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도시에는 작은도서관이란 게 숱하게 많다. 적어도 스무 개 이상?

 

  시에서 마을마다 만들어준 도서관인데 우리 아파트 안에도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요것이 얼마나 편리한지 내 책방에 있는 책도 분류가 안 되 찾기 힘든 건 포기하고 도서관에 전화해서 있다고 하면 조르르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며칠 전 <토니오 크뢰거> 급하게 필요했는데 내 책방에는 어디 처박혀 있는지 모르겠고 막 도서관으로 달려갔더니 싱싱한 채로 책꽂이에 꽂혀 있다. 얼마나 요긴한지. 행정 당국이 모든 걸 잘 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런 머리 쓴 건 참 인정해주고 싶다. 각설하고

 

  며칠 전, 우리집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도서관에 볼일이 있었다. 우연히 내 눈앞에 보이는 책장에서 위의 책을 발견했다. 저자 이름이 낯익어서 한눈에 띄었다. 플라시보님의 필명이 독특해서 금세 눈에 띄었다. 도서관 오픈하면서 신간으로 사들인 것 같았다. 책 내용과는 상관없이 반가운 이름이다. 내가 알라디너로 입문할 시절 내게 가장 인상 깊게 다가왔었던 ~디너들이 몇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플라시보님이다. 왠지 빌려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볼일 보다 먼저 책을 빌렸다. 연애서적을 빌리는 중년 아지매를 담당자가 뜨악한 눈으로 쳐다봤다. 연애 따윈 관심도 없지만 없는 새초롬함을 빌려 왜, 아줌마는 연애에 대해서 좀 알면 안 돼? 하는 표정을 지어줬다.

 

  플라시보님 책 이야기 하려는 게 아니고, 그 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알라디너 네 명 중 세 명이 알라딘을 떠난 것 같다. 차례로 그 네 분은 플라시보님, 주드님, 파란여우님, 로쟈님인데 로쟈님만 남아 있고 다른 분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거나 휴지기 중인 것 같다. 그들의 글은 각기 특징이 있었다. 번득이는 상황 묘사에 능한 플라시보님 글은 재미를 주었고, 주드님 글은 깨질듯한 민감한 감성이 무기였다. 내가 편집자라면 주드님을 꼬드겨 다듬어서 책을 내게 하고 싶을 정도로 예민한 글을 썼었다. 파란여우님은 현장성이 뛰어난 전투적 문체를 갖고 있었는데 동년배인 님에게 공감하기가 쉬워서 내가 좋아했었다. 로쟈님이야 뵌 적 없지만 디너들이 인정하는 최고수이니 존경의 헌사 한마디로도 함축 될 수 있을 터고...

 

  그때 뭐 이런 괴물들이 활동하나 싶어서 신기했다. 지금은 더한 고수들이 득시글거리니 가끔은 책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정글인 알라딘이 무서울 때가 있다. 글께나 쓴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알라딘 서재를 많이 권한다. 글 안 쓰더라도 거기 가보면 무림고수들이 한 자리씩 꿰차고 있어 배울 게 많거나 스스로 초라하거나. 전자라야 견딜만한데 나는 후자의 감정이 많기 때문에 언제나 그들이 부럽다. 부러우면 지는건데 알라디너들에게 지는 거야 영광이라 생각한다. 

 

  쉬다가다 하는 나야  떠날 일도 없지만  열심히 하던 분들이 사정상 안 보이니 많이 그립다. 실은 눈물나도록 그립다. 독자로서 그 글들이 내뿜는 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오직 글로써 그리운 것이다.

마을도서관에 꽂힌 낯익은 플라시보님 책 때문에 옛 생각이 나서 몇 자 끼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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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노트북 자판은 상처투성이다. 자주 눌린 글쇠판은 보호막이 사라져 뜯겨나간 벽지처럼 속살이 훤하다. 벗겨진 정도에 따라 어떤 글자판이 혹사를 당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각각 왼손 검지와 중지가 주재하는 ‘ㄹ’과 ‘ㅇ'의 위쪽 모서리는 허옇게 까졌고, 오른손 중지가 관장하는 ‘ㅏ’ 글쇠는 영어 자판 'K' 안내 표식이 사라지고 없을 지경이다. 모음이 몰려 있는 오른쪽 자판 보다는 자음으로 이뤄진 왼쪽 자판에 흠집이 더 많은데, 특별히 자판을 칠 때 왼쪽 손가락에 힘을 더 실어서가 아니다. 한글 자음이 초성과 종성에 다 쓰이니 왼쪽에 몰려 있는 자음 글자판이 더 빨리 닳아서 그렇다. 그러고 보니 한글자판은 왼손잡이에게 유리한 배치이다. 요즘 들어 왼쪽 오십견 증상이 심해졌는데 왼쪽 손가락을 많이 움직여서 그런가.

