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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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대학 국제어학원에서 영어회화 수업을 들을 때였다. 미국인 교수가 주말 직전 수업에 각자에게 과제를 내주었다. 나에게는 한국드라마(기초회화반이었으므로)를 보고 와서 이야기를 하라고 했는데 내 옆의 스물한 살짜리 대학생에게는 명동에 가서 남자를 만나라고 했다. 남자친구가 없다는 그녀에게 교수가 전한 남친 만드는 비법은 이거였다. 마음에 드는, 아직 사귀지는 않는 그 남자와 식사를 같이 하라(거기까진 할 수 있지?), 그리고 대화를 나누라, 그러면 넌 연애를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황당한 비법인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와 그 남자에 대해말하라. 세상 어떤 남자도 여자도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려는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다들 자기 이야기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당신은 어떠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당신에 대해 묻고 관심 갖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이 그를 사랑하지 않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 간단한 연애의 비법은 사실 모든 관계에서 다 통한다.

 

정혜신은 누군가를 만나면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라고 묻는다고 한다. 이 단순한 말은 마법의 언어다. 국제어학원의 미국인 교수가 말해준 연애의 비법이자 공감의 첫 마디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대개 다들 자기말만 하려든다. 그런 세상에서 누군가 당신은 어때?’라고 물어주었을 때, 갑자기 스포트라이트가 자기 자신에게 비출 때 느끼는 기쁘고 아픈 당혹감을 정혜신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들과 일주일 만에 단둘이 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아이가 갑자기 엄만 요즘 뭐가 재미있으셔?” 라고 질문을 던진다. , 난 요즘 뭐가 재미있지? 질문을 받았으므로 대답을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구나, 나 자신도 나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았구나... 내 아들은 그냥 자기 본성대로, 늘 살아왔던 대로 그렇게, 자기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무심한 듯 던진 그 질문을 받는 순간 나는 아,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 우리 아들이 이 엄마한테 관심이 있구나, 이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이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들에게 한수 배웠다. 정혜신의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와 내 아들의 요즘 엄마가 뭐가 재미있으셔?”, 그리고 미국인 교수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물어라.”는 모두 맥락이 통하는 공감의 언어 물꼬 트기들이다. 참 쉬운 첫마디, 그런데 우리가 참 못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태도의 문제인 그런 말들이다.

 

정혜신의 책에서 가장 공감되는 대목은 존재가 소멸된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증명하는 방법이 폭력이라는 말이었다. 맞다. 우리는 보통 폭력을 저지른 사람을 비난하고 미워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를 벌할 땐 벌하더라도 그 폭력의 근원이 무언지 살필 필요는 있다. 특히 우리처럼 아이를 키우고 가르쳐야 하는 부모와 교사들은 더더욱. 아직 성장이 끝나지 않은 자녀와 학생들의 폭력적 행동은 대개가 어른들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저게 누굴 닮아 저럴까?’, ‘어디서 저런 이상한 녀석이 우리 학교에 들어왔지?’ 라고 욕하고 밀쳐내려 하기 전에 내 모습에서 자식의 폭력성을 돌아보고 그 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친구들에게 표출되는 폭력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정혜신은 또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하는데 아들러가 아이들이 부모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용하는 다양한 방법을 쓴다고 한 것처럼 아무 것도 자신을 드러내거나 인정받을 방법을 갖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 인정받을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한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자존감이 높고 자기 내면에 가진 것이 많은 이들은 폭력이나 폭언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정혜신은 충조평판을 하지 말라고 한다. 외워두면 좋을 것 같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줄임말이다. 아들러도 하지 말아야 할 많은 말들을 제시했다. 위 네 가지 말고도 조롱과 칭찬마저도 삼가라 했다. 칭찬조차도 수직적 권력관계에서 나온 말이라고. 물론 아들러의 주장에 대해서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리고 교사의 입장에서는 때로 충고와 조언이 필요할 때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수평적 인간관계에서는 충조평판의 폐해를 분명히 안다. 나 역시 남편에 대한 나의 언어들, 내 어머니에게 하는 말들을 돌아보니 대개가 저기 어딘가에 걸렸던 것 같다.

