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5
전상국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가 갖고 있는 허상이 있(). 과거형일 수도 있고 현재형일 수도 있어서 ()이라 써 보았다. 지금은 학교나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개탄하지만 (어쩌면 진정한 좋은 학교와 교사의 모습을 갖추어 가기 위한 진통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한때 학교는 학생에게 무소불위의 존재였던 때가 있었다. <우상의 눈물>은 바로 옆 경희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도 근무했던 전상국 선생의 작품으로,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우리 학생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바로 저런 시대에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기표라는 아이만큼은 아니지만 학교생활을 위협하는 주먹깨나 쓰는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해 할까. 이 소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더불어 오랜 세월이 흘러도 양상만 달라질 뿐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 학교폭력의 민낯을 보게 해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학교폭력에 대해 성찰하거나 고백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영웅...>은 정치와 역사와 시대의 우화로 쓰여진 훌륭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인을 상징한 저항자 한병태를 비겁하고 지질하게 그리는 잘못를 범해 결국 그놈이나 그놈이나 다 나쁜 놈이라는 회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상의 눈물>은 그보다 더 치밀하게 폭력의 실체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어려운 말로 좀 더 실존적이라고나 할까.

 

학교폭력을 다루는 오래된 소설들

처음엔 아이들을 함부로 때리고 돌아가는 기표가 나쁜 놈 같았다. 하지만 정의의 사도처럼 보이는 모범생 반장 형우가 기표를 능멸하는 장면에서는 누가 진정한 나쁜 놈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은 형우를 이용해 기표를 불쌍하기 짝이 없는 아이로 만들어버린 담임선생이야 말로 선을 가장한 악임을 알게 한다는 면에서 세상사가 그렇게 단순한 선-악 구도로 돌아가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짧은 소설인데 읽고 나면 나는 세 꼭지점 중 어디쯤에 놓인 걸까,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한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토론을 부른다. 좀 오래 전, 2013년 무렵인가, 경희중학교 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짧은 까까머리 두발을 하던 시절에 이 소설을 읽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을 읽고 당시에 나온 드라마 <2013 학교>의 한 장면을 보았다.

 

1960년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우상의 눈물>기표’, 그리고 21세기 드라마 <학교>(지금은 투병 중인 김우빈이 눈빛연기와 더불어 막 살았으니까.....’라는 명대사를 남겨서 유명했던)에 등장하는 오정호’...... 모두 시대를 넘나드는 학교의 무서운 엉아들이다. 양아치라고도 부르고 날라리, 혹은 일진이라고도 하고 짱이라고도 불리는 아이들. 다들 그렇게 망가질 수밖에 없는 아픈 가정사와 사연들이 있다. 물론 최근에는 가정적으로 불우하지 않아도, 오히려 경제적으로나 부모의 학벌로나 아쉬울 것 없음에도 인성 쓰레기인 겉으로 멀쩡해 보이나 진정 근본까지 구제불능인 악인캐릭터들이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여기선 생략.

 

그러고 보면 학교폭력이나 주먹으로 학교생활을 연명하는 무서운 엉아들은 시대를 초월하여 어디에나 있었나 보다. 우리 나라뿐이랴, 일본애들, 미국애들도 학교짱들은 얼마나 무서운데....

물론 위 소설이나 드라마들의 주제는 다 다르다. 나는 특히 학생 개인의 폭력성보다 그들을 폭력적으로 만드는 이 사회와 빈부격차를 비판한 드라마 <2013 학교>가 참 좋았다. 하지만 문학작품으로 접해야 한다면 역시 <우상의 눈물>을 권한다. 기표라는 깡패보다 더 무서운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학교와 담임, 그리고 반장. 1980년대 시대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작품이나 근본은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폭력을 행사하는지 묻지만 특히 <우상의 눈물>은 평범해 보이고 신사적으로 보이는 사람이 더 악한 존재일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에 자기가 스스로 난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부하는 대다수의 보통사람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 <우상의 눈물>을 읽었다면 다음 질문에 답해 보자.

- 학교폭력,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인가, 사회의 문제로 볼 것인가?

- 기표는 소위 말하는 결손가정의 학생이다. 결손가정이 부적응아를 만드는가?

- 만약 그렇다면 결손가정이 만들어진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 <우상의 눈물>에서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인가?

- <우상의 눈물>의 서술자 유대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 여러분이 학교 선생님이라면 기표 같은 아이를 어떻게 대했을까?

- 여러분은 학교 선생님이나 어른들로부터 나쁜 놈이라는 오해를 받은 적이 없는가?

- 기표처럼 잘못이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절대로 구제받을 수 없는 걸까?

