도 아니었다. 비전과 대안을 지녔던 사람이다.

 

대한민국에서 보수정치의 전횡으로 진보진영의 격도 덩달아 떨어졌다는 한겨레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좀 포괄적으로 우리 편을 품고 가자는 주의이긴 하지만 진보라는 이름으로 품기에 우리에겐 어떤 규모와 격과 이론과 지혜가 많이 부족한 건 사실인 듯하다. 876.10 항쟁 이후 막 그걸 채워나가기 시작하는 듯 보였지만 얼마 안 돼 금세 꺾여버렸다.

 

혁명이든 개혁이든, 그냥 진보적 발걸음이든, 뭐라도 하기 위해서는

1. ‘현사태를 정확히 직시함

2. ‘직시에서 비롯된 논리적인 비판

3. ‘적과 싸움, 혹은 싸워 이김

4. ‘이긴 후 무너뜨린 폐허 위에 무엇을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 제시

5. ‘그 대안을 실현시킴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우리는 3단계까지도 가 본적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체 게바라는 5단계, 그 너머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그냥 총 들고 불도저를 이끌고 무기차량을 탈취한 혁명가에 불과한 사람이 아니었다. ‘건설 쿠바에까지 나아갔으며, 건설에서 자기가 빠져도 무방하리라는 판단에서 자리를 놓고 떠난 사람이었다. 그가 사람들의 사무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놓고 떠남, 영원히 산화함의 미학에 있겠지만 나는 내가 그 앞 단계를 놓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막 싹트기 시작한 쿠바에 무엇을 심어놓았는가를 말이다. 현실에 발을 딛고 산업부 장관 등을 하면서 해낸 일들을 말이다. 그 부분을 정확히 봐야만 체를 온전히 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소비되는 티셔츠 속의 체 게바라가 아닌, 이론과 대안을 지녔던 자로서 말이다.

 

피델이라는 사람

사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체 게바라보다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흔히 사람들은 체 게바라를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낭만적 혁명가, 감성적이고 따뜻한 인간적 지도자라 생각해서 거리낌 없이 그를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 피델 카스트로를 좋아해.” 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체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선언하기도 전에 죽어버리지도 않았고 1960년에 명백히 공산주의자임을 선언한 피델,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세계적으로 장수독재를 한 인물인 피델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반공이 국시인 줄 착각하는 대한민국이서는 참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건, 52년 독재를 했다는 피델의 우상화 흔적은 쿠바 어디서도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일단 그것이다. 12일의 쿠바 여정에서 길거리에서 피델의 얼굴 그림이나 이름을 본 것은 세 번도 안 된다.

 

내가 본 그 세 번의 피델 얼굴 혹은 이름 중엔 이런 것이 있었다. ‘Con fiDel Revolcion’(피델과 함께 혁명을)‘. 쿠바의 가장 큰 주민 자치조직이라 할 수 있는 CDR(Comite de Defensa de la Revolucion)은 원래 혁명방위위원회를 뜻한다. 말하자면 약자를 가지고 재미있게 표현한 것일 수 있는데 이 정도가 내가 본 피델을 기리는 구호정도였다. 쿠바 사람들은 왜 피델을 우상화하지 않았을까, 의문을 품어 본다. 그리고 그 답이 바로 쿠바의 공산주의가 다른 나라 공산주의 정권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본다. 쿠바에는 살아있는 지도자를 추앙하지 못하게 하는 법이 있다 한다.

 

읽은 책들(<쿠바 혁명사>, <쿠바의 민주주의>, <쿠바식으로 산다>, <교육 천국 쿠바를 가다>) 중에는 곳곳에 피델의 연설들이 등장한다. 피델은 유명한 선동가였다고 듣긴 했지만 이토록 달변인 줄은 몰랐다. 피델의 가장 유명한 연설 중에는 이런 게 있다.

바티스타 집권기인 1953726일 몬카다 병영 습격에 실패한 MSR대원들은 모두 체포되었으며 그중 피델 카스트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체포 된 피델 카스트로는 변호사 출신(아바나 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이었기 때문에 자체 변호를 했다고 한다.

 

... 너희들이 내 심장에 총구멍을 낸다 하더라도 조국, 정의로움, 인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잘 들어라, 너희들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온갖 더러운 수단을 쓸 것이지만, 나는 꼭 너희들의 더러운 역사를 낱낱이 파헤쳐 세상에 알릴 것이다. 너희들이 날 방해하고 이 비좁은 공간에 가둘수록 내 혁명적 마음을 더 살아날 것이며, 너희들이 나를 침묵시키려 노력할수록 쿠바 인민들의 혁명적 동기는 더욱더 타오를 것이다. 또한 너희들이 수작을 해서 나와 전 대원들의 숭고한 정신을 왜곡시켜 내가 당장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한 것도 아니며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우리가 많이 인용한 유명한 말들 중에 피델이나 체가 했던 말들이 많다. 체의 명언은 그가 죽어서더욱 빛나고 피델의 명언은 성공한 혁명이어서 더욱 빛난다. 비애의 역사 속에, 실패한 혁명 속에 스러져 간 많은 우리 혁명가들의 절창은 언제 다시 빛날 것인가.

 

아바나와 뜨리니닷의 놀랍도록 빛나는 별빛을 보면서 딸은 엄마, 저 별빛이 지금 것이 아니라며? 그런 생각하면 기분이 진짜 이상하지 않아?’ 라고 말했다. 그래, 때로는 이미 죽은 별이 마지막 발한 빛을 우리가 수백, 수천 년 후인 지금에 보기도 한다더라. 먼 하늘을 보면 시공이 뒤섞이는 것 같은 묘한 감상에, 내 작은 존재가 정말 우주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시간 속에 공간 속에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은 또 다른 존재감, 그런 느낌 때문에 시인들은 별을 자꾸 바라보았겠지.

 

최근에 역사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나는 죽어도 역사는 남는 것, 지금이 아닌 또 다른 시대가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것, 그런 상념 속에 나의 나이 듦, 한 인생이 죽음 앞에 놓임, 이런 것들이 무의미해지기도 한다. 체와 피델은 죽은 혁명가, 살아남은 혁명가의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많은 이들의 인생에 또 쿠바의 역사에 그리고 세계의 역사에서 또 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이제 책 이야기도 돌아오자.

