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의 뇌과학 - 치매, 암, 우울증, 비만을 예방하고 지친 뇌를 회복하는 9가지 수면 솔루션 쓸모 많은 뇌과학 11
크리스 윈터 지음, 이한음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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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를 읽다가 여기까지 왔다. 말 그대로 수면의학에 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왜 읽는가, 생각해 본다. 가끔 잠을 설치고 평시에도 자주 깨는 편이긴 하지만 불면증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는데, 또 이런 책을 읽는다 한들 나의 불면에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을 텐데(왜냐하면 근원이 사라지면 사라질 불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자꾸 집어 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식이 전부는 아니지만 때로는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도 한다. 가령, 혈압약을 먹기 시작한 두 해 전, 이 약이 불안을 누르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고 기뻤던 일처럼(그 약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에는 약간의 알러지 때문에 비염약을 조금 복용하고 있는데 마침 이 책에도 그런 항히스타민제가 잠을 잘 오게 한다는 사실이 나온다. 어쩐지 최근에 중간에 깨는 일이 별로 없더라니. 하지만 저자는 내내 수면제에 의존하지 말라고 말한다. 어쩌면 저자는 내가 잘 못 잔다는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 즉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여유 있게, 너무 많이 못 자도 괜찮다, 어쩌면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잘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그 내용이 내게도 조금 위안이 되긴 했다. 새벽에 일어나 뒤척이다 수면량이 모자란 날은 다음 날 직장에서 힘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럴까 봐 두려워 어떻게든 자려 애를 쓰면 더욱 괴롭고 억울하다. 하지만 크리스 윈터의 말처럼 다음 날 낮에 약간의 휴식으로도 극복할 수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하다. 대안을 갖고만 있다면.

 

각종 신경전달물질의 역할을 알게 된 일, 약물들에 대한 상식 수준의 정보도 좋다. 이 책을 읽으며 얻은 것이다. 잠에 대해 부채 의식을 가질 필요도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푹 자고 쌩쌩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좋지만 정 안 되면 약물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겐 책이 있어서 혹시 깨어나는 새벽이 있더라도 그걸 견뎌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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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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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유튜브에서 보긴 했지만 최강욱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다. 그가 사면되기 직전에 이 책을 냈다 할 때도 유명세에 올라타 책을 내는 사람들에 대한 불신 때문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낸 사람이 쓴 책을 보수 진영의 사람들이 선택해 줄까 싶기도 했다. 누군가 했던 말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지 못 하는 책의 한계에 회의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 새로 들어온 책을 읽고는 눈이 번쩍 뜨인다. 이건 중학생에게 읽혀도 될 것 같다! 이렇게 쉽고 재미나게 쓴, 그러면서도 알찬 지식으로 꽉 찬 교양서라니, 역사와 정치와 철학, 많은 예시들까지.

 

20대뿐 아니라 10, 특히 남학생들이 우경화 아니 극우화되고 있다. 이건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현장에서 내가 매일같이 보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지난 번 독서 시간엔 소년 정치하라라는 책을 들고 내게 항의한 학생도 있었다. 편향된 거 아니냐고. 언론의 진실성과 보도윤리에 대해 가르칠 땐 딱히 어느 매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언론도 정치 편향이 있지 않냐고 질문한 학생이 있다. 그런 질문의 의도는 대개 반진보, 그들 말로 좌빨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광주항쟁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간첩 운운하는 학생들이 있을 정도다.

 

그런 학생들에게 이 책을 건네며 읽어 보라고 한다면 엄청난 모험이 되겠지? 나는 낙인 찍힌 교사가 될 것이다. 아니, 생전 학생들과 대립각을 세워본 적이 없었던 내가 요즘 가끔 나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지 내가 늙은 교사라서만은 아닌 것 같다. 광주 이야기를 들려준 이후 나와 경계를 세우는 아이들이 보인다.

