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달린다.  

곧장 달린다.

부러질지언정 마냥 달린다. 

나까지 달리자고 소매끝을 당긴다.  

달려야 하는 게 맞지만, 맞는 게 불편한 나는 망설인다.  

맞는 게 옳은 것도, 망설이는 게 그른 것도 아님을, 

맞는 게 그른 것도, 망설이는 게 맞는 것도 아님을,   

불가해한 오답일수록 삶에선 정답에 가까웠으므로  

(그것을 불혹 지난 한 시절에 알았다)  

나는 편리한 망설임을 택한다.

망설임이 누는 묵은 똥이야말로 내 존재증명 

내가 눈, 똥덩이를 연민으로 되돌아 보는 것 

그가 본, 가래침을 외면하며 앞으로만 달리는 것   

그 둘 다 불가해하기만 한 생의 정답인 것을   

그가 상처 많은 영광을 골방에서 맛볼 때  

나는 군중 속에서 (기어이) 백전백패할 것이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 서문 패러디)  

 

......   사람 가까이 하면서 나는 깨친다 

모든 사람은 다 다르고 

개별자 저마다가 옳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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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텔레비전 드라마에 잘 집중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입장에서 그런 면은 환영받을만한 건 못된다. 드라마는 삶의 표현 양식 중 하나이다.  갈등, 번민, 절망, 화해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삶을 녹여내는 글쓰기와 그리 무관한 일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내뿜는 촌철살인의 대사와 적재적소의 기발한 에피소드 같은 걸 눈썰미 있게 보면, 분명 글쓰기에도 도움이 될 터인데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따라가거나 주인공에 감정이입 되기도 전에 비현실적인 상황이 전개되면 나는 그만 지겨워져 딴 짓을 하곤 한다.  





  불륜 설정, 대가족주의에 대한 환상, 신데렐라 만들기, 은근한 쇼비니즘 등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어 온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시청률을 의식해야 하는 방송사 입장에서는 대중의 입맛을 자극하는 그런 소재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한데, 도가 지나쳐 리얼리티 부재를 넘어 막장으로 치닫는 드라마에서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욕하면서 본다는 그런 드라마에 쉽게 동참하지 못하는 내 성정이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아직도 헛갈린다.   



  어제 우연히 케이블 방송에서 앙코르 단막극 한 편을 만났다. 첫 장면부터 인상적이라 누가 강제하지 않아도 내 오감은 화면에 맞춤하게 반응하기 시작한다. 장편 드라마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과는 다른 신선한 감흥이 절로 일었다. 단숨에 몰입한 이 작품이 여운이 남는 건 짧은 시간, 오직 작품성만으로 시청자와 공감하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경희 드라마작가의 ‘우리햄’(드라마 시티 단막극, 2004 방영)은 이제 내겐 매혹적인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노망 든 할아버지, 병석에서 매일 죽는다는 말을 달고 사는 할머니 그리고 주변 모든 이들이 포기한 문제아 우리햄(우리형님), 이 작품은 이렇게 아이보다 못한 어른 셋을 건사하는 아홉 살 철기의 고군분투 생활기를 담은 단막극이다. 



  <우리집에는 얼라보다도 몬한 어른이 서이나 된다. 첫 번째 얼라는 노망이 걸리가 손자가 되는 내보고 오빠야, 오빠야 하는 할배고, 두 번째 얼라는 지난겨울부터 방에만 꼼짝도 안하고 들눕어가 맨날 죽는다죽는다 꽁까는 할매고, 세 번째 얼라는 학집동포(학교, 집, 동네에서도 포기한 문제아) 우리햄이다.> 이렇게 방백하는 애어른 철기. 아홉 살이 감당해야할 삶의 비애와 의연함 앞에서 나는 서늘한 듯 다사로운 한줄기 바람이 지나는 걸 느꼈다.    