 

정혜신은 마음과 존재에 대한 공감이 곧 상대방이 한 행동에 대한 공감은 아니란 점을 분명히 말했다. 많은 교사들이 상담 연수할 때 걱정하는 부분 중에 공감해 주면 아이들이 기어올라요. 학생들은 공감하는 교사에게 막 행동해도 되는 줄 알지 않을까요?’ 한다. 교사나 부모는 아이들과 다정하게 공감하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물론 그렇게 아이 행동을 이해하면 야단치거나 벌을 주기 어렵긴 하다) 아이들이 잘못한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다정함과 단호함의 경계를 어떻게 짓느냐고 울상을 지을 게 아니다. 아이들도 다정하나 분명하고 엄격할 때, 즉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진심을 담아 네가 한 행동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지 함께 생각해보자라고 말하는 부모나 교사 앞에서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혜신이 나의 오랜 질문에 답한 것이 있다. ‘토 달지 않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은 공감이 아닌 감정 노동일 뿐이라고. 기질적으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힘들어 하는 내가 어쩌다 상담을 공부했을까 싶을 때가 많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어서 많이 힘들다. 내 어머니와의 대화에서는 지칠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대해 정혜신은 감정노동과 공감은 다르다고 말해준다. 공감해주기 싫다, 라고 마음속에서 도리질 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던 많은 상담교사, 심리치료사, 혹은 맏딸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에게 아니,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준다.

 

정혜신은 또 정서적 공감과 정서적 호들갑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혹 사람을 잘 사귀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좋아지지 않을 때 그게 이상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그의 다가옴은 늘 과장되어 있었다. 분명 나에 대해 말하고 묻는데 그게 기분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공감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감은 반드시 진심과 동반되어야 한다. 거짓 공감은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곧 피곤해진다. 물론, 내가 만나는 학생들도 당연히 그걸 안다.

 

나는 상담업무를 맡은 교사의 입장에서 이 책을 읽었지만 아무 상관없는 일반인에게도 이 책은 따뜻하게 읽힐 것 같다. 자기의 말을 돌아보고 관계를 돌아보게 해준다. 자기성찰만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고 잘 견뎌왔는지를 스스로 묻고 스스로 위안하게 해주는 힘도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정혜신이 앞에서 그렇게 내 스스로 묻고 대답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럼 정혜신은? 그에게는 남편이 그런 역할을 한단다.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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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
에릭 드 케르멜 지음, 강현주 옮김 / 뜨인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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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석 같은 책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부분이 없다. 책 속 서술자가 나였으면, 싶었다.

나는 지금 중학교에서 선머슴 같은 남자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문학을 가르친다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저 강아지 같은 소년들과 윤동주를 말하고 자기 시를 쓸 때의 진지함을 말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며 잘 살고 있다. 이 충분한 교감이 상처받지 않고, 가장 아쉬울 때 퇴직을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퇴직하면 시골집에 작은 어린이 도서관을 갖는 게 꿈이다. 으리으리하지 않은, 그냥 시골집에서 그냥 막 자라는 풀꽃들로 마당을 삼고 가끔씩 찾아오는 어린 손님들을 위해 책을 준비하는 그런 도서관 말이다.

나탈리는 물론 나보다 더 에너지 넘치는 서점 주인이다. 아름다운 남프랑스, 햇살이 좋은 위제라는 작은 시골 마을 에르브 광장에 서점을 열었다. 부럽다. 광장이 내다보이는 서점도, 그녀의 집 -‘우리 정원은 몇 그루의 올리브나무, 세 그루의 커다란 편백나무, 아가판서스 꽃과 라벤더 꽃이 이는 토스카나 분위기의 잘 정돈된 마당에 가까웠다- . 유럽은 유럽의 것. 나는 나만의 것으로 마당도, 책이 많은 책장도, 책으로 만나는 사람들도, 햇살도 갖고 싶은 것이다.

 

나탈리는 서점에 온 손님들에게 책을 권한다. 기꺼이 대화를 나눈다. 그가 단지 서점 운영자이고 장사꾼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은 나탈리는 책으로 맺어진 형제라 칭한다. 우리는 모두 자기가 가진 재능을 사람들과 나눌 의무가 있다. 책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책을 나누는 것도 일종의 사회적 복무일 것이다. 나탈리는 그것을 제대로 해낸다. 때로는 엄마처럼, 때로는 선생처럼, 가끔은 친구처럼, 몰래 애인처럼 말이다. 글을 모르는 이국의 젊은 새댁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여행자에게 여행지에 대한 책을 권하기도 한다.