이 책에서 체 게바라는 인간은 자본주의로 말미암아 탐욕과 소비에 물들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기적이지 않은 목표, 즉 사회에 참여하여 헌신하는 열정에 자극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보상은 이렇게 정신적으로 제시되고, 또 구현되었다. 그래서 쿠바 학생들은 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체 게바라처럼 될 거야!”라고 외친단다. 마음에 새길 정신적 지도자를 가졌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게다가 그는 현재의 쿠바 경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관광 상품이기까지 하다!

 

그는 혁명가이자 철학자였다. 쿠바의 가장 급진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경제개혁의 설계자였다. 또한 혁명운동의 연대의 상징이기도 했다. 게릴라 활동 당시 농촌 빈민과 함께 생활해 민중의 믿음을 얻을 수 있었고 적어도 은수저 출신인 그 자신이 빈곤한 농촌 현실을 대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혁명 동지들과 함께 그리 했으니 도시 지식인 출신의 혁명가들이 민중에 녹아들어가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

 

이 책은 체가 죽은 후 지속된 영웅적 낭만주의는 좀 더 현대적인 좌파 대안들이 들어서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현실적 대안을 내오기보다 체처럼 혁명적 길을 걷다가 죽음으로 이끌려진 라틴아메리카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사실 체의 위상은 그의 군사적 위업이나 게릴라 전쟁 이론을 훨씬 능가한다. 우리는 산악을 누빈 게릴라로서의 게바라를 알고 있지만 사실 그는 사회주의 사상을 재구성했다. 체의 공산주의는 단순한 경제의 재구성만이 아닌 의식현상으로써, ‘소외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었단다. “우리는 빈곤에 맞서 투쟁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소외에 맞서 투쟁한다.”

어쩌면 이것이 쿠바의 공산주의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다른 모습을 띄게 된 원인인지도 모른다. 소련식의 폭력적인 국가독재나 우상화가 횡행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인간적 공산주의의 모습 말이다.

실제로 쿠바에서는 소련에서와 같은 인권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련과 밀접했지만 쿠바 문화에는 소련적인 것보다 미국적인 요소가 더 많다(이것은 좌파이기는 하지만 미국인인 저자의 말이다). 쿠바정부는 197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간 쿠바인들을 경멸하지 않고 이민자들을 초대했으며 달러 상점에서 쇼핑, 친척들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친미 친자본주의자들을 숙청하지 않고 (재산은 몰수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물론 쫓아낸 것이니 잘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잔인하게 반대자를 죽이거나 감금해 버리는 다른 많은 극우 극좌 독재정권과는 달랐다는 것이다.

 

혁명 초기의 쿠바 정부는 혁명정부가 임금을 인상하고 기업 규제를 강화하면 자본은 외국 등 도피처를 찾을 것이라는 딜레마에 빠졌었다. 이때 쿠바 정부는 토지개혁, 배급 등의 분배 시스템을 정비함과 동시에 교육과 의료는 인적자원이 물질적 자원의 부족을 메울 수 있도록 대중동원의 수단을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마음과 의식을 움직이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물질적 부족은 정신적으로 메꿨다고 해야 할까?

특히 문맹에 대한 공격은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간주되었다. 문맹과 교육결핍은 침묵, 주변화, 억압을 의미하니까. 대중교육은 불평들을 전복하고 가난한 이들이 정치적 주체가 되도록 하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여겨 문자해득 운동을 벌였다.

또한 이미 교육받은 도시 쿠바인들을 교육과 의료에 동원하는 일은 의식화의 일환이기도 했다. 도시 학생들은 농촌에서 노동하면서 일정 시간을 보내야 했다(1960년대 농촌 노동을 위한 2주간 동원, 대학진학 예비과정인 도시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학과수업과 노동을 병행하는 농촌 기숙학교를 다녀야 했다. 모든 의과대 졸업생들에게는 1년간 농촌에서 사회서비스 노동을 하도록 했고 1961년에는 치과 진료가 추가됐다).

 

이후 쿠바는 CIA의 피델 암살 음모, 1961년 피그 만 침입,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등을 겪고 미국의 경제 봉쇄의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 원조를 아끼지 않는다.

1970년대 쿠바의 군사 활동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 다음이었으며 제 2의 초강대 권력으로 간주되었다. 2006년까지 쿠바는 거의 40만 명의 병력과 7만 원조노동자들을 해외에 파견했다. 쿠바의 목표는 혁명에 안전한 세계를 만드는 것으로, 3세계 혁명운동을 도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민간 원조 프로그램으로 1963년부터 1991년까지 약 1만 명의 의사 포함 3만 명의 의료노동자 알제리 등 해외 파견되었고 1998년에는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학생들을 위한 라틴아메리카의과대학을 설립하였다. 여기서 공부한 학생들은 장학금을 받는 대신 의료서비스가 취약한 공동체에서 5년간 복무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야말로 국경을 넘어 라틴아프리카에 과감히 연대한 것이다. 가난한 주제에 뭔 짓이냐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가난하지만 자기 나라 국민 모두가 최상의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는 나라가 쿠바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군사, 의료적 자원을 아낌없이 주변에 나눠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민중이 혁명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나라이다. 사는 방식은 다 다르겠지만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혹은 이간질해서 자국의 이득만을 취하는 국제사회의 사는 방식과 너무나 다르지 않은가? 어쩌면 쿠바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이지만, 삶의 또 다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거연령 18세 하향에 대한 찬반토론을 하던 중 16세 선거를 실시하는 나라 중에 독일과 쿠바가 있다 하니, 한 보수 성향(2가 보수면 얼마나 보수이며 진보면 얼마나 진보냐, 할지 모르지만 똘똘한 녀석들은 이맘때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의 한 모범생(소위 전교권의 학업우수학생이다)쿠바는 못 사는 나라잖아요.’라고 말한다. 쿠바는 몹시 가난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가난이 국민을 굶게 하거나 돈 없어서 공부를 못하게 하거나 돈 없어서 아파도 그냥 죽어가게 두진 않는다는 것에 대해 설명해 주고 싶었다(시간이 없어서 못했지만).