  어린애처럼 과자 한 봉지에 집착하는 할배, 똥오줌 기저귀를 자주 갈아줘야 하는 할매, 여전히 건달 신세를 면치 못한 우리햄. 햄(형)이라 부르지만 실은 자신의 아빠임을 진작에 철기는 알고 있다. 이 작품이 과장되지 않고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건 철기의 속 깊은 행동 이면에 동심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말썽만 피우는 우리햄을 떠나, 풍문으로만 듣던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기차역 장면. 딱히 희망적이랄 것도 없는 그 계획이 현실이 되기 전, 철기는 플랫폼에서 우리햄의 진심을 알아 버린다. 자신을 버린 사람은 망나니 아빠가 아니라, 돈 있는 남자를 따라 간 엄마였다는 사실. 플랫폼 수하물 뒤에서 배불뚝이가 된 엄마와, 떠난 엄마로부터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입씨름 하는 아빠를 훔쳐보던 철기는 풀썩 주저앉아 대성통곡하고 만다. 애어른을 버린 자리에 아홉 살 다친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앉은 것이다. 화면을 통해서 얻는 깊은 울림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절감한 장면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알았을 때도, 할배의 억지와 할매의 투정과 우리햄의 속썩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아홉 살의 의연함이 얼마나 감당하기 어려웠던 가를 반증하는 것이기에 더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진정한 부성애를 맛보게 된 철기는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 번째 얼라는 아홉 살이나 묵은 기, 즈그 아부지 무등 타는 거로 제일 좋아하는 나, 강철기다.> 오프닝을 살짝 비튼 피날레. 이런 수미쌍관의 맵시덕분에라도 이 작품은 오래토록 내게 여운을 남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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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08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님의 글로만 본 드라마지만 정말 괜찮은 드라마네요.
욕하면서 본다는 드라마 대열에서 이탈한지는 아주 오래 되었지만, 요즘 파스타에 꽂혀서 백만년만에 드라마를 보게 됐어요.ㅋㅋ 우리애들이 엄마도 보통 아줌마와 다르지 않구나!를 외쳐대지만 그래도 꿋꿋이 보고 있어요. 아~ 오늘은 월욜 파스타 하는 날이구나, 룰루랄라~ㅋㅋㅋ

다크아이즈 2010-03-24 20:38   좋아요 0 | URL
아웅, 저도 드라마에 꽂히고 싶어요. 노력해도 조금만 보다 보면 엉뚱한 데로 빠져요. 관심 덜 한 곳에, 몰입하는 건 아무래도 힘들겠지요?

穀雨(곡우) 2010-03-08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능적이든 구조적이든 결손가정이라는 게 마음이 짠~해지는 법인가 봅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홉살이여서 그런 지 전 <아홉살 인생>이 떠오르네요.
다른 세상이지만 동심은 세상에 덜 패이고 덜 깍인 느낌입니다.
드라마, 전 광입니다.^^ 남들 안 보는 드라마만, 진부해 빠진 소재지만 가족 간의
사랑, 희망... 뭐 그런류의 드라마 좋아라합니다.^^

다크아이즈 2010-03-14 23: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홉살 인생의 이경희 식 버전이죠, 뭐.
드라마 광 되는 법 좀 가르쳐 주시와요. ㅋㅋ 도무지 몰입 단계까지 힘들어요.
 

  나는 한 남자랑 십구 년째 살고 있다. 그럭저럭 그 많은 시간을 별탈없이 건너온 것은 전적으로 그 남자 덕분이다. 이런 밑지는 고백을 하는 건 지금이 한밤중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계바늘이 세 시를 향해 가고 있고, 아무래도 이 시간은  이성의 머리칼이 곧추 서기보다는 감성의 손끝이 예민해질 때니까. 이런 틈을 타 양심고백 한 번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비록 내일 한낮  멀쩡한 정신이 되었을 때, 이 글이 손발 오그라들게 한다며 지우게 될지라도.    

