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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다락방
  • 다락방  2025-03-28 11:11  좋아요  l (1)
  • 자극적인 소재를 쓴다고 읽을만한 책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잘 쓰는 작가들은 사실 일상의 아주 작은 소재로도 충분히 빛나는 작품을 쓰잖아요? 가진게 없을 수록 다른 걸 더 부풀리는, 뭐 그런게 소설에도 작용하지 않나 싶습니다. 제목은 좋네요. 복사뼈.
  • 잠자냥  2025-03-28 11:21  좋아요  l (0)
  • 와... 제가 한번 잡은 책 이런 정도 두께면 휘리릭 읽거든요?! 근데 이 책은...... 정말 놀라웠어요. <혼불>도 다 읽을 만한 세월에 꾸역꾸역 읽은 책입니다.

    여자 장 주네라는데... 남자 장 주네든, 여자 장 주네든 주네는 잠자냥에게 늘 지루함을 주네......
    (장 주네 <꽃피는 노트르담>도 읽다 말았........)
  • 관찰자  2025-03-28 13:16  좋아요  l (1)
  • 잠자냥 님의 100자평을 읽다가 최근 다시 읽고 있는 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밑줄 그은 부분이 생각나 옮겨봅니다.

    동어반복처럼 들리겠지만, 소설적인 문장은 ‘소설적인 문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속에서 고뇌한 흔적을 품고 있는 문장이다. 추상적인 명제이지만 정직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 고뇌는 반드시 전달된다. 속도감 있게 읽힌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라고 믿는 소설가, 동시대의 전위적인 시를 따라 읽지 않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소설가들에게는 아마 무의미한 진리이겠지만.
    그런 작가들은 자신은 전문적인 기능인일 뿐이며 예술가 대접까지 받을 생각은 없다고 냉소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고 그 입장은 존중받아야 한다. 나역시 소설가는 모두 예술가여야 한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반(反) 예술가적 타입의 작가라면 자신이 평단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앞뒤가 맞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비평가들 역시, 사운드의 미세한 차이를 분별하는 데 관심이 없는 프로듀서, 카메라의 윤리적 위치 따위에는 관심 없이 스토리텔링에만 열중하는 감독등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것은 불가피한 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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