 

 

 

  각설하고, 사용한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닌데 노트북 글자판이 이렇게 흠집 난 것은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나는 자판을 누를 때 손바닥을 노트북 바닥에 대지 않은 채 손가락을 곧추 세워 내리 찍는 편이다. 가파른 손가락 각도 때문에 타이핑하는 소리도 시끄럽고 손톱에 힘이 실려 글쇠판이 쉽게 긁힌다. 이런 방식은 수동식 두벌 타자기를 칠 때 유용하다. 내 이십대는 수동식 타자기의 나날이었고, 노트북에 생긴 상처는 그 시절이 남긴 유물 같은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한글 운동 모임 활동을 했다. 순우리말을 아끼고 퍼뜨리는 일이 주된 목적이었다. 한자어가 70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게 우리 실정인데 순우리말을 사용한다는 건 거의 코미디에 가까웠다. 그래도 이십대의 열정과 우정으로 그것을 즐겼다. 한글 운동의 행동 강령 중 하나에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자’라는 것이 있었다.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예술적인 문자인가를 기계화로 실천해 널리 알리자는 취지였다.

 

 

  개인용 컴퓨터가 일반화되기 전인 80년대 초중반이었으므로 그때의 기계화란 타자기를 활용하는 것을 의미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창하고도 멋진 슬로건이었지만 주변에 글자 생활을 기계화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당시 학생들 주머니 사정이 타자기를 구입할 만큼 넉넉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토가 내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타자기로 글을 쓰고 싶었다. 탁탁, 경쾌한 리듬이 안내하는 대로 손가락을 맡기면 글 너울이 몸 안으로 퍼져, 저 발끝부터 쓸 거리가 되어 되번져 나올 것만 같았다.

 

 

  타자기 마련은 멀기만 했다.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학교 정보센터의 타자 교실에 등록을 했다. 강의가 없는 빈 시간마다 들러 자판을 익혔다. 개별자였던 자모음이 손가락 끝에서 유의미한 문장이 되어 꼬리를 잇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타자기를 갖고 싶은 소망은 큰오빠가 들어주었다. ‘열심히 써봐라.’  크로바 두벌식 중고 타자기를 구해주면서 큰오빠가 한 말이었다. 그렇게 타자기는 내 보물 1호가 되었다. 종이를 롤러에 끼우고 자판을 두드리면 글자 쇠막대가 잉크 묻은 리본 위를 덮쳤다. 새겨진 글자는 써야하는 자의 운명을 예고하는 낙인처럼 내 가슴에 박혔다. 그 크로바 타자기로 나는 리포트를 작성하고, 단상을 끼적이고, 시를 갈무리하고, 소설을 썼다. 타자기 덕분인지 졸업할 때까지 크고 작은 문학상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타자를 치려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 각도를 가파르게 하고 손끝에다 힘을 주어야 한다. 계단식 글쇠판이라 글자를 누르는 동안 손바닥은 항시 허공에 떠있어야 했다. 이런 오래된 습관이 타자기 시대를 접은 지금도 남아 있어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버리기 좋아하는 나는 이사를 핑계로 많은 물건들을 버렸다. 크로바 타자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린 것에 대해 좀처럼 후회하지 않는 편이지만 부쩍 그 타자기가 그리운 나날이다. 큰오빠의 정성보다 홀가분하고 싶은 내 성정이 앞서, 내 곁을 떠나게 된 그 크로바 타자기가 떠오르는 건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열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자기는 버렸지만 그 자리엔 고귀한 유물처럼 자판을 내리친 흔적이 남아 있다. 삼십 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시절을 불러 모아 나는 지금도 탁탁탁, 상처투성이를 내리찍는 중이다.

 

<이미지는 네이버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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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동자

 

 

  사람은 몸으로 말한다.