그들에게 이 책을 건넬 용기는 솔직히 없지만 마음은 간절하다. 아마 현실적으로 나는 윤어게인을 주장하는 친구에게 윤옥에in’이라고 농담으로나마 맞설 수 있었던 태성이 같은 학생에게 이 책을 권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 난 좀 비겁한 교사다. 군부독재 시절에도 두려움 없이 광주를 가르쳤던 내가, 이제 가장 무서워하는 대상은 10대의 극우 혐오 발언을 일삼는 제자들이 되었다.

 

그런 현상을 두고 이 책에서는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지만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인용으로 대신했다. 나는 신념이라 생각하고 상대방은 자는 척하는 사람이라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면서도 어느새 가족도 스승과 제자 사이도 가르고 있는 한국의 진영논리에 절망한다.

 

그리고 ‘10분 정도 차근차근 자기가 진보(보수)인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을 만났을 땐 나 스스로 각 분야에 대한 나의 사고, 그 근거들을 한 번 정리해 보았다. 적어도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도 근거를 대 상대를 설득/제어할 수 있어야 토론이라고 가르쳤던 것은 바로 나이니까.

 

일단 이 책은 진보 /보수의 개념 정의를 먼저 내린다. 그러기 위해 민주주의의 역사를 한 번 쭉 훑어주는데 그 부분이 매우 유용하다. 그 부분만 청소년에게 읽혀도 좋을 정도이다.

어른들은 아마도 자신이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할 이 민주주의의 역사’, 저자의 말대로 안다고 생각하는 대로 어린 사람들에게 술술 말해줄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계몽주의는 진보주의의 이념적 기반이 된다는 대목에서는 새삼스러움을 느꼈다. 계몽이라는 말은 이미 굳어진 말이고 때로는 조롱의 언어가 되었지만 사실은 근대로 넘어오는 데서 매우 중요한 단계의 철학적 혁신이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이성주의, 합리주의, 개인의 자유와 권리 존중, 모든 인간의 평등, 인류의 진보를 믿음, 이런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개념들이 거기 담겨 잇었다. 오래 전 책을 읽다가 계몽주의가 대두되면서 여자와 어린이를 때리지 말아야 한다고 주창한 것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대혁신이었던 시절이 있다. 우리도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거겠지만.

 

진보/보수의 기준은 필요한 사회 변화에 대해 천천히 신중하게 최소한으로(The conservative)/빠르고 과감하게 전면적으로 (The progressive)’로 나눈단다. 동료들과 농담삼아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이나 생활에서 보수다라고 말하는 이들을 본 적이 있다. 삶과 정치적 지향이 달라서는 안 되겠으나 자본주의 극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머리로는 비록 나눔과 평등의 가치를 지녔다 해도 내 한 몸 내 가족의 안위와 안정을 위해 돈을 모으고 부를 축적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진보도,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진보도,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그 무엇은 아닌 것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이제 진영을 나누어 싸우기도 머쓱할 만큼 섞였다.

 

그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의 민주당을 진보진영이라 할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우리나라 민주당은 중도 보수에 가깝다. 본인들도 알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지향은, 지금은 소멸하다시피한 전보정당들에 더 가깝다. 그러나 생활 보수에 가까운 나는(세금을 내는 데에 너그럽고 재산 축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할 뿐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거부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선거에서 중도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진보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기련다. 저자가 의도를 담아 단 제목 그대로 이로움을 좇기보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알량한 이로움에 연연하거나, 그것을 내 능력으로 얻었다고 믿는 오만을 부리기보다 멀리 보아 무엇이 의로운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려 한다. 그런 성찰 때문에 때로 비교적 안락한 삶에 대해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를 고민하고 가장 치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할 일은 무엇인지 찾아 그걸 해내려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어떤 이는 총으로, 어떤 이는 펜으로 어떤 이는 꽃으로도 제국주의와 맞섰다, 내가 갖고 있는 세상의 희망을 일굴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계엄 날 일찍 잠든 탓에 국회에 달려가지 못했던 우리 부부는 뒤늦게 그때 우리가 잠들지 않았다면 국회로 달려갔을까라는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내게 그런 용기가 있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늘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하고 산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을 현재에 기대도록 만들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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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 - 뇌가 설계하고 기억이 써내려가는 꿈의 과학
안토니오 자드라.로버트 스틱골드 지음, 장혜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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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시일까, 환상일까?

