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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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없이 집어 들었는데 은근히 재미있다.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신과 천사들이 인간을 어떤 식으로 돕고 세상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등등 천국을 새롭게 재해석한 작품이다. 일단 유쾌해서 좋다. 전 세계를 주관하는 전지전능한 신들의 세계와는 많이 다르다. 인간미 가득한 거룩하지 않은 신과, 허당끼 있는 천사들은 인간과 별반 다른게 없다는 설정이다. 요나스 요나손 같은 병맛소설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냄새는 난다. 요즘 날씨도 우중충한데 이런 작품을 읽어줘야 우울함이 물러가지 않을까 싶다.


천사 일라이저는 인간들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고 놀기만 하는 하느님에게 비난 아닌 비난을 했다. 인간 프로젝트에 흥미를 잃은 하느님은 그냥 지구를 파괴하고 천국 레스토랑 사업을 하겠다고 선포한다. 천사 일라이저와 크레이크는 쌓여있는 기도문 중 하나를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면 지구를 놔두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따낸다. 단 억지가 아닌 우연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임무를 완수해내야 한다. 많고 많은 기도문 중에 남녀가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는 기도 주문서를 뽑아 임무수행에 들어간 두 천사는, 한 달 뒤 지구종말 전까지 두 사람을 데이트하게 만들어야 한다. 두 남녀는 서로 좋아하니까 다 된밥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건데 세상에,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게 되는 것은 로또 맞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것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큐피드 화살이라도 날리고 싶지만, 하느님은 무조건 자연스럽게 좋아하도록 만들길 원한다. 과연 두 천사는 이 남녀를 사랑하게 만들고 지구 종말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제목에 약간 낚인 기분이 든다. 나는 대기업 같은 천국 안에서 일어나는 좌충우돌 사건들이 궁금했다. 그런 내용은 잠깐이고, 지상세계를 관장하는 내용과 두 남녀의 만남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하느님의 지구 파괴 선언 이후 천사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마냥 신나있다. 두 명의 천사만 빼고. 지구 종말이 본인들 탓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불타는 사명감으로 두 남녀를 에스코트하기 시작하는 두 천사. 남녀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멍석을 깔아줘도 싱겁게 헤어져서 진도가 영 나가질 않는다. 결국 종말 2일 전이 되어서야 겨우 커피 한 잔 하자는 말이 나와, 남은 48시간에 승부를 걸기로 한 천사들은 몸 안에 수분이 다 말라간다. 분명 긴박한 상황인데 인간들은 그걸 모르니 분위기가 고조되지 않아 아쉽다. 그래도 상관없다. 재미있으면 됐지. ​


두 남녀를 돕는 과정에서 속출하는 주변 피해를 보고 이걸 웃어넘길지 말지 고민했다. 둘리보다 고길동이 불쌍하다고 느끼면 나이 든 증거라던데, 나는 이런 유머 가득한 소설도 진지하게 읽고 있구나. 흑흑. 여하튼 간만에 코믹한 작품 읽어서 좋았다. 적당한 유머와 스피디한 전개와 신선한 소재. 쏘 굳. 연차 내고 머리 좀 식힐 때 읽으면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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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분 인문학 - 가장 괜찮은 삶의 단위를 말하다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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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지금 혼자 사는 사람들의 시대가 되었다. 타인과 함께하는 게 당연했던 식사도 영화 감상도 노래방도 이제는 전혀 눈치 안 보고 혼자 할 수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이것이 편할 것이고 옛 세대들은 적응 안 되거나 불편할 것이다. 나는 둘 다 해당되는데 옛부터 여러 명이서 어울리기보단 친한 사람 두세 명 정도가 더 편해서였다. 나는 딱히 취미가 없다. 좋아하는 독서도 하루 종일 붙잡고 지낼 정도는 아니며, 그렇다고 자기계발에 투자하고 살지도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를 몰아서 보지도 않는다. 따라서 잉여 시간이 많은 편임에도 혼자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다. 유독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이러지 않나 싶다. 사회의 시스템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남들에게 일일이 맞춰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몇 년간 지속하다 보면 배터리가 쉽게 방전된다. 그래서 늘 좋은 이미지를 유지하던 사람마저도 다 내려놓고 내 편한 길을 택하게 된다. 일단 내가 그렇다. 나는 소위 착한 아이 증후군에다 친절 남이었다. 이건 가식이 아니라 천성이 그러했다. 그래서 약아빠진 친구들에게 맨날 손해만 입었고, 겁이 많아 뭔가에 도전하는 것도 어려웠고, 심지어 낯선 곳에 여행 가는 것조차 왕 부담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회 나와서 눈칫밥 먹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결혼까지 했는데도 신입처럼 똑같이 대하고 마냥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 때문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점점 주변과의 교류를 끊고 거리를 두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찌나 편하던지,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혼자를 원하는 이들의 사정은 어느 정도 비슷비슷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은 개인의 만족도를 높이는 게 우선인 시대가 됐다.


