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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중 「도련님」, 「산시로」에 이어 세 번째로 읽은 것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모두 소설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고양이의 ‘인간 관찰기’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영어 교사인 듯한 구샤미의 집에서 살고 있는 고양이가 구샤미, 그의 가족,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에 대하여 보고 느낀 것들을 독자에게 들려준다. 읽다 보면 웃음 짓게 만드는 대목이 자주 나온다.
가령 이런 것들.
“그 왕에게 한 여자가 책을 아홉 권 가져와 사달라고 했다 합니다.”
“그리고요?”
“왕이 얼마면 팔겠느냐고 물으니 아주 비싼 값을 부르더래요. 그래서 너무 비싸니 좀 깎아달라고 하자 그 여자가 갑자기 아홉 권 중 세 권을 불에 태워버렸다고 해요.”
“아깝군요.”
“그 책에는 예언인지 뭔지 딴 책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 쓰여 있었다고 해요.”
“그래요.”
“왕은 아홉 권이 여섯 권이 되었으니 가격도 조금 떨어졌겠지 생각해서 여섯 권에 얼마냐고 물었는데, 여전히 처음 가격에서 한 푼도 깎아주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왕이 너무하다고 하니, 그녀는 다시 세 권을 빼서 불에 태웠대요. 왕은 아직 미련이 남은 듯 남은 세 권을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었는데 여전히 한 푼도 깎지 못한다고 하니, 그걸 깎으려고 하면 남은 세 권도 태워버릴지 모른다고 생각해 왕은 결국 비싼 돈을 내고 남은 세 권을 샀다고 하네요. (...)”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106쪽.
책을 불에 태우는 방법으로 책을 판매하다니 비인간적인 상술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책을 태워도 왕이 책을 끝까지 사지 않는다면 판매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 도쿠센도 말은 훌륭하지만, 막상 닥치면 다 똑같아. 자네, 9년 전의 대지진 기억하지? 그때 기숙사 2층에서 뛰어내려 다친 사람은 도쿠센 군꾼이었다니까.”
“그 행동에 대해서 그 친구는 꽤 변명이 많았지.”
“그렇다니까. 본인 말을 들으면 아주 그럴듯하지. ‘선(禪)의 창끝은 날카로우니 순간적으로 재빨리 사물에 대응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지진이라고 당황했지만 나는 2층 창에서 의연히 뛰어내렸으니, 그게 다 수양의 결과가 아니겠는가’라며 기쁘다고 말했지.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말이야. 지기 싫어하는 친구야. 하여튼 선(禪)이니 불(佛)이니 하며 떠드는 무리처럼 수상한 사람들은 없어.”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400쪽.
정신 수양을 했다는 사람이라면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흥분하지 않고 침착성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보통 사람보다 더 흥분하여 자신이 2층 창에서 뛰어내린 것에 대해 도쿠센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다. 2층 창에서 의연히 뛰어내렸으니 그게 다 수양의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네.
“자네 같은 악동을 만나면 못 당하겠군.”
“어느 쪽이 악동인지 몰라. 나는 선승입네, 깨달았네 하고 떠드는 자는 아주 질색이야. 우리 집 근처에 난조인이라는 절이 있는데, 그곳에 80세가량 되는 노인이 있어. 요전에 소나기가 많이 왔을 때 그 절에 번개가 떨어져서 정원에 있던 소나무가 쪼개졌지. 노인은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는데 알고 보니 완전 귀머거리야. 그렇다면 태연한 것도 당연하지. 대개 그런 것이야. 도쿠센도 혼자 깨달았으면 됐지, 걸핏하면 남을 유혹하려 드니까 나빠. 실제로 도쿠센 때문에 지금 두 명이 미친놈 소릴 듣고 있다니까.”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401쪽.
절에 번개가 떨어져도 노인이 태연했던 것은 귀머거리였기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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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
이병률
사람들은 사랑을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사랑을 심하게 구부러뜨리거나 질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요
나는 사랑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개인적입니다
언제나 좋은 맛이 나는 음식을 바라지는 않아요
맛이 없거나 입에 안 맞는 음식이 나올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
사랑과의 잘못은 시작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을 떨어뜨린 줄기가 땅을 파고들어 열매를 맺는 것이 땅콩입니다
그것을 줄기로 치느냐 뿌리로 치느냐 관점의 차이는 있습니다
사랑은 계속해서 내 앞에서 헷갈려 하지만요
사랑이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난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은 이성적으로 나를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러기 떼의 숫자나 세고 돌아와도 되는 것입니다
(하략)
- 이병률,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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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 확신은 강력한 것
무엇을 결정할 때 확신에 차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잘난 확신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쑤다’에서 애순(문소리 분)의 딸 금명(아이유 분)이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어 했던 남자는 영범(이준영 분)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혼은 성사되지 않는다. 영범(이준영 분)의 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영범(이준영 분)이 금명(아이유 분)과의 결혼을 절실히 바라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의 어머니는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금명(아이유 분)의 이 예비 시어머니는 확신에 차 있어서 불행을 자초한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끼리 결혼해야 행복하다는 확신. 어쩌면 이건 핑계일 뿐이고 가난한 집안의 딸인 금명(아이유 분)보다 더 좋은 조건의 신붓감을 고르고 싶은 예비 시어머니로서의 욕심일 것이다. 이런 확신은 있었겠다. 자기 아들이 좋은 조건의 신붓감과 결혼하면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 이 확신은 결과적으로 그릇된 확신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이 불행하지 않기를 가장 바랐을 어머니가 아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되고 만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옳다는 강력한 확신 때문이다.
카레라이스를 만들기 위해 양파를 찾는데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사과 두 개’가 담긴 비닐봉지가 있다. 비닐봉지를 열어 보면 그것이 ‘사과 두 개’가 아니라 ‘양파 두 개’라는 것을 알 텐데, 비닐봉지를 열어 확인해 보지 않고 사과일 것이라고 확신하며 양파가 없다고 단정을 내린다. 뒤늦게 그것이 양파라는 것을 알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확신이란 이렇게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강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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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배울 때 신는 발레 슈즈가 닳아 새것을 샀다.
새것을 사고 보니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발레 슈즈가 닳을 정도로 발레를 했다는 점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