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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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워낙 청개구리라서 베스트셀러도 싫어하고, 모두가 찬양하는 작가의 책도 이상한 거부감 때문에 잘 안 본다. 그러던 내가 하루키의 작품에 도전(?)을 했고 지금은 뭔가 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느낌이다. 입문용 작품으로는 좀 아니었지만 확실히 읽기 전과 후의 나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제목이 비슷해서인지 ‘하루키‘ 하면 이 책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자기개발서 위주로 읽는 한국인들도 이 책은 많이들 읽었고 리뷰도 엄청 많다. 그래서 이런 유명작의 리뷰를 쓸 때면 왠지 에너지 낭비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다 아는 내용이라 아무도 안 읽을까 봐.


이 책도 남녀의 시점이 교차되는 방식이다. 한 여학생의 응모작인 ‘공기 번데기‘가 문학 신인상 후보에 오른다. 출판사 편집자와 남주는 이 응모작을 날조하여 완벽한 작품을 만들었고, 출간된 작품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이후 한 변호사가 남주에게 접근하여 ‘공기 번데기‘의 비밀에 관하여 입단속을 하고자 한다. 그 책 내용은 ‘선구‘라는 신흥종교에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이었고, 여학생은 그 신흥종교 신자의 집안에서 탈출했던 일명 배도자였다. 선구의 비밀을 들춰내는 책의 내용들은 절대 세간에 알려져선 안되는 내용이었고, 남주는 본인이 엄청난 일에 휘말렸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한편 스포츠 클럽 강사인 여주가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한 노부인과 연을 맺는다. 노부인은 폭행을 일삼던 사위 때문에 딸이 자살한 뒤로 사회의 악을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고, 여주를 암살자로 고용하여 신흥종교 ‘선구‘의 리더를 암살하기로 계획한다. 그리고 암살 현장에서 리더에게 남주의 소식과, 현재의 1984년 세계와, 또 다른 1Q84 년의 세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제 사랑하는 남주를 살리고 자신이 죽을 것인지, 혹은 그 반대의 길을 갈 것 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게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리더의 말을 증명하듯 하늘에는 달이 두 개가 떠있었다.


한 서평가가 깔끔하게 정리한 문장을 빌리자면, 남주는 공기 번데기 소설을 통해 1Q84 세계에 닿았고, 여주는 두 개의 달을 통해 1Q84 세계에 존재함을 알게 되었으며 이 비현실 세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남녀의 이야기이다. 두툼한 분량답게 다루는 내용도 많은데 저마다 패턴이 비슷비슷하다. 작가는 ‘진실을 알게 되면 고통도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알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알면 다칠 테니 조용히 살라는 갑과, 그래도 책임져보겠다는 을의 이야기가 기본 뼈대 같다. 일단 작품이 3권이나 되기 때문에 진도는 느리지만 분량만큼 정성도 대단해서 평점은 우수한 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다시 읽고 싶은 마음도, 누군가에게 추천할 마음도 안 든다. 하루키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는 게 현실과 판타지를 심히도 어중간하게 섞어 놓았고, 특히 3권에서 쌓아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니까 ‘글맛‘ 때문에 읽은 거지, 스토리가 좋아서 읽은 건 아니었다.