 

쿠바에는 ‘CDR’이라는 것이 있다. ‘혁명수호위원회’, 주민자치기구이다. 만약 어떤 동네 노인이 요즘 들어 거리에서 보이지 않으면 CDR이 찾아가 확인하고 보건당국 등과 긴밀히 협력하여 그를 찾아가 돌본단다. 쿠바의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은 이런 모든 기구들이 주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감시기구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바나 거리를 걸으면서 거리가 무질서하지 않고 치안이 좋은 이유도 200미터 간격으로 보이는 경찰(혹은 그에 준하는 제복 입은 통제자들)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프라도 거리에서 한 초딩이 벤치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자 경찰 총각이 매서운 눈초리로 아이를 쏘아 보면 손가락질을 하자 그 꼬마가 쑥스러운지 혀를 쏙 내밀고 얼굴이 빨개져서 후다닥 내려오는 걸 봤다.

 

아프리카는 전 세계 어딜 가나 대체로 홀대받는다. 하지만 쿠바는 좀 다르다. 물론 쿠바에서도 백인이나 뮬라토(혼혈) 돈을 더 잘 벌 수 있다고 한다. 특히 관광 사업에서는 더더욱. 그런 차별이 전혀 없지는 않은 것 같지만 적어도 쿠바의 예술은 자신의 기원 중 하나인 아프리카를 홀대하지는 않는 것 같아 보인다. ‘네그리튀드라 하여 흑인정체성, 흑인의 경험이나 문화의 가치를 평가하고 촉진할 것을 주장하는 흐름도 있었다. 일단 쿠바의 예술은 폭이 넓다. 현대미술관에 가서 정말 깜짝 놀랐다. 엄격한 사회주의 국가라 예술이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대체로 수용적이고 매우 창의적이다.

이 책에서는 쿠바의 문학에 대해 다른 나라 혁명들은 전쟁문학을 낳았지만 쿠바 혁명의 문학은 스스로 질문하는 느낌으로 창조된 문학이라고 평한다. 혁명 이후 문학 장려로 다양한 문학상 제정, 출판 장려 등 프로젝트로 <돈키호테>, <백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쿠바 곳곳에서 출판되기도 했다가 이후 (아마도 혁명에 비판적이고 리버럴한) 문예지 <월요일>이나 파디야라는 작가에 대한 탄압이 있었나 보다. 쿠바의 문학이 어떠한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별로 없어서 좀 아쉽기는 하지만 우리가 다닌 거리에서 음악이나 미술에서 혁명성을 강조하거나 선전을 중시하는 모습은 거의 보기 어려웠다. 아마추어 화가들이 아방가르드하게 그려놓은 벽화 등을 자유롭게 접했던 것이 오히려 신선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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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왜 학교는 불행한가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대한민국 교육을 말하다 전 거창고 교장 전성은 교육 3부작 시리즈 1
전성은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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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전 교장인 전성은 선생이 쓴 교육에세이이다. 거창고가 어떤 학교인가. 이 땅의 공교육에 과감한 문제제기와 더불어 대안교육이 가능함을 보여준 학교 아닌가. 게다가 성장과 경쟁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올바름을 지향하는 의지의 학생들을 기르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학교이기도 하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 교사가 훌륭하지 않고서 훌륭한 교육이 불가능함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물론 나는 후진 교사들을 딛고 훌륭한 학생이 자라날 수도 있다고 믿지만 그런 기적이나 반면교사의 힘을 믿고 학교를 방치할 수는 없을 터이다. 훌륭한 교사들이 너른 울타리로 학생들을 품을 때 학생들은 그 안에서 편안할 수도 있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날아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전성은 선생 같은 교사들이 꼭 필요하다. 그의 일갈은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고 과거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런 한계를 뛰어넘어 지금 21세기에도 귀 기울여야 할 만큼 여전히 한국의 교육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아니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에 대해 고민할 부분이 있다. 학교는 단지 지적인 학습의 전달 공간만이 아니다. 그 안에서 정신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될 이유는 역으로 일제강점기의 학교의 위상에 대한 고민에서 다시 고찰할 수 있다.

 

독립운동 당시 학교교육이 내걸었던 교육의 목적, 즉 인재 양성은 정의 자유, 공존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인간을 길러낸다는 의미였지 통치계급이나 식민통치국가를 위한 인재를 길러낸다는 뜻이 아니었다.... 일제는 1926년 사립학교규제법을 만들어 학교설립기준에 미달하는 학교는 모두 폐교해 버렸다.

 

이런 고찰이 없이 기술적으로 교육만 잘하려 든다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일 뿐이다.

 

정직은 누구에게 정직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정직, 성실과 같은 덕목은 누구에게, 또 누구를 위하는가에 따라 악이 될 수도 있고 선이 될 수도 있다.

 

독일의 평화운동과 비정부 민간운동의 기수와 주요 세력이 바로 히틀러 유겐트 교육을 받은 세대였다는 것(악이 깊은 곳에 더 큰 신의 은총이 내린다).

 

위 대목에서는 영혼 없이 죄를 짓는 모범생, 엘리트 교육의 문제점을 생각하게 된다. 국정농단의 뒷면에는 최고 엘리트들의 하수인 역할이 큰 몫을 차지했다. 그들이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면 친일을, 히틀러 치하에 살았다면 아이히만이나 괴벨스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즈음해 귀 기울일 부분이 있다. 이 책 속의 글이 최근에 쓰여 진 것이 아님에도 그의 혜안은 돋보인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학교 설립이 자유로운 신고제이지 허가제가 아니며 교과서는 당연히 국정이 아니다. 누구나 교과서를 쓸 수 있고, 그 책이 교과서로 채택되고 안 되고는 학교와 교사에게 달려 있으며 학부모의 동의도 얻어야 한다. 학부모가 최종 선택권을 갖는 셈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학교가 불평등을 조장해서는 안 됨을 말한다.

 

학교교육은 빈부의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교육은 그 어떤 상대도 악의 축이라고 가르쳐서는 안 된다.

리영희 선생을 해고한 언론사와 대학, 감옥에 보낸 검사와 판사, 간디를 감옥에 보낸 영국인 판사들은 법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 김대건 신부와 안중근 의사 같은 분들을 사형시킨 검사와 판사들은 자신들이 속한 국가의 법에 의해서 그렇게 했다. 4.19 혁명 때 데모대에게 총을 쏜 경찰관들은 상사의 명령대로 했다. 그 상사는 법에 의해 발포 명령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발포 명령을 내린 상사는 정의로운가.