심리학일까, 뇌과학일까?

꿈은 삶의 부수적인 어떤 것일 터, 그 자체가 주인공일 리 없다.

그런데 나에게 꿈은 매우 중요하다. 어떨 땐 현실의 부족함, 아쉬움을 메워주고 어떨 땐 현실을 이겨내게 도와주기까지 한다. 모든 이에게 꿈이 이렇게까지 중요하지야 않겠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도 꿈은 각자의 주인공인 을 움직이는 에너지 같은 것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꿈속에서 또 하나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할 만큼 꿈이 잦다. 매일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끄는 그 꿈들의 의미를 알고 싶다. 주술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과학의 영역에서.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 꿈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의 얕은 독서로 알아낸 바, ‘꿈은 현실 혹은 너의 불안을 반영한다.’ 이상의 딱 부러지는 해석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뇌과학은 꿈을 무어라 해석할까? <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는 그렇게 내 손에 들어왔다.

 

우선, 이 책은 꿈에 대한 다양한 갈래의 연구 결과들을 소개하고 있기에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꿈이란 무엇이다, 정답을 알려준다기보다 연구의 현황에 대한 일반인 대상 브리핑 정도로 보인다. 그래도 이 책은 학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잠(그리고 꿈)이 감정 처리, 학습 능력이나 문제 해결력 향상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여러 연구 결과를 통해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이 낮에 공부한 내용을 어떻게 갈무리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풀리지 않던 문제, 고민, 계획들이 한숨 푹 자고 난 후 정리되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잠의 기능

어린 시절 성장호르몬은 대부분 잠의 깊고 느린 뇌파 수면 중 분비됨.

인슐린을 조절하고 항체를 생성하는 것도 잠의 관리 기능 중 하나.

면역 반응을 끌어올려 항체를 최대한 생성하는 시간이기도 함.

잠은 뇌의 폐기물을 청소하는 기능도 함. 신경세포 사이 공간에 축적되어 알츠하이머 진전을 유발하는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는 잘 때 2배나 빨리 뇌에서 제거된다. 하룻밤만 못 자도 뇌 간질 공간에 축적되는 베타 아밀로이드가 5%나 늘어난다.

 

우리의 뇌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주변 상황에 집중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여 저장해 두었다가, 잠이 들면 정보를 검토, 수정, 파악한다.

기억은 몇 시간 동안 연약한 형태로 남아 있다가 뇌에서 응고화 된다. (실제로 새로운 단백질이 합성되어 신경세포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이어 붙인다)

 

쇼팽의 피아노 곡을 연습하던 학생이 도저히 칠 수 없었던 부분을 다음 날 갑자기 칠 수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단다. ‘연습한 뒤 밤잠을 자면 완벽해 진다.’ 공감하는 바이다. 글이 안 풀릴 때, 뭔가 기획할 때, 공부할 때도 너무 지치면 놓아두고 다음 날 다시 보면 쉽게 풀리는 경험을 많이 했다. 그게 자는 동안 뇌가 했던 엄청난 일이었다니!

 

꿈은 개개인의 지적 생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의력의 에너지가 되어 인류 전체의 문화, 문명의 발달에도 영향을 끼친다. 종교의 탄생, 성스러운 신적 세계와 세속 세계가 만나는 방법, 우주에 대한 개념 구축에 꿈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꿈의 계시로 고안하고 창작하고 아이디어를 얻어 얼마나 많은 예술 작품, 과학적 논리, 노래와 그림 등이 탄생했는가. 내 협소한 인생에서도 꿈은 많은 창의적 에너지의 원동력이었다.그런 의미에서 잠과 꿈은 참으로 소중하다.

 

꿈의 심리학적 기능으로는 "꿈은 잠의 수호자" 라는 프로이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저자는 내내 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프로이트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말하지만 프로이트의 꿈이 중요하다는 믿음의 내러티브는 인간이 깊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자기애적 위안을 주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내가 모르는 나의 또 다른 세계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상상. 꿈을 자주 꾸는 사람들은 꿈속 세상이 또 다른 나의 세계라 믿는다. 얼마나 좋은가. 단 한 번의 삶을 살지만 수많은 겹의 삶을 또 살 수 있다는 것이.

