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신 파랑새 사과문고 64
김소연 지음, 김동성 그림 / 주니어파랑새(파랑새어린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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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아의 마시멜로




  성아는 결국 마시멜로가 든 파이를 받지 못했다. 별 것 아닌 과자를 성아에게 주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거친 말투로 다른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거는 성아. 참지 못한 나는 ‘성아, 너 나가!’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성아는 잠시 쭈빗대는가 싶더니 곧장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게 아닌데 싶었다. 잘못했어요. 성가시게 굴지 않고 조용히 할게요. - 내가 원한 답은 그거였다. 하지만 성아는 그런 대답 대신 공부방을 벗어나 창밖에서 서성거렸다.  다른 착실한 아이들을 위해서 성아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실은 내 인내심에 한계가 왔던 것이다. 복도에서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성아를 보고 금세 후회했다.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줄 걸. 

  2010 문학작가 파견 사업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문화 사업의 일환이다. 전국에서 선정된 82개 도서관이 시행처가 되어 파견작가를 지원해주고 있다. 나는 이곳 시립도서관 소속으로 5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의 사업 목표는 소외계층, 소외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활동에의 적극 권유였다. 도서관 측과 나도 그 취지에 맞게 프로그램을 구성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심각할 정도의 지역 소외계층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았다. 해서 상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더 필요한 곳을 사업지로 택하게 되었다.

  지역아동센터 두 곳과 시립도서관에서 독서 및 글쓰기 강좌를 열어 아이들과 만나고 있다. 내가 만난 아이들 대부분의 얼굴은 밝았고, 표정 또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그 어디에도 상대적 소외계층 아동들이란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시작할 때면 목이 탈까 찬물을 떠다주고, 마칠 때면 앞 다퉈 흐트러진 책들을 가지런히 정돈해주곤 했다. 하루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아쉽다고 좀 더 하자고 보채는 아이들도 있었다. 퀴즈를 더 잘 맞히기 위해 책 속으로 파고들듯이 몰입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책임감도 느꼈다.  

  하지만 몇몇 아이들의 첫인상은 워낙 강렬했다. 말투는 거칠었고, 행동은 즉흥적이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은어나 비어, 속어를 툭툭 내뱉었고,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싸움을 걸고 지우개를 던졌다. 몰래 유치한 그림을 그려놓고 옆 친구를 툭툭 건드리며 키득거렸다. 성아도 그런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아이들 집중력을 유도하기 위해 상품으로 마련해간 마시멜로 파이. 밖으로 쫓겨난 성아는 끝내 받지 않았다. 그 다음 시간에 성아는 아예 공부방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만화책을 들고 보란 듯이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저항(?)해서라도 사랑받고 싶은 제 본심을 분명히 전하고 싶어했다.

  이 사업을 마치는 지금에야 그 아이들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주목 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은 거였다. 주변 환경에 아이들이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동화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을 좀 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내던지는 말, 참을성 없이 불쑥 나가는 주먹은 그들 천성이 악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환경에 노출될 기회가 많다보니 옳고 그름의 판단에 앞서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불쑥 나오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김소연 작가의 ‘꽃신’을 통해 작은 맘이 모여 큰 감동의 강물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금이 작가의 ‘큰돌이네 집’을 통해 이 세상 모든 새엄마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을 버리게도 되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조금씩 양보하고, 얼마간은 참아야 하고, 꾸준히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파견 작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내가 얻은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수선스럽고, 시샘하는 가운데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한다. 그 모습은 마치 바람 따라 흔들리며 수런거리는 들꽃을 닮았다. 이 들꽃들의 속삭임이 파견작가 프로그램을 통해 한층 너울지기를 바란다. 다음 주에는 특별히 성아만을 위한 마시멜로를 따로 준비해야겠다. 하얗고 쫀득쫀득한 내 마음의 파이를 성아가 받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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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융, 기억 꿈 사상 - 카를 융 자서전
칼 구스타프 융 지음, 조성기 옮김 / 김영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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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없어요

                                                 




  콤플렉스 용어를 가장 강조한 이는 칼 구스타브 융이었다. 그에 의하면 누구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종류도 얼마나 다양한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외모 콤플렉스, 학벌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등, 이름 붙은 세상의 모든 것에 콤플렉스라는 말을  접목시켜도 될 정도이다. 전문적인 심리학 개념을 떠나 어릴 적 경험, 사소한 습관, 주변 환경 등에 의해 생겨난 복합적인 소용돌이가 콤플렉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인간 심리를 잘 이해해서일까. 융에 의하면 우리가 콤플렉스라는 말을 붙이길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란다.