어디서 읽었더라. 모든 연습의 최종 단계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들었다. 하루키의 글쓰기는 이 최종 단계에 도달했다고 할 만큼 글이 자연스럽다. 불필요한 문장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글을 추구하는 유명 작가들도 있지만 하루키는 그렇지 않아 인간미가 있다. 그저 그런 문장도 잘 사용해서 잘 쓴 문장을 더 돋보이게 한다. 강조하고 싶은 글에도 가벼운 비유나 은유를 넣을 뿐, 자연스러움에서 절대 벗어나는 법이 없고, 딱히 빼어난 문장을 쓰지 않아도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마치 화려한 단풍잎으로 단장한 가을산보다, 돌밖에 없는데도 웅장한 그랜드 캐니언 같은 감성이랄까. 사람들이 하루키를 왜 찬양하는지 알 것 같아. 19금 장면만 빼면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좋을 듯. 왜 일본은 19금 장면에 이토록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여튼 2권까지는 분위기 진짜 좋았는데 3권부터 한숨 나오기 시작했다. 독자들 사이에서 3권이 문제였다는 말이 많았다. 먼저 열매는커녕 자라지도 않을 씨앗을 심은 것부터 얘기해보자. 그렇게 여러 번 나오던 남주의 엄마 소식은 끝까지 남주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남주도 그렇게까지 엄마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중요하지도 않은 엄마의 기억을 왜 수차례 강조했을까? 그리고 남주와 여주의 집문을 두드리던 수금원의 정체도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NHK에서 보낸 적 없는 직원이란 게 밝혀졌으면 그다음은 누군지도 알려줘야 하잖아. 그런데 그 뒤로 수금원 내용은 쏙 들어감. 이런 것도 맥거핀이야? 맥거핀이 몇 개야 대체.


두 번째로 설명 부족과 개연성 부족도 짚고 넘어가자. 요양원에서 보았던 어린 여주의 분신이 들어있는 공기 번데기는 전개상 매우 중요한 장면인데 그 등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분신이 나와서 어떤 액션을 취한다던가, 리틀 피플이 분신을 조종한다던가, 아무런 설명도 뒤 내용도 없음. 공기 번데기를 딸랑 한번 등장시키고 말 거면 뭐 하러 집어넣은 걸까. 이거 말고도 여학생이 남주의 집을 갑자기 나가더니 어디로 갔는지, 앞으로 뭘 한다던지 이런 보충 내용도 없음. 특히 여주가 만난 적도 없는 남주의 아이를 잉태한 건 정말 막장에 가까웠다. 이런 부실함에 대하여 스토리 작가와 같이 작품을 만드는 웹툰 작가를 예로 들어보자. 스토리 작가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내용이 산으로 가면 독자는 더 이상 웹툰을 안 보거나 아니면 내용보단 그림체 때문에 보게 된다. 1Q84는 후자의 케이스다. 스토리 작가가 갑자기 퇴사를 했는지(따로 있는진 모르지만) 3권부터는 상황의 앞뒤 설명도 없고 개연성도 떨어지면서 스토리에 탄력을 잃었고, 그저 하루키의 필력 때문에 꾸역꾸역 읽었다. 총이 나왔으면 발사가 되어야 한다는 ‘체호프‘의 대사를 넣었으면 말 그대로 해주셔야지, 이 책에서 나온 총들은 방아쇠가 고장 났는지 발사하는 장면이 전혀 없다. 이건 정말 마이너스 요소였음.