- 범죄는 개인의 문제일 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 당신의 인생 책은?’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꼽으리라. 나에게는 아직도 1982년에 출판된 1600원짜리 세로쓰기 <데미안>이 있다. 이 책을 산 것이 고1 때였던 것 같다.

 

부모가 싫어 기숙사를 택한 소년

28년 전쯤, 교단에 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함께 이 책을 읽은 소년 이야기를 먼저 하련다. 내가 그에게 이 책을 주었는지, 아니면 그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서 혼자 책을 읽고 내게 보낸 편지에 책 이야기를 쓴 건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소년은 왜 졸업한 후 내게 보낸 편지에 <데미안> 이야기만 썼을까? 늘 전교 1등에, 결국 나중에 서울대를 들어간 수재였지만 어딘가 우울해 보였던 그 아이,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모범생 콤플렉스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아이는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머리가 좋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공부 잘하기를 강요(강조?)하는 부모님과 멀리 떨어지고 싶어서 강원도의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고등학교로 진학해 기숙사로 들어갔다. 그렇게 혼자가 된 아이는 <데미안>을 읽으면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이다. 편지는 중학교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하는 고민에 시달리던 에밀, 그리고 신비로운 소년 데미안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책을 제법 많이 읽는 중2 소년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다른 사정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늘 우울 모드이면서도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밝고 명랑한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그 소년은 며칠 만에 거뜬히 책을 읽고 와서 조잘조잘 책 이야기를 떠들다 갔다.

 

1980년대를 살았던 열일곱 살의 나, 또 다른 1990년대의 열일곱 살 강원도 소년, 그리고 21세기에 만난 경희중학교의 열다섯 살 그 소년. 우리 셋의 공통점은 무얼까.

<데미안>자기를 찾아가려는 부단한 노력을 주제로 하여, 에밀이라는 서술자(이자 주인공)이 방황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에밀 곁에는 그보다 두 살 많은 친구, 정신적 멘토인 데미안이라는 지혜로운 소년이 있다. 데미안은 에밀이 방황할 때마다, 곤경에 처할 때마다 비뚤어질 때마다 늘 곁에서 그를 지켜봐 준다. 데미안은 매우 시크 앤드 쿨한 친구다. 따뜻한 위로를 건네거나 유용한 조언과 충고를 던지는 게 아니라 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꽤 뜬금없어 보이는 알 듯 말 듯한 말들로 에밀을 생각의 늪빠트린다. 그런데 에밀 이 녀석도 생각이 많은 녀석이라 데미안의 그런 화두를 붙잡고 또 열심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내면의 소리를 탐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에밀 인생에 길잡이 노릇을 해주던 데미안은 1차 세계대전 참전 중 그만 사망하고 만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처음 이 책을 읽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그저 데미안의 죽음이 충격적이었지만(이제 에밀은 어떻게 살지? 하고 걱정했던 기억이..) 나이가 들면서 다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느낀다. , 그래, 데미안은 에밀 자신이었어! 데미안은 에밀의 또 다른 자아야! 사람에게는 여러 개의 자아가 있다. 다중인격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의 세계, 본능의 세계, 스스로가 인식할 수 있는 자아, 이상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려는 초자아... 그 모두가 자기 자신인 것인데, 칼 구스타브 융이라는 심리학자는 그 모든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인정하면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 인생의 목표라고 말했다.

<데미안>의 저자 헤르만 헤세는 한때 융의 분석심리학 이론에 기초한 정신의학의 힘을 빌어 심리치료를 받았다 한다. 그 이론에 의하면 에밀은 현실의 방황을 안고 사는 존재이지만 그 안에는 데미안처럼 지혜롭고 안정적이고 이상적인 또 다른 자기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가 죽자 에밀은 슬픔에 빠지지만 이제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네가 깨고 나와야 할 그 슬픈 세계는 무엇인가

너는(나는) 지금(그때)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널() 영원히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데미안>과 함께 한 십대를 보낸 것은 너의(나의) 긴 인생에서 행운일 수 있으리라. 알을 깨고 훨훨 날아간 너는 멋진 어른이 될 것이지만 혹시 가끔 날아온 길을 뒤돌아보아야 하는 어느 저녁이 오면 슬펐던 너의 중학교 시절이 잠시 기억날 것이다. 괜찮다. 그러면서 크는 거다. 너는(나는) 남들보다 좀 더 아프면서 크고 있는() 것뿐이다. 이제는 네()가 누군가의 <데미안>이 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짓말 학교 - 제10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5
전성희 지음, 소윤경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여러분, 여태까지 살면서 거짓말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 ? 저요, 저요, 라니? 이런 거짓말쟁이!”

