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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은이), 이세욱 (옮긴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심히 땡기는 드라마가 가끔가끔씩 있다.

그럴 때마다 영혼이 잠시 멈추는 거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완전 몰입해서 그 시간만큼은 세상에 다시 없이 귀한 내 두 아들..호야와 수아에게도 무심해져버린다.

그리곤 나혼자 그 모든 속을 헤엄쳐다니며 감정이입을 하고야 마니...도저히 드라마를 자주 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번에 이 드라마..[꽃보다 아름다워]

나는 이 드라마를 아니 볼 수가 없었다.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의 메인타이틀곡입니다.듣고싶으시면 플레이~~

제목부터가 근사하지 않은가? 꽃보다 아름답다니. 그것이 무어란 말이더냐. ♬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어느 가수가 목놓아 불렀었지?

안치환이라고 검색해서 알아냄.

하여간 이 드라마로 인해 나는 가족이란 것에 대해 신물나게 생각해보았고 노희경이라는 한 작가에 대해 경이로움을 표하며 그녀의 감성과 세상을 보는 눈..그리고 그 살을 에일 듯 다가오는 그녀만의 言語에 대해 올인할 수 밖에 없었다.

근데...지금 나는 드라마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인가 아님 책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것인가?늘 그렇듯이 오리무중이로구만...-_-;;;

책에 대한 리뷰는 나중에 다시 한번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만..게으른 여자..언제???

 

하여간!

그 드라마에서 미치게 슬픈 사랑을 나누는 미수와 인철.

그들을 묶어주는 책 한권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이 책인 것이다.

인철의 바램 중에 하나인 사랑하는 사람이 직접 지어준 밥을 맛있게 먹고나서 사랑하는 그녀에게 들려주던 책도 바로 이 책이었고

마지막으로 인철을 떠나보내며 미수가 빼곡히 적어내린 가슴 절절한 하고 싶은 일들도 바로 그전에 인철이 그녀에게 들려주던 이 책의 구절이었다.

그게 어떤 구절이었냐구?


소풍가기,강가에서 낚시하기, 낚시로 잡은 물고기 구워먹기

새우와 크로와상과 쫀득쫀득한 쌀밥 먹기, 수영하기, 춤추기

당신이 골라주는 구두와 속옷과 향수 사기, 신문 읽기

가게 진열장을 한참동안 바라보기, 지하철 타기, 열차 시각 확인하기

둘이 앉는 자리를 당신이 다 차지하고 있다고 투덜대며 옆으로 떼밀기

빨래 널기, 파리 오페라 극장에 가기, 베이루트와 비엔나에 가기

시장 보러가기, 슈퍼마켓에 가기, 바비큐 해 먹기

당신이 깜박 잊고 숯을 안 가져 왔다고 볼멘소리 하기

당신과 동시에 양치질 하기, 당신 팬티 사주기, 잔디 깎기

당신 어깨 너머로 신문 읽기, 당신이 땅콩을 너무 많이 먹지 못하게 하기

루아르 지방과 헌터 밸리의 포도주 저장고 견학하기

바보처럼 굴기, 재잘거리기, 당신에게 마르타와 티노를 소개하기

오디 따기, 요리하기, 베트남에 다시 가서 아오자이 입어보기

정원 가꾸기, 당신이 코를 골며 잘때 시끄럽다고 투덜대며 쿡쿡 찌르기

동물원과 벼룩시장에 가기,파리와 런던과 멜로즈에 가기

런던의 피커딜리 거리에서 돌아다니기,당신에게 노래 불러주기

담배끊기, 당신에게 손톱 깎으라고 요구하기,그릇 사기

우스꽝스러운 물건들과 아무 쓸모없는 물건들 사기

재즈와 레게음악 듣기, 맘보와 차차차 추기, 심심하다고 투정부리기

변덕 부리기,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깔깔거리며 웃기

새끼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당신을 놀리기

소들이 보이는 곳에 있는 집 찾으러 다니기

점잖지 못한 물건들로 쇼핑카트를 채우기, 천장에 페인트 칠하기

커튼 꿰매기, 재미난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몇시간동안 식탁에 앉아있기

당신의 짤막한 턱수염을 잡고 당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기

당신 머리 깎아주기, 잡초 뽑기, 세차하기, 바다 보기

시시풍덩한 옛날영화 다시 보기, 공연히 당신 이름 불러보기

당신에게 야한 농담 하기, 뜨개질 배워서 당신에게 목도리 떠주기

그랬다가 보기 흉하다고 다시 풀어버리기

주인없는 고양이와 개를 거두어 먹이기, 앵무새와 코끼리에게 먹이 주기

자전거를 빌려서 타지 않고 그냥 놓아두기, 해먹에 누워있기

할머니가 보시던 비코네 식구들의 이야기 다시 읽으며 쉬잔의 드레스 다시 보기

응달에서 마르가리타 마시기, 게임하면서 속임수 쓰기

다리미 사용법 배우기, 다리미를 창문 너머로 내던지기

빗속에서 노래 부르기, 관광객들 피해 다니기, 술에 취하기

당신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나서 때로는 거짓말이 약이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