마지막으로 갑자기 무너진 흐름. 가장 심각했던 건 여주가 임신한 뒤로 그동안 보여주던 액션이 뚝 끊어져 버린 것. 아 진짜 3권에 문제가 많긴 많다. 이 작품이 액션물은 아니지만 초중반에 나오는 여주의 암살 과정과, 소프트볼 선수로 활약했던 과거와, 마셜 아츠를 가르치는 내용 등 작품에 탄력을 주는 씬이 꽤 많았다. 비가 와도 절대 뛰는 법 없는 양반 같은 전개에서 그나마 여주가 완급조절을 해주고 있었는데 그게 하필 멈춘 거다. 남주는 원체 조용하고 재미없는 타입이고, 여주는 은신처에서 방콕만 하니 한없이 루즈해진다. 작가도 그걸 알고 보완 차원에서 변호사 시점의 글을 넣은 게 아닐까 싶은데, 변호사조차 똑같이 방콕하면서 카메라만 찍고 있다. 뭐 하자는 겨 이게. 그렇게 작품은 다 끝나가는데 벌려놓은 판을 어떻게 수습하나 했더니 남녀가 만나 가상세계를 탈출하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와 진짜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닙니까, 하루키 센세? 매듭지어야 할 내용이 얼마나 많았는데 싹 다 무시하고 끝내버리는게 어디있습니까. 요리를 많이 하면 당연히 설거지 거리도 늘어나요. 근데 설거지가 하기 싫었으면 요리를 조금만 했어야죠. 사건도 인물도 매번 엄청나게 비중 있는 것처럼 포장해놓고 정작 내용물은 없는 빈 상자였으니 이건 욕먹어도 쌉니다. 할 말이 아직도 많은데 이쯤에서 끝내렵니다. 이게 베스트 작은 아니니까 아직은 봐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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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 케이스릴러
장민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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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즐겨보던 TV 프로그램들은 오프닝 음악부터 끝내줬다. 아침마당,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PD수첩, KBS 스포츠뉴스, 전국노래자랑 등등. 지금 들어도 흥겨운 멜로디에 프로그램만큼이나 인기가 좋아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요즘 TV프로그램들은 기억에 남는 테마곡이 없다. 이런 얘길 왜 하냐면 문학의 세계도 똑같다고 느껴서다. 해외도 그렇지만 요즘 국내 문학은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옛 세대들의 딱딱함에 대해 불만을 표했던 나 같은 독자가 많아서 그런 걸까. 이제는 많은 작가들이 일본처럼 라이트한 글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이렇게 가볍고 물렁한 글을 원하는 건 아니었는데. 강함과 부드러움을 둘 다 갖추는 건 역시 어려운 걸까.


‘빌어먹을 매미 소리‘. 이게 첫 문장이다. 시작부터 쎄다 싶었는데 그게 다였다. 나는 ‘마션‘도 처음만 좋았거든. 일단 스토리는 단순하다. 미혼모의 실종된 초등생 딸이 말라버린 시신으로 발견되고, 시신 귓구멍에 숨어있던 딱정벌레를 기반 삼아 지역 수사가 진행된다. 그리고 집안에 딱정벌레를 잔뜩 키우던 소년원 출신의 남학생이 경찰에 발각되어 기소된다. 이후 곤충 소년이 검거되었음에도 유사 사건이 일어나, 미혼모는 진범이 따로 있음을 느끼고 소년에게 도움을 구한다. 마침내 담당 형사는 소년의 주변을 맴돌던 진범을 밝혀내고 수사의 종결을 향해 달려간다.


작가가 사회 이슈에 대해 이것저것 다루고 싶은 게 많았나 보다. 미혼모의 고통이라던가, 뇌물 받는 판사를 아버지로 둔 경찰이라던가, 지겹도록 아동 실종 신고 접수 받는 경찰 등등 캐릭터 설정도 좋았고 신경을 많이 쓴 게 보인다. 허나 한두 가지만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좋았을 텐데 너무 여기저기 발을 담가서 넓고 얕은 지식의 작품이 돼버렸다. 그건 그렇고 공감되는 내용이 많았는데 먼저 십대가 저지르는 범죄는 더 이상 소년범죄가 아니란 검사에 말에 백번 동의한다. 요즘은 초등생들도 어찌나 영악한지 성인들의 범죄를 그대로 따라 한다. 게다가 어릴수록 잘못했다는 자각조차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심지어 교육 잘 받은 아이들도 질 나쁜 친구들 속에 어울리게 되면 금방 물들어버리니 부모의 손길도 한계가 있다. 이와 반대로 아이들이 가출하는 건 가족 탓이라는 이유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나온 건데 그 아이를 다시 늑대 소굴로 집어넣어야 하는 게 완전히 모순이었다. 아이가 또다시 학대받을 걸 알면서도 돌려보내야만 하는 불편한 현실을 고발하는 건 좋았는데, 이왕 할 거면 확성기 들고 화끈하게 소리 질러 주시지. 혼자서 소심하게 중얼중얼하는 듯 함. ​