직장에서 독서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더니 남들과 어울리기 싫어서 일부러 그러냐는 말까지 들었다. 내가 일부러 벽을 쌓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도 어울릴 때는 얼마든지 잘 어울릴 수 있다. 내 사회성이 떨어질까 봐 걱정해주는 건 감사하지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암튼 오지라퍼들의 말이 완전 틀린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대로 일과 독서와 소통의 균형을 잘 잡고 사니까 괜찮다. 차라리 책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도 하던데, 그것도 저자의 말대로 혼자 하는 플레이가 아니면 해당되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왜 책을 많이 읽는가? 독서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몸 밖으로 표현하는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도, 노래하는 가수도, 연기하는 배우도, 곡 쓰는 작곡가나 춤추는 댄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보여주려면 꾸준하게 영감을 얻어야 한다. 그건 내면의 나와 마주하지 않으면 절대 얻을 수 없는데, 그러면 이 현대사회 속에서 나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제일 간단하고 효과적인 게 독서다. 가벼운 이미지의 예능인들도 사실은 엄청나게 책을 읽는다. 독서가 습관화되면 그동안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은 신분상승이 전부가 아니며, 물질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며, 천하를 얻고도 허무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뭐든지 과잉 관계가 문제라고 작가는 말한다. 타인과의 결합에서 개인의 의미가 존중되지 못할수록 혼자를 선호하게 된다는 뜻이다. 팀을 위해서, 회사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할 때도 있지만 특정 상황이 아닌데도 계속 희생이 요구되면 인간은 서서히 지쳐간다. 현대사회는 관계를 많이 맺을수록 고립감은 더욱 깊어진다. 한국인은 타인지향형이 많다고 하는데, 한마디로 남이 보는 기준에 나를 맞춘다는 것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 개인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다시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독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이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은 진짜 자신을 만났기 때문에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기준을 두는 법도 알아서,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공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장점들이 많은데 혼족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야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국의 현대 사상가가 강조한 ‘개인일 때 유지될 수 있는 도덕성‘을 살펴보면, 개인보다 집단일 때 비도덕적인 판단과 행위가 높다고 한다. 집단은 쉽게 이기적인 충동이 생기며 억제할 수 있는 이성이 결여된다. 나는 이 말에 국내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떠오른다. 그곳의 유저들은 뭐든지 이분법적으로 나눠서 무조건 옳고 그름만 따지고, 한 명의 주장이 댓글로 달리면 너도나도 맞는다고 공감하며 추가 댓글이 달린다. 얼핏 보면 각자가 자신의 기준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타인 지향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폐쇄적인 공간에서는 절대 자신을 찾지도 나타내지도 못한다. 혼자일 때는 멀쩡하던 정상적인 사고가, 집단에 속했을 때에는 판단이나 분별력이 흐려지기 쉽다. 저자는 여행, 독서 등 혼자서 가능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과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면적 성찰의 계기를 잡으라고 말한다.