  천성이 게으르고,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공주과인 나는 그 남자 때문에 전업주부로서의 자생력을 점점 잃어 가고 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볼품없는 살림솜씨는 십구 년째 자발적 퇴화 진행 중이시다. 번듯한 직장이 있어 시간에 쫓기는 것도, 쌈박한 재테크 솜씨로 큰 소리 칠만한 상황도 아니면서 어쩌자고 뻔뻔하게 주부로서의 직무유기를 행하고 있는지지 불가해하다. 하지만 그 답을 나는 정작에 알고 있다. 십구 년 산 남자의 이해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 대신 포기, 라는 말이 더 적확하겠지만 그 표현 쓰면 너무 서글퍼질 것 같다.) 

  오늘 저녁에도 변함없이 내 할 일(딱히 할 일이랄 것도 없지만, 여기서 <내 할 일>이란 가사노동을 제외한 내 개인적인 모든 활동을 말한다.)을 하고 있는데, 그 남자는  자신의 출근복과 와이셔츠를 한무더기 가져다 놓고 내 옆에서 묵묵히 다리기 시작한다. 괜히 계면쩍고 미안해진 나는 '히야, 언제봐도 당신은 뜬 구름보다 쉽게 바지주름을 잡네.'라고 딴에는 유머랍시고 한마디 했다. '괜히 미안한 척 말도 안 되는 멘트 안 날려도 된다. 속 보인다'라고 그 남자가 멋대가리 없게 받아친다. 지기 싫어 나도 모르게 또 다음 멘트를 날린다. '뭐,꼭 전업주부라고 옷 다리라는 법 있냐?' 그 말은 안 하는 게 나았을까? '어이구, 니가 전업주부면 내가 옷 다리겠냐?' 이런 비아냥을 들었으므로. (그 비아냥거림 속에 숨어 있는 그 남자의 속 깊은 신뢰를 발견하는 재미는 글로 표현하기엔 벅차다) 

  그 남자 아니라면 '직장없는 취업주부' 행세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까탈스런 남편 만나 몸과 맘을 다친 친구가 있다. 하루 다섯 건씩 과외하면서, 삼수하는 아들 뒷바라지 하는 것도 모자라 배려없는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친구와 통화할 때, 실수라도 그 남자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 그렇듯, 미뤄둔 <남편 흉보기>대회에 참가한 것처럼 과장해서 그 남자의 단점을 읊어댄다. 어쩌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은 그 남자이지만 입장 바꾸면 내 단점은 그보다 훨씬 더하다. 따라서 이만하면 감사한 일이라고 오늘 같은 감상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도 컴맹인 마누라를 위해 엑셀 수식을 만들고, 깔끔하게 자료를 재배치하느라 잠자리에 늦게 든 그 남자, 지금 옆에서 열심히 코 골고 있다. (자료 만들어 주면서도 어찌나 잘난척을 해주시는지 당장 컴퓨터 배우러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도 꾹 참았다. 삐지면 회복하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 이런 우라질리아~) 늦게까지 잠 못 들고, 서재질이나 하고 있는 마누라의 무서운 밤을 위해 불 끄지 않고서도 마누라 곁에서 잠드는 습관을 들인 그 남자. 잠들기엔 너무 밝다고, 다른 방으로 결코 피신하지 않는 그 의리야말로 십구 년이 낳은 미운 정 고운 정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그 남자 앞에서 숱하게, 오묘하게 변덕스런 내 본심은 더도 덜도 아니고 지금 이 순간의 상태가 아닐까 싶다. 코 고는 그 남자의 콧머리를 한 번 비틀어주고  곧장  베개 끌어 안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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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21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손발 오그라드는(정말?^^) 염장 페이퍼네요.^^
나는 남편 셔츠 안 다려준지 오래됐고(아니 다림질이 필요없는 옷을 주로 입으니까^^)
아들 교복은 열심히 다려준답니다. 남편보다 애인이 더 좋잖아요.ㅋㅋ
사실 다림질은 남자들이 더 잘한대요. 군대에서 주름 칼처럼 잡았던 전적이 있는지라...
함께 한 세월이 19년이라니 님도 연차가 꽤 높으시군요.^^

다크아이즈 2010-02-23 12:1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은 자식 농사 잘 짓고 있는 걸로다가 제대로 염장인걸요. ㅋㅋ 저도 울 아들 교복은 다려줘요. 혹시라도 여학생들이 찜 해줄까 싶어서요. 맞아요, 울아저씨도 칼주름 잡아요. 것 갖고도 얼마나 잘난척인지...