당신 말에 귀 기울이기, 당신에게 손 내밀기, 버렸던 다리미 다시 찾아오기

대중가요의 가사를 음미하기, 자명종 맞춰 놓기

우리 여향가방 챙기는 거 잊어버리기, 조깅 며칠 하다 그만두기

쓰레기통 비우기, 당신이 날 여전히 사랑하는지 물어보기

이웃집 여자랑 수다떨기

당신에게 바레인에서 보낸 내 어린시절 이야기 들려주기

내 유모의 반지와 헤나 냄새와 호박으로 된 동글동글한 장신구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계란반숙이나 커피 따위에 적셔 먹을 길고 가느다란 빵조각 만들기

잼 단지에 붙일 딱지 만들기..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중에서 p193~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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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공사에서 1996년 출간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절판되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내용의 잔혹성이며 그 그림의 거침이 이쁘고 감동적인 그림책만을 안겨주고 싶은 독자들의 욕구와 맞지 않아서이겠지요.

시공사가 처음에 네버랜드 시리즈를 만들었을 당시에는 단행본으로 출간했는데 갑자기 전집으로 판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 도서 연구회 등 그림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호소가 이어지자 다시 단행본으로 풀게 되었는데 전집으로 구매를 하신 분들 가운데 저 책에 대해서 상당한 거부반응을 보이신 분들이 꽤 있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단행본으로 다시 내면서부터는 저 책을 아예 싹 빼버렸지요.

지금은 그나마 저 책이 가지고 있던 네버랜드 픽쳐북 40번이라는 고유번호마저 상실한 채 다른책으로 대체가 되었지요...ㅠ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정말 우리가 이 책이 다시 우리 손에 들어올 수 있게 으싸으쌰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몰러유... 개인적으로는 시공사 편집부장님께 메일도 보내봤는데 대답이 없으시네요... 독자의 의견을 우습게 아는건지...슬픕니다요...ㅠㅠ)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한 책이 또 하나 있는데 보림에서 나오던 [론포포]가 바로 그것입니다.

보림은 예나 지금이나 단행본을 위주로 발행하는 출판사인데 한때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지크시리즈를 묶어서 21세기 테마동화라는 타이틀로 염가판매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 책 또한 그때 된서리를 맞았지요...

여기 나오는 소녀들의 얼굴이 서양사람들이 생각하는 동양인의 얼굴, 딱 바로 그거래요.
펑퍼짐한 얼굴에 옆으로 쫙 찢어진 눈.
그런 눈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림을 감히 아이에게 보여줄 수가 없었던 엄마가 많으셨던가 봅니다.
울 아들은 재미있다고만 하던디....

내용은 동양의 빨간모자 이야기라고 부제가 달려 있는데
[빨간모자] 이야기하고 우리나라의 [햇님달님] 이야기하고 두개가 섞여 있는 거 같아요.


[햇님달님]이 '태양과 달이 어떻게 생겼나'하는 기원설화 비스무리한 그런 이야기라고 해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결국은 하늘로 올라가버리고 마는 식의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민족성과 닮았다... 싶어 전 이 [론포포]가 더 마음에 끌려요.
현명하고 재치있게 늑대를 물리치잖아요 ^^

 

 


[벨라인형]이라고 ㅇ ㄹ 아 라는 회사에서 만든 ㄴㅇㅋㄷ라는 전집에 포함된 그림책이 있어요.

 

이 책이 독일에서는 상당히 반응이 좋은 거 같아요.
아이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읽어냈다는 평이 많거든요.


근데 제 주위에서 이 책 좋다고 말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동생이 너무너무 싫어서 동생의 벨라인형의 머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버리는 내용이며 추상적이고 복잡한 그림이 어우러진 이 그림책이 너무너무 무섭다고 말해요.


근데....전 역시 이 책이 아이의 마음을 잘 짚어낸 거 같아 참 좋았거든요...;;;(역시 난...엽기부인...;;)
우리 큰애만 해도 엊그제 통곡을 하면서 울더라구요.
엄마가 동생만 이뻐한다고 하면서요. 똑같이 싸우고 혼났는데 엄마가 동생만 안아주고 자기는 안사랑한다고 하면서 진짜 초상집에서나 들을 수 있는 울음소리를 내더라니깐요.

그래서 그런가..울 큰놈은 이 책 읽어줄 때 히히히 웃으면서 봤어요.
아주 그 상황이 실감나는 모양이더만요.

다시 [우락부락 염소 삼형제]로 올라가서...^^;;;
(왔다갔다 삼천포가 제 특기이옵니다...;;;)


이 책이 처음 미국에서 출판되었을 때의 반응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였다고 해요.
괴물을 갈기갈기 찢어죽인다는 폭력적이고도 잔혹한 내용에 당장 금서의 목록에 올랐는데 막상 아이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서 사서들이 다시 이 책을 보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 명작으로 꼽히고 있잖아요.


여기서 또 제가 부러운 건 사서라는 존재의 중요성이예요.