  간단하게 ‘마음속 응어리’ 로 정의해도 무방할 콤플렉스는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상처를 덧키운다. 하지만 적당하면 에너지원이 되고 자기발전의 단서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적당하기가 어디 쉬운가? 그런데 그것을 넘어 아예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상의 승리자라 할 수 있겠다. 의외로 이런 초탈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만날 때가 있는데 속으로 뜨끔해진다. 가당찮게도 대부분이 나처럼 많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고 착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를 깨치게 되니 부끄러워서 뜨끔해지는 거다.   

  L여사는 언제 봐도 유쾌하다.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안부를 전해오는 그미의 문자에는 나름의 철학적 사유가 배어있다. 모기 물린 뒤에 느끼는 순간의 울림, 장마 끝에 솟구치는 내면의 잔상, 동네 할머니와 나눈 대화 등을 맛깔스런 짧은 문자로 보내오는데 그 균질하고 매혹적인 감성적 철학에 이끌려 절로 답문을 쓰게 된다. 

  어제 그미가 보내온 문자는 이러했다. ‘인연의 뿌리는 하늘이 내려줍니다. 하지만 그 뿌리, 단단해지고 줄기 살찌우는 건 사람의 몫이지요.’ 혹시라도 ‘사람 몫’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건 아닌가 싶어 곧장 답문을 보냈다. 그대를 위해 잠깐 문자하는 것도 인연의 나무를 가꾸는 거겠지요, 라고.

  다음날 그미는 점심을 같이 하자며 찾아왔다. 언젠가부터 건네고 싶었다며 멋진 부츠를 챙겨왔다. 두 번 신은 것인데 굽이 너무 높아 자신은 못 신겠다는 거였다. 짧은 하체 소유자인 나에게 높은 굽은 필수이기에 잘 됐다 싶었다. 하지만 하체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나는 저 신발을 소화할 수 있을까, 하고 내심 망설이고 있었다. 내 주저를 눈치라도 챘는지 그미가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한다.

  백화점에 갔더란다. 화장품 코너를 지나는데 메이컵 아티스트가 화장을 해주겠더란다.  얼떨결에 메이컵을 받고 있는데 남자 아티스트가 말하더란다. 얼굴 중 콤플렉스가 있는 부분을 얘기하면 그곳을 집중적으로 보완해 주겠다고. 그미의 대답엔 주저함이 없었단다. 저, 콤플렉스 없는데요. 남자 아티스트는 멍한 표정으로 네, 네 하기만 하더란다. 아마 그 아티스트도 나 같은 맘이었나 보다. 모든 사람은 콤플렉스가 있고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넘겨짚었음에 틀림없다.

  콤플렉스 없어요, 라고 대답한 L여사의 말엔 한 치의 거짓도 없음을 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결점을 보듬는 자는 남의 약점 같은 걸 눈여기지 않는다. 콤플렉스는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정작 타인들은 상대가 어떤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지 의식조차 하지 않는다. 

  부츠 끈을 느슨하게 풀어 젖힌 뒤 조심스레 한 발을 넣어본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맞춤하다. 각선미 빼어난 모델 같은 핏은 상상할 수 없지만 L여사가 준 명쾌한 답으로 자기체면을 걸어본다. 저, 콤플렉스 없는데요. 저기 저 거울 속, 제 약점을 넘어서려는 한 여자의 부츠 굽, 산봉우리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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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미 2011-01-21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어요. 여전히 열심히 글쓰시는 팜므님. 간결하고 소박하면서도 울림 있는 글, 새해에도 많이 써주시기 바래요. 새해에도 여전히 바쁘시겠지만 말이죠.
 