비로그인 2010-02-2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 전 `내 꿈은 현모양처'라고 미용실 언니에게 이야기했더랬지요. 그랬더니 미용실 언니 왈, `전 그냥 모처 하고 싶어요'

엥? 말인즉슨 `현, 양' 이 글자는 제겐 해당사항이 없어요' 라는 것이었지요.

아, 나도 그냥 모처구나. 현진건의 빈 처 패러디도 아니고 이건 뭐람.

다크아이즈 2010-02-23 12:10   좋아요 0 | URL
어멋, 제가 존경하는 주드님 납시었다. 우아한 포스에 감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 주드님은 모처로만 있어도 현양의 포스가 느껴지니 그걸 즐기시기만 해도 돼요. ㅎㅎ

2010-02-23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3 1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3 1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0-02-26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옛날엔 두어 달에 한번쯤 옷도 다리고 했는데요...
요즘 안했더니 직장 다니는 아내가 세탁소에 가져다 맡기더라구요.
편하기도 하고... 싸고 하니깐...
다리미는 잊고 삽니다. ㅎㅎ

다크아이즈 2010-02-28 03:26   좋아요 0 | URL
직장 있는 여성의 (가사노동) 직무유기야 백만 번 이해되지요. 그런 여성들을 위하여 마을마다 밥공장이나 세탁소가 있어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임돠~ 글샘님처럼 되어야 정상이라는...ㅋㅋ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창연 작, 바다 이야기 시리즈 중에서> 

 

 

  베레모를 쓰지 않은 선생님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간혹 두피에 땀이 챌 때나 엉긴 이마머리칼을 정리하기 위해 모자를 고쳐 쓴 적은 있었다. 하지만 결코 사람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보인 적은 없었다.

  어느 날 한 수강생이 물었다. 왜 빵모자를 쓰시냐고. 당연한 대답이 나올 줄 알았다.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치장 자체도 거추장스러우니 편리를 위해 모자를 찾는다는 그런 대답.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선생님은 ‘단 한 순간도 화가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모자를 쓴다’라고 답하셨다. 흔히 ‘화가 빵모자’로 불리는 베레모는 선생님께는 자신을 향한 채찍이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매개체였다. 다시 말해 선생님의 자존심이자 예술혼의 상징이었다.

  진정한 예술가였던 선생님은 얼마 전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화단뿐만 아니라 예술계에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먼저 가신 선생님은 내 초등학교 은사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갓 스물을 넘겼을 선생님은 초임 발령지로 우리학교에 오셨다. 삼십 년이 훨씬 지났지만 우리반 담임이셨던 선생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책이 귀하던 그 시절 선생님은 아침마다 동화책을 읽어주셨다. 선생님 덕분에 ‘엄마 찾아 삼만 리’(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마르코는 어린 내 상상력을 자극하던 친구가 되어주었다. 이탈리아에서 대서양을 건너 저 먼 아르헨티나까지, 오직 엄마를 찾아 떠나던 마르코의 험난한 여행기를 선생님은 실감나는 톤으로 구연했다. 하숙방 한 벽면을 장식했던, 약관에 공모전에 입상한 솟을대문 그림도 잊을 수 없다. 어린 우리들에게 선생님은 신세계이자 경이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일 년 만에 전근을 가신 뒤, 선생님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십여 년 전, 그림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해 등록한 문화센터에서 선생님과 해후했다. 지도강사와 수강생으로 다시 만난 것이다. 꿈에서조차 생각지 못한 만남이었다. 다시 만난 선생님은 그야말로 나의 사표였다. 어쩌다 공식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으면 꼭 따로 할 이야기를 쟁여놓으신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셨다. 늦게까지 술잔을 마주해도 취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꼿꼿한 모습이셨다. 취한 사람 상대하지 마라. 시류에 휩쓸리지 마라, 뜻대로 안 된다고 너무 힘겨워하지 마라, 올곧음을 항상 마음에 새겨라. 스승은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 잔소리꾼이셨다. 나는 그 말씀들이 싫지 않았다. 내게 하는 훈육의 형식이었지만, 선생님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내면의 소리로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그림이 주목 받기 시작했을 땐 그 누구보다도 기뻤다. 선생님 그림의 주제는 한마디로 고독이었다. 감상하는 이 누구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만큼 화폭엔 정갈한 구체성이 담겨 있었다. 담대한 여백과 잎 없는 큰나무줄기는 허무와 내면의 고독을 말해주는 상징 코드 같은 것이 돼버렸다. 잎조차 없는 도시의 나무들, 한 방향으로 세찬 바람결을 맞는 소나무 등에서 나는 개별자 안에 서성이는 불안들을 감지하곤 했다. 캔버스의 반을 차지하는 흰 이불 호청이 주는 순백의 공허, 뒷짐 지고 허리 구부러진, 한낮의 적요를 감내하는 할머니, 무료한 해변의 적막을 견디는 소년, 그 뒤를 앞서거나 뒤따르는 누렁이와 흰둥이. 선생님 그림에 등장하는 구체적 대상들은 온전한 고독에 이르는 한 예술가의 막막한 고통을 대변하고 있었다.   