 

우리가 남의 나라의 식민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도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영국수상 글래드스턴이 수단 독립을 주장하여 선거에 떨어진 연설문(옥스퍼드 대학 정문에 붙어있음)

 

다음과 같은 구절들은 교육이 그저 일정한 중간 잣대만을 세워 기준에 맞는 인간을 기계적으로 양산하는 일이 아닌,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작업임을 말하기도 하였다.

 

주지 말아야 할 도움을 주면 그건 살인이다.

 

경쟁은 불안을 불러오고 공격과 불안이 악순환 되는 사회를 낳는다.

 

현실을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상을 현실로 끌어내리면 발전할 수 없다.

 

구조가 평등하지 않으면 평등한 인간 교육이 나올 수 없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 대목을 만났다. 오로지 교사의 길 이외에 눈 돌리지 않았던 젊은 시절의 의지가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그림이나 합창, 운동 등 취미를 가지는 것은 삶을 풍부하고 자유롭게 해준다. 그러나 취미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다른 사회활동이 교사직보다 우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박정희 정권 당시 3선 개헌 반대 투쟁에 연루된 학생들 이야기와 광주항쟁 시기에 모든 언론조차 쉬쉬하던 항쟁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릴지 말지를 논의한 거창고 교무회의 장면은 감동적이다.

 

1969년 박정희 정권 때 거창고 학생들이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했을 때 교육청에서는 데모에 참가한 학생들을 퇴학시키라고 학교에 압박함. 학교는 학생들을 퇴학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림.

학생들이 규탄한 부정선거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검찰이 밝힐 일이다. 학교가 밝힐 일이 못 된다.

학생들이 차도로 행진한 행위는 도로교통법 위반에 해당한다. 도로교통법에 대한 처벌은 학교가 할 일이 아니다.

학생들이 수업을 빼먹은 데 대한 처벌은 학칙에 의해 출석부에 처리할 일이지 퇴학에 해당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국가의 법을 어겼으면 검찰과 검찰이 구속 기소하고 법원이 재판할 일이다. 학교는 교칙에 관해서만 학생을 처벌할 뿐이다.

 

광주항쟁 당시 전교직원을 모아놓고 원경선 이사장이 광주에서 보고 들은 진상을 상세히 보고한 후 교사들에게 학교를 어떻게 해야 할지 한사람씩 의견을 말하라고 함. 의견은 두 가지. 학생들에게는 때를 기다렸다가 기회를 봐서 알리자는 신중론과 언론의 거짓을 폭로하고 즉각 알려야 한다는 주장. 원경선 이사장의 결론은

 

즉각 진실을 학생들에게 알려라. 학교가 죽더라도 교육이 살아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할 때, 학교는 학생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할 책임이 있다. 검은 것은 검다 하고 흰 것은 희다고 말하는 게 교육이다.”

 

 

전성은 선생의 교육철학은 철학은 없이 교육만 하려드는 일부 공교육 교사와, 경쟁과 성취를 위해 가치를 빼먹은 교육에 매진하는 사교육 관련자(사교육 종사자들도 교육적 고뇌와 갈등이 깊으며, 그 한계 내에서도 인간다운 교육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이들이 더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바이지만)에게 제발 올바른 교육철학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간직하고 그러고 나서 학생을 만나라는 경종을 울린다.

 

아이는 부모를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태어나는 것도 아니다. 학교의 명예를 위해서 태어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부모도, 사회도, 학교도 모두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는 일은 한 아이의 인격 성장을 온 세상의 이익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다... 그런데 한 아이를 가문의 영광을 위한 존재, 학교의 명예를 빛낼 존재, 국가가 써먹을 수 있는 존재로만 생각하고, 그런 아이만 신명나도록 교육한다면 교사와 학생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가 없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든 아이들이 반역사적인 삶을 살도록 영향을 끼치는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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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천국, 쿠바를 가다 - 세계적 교육모범국 쿠바 현지 리포트
요시다 타로 지음, 위정훈 옮김 / 파피에(딱정벌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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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다 다로는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의료 천국 쿠바를 가다> 등을 쓴 쿠바 전문가이다. 우리 나라에서 쿠바에 관심있는 이치고 그의 책 한 권 읽지 않은 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전 <몰락..>을 읽고 언젠가 쿠바에 가리라 결심했고 지난 20161월에는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기는 비행기 안에서 <교육 천국 쿠바를 가다>를 읽었다. 쿠바 여행은 책 속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가난하고 따뜻한 나라였다. 불편하지만 푸근한 여행이었다. 학교라고는 멀리서 들여다 보는 수준이었고 하교하는 학생들과 몇 마디 나누어 보거나 공터에서 뛰노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게 다였으니 책의 진실을 다 확인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쿠바의 그 유명한 무상교육의 힘을, 그 기운과 아우라를 느꼈다.

 

이 책 내용 자체가 흥미로워서 요점정리한 것을 그대로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다. 기회가 된다면 책 속 내용만 가지고 강독회라고 하고 싶다. 물론, 글자로만 읽은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반론에 부딪힐 것을 잘 알므로 나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설파하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요점정리만으로도 의미있다고 생각될 만큼 쿠바의 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만은 강조하고 싶다. 20161월에 간 쿠바 여행기를 써놓은 것 중에서 교육 관련된 부분을 먼저 옮겨본다.

 

 

풀꽃의 쿠바 여행기 11. 뜨리니닷 광장의 학교 수업

 

아름다운 열대의 하늘과 나무가 어우러진 뜨리니닷. 이들의 색채감각은 정말 탁월하다. 같은 채도의, 서로 다른 선명한 색채의 회벽들이 정말 아름답다. 색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조화롭다는 게 더 중요하다. 마요르 광장에 도달해 보니 동네 초등학생들이 무용 수업을 받고 있다. 학교에 운동장이 없고 대부분은 동네 공터나 주변 놀이터, 광장, 공공 체육시설에서 수업을 하는 것같이 보인다. 누군가의 말대로 쿠바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이들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건강하고 밝고 깨끗하다. 어른들 중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이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쿠바에서 가장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은?

아바나에서는 오비스뽀 거리를 향해 걷던 중 작은 공터(그래 뵈어도 바닥에 경기장 선도 다 그려져 있었다.)에서 초등학생들이 피구 시합 하는 장면을 보았다. 일반 남학생과 선수 여학생들의 시합인 듯 보인다. 여학생들만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입은 운동복은 자기 몸매에 꼭 맞춘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것들이었다. 운동화도 새 것이다.