남녀 할 것 없이 개인화를 주장하지만, 혼족은 자유를 억압받는 여성들이 더 원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할 것이 남성보다 더 많다는 것에 동의한다. 여성들이 비혼을 선호하게 된 것도 넓게 보면 다 남성들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여자들이 설 곳을 주지 않았고, 여성인권을 무력으로 짓밟고 차별하기 때문에, 이제는 남성들이 저질러온 대가를 고스란히 치러야 한다. 난 여자 없이 잘만 사는데?라고 하는 남성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건 말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인간이다. 혼족 문화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되자는 게 아니다. 이기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 책을 잘못 읽은 거다. 차라리 게이가 되겠다면 굳이 말리진 않겠다.


단순 사회생활뿐만이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알아가는 단계에서는 모든 게 조심스럽지만, 편해졌다고 느끼면 잘 보이려고 하기는커녕 상처될 말도 필터 없이 나가곤 한다. 그래서 저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약간의 거리를 두어야 객관화된 사고방식이 가능하고, 독립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성숙해진다고 말한다. 이 내용을 허지웅의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도 본 적이 있는데, 저자도 같은 말을 하는군. 먼저는 개인의 독립성과 존중성을 갖추어야 건강한 집단적 사고와 경향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혼족 문화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를 바꾸는 데에 있어서 필수가 되고 있다. 나의 부모님만 해도 시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젊은 세대들을 존중하려고 하신다. 미약하나마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대한민국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예전에 방송에서 정형돈이 한 말이 있다. ‘우리나라가 5천만 국민이라면, 5천만 가지의 성공이 있다고 생각한다.‘ 잠시나마 전 국민의 가슴을 울리고 적잖은 위로를 주었었다. 그 말이 실현되려면 개인의 행복부터 보장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나의 행복에 타인의 간섭이 너무 많다. 오죽했으면 ‘소확행‘이란 말로,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시대가 돼버렸는가. 그것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라는 말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사회가 언젠가는 더 나은 행복의 질을 가져오리라 믿는다. 그때가 되면 매년 감소하는 결혼율, 출산율, 취업률도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중국인 전체가 동시에 점프하면 지진이 난다고 한다. 그것처럼 모두가 개인의 삶을 존중하자는 생각에 동의하고 동참할 때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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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9-03-11 16:35   좋아요 1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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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3-11 16:48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지내시죠?ㅎㅎ
공감된다니 좋으면서도 씁쓸하군요^^;

바카나 2019-03-16 12:36   좋아요 1 | 수정 | 삭제 | URL
잘 읽고 갑니다 ^^

물감 2019-03-16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navel_nerine 2019-03-18 01:35   좋아요 1 | URL
중간에 페미는 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감 2019-03-18 09:22   좋아요 0 | URL
저는 페미니스트가 아닙니다. 본문에서 나오는 내용에 공감되는 부분과, 개인적인 생각을 기록한것 뿐입니다. 여하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9-03-19 18:59   좋아요 1 | URL
앞으로 혼족 문화가 번성할 것 같습니다. 졸혼도 그 경우죠. 저는 그동안 여성들이 너무 참아 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요즘 이혼율이 증가한 것도 여성들이 너무 참고만 살다가 이젠 참지 않기로 했다, 로 해석합니다. 확실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불리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 맞습니다.일반적으로 대기업은 여성보다 남성을 더 많이 뽑는 경향이 있어요. 취업이라는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여성은 불리한 조건에 있습니다.

물감 2019-03-19 19:15   좋아요 1 | URL
저는 선동질하는 댓글부대들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해요. 간혹 사회에서 문제되는 행동하는 여성 한 명만 나오면, 이때다 싶어서 남녀를 가르고 선동질하는 사람들이 꼭 있더라구요. 그들이 있는한 남자들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요. 걱정입니다...
 