축구 아는 여자 2030 취향공감 프로젝트 2
이은하 지음 / 나무수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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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지 일기




  과히 여민지 신드롬이다. 그 소녀에게 자꾸만 관심이 간다. 내가 축구를 잘 알고 좋아해서가 아니다. 십대 소녀라고는 믿기지 않는 그 정신력과 긍정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여민지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우승컵과 골든볼, 골든부트까지 좀처럼 나오기 어려운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여민지 덕에 나는 골든볼(MVP)과 골든부트(득점왕)를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 나아가 이번 경기 우승으로 여자 축구도 월드컵 대회가 열리고, 연령별로 세분화 되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역시 좋은 기량을 보여준 지소연 선수와 함께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 양대 희망봉이 될 거라고 매체들은 연일 보도한다. 그들 환상 듀오가 속한 앞으로의 경기가 자못 기대된다.

  방송과 신문에서도 여민지 특집이 한창이다. 축구를 향한 민지의 순수한 열정은 그녀가 쓴 축구 일지에 잘 나타나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한 이래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썼다는 그녀의 축구 일지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계적인 축구 선수는 거저 된 게 아니었다. 깔끔한 글씨체와 정돈된 경기 그림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 축구를 해왔는지 알 정도이다.

  ‘축구는 예술이다, 축구는 나의 인생, 축구 없인 못살아’ 라는 말이 적힌 그녀의 노트를 사진으로 보는 순간 서늘한 감동이 밀려온다. 저토록 어린 나이에 이토록 강단 있게 제 삶의 운명을 부릴 줄 안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민지는 축구를 노동이나 힘든 운동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인터뷰 곳곳에 묻어나는 기본 생각은 ‘축구는 정말 재밌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러니 축구를 통해 자신의 모든 것을 맘껏 발산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그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자.

  ‘아프리카에서는 매일 아침 사자가 잠에서 깬다. 사자는 가젤을 앞지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근 온 힘을 다해 달린다. 네가 사자이든 가젤이든 마찬가지다. 해가 떠오르면 달려야 한다’ (2006년 12월)

  ‘공을 차다가 잠이 오면 두 사람을 생각하라. 너의 아버지와 라이벌을. 훈련하다 포기하고 싶으면 소중한 친구들과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라. 나를 가능케 하는 건 생각이다’(2009년 9월)

  중학교 때부터 소설책보다 성공학 책을 많이 봤다는 민지답게 책에서 인용하거나 스스로 생각해낸 많은 경구들로 일기장을 빽빽이 메웠으리라. 그 어린 나이에 흔들림 없이 제 삶의 목표를 세우고 정진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누구라도 민지처럼 한 가지 생각으로 한 가지 일기를 매일매일 채울 수 있다면 성공은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작심삼일로 끝나고 마는 내 일상의 설계도를 보면서 새삼 여민지가 대단하게 보인다.   

  여민지 만큼 하면 백퍼센트 성공하지만 여민지 삼십퍼센트만 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될 것이다. 요즘 내 화두는 이렇다. ‘본받고 싶은 사람의 삼십퍼센트 만이라도 따라하자.’ 주변에도 여민지 못지않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장악하고 설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나는 그들 삶의 방식을 존경하고 배우려고 애쓴다. 그들과 똑 같이 하려고 무리하다 보면 체력 소모와 자괴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차근차근 따라하려다 보니 삼심퍼센트라는 목표에서 타협점이 생긴 것이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시도하는 것이 나으니 그 정도에서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모든이가 여민지 부류처럼 생활한다면 이 세상은 저마다 잘난 사람만 넘쳐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정한, 여민지 삼십프로 따라하기 프로젝트가 유용하기 위해서라도 여민지 류는 드문 게 훨씬 낫다. 부러우니 별 주접이 다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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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범우사상신서 19
콜린 윌슨 지음 / 범우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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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깊게 너무 많이




  추석이 가까워온다. 짬 날 때마다 명절맞이 집안 청소를 해왔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차례는 우리집에서 지낸다. 제사나 차례에 대한 부담을 느끼는 큰형님의 제안으로 삼 년마다 한 번씩, 추석은 나머지 형제들 집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여자로서 형님의 그런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아직까지 명절은 여성들에게(특히 며느리에게) 좀 더 가혹하다.

