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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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지만 재미가 읎다. 일단 쓰인 단어나 어휘의 수준이 높아서 깊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긴, ‘불안‘을 쉽게 설명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 책이 온통 철학적인 글들로 도배돼있을 줄 알았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고 인류학, 유전학, 역사학적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풀이하였다. 인간의 역사와 문화와 산업혁명의 바탕에서 나온 불안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고 쉽게 전달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대단하다. 내게는 전혀 쉽지 않았지만.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을 주제로 한 3부작 소설을 쓴 작가로 유명하다. 그래서 불안을 이야기할 때도 사랑을 강조했다.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은 개인을 좀먹는 정도가 아니라 파멸로 이끈다고 한다. 그러면 반대로 사랑이 왜 필요하느냐? 인간은 날 때부터 스스로의 가치에 확신을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남들이 사랑해주는 만큼 내가 나를 사랑해줄 수 있고, 남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대로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사랑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속물‘이 된다. 그리고 속물은 또 다른 속물을 낳는다고 한다.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잘난 사람에게 관심을 끌려고 애를 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런 안타까움은 한 개인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속물이 되게끔 조성하는 사회 자체에도 있다. 사회에서는 물질적 형벌뿐 아니라 감정적 형벌도 내린다. 이 부분이 되게 중요한데, 최근 국내에서는 양지에 있는 인싸(인사이더)와, 음지에 있는 아싸(아웃사이더)를 나누어 사회에서 분리시키는 현상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러면 인기 많은 인싸들은 안 불안하고, 존재감 없는 아싸들은 늘 불안할까? 꼭 그렇지도 않다. 아싸들이 감정 회로는 고장 났을지언정 인싸들보다 멀쩡하다고 본다. 오히려 인싸들이 혼자 밥 먹거나 영화 보는 것도 불안해하고, 아무도 자신을 찾지 않는다고 느끼면 극심한 우울증까지 겪는다. 인간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작가는 우리가 현재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수도 있다는 느낌이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라고 한다. 즉 나랑 비슷한 조건의 누군가가 나보다 나은 모습일 때 비교당하는 그 느낌이 불만족과 질투심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불안감‘에 대해서 제대로 꼬집은 팩트라 하겠다. 이 느낌을 한번 맛보기 시작하면 빠져나오기가 아주 어렵다. 성공한 친구를 따라잡으면 불안이 사라질까? 더 크게 성공한 친구가 나타나면 열등감은 또 시작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런 게 반복되면 있는 놈들이 더하단 말처럼 99개의 섬을 가진 사람도 1개의 섬을 가진 사람을 질투하고, 영원히 자족하지 못해 살다가 생을 마감할 것이다. 기대가 클수록 실패시 비참함도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계급주의에서 능력주의로 바뀐 미국 사회를 보면, 초기에는 가난한 자들에게도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부자들의 세습 문화를 몰아내어 사회가 온전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계급과 상관없이 능력으로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새로운 프레임이 씌여진다. 능력이 있으니까 성공하고, 능력이 없으니까 실패할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거에는 단순히 가난으로 고통받았다면 지금은 수치스러움까지 더해진 고통에 허덕인다. 이것을 보며 어떤 체제와 운동과 문화로도 인간은 이 문제가 낳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세상의 어떤 위대한 지도자라도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주변에서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참 피곤하게 산다고만 생각했다. 일부러 힘들게 사는 사람들, 사서 고생하는 사람들, 세상과 담쌓고 스스로를 가둔 사람들 등등 모두가 크고 작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었다. 아파본 사람만이 아픈 사람을 이해한다고 했는데, 나는 여러 불안감을 겪고도 타인의 불안감은 왜 이해하지 못했을까. 어쩌면 일부러 외면했을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만으로도 힘든데 남들의 아픔까지 감당하기 싫어서, 남들은 내 아픔에 무관심하고 도와줄 수도 없단 걸 알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어떤 염세주의자는 말하길, 100% 도덕적인 사람만 상대하겠다고 결심하면, 평생 혼자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 결심 없이도 지금 시대는 다들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렇다면 불안함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인정의 개념이 아닐까. 이제는 많은 인문학 강연이나 책에서도 스스로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피곤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더 맞지 않나 싶다. 단순해 보이지만 여간 복잡한 게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못 벗어난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 대충 삽시다요. 오늘 밤 치킨으로 보상해주는 것도 잊지 말고요. 기승전치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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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의 도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8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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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칭찬해서 칭찬이 칭찬 같지 않은 작가,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를 이제 딱 중간 편까지 읽었다. 읽기가 아까워 계속 미루고 미루는 시리즈 소설들이 몇 개 있는데, 그렇게 미루다 보면 앞뒤 내용이 가물가물해져서 인물관계나 배경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유명한 해외 문학들은 책 뒤표지에 각종 언론사의 코멘트가 두세 글 정도 표기돼있다. 그런데 코넬리의 작품은 책 서두에도 매번 두 페이지씩 찬사의 글들이 실린다. 그만큼 외국에서는 어마어마한 인기와 영향력을 지녔다는 뜻이 되겠다. 국내의 해외 작품 중 코넬리 책 말고 이런 대우를 받는 책은 거의 못 본 것 같다. 이미 코넬리는 범죄소설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이제는 나이도 많이 들었는데 아직도 시리즈가 나오는 걸 보면 그만의 날카로운 감각은 여전한가 보다.