 

말레꼰 근처의 공원에서 방과후수업을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본 적이 있는데, 모두 하얀 발레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어느 주말 아바나 프라도 거리 한쪽 공터에서 농구를 하는 고등학생들, 자전거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중학생들을 본 적도 있다.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가 꽤 좋아 보여서 좀 놀랬다.

뜨리니닷의 마지막 날 해질 무렵에 본 중학생들은 인라인 스케이팅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멀리서 보아도 장구를 제대로 갖춰서 제대로 수업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작으나마 그 공터 하나를 오롯이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경제가 어려워도 아이들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중고등학생들은 모두 교복을 입고 있는데 여학생들 치마가 굉장히 짧다. 대체로 다리가 길고 상체가 짧아 짧은 치마가 자연스럽고 예쁘다. 설마 한국 아이들처럼 세탁소 가서 줄여 입은 것은 아니겠지? 여학생들은 대개 짙은 화장을 하고 귀걸이나 네일 아트 등으로 멋을 부리고 다닌다. 우리 나이로 중1이나 되었을까, 아직 초딩 티를 벗지 않은 어린 학생들도.

산타클라라에서 화요일이었던가, 점심시간 막 지날 무렵 중고등학생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았다. 오후 3시 정도 돼야 수업이 끝나고, 방과후수업 프로그램도 많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수업이 일찍 끝났나 싶다. 궁금해서 결국 말을 걸어 보았다. 영어로.

 

너네 중학생이니?”

~”

벌써 학교 끝난 거야?”

아니오.”

그치? 아직 안 끝난 거지? 그런데 어디 가?”

여기까지는 영어로 YES or NO 대화를 했는데 그 다음에 뭐라뭐라 스페인어로 한참 설명을 한다. 당연히 나는 못 알아들었다. 으흠~? 이런 표정으로 알홈다운미소를 지어보였을 뿐...

아이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어디론가 몰려가는 걸 보니 아마도 체험활동이나 방과후수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엄마나 아빠가 초등학생이나 유치원 아이들은 데리러 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젊은 아빠가 분홍색 인형이 그려진 여자아이 유치원 가방을 어깨에 메고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모습이 우리나라와 어쩜 그리 비슷한가 싶어 손뼉을 치고 웃은 적도 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오는 오후면 엄마아빠와 어린 아이들이 마차택시나 트럭택시 같은 데 오밀조밀 붙어 앉아 집으로 향하는 게 우리와 다르다면 다른 풍경이다.

 

동네 공터에서 축구하던 여학생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산타클라라의 변두리 마을을 돌아다닐 때 본 모습이다. 쿠바에는 아직도 우리가 자랄 때 동네마다 하나쯤 있던 공터같은 게 많이 있다. 산타클라라에도 외곽으로 나가 보니 자그마한 유기농 농장, 야채 시장 등이 있고 그 옆에 공터가 하나 있었다. 그때가 아마 오후 3시 조금 넘었을 무렵이었나 보다. 학교를 마친 중학생들이 공터에 모여 있는데 남자아이 여자아이가 어우러져 축구를 한다. 하교 시간이면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이나 pc방에 들어가 있어 학교 운동장은 운동부 학생들이, 동네 공원은 담배나 피려고 모인 소위 일찐들이 차지하고 있을 뿐 보통의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저런 비슷한 풍경 속에서 뛰어놀았던 것 같다. 아주 작은 아이들은 물웅덩이 근처에서 놀고, 공터 한 복판엔 가장 힘세고 숫자 많은 남자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또 다른 구석에는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했다.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들은 뛰어노는 대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수다를 풀었던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모여 남자아이, 여자아이 넘나들며 서로를 살펴보며, 놀며, 눈치도 보며, 알아서 성장하던 복닥복닥하던 그 공간. 바람을 가르며 볼이 빨개지도록 놀다가 정신차려보면 어둑해지던, 바람의 느낌을 배우던 그 공간. 우리 아이들의 잃어버린 공간...

 

우리 집 아이들은 그런 공터는 못 가졌어도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기라도 했다. 피아노 말고는 사교육을 거의 안 받아 시간이 많았던 우리 아들, 딸은 피아노 학원을 마치면 저희들이 다니던 학교 운동장에 가서 바람을 가르며 뛰어놀았다. 그때만 해도 학교 운동장은 넓었고 흙도 많았다. 비가 오면 도랑이 생겨 거기 쭈그리고 앉아 물장난을 했다.

교장이 바뀔 때마다 운동장의 모양이 바뀌긴 했지만 한때는 야외수업을 하는 곡선형의 정원을 가꾸기도 했고 펜스를 모두 떼어낸 자리에 조팝나무와 찔레로 담장을 만들기도 하더니... 몇 년 전에는 운동장 지하에 공용 주차장을 짓고 그 어여쁘던 야생화 담장 자리에 스포츠센터를 지었다. 물론 그 위에 학생들 체육 수업을 할 체육관을 얹었다고 하지만 반 토막이 된 학교 운동장을 보면 숨이 막힌다.

 

앞이 탁 트여 지나가다가도 6학년 교실이 멀리서나마 보여 거기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을 상상하게 하던 학교 정문에는 스포츠 센터가 가로막고 서 있어 본의 아니게 러닝머신 타는 아저씨들을 봐야한다. 이제 다 커서 대학생이 된 아들딸은 초등학교를 지나다닐 때마다 아쉬워한다. 나는

그나마 벽돌을 빻고 풀을 잘라 소꿉을 놀던 아이들은 너희가 마지막인가 보다하면서 그렇게 커온 걸 다행으로 여기자고, 씁쓸함을 달랜다.

 

솔로의 시기어린 시선으로?

오며가며 교복 입은 학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묘하게도 남학생 한 명에 여학생 여러 명이 몰려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눌아(집에서 부르는 딸 이름 한누리이 줄임말이다), 쟤들 봐~”

손을 꼭 잡고 다니는 애들을 가리키니 남자친구가 없는 딸냄은

우쒸~, 쪼끄만 것들이... 다 깨져라~!” 하고 시기한다.

엄마, 쟤네 뭐지?”