이 책이 글 보다 영상이 더 어울리는 이유는 저자가 영상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일단 작가가 분위기 잡으려는 시도는 많이 하는데 글이 가볍다 보니 스릴이 떨어진다. 그리고 챕터마다 분량이 짧아서 내용 연결이 잘 안되고 뚝뚝 끊어진다. 예전에 읽었던 ‘샌드맨‘도 그렇게 챕터가 짧아서 여러 내용들이 다 따로 논다고 지적했었는데 이 책도 그렇다. 영상은 장면전환이나 인물의 표정만으로도 내용 전달이 되기 때문에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문학은 표정도 생각도 글로 써주지 않으면 전달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막 스킵 하면 안 된다. 내용은 저절로 이미지화 되도록 보충 설명이 필요하고, 감정씬은 충분히 곱씹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유가 전혀 없었다. 이런 게 영상 작가 출신들이 흔히 하는 실수다. 영상 기법은 영상에나 어울리는 거다. 또한 외국 스릴러 작가들이 자주 쓰는 기법 중에 하나가 독백/회상씬은 폰트를 변경하거나 볼드체 또는 이탤릭체를 넣어서 현실 장면과 분리시키는 것이다. 국내에는 RHK 출판사의 해외문학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영상에서도 자막 폰트만 변경해줘도 캐릭터나 배경의 분위기가 확 바뀌는 효과 때문에 자주 쓰는 고급 기법 중 하나인데, 국내 장르문학에서는 그런 기법을 쓰는 작가를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책도 회상씬이 많아서 폰트 변경으로 구분 좀 지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일 아쉬운 건 갑자기 급 마무리된 전개였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렸는데 진범과 형사의 대립 장면도 허무하고, 곤충 소년과 수많은 실종 아이들의 뒷이야기도 없었다. 이런 똥 싸다 만 작품은 오랜만이구먼. 다음엔 이러지 맙시다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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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1-13 20:15   좋아요 1 | URL
물감님의 다이렉트 샷 한방은 언제나 강렬하고 유쾌합니다 ~’이런 똥 싸다 만 작품’이라....ㅎㅎ

물감 2018-11-13 21:54   좋아요 1 | URL
다이렉트 샷이라뇨ㅋㅋㅋㅋㅋ간만에 웃었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3 22:08   좋아요 1 | URL
늘 웃음주시는 분은 물감님인디 ㅋㅋ

물감 2018-11-13 22:24   좋아요 0 | URL
흐흐 큰웃음을 위해 분발하겠습니다ㅋㅋ
 
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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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가, 요즘에는 이것저것 할게 많아져서 독서활동을 잘 못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독서에 점점 흥미가 줄어든다. 자주 가던 네이버 블로그나 알라딘 서재 활동도 뜸해졌는데, 최근 알라딘을 보면 기존 파워블로거들 말고는 활동하는 분들이 확 줄긴 했더라. 다들 나처럼 마음이 뒤숭숭하신가. 이렇게 독서에 흥미가 떨어질 때면 재미있는 작품으로 슬럼프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간만에 제프리 디버의 최상급 스릴러를 집어 들긴 했는데, 재미와 가독성이 죽여줌에도 불구하고 700쪽이나 되는 분량은 역시 버겁구나. 동네 마실 나가는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완독하고 보니 어느새 지리산을 다녀와있었다. 사실 이분의 책은 늘 힘들어요 헉 헉.