산책하던 개가 산속에서 사람 뼈를 물어왔다. 신고를 받고 산을 조사하던 보슈는 다량의 유골을 발견한다. 감식 결과 심하게 학대를 받은 흔적이 가득한 어린이의 뼈였다. 보슈는 과거에 실종된 어린이들을 조사하다가 용의자로 의심되는 한 남자를 찾아간다. 결백을 주장한 용의자는 억울함에 못 이겨 결국 자살한다. 사건과 무관한 시민을 자살하게 만든 보슈와 경찰국의 이미지는 잔뜩 구겨져버렸다. 경찰은 잽싸게 유골의 신원을 알아냈고, 피해자의 가족과 주변인을 통하여 마침내 범인을 검거했다. 그의 자백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듯했으나 보슈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재수사 결과 용의자의 허위 고백으로 드러나 준비하던 재판은 취소되고 수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한편 보슈와 수차례 삐거덕대던 경찰국은 보슈에게 퇴직을 권고한다. 은퇴하기 전 마지막 사건을 미결로 끝내고 싶지 않은 보슈는 동료도 버리고 혼자서 동해 번쩍 서해 번쩍하느라 바빠진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가 반복된다. 해결되었다 싶으면 또 다른 증거가 나타나 제자리걸음의 수사만 하게 된다. 이렇게 범인의 정체를 질질 끌면 짜증 날법도 한데, 코넬리의 소설은 그런 게 없다. 쉬지 않고 재미있다. 진척 없는 사건만으로는 지루할 수도 있으니, 작가는 다른 내용들을 계속 버무린다.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내부 경찰, 보슈랑 눈 맞은 여자, 예전에 같이 일한 동료 등등. 다양한 양념을 곁들여서 시리즈 고유의 분위기에 독자들을 중독시킨다. 진정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줄 아는 고단수이다.


시리즈 소설들은 메인 사건 말고도 다루는 내용들이 많다. 특히 내부의 적은 매 권마다 꼭 있는데 이번에도 부패한 경찰이 수사를 방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슈를 싫어하는 경찰국을 상대하면서 기생충들도 걸러내야 하는, 이렇게 안팎으로 적이 가득한 보슈에게는 조용할 날이 없다. 미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더 재미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형사지만 경찰국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을 위해서 수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은 타협하지 않으며,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끝장을 보려는 성격일 뿐이다. 이번 작품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경찰국의 실수와 잘못을 덮고 언론에 거짓 정보를 발표하려는 윗사람들과, 진실을 밝혀야 하면서도 같은 배를 타고 있어 묵인할 수밖에 없는 보슈의 양심 대립이다. 보슈가 경찰계의 부패함을 언제까지고 못 본척할까 싶었는데 이 책을 끝으로 경찰을 그만두기로 결단 내린다, 와우. 일이 점점 재미있게 돌아간다. 알아서 잘 하겠지 뭐.


재미있게 읽었지만 이전 편들보다는 다소 잔잔한 파도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사건이 주는 재미보다는 가정폭력과 조직 우선주의 같은 사회문제들을 언급하고 다루는 장면에서 오는 페이소스가 더 기억에 남는다. 이런 요소들이 작품과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고 독자에게 울림을 준다. 킬링 타임용 책들은 이런 페이소스가 없다. 아무튼 해리 보슈 시리즈는 무조건 믿고 보는 스릴러이다. 연속해서 다음권을 읽고 싶지만 아껴뒀다가 슬럼프 올 때 읽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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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1 22:41   좋아요 1 | URL
물감님 명절연휴 즐겁고 복된나날 되십시오 ^^

물감 2019-02-02 07:16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명절 잘보내세요^^
 