 

고리타분한 독서에 딸을 가두는 엄마와 거기서 탈출하려는 딸 끌로에 이야기는 인상 깊다. 나탈리는 몇몇 학교나 가정에서 문학은 19세기에 멈춰 있다고 말하면서 어린 학생들이 감성을 키우려면 고전문학에서 시작하기보다는 자신들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작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이다.’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그렇게 나탈리가 권하는 책으로 자기만의 독서를 시작한 소녀의 날갯짓으로 그 가족으로 불통에 기안한 가족의 아픔마저 치유하게 된다.

물론 현실의 이야기들은 이렇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나 역시 교사로서 상처받은 아이와 그 상처의 근원이 된 가족, 아이의 부모와의 대화를 시도하곤 했지만 소설과 달리 나의 개입은 그렇게 드라마틱하거나 해피엔딩적이지도 않다. 내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문제는 밖에서의 관심이나 돌봄으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만큼 뿌리가 깊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서나마 이런 행복한 결말들을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그래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은 이후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을 해본다.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고전소설 같이 단순한, 그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단순명쾌한 문제해결이 현실을 극복하게 할 리야 없지만 잠시라도 그런 기쁨을 맛보고, 맛보게 하고 싶다고.

끌로에는 자신이 책에서 읽은 여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그녀처럼 되고 싶어요. 아주 열정적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매 순간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인물이에요.

 

나에게도 소년들을 독서의 길로 이끈 경험이 많다. 국어시간을 통해서도 그러하고 담임으로서도 그러하고 두레일기를 쓰거나 학급문고를 운영하거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서도 그렇다. 아이들에게 책 선물을 자주 하는 편인데 이보다 좋은 생활지도가 없다. 아무리 거칠게 행동하는 아이도 아무리 상처가 깊은 아이도, 자기에게 책을 선물로 주는 어른 앞에서는 자기를 돌아볼 수밖에 없다. 대개의 아이들이 제대로 관심을 받지 못해 일탈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한다. 아무 책이라도 좋겠지만 자기 이야기를 반영한 책, 자기가 정말 읽고 싶었던 책, 읽고 나서 독서나 삶의 또 다른 빛을 발견하게 한 책을 건네주는 어른이 있다면 그 아이는 살아갈 수 있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폭력으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아이가 있었다. 녀석은 학폭위가 열려 징계 명령을 받은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린 것처럼 보였다. 급식시간에 치마를 입고 온 내 뒤에서 아이스케키동작을 하는 것을 유리창으로 보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도, 친구를 때렸다고 해도, 껄렁대며 무리들을 이끌고 다녀도 다 어린아이라 그렇지, 하고 용서가 되었던 녀석이 몹시도 싫어졌다. 도대체 자기에게 늘 다정하고 너그러웠던 교사에게, 그것도 나이가 50이 넘은 선생에게 그런 장난을 왜 하는 걸까? 이맘때 남자아이들은 위악을 떨면서 무리에서의 서열을 정비하는데 녀석은 아마도 나 이렇게 교사도 능멸할 수 있는 놈이야, 내가 두목 맞지?’ 이런 걸 아이들에게 과시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춘기 때 허세 떠는 남자아이들의 심리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내 감정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복도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늘 다정하게 인사를 주고받지만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 아이에겐 건성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 담임에게 그러더란다. “안정선 선생님 요즘 무슨 일 있으세요? 늘 다정하셨는데 요즘은 안 그러셔서요.” 웃고 말았다. 아이들이 미워질 때도 많지만 열 번에 열 번 용서하고 보듬지 않으면 선생일 수 있으랴 싶다. 그래서 그녀석이 사회봉사를 가기로 한 전날 나는 아이를 불렀다. 그리고, 내 아들이 군대에 가 있을 때 내가 보내준 시집, ‘검열필도장이 찍힌 시집 <딸아 외로울 땐 시를 읽으렴>을 건넸다.

 

이 책은 내가 제자들에게 많이 선물하는 책이야. 하지만 이 도장, 이거 보이지? 이 책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어. 샘 아들의 군대 가 있을 때 내가 보내 준 책, 제대하면서 가지고 나온 거거든. 이 책 너 줄게. 네가 올해 겪은 일들, 너에게도 고통스러웠겠지만 누군가를 때리고 괴롭히는 일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더 나쁜 일을 겪기 전에 배우고 성찰한 계기로 삼는다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어. 사회봉사 가서 생각 많이 하길 바란다. 선생님이 이 책을 주는 마음도 헤아려 보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라고 말하며.