서양에서는 사서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여 단순히 책을 대여해주고 도서관을 관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책의 가치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로 이들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우리는 책의 시장역사가 짧다보니 현재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또 어린이그림책의 경우..인터넷의 보급으로 인해 웹 안에서 내려지는 엄마들의 평가..
거기에다가 저같이 허접한 사람의 리뷰조차도 딥따시 길기만 하면 와~~뭔가 있어보여...이래질 수 있는 그런 약점이 있는 거 같아 많이 안타까와요. (사실은 아닌데 저혼자만의 착각? ㅋㅋㅋ)
그래서 책을 이야기할 때 아주 신중해지고 싶은데 또 그러다보면 자유스럽지 못하게 되는 양면성이 있어서 자꾸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있는 중... ^^

어...또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도 아닌데...에구...

아무튼 어른들이 보기에는 난해하고 잔인하고 조악하다 하더라도 그림책 작가는 어린이라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들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기 안에 형상화된 어린이상을 가지고 책을 만들었을거예요.
그렇기에 엄마는 허거덩!! 하는 책에 아이들은 열광하고 좋아하고..그러는 거 아닐까요?

어른들은 역시 내면을 묘사하는 것, 묘사가 아름다운 것, 분위기가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 꿀밤나무 제7호 34쪽

[일곱마리 까마귀]라는 옛이야기 있잖아요.


거기서 누이동생이 까마귀가 되어버린 일곱오빠를 찾아 가는데 유리산에 도착해 문을 열려고 보니 별님이 준 열쇠인 병아리 다리뼈를 잃어버리고 말죠.
그래서 누이동생은 새끼손가락을 잘라서 그 문을 열어요.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냐?? 정말 너무하다는 반응이 많아요.

그런데 말이죠..아이들은 그 누이동생이 손가락을 자를 땐 부르르 몸을 떨며 무서워하지만 결국 오빠들을 무사히 구해내어 다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면 그 아이에게 새*손가락이 있는지 없는지 그건 염두에 두지 않아요.

그냥 와~~ 다행이다..이러고 말죠.


또 개중에는 한참 뒤에 뜬금없이 "근데 걔는 손가락이 없어서 어떻게 해?" 라고 묻는 엉뚱한 놈이 있긴 합디다만 그렇다고 그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끔찍한 일이라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손가락이 없어서 불쌍하네...정도더라구요.

옛이야기 가운데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인  [아기돼지 삼형제이야기]에서는 원래 늑대가 첫째돼지와 둘째돼지를 잡아먹는다고 하더군요.
끝내 늑대는 펄펄 끓는 가마솥에서 빠져서 죽고 말이죠.


브루노 베텔하임이 쓴 [옛이야기의 매력]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말입니다.

아이들은 처음 두마리 아기돼지들이 잡아먹혔다는 것 때문에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성숙한 자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형태의 미숙한 존재형태들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잠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아기돼지 삼형제]를 들으면 아이들은 늑대가 응분의 벌을 받고 셋째돼지가 승이하는 것을 기뻐할 뿐 첫째, 둘째돼지들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혀 슬퍼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어른들이 생각하는 잔인하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자아를 키워나가고 세상을 배워나가는 과정일 뿐이지 그러한 행동을 판단하고 지나치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전 가끔씩은 지나치게 가르치려 들고 뭔가 작가의 이념을 담고자 애쓴 그림책들이 무지하게 부담스럽게 느껴져요.


그림책 가지고 뭔가를 가르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남들 다 좋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안소니 브라운의 [돼지책] 있잖아요?
그게 영~~ 부담스러워요. 아...물론 그림이나 그 페이소스 면에서는 상당히 재미도 있고 좋아합니다만

다만 그놈의 페미니스트관점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거지요.

애들에게 무얼 말하고 싶은 거지요?
엄마를 도와주자? 엄마도 사람이다? 자동차도 고칠 수 있는?
아...물론 애들은 좋아해요. "너희들은 돼지야"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서로 자기가 말하겠다고 싸우면서 말이죠.


하지만 지나치게 어른의 입장에서 말하는 듯해서 좀 그렇더라구요. 다른 면을 찾아보고자 s늘 노력하고 있는 중이지만 불쑥불쑥 남편에게 내밀고 싶어지는 거 있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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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4-05-0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예전에 론포포랑 염소 세 형제 이야기를 사려고 찾아 봤는데 아쉽게도 절판이더군요.
좋은 책이 어른들의 편협한 시각으로 평가로 사장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밀키웨이 2004-05-09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론포포는 구했는데 우락부락은 끝내 구하지 못했답니다. 영어책으로 가지고 있긴 하지만요.
어린이책을 출판하시는 분들이 좀 심지가 굳건했으면 좋겠어요. 지나치게 시장논리에 의해 사장되는 좋은 책들이 있어서 많이 안타깝거든요.
 



 
 
 
 
 
 

돌이네 흰둥이가 누고 간 똥입니다.

흰둥이는 아직 어린 강아지였기 때문에 강아지똥이 되겠습니다.

골목길 담 밑 구석자리였습니다. 바로 앞으로 소달구지 바퀴 자국이 나있습니다.