 

  오늘은 아침부터 그 주제와 맞닥뜨렸다. 평소대로 나갈 준비를 했는데 약속 시간보다 많이 남았다. 내 오전 스케줄은 주로 열시에 시작한다. 그것이 일이든 취미 생활이든 대개 그래왔다. 주부들이 짬을 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오전이 그 시간일 것이다. 한데 오늘은 열시 반에 약속이 잡힌 날이다. 젊은 엄마들은 아이 유치원 보내고, 집안 치우고 나면 그 시간이 되어야 모일 수 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내심 열시를 기대했던 스스로가 머쓱하고 미안했다. 오래 길들여진 내 생활 패턴일 뿐인데 그게 가장 합리적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이래서 역지사지가 필요한 거다.

 

 

 

 

  시간을 쪼개가며 바지런 떠는 형과는 거리가 한참 멀지만, 스텐바이 된 상태의 비는 시간이 아까웠다. 마침 화장실에 남편이 보던 책이 있길래 집어들었다. 지겨운 자기 개발서라니! 하면서 아무 데나 펼쳤다. 맘에 쏙 드는 구절이 나온다. 메라비언의 법칙이란다. '메라비언은 한 사람이 상대방으로부터 받는 이미지는 시각이 55%, 청각이 38%, 언어가 7%라는 사실을 발견한 심리학자다.(중략) 이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달할 때 말의 내용보다 그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는 요소가 93%의 영향력을 갖는다는 의미다'『 마음으로 리드하라 』-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127쪽)

 

 

 

  모임 장소에 도착해서 열심히 수다를 떤다. 이름하여 건전한 책 수다. 눈빛이 형형한 한 멤버 차례가 되었다. 그미는 눈동자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단다. (그 때 우리는 이태석 신부님의『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를 토론하고 있었다.) 그미는 사람을 볼 때 눈동자를 눈여겨본다고 했다. 자신이 밑줄 그어 온 부분을 성심껏 읽어 주었다. 가난과 전쟁 때문에 신뢰를 잃은 아이의 탁해진 눈빛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환경에 따라 순한 사람의 눈망울이 얼마든지 살기 서린 눈빛으로 변할 수 있다. 이 안타까운 장면이 계기가 되어 그미는 사람의 눈동자에 대해 떠올린 모양이었다. 상대의 눈동자를 보면 대충 어떤 스타일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단다. 백퍼센트 확신할 순 없지만 통박(?)으로 알 수 있다나. 맞는 말이다. 아침에 읽은 메라비언의 법칙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찍이 심리학자들은 메라비언과 같은 결론을 숱하게 내렸다. 사람은 혀가 아니라 몸으로 말한다고.

 

 

 

  내가 좋아하는 모 작가는 눈빛이 참 불편하다.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는데 화면 속에 비치는 그의 눈빛을 볼 때 안타깝기만 하다. 대담이나 인터뷰일 경우 자연스러운 화면을 위해 카메라를 주시할 필요는 없는데, 그 때문인지 작가는 눈길을 어디다 둬야 될지 몰라 눈치를 보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인터뷰어가 여성일 경우, 옆으로 훔쳐보는 듯한 그 부자연스런 눈길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화면 속으로 들어가 시선을 적당한 어딘가에 고정시켜 주고 싶을 정도다. 어여쁜 인터뷰어나 아나운서를 자연스럽고도 당당하게 쳐다보는 연습을 시켜드리고 싶은 것이다. 옆 눈길로 자꾸만 훔쳐보는 듯한 그 모습을 보면서 작가가 특정 미인에게(어쩌면 여성 전반에게)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작가의 불편한 시선을 의식하느라 정작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미인을 똑 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작가의 고지식한 성정 탓이라면 귀엽게 봐줄 만하긴 하지만, 그래도 자연스레 상대와 시선을 맞추는 연습을 하라고 주변인이 조언 좀 해줬으면 좋겠다. 자고로 사람은 몸으로 말하고, 특히 그 몸 중 눈빛의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을 터인데 삐딱한 시선으로 훔쳐보는 모양새는 신뢰감을 반감 시킨다. 아무리 좋게 봐줘서 쑥스러움 때문이라 하더라도.