 

그래서 아이가 천사가 되었느냐고? 현실에 그런 드라마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니까. 그래도 그 아이는 복도에서 나를 만나면 다가와 손을 잡으면서 다정하게 인사를 한다. 사회봉사를 다녀와서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선생님.”이라고 의젓하게 말하기도 했다. 아이들의 행동은 조금씩 좋아지지 않을까? 훗날 어른이 되면 중학교 때의 자기가 조금은 부끄럽게 여겨지지 않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서서히, 조금씩 성장한다는 걸 잘 아니까.

 

나탈리는 문학과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작은 사다리가 되어주는 이런 문학을 좋아한다. 그 흔적을 통해서 또 다른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생각들

 

나는 책들에 둘러싸인 채 혼자가 되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럴 때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탈리는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하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서점을 운영하고 도서관을 관리하고 문학교사가 되고 소설가가 되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꼭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교사가 된 사람, 문학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 생계의 수단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 않더라도, 즉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더라도 역량이 부족한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나탈리는 진심으로문학과 책을 사랑할 뿐 아니라 어떤 사람의 상황을 파악하는 직관력도 뛰어나고 그 사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다만, 딸을 대하는 나탈리의 태도는 좀 불안하다. 심리적으로 딸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보이고, 아마도 그로 인해 딸과 불화가 생겼겠지 싶은 태도들이 있다. 타인에게는 그토록 너그럽고 객관적인 나탈리가 오직 딸에게만은 작은 일에도 금방 상처받고 화를 내는 이유가 무얼까. 기질적으로 나탈리는 안정적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이고 딸은 예술적이고 활동적인 사람인 듯 보이는데, 딸의 에너지를 품고 이해하기엔 나탈리는 조금 소심한 엄마인 건지도 모르겠다.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내가 딸을 대하는 태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대개는 엄마들이 딸에게 자기 자아의 희망을 투사하기 때문이다.

젊은 딸은 언제나 넓은 세상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하고 늙은 엄마는 딸이 별일 없이 살기를 바란다. 클로에에게 엄마의 세상에서 벗어나 자기가 자기 세계를 개척할 때 좀더 용기를 내라고 말해주던 나탈리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딸에게 들려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딸이 자유로워져야 엄마도 자유로워진다. 영원한 숙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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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2018-12-31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을 잘 쓰는 분들이야 넷공간에 넘쳐나지만,
그분들 중에 겸손함이 묻어나는 분은 흔치 않죠.
그래서 님 글이 좋네요.

풀꽃선생 2019-01-21 22:58   좋아요 0 | URL
어떤 칭찬보다도 마음이 꽉 차는 격려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은총맘 2019-06-1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글을 읽으며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정말 훌륭한 스승님이시네요.. 늘 건강하시길

풀꽃선생 2019-09-30 13: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끄럽습니다. 날이 갈수록 교사로서 부끄럽습니다. 어린교사였을 때는 미숙해서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노련해질수록 아이들이 보내는 신호에 둔감해지는 건 아닌지 또 걱정이거든요...
 
픽션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5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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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누군가는 주석 읽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사실 주석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역자가 주석을 달면서 고생을 했겠다 싶다. 누군가는 처음 보르헤스의 글을 읽으면서 팩트에 해당하는 부분을 검증하느라 애를 먹었을 것인데 그 애먹음이 거의 연구자의 고생에 맞먹을 것이다.

 

나는 합리적인 이해에 연연하지 않고 독서의 즐거움을 누렸다. 잘 모르는 (허구의 공간이 뒤섞인) 세계의 등장, 시공을 초월한 듯한 신비로운 인물들, 팩트와 픽션이 섞인 이야기들이 더 신비롭게 느껴졌고 보르헤스 특유의 문체(와 번역체까지 뒤엉켜) 더 아름다웠다고나 할까.

 

여기에는 놀라운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동하지만 그 스케일은 때로 시공을 뛰어넘는다. 남미와 유럽, 아일랜드와 중국을 넘나들고 사후세계와 우주를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바벨의 도서관>을 읽으면서 우주에서 울리는 오케스트라 연주는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음악을 느끼는 나라는 사람 역시 실제로는 겪을 수 없는 과거와 온 우주를 감각으로, 초감각으로 느낀다는 것인데...