추운 겨울, 서리가 하얗게 내린 아침이어서 모락모락 오르던 김이 금방 식어 버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오들오들 추워집니다. 참새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와 강아지똥 곁에 앉더니 주둥이로 콕! 쪼아 보고, 퉤퉤 침을 뱉고는,

"똥 똥 똥 ······에그 더러워!"

쫑알거리며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강아지똥은 어리둥절했습니다.

"똥이라니? 그리고 더럽다니?"

무척 속상합니다. 참새가 날아간 쪽을 보고 눈을 힘껏 흘겨 줍니다. 밉고 밉고 또 밉습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런 창피가 어디 있겠어요.



강아지똥이 그렇게 잔뜩 화가 나서 있는데, 소달구지 바퀴 자국 한가운데 딩굴고 있던 흙덩이가 바라보고 빙긋 웃습니다.

"뭣땜에 웃니, 넌?"

강아지똥이 골난 목소리로 대듭니다.

"똥을 똥이라 않고, 그럼 뭐라고 부르니?"

흙덩이는 능글맞게 히죽 웃으며 되묻습니다.

강아지똥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목 안에 가득 치미는 분통을 억지로 참습니다. 그러다가,

"똥이면 어떠니? 어떠니!"

발악이라도 하듯 소리지릅니다. 눈물이 글썽해집니다. 흙덩이는 여전히 빙글거리며,

"똥 중에서도 제일 더러운 개똥이야."

하고는 용용 죽겠지 하듯이 쳐다봅니다.

강아지똥은 기어이 울음보를 터뜨립니다. 울면서 쫑알거렸습니다.

"그럼, 너는 뭐야? 울퉁불퉁하고, 시커멓고, 마치 도둑놈같이·····."

이번에는 흙덩이가 말문이 막혔습니다.

멀뚱해진 채 강아지똥이 쫑알거리며 우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실컷 울다가 골목길 담벽에 노랗게 햇빛이 비칠 때야 겨우 울음을 그쳤습니다. 코를 홀찌락 씻고는 뾰로통 딴 데를 보고 있었습니다. 보고 있던 흙덩이가 나직이,

"강아지똥아·····."

하고 부릅니다. 무척 부드럽고 정답습니다. 하지만 강아지똥은 못들은 체 대답을 않습니다. 대답은커녕 더욱 얄밉다 싶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정말 도둑놈만큼 나빴어."

흙덩이는 정색을 하고 용서를 빕니다.

강아지똥은 그래도 입을 꼭 다물고 눈도 깜짝 않습니다.

"내가 괜히 그래 봤지 뭐야. 정말은 나도 너처럼 못 생기고, 더럽고, 버림 받은 몸이란다. 오히려 마음속은 너보다 더 흉측할지 모를 거야."



흙덩이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어, 제 신세타령을 들려 주었습니다.

"내가 본래 살던 곳은 저쪽 산 밑 따뜻한 양지였어. 거기서 난 아기 감자 기 르 기도 하고, 기장과 조도 가꿨어. 여름에는 자주빛과 하얀 감자꽃을 곱게 피우며 정말 즐거웠어. 하느님께서 내게 시키신 일을 그렇게 부지런 히 했단다. 그러던 것을 어제, 밭 임자가 소달구지를 끌고 와서 흙을 파 실었어. 집 짓는데 쓴다지 않니. 나는 무척 기뻤어. 밭에서 곡식을 키우는 것도 좋지 만, 집을 짓는 것도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니. 집은 사람들을 따듯하게 재워주고 짐승들을 키우는 곳이 거든. 그래서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딴 애들과 함 께 달구지에 실려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갑자기 이야기를 멈춘 흙덩이가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강아지똥이 놀라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어쨌니?"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잔뜩 뿔었던 화는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오다가 나 혼자 달구지에서 떨어져 버렸단다."

"어머나!"

"난 이젠 그만이야. 조금 있으면 달구지가 이리로 또 지나갈 거야. 그러면 퀴 에 콱 치이고 말지.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단다."

"산산이 부서져서 가루가 된다니?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되니?"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걸로 끝이야."

둘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흙덩이가 다시,

"누구라도 눅는 일은 정말 슬퍼. 더욱이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은 괴롬 이 더 하단다."

하고는 또 한 번 한숨을 들이킵니다.

강아지똥을 쳐다보고,

"그럼, 너도 나쁜 짓을 했니? 그래서 괴로우니?"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 나도 나쁜 짓을 했어. 그래서 정말 괴롭구나. 어느 여름이야. 햇볕이 쨍쨍 쬐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목이 무척 탔어. 그런데, 내가 가꾸던 아 기 고추나무가 견디다 못해 말라 죽고 말았단다. 그게 나쁘지 뭐야. 왜 불 쌍한 아기 고추나무를 살려 주지 못했는지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괴롭단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니? 햇볕이 그토록 따갑게 쪼이고 비는 오지 않고 해서 말라 죽은 것 아냐?"

강아지똥은 흙덩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아기 고추나무는 내 몸뚱이에다 온통 뿌리를 박고 나만 의지하 고 있었단다."

흙덩이는 어디까지나 제 잘못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길바닥에 버려지게 된 것을 그 죄 값이라 생각했습니다.