  진심이 사라진 차례 상, 의무만 남은 식구들은 제수(祭需) 높이만큼의 마음 부담을 느낀다. 누군가 이건 아니야, 라고 외칠 용기가 없기 때문에 저마다 가면 하나씩을 쓰고 조상 앞에 엎딜 뿐이다. 명절이 여성에게 고달픈 건 육체적 노동 때문이 아니라 심리적 불온을 조장하는 저 명절 지내기 방식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모순을 느끼는 누구라도 쉽게 답을 내지 못하는.

  어쨌든 명절 준비 대청소는 주방에서 시작해 마루를 거쳐 드디어 책방까지 왔다. 엉망진창인 책꽂이를 보니 조상들 차례 준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책 귀신부터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버리기 좋아하는 나는 신이 나서 불필요한 책을 빼내서 묶는다. 아무리 과감하게 떠나보내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책이 나오기 마련인데, 그 중 하나가 ‘아웃사이더’(콜린 윌슨, 범우사)이다. 책방 정리를 할 때마다 버려야 할 책과 남겨야 할 책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아직까지 이 책은 단 한 번도 그 경계에 내몰린 적조차 없다. 그만큼 아끼는 책이다.

  내가 가진 ‘아웃사이더’는 1989년 판이다. 나는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때의 풍경을 또렷이 기억한다. 변변한 애인도, 뚜렷한 직업도 없던 그 막막한 가을(아마는 추석 무렵이었을 게다) 시를 배우러 가던 버스정류장 좌판에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를 발견했다. 그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갖지 않은 채였다. 비교적 새 책이었는데, 정가 사천 원인 것을 단돈 천원에 팔고 있었다. 책 제목 ‘아웃사이더’에서 느꼈듯, 패배자나 열외자를 위한 위안서 쯤으로 생각하고 냉큼 집었던 게 틀림없다.

  하지만 첫 장을 펼쳤을 때 그런 내 생각을 거둬야했다. 앙리 바르뷔스의 소설 ‘지옥’을 언급하는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야말로 철인(哲人)임을 강변하고 있었다. 콜린 윌슨이 정의하는 아웃사이더는 주류에 끼지 못하는 주변인이 아니라 대중 다수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해 우뚝 선 자였던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고독을 응시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다가 끝내 신이 되는 경지에 이르는 사람만이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범주에 들어 갈 수 있어 보였다. 단순한 약자나 소수자를 넘어선, 깊은 파장과 울림을 동반하는 부류가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콜린 윌슨은 가난 때문에 정규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다. 독학으로 쌓아올린 문학과 철학에 대한 지식으로 자신 만의 비평 영역을 가다듬었다. 스물 넷, 인생을 알기엔 너무 빠른 나이였지만 그에겐 그것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당시 유행하던 실존철학의 인물들을 그토록 실감나게 자신만의 철학으로 가공한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것 같다.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 (14쪽) -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를 정의하기 위해 이처럼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의 일부분을 인용했다. 책을 펼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누가 뭐래도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보는 자’다. 그가 언급한 수많은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과 현실에서 우뚝 선 예술가들도 따지고 보면 사물이나 대상을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본 자들이다. 예를 들면 이방인의 뫼르소도 구토의 로깡뎅도 철학자 니체도, 화가 고흐도 단순한 소외자가 아니라 진정한 아웃사이더였던 것이다. 사회적 금기가 도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채 개인적 가치와 상충할 때,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는 내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왔다.