다음 사람을 죽여라
페데리코 아사트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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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뷰 쓰기도 어렵고 줄거리 요약도 힘들다. 그리고 뒤표지에 찬사가 가득한 작품은 역시 기대하지 말아야 함. 나랑 안 맞는 작품을 만나면 리뷰마저 시들시들해지나 보다. 뭔가 의욕이 상실됨. 아오 그냥 다 별로야. 나는 이 작품 반댈세. 그러나 남들은 잘만 읽었다는 사실이 나를 쭈구리로 만들어버림.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뇌종양에 걸린 주인공은 머리에 총 쏴서 자살하려는 중이다. 그때 등장한 X맨이 이왕 죽을 거 청부 살인 좀 해달라는 제안을 한다. 그 제안에 따라 살인범을 죽이고 이어서 사업가도 죽였는데, 알고 보니 사업가는 죽여선 안될 사람이었다. 그리고 눈 떠보니 꿈에서 겪은 일이 현실에서 그대로 되풀이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X맨을 믿지 않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따로 사업가를 찾아가 들은 말이, 그 X맨이 널 속인 거라고 한다. 이후 또 꿈에서 깨어나 보니 살인범이 죽어있었고, X맨은 자신이 죽도록 패서 입원한 상태였다. 결국 강제로 정신 병동에 입원되었는데 심리치료사는 주인공이 입원한 지 7개월이나 지났다고 한다. 물론 주인공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의사 말로는 그의 특정 기간 기억이 반복되고 있단다. 자신이 본 환상들은 모두 허상이 아니라 실제를 바탕으로 한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일부 기억들이 단절돼있어 자신의 살인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이 안된다. 이 난해한 환상 가운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종결할 수 있을까.


책 뒤표지에 실린 몇 줄의 문구가 진짜 사기급이다. 뒤 내용만 보면 엄청 재미있는 플롯이 연상된다. 그러나 읽어보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떤 조직이 주인공을 살인에 가담시키고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정신병 환자의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병원에 입원되기 전까지만 흥미로웠다. 솔직히 그다음부터는 뭔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몽환적인 느낌도 강하고, SF 소설처럼 가상세계에 대한 내용 같기도 하고, 주인공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비중이 더 많은, 뭔가 줏대 없는 소설이었다. 아니면 내가 제대로 못 읽은 걸수도 있고. 이해 안 되는 게 많아서 다른 리뷰들을 유독 많이 읽었는데 다들 지루함과 혼란함을 느끼셨더군. 난 내가 너무 영미소설에 익숙해져서 그런 줄 알았지.


후반에는 갑자기 기억이 돌아온 건지 주인공 태도가 급변한다. 그동안 죽인 사람들도 전부 시인하고, 멀쩡한 표정으로 자기를 죽여달라는 등 전혀 딴 사람이 돼버린다. 작가는 갈수록 주인공을 범인으로 몰아간다. 이쯤에서 1차 실망을 한번 하고, 이후에 진짜 범인이 밝혀져 2차 실망을 하고, 에필로그에서 3차 실망을 하게 된다. 마지막 챕터에서 반전을 차례차례 때리는데 그것만 신경 쓰느라 정작 필요한 설명은 부실했다. 환상에 등장하는 주머니쥐의 정체도 모르겠고, 전혀 복선이 없던 사람을 갑자기 범인으로 세운 이유도 모르겠고, 특히 주인공이 미쳐버린 것은 폭력적인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라는 추측 정도만 가능했지, 납득될 정도의 설명이 없었다. 그냥 전부다 생뚱맞고 시간만 날린 느낌이다. 이런 정신없는 소설을 대하는 독자의 유형은 두 가지이다. 어떻게든 이 혼돈을 이겨내려고 하는 자와, 나처럼 끈을 놓고 그냥 읽는 자. 이해가 어려운 작품도 얻을게 많다면 나도 죽기 살기로 읽을 마음은 있다. 그러나 단가가 맞지 않으면 뇌의 칼로리를 무리하게 태우고 싶진 않다.