  지난 가을, 병세가 완연해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그것이 내가 본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남은 삶 ‘이기적으로 살란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 말씀을 예술혼에 다다르기 위한 선생님의 강인한 다짐으로 이해했다. 그 다짐 굳히기도 전에 선생님은 너무 빨리 떠나시고 말았다.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여전히 빵모자 쓰고 섬세한 필치로 둥치 굵은 나무에 고독의 옷을 입히실 것이다. 더러 지치면 지나가는 아이들을 모아놓고, 마르코의 감동적인 여정을 구연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부디 선생님께 평화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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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2-09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분을 만나는 건 축복이지요.
스승님이 가신 곳에서도 빵모자를 쓰고 붓을 들겠네요~

다크아이즈 2010-02-12 17:22   좋아요 0 | URL
네, 빵모자만 보면 스승이 떠올라요. 정신 없는 날들이라 책은 읽는데 리뷰 올릴 시간도 제대로 없어요. 순오기님 서재 구경도 잘 못하니 이게 무슨 재민겨?

穀雨(곡우) 2010-02-12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안부 전하고자 들렀더니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네요.
멘토처럼 그려지던 분이었으니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영면하시리라 믿습니다.

느와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소원하는 일 다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곡우드림.

다크아이즈 2010-02-12 17:23   좋아요 0 | URL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에요. 곡우님도 건강 조심하시고, 설 잘 보내세요.

로사 2010-09-0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글....잘 읽고 갑니다.
서로 모르는 관계이지만,같은 분을 함께 알고 있음이
그나마 작은 축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젊은초임교사시절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서...좋았습니다.
그 교사생활을 그만두시고....미술대학으로 오셨을 때부터....인연을 맺어서
각별한 우정을 나눈 친구중에 한명입니다.
우리의 대학생활이...이화백으로 하여금 더 빛이 났더랍니다.

고요한 휴일아침.....먼 타국에서
잠시 추억속의 선배를 생각하고 갑니다.

다크아이즈 2010-10-03 00:19   좋아요 0 | URL
어맛, 서재 방치하는 일이 잦은데 이창연 선생님 친구분을 여기서 만나다니 넘 영광입니다. 오늘 같은 가을날 선생님 생각 더욱 납니다. 작년 가을에 마지막으로 뵈었으니... 노란 봉투에 쾌차하시라는 편지를 써서 드렸는데, <봉투가 예쁘다> 하시더군요. 눈물 참느라 혼났습니다. 로사님 이름을 떠올리면 이창연 화백이 절로 생각날 것 같습니다.