 

꿈은 수용되지 않는 무의식적 요소가 낮 동안 의식적 인식에 도달하지 않도록 막는 마음속 감시 메커니즘이다. 이 책의 연구자들은 이 이론이 근거 없다고 말하지만 꿈의 완충작용이 없었다면 사그라들지 않았을 분노, 우울, 슬픔 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한다면 이 기능은 분명 유효하다고 본다.

 

잠은 우리의 자아 감각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대개 삶에서 중요한 사건에 대한 자전적 기억에 의존하는데, 잠은 이 기억 형성을 돕는다. 몇몇 실험 결과 잠이 감정 기억을 먼저 응고화하고 덜 흥미로운 기억은 잊어버리게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 잠은 감정 기억을 선택적으로 유지하지만, 그 기억에 다시 노출되었을 때 감정 반응의 강도를 줄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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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요새 - 사유의 미로를 통과하는 읽기의 모험
고명섭 지음 / 교양인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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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철학책이다. 아니, 철학책들의 서평집이다. 요약서라고 해야 하나? 놀라운 건은 플라톤에서 불교, 도덕경, 페미니즘까지 아우르지만 내용을 왜곡하지 않으면서도(즉 저자의 의견을 별로 담지 않은 듯 보이면서도), 주요한 내용을 건너뛰지 않으면서도 아주 쉽게 읽힌다는 것. 이토록 방대한 양(100권이 넘는 책)을 다루고 있는데 이 엄청난 지식을 단 한 권에 담은 것을 보면 책으로 돈을 벌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동안 어마무시한 양의 책을 읽고 쓴 저자는 이제 자신만의 무언가를 구축할 때가 되었다. 아직 그러지 않는 이유가 고명섭의 기질 때문인지, 겸손한 탓인 건지, 아님 정말 독서와 글쓰기, 딱 거기까지만으로 자족하는 건지 모르겠다. 애독자로서 나는 그만의 저서를 기다린다. 요약이나 정리, 해설이 아닌.

마키아벨리는 아직도 잘 모르겠는 사람이다. 그래도 <군주론>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은 있다. 공감해서라기보다 문제적이라서.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는 사마천이나 플라톤, 단테와 같은 위대한 사람들이 역작을 남길 수 있었던 근거로 그들이 맞닥뜨렸던 고난과 시련을 꼽는다. 일개 범인인 나로서는 시련을 겪고 역작을 쓰기보다 사랑도 명예로 이름도 남기지 않더라도 평온하게 아무 일 없이, 남들만큼만 살았으면 하는 욕망이 강하다. 그래도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곤고한 생활을 고백하며 했던 다음 이야기는 깊은 감명을 준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체력을 넘는 직장생활과 육아, 살림, 고단함과 그리움을 다 이겨내고 내가 살아낼 수 있었던 힘 역시 모든 것을 마치고 침대에서 넘겼던 책장, 그 밤들의 독서였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에 읽을 수 있었던 책 몇 줄, 일기 몇 줄이 나를 살게 했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이루고 성공의 발판으로 삼지 못했다 해도 그저 나는 그것으로써 살아낼 수 있었다.

 

"저녁에 오면 문 앞에서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고 궁중의 의상으로 갈아입지. 우아하게 성장을 하고는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는 고대인의 옛 궁전으로 들어가,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이유이자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진 음식을 맛보면서 그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던가를 물어본다네.... 이 네 시간 동안만은 나에게 아무런 고민도 없다네... 쪼들리는 생활도, 나아가 죽음까지도 나를 두렵게 하지는 못하네.”