 

보르헤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페이크 기법(마치 정말 있었던 사건인 양, 정말 있었던 작품인 양, 사람인 양, 극사실적 요소들을 부여할 뿐 아니라 실제의 사실과 적절히 섞는다)을 그저 치기어린 재치로 넘길 수 없는 것은 보르헤스의 박학다식함과 아름답고 장중한 문체 덕이다. 나에게는 사실상 이 작품이 첫 보르헤스이다. 그 전에 <말하는 보르헤스>라는 강연록을 읽었지만(그 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보르헤스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소설로는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왜 사람들이 보르헤스를 자꾸 언급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문학작품들이 있다. 어딘가 닮은 듯하지만 어느 것도 닮지 않은 세상 많은 이야기들. 그런 신비롭고 아름답고 치열하고 정교한 많은 이야기들 중에 보르헤스는 가장 복잡하고 신비롭다

 

얼굴에 반달모양의 칼자국 흉터를 가진 아일랜드의 사내 이야기는 읽으며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았다. 일단 자신을 타자화하는 시점(이런 시도가 다른 작가에게 없는 것은 아니나), 3차원적인 접근이 5차원으로 바뀌는 기법이다. (그래서 제일 마지막 문단에 설명을 덧붙인 것이 사족같이 느껴진다. 독자들은 이미 마지막 문장에서 다 알아챘을 것인데)

 

보르헤스를 잘 읽으려면 남미문화와 서구 문학에 대한 많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애초에 나는 그런 데 연연하지 않고 그냥 그 분위기만으로도 독서를 즐겼다. 때에 따라서는 주석을 따르고 합리성에 의문을 갖고 지적으로 하나씩 짚어나가면서, 때에 따라서는(대개의 경우가 여기 해당된다) 그냥 이해가 되거나 말거나 그 몽환적인 분위기 자체를 즐기면서, 그렇게. 책이 1/3쯤 남았을 때 나는 덜컥 몸살이 났다. 아주 오랜만에 이틀 내내 침대에 누워있었고 돌아눕는 것조차 힘들게 앓았다. 아프니까 당연히 집중해서 독서를 하기 힘들었다. 그저 몸살일 뿐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몸이 아프면 별 생각이 다 난다. 보르헤스의 작품 속에서 그러하듯이 죽음과 삶의 경계, 시간과 삶의 경계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독서를 했다. 뒤척거리면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보다가 <픽션들>을 보다가, 두 책이 섞이면서 까무룩 잠이 들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의 시선이 아닌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나 보다, 라고. 신이 세상을 굽어보듯, 우주적 관점으로, 심지어 시공을 넘나드는 그런 시선으로.. 그런 이들을 천재라고 부를 터인데, 그런 천재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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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려나 서점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김영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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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즐겨 읽는 책의 분야가 다르다. 우리의 공통분모인 교육관련 서적과 시집은 똑같은 책이 두 권 생기는 일도 있지만 내가 산 책을 그는 읽지 않고 그가 산 책은 내가 읽지 않는, 그래서 효율성 떨어지게 책장만 많이 차지하곤 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점점 많아지는 책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요즘은 열심히 책장 덜어내기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꼭 구입하고 보관하려 애쓰는 책들이 있다. 그림 그리기 책, 자수나 뜨개질 책, 집 사진이 들어가 있는 책, 강아지 그림이나 사진이 있는 책... 언젠가 자수를 놓고 무민 인형을 만들고 시골집을 가꾸고 강아지를 키우리라. 여행을 가서 예쁜 집들을 그리리라. 당장은 아니어도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림 솜씨가 늘 것만 같고 자수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행복해진다.

요시타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도 오래오래 가지고 있고 싶어서 샀다. 그림도, 책 이야기도, 상상력도, 그 발랄함도 모두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부터 해보련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나 비슷한 생각을 해보았을 것만 같은데, 어느 날 밤 잠자리에서 책을 읽다말고 남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다.

병이 들거나 나이가 들어서 죽을 날이 가까워온다고 생각하면 다 못 읽은 책들이 아까워서 죽기 싫을 것 같아.”

천국이 있으면 아마도 도서관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보르헤스 말에 격하게 공감하는 나에게 남편은 만약 어느 곳에 도서관과 식당밖에 없어. 딱 한 곳만 선택해야 하면 도서관 갈 거야?” 당연하지! 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밥을 굶으면 죽을 텐데? 하고 남편은 시큰둥하게 대답한다.