친구랑 약속을 했는데 좀 늦었어. 친구한테 전화가 왔는데 , 미안, 지금 가고 있어~.” 이런 거짓말 한 번쯤은 해봤지? 집에서 이제 겨우 양말 신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런 거짓말은 나도 많이 해봤거든. 그리고 하얀 거짓말이라고, 살다 보면 솔직히 선의의 거짓말, 착한 거짓말을 해야 할 때도 있잖아. 10년 만에 찾아온 제자가 선생님은 왜 이렇게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라고 한다든가 동생이 잘못해서 그릇을 깼는데 그릇이 미끄러져서 깨졌다고 엄마한테 거짓말한다든가, 뭐 그런? 그런 거짓말은 용서해 준다, 내가.

그런 사소한 거짓말은 애교로 봐줄 수는 있지만 하여간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은, 어지간하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알잖아? 그런데 혹시 이런 생각해 본 적은 없니? 좀 섬뜩한 이야긴데, 거짓말 하는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거짓말 잘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생각.

뉴스에 보면 잘못을 저지른 정치인들이 자기는 그런 일 한 적 없다고 하다가 증거가 나오면 아랫사람이 한 일이다, 가족이 자기 모르게 한 일이라고 하다가, 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면 관행(흔히 있는 일이다, 누구나 하는 일이라 잘못인 줄 몰랐다)’이라고 잡아떼고 그러잖아. 도박이나 마약 등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이 진심으로 반성한다.’ 고 참회하는 척 하다가 얼마 안 있어서 다시 돌아와 거액의 출연료 받으면서 또 잘 지내기도 하고.... 그런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고는 있어도 자기 입으로 난 거짓말을 잘 해. 그래서 잘 살고 있지롱. 너네도 나처럼 거짓말 잘하는 방법을 익혀봐~.’ 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진 않잖아? 그런데 말이지, 여기 거짓말을 아예 대놓고 가르치는 학교가 있어. 입학식 날 교장 선생님이 축하의 인사를 하면서 여러분, 거짓말 학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체계적으로 거짓말을 배워 사회 지도층으로 자라날 겁니다.” 이러는 거야.”

 

거짓말 잘하면 성공한다고?

거짓말이 무서운 것은,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던 사람도 반복되는 거짓말을 스스로 믿게 된다는 점이란다. 모르는 이, 자기를 억압하는 이, 공격적인 이, 강한 사람 앞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 부드럽고 따뜻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거짓말은 그 자체로도 부도덕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거든. 많은 사기꾼들이 거짓으로 만들어낸 자기 정체성을 진심으로 믿는단다.

유아기 아이들은 방어적인 이유로 거짓말을 하지만 대부분 어른들이 몇 번 혼을 내거나 좋은 말로 설득하면 습관이 되지는 않는대. 즉 대부분의 사람은 치명적으로 부도덕한 거짓말쟁이가 되진 않는다는 거지. 하지만 열대여섯 살의 우리 학생들 중에는 어쩌면 저 녀석은 평생 거짓말을 달고 살지도 모르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아이들이 있더라. 그런 학생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거짓말이 무서운 이유

이 책은 거짓말의 심리학을 잘 활용하였고 그것을 현실의 문제와 잘 연결시켰어. 재미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그리고 있는 학교’, 어디서 많이 본 느낌이 든다.

이 책 속의 거짓말 학교는 뻔뻔스럽다. 거짓말을 가르치고,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라고 해. 열심히 공부해서 거짓말 잘 하여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렇게 나라에 복무하라고 대놓고 말한다니까? 말도 안 된다고? 그렇지, 거짓말을 하고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거지. 현실 속 우리 친구들은 다행히 겉으로나마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고는 말한다. 마음속으로는 하면 좀 어때?’라고 생각할지라도. 위선 아니냐고? 아니, 그 얇은 선을 넘지 않는 것, 그 한 끗 차이, 그게 그렇게 중요하단다, 얘들아. 그게 와르르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 거라고.

 

작년 교지에 실렸던 중3 아이의 글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함께공부하고 나누고 싶다. 그게 옳다고 배웠다. 시험 때도 즐겁게 같이 공부하려고 하면 아이들은 위선을 떤다고 한다. 경쟁상대로만 보면서 자기가 공부했다는 사실을 숨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슬픔을 느낀다... 우리 친구들 마음속에 남은 순수함은 현실의 벽 속에서 무너지거나 변질되는 게 아닌가 싶다. 진실 되게 사는 것, 남을 위하는 것, 정직한 것. 그런 것들이 왜 비웃음을 당해야 하는 거지? 어쩌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되었을까.......’