디버 행님의 세컨드 시리즈인 이 작품의 주인공은 동작학 전문 경찰로써 일명 걸어 다니는 거짓말 탐지기이다. 상대의 신체 몸짓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다소 생소한 직업인데, 그녀는 8년 전 한 일가족을 살해한 죄수의 심문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죄수의 공범자가 그의 탈옥을 돕고 이후 CBI 요원 캐트린 댄스는 사건의 지휘를 맡게 된다. 탈옥수는 타고난 지능과 감각으로 경찰의 급습마다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캐트린 댄스는 그의 과거 여자들을 모아 탈옥수를 프로파일링 해보지만 그녀들의 주장이 전부 제각각이라 좀처럼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때 일가족 사건 당시 인형에 파묻혀 자느라 죽음을 면했던 한 소녀가 등장해 지난 8년간 숨겨왔던 사실을 고백한다.


보통 시리즈 1편은 이것저것 소개하고 설명하느라 어수선한 감이 있다. 작가의 다른 시리즈인 ‘링컨 라임‘ 1편도 그랬었는데, 이 책은 시리즈 시작치고 아주 깔끔하다. 확실히 여유를 찾은 게 보였다. 자신의 부족함과 단점을 알고 계속 개선해나가는 노력형 작가이다. 새로운 주인공과 시리즈에 맞게 ‘동작학‘에 대하여 여러 정보가 나온다. 이런 감정에는 이런 움직임을 갖거나, 저런 행동에는 압박감을 느끼는 중이라던가 등등. 사건도 그렇지만 주인공 타이틀이 참 흥미로웠다. 어떤 평에서는 링컨 라임 시리즈가 사건과 수사 중심이라면,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인물 중심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타인의 심리를 파악하고 연구해야 하는 주인공 직업상 인물 위주가 되는 건 당연한 듯. 이 작품을 기준으로 제프리 디버의 장점들과 작품을 분석해보도록 하겠다.


디버의 장점 첫 번째,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장르소설 작가들이 악역을 설정할 때 동서양의 성향이 완전히 다른데, 일본을 예로 들면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고, 보안 프로그램도 쉽게 해킹하며, 날아드는 공격도 휙휙 피하는 등 그야말로 완벽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과정 없이 결과만을 보여줌으로 캐릭터를 단순화 시켜버리니 악역의 무게감은 점점 줄어든다. 반대로 서양권은 ​과정 중심이다. 동양권이 악인 된 이후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서양권은 악인이 되기까지의 내용을 더 깊게 다룬다. 그러다 보니 악역의 모든 행동은 전부 이유 있는 행동이 된다. 특히 디버 작품은 범인 시점의 장면이 많아서 어쩌다 악인이 되었고, 왜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대한 범죄 동기가 분명해서 좋다. 이 책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대하는 직업상 웬만한 프로파일러보다도 섬세하고, 남편의 죽음과 두 아이로 인해 감정이 예민하다는 이런 설정들도 과거의 내용을 깊게 다루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과정 중심 성향인 서양권 중에서도 제프리 디버는 탑 클래스에 속한다.


디버의 장점 두 번째, 시점 변화가 아주 뚜렷한데 이것은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고급 기술에 속한다. A에서 B의 시점으로 넘어갔으면 넘어갔다는 내용이 들어가줘야 하는데 그런 부연 설명이나 장면전환이 없는 글을 쓰는 작가가 너무 많다. 시점이 바뀐 건지 모호해서 계속 되감기 하게 만드는 작가들은 독자가 무슨 전지적 작가 시점인 줄 아시나 봐. 근데 디버는 A에서 Z까지 시점 변화와 장면전환에 확실한 경계선을 긋는다. 조 올로클린 시리즈의 ‘마이클 로보텀‘이나 덱스터 시리즈의 ‘제프 린제이‘를 예로 들면, 작품의 진행 내용과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쉴 새 없이 교차되어 작품이 건조하거나 루즈해지지 않게 한다. 이처럼 독백이 많은 일인칭 작품일지라도 시점 변화는 확실하게 주는 것이 좋다. 심리 장르문학은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단서나 복선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아 저절로 긴장감이 유지된다. 이런 기법을 디버도 쓰고 있는데 기교 면에서는 로보텀이 좀 더 높아 보이고, 여유 면에서는 디버가 한 수 위다.


