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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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왕복서간‘의 리뷰에서 잔잔한 호수 같은 작가라고 했는데 완전히 틀렸다. 사냥감을 덮치기 직전 숨죽이고 있는 호랑이 같은 작가였다. 미나토 센세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큰 편인데 결코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다. 그녀의 글들은 채찍질도 모자라 당근으로도 때리는 팩트 폭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날카로운 송곳으로 긁는듯한 문장들이 많은데 이런 반박 불가한 글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유리멘탈 소유자들은 부담을 넘어서 상사에게 혼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여하튼 이 작품은 작가의 포부답게 이것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비장함이 가득하다.


딸의 회상과 엄마의 고백이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고 또 사랑받았던 주인공은 결혼 후 딸 가진 엄마가 된다. 그러나 자신의 딸보다는 어머니가 삶의 1순위였으며, 어머니가 손녀에게 주는 사랑과 관심은 자신만의 것이어야 했기에 딸에게 마음을 다 주지 못하고 반쪽짜리 모성으로 육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불이 나서 어머니와 딸이 죽을 지경에 놓였을 때 주인공은 어머니를 구하려고 하나 어머니는 손녀를 구하라고 하고 혀 깨물어 자살한다. 이후 본격적인 시월드와 함께 별의별 산전수전 다 겪는 악몽의 나날이 시작된다.


작가는 묻고 있다. 모성은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생겨나는 것인가. ​자식을 낳고도 딸이 아닌 자신의 어머니에게만 사랑이 흐르는 주인공. 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원래 내 것이라는 집착이 점점 커져가는 엄마와, 엄마에게 인정받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애늙은이 딸. 이 두 사람의 단추는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진 걸까. 어머니가 주인공을 워낙 오냐오냐 식으로 키워서 애정결핍이 된 게 아닌가 싶지만 주인공도 이해가 되는 게, 시댁한테 사랑과 정을 많이 못 받아서 마음이 자꾸 친정으로 향했을 것이다. 어른이 되었어도 사랑받고 싶은 건 매한가지인데 그걸 채워주는 사람은 지금은 없는 자신의 어머니뿐이었다. 딸은 엄마가 있는데 나는 없어서 불공평하다는 이런 엄마의 모성도 모성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엄마의 말대로 따를 때와 따르지 않았을 때의 온도차를 보며 엄마가 기뻐할 행동만 계산하는 딸은, 마음에도 없는 말과 행동이지만 이렇게 해야 엄마가 자신을 잠깐이라도 사랑해준다는 것을 어렴풋이 배운다. 시댁에게서 엄마를 지키고자 했으나 자신의 행동들이 의도치 않게 매번 나쁜 결과로 돼버려 엄마는 시댁에게 미움을 사고 자신은 갈수록 사랑받지 못한 아이로 자라난다. 딸이 잘할 때면 자신을 닮아서 그런 거고, 못할 때면 시댁의 피는 못 속인다며 혀를 차는 엄마. 저 시댁 사람들도 팔이 안으로 굽는데 엄마의 팔은 왜 밖으로만 굽는 걸까. 할머니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는데 엄마의 사랑은 왜 조건부 사랑처럼 느껴질까.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이런 식의 결말은 내가 바라던 게 아니었다. 이런 자비는 오히려 성의 없게 느껴져서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별 하나 깎고 싶었지만 임팩트가 너무 강렬하여 눈 질끔 감고서 별 다섯 개 드리리다. 이렇게 등잔 밑이 어둡다는 팩트를 조명하는 일본 작가들이 여럿 있지만 내게는 미나토 가나에가 원 탑이다.  그나저나 시어머니들도 한때 며느리였으면서 왜 며느리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걸까. 확실히 나이만 먹었다고 전부 어른은 아니다. 밑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그릇을 갖춰야 참된 어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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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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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조직에서 근무하는 주인공의 아내가 유괴되었다. 아내를 돌려받으려면 어떤 한 남자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그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다 어느 가정집에 들어가 한 모자를 인질로 잡게 된다. 그 집 아들이 빈틈을 노려 경찰에게 신고한 결과 이 인질극은 매스컴을 타고 생중계가 된다. 시간은 없는데 꼼짝없이 갇혀버린 주인공은 제시간 안에 아내를 구할 수 있을까.

작품의 구성 방식이 독특하다. 마치 학교 선배가 군인시절 겪었던 썰을 들려주는 듯한 진행형이다. 보통 이런 경우는 허세나 뻥튀기가 섞이기 마련인데 이사카 코타로는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아 담담한 편이다. 돌아가는 상황은 심각한데 중간중간마다 대화체의 내레이션이 나와서 긴장감이나 현장감을 다운시켰고 작품이 점점 가벼워져버렸다. 이런 부연 설명들은 오히려 독자의 상상이나 사고를 방해할 뿐이다.

등장인물들이 전부 크고 작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 각자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어 딱히 응원하기도, 비난하기도 애매했다.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 우연히도 사건에 엮이고 범죄자들끼리 연합하여 각개전투를 펼친다? 소설이 다 그렇다지만 이건 정말 우연의 끝을 달리는 거 아닙니까.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범죄자가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어 돕기로 했다는 게 참 비현실적인데, 작가 본인이 생각해도 거시기했던지 참 현실미 없다는 문장도 나오더라.