해서 보니 잘생긴 남자고등학생 하나랑 여고생 둘이랑 재잘거리며 간다.

우째 여기 애들은 저런 남자 하나에 여자 여럿, 이런 조합들이 많냐? 친구들이겠지 뭐.”

아냐, 근데 이상해. 손은 저 여자애랑 잡았잖아? 근데 이어폰은 다른 애랑 같이 꽂고 가.”

연인끼리 이어폰 하나로 음악을 같이 듣는 우리식 풍경으로 따지면 그 남고생은 양다리? 유치원생들이 어디론가 줄맞춰갈 때 보니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이 남자아기랑 여자아기가 손을 잡고 가는 걸 보면 남녀 비율이 안 맞는 것도 아닐 텐데 남학생 하나에 여학생 여럿이 몰려다니는 건 뭘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이들과는 이야기를 좀 나눠보고 싶었건만, 그러려면 스페인어를 엄청 잘해야겠지? 미국이나 캐나다를 가더라도 그곳 학생들과 영어로 자유롭게 대화도 못 나눌 텐데 스페인어라니! 십년도 넘게 공부한 영어도 영 꽝인데 스페인어로 뭔 대화를! 그런 아쉬움에 하염없이 애틋하게 바라보다 눈이 마주친 쿠바의 아이들은 모두 내게 예쁘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조는 아이 없이, 떠드는 학생 없이

한 번은 아바나 시내를 걷다가 학교 옆을 지나게 되었다. 이곳 학교들은 우리처럼 커다란 운동장을 품고 있는 큰 건물들이 아니다. 혁명 시기에 쿠바를 버리고 미국으로 도망간 부자들의 건물을 접수한 정부가 가장 좋은 건물들을 주로 학교로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운동장 없이 시내 한복판 길거리에 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도로변 바로 옆에 교실이 보인다. 좀 좁은 듯한 교실에 20여명 정도의 중학생들이 앉아 있다. 앞에는 젊은 여선생님이 온몸을 사용하여 열정적으로 뭔가를 설명한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가 학교라는 생각을 채 하지 못했다. 여기 왜 학생들이 앉아있는 걸까, 여긴 뭐하는 델까? 이러면서 창문 안을 들여다보았다가 나중에서야 거기가 학교임을 깨달았다. 자기들을 빤히 들여다보는 이국의 아줌마와 눈이 마주친 창가의 학생들 두엇이 눈을 돌려 우리와 눈인사를 나누었을 뿐, 떠드는 아이도, 자는 아이도 없이 학생들은 모두 앞에 서 있는 선생님에게 집중하고 있다.

 

<교육 천국, 쿠바를 가다>를 보면 쿠바 학생들이 수업 참여도가 매우 높다고 한다. 공부를 즐기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엄격한 학교 규율이나 낙제제도 때문일 수도 있고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배움의 중요성에 대한 의식화가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공부의 의미, 즉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은 사람’,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 같다. 호세 마르티가 독립운동을 할 때도,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킬 때도 지도자들은 민중에게 배우지 않으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호세 마르티는 교육으로 자유를강조했고 피델 역시 혁명 직후 국방비를 아껴 교육 예산에 쏟아부었다. 말하자면 온 국가와 역사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할 명분을 설득하는 셈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에 맞는 것임을 미리 각인시키는 것인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공부하는 학생들의 결기를 따라잡기는 어려운 법이다.

 

물론 여기에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 있다. 쿠바의 교육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는 본질적으로 교육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쿠바에서는 학생이 지각을 하거나 무단결석을 하면 학교와 지역이 결합하여 그의 행방과 가정에서의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고 설득을 한다니, 이것을 두고 관리가 잘 되고 있다 할지(우리나라처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고 부모에게 학대를 받아도 모르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지만), 이게 지나쳐서 국가와 공동체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아야 할지, 헷갈린다.

지각을 하면 학생 자치회 같은 데서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반성하게 만든다 하는데, 표현이 좋아 학생들끼리 스스로 규율을 잡아가는 것이지, 그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도 궁금하다.

 

쿠바는 전반적으로 엄격한 규율이 사회 전반을 지배한다. 물론 그럼에도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이 넘치는 면, 규율이 엄격하다면서도 횡행하는 사회 곳곳에 부정부패가 존재하는 점, 국민들이 국가나 경찰을 그다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분위기는 또 모순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규율과 자유, 엄격함과 다정함 사이에서

교복을 입히는 이유가 학생들이 빈부격차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란다. 우리나라에서도 교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빈부격차를 드러내지 않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지만 적어도 교복이 규율의 상징이지 자유의 상징이 아님은 분명하지 않은가.

, 학생 자치회에 대한 생각도 그렇다. 학생이 스스로 자치적 힘을 가져야 하고 그걸 학교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학교 안의 자치 조직은 어느 만큼까지 학생들 스스로 안에서 영향을 지닐 수 있을까, 또 어떤 모습이어야 같은 학생들끼리 권위를 느끼지 않으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학교에는 자치라는 것 자체가 별로 없으니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학생자치의 한계가 잘못 규정되거나 그 목적이 잘못 설정되면 과거 우리가 가졌던 학생회, 학도호국단, 애향단, 선도부 같은 형태를 학생자치라고 호도했던 기억처럼 본질이 훼손될 수도 있다.

학생을 지도하는 방식에도, 학교가 어차피 조직인 바에는 개인의 원하는 바와 공동체의 가치가 부딪칠 때 설득과 공감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꼭 친절해야 하는 겁니까? 그런 다정함은 다른 교사에게 피해를 주고 자칫하면 학생들을 방치하는 것이 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교사들 대상으로 상담연수를 하면서 아이들 마음에 숨겨진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듣기 싫어하는 선생들이 있다. 도대체 어디까지 봐줘야 하느냐, 혹은 들어주라고만 하면 언제 가르치라는 말이냐,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반면 학교 밖을 나오면 학생의 인권을 존중해주기를 요청하는 이들을 많이 만난다. 학부모 입장에서 아이들 개개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학교를 원망하는 이도 있고, 교육운동을 하는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학교 문화를 탓한다. 그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최소한의 엄격함이나 약속 지키기조차 없으면 학교에서 오히려 가장 약한 아이들이 피해를 입음을 강변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고민은 아마 학교를 퇴직하는 날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무엇이 옳음이고 무엇이 균형인가를. 누군가의 말처럼 학교가 죽어야 교육이 산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아예 학교 자체가 자본의 계산에서 만들어진 구조물이라며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어차피 학교라는 틀거리를 유지한다면, 그렇다면 어떤 학교를 만들어야 하며 어떻게 학교라는 공동체 조직은 유지하면서도 즐겁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할까라는 고민을 멈출 수 없을 것 같다.