볼티모어의 서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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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조엘 디케르는 내가 극찬하는 작가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체를 지닌 탑 5 작가 중 한 명이다. 전작에서는 작가로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었고, 그 당시에는 한참 리뷰 쓰는 데에 몰두했던 터라 많은 공부가 되었었다. 이번 작품은 소설가가 글을 쓰는 원동력에 대해서 짧게 짧게 나오는데 마침 나 또한 요즘 소설을 쓰고 있어서 참고하며 읽었다. 주인공 직업이 작가로 나오는 작품들은 이래서 좋다. 데뷔작 ‘해리 쿼버트‘에서 나온 주인공이 이번에도 나온다. 그러면 마커스 골드먼도 시리즈인 걸까? 전혀 그런 느낌은 없는데 말이지. 전작은 주인공이 성인 된 후에 일어난 일을 기록했고, 이번 책은 주인공의 유년시절을 다루고 있다. 알록달록한 표지와는 다르게 골드먼 일가의 몰락이라는 비극적인 내용이었다.


골드먼 일가는 살고 있는 지역명을 따라 큰아버지네 볼티모어 골드먼과, 주인공네 몬트클레어 골드먼, 두 이름으로 불렸다. 주인공은 자기 집보다 잘 사는 큰아버지 집에 늘 붙어살다시피 했다. 큰집 사촌은 학교에서 늘 왕따를 당했었고, 소년원 출신의 우디가 그를 보호해주다가 큰집 볼티모어 골드먼의 가족이 된다. 그리고 두 사촌과 주인공은 세상 절친한 사이가 되어 행복을 만끽한다. 운동 천재인 우디는 훗날 풋볼 선수가 되었고, 두뇌 천재인 사촌은 큰아버지를 따라 변호사의 길로 간다. 잘난 게 없는 주인공은 조금씩 열등감에 젖기 시작한다. 그러다 세 명이 동시에 좋아한 여자를 주인공이 쟁취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볼티모어의 가족과 친구들은 한 명 한 명씩 일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와장창 무너지는 꿈과 행복들. 과연 볼티모어 일가에게 닥친 태풍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옛날 유럽의 고전영화 필름을 보는 기분이다. 세피아 필터가 들어간 느낌의 화질 낮은 영상이 눈에 보인다. 전작에서 보여주던 시원시원하고 힘 있는 필력이 아니라, 차분하고 느긋한 문체로 썼더라. 아마도 과거의 회상을 기록하다 보니 천천히 곱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문체를 바꾼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가독성은 여전히 좋아서 대충 휘리릭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된다. 나도 이렇게 읽기 수월하면서 적당한 템포와 무게를 가진 필력을 배우고 싶다. 이런 사람들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만 제외하고 평생 글 쓰도록 만들어야 함. 


골드먼 집안 남정네들은 전부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고집이 엄청 센 것. 자신의 능력을 너무 믿는 나머지 남의 조언과 도움은 절대 받으려 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쾅 하고 추락해 버렸다. 둘째는 질투와 시기심. 이것 때문에 모든 평화는 산산조각이 난 건데 재미있는 건, 질투하고 사과하길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지난 일들로 어떠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너 없인 못 살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열등감으로 가득 차서 서로가 잘못되기를 바라고 있는 아이러니함.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긴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질투심은 차곡차곡 쌓여왔고, 그것을 감춘 채 서로를 대해 오다가 오해들만 쌓였다. 그래서 공든 탑은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사춘기가 늦게 오면 이렇게나 무섭다.


마침내 혼자 남은 주인공은 소설가가 되어 지난 일들을 작품으로 만들어내었다. 내가 읽는 책도 그 작품이며, 작품 속에서 탄생한 책도 그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과거의 내용을 기록한 기념비 같은 작품이라 숨 막히는 전개 같은 건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작품 해설에 나와있듯이 주인공은 작가 본인의 분신과도 같은 캐릭터이다. 그래서 마커스 골드먼을 통해 작가의 생애와 철학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난 이후의 삶에 대한 책들은 많으나, 작가가 되기 이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들은 많지 않은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희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단순 기록을 넘어 하나의 이야기를 창조해내었으니까.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매력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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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이석원 지음 / 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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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감성을 가진 이석원 씨. 가수보다는 작가로써 유명해진 이석원 씨. 벌써 네 권의 책을 출간한 이석원 씨. 안 그래도 요즘 몸과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마침 당신의 책이 눈에 들어와 반가움에 집어 들었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성의 없어 보이지만 알맹이가 중요하니까 괜찮아요. 보통의 존재 이후로 수년이 지났는데 그대의 유리 감성은 여전하시더군요. 그간 많은 일도 있었던 것 같구요. 제가 그대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거에요. 그대의 글과 감성이 제가 평소에 쓰는 일기랑 너무 비슷하고 닮아있거든요. 제 일기장을 남들한테 보여줘서 당신과 제 글이 닮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정도에요. 남들이 들으면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저는 제 감성이 담긴 글을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좋아해요. 주기적으로 지난 제 일기들을 정주행하거든요. 그만큼 저는 당신의 글도 좋아합니다.