 

 

 

  상대와 자연스레 눈길을 맞추는 것도 훈련이 필요하다. 어렸을 때 숫기 없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가정 방문 오신 선생님을, 놀러 온 오빠 친구를, 잘 생긴 이종사촌 오빠를 당당하게 쳐다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사람을 키우는지 지금은 그런 울렁증이 없어졌다. (시간의 때가 묻은 거겠지.) 아직도 외모 콤플렉스가 심하지만 될 수 있으면 상대방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몸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혀 언어 매너가 좋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배울 게 많다. 동의를 구하는 상대에게 리액션으로 장단 맞춰주기, 기발한 아이디어나 조언 요구에 필터링해주기, 진정성 밴 눈빛으로 동정을 호소하면 더한 연민의 눈빛으로 화답하기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상대방도 그 정도가 적당해야 나의 몸 언어도 좋은 쪽으로 발동하게 되는 거다. 뭐든 지나치면 거부 반응이 이니까.

 

 

 

  어쨌거나 말보다 몸이 더 많은 말을 한다니 말 조심 뿐만 아니라 몸 조심도 해야 겠다. 좋은 언어 습관도 연습이 필요하듯 몸으로 하는 말도 갈고 닦아야 한다. 우선 부정의 몸 언어부터 버릴 일이다. 혀에 든 욕보다 눈에 든 욕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일견 고고해 보이는 리액션 없는 무표정에는 탄력 있는 입 꼬리를 덧 올려보자. 타인의 약점을 못견뎌하는 냉소적인 눈빛에는 힘을 조금만 덜고 눈두덩이부터 웃어 보자. 찌들고 탁한 눈동자를 갈고 닦는 데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이 곁에 있다면 한결 도움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건 쉽게 주어지는 행운이 아니니 주변에서 그 모델을 찾는 게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

 

 

  오늘도 나는 내 탁한 눈빛과 이지러진 표정을 맑고 밝게 해줄 멘토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것이 책이든, 사람이든 도처에 있을 것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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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 길

 

  참 오랜 만이다.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이 경우 '나만의 시간'이란 모니터 앞에서 글쓰기를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단 한 줄의 글이라도 건지기 위해 의자에 앉는다.  게으름을 물리치고 발딱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글 좀 쓰고 싶다는 욕구는 매번 내 안의 악마와의 싸움에서 백전백패기 일쑤였다. 쓰고 싶다는 열망과 쓰는 행위의 간극은 히말라야의 크레바스처럼 깊고 아득하기만 했다. 어느 작가가 말했단다. 침대에서 일어나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으로 가는 길이 가장 먼 길이라고.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쓴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말해준다. 절로 공감한다.  

 

  평생의 과업처럼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치면서도 정작 진득하니 엉덩이 붙이고 쓰는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게으름 탓이다. 그 어떤 면죄부도 얻을 수 없는 명백한 자기 발전의 적 게으름. 그걸 잘 알면서도 넘어서지 못하고 핑계거리만 찾았다. 백수과로사한다는 시쳇말처럼 속으로 온갖 바쁜 척을 해댔다. 생활인으로서 품위유지비도 벌어야 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책임감도 완수해야 하고, 주부로서 집안일도 건사하는 척은 해야 하고. 변명조차 되지 않는 이런 핑계들은 내 박약한 의지의 이음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습관이 성패의 반을 좌우한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 쓰는 습관에 제대로 길들여지지 않았다. 꾸준히 쓰는 것이 내게 정착되지 않은 것은 뒤집어 말하면 내 글쓰기 욕구가 그만큼 절실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위안처럼 시작한 글쓰기가 작은 별, 아니 숨은 별 하나라도 되어 반짝이게 하지는 못할 망정 욕망의 덩어리로 나를 짓누르게 해서는 아니 될 일이지. 절절한 욕구는 순정한 목표를 낳고, 그 목표는 좋은 습관을 낳고, 그 습관은 좋은 결실을 맺는다. 

 

  새해다. 새로운 결심처럼 내 안의 허영덩어리 하나 해처럼 불쑥 솟는다. 실은  새로울 것도 없는 그 덩어리가 내 몸이, 내 맘이 원하는 절절한 쓰기의 실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침대에서 글 쓰는 책상까지의 거리가 가장 먼 길이 아니라 조금은 가까운 길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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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2-01-20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제 게으름을 함께 채찍질 해주신 팜므님. 어찌 감사하다는 말로 다 표현 하겠어요. 기억해 주신것만으로도 새해 큰 선물. 페이스북과 블로그질에 서재는 멀리하고 있지만, 새해 맞으면서 팜므님과 똑같은 마음이었네요. 매일 매일 영문 책 한 권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중이지요. 필사 하면서^^; 위의 글 잘 읽고, 반갑게 나누고 갑니다. 혹시나 하고 블로그 주소 살짝 놓고 갑니다. 팜므님 서재 자주 들릴께요~ 글 열심히 쓰셔요~
 

 

만찬




  오늘 하루는 파란만장했다. 시험장으로 가야 하는 아들은 새벽부터 분주했고, 그런 아들을 태워줘야 하는 남편은 덩달아 바빴다. 나는 내 볼 일을 보고 오후에 합류하기로 했고, 딸은 나머지 세 식구를 기다리며 기숙사에서 대기 중이었다. 