정말 아기 고추나무가 못살게 제 몸뚱이의 물기를 빨아버리는 것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릅니다. 마음으로는 그만 죽어버려라 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게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아 흙덩이는 괴로운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다시 밭으로 갈 수 만 있다면 이제부터는 열심히 곡식을 가꾸리라 싶습니다. 그러나, 이건 헛된 꿈입니다. 언제 달구지 바퀴에 치여 죽어 비릴지 모르는 운명인 것입니다. 흙덩이의 눈에 핑 눈물이 젖어듭니다.

그때, 과연 저쪽에서 요란한 소달구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나는 이제 그만이다.'

흙덩이는 저도 모르게 흐느끼고 말았습니다.

"강아지똥아, 난 그만 죽는다. 부디 너는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나 같은 더러운 게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있니?"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소달구지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흙덩이는 눈을 꼭 감았습니다. 강아지똥은 그만 자기도 한몫에 치여 죽고 싶었습니다.

으르릉·····쾅!

그런데 갑자기 굴러오던 소달구지가 뚝 멈추었습니다.

"이건 우리 밭 흙이 아냐? 어제 이리로 가다가 떨어뜨린 게로군."

소달구지를 몰고 오던 아저씨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는 흙덩이를 조심스레 주워듭니다.

"우리 밭에 도루 갖다 놔야겠어. 아주 좋은 흙이거든."

흙덩이는 무어가 무언지 걷잡을 수 없습니다. 다만 달구지 한편에 얌전히 올라앉아, 방긋방긋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밭으로 도로 돌아가게 된 것을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소달구지가 멀리 가 버린 다음, 아직도 그쪽으로 눈길을 준 채 빙그레 웃던 강아지똥이 혼자서 쓸쓸해졌습니다.

'그 애가 죽지 않고 도로 살던 곳에 가게 된 것이 참말 다행이야. 그럼 난 혼자서 이제부터 어떻게 하나?'

강아지똥은 고개를 갸우뚱 생각을 합니다.

"아니야, 하느님은 쓸데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어. 너도 꼭 무엇 엔가 귀하게 쓰일 거야."

조금 전에 흙덩이가 일러 준 말을 되뇌어 봅니다.

'정말 나도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면 무엇에 귀하게 쓰일까?'

해가 저물도록 웅크리고 앉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어디선가 검은 구름떼가 몰려와 하늘 가득히 덮었습니다.

이내 사뿐사뿐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솜이불처럼 강아지똥을 따뜻하게 덮어 줍니다.

눈 속에 묻혀, 강아지똥은 쌕쌕 잠이 들었습니다.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긴긴 겨울을 지냈습니다.



따뜻한 햇볕이 깔리고 골목길에 눈이 녹았습니다. 봄노래가 어디에나 흥겹게 들렸습니다. 꽁꽁 얼었던 강아지똥도 몸뚱이가 축 늘어지고 노곤해졌습니다. 껌벅껌벅 졸리는 눈을 억지로 뜨고 사방을 둘러 봤습니다. 겨울에 보던 것 보다 모두가 다릅니다.

예쁜 새가 날아갑니다. 꽃고무신을 신고 애들이 골목길을 뛰어갑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

힐끗 돌아보니 병아리떼를 데린 엄마 닭이 분주히 걸어옵니다.

'저건 걸어다니는 새들이구나.'

강아지똥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엄마 닭이 강아지똥 곁에까지 와서 기웃이 들여다 봅니다.

"왜 그렇게 보셔요? 걸어다니는 새님."

강아지똥은 조금 겁이 났기 때문에 무척 공손히 말했습니다.

"뭐라고? 나보고 걸어 다니는 새님이라고? 기막혀라. 이래뵈도 난 여덟 마 리의 아들과 다섯 마리의 딸을 데린 어엿한 병아리 어머니야."

엄마 닭은 조금 화가 난 듯, 그러나 젊잖게 신분을 밝혔습니다.

강아지똥은 코가 빨갛게 되어,

"병아리 어머니,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하셔요."

하고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옳지, 아이들은 역시 잘못했을 때는 곧장 용서를 비는 것이 좋아."

이렇게 엄마 닭은 지나치게 위엄을 보이고는 이어서,

"널 들여다 본 것은 행여나 우리 아기들의 점심 요기라도 될까 싶어서 본 거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어쩌면 소름이 쫙 끼칠 만큼 무서운 말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고

"점심으로 나를 먹어주시겠다는 거죠? 좋아요, 모두 맛나게 먹어 주어요."

하고는 샛노란 열세 마리의 병아리를 둘러보았습니다.

이런 귀여운 아기들의 점심밥이 되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다면 기꺼이 제몸을 내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 닭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너는 우리에게 아무 필요도 없어. 모두 찌꺼기뿐인 걸."

그러고는 병아리를 데리고 저쪽으로 가 버립니다.

"꼴꼴꼴·····."

"삐악 삐악 삐악 ·····."

강아지똥은 또 풀이 죽었습니다.

'나는 역시 아무데도 쓸 수 없는 찌꺼기인가 봐.'

저절로 한숨이 나왔습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눈물이 나오고 ·····.