음, 당분간은 얇은 책을 좀 읽어야 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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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를 보여주마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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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다 평점을 매기는 기준이 다 다를 것인데, 나는 A-B-C 중에 두 가지 이상 충족되면 점수를 높게 주려는 편이다. 가령 스토리는 별로지만 가독성과 전달 메시지가 좋다거나, 가독성은 꽝이지만 소재가 신선하고 작가의 철학이 돋보인다거나 이런 거. 장점이 최소 두 가지 이상은 돼야 좋게 봐준다. 그런데 애매한 작품들도 은근히 많다. 이 작품도 그러한데, 컨셉은 괜찮았지만 스토리를 잘 살렸다고 하긴 애매하다. 작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알겠는데, 메인 사건보단 캐릭터의 과거 내용이 더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그 개인사들이 캐릭터 설정에만 의미가 있고, 현재 사건과는 하나도 관련 없다고 느껴진다. 내용들이 따로 놀고 있는 작품이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했는데, 점수를 높게 주자니 뭔가 내키지 않고, 낮게 주자니 수고 많이 한 작가에게 미안함이 든다. 나는 선택 장애가 없는데도 이럴 땐 장애가 오곤 한다.


한 변호사가 실종되었다. 실종사건 후로 익명의 발신자가 이상한 이메일을 변호사에게 주기적으로 발신해온다. 그러다가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동영상이 메일로 왔고, 수사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변호사는 사체로 발견된다. 이후 한 시사평론가도 실종되었는데 이 사람도 익명의 유저가 이상한 글을 그의 블로그에 주기적으로 쓰고 있다. 그리고 앞의 똑같은 동영상이 블로그에 올라왔고 그도 죽음을 맞이한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두 피해자가 과거 ‘샛별회 사건‘과 연관된 인물임을 알아낸다. 그 당시 공안기관은 샛별회를 반정부 세력으로 정의했고, 그중 핵심 인물들을 구속하고 폭행했다. 실종 변호사는 그 사건의 담당 검사였고, 평론가는 담당 기자였다. 기자가 검사를 꼬드겨 샛별회 사건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붙잡혀 고문당하고 생을 마감했다. 경찰들은 샛별회 사건으로 죽은 자들의 2세들이 복수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추가 살인을 막아야 하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보이질 않는 범인들. 그들의 복수를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


살해 방법을 소설로 만들어 출판도 하고,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까지 만들었다? 신선한 돌 아이 발상인데 그걸 그대로 경찰에게 알리다니, 대체 얼마나 자신 있는 범인인가 싶었다. 대작의 느낌이 올랑말랑 하고 있는데 점점 옆길로 빠진다. 검사와 경찰과 범죄학자가 수사하다 말고 자꾸 과거 회상으로 빠진다. 나쁜 건 아닌데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검사의 가정사 내용이 훨씬 재미있다는 거다. 부모가 죽은 뒤로 작은집 사람들 손에 길러지면서 온갖 멸시를 받고 자란 검사와, 죽기 전에 비밀을 털어놓는 작은아버지. 가뜩이나 사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져있는데, 가족들까지 본인을 흔들고 찔러대니 미칠 지경이다. 그토록 모질게 굴어놓고 이제 와서 용서를 구하는 작은집 사람들을 보다 보니 이거 이거 전형적인 한국의 막장드라마 냄새가 난다. 이 내용이 더 흥미진진해서 메인 스토리는 갈수록 텐션이 떨어지고, 범인들은 코빼기도 비추질 않으니 긴박함에 비해 속도감은 퍽퍽 줄어든다. 이런 마이너스 요소들이 작품성을 무너뜨리는 느낌이 들었다. 쩝.


과거와 현재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찾고 수사에 팁을 주는 플롯은 시리즈 소설에서나 볼 법한 구성과 기교인데, 그걸 한 작품으로 압축하려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그리고 딱히 연결고리도 없어서 붕 뜬 구간도 많았다. 무엇보다 용의자들의 시점이 없는 게 가장 답답했고 끝내는 사건을 미결로 종료했을 때 작가님이 지쳤나 싶을 정도로 허탄했다. 이렇게 불편한 진실은 또 한번 침묵당했다. 어쩌면 작가는 이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왕 사회 고발을 하겠다면 이보다 더 강력하게 다뤘어도 좋았겠다. 살인은 잘못된 것이지만 어쩐지 정당한 복수 같아서 범인들의 편을 들어주고 싶었다. 경찰들은 지난날의 과오를 숨기려 무던히도 애를 쓰고, 범인들은 역사의 진실을 늦게라도 밝히고 형벌하고자 한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법이 곧 정의‘라는 말이 싫어진다. 그러면서도 내가 불리할 때는 법대로 하자는 말부터 나온다. 인간이란 참 간사한 동물이다. 그 기분을 이 책에서는 여러 번 느끼게 한다.