죽어가면서 앞으로도 재미난 책이 많이 나올 텐데, 아직 다 못 읽은 고전도 많은데, 아쉽군.’ 이렇게 생각할 나 같은 사람이라면 요시타케 신스케 무덤 속 책장과 같은 방식의 추모방식이 있다면 그나마 마음을 놓고 눈을 감을지도 모르겠다.

방법은 이렇다.

 

1년에 한 번 찾아가는 무덤에는 그가 생전 아끼던 책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추모하러 간 사람은 그 중 한 권을 골라 가방에 넣고 천국에서 그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그 해의 추천도서한 권을 가져와 무덤 책장에 꽂아둔다, 문을 닫고 기도하고, ‘가방 안에 든 책을 읽을 생각에 설레며 집으로 간다...

 

죽기 전 자기 무덤책장에 놓기로 하여 고르고 고른 책들이라면 분명 엄청 아끼는 책들일 것이다. 그렇게 엄선되어 무덤책장에 놓은 책을 한 권씩 살펴보는 추모하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그와 책 취향이 비슷하지 않더라도 이 분은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었을까? 죽기 전에 이 책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책을 살피지 않을까.

제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책을 자주 사는데 건네주기 전에 미리, 다시 한 번 그 책을 흝어 보곤 한다. 나에게 사무치던 <데미안>이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소년에게는 어떻게 읽힐지, 사랑에 빠진 아이에게 정호승의 <연인>은 어떻게 읽힐지, 그 사람의 마음으로 책을 다시 읽는 것이다. 내 아이에게 책을 건넬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춘기를 관통하는 딸과 아들에게 책을 권할 때마다 그 아이가 된 마음으로 책을 읽으면 책은 전혀 다르게 읽히곤 했다.

그러니 죽은 이를 추모하며 책을 읽으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이겠지. 살아 있을 때, 온 몸으로 삶을 누릴 때, 아이를 막 낳았을 때, 30대였을 때, 좌절했을 때, 직장을 은퇴했을 때, 누군가를 사랑했을 때마다 읽었던 책들을 의 마음으로 읽는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는 추모가 되겠지.

 

무엇보다 좋았던 장면은 올해의 신간 중 한 권을 그 책 대신 놓아두고 온다는 것이다. 누군가 그 사람을 기억하는 한 그는 영원히 천국에서도 신간을 읽을 수 있겠다. 물론 유명한 사람이면 그 기간이 더욱 길어질 것이고(노회찬 의원이나 황현산 선생 같은 이의 무덤책장에서 책을 얻고 또 하나의 책을 놓아둘 수 있다면 참 오래오래 좋을 것만 같다.), 우리처럼 평범하여 한두 세대면 잊혀질 사람이라도 적어도 수십 년은 신간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있으려나 서점> 은 참 귀여운 책이다. 책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 속을 다 들여다본다.

사랑스러운 도서관 3에 보면 도서관을 “‘도서관에 갔다 왔어누군가에게 그렇게 은근슬쩍 자랑하고 싶은 사람이 가는 곳이라고 명한다. 그래, 서점이나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마음이 좀 있다. 물론 누구나 자기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그것, 그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야구장에 다녀오고 연주회에 다녀오고 산을 오르고 나서 나 어디 갔다 왔어, 라고 말하는 마음도 비슷하겠지. 그래도 하여간 서점이나 도서관을 즐겨 다녀오는 사람이라면 자랑하지 않는 듯(?)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 책 좋아하는 사람이야, 이게 자랑스럽다는 말이다.

 

서점이란 어떤 곳? 이라는 꼭지에도 장차 탄생할 명작을 위해 투자하는 곳’, ‘책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책한테 은혜를 갚기 위해 계속 책에 매달리는 곳이라는, 공감할 만한 문구가 있다. 서점에 온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장차 탄생할 명작을 위해 투자하는 곳이란다. ‘장차 탄생할 명작’, 나 역시 학교에서 어린 소년들을 볼 때마다 늘 하는 생각이다. 복도에서 먼지 나게 뛰는 저 소년들이 곧 당당한 청년이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가.