강아지똥은 그만 하느님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모없는 찌꺼기 똥까지 만들 필요는 없지 않나 해서입니다.

봄날의 하루 해가 무척 지루합니다.

느리게 그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밤이 되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나왔습니다.

반짝반짝 고운 불빛은 언제나 꺼지지 않습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다음날이면 역시 드높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습니다.

강아지똥은 눈부시게 쳐다보다가 어느 틈에 그 별들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아름다운 불빛."

이것만 가질 수 있다면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강아지똥은 자꾸만 울었습니다. 울면서 가슴 한 곳에다 그리운 별의 씨앗을 하나 심었습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봄을 치장하는 단비가 촉촉히 골목길을 적셨습니다. 강아지똥 바로 앞에 파란 민들레 싹이 하나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너는 뭐니?"

강아지똥이 내려다보고 물었습니다.

"난 예쁜 꽃이 피는 민들레란다."

"예쁜 꽃이라니! 하늘에 별만큼 고우니?"

"그럼!"

"반짝반짝 빛이 나니?"

"응, 샛노랗게 빛나."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어쩌면 며칠 전에 제 가슴 속에 심은 별의 씨앗이 싹터 나온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어떻게 그런 꽃을 피울 수 있니?"

물어 놓고 얼른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건 하느님께서 비를 내리시고 따뜻한 햇볕을 비추시기 때문이야."

민들레는 예사로 그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역시 그럴 거야. 나하고야 무슨 상관이 있을라고·····.'

금방 강아지똥의 얼굴이 또 슬프게 일그러졌습니다.

그러자 민들레 싹이,

"그리고 또 한 가지 꼭 필요한 게 있어."

하고는 강아지똥을 쳐다보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

"네가 거름이 되어 줘야 한단다."

강아지똥은 화들짝 놀랐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다니?"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 속으로 들어와야 해. 그래서 예쁜 꽃 을 피게 하는 것은 바로 네가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가슴이 울렁거려 끝까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 과연 나는 별이 될 수 있구나.!'

그러고는 벅차 오르는 기쁨에 그만 민들레 싹을 꼬옥 껴안아 버렸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비는 사흘 동안 계속 내렸습니다.

강아지똥은 온 비에 맞아 자디잘게 부서졌습니다. 땅 속으로 모두 스며들어가 민들레의 뿌리로 모여들었습니다. 줄기를 따고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습니다.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다. 향긋한 내음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방긋방긋 웃는 꽃송이엔 귀여운 강아지똥의 눈물겨운 사랑이 가득 어려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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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4-04-14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까지...@@
밀키님 리뷰는 넘 멋집니다..
자주 자주 보여주세요..
추천 꾸욱~~
만화만 생각했었습니다..넘 좋네요....

밀키웨이 2004-04-15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이 리뷰가 아니죵 ㅎㅎㅎ
동화 원본 갖다 놓은 거니까요

반딧불,, 2004-04-19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눈에 암만해도 콩깍지가 씌였습니다..
벗겨주실 분...두리번두리번...

아영엄마 2004-07-17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퍼갑니다..(원본을 아직 못 읽어봤거든요..^^*)

chika 2004-07-19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눈엔 '퍼가기'가 안보여서 여러번 보고 또 보고 했다는... ^^;;

tnr830 2004-07-19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화 잘 읽구 가요
눈여겨만 보았던 건데^^

D 2020-04-21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vhvv

김짱돌 2020-07-13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ㅏ추둘

2020-07-30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 샌주
 


에릭 퓌바레 글·그림, 김예령 옮김
도서출판 달리


저번에 프랑스의 그림책들이 봉봉거리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말씀드렸죠?
진짜로 프랑스의 그림책에서는 꼭 슈크림과도 같은 그런 달짝지근함과 엉뚱함이 느껴져요.
심각한 주제를 다루는 그런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말여요. 아직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서도 ^^
프랑스에 대해 어떤 아련한 환상의 나래를 펴게 된 데는 어린날 눈물 줄줄 흘리며 보았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때문이 아닐까...해요.



가보지 않은 나라에 대한 환상이야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프랑스에 대한 환상은 그래서 더 각별한지도^^

프랑스사람들의 1인 평균 책 구입량은 7.5권이라고 해요.
그들에게는 독서가 굉장히 보편적인 취미생활이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독서를 위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기도 해서라는데 그런 게 부러운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제가 처음 프랑스 작가로구나 하는 의식을 갖고 처음 접한 사람은 [어린왕자]의 생떽쥐베리였던 거 같아요.
그리고 나서 기억나는 것은 르네 고시니와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꼴라]

[달지기 소년]이 첨에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 때문이었어요.
달을 지킨다니...오호 특이하군... 그랬지요.
거기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짙은 푸른색의 밤하늘에 떠있는 하얀 달 위에 한소년이 올라가 이 천과 저 천을 이어서 만든 커다란 천으로 달을 반쯤 가리고 있어요.
뭔가 심상치 않다는 냄새가 났죠.
책을 딱 펼쳐서 첫장을 보니 달을 따드리고 싶은 나의 소중한 부모님께라는 헌정사가 나와요.
감동스럽더만요.
사랑하는 아들에게...조카에게...손자에게... 친구의 딸에게.. 등등등은 보았지만 그림책에서 부모님께 드리는 헌정사는 이게 첨이었거든요.
더구나 달을 따드리고 싶다니.. 왠지 감동의 물결이 넘실넘실~~~

아이가 아빠에게 달을 따달라고 하는 이야기야 에릭 칼의 [PaPa, Please Get the Moon for Me]로 익숙하잖아요?   