나는 스토리의 힘은 캐릭터에게 있다고 늘상 말하는데 이 작품은 좋은 캐릭터들을 가지고도 스토리가 부실했다. 잘 만든 인물들을 사건에 적절히 버무려주어야 했는데 각자의 에피소드가 되어버려 무의미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나저나 범인들이 말하는 ‘코뿔소‘는 대체 무엇인가. 뿔이 부러져도 다시 자라나는 코뿔소는 뿔의 방향대로만 나아간다고 설명이 나오는데, 그걸 2세들의 성격 및 가치관과 일치하게 본다는 건 어딘가 좀 억지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만 잠자코 있으련다. 최근 휴일 동안 먹고 놀기 바빠서 책에 집중을 못했더니 리뷰가 엉망이네. 나름 꾸준히 독서생활을 하는데도 잠깐 해이해졌다고 이 모양이니 원. 유튜브로 코뿔소나 구경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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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토어 밀리언셀러 클럽 138
벤틀리 리틀 지음, 송경아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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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중에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름 날린 장군들도 벌벌 긴다는 골리앗을 곱상한 소년 하나가 쓰러뜨린 기적 같은 일화. 실제로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 얼마나 떨렸을까. 연약한 홀몸으로 괴물을 상대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윗은 승리하였고 전장의 흐름을 뒤집는데 성공한다. 이 작품도 한 개인이 괴물 같은 대기업과 맞서싸우는 이야기이다. 가족도 친구도 동네와 마을도 다 잃고 끝내 자신도 잃어가면서 괴물과 싸워 승리한 역사의 이야기이다. 물론 허구이지만 손발가락 다 합쳐도 부족할 만큼 굵직한 메시지와 교훈이 가득하며, 공포소설인데도 감동 실화처럼 굉장한 여운을 준다. 말로 표현 안되는 이 기분, 참 묘하다.


작은 읍내 도시에 있는 산을 싹 밀고 더 스토어의 건물이 세워졌다. 자연까지 파괴해가며 들어온 이 대형 마트를 혐오하는 주인공과 달리 남들은 다 호의적이다. 많은 이들이 우르르 직원으로 들어갔고 두 딸도 그곳에 지원했다. 그러나 이 상점은 부도덕적인 악마의 계약으로 직원들을 통제했고, 고객들을 오직 더 스토어에만 의존하게 만들었다. 이후 자영업자들은 가게를 문 닫았고 모든 상권이 전부 망해버렸다. 읍의 예산이 바닥나면서 기관들은 급여를 삭감하거나 직원을 해고했고, 점차 민영화되기 시작했다. 운영이 안되는 곳마다 더 스토어가 운영비용을 대주면서 도시 전체를 집어삼켰고 통제했다.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려 해도 전국에 더 스토어가 장악한 상태였으며, 그들의 감시는 끝이 없었다. 이런 시스템에 욕지기를 느낀 주인공은 갖은 노력 끝에 더 스토어의 대표를 만나러 간다.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그에게 극단의 조건을 제안하는 대기업 회장. 싸워 죽을 각오로 회장을 찾아왔지만 권력을 그의 손에 쥐여주자 주인공은 돌변한다. 아이고, 이 악몽은 대체 어떻게 끝나는 걸까.