요즘 출판사들은 일기장에 끄적인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는 게 유행인 가봐요. 비슷한 류의 책들이 매주마다 쏟아져 나오던데요. 저도 욕심은 나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네요. 개인적인 글이 더 많으니까요. 일기같이 개인적인 글을 책으로 낸다는 것은, 글을 쓸 때부터 남들이 읽어주기를 의식하고 쓴 게 아닐까 해요. 제가 보수적인 걸 수도 있는데, ‘좋아요‘ 받기 위해 작성한 글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 에세이나 산문집들은 좀처럼 와닿지 않아서 손이 가질 않더라고요. 깊이가 너무 얕다고 할까요. 시처럼 묵직한 걸 원하는 게 아니에요. 여하튼 요즘처럼 가벼운 글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늘 제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는 이석원 씨의 글은 여전히 좋네요.


그런데 예전에 보여주던 느낌과는 왠지 달랐어요. 다른 분들은 별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저는 알 수 있어요. 기존에 보여준 당신의 감성이 미묘하게 바뀌었음을. ‘보통의 존재‘에서 보여준 것과 달리 지금은 남을 의식하고 쓴 글처럼 끈적끈적 함이 묻어 나와요. ‘보통의 존재‘는 담담한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담담한 척을 하는 느낌이 종종 있어요. 다는 아니지만 짧은 글들은 본인 만의 마일드한 톤을 볼 수 없었어요. 물론 편집자의 요구대로 수정을 했겠지만 과연 이 책은 본인만의 감성을 들려주기 위해 쓴 것인가요. 혹시 책을 내기 위해 글을 쓴 것은 아닌가요. 본인만이 답을 알겠죠.


제가 이석원 씨의 글을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당신의 글이 대부분 관계 중심으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저 또한 삶에서 1순위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인간적인 이야기를 속삭이는 당신의 글이, 남들과의 감정을 정리하는 당신의 글이 참 좋아요. 본인 스스로도 인간적이라는 말을 듣기 좋아할 만큼 인간미를 원하시더라고요. 당신이 말하는 ‘인간적‘이란 것에 대해 집중해봤어요. 때론 실수도 연발하고 잘못도 저지르지만 이해가 되는 사람,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더군요.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삶의 지혜도 늘어가고, 상처도 덜 받고 그래야 진짜 어른이 된 거라고 생각들 하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죠. 굳이 어른인 척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세상을 깨달았다 하기엔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우주의 먼지 알갱이 같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 그런 사람들. 당신이 바라고 원하는 모습은 제가 바라는 모습과도 아주 닮아있어요. 저도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절친한 사람은 많지 않네요. 그래도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이석원 씨도 이제는 자기 자신과 그만 부딪혔으면 좋겠어요. 감성적인 건 좋은데, 유리 감성은 금방 부서져버리니까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가 알던 분위기와 달라서 아쉬웠는데요. 3부 ‘엄마의 믿음‘에 와서야 진짜 이석원 씨의 감성을 되찾은 듯했어요. 가족에게서 얻는 깨달음이야말로 인생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부모님과 화기애애 한데도 당신의 투정과 후회들이 너무 공감되었어요. 엄마는 자식을 뒷바라지하는 내 인생의 엑스트라가 아니라 엄마 인생의 또다른 주인공인데 말이죠. 근데 자식들은 그것을 항상 늦게 깨닫는 것 같아요. 잘해드려야지 하면서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게 돼요. 어째서 이것만 자꾸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을 만들어 준 것도 감사합니다. 어서 건강 회복하시고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부디 좋은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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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유어 아이즈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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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발간된 바클레이의 작품을 전부 다 읽었다. 린우드 바클레이는 ‘제2의 할런 코벤‘으로 불리는데, 이는 코벤처럼 가족을 소재로 한 미스터리만 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패턴도 늘 비슷비슷하여 쉽게 질려버린다. (이미 코벤 작품은 질려서 안 본다.) 이 책은 가족 중 한 명이 사라지고, 사라진 가족이 알고 보니 과거 XXX 출신이었다는, 늘 똑같은 패턴에서 맴돌던 기존 작품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를 뿐 아니라 대박 재미있어서 이 작품만 보자면 바클레이가 코벤보다 훨씬 낫다고 할 정도이다. 읽고 나서 팔려고 했는데 그냥 소장해야겠군. 어쩌다 보니 맛있는 반찬을 맨 끝에 먹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에게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다 큰 동생이 있다. 어릴 적부터 ‘지도‘에 광적으로 집착해서 전 세계 지도와 도시 지역 곳곳을 외우고, 골목길까지 설명할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동생은 방안에 박혀서 ‘훨 360‘이라는 사이트(Daum의 로드뷰 같은)로 전 세계 곳곳을 살피고 여행하는 게 하루의 일상이다. 어느 날 뉴욕 거리를 여행하다가 3층 창가에서 비닐봉지로 얼굴이 묶여 살해되고 있는 장면을 발견한 동생은, 형을 시켜서 그 장소에 가보라고 시킨다. 동생의 땡깡에 못이긴 형은 문제의 장소를 찾아 뉴욕으로 떠난다.