서양사람들에게 달이란 것은 늘 그렇게 따다가 목걸이도 만들고 가지고도 놀고 싶은 그런 거인가 봐요.
왜 공주님과 어릿광대의 이야기도 있잖아요.
달을 따달라고 웃지도 않던 공주님 이야기...제목이 뭐더라????
[공주님의 달]이라고 네이버지식검색이 알려주는구만요 ^^

하여간 그런 두근두근함으로 열어본 그림책 속...

현재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그 어떤 시간대...
300년 동안 달지기를 한 늙은 자몰레옹 할아버지는 이제 쉬고 싶어졌어요.
할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밤마다 달 앞에 커다란 천을 드리워 달빛을 조금씩 가리는 일로 할아버지가 쉴 수 있는 날은 보름달이 뜨는 날과 달이 없는 그뭄날밤 뿐.

우주학교라는 신비한 곳에서 아주 어려운 달지기 자격증을 얻은 티몰레옹은 그만 바지주머니가 해져 구멍이 나는 바람에 몸을 공기처럼 가볍게 만들어서 달까지 갈 수 있는 귀중한 알약을 잃어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달은 항상 휘둥그렇게 밝을 수 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티몰레옹이 달에 가야할텐데 어떻게 가지요?


달에 가기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재미나지만 푸른색과 초록색이 어우러진 그림이 너무너무 예뻐요.
요즘의 전..이노무 그림에 목숨건 듯... ^^

에릭 퓌바레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또 이 궁금녀 아마존 프랑스에 가서 검색을 해봤지요.
그랬더니 낯익은 책 하나가 띠융@@

바로 중앙출판사에서 나왔던 전집 "다빈치동화나라"에 있는 [여우 가스파르와 왜가리 가스통]이더만요.
얼마나 반갑고 횡재한 기분이던지 ^^
전집으로 책을 사는 것이 그렇게 좋은 건 아닌데 이런 경우도 있구나 싶으니 굉장히 좋은 거 있죠?

"다빈치동화나라" 전집은 지금은 중앙미디어에서 벨 이마주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으로 내고 있는데 아직 [여우 가스파르와 왜가리 가스통]은 나오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죠.
에릭 퓌바레의 인기가 좋거나 아니면 건의가 많이 들어오면 이 책도 곧 만나게 될런지 말예요.

근데 우리 아들내미...이번에도 여지없이 엄마를 깨갱~~하게 만든 것이 뭐시냐 하믄...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이잖아"라는 상당히 유식한 과학지식을 내보였답니다...-_-;;
과학적 사실을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알게 되면 환상의 세계가 일찌감치 깨진다는 말을 듣기 했었지만...정말로 말이죠...어찌나 섭섭하고 슬프던지...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모양이 바뀌긴 하지만 그래도 달지기가 있어서 조절하는 거 아닐까?" 라는 얼토당토한 말을 내뱉은 이유가 어떻게든 환상의 세계를 갖게 해주고 싶은 어미의 웃기고도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말한다면 말이 되려나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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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
수잔 발레이 글 그림 / 지경사 / 1998년 7월
 

     오소리 아저씨가 우울하대요
하이어윈 오람 글, 수잔 발레이 그림 / 지경사 / 1998년 7월



수잔 발레이가 그림을 그린 이 책들 두권은 현재 둘 다 절판인 상태이지만 밑의 "우울하대요" 는 아직은 인터넷 서점등에서 구입이 가능한 상태이고, "소중한 선물"은 오프라인의 큰서점 등에서 간간히 구입이 가능하기에 혹시라도 관심이 있으시면 눈여겨 보시라고 소개해봅니다.


저자인 수잔 발레이는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인데 잔잔하고도 섬세한 화풍이 특징으로  동물그림책을 많이 그렸습니다.
위의 책 [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로 마더구스상을 받기도 했답니다.
이 책은 또 그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첫번째 책이기도 하지요.
현재 국내에는 그녀가 그림을 그린 책으로 두권이 있습니다.

([고슴도치와 아기 곰]에서는 수잔 발리라고 되어 있어요)

[오소리 아저씨의 소중한 선물]은 죽음에 관련된 아주 잔잔하고 마음 따뜻한 내용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오소리 아저씨..
죽음이란 그저 숨을 쉬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슬퍼할 친구들을 걱정하지요.

친구들을 위해 편지를 쓰고는 이상하고 멋진 꿈을 꾸며 아저씨는 조용히 세상과 작별을 합니다.