여하튼 잘 달리던 자동차는 점점 기름이 떨어져 속도가 줄어들더군. 기발한 발상은 인정. 근데 모르겠어. 이래서 거창한 광고글의 작품은 다 거품이라는 인식이 남게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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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映 2018-08-05 23:43   좋아요 1 | URL
이사카 책 좀 현실감이 없긴 해요 ㅋ

물감 2018-08-06 13:26   좋아요 0 | URL
진짜 엉뚱한 작가에요ㅋㅋ
 
초판본 데미안 (양장) -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이순학 옮김 / 더스토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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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1919년 ‘에밀 싱클레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소설이다. 이 책은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성찰을 고하는 작품이다. 아직은 고전문학에 대한 내공 부족으로 온전히 이해를 못했다. 이래서 고전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줘야 하는 건지도.

잠깐의 거짓말이 가져다준 파멸은 어린 친구에겐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 떠나갈 때 나의 존재도 소멸되었고, 이제는 어떤 빛으로도 작은 어두움조차 몰아낼 수 없었다. 한번 손상된 순수는 다시 제자리로 갈수 없었고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 주인공. 그렇게 괴로워하던 중 전학 온 데미안에게 도움받아 구원받는다. 그러나 해방된 기쁨보다는 오히려 빚진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멀어진다.

데미안은 어딘가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사람이었다. 어리지만 어른스럽고, 차분하지만 광적인 눈빛이었고, 천사같이 고귀해 보였다. 데미안은 종교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았고 모든 것을 다르게 해석했다. 그의 종교관 영향을 받을수록 주인공은 선과 악의 경계를 의심하게 된다.

새가 세상으로 나가려면 알을 산산이 부숴뜨려야만 한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나를 가로막는 세계를 파괴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가야 한다. 데미안은 자신과 같은 탐구자들은 미래로 향하고, 빛의 세계인들은 과거로 간다고 말한다. 거참, 심오하고 복잡한 말을 너무 돌려서 설명하는 것 같아 두통이 오네. 주인공은 곧 작가 자신을 반영한 것일 테지. 작가가 말하는 자유란 순리대로 산다는 것일까. 이 책의 많은 리뷰들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있는데 내가 이해하려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도 조심스럽다. 나이 좀 더 먹고 다시 읽어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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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미니 헬렌 그레이스 시리즈
M. J. 알리지 지음, 전행선 옮김 / 북플라자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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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 미니 마이니 모‘의 뜻은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보세요. 딩동댕동‘ 이란다. 두 사람을 밀폐 장소에 가두고 총알 하나만 장전된 권총을 던져준 다음 죽일 것인지 죽을 것인지를 고르게 하는, 지독한 악취미의 범죄가 시작되었다. 산 자를 돌려보내면 곧바로 또 다른 누군가가 같은 악몽을 겪는다. 연쇄 범죄의 피해자들이 자신과 연관됨을 파악한 헬렌은 눈앞의 산불이 오랫동안 외면했던 과거의 작은 불씨로부터 시작이었음을 깨닫는다.

경찰 소설의 단골 소재가 전부 다 들어있다. 내부의 배신자도 있고, 팀원 간에 갈등도 있고, 주인공의 과거와 엮인 사건도 있고, 언론과의 씨름 장면까지. 있을 건 다 있는데 이제는 워낙 뻔한 클리셰들이라 마니아층에서는 기존 범죄소설과 별반 차이점을 못 느끼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던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독자가 열광할 만한 장면과 지루해할 장면을 구분할 줄 안다. 근데 스피디한 진행은 좋아도 이렇게 자주 스킵 하는 건 좀 아니었다. 지름길로 가더라도 신호가 계속 막히는데 이러면 기름만 아깝잖아.

더 큰 문제는 챕터마다 호흡이 짧은 데다 장면도 자주 바뀌어서, 사건만 다루느라 등장인물들은 전혀 입체적이지 않았다는 거. 모든 시리즈의 첫 권이 그렇듯이 이 책도 일단 낫 배드. 그리고 출판사는 맞춤법 검사 좀 똑바로 하시길. 오탈자들 눈에 너무 거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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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새가 말하다 1
로버트 매캐먼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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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매캐먼은 스티븐 킹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작가로서 온갖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7080 때 바삐 활동한 뒤 93년에 돌연 절필을 선언한 이 양반은, 10년만에 수퍼 그랜드 스펙타클한 요 작품으로 다시 커밍했다. 대략 1200p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필력으로 완벽히 커버했으며 스티븐 킹의 극찬처럼 매커먼표 최고급 스릴러는 인트로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것은 옛 미국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이다. 치안판사 우드워드와 서기 매튜는 파운트로열 지방으로 찾아간다. 그 곳에는 마을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한 마녀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머무는 동안 주민들의 수상한 낌새를 맡는 두 사람. 그러나 여러 증거들이 여자가 마녀라고 지목하고 있다. 판사는 급작스럽게 건강이 위독해짐에 따라 판단이 점점 눈멀고, 매튜는 밤의 새의 속삭임으로 이 새장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과연 이들이 놓친 퍼즐조각은 무엇이며 진실의 탈출구는 어디인가.

오랜만에 별 다섯개 작품이다(물론 내 기준). 나는 이야기의 힘이란 캐릭터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캐릭터가 힘이 있으면 흐름은 갈수록 점입가경이 된다. 그 몰입속에서 따라오는 문학의 위대함을 내내 볼 수 있어 기뻤다. 장르소설이 다 그렇듯이 꼼꼼히 집중해서 읽으시길.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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