한편 검찰총장의 아내와 바람을 피우던 한 여자가 아내에게 돈을 요구하는 협박을 한다. 주지사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남편에게도, 자신에게도 엄청난 타격이 올 것을 직감한 아내는 보좌관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는다. 보좌관은 건너건너 사람을 시켜 협박녀를 제거한다. 그러나 계산 착오로 타인이 살해되었고, 협박녀는 몇 달간 자취를 감추었다. 그들은 협박녀를 찾다가 살인사건 장소에 찾아온 주인공을 알게 되고 그를 역추적한다. 이후 엄청난 일에 휘말리게 된 두 형제는 이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컨텐츠가 신선했다. 국내에도 다음 회사의 ‘로드뷰‘가 있는데, 360도 캠으로 촬영한 도시 곳곳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로드뷰 촬영 당시에 찍힌 사람이나 동물들 때문에 재미있는 광경을 낳기도 했었는데 이 작품도 그것과 비슷했다. 로드뷰 화면에 살인 장면이 찍혀 있었고, 지도 광 동생이 그걸 발견한 뒤로 점점 꼬이는 사건들. 진짜 작가의 상상력에 좋아요 백만 개 누르고 싶다. 메인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사소한 문제들도 엮어서 반전에 반전을 보여준다. 반전이 대체 몇 번이나 나오는 거야? 숨을 못 쉬겠네. 특히 마지막 반전 두 건은 초 압권이었다.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반전 횟수는 이 책이 가장 많은 듯.


여러 사건이 엉키긴 했지만 어딘가 단순하다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일어난 일들과 지나간 미스터리들이 한데 뭉쳐서 스토리를 입체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미심쩍은 사고. 아버지의 노트북에서 발견된 ‘아동 성매매‘라는 검색 단어. 아버지와 동생 사이에 있었던 드러나지 않은 문제. 자신이 CIA와 일한다고 믿는 동생을 찾아온 FBI. 너무 일을 크게 벌려놓는 거 아닌가 할 만큼 걱정이 들었는데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전 대통령과 동생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이 망상인지 실제인지 궁금하게 만들어 작품의 흥미를 끌어올렸고 역시나 강력한 반전을 일궈냈다. 이런 카타르시스 때문에 독자들이 반전 요소에만 매달리는 게 아닐까? 반전이 약한 책은 재미가 없다고 치부해버리는 독자가 많아진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음. 이 반전이란 게 참 날카로운 검같이 강력함과 위험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독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본다.


사건들이 하나 되는 과정이 다소 느리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자연스러워서 완벽한 개연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작품들은 이 정도로 매끄럽지 않았기에, 그동안 작가도 엄청 성장했다는 걸 느꼈다. 여러 면에서 기존 작품들과 다름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미 일이 커지기도 전에 독자가 걱정하게 만드는 기교가 특히 대단했다. 일단 앞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대략 예측이 되는 플롯이다. 이러면 보통 독자 입장에서는 김빠지고 기대 없이 읽게 되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긴장은 풀리지 않았고, 앞으로 닥쳐올 일들에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작품에 빠져들지 않아서일 것이다.


죄도 없는 주인공이 갑자기 표적이 되어 쫓기는 신세가 되는 것과, 도주 중인 협박녀도 결국 제거 당할 것들은 미리 예측이 된다. 그런데 다 읽고 보니 독자가 이 예측 가능한 것들에 신경을 쏟도록 만들고, 뒤에서는 조커 카드를 여러 장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제프리 디버가 말했던 ‘미스 디렉션‘이란 것인가. 오래간만에 별 다섯 개를 만나서 내 기분 지금 신라! 그나저나 소설은 언제 쓰지... 이놈의 귀차니즘, 어떡하면 좋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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