잠드리아 2011-06-18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저도 초등학교때 담임은 아니였지만,선생님을 잘알고있죠^^돌아가시기2년전쯤
우리동기들과 선생님을 뵈었죠~서울 전시회땐 서울동기들도....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하고싶어하셨다는데....역사에 남을 초등미술책에 선생님 위 작품이 실렸어요^^오늘따라 생각이 많이나네요`

다크아이즈 2012-12-03 23:08   좋아요 0 | URL
잠드리아님도 이제야 안부 전합니다.
이창연 선생님의 제자라는 공통분모로 이렇게 연결이 되는군요.
초등 미술책 구할 수만 있다면 간직하고 싶네요. 한 번 알아봐야 겠어요.
님도 건강하시길...

바다 2012-12-0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슴이 아파~~~ 힘이 듭니다
당신이었네요
선생님은 님 애기와 젊은날 안동에서 교직생활 애기도 많이 하셨어요
어느날은 님이 쓴 단편을 읽어보라고 책을 가지고 와서 저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창연선생님을 기억해 주세요
아름답운 분입니다.

다크아이즈 2012-12-03 23:14   좋아요 0 | URL
아, 혹시 아주 가까운 분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정말 그렇다면 너무 면목이 없습니다. 선생님을 좀 더 보필할 걸 하는 아쉬움...
요즘 나이 먹는다는 것, 산다는 것 생각하면 눈물 마를 날 없는데 기어이 바다님께서 절 또 울리시는군요. 울 수 있다면 님도 감추지 말고 우시어요. 힘내시고...
선생님께 종 울리자마자 그네 타러 나가다가(공부 안 하고 딴 생각 한다고 그랬겠지요.ㅋ) 손바닥 20대 맞은 기억 있어요. 그 얘길 했더니 정작 선생님은 기억조차 못하시더군요.
제 단편까지 읽어보라고 권하셨다니 몸둘 바를... 정진해야겠습니다.

이창연 스승님을, 단 한 시도 잊어 본 적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마르코가 쉽게 엄마를 찾았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동화 구연 솜씨가 그만이었거든요^^
님도 부디 건강하고, 잘 견디시길...
 

 

   

  서재질을 하면서 의아했던 게 숱한 리뷰 중 시집에 관한 건 흔치 않다는 것이다. 알라딘을 벗어나 각종 문학 사이트 같은 곳엔 시가 넘쳐난다. 시인만 해도 삼만 명이 넘는 나라라니 어련할까?  시인이 많은 나라니 예비 시인도 엄청 많을 것이고, 그런 분들이 시를 읽고 리뷰를 올린다면 산문에 비해 훨씬 많은 수를 차지할 줄 알았다. 한데, 의외로 시인과 예비시인이 많은 나라치고 시집 리뷰는 드문 편이다.  잘 쓰는 시인들을 존경하다 못해 경이롭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못내 서운하다. 많은 독자들이 시집에 관한 리뷰나 페이퍼를 올려 줬으면 좋겠는데 그건 내 욕심일 뿐이다. 시를 모르면서 좋아만 하는 욕심... 

  젊은날부터 신춘문예 당선시집은 웬만하면 사모았다. 당선시들 중 내 취향에 맞는 몇몇 작품들을 만날 때면 심사위원들이 고맙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쩜 이리 내 취향에 맞는 시의 구름을 불러내 풀썩이는 내 영혼에 단비를 내려주실까, 하는 맘에... 좋은 시를 발견하는 그 눈이야말로 천상 시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믿고, 좋은 시에 공감하는 나도 어쩌면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가늠해보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몇 년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시는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시는 짓는 게 아니라 절로 써진다는 것을 알았다. 한마디로 그분이 오셔야 시가 된다는 것. 더 쉽게 말하자면 시인은 태어나는 것이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 만들어진 시인은 시인이라 불릴 수는 있겠지만 시인은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시인 자신들이 더 잘 안다는 것.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천재가 못돼서 시 못 쓰거나 안 쓰는 사람들은 좋은 시를, 취향에 맞는 시를 그저 감상하면 된다. 안 써도 되니 맘 고생 안 해도 되고,  영혼의  요기까지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한데 올해 신춘 당선시집을 곁에 두고 읽자니 단박에 눈에 들어오는 시가 없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천재 시인들이 사라졌을 리도 없고, 심사위원들의 눈썰미도 삐뚤어졌을 리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게 있다. 참신하고 발랄하고 재기 넘치는 신춘시들을 접수하기엔 내가 너무 늙었다! 그런데,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스스로를 책망하면서도 자꾸 의문이 드는 건 왜일까?  

