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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나라 - 갑을관계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3년 5월
평점 :
얼마 전의 남양유업 사태가 한국 사회 내에서의 갑을관계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갑을 관계를 많이 따지고 오랜 역사 또한 이런 문화가 고착화 된 나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한국에서 사는 게 어찌 보면 참으로 팍팍할 때가 있다. 나도 이런 서열에 대해서는 어렸을 적부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살아온 듯 하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받는 삶을 살고 싶어한다. 문제는 한국에서 인정을 하는 조건이 다른 국가에 비해서 매우 적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전문직에 대한 인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고, '다름' 및 '차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갑을관계의 잔인한 서열주의가 10대 때부터 우리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해질 수 밖에 없다. '입시'를 통해서 점수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게 되고, 바로 이 때 부터 갑을이 나눠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서울'이니 '지잡대'니라는 말이 나오게 되고 서울 내에서도 비슷한 레벨의 대학을 서로 헐뜯는 걸 보면 참으로 통탄스럽다. 서열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경쟁사회 내에서 마치 시험용 쥐처럼 내면화 되어버린 갑을 관계가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당연히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국 남양사태와 같은 추악한 일이 발생하게 된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대접받는 것에 익숙해졌던 경험이 있다. 책 속에서도 언급되었다시피 검사, 교수, 기자가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밥값은 식당 주인이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버지가 기자생활을 하셨기에 나 역시 이에 공감한다. 언론은 사회 내에서 '갑'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데, 기자정신으로 기인하는 고발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권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나 역시 권력에 너무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이 권력을 오용했을 때 이것이 바로 '갑의 횡포'가 될 수 밖에 없는데, 권력을 가졌으면서 타인을 인정해주는 사회가 바로 진정 평등한 사회인 것 같다.
사대주의자는 아니지만 다른 나라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욱 대접받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기질이 있다. 한 때 논란이 되었던 '감정노동' 역시 갑질(?)을 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많은 감정노동자들이 정신적인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는 자본주의 및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다. 책에서 소개된 독특한 한국의 핍박받는 역사 및 물질적인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국민적 기질 때문이다.
오랜 역사로 이어져 내려온 이런 인습이 하루 아침에 타파될리 만무하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억울하면 출세해야 된다'는 그릇된 생각이 아닌 현실에 대한 냉정한 시선으로 좀 더 평등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 앞으로의 역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