오소리 아저씨의 죽음을 슬퍼하는 숲속의 동물친구들은 하얀눈이 내리는 겨울 내내 슬퍼하지요.
따뜻한 봄이 와서 숲속의 친구들은 한자리에 모여 오소리아저씨와의 기억들을 떠올립니다.
종이인형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신 오소리아저씨...
스케이트를 잘 타게 도와주신 오소리 아저씨...
맵시있고 단정하게 넥타이를 매는 법을 알려주신 오소리아저씨...
숲속의 친구들은 아저씨에 대한 추억이 그가 남겨준 소중한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두더지는 마지막으로 오소리 아저씨를 만났던 언덕에 올라가 가만히 말하지요.
"고마워요, 오소리 아저씨"

(책소개를 하더라도 전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는다가 제가 평소에 지키고자 하는 원칙인데 아무래도 이 책은 절판이기도 하고 해서 스포일러 같긴 합니다만 이번만 이렇게 내용을 넣어봅니다...)

이 책은 아마존 독자평가에서는 별 네개와 다섯개를 받은 아주 아름다운 책이예요.
그런데 우리나라 독자들 구미에는 그리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출간되고 2판인가 찍고서 그만 절판되었다고 하더이다.
전집이 승승장구하던 그 시절... 죽음을 아이에게 알려준다는 것이 아무리 그 내용이 따뜻하고 좋다 하더라도 영 깨름칙하고
밝고 아름다운 다른 책을 보여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엄마들이 많았겠지요 ^^
지금은 그때와는 또달리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해서 다시 출간하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미국의 Publishers Weekly의 서평을 긁어왔습니다.

Warm and sensitive illustrations reflect the hopeful mood of this tale about woodland animals learning to accept their friend Badger's death. Ages 4-up.



(^__^;;; 해석해 보라고 하지 마십쇼...;;
걍 감으로 대충 읽는 것이지 정확하게 읽는 것이 아니니...ㅠㅠ)

영어책 안에 들어있는 책소개를 보더라도 참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그림 끌어오는 재주가 없어서리...링크로 걸어놓습니다.
꼭 꼭 눌러서 보십시요 ^^

눌러주세용~~


죽음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아직까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심각하게 맞닥뜨려보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
죽음이란 단지 멀리 여행을 떠나서 만날 수 없는 것일 뿐이고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이 그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한 그는 우리 삶의 한부분으로 남아있는다라는 것이 참 아름다운 메세지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 책을 제 아이에게 읽어주는데 어찌나 가슴이 뭉클해지던지 또 코맹맹이 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 아들녀석..."엄마 또 울지? 또 울지?" 그러면서 놀려대긴 했습니다만
그녀석 또한 표정이 심각했음을..그리고 남자라는 그 어줍잖은 생각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내보이지 못했다는 것을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토미 드 파욜라의 [위층 할머니 아래층 할머니]에서도 엄마는 말씀하시죠.

      비룡소의 그림동화 100  [위층 할머니, 아래층 할머니]
      토미 드 파올라 글·그림, 이미영 옮김

 


토미는 할아버지와 아래층 할머니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지요.
그러고는 곧장 위층 할머니 방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하지만 침대는 텅 비어 있었지요.
토미는 울기 시작했어요.

“위층 할머니가 다시는 안 오나요?” 토미가 묻자 엄마가 부드럽게 말했어요. “그렇단다. 하지만 할머니는 항상 네 마음속에 있어.
네가 할머니를 생각하면 언제라도 할머니는 토미한테 돌아올 거야.”
그때부터 토미는 아래층 할머니를 그냥 할머니라고 불렀어요.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토미는 문득 잠에서 깨어났어요.
창문 밖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지요.
그때 갑자기 별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어요.

토미는 벌떡 일어나 엄마한테 달려갔지요
"엄마, 방금 별똥별을 봤어요"
그러자 엄마가 대답했어요 "그건 아마 위층 할머니가 토미한테 해주는 입맞춤이었을거야"



   

미래그림책 12  [우리 할아버지]
    릴리스 노만 글, 노엘라 영 그림, 최정희 옮김


살아계셨을 땐 지겹고 싫었던 사람일지라도 그가 떠나고 난 뒤에는 그리움으로 되살아나
그가 나를 부르던 "소니 짐"이라는 이름마저도 그리워지는 거지요.
그리고 그가 더 오래오래 살아있었더라도 좋았겠다고 되뇌이게 하는 건...
그가 남기고 간 소중한 선물들 때문이겠지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적어도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 수 있겠구나."
그러면서도 울음을 터뜨리셨어요.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시기 전까지, 엄마는 아주 맛있는 음식을 만들곤 했어요.
스파게티, 샤브샤브, 탕수육 같은 온갖 요리들을요. 할아버지는 그런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사 먹는 음식도 아니고, 이런 걸 뭐가 좋다고 먹냐?"하시며 불평을 하셨지요.
그래서 우리는 식사 때마다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늘 드셨던, 두껍게 잘라 구운 고기나 소시지 같은 것을 먹었어요.
엄마가 왜 우셨는지 알 수가 없어요.
좋아하는 음식을 다시 만들 수 있어서 기쁠 텐데 말이에요.



이렇게 살고 사랑하고 추억하고...
아름다운 그림책을 보면서 잠시나마 마음이 젖을 수 있으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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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04-13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도 맛난 소개 더 부탁드려요..아이 배고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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