 그나마 맘에 드는 두 시는 골목의 각질(강윤미, 문화일보), 모른다고 하였다(권지현, 세계일보) 두 편이다. 두 편의 시, 우연하게도 제목부터 시적이다.   

골목의 각질 - 강윤미

골목은 동굴이다

늘 겨울 같았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익숙해진 것은 아니었다

공용 화장실이 있는 방부터

베란다가 있는 곳까지, 오리온자리의

1등성부터 5등성이 동시에 반짝거렸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표현처럼

구멍가게는 진부했다 속옷을 훔쳐가거나

창문을 엿보는 눈빛 덕분에

골목은 활기를 되찾기도 했다

우리는 한데 모여 취업을 걱정하거나

청춘보다 비싼 방값에 대해 이야기했다

닭다리를 뜯으며 값싼 연애를 혐오했다

청춘이 재산이라고 말하는 주인집 아주머니 말씀

알아들었지만 모르고 싶었다

우리가 나눈 말들은 어디로 가 쌓이는지

궁금해지는 겨울 초입

문을 닫으면 고요보다 더 고요해지는 골목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세를 내주다가

얼굴 없는 가족이 되기도 했다

전봇대, 우편함, 방문, 화장실까지

전단지가 골목의 각질로 붙어 있다 붙어 있던

자리에 붙어 있다 어쩌면

골목의 뒤꿈치 같은 이들이

균형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굳어버린 희망의 자국일 것이다
 

 

모른다고 하였다 -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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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30 0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는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니까 시집을 읽고 감성이 통하는 시를 발견해도 리뷰를 쓰기는 어렵더라고요. 서평단 리뷰 부담에 오히려 책읽기나 리뷰쓰기가 더 안되는 것도 있고요.ㅜㅜ

다크아이즈 2010-01-30 10:49   좋아요 0 | URL
이런, 순오기님이 서평단인지도 몰랐다는... 언제 서재에 적응될까요? 천재들의 속삭임을, 읽는 이 맘대로 해석하는 거야말로 시적인 거 아닐까요?ㅎㅎ

穀雨(곡우) 2010-01-29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랑 담 쌓고 사는 저 같은 사람은 벌써 늙다리가 되도 한참이겠는걸요.
리뷰도 그렇지만 글쓰기의 최고봉은 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끼적여봅니다.

다크아이즈 2010-01-30 10:49   좋아요 0 | URL
곡우님은 일단 글을 잘 쓰시기 때문에 시집 안 읽으셔도 패스! 제가 일단 꽂히면 주욱~ 신뢰해버립니다요. ㅎㅎ


꼼미 2010-02-04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 주신 두 편의 시 잘 읽고 갑니다. 전 최근에 읽고 있는 시집 전동균의 "거룩한 허기"를 읽고 몇번을 울먹였더랬어요. 그리고 그 시집 뒤에 붙은 신형철의 해설을 읽고는 제가 지금까지 만난 (어쩌면 김현을 포함하더라도) 최고의 해설이자 비평이라고 생각했죠. 참으로 기막힌 아픔과 감동과 기쁨이었죠. 그저 나만의 사견이자 감상일지라도요...

다크아이즈 2010-02-04 07:06   좋아요 0 | URL
꼼미님 덕에 거룩한 허기, 를 담게 되네요.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신형철이 쓴 해설들은 시보다 그 해설 때문에 시를 읽게 한다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지요. 시인들에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신형철의 해설이 붙은 시집을 만나는 건 독자로서는 굉장한 복인게지요. 언젠가 신형철 해설이 굉장하다니까 로쟈님이 잘 아신다고 책 사인회 정보를 알려주셨던 것 같은데, 여긴 지방이라 갈 수도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