 

읽어본 적도 없고 다만 나치에 부역한 철학자라고만 알고 있는 이지만 하이데거가 그랬단다. "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잠든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 . 어떤 맥락에서 한 말인지 모르지만 무릎을 칠 만한 말이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자만큼 무서운 사람이 없다. 내란의 시대를 살아내면서, 신념의 다름으로 가족 간의 거리마저 멀어지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서 수많은 잠든 척하는 사람들을 본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겠지. 나 역시 나 자신의 생각을 사상이고 철학이며 신념이라고 자신할 만한 통찰력은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학습도 성찰도 없이 맹목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많은 위험한 인물들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어쩌면 정말 무서운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면 그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에겐 고명섭이 좋은 친구가 된다. 세상 모든 철학을 읽는다고 해서 올바른 통찰의 힘을 얻을 수 있으랴만 그래도 이렇게 쉽고도 재미있게 세상과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 이야기를 들려주는 글 친구가 있으니 아무 생각 없이 독선에 빠지진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명섭은 말한다. ‘자기 내부가 한없이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고서는 자기를 둘러싼 시대의 가난을 볼 수 없고, 그 가난을 볼 수 없으면 가난을 이겨내려는 투지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원효, 수운, 이런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 말하여)’. 나의 가난하고 핍진한 영혼은 낮은 곳에서 하염없이 스스로를 성찰한다,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하여. 주변에 널리고 널린 아픈 사람들에 대하여 고통스러울 만큼 많이 자주 생각한다. 답은 보이지 않더라도 좀 넓게 볼 줄 알았던 사람들의 말과 글을 읽으며 하염없이 생각한다. 조금이라도 덜 틀린 길로 가려고.

 

모르는 영역인데 관심 있게 읽은 이는 엘렌 식수다.

엘렌 식수는 여성적 글쓰기를 페미니즘의 실천 전략으로 제시했단다. 페미니즘 운동의 처음은 글쓰기였을지도 모른다. 작고 미약한 일처럼 보이지만 생존 그 자체가 투쟁에 가까웠던 시절, 여성 작가는 존재하기 힘들었던 시절부터 글쓰기 그 자체를 투쟁으로 해온 사람들이 있다. 내가 아는 작가는 리베카 솔닛이나 정희진 정도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글을 써왔는지 알고 있기에 고작 글쓰기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엘렌 식수가 보기에 세익스피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같은 이들은 남성이지만 자기 안에서 타자, 곧 여성성을 발견해 회복한 사람들이란다. 여성적 글쓰기는 여성과 남성 모두를 인간으로 해방하는 실천적 행위라면서.

20대인 딸내미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처음엔 여성의 삶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여성의 삶을 말하는 것은 기후 위기, 환경 문제, 약자 인권, 이주민 이슈, 심지어 동물권까지 연결되더란다. 부분만을 보지 않고 삶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될 때 그 사유를 우리는 성찰, 나아가 철학이라고 부른다. 글쓰기에서 시작한 페미니즘적 관점은 결국 인권에 대한 고뇌로 나아가고 권력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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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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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기억할 것도, 인상적인 것도 너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책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고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본 이야기지만) <혼모노>를 여러 계간지에 보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 최근에 나도 청소년에게 읽힐 계엄 소설을 썼지만 몇몇 출판사에서 연락도 못 받고 조금은 의기소침해 있었기 때문이다. 출판 방향이 안 맞을 수도 있지 뭐, 싶다가도 정말 재미있었으면 출판사에서 먼저 놓치지 않으려 연락을 했겠지 싶어 마음이 섭섭한 와중에, , 성해나 소설처럼 이렇게 재미난 이야기도 퇴짜를 맞는다고? 하면서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 뛰어난 예술가들에게도 거절당한 기억들은 많고 많다. 유명한 연예인들에게도 바닥을 헤매던 시절들은 있다. 그러니 상처받을 일이 아니라 힘을 더 낼 일이다.

 

하지만 성해나의 소설은 그런 작은 에피소드가 아니라 소설 그 자체로서 오래 기억할 만한 작품이 많다. 90년대 소설 이후 한국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 나로서(오해는 마시라, 직업적 이유로 청소년 소설은 거의 섭렵한다)는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그의 소설이 좀 궁금하면서도 재미있어 봤자겠지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아니었다.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이런 이야기도 소설이 될 수 있구나 싶은 마음에 놀라고 있다. 아니, 소재야 세상 사는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다는 데 놀란다.