 

 

아래는 <교육 천국 쿠바를 가다>에서 요점정리한 부분이다. 주옥같은 구절이 많음에도 추리고 추렸음을 밝히는 바이다.

 

숙제는 아주 많지만 학교는 재미있고, 모르는 부분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른 과제를 내준다고 아이들은 대답했다.” - 다구치 마사토시가 전하는 말.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학교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일정한 규모가 필요하므로 폐교나 통폐합을 진행(학생 성적과 투자 예산을 상관관계 하에 두고...미국의 경우도 그러함) 하지만 쿠바는 전국 169개 무니시피오(지자체) 가운데 47개는 산촌에 있고 그 안에 많은 학교들이 있으며 과소화가 진행되지 않도록 농촌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특별계획을 가지고 있고 소규모 학교를 더욱 충실히 유지하도록 결정함.

 

칠레는 쿠바와 달리 자유국가이므로 부모가 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이런 자유로운 권리가 사실상 무의미하다. 선택은 자유일지라도 사회경제적 자위에 따라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거의 정해져버리는 것. 저소득층 자녀가 다니는 학교일수록 수업의 질이 낮다.

 

미국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너무 가까우면 이상한 사람으로 비친다. 무슨 일이 생기면 고소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예의범절 문제도 부모나 지역사회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므로 교사는 퇴학이라는 해결책을 곧바로 사용. 하지만 쿠바에서는 청소년 범죄에 대해 가정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체크해서 부모나 심리학자와 함께 대응책을 결정. 범죄 위험이 있는 청소년은 미성년자대책위원회’(지역 각 조직위원회 학생대표, 내무부 책임자, 노조, 여성연맹, 당원 등등)에서 지역이 총동원되어 함께 지원한다.

 

학력저하를 최소화하는 교정 캠페인 : 지나친 과학적 사회주의 수용을 비판(규율이나 복장의 표준화,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수업 암기 일변도의 학습, 형식적인 지식 주입 등을 수정하려 노력함), 지나친 중앙 전담 집중관리에서 학교, 교장, 교사의 자주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수정, 지역과의 연관성 강화한다.

 

쿠바는 경제 붕괴로 에너지 40%로 살아가야 하고 소련 해체로 무역거래 85%를 잃어버린 나라에서 단 한군데의 학교도 문 닫지 않은 나라.

 

공원 한 켠에 15명 정도의 어머니와 아이들이 모여 6살짜리 가정교육 중 (커뮤니티 자원봉사) 어머니들에게 질문하고 가정교육 방법을 교육함.

 

설탕노동자 교육에 대해.

사탕수수 수출이 막히게 되어 전국가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자 연 횟수 8000회 가까이 94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회의를 열어 공장폐쇄와 구조조정에 대해 회의를 거침.

 

이에 대해 카스트로는 이렇게 연설함.

각 공장은 대학이 될 것이다. 중학교와 직업훈련학교가 있는 모든 마을이 대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통상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학이든 일반교양이든 전인적인 교육이든, 전문적 기술지식뿐만 아니라 고학, 예술, 인문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교양이 높은 국가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200210월 아바나 아르테미사에서 열린 집회에서 1만여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을 앞에 두고 한 연설).

 

쿠바의 국민적 영웅인 호세 마르티는 교육받는 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도 쿠바 교육 정신을 관통하는 정신이다.

 

학교위원회 학부모와 피오네로가 밀접하게 연계하여 숙제, 각종 규율, 등교거부 등에 대해 협의. 지각 등도 엄격하게 상급학생이 관리함(존 듀이의 아이들중심교육에 대해 가리야 다케히코 교수는 존듀이가 유복한 가정 출신의 학습의욕이 높은 아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발적으로 배우려 들지 않는 아이는 내평개쳐 버린다고 염려. 쿠바의 예의범절이 엄격한 것은 아이는 어른보다 무조건 착하다라는 미국의 낭만주의와 정반대 교육관이다).

 

레닌고교 같은 각 학교 교내에 오르가노포니코’(유기농장)에서 학생들이 농사를 짓게 함.

아바나 농업대학의 경우 중학생때부터 취미동아리(시르쿨레 데 인데레사)에서 농업을 배워온 학생을 선택함. 쿠바에서는 농업을 좋아하는 학생이 전문학교에 입학하고 더욱 심도 깊게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

 

전국 식자교육 캠페인

1960년 카스트로는 유엔총회에서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인류의 유산을 강탈당하고 있다.”라고 말함.

전국적인 식자교육운동을 벌임. 19614, 바라데로에 천명의 학생 자원봉사자 1진이 찾아와 1일주일간 철저히 훈련을 받고 농민들에게 글자를 가르침(두 권의 책, 지도서와 학습서, 그리고 한 켤레의 신발, 두 켤레의 양말, 올리브 그린 색 베레모, 두 벌의 셔츠와 바지, 견장과 모포를 짊어지고 학생들은 두메산골로 흩어져 낮에는 농민들과 더불어 일하고 밤에는 랜턴 불빛 아래서 글자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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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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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그런 선배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학교 현장에서 그런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물론 좋아할 만한 선배교사들은 더러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그런 선배가 되어야 할 나이가 되고 있는데, 나 역시 존경할 만한 선배로 불릴 자신이 없다.