  한나절 이별 뒤, 짜릿한 만남을 상상하면서 내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핸드폰이 울린다. 남편이다. 그새 보고 싶어서 전화를 했구나, 라고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일은 있을 리 없고, 준비물 중 하나를 아들녀석이 빠뜨리고 갔단다.

  칠칠치 못한 데다, 건망증마저 심한 엄마이자 아내를 둔 탓에, 나머지 세 식구는 ‘뭔가를 챙겨야 하는 주부’로서의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해서 다들 알아서 제 것을 챙기는 편이다. 하지만 덜렁대기가 제 엄마 저리가라, 격인 아들녀석은 가끔 그런 실수를 한다. 보통 집 같으면 엄마가 몇 번이라도 점검하고 확인할 만한 상황이이지만, 주부 자격 상실 상습범이라는데 어찌할 것인가.  

  아들을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 못난 엄마 만나 고생하는구나, 싶은 자책감만 밀려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을 내려주고, 남편은 먼 길을 되돌아와 다시 서류를 챙겨서 떠났단다.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시외버스에 오르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우여곡절 끝에 딸내미 기숙사 앞에서 가족 상봉을 했다. 오전에 있었던 상황을 얘기하느라 저마다 입이 바쁘다. 나는 조용히 상황을 정리했다. ‘엄마를 믿느니 개미발바닥을 믿어라!’

  진 빠진 세 식구의 얘기를 듣고 있던 딸이 말했다. 오늘 모두 혼절하도록 고생했으니 자신이 늦은 점심을 대접하겠단다. ‘우리 식구를 위한 만찬을 준비했다’고 큰 소리쳤다. 아닌 게 아니라 모두들 너무 배가 고팠다. 시계는 오후 세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기숙사 앞 상가에, 학생들을 위한 밥집이 지천인데, 약속이나 한 듯 밥값이 삼천오백 원밖에 하지 않는단다. 그 밥집 중 한 곳으로 딸아이는 우리를 안내했다.

  ‘꽃순이분식’이라고 쓰인 만찬장에 도착했다. 딸은 자신 만만하게 삼겹살 정식과 고등어 정식을 주문했다. 각각 이인분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우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각종 밑반찬과 요즘 비싸다는 김치는 기본인데다, 삼겹살은 산봉우리처럼 드높았고, 도톰한 고등어는  두 마리나 나왔다. 일반 시중에서는 그 값으로는 도저히 구경할 수 없는 메뉴였다.

  허겁지겁 배를 불리면서도 내 눈길은 식당 안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바빴다. 가만 살펴보니 가족주도형 사업체(?) 같았다. 자리보전할 것 같은 노할머니는 어눌한 손놀림으로 식당 한 쪽에서 마른 수건으로 수저를 닦고 있었다. 수더분하게 생긴 남편은 묵묵히 식탁 위를 치우고 음식을 날랐다. 주방장이자 계산원을 겸한 안주인은 주방과 카운터를 날다람쥐처럼 내달렸다.

  낮은 가격에 푸짐한 만찬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인건비를 절약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을 위한 식당으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방식인 것 같았다. 가족의 합심이 녹아 있는 만찬장을 보면서 가족을 지탱하는 그 힘이야말로 ‘작은 데서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을 헤아려도, 나 같이 실천하지 못하면 그건 못 헤아리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도 쓸 데 없는 자책인가?

  

  만찬에 초대해준 딸이 사랑스러운지 저녁에 남편은 정말로 회전식 만찬장에 우리를 안내했다. 화려한 도심 속, 공중을 천천히 떠도는 식당에 앉아 비싼 식사를 하면서도 마음만은  자꾸 점심 만찬이 떠올랐다. 소박하든, 화려하든 만찬은 값으로 따지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새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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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2-1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를 믿느니 개미 발바닥을 믿어라~ㅋㅋㅋ
따님은 오찬을 대접했고 진정한 만찬은 남편분께서 회전식으로~~ 근사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