 

한마디로 그의 소설은 독자에게 스며든다.’

특별히 뛰어난 문장이나 독특한 문체도 아니고 엄청나게 자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제일 처음 읽은 길티 클럽의 경우 한 영화 감독에 대한 덕질에서 묘한 정서적 긴장을 느껴 계속 읽게 되었다. 뭐 엄청난 반전(가령 그 멋진 감독의 악인성이 드러난다든지 평범하게만 보였던 화자에게서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오류로 인한 범죄 같은 것이 벌어진다든지)같은 게 있으려나, 하는, 분위기의 미묘함. 그런데 딱히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독자들은 김곤 감독이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는 모습에 배신감을 느끼는 서술자의 모습에서 기괴함을 느껴야 한다. 이건 뭐지? 우리가 흔히 아는 정치적 올바름’, ‘과정의 정당성’, ‘진실성을 대하는 태도와 사뭇 다르다.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위상이 중요한 걸까? 도덕성을 웃도는 예술가만의 태도와 아우라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범죄나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것을 서술자는, 그리고 작가는 이빨 빠진 호랑이에 비유한 것일까?

 

그러다가 <구의 집>을 읽으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94년 생이란다, 작가 성해나는. 우리 세대(85학번이다)조차도 이제 시대의 끝물로 경험한 고문과 취조의 현장을 설계한 건축가 이야기이다. 고문의 생생한 현장을 그린 것도 아닌데 그 현장을 끌려가 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 소설. 한 평범한 건축학도가 악마로 변해가는 과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스며든다’. 그러고 보니 다른 작품들도 이렇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인물들에 스며들고 이야기에 젖어들게 된다. 그가 옳은 자인가 나쁜 놈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소설을 읽다가 문득 관찰자가 되어 주인공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거리가 가깝다가 멀어졌다 한다. 어느 한 인물에 감정이입이 되거나, 내가 그인 듯 느껴지는 그런 소설은 없다. <혼모노>도 박수 문수가 주인공이고 서술자인 것 같지만 독자인 내가 그 맘 같지는 않았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등장인물들, 그렇다고 아주 생뚱맞기만 한 인물도 아닌 그들, 도대체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걸까? 의아하다가 종내 이해가 된다. 그들이 추구한 진실 혹은 삶의 지향이 비록 일그러졌더라도 거기 있긴 했나 보다, 하고. 가령 <우호적 감정> 같은 소설은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을 갖고 해내는 직장 생활 혹은 집단 생활에서 딱히 누구를 나쁘다고 말하기 뭐한 나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서술자처럼 어리둥절하다저 사람 나쁜 사람이었네? 그럼 내가 베푼 호의는 뭐가 되지? 아닌가? 그는 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어떤 입장이 있는 건가? 세상은 다 그런 건가? 그저 이것은 그저 갈등에 불과한 걸까? 하긴, 우리의 일상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 갈등의 연속이니까. 그리고 흔히 우유부단하거나 유연하거나 우호적이거나 다정한 사람들은 거기서 길을 잃고 어리둥절해지니까. 그 단계를 벗어나면 영악해지거나 강해지거나 악해지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평생 살아가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의 소설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나는 자아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90년대 자기 과잉의 한국 소설에 대한 약간의 경멸 때문에 떠났던 자리로 돌아가, 내가 모르는 세상을 접하는 또 하나의 대문으로서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열심히 읽어보기로 결심한다. 나이 든 작가는 왜 아니냐고? 이전에 읽었던 세대를 벗어나 이제는 나의 자녀뻘인 젊은이들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해나처럼 나이가 많지 않아도 그 이전 세상에 대해 작가의 눈으로 짚어낼 수 있는 작가들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각성했기에 늬들이 80년대를 알아?’ 식의 꼰대 마인드를 버리기로 했다. 어차피 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세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걸 뛰어넘는 것은 더 많은 경험이나 공부/ 독서 혹은 인터넷 검색이 아닌 것 같다. 감각과 통찰, 그리고 진부하지만 상상력, 그것이 없으면 문학은 안 된다. 지성이나 인식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세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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