 

리영희, 문익환, 신영복 같은 분들은 너무나 머나 먼 곳에서 우러러 보아야 할 분들 같았다. 그런데 황현산을 읽으면서, 마치 아주 가까이에 존경할 만한 선배가 있었구나 싶은 안도감을 느낀다. 황현산이 위대한 석학이 아니라서 우러러보이진 않고 그저 안도하는 것이냐고? 그런 건 아니다. 아마도 내가 문 공부하고 황현산을 같은 문학도라 생각해 선배라 여기는 건지는 건지도 모른다. 헤아려 보니 그분은 내 부모님 연배 정도 되는데, 주변에서 본 그 연배 어르신들은 교양이나 지적 수준, 개개인의 인격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보수적이다.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우기기만 한다. 폭넓은 사고를 하기보다 내 자식, 나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고 자본주의적 가치를 옹호하고 편법과 부도덕에 대해 관용적이다. 전형적인 한국식 자본주의 사고방식에 윤리적 일관성 따위가 없다. 그러나 황현산 선생은 다르다. 선생 같은 어른이 곁에 있었다면 조곤조곤 세상을 달리 보아야 함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실 것 같다. 신문에 난 그 분의 칼럼을 꼭 챙겨 읽으며, 읽을 때마다 그 젊은 감각에 놀란다. 이 책도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 전에 쓴 글들로 채워져 있는데도 전혀 뒤처진 느낌이 없다.

 

 

정작 비극은 그다음에 올 것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죽음도 시신도 슬픔도 전혀 없었던 것처럼...” (진응연 시인 <용산 메랄콜리아>를 인용하면서)

...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를 것이다. .... 그러고는 내일이라도 자신이 그 사람이 될까봐 저마다 몸서리치며 잠자리에 누울 것이다. 그것을 정의라고 평화라고 부르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 세상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명박 대통령이 누구보다도 잘 알 것이다.(2009)

 

그러면서 그의 글은 문학도다운 감성이 촉촉하다 나도 그의 물총새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다시 두근거림을 느껴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저마다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옳은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에 도달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처럼 법적 제재가 많아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는 사회, 일본처럼 공동체 문화가 사람들의 삶을 규제하는 사회, 프랑스처럼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규범이 사람들의 행동을 규약 하는 사회 중 무엇이 이상적일까 생각할 때가 있다. 어느 사회나 제멋대로 행동하고 싶은 사람들과, 그들만큼 무지막지하고 잔인하게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그냥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사람들이 꽤 많을 것이다. 그들을 제약하지 않고도 약자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있을까? 인간 본성이 그런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면 불완전하나마 지금까지 인류가 구축해 놓은 민주주의니 법치주의니 하는 것들이 기특하기도 하다. 정치나 법으로가 아니어도 그것이 가능한 세상을 꿈꿀 때,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말하기도 하고 종교적 경지를 논하기도 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어떤 고난이 닥쳐도 그것은 내 마음의 문제라 여기라고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절대로 불가능할지라도 조금이나마 그 이상에 닿는 어떤 사회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애쓰는 현실 자체가 가장 행복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역설일지라도. 독재와 맞서고 부조리와 맞서고 자본에 맞서는 일, 온갖 부당한 일들로 가슴 아파하는 일, 이 모두가 너무 괴로워 다시는 모태에 들고 싶지 않으나 주어진 이 생에서만큼은 크든 작든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일, 죽는 날까지 자포자기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는 일, 그런 삶의 과정이 그나마 가장 가치 있는 삶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를 써야겠다. 인사동에 나가봐야겠다. 책을 써야겠다. 집회에 나가야겠다. 그림을 그리고 조그마한 시골집을 알아봐야겠다. 어린 남자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너를 사랑한다고 말해야겠다.

 

그의 반민주에 대한 판단은 엄격하다.

그러나 현실의 조건이 이러저러하니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까지만 실현하자는 식으로 선을 긋는 것은 현실의 압제를 인정하자는 것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배반이다.....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자유민주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학교폭력에 대해 쓴 부분이 있어 솔깃했다. 중고등학교 현장을 경험하지 않았을 텐데, 그런 학자나 대학 강단에 있는 이들이 흔히 그러듯 지나치게 포괄적인 이야기만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의 다음과 같은 글은 오히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할 때 읽어 주고 싶기까지 했다. 나 역시 학교폭력에 대한 토론수업이나 훈화를 할 때 폭력에 대한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사람은 또 다른 각도에서도 누군가에게 혐오를 보인다. 어디서는 점잖고 특정인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 우리 아이가 집에서는 참 착한데 학교에서 친구를 때렸네요, 라는 학부모 말은 틀린 것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을 폭력 일반에 대한 관심으로 넓혀야 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많은 폭력 속에 살고 있고 그 폭력에 의지하여 살기까지 한다... 저 높은 크레인 위에 한 인간을 1년이 다 되도록 세워둔 것이나. 그 일에 항의하는 사람을 감옥에 가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너는 앞자리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다. 의심스러운 것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도 폭력이며, 세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폭력이다.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폭력이 폭력인 것을 깨닫고, 깨닫게 하는 것이 학료 폭력에 대한 지속적인 처방이다.

 

그의 문학관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책에는 베껴두고 싶은 아름다운 문장이 참 많았다. 자신이 문학의 길을 가게 했던, 어린 시절 섬마을의 풍취를 묘사한 글은 고등학교 시절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읽고 또 읽었던 감성을 떠오르게 할 정도다. 그는 시인을 자신에게 특별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곧 시를 쓸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 있다고 믿었기에 불행해진 사람들은 우리 시대에도 많다. 라고 설명하면서 시마 詩魔 라는 말을 썼다. 우리 학교에도 동료교사 중에 시인이 한 분 있는데 정말 시마에 사로잡히지 않았다면 그토록 멋지고 아프고 아름다운 시의 세계에서 우리는 왜 헤어나오지 못하겠는가. 그를 보면서도 느끼고, 나 역시 (시를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시적 감수성을 토대로 공감하는 바이다.

 

그의 문학론은 이렇게 이어진다. 문학이 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해준 황현산 님께 사랑과 존경을 전한다.

 

어떤 며느리가 아궁이에 불을 피울 때마다 시어머니를 풍자하는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 이것을 시어머니에게 고자질하자 시어머니가 나도 그 노래 들었다. 노래로는 무슨 소린들 못하겠으며, 노래가 그렇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냐.”... 이것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 뒤란에서 보았던 뱀, 미술숙제를 다 끝내지 못하고 자던 밤 어둠 속에 떨어지던 싸락눈 소리, 어느 골목에서 맡았던 음식 냄새, 제사상을 밝히던 은밀한 촛불과 얼룩진 병풍, 쥐구멍에서 꺼낸 반쪽짜리 곶감, 나는 이런 것들을 애써 외워둔 적이 없지만 그 기억들은 내 몸 어딘가에 새겨져 잇다가 어떤 계기를 얻어 마치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처럼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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