그러니 서점에 근무하거나 서점에 자주 가는 이들이라면 거기에서 앙증맞은 손으로 책을 집어드는 아이들을 보면 그들이 훗날의 명작(비유적으로든 글자 그대로이든 말이다. 책 좋아하던 그 어린아이들 중에 작가가 되고 시인이 되는 아이들이 나올 터이니)으로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서점에는 책을 읽다가 책을 쓴 사람, 책을 읽다가 책을 만든 사람, 책을 읽다가 서점에 근무하게 된 사람... 들이 복닥거릴 것이다. 우리 모두는 책에게 은혜를 입었고 책 덕분에 더 잘 살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더 좋은 책을 쓰고 만들고 팔고 나눔으로써 책의 은혜는 순환된다.

 

베스트셀러가 되길 바랐던 책이라는 마지막 꼭지도 재미있었다. 나도 두어 권의 책을 내면서, 처음에는 무언가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점점 우연에 기대어라도 내 책이 더 많은 이에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저자들의 마음을 이 책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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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앨리스와 푸의 여행 - 고서점에서 만난 동화들
곽한영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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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쿠바 여행 중 들렀던 벤쿠버의 뒷골목을 잠시 떠올렸다. 낯선 거리의 고서점을 뒤지고 있었던 저자에게 감정을 이입해 본다. 마치 내가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설레 보고, 마치 내가 원하던 책을 발견한 것처럼 기뻐해 본다.

곽한영 교수는 영어가 익숙해서 다른 언어로 된 책(예를 들면 케스트너의 책)을 사기는 꺼려졌다고 하지만 영어도 낯선 언어인 내 입장에서는 원서를 비싼 값 치르고라도 사려 했다는 그가 하여간 부러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서점의 추억들이 떠올라서. 열 살 때까지 서점 뒷방에서 삼남매가 뒹굴거리며 컸다. 12시에 문 닫을 때까지 서점은 우리 안방이고 놀이터이기도 했다. 언젠가 돌돌 돌아가는 <딱따구리 문고><동서문고> 서가가 생겼을 땐 그걸 돌리면서 동생들이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매달 25일이면 잡지코너 구석에서 <소년동아>, <어깨동무>, <새소년>을 봤는데 6학년이 되어서는 엄마 몰래 <주부생활> 같은 것도 보고 안 팔리고 남은 잡지를 반품할 땐 부록을 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이 책 속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모두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읽은 책들이다. 겨울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서점 닫을 때까지 구석에서 읽던 책들. 내가 읽은 책 중에는 여기엔 등장하지 않지만 <소공녀>, <소공자>도 있었고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것도 있었다. 나중에 커서는 프랑스 문학과 러시아 문학이 더 좋아졌지만 가만 돌아보니 어린 시절에는 영미 문화권 작품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 추억이 새록새록 좋다가, 가만 생각해 보니 이것은 일종의 문화적 식민주의 아닌가 싶어 섬뜩해지기도 한다. 유럽 혹은 북미 어딘가 너른 마당의 목가적인 집들, 거기서 뛰노는 허클베리 핀이나 빨간머리 앤, 혹은 작은 아씨들에 대한 연민, 공감, 친근감 같은 것들이 내 핏톨에 흐르고 있는 것일까.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어쩌면 나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일제 잔재 문화를 친근하게 어린시절 문화로 습득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린 시절 동생들과 재미있게 보았던 만화영화가 죄다 일본 것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약소국, 문화적 약소국의 반식민상태는 이지적으로 극복하려 하지만 쉽지 않은 걸까?

문학을 전공했고 어지간한 문학작품을 다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한베평화재단에서 베트남 참회여행을 다녀오느라 베트남 문학작품이며 동화들을 읽고 있는 남편을 옆에서 보면서도 베트남 문학은 읽고 싶지 않았다. 이런 나의 태도는 도대체 뭘까. 내 의식 속 깊은 곳에 문화적 식민주의와 사대주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우리 학교 사서 선생님은 다른 말씀을 하신다. 동남아시아나 우리나라 문학은 역사적인 경험 탓에 아프고 참혹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들을 외면하게 된 것은 아니겠는가 하고. 그 말씀에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 죄책감을 더는 느낌이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주로 서구의 문학에 노출되어 저도 모르게 그것을 친숙하게 느끼는 것은 독자의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독서를 통해 추억을 소환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이제 교육자로서 우리는 이런 문화적 불균형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있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누린 행복도 감사하지만 아이들에게 어떤 추억의 독서를 안겨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과제를 품게 된 일도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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