  그나저나 너무 깊이, 너무 많이 보는 자 있어서, 여성들의 명절 증후군 하소연을 콜린 윌슨적 시각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명절맞이 대청소는 짧고, 진정한 아웃사이더의 길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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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 - 완전판 문학사상 세계문학
안네 프랑크 지음, 홍경호 옮김 / 문학사상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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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마로니에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나무가 부러졌다. 폭풍우 지난 뒤였다. ‘안네의 일기’(문학사상사, 1995)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안네에 관한 소식이라면 작은 것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외신이 전송한 사진을 들여다본다. 밑둥치에서 일 미터 정도에서 부러진 나무는 허연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널브러져 있다. 150년이나 된 아름드리나무였다. 안네가 은신처 뒤뜰을 내려다보며 자연의 소중함과 행복한 미래를 얘기하던 그 나무였다.

  사실 이번 폭풍우가 아니더라도 머지않아 쓰러질 나무였다. 곰팡이와 이끼로 이미 몸통의 절반이 썩어가고 있었다. 쓰러질 경우 주변 건물을 덮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에 베어질 운명에 처했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안네 프랑크를 상징하는 산 증거라며 주민들이 반발해 법정 공방 끝에 살아남은 터였다. 관리 받은 나무는 앞으로 평균 십 년은 버틸 것이라 했다. 하지만 철제버팀목, 영양제 등으로 보호 받은 지 2년 만에 강풍에 쓰러지고 말았다.   

  매체들은 하나같이 이 나무를 밤나무로 보도했다. 밤나무가 암스테르담에서는 가로수로 쓰이기도 하는구나,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 나무는 마로니에였다. 마로니에의 영어명이 horse chestnut이다 보니 번역(중역) 과정에서 실수가 있은 것 같았다. 혹시나 싶어 빛바랜 안네의 일기를 찾아 책꽂이를 뒤졌다. 내 책엔 분명 마로니에로 나와 있다. 은신처의 유일한 또래 이성인, 사랑하는 페터와 창가에 앉아 안네는 바깥 풍광을 감상한다.

  ‘그 때부터 우리 둘은 파란 하늘과 잎이 떨어진 뒤뜰의 마로니에를 올려다보았습니다. 가지와 가지 사이에는 빗방울이 반짝이고, 하늘을 나는 갈매기와 그 밖의 새들이 햇살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게 생기 있게 약동하며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우리는 잠시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271쪽)

   페터가 장작을 패러 나갈 때까지 그 둘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바깥 파노라마를 맘껏 즐긴다. 무심결에라도 입을 열어 이 한때의 설레는 마법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둘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바깥 풍경과 만나 그 충만한 감정이 절정에 이른다. 이 순간, 페터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네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소중한 자연이 배경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은신처의 안네는 가끔 열린 창을 통해 바깥 세계와 소통했다. 암스테르담 시가 너머 아득한 지붕의 물결, 멀리 보이는 수평선 등을 볼 수 있는 한 결코 불행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뇌에 가장 좋은 묘약은 밖에 나가는 것이고, 자연이야말로 그 위안이라고 적고 있다. 

  안네의 일기는 무삭제 완전 판을 읽어야 제격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여타 안네의 일기가 모두 덜 된 밥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안네의 일기를 처음 출간할 당시, 안네 아버지와 출판사에 의해 일정 부분 왜곡되고 삭제되었다. 은신처 사람들 중 유일한 생존자인 아버지로서는 안네의 사생활, 가족의 애증, 이웃과의 갈등 등이 노출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 대학살의 만행과 그 희생자로서의 안네만 부각되었다.

  하지만 원래 안네의 일기에는 그 이상이 담겨있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십대 소녀가 겪어야 했던 희로애락의 구체적 화법이 빼어난 감수성에 의해 점점이 묻어나온다. 인간의 오욕과 자연의 위대함을 성찰했던 것이다. 은신처의 생활이 절망적이고 구차할수록 안네는 창밖 풍광 너머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 희망이란 물결이 암스테르담 지붕들과 먼 수평선과 햇살에 나부끼는 뒤뜰의 마로니에로 나타났다. 구름 낀 우울의 날들, 비록 태풍에 허리 잘리는 운명을 맞이하더라도 내 안의 마로니에 한그루를 심어보는 건 순전히 안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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