 

그런데 나는 아직은 아니라고 믿으련다. 성경에는 소돔과 고모라라는 타락한 도시를 창조주가 멸망시키려 할 때 그 큰 도시에 의인(義人)이 열 명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고 용서하겠노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이 아무리 타락한 듯 보여도 극소수의 사람만이라도 진실된 가치를 간직한다면 세상은 지켜진다는 거지. 물론 소돔과 고모라에는 그 열 명이 없어서 결국 절멸 당했다만. 우리 사는 세상은 그래도 진실을 붙들고 살려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다, 나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한창훈 지음, 한단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6년 11월
평점 :
판매중지


 

“00~ 저 수행평가요~.”

교무실 밖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이름을 부른다. 이것은 서양식인가. 그게 뭐 어떤가 싶다가도 아직은 아니지 않은가 싶은 건 어느 새 나도 보수적이 되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깍듯하고 뒤에서는 선생들 욕을 하는 것보다는 친근하게 이름을(그래도 뒤에는 을 붙여주기까지!) 부르는 교사-학생 관계가 나쁜 것만은 아닐 터이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그들이 사는 나라’, 아니 그 곳에는 단 한 줄의 법조문이 있다 한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인사할 때 나는 당신보다 높지 않습니다.’라는 의미로 상대방의 어깨에 손을 얹는단다. 상상해 보면 재미있다. 내가 교장님 어깨에 손을 얹는 모습, 내가 시아버님 어깨에 손을 얹는 모습... 거꾸로 복도에서 만난 나의 학생이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면?

 

권력을 꿈꾸지 않는 그런 공동체가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은 둘만 있어도 서열이 형성되는, 정치적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살면서 시시때때로 그 권력관계를 느끼며 산다. 꼭 눈에 보이는 우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관계는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권력을 가지게 되어 있다. 심지어 아들러라는 심리학자는 자주 아프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는 병을 핑계로 엄마와의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는 것이라고까지 해석하지 않는가. 그래서 현실적으로 나는 저런 진정한 평등의 세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불가능한 세계를 꿈꾸는 것보다 어차피 인간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보다 나은 정치적 관계, 합리적 권력관계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하긴 나처럼 출발을 하다 보면 그 끝은 합리적 원칙, 더 복잡한 법치이런 데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 걸 보면 이 소설을 쓴 한창훈은 나와 달리 아나키스트(국가와 정부가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 책을 건넨 학생은 재기발랄하고 늘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였다. 책이 가지고 있는 밝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어서였지만 학업에 짓눌린 학생을 만난다면 이 책 속 이야기 중 <그 아이>라는 글을 읽히고 싶다. 사실은 학생들보다 부모님들이 읽어야 할 부분일 것이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날개를 활짝 펴는 소년의 이야기이므로. 먼 훗날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행복한 아이로 커야 어른이 되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이 진리는 우리 부모들은 왜 모르는 건지 참 안타깝다.

상상력이 아름다운 단편들이라 읽기도 쉽고 재미도 있지만 읽고 나서 마음이 행복해지는 소설이다. 제목은 그러니까 행복이라는 말조차 필요 없는그래서 진정으로 행복한 평화와 평등의 나라라는 의미이다. 현실에서 실현은 불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그런 나라를 꿈이라도 꾸어야 조금이나마 근접해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보다는 더 평등하고 지금보다는 평안하고 욕심 없이 평화로운 그런 나라. 아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그인하詩겠습니까 2 - 중학생이 사랑하는 시 아침이슬 청소년 13
이상대 엮음 / 아침이슬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그인 하시겠습니까>는 중학교에서 오래 국어를 가르친 이상대 선생이 국어 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시를 고르고, 그 시에 감상을 달아 쓴 시선집이다. 고른 시도 중학생에게 이지만 덧붙여진 학생들의 감상이 귀엽고 재미있다. <시가 내게로 왔다>는 그보다는 좀 더 어른스러운 시들이 많다. 모두 시를 좋아하는데 어떤 시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들이다.

 

누군가 묻는다, 시가 밥 먹여주느냐고. ‘시인이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소년을 마지막으로 만난 게 20년도 넘은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 시는 돈도 밥도 되지 않는 그 무엇일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거꾸로 묻겠다. 세상에는 돈도 밥도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지만 때로는 그런 것들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지 않느냐고.

시의 가치는 하늘에 떠 있는 별과 비슷하다. 땅으로 내려와 밥풀도 되지 않는 별들. 그러나 밤하늘에서 별이 사라진다고 상상해 보라. 시는 땅 위의 별빛이다. 아이들이 그걸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소년들의 별에도 아름다운 봄이 오고 그들 밤하늘에서도 별처럼 시가 빛나기를, 윤동주의 시를 빌어, 간절히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