면접 보는 자리에서 옷을 벗고 소변검사를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요즘 시대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작품이다. 지금은 기업에서 말실수만 해도 신고 당한다. 그러나 이 책의 출간 당시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이나 녹음이 불가해서 고객은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치와 모욕을 주는데도 순순히 굴복하게 된 건, 모두가 좋아하는 기업을 나 혼자 싫어해봐야 본인만 손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더 스토어는 가난한 소읍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고, 대도시에서나 얻을 수 있는 물건들을 공급하는 유일한 곳이었다. 그러나 더 스토어는 지역민과 절대적인 상하관계를 나누고, 모집한 직원들에게도 무력으로 행사하는 일명 쓰레기 회사였다. 그들의 횡포와 권력은 가족과 이웃과 동네와 도시를 차례차례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게 왜 공포소설인지 알 것 같다.


내놓는 가게마다 몽땅 사들인 더 스토어는 없는 게 없는 만물상 기업이 되어갔다. 카센터, 택배, 음식점, 미용실, 음반가게 등등 모든 곳에 손을 뻗쳤다.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더 스토어의 직원이 된 지역민들은 결국 그들의 노예가 된다. 나중엔 방송국까지 매입하는 무식하게 놀라운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더 스토어는 읍내 규칙도 예외였고, 과세도 면제되고, 심지어 읍내 토지도 기증받는 등 전례 없는 특별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게 다 도시의 발전을 위해서라는 읍회의 결정이었다. 도시 전체가 파산 직전인데도 읍의 발전을 위한 잠깐의 성장통일 뿐이라며 다독였다. 결사반대를 외치던 보수파는 진보파에게 억눌렸고, 사각지대에서 더 스토어에게 무력으로 당했다. 계란이 아무리 많아봤자 바위 앞에서는 다 깨져버린다. 약자의 무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불편함 가득한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지만 주인공의 두 딸이 유독 그러했다. 더 스토어가 잘못된 걸 인정하지만 겉으로는 회사를 지지하고, 일을 그만두라는 부모와 목청껏 싸운다. 그곳은 하나의 사이비 종교였다. 가족보다도 회사가 우선이라며 무조건 따르고 맹신하도록 교육했다. 딸들은 완전히 세뇌된 게 아님에도 진심이 아닌 말들을 내뱉었다. 직원들은 법적으로도 강제 해고가 불가능했으며 딸들을 구해줄 수 없는 부모의 심정이 느껴져서 나까지 힘들었다. 아직 반도 안 읽었는데 여기서 더 심각해진단 말인가? 우려했던 대로 사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특히 후반부에서 주인공에게 닥친 일은 작가가 진짜 너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귀신 나오고 좀비 나오는 것만이 공포가 아니다. 이런 게 진정한 공포다. 넓게 보면 건물 하나 들어왔을 뿐인데 이 정도의 스릴과 공포를 뽑아낼 수 있다니. 게다가 디스토피아의 조건도 갖추어서 마냥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었다. 저자가 스티븐 킹과 함께 미국의 대표 호러 작가라는데 절대 과장이 아니다. 이런 식의 호러라면 얼마든지 사랑해줄 수 있을듯하다.


이 책이 주는 대표적인 메시지는 인간이 끝없이 나락에 빠지는 것은 탐욕 때문이며 그것이 우리를 몰아간다는 것이다. 더 좋은 것, 더 나은 생활, 더 훌륭한 삶을 바라면서 현재에 만족할 줄도 감사하는 법도 잊어버린 자들에게 주는 강력한 경고장이었다.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권력을 쥐게 되면 그 권력을 부리는 일에 익숙해지게 된다. 호사를 누리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나보다 남들이 못 사는 모습을 봐야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이 추악한 본성을 가르치는 곳이 더 스토어였다. 이 권력에 굴복한 자는 사회의 패자가 되고,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높은 자리에 오른 자는 기존의 권력자들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그래도 된다는 보상심리도 작용할 것이고, 스스로가 최고라고 여길 테니까. 진정한 공포는 인간의 본성에 숨어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자 그럼, 이 책이 다윗과 골리앗 내용과 어디가 닮았는지, 또 주인공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는 직접 읽어서 공감해보시길 바란다.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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