디버의 장점 세 번째,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창조한다. 특히 악역이 그렇다. 이 책에서도 교도소 탈옥수라는 타이틀 뒤에는 ‘컬트 리더‘라는 옵션이 붙었다. 컬트란 특정 인물에게 열광하는 집단을 말한다. 탈옥수는 거리의 소녀들을 모아 집단을 형성했고, 이들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질러서 본인은 현장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그에게 맨슨의 아들이라는 별명이 붙어서 따로 검색해보니 과거 미국에 찰스 맨슨이 가출 소녀들을 가족으로 만들고 범죄를 대신 저지르게 했던 실제 인물을 캐릭터에 반영했다. 이런 식으로 디버는 모든 악역을 굉장히 화려하게 설정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첫 번째 장점과도 겹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일본 만화 ‘원피스‘의 오다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가, 잠깐 스쳐가는 인물조차도 복잡한 사연을 가진 캐릭터로 설정하여 한 명 한 명에게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인데 디버 스타일도 오다 작가와 비슷하다. 그래서 매력 넘치는 악역을 볼 때마다 캐릭터 설정에 쏟아붓는 작가의 정성이 보인다.


디버의 장점 네 번째,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반전으로 다룬다. 보통은 인물이나 상황 연출로 반전을 드러내는 반면, 디버는 멘트나 대화 장면에서 반전을 써먹는 경우가 더 많다. 대화나 독백은 수시로 나오니까 마지막까지도 반전이 가능하기 때문에 디버 작품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이번 작품의 하이라이트 반전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탈옥수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장면이다. 그것은 남을 통제하는 컬트 리더의 성향을 역이용하여 본인이 남에게 통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진짜 공범자의 등장으로 연속 멘붕이 오고, 초반부터 뿌려졌던 떡밥이 퍼뜩 떠오르면서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심리를 이용한 해결법이 시리즈 성격과 딱 맞지 않는가. 작가의 큰 그림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여러 권 읽어본 바 제프리 디버는 가수보다는 보컬 트레이너에 가깝다. 워낙 계산적이고 논리적인 스타일이라 타고난 자연미보다는 다듬어진 세련미로 승부하는 편이다. 노래도 기술보다는 음색이 우선이다. 그의 플롯은 항상 완벽에 가깝지만 철저히 계산된 글만 써서 호불호가 갈리기 쉽다. 따라서 디버 작품은 어쩌다 읽어줘야 감동이 오래가고 감탄도 연발하게 된다. 여튼 너무 잘 읽었고, 이번 리뷰는 너무 오랜만이라 평소보다 몇 배는 애를 먹었다. 이래서 글쓰기는 꾸준해야 한다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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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야 현대지성 클래식 16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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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월. 미국 상원 의원인 버즈 윈드립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주인공은 버즈의 독재자 성향을 내다보고 그의 당선을 반대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며 거세게 반박했다. 이 자유국가에 독재란 절대 있을 수 없다면서 말이다. 어쨌거나 당선 전부터 온갖 연기력과 말재주로 대중을 사로잡는 버즈의 공약은 실로 대단했다. 공약대로라면 미국의 모든 백인은 돈방석에 앉을 것이고, 에덴동산 이래로 미국만이 유일한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그렇게 역사상 다시없을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하나 싶더니, 제2의 히틀러가 나타나버렸다. 즉위하자마자 버즈는 자신을 추종하던 민간인 청년들을 공식 호위대로 강화시키고, 계엄령을 내려 국회의원들을 모조리 체포했다. 또한 반 체제 자는 가차 없이 죽이거나 폭행하고 감금했다. 다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든 건 버즈가 아니라 불의에 침묵했던 자신들이었다. 


루이스 싱클레어는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이 책만 읽어보아도 왜 상을 받았는지 납득이 간다. 미국 사회에 대한 사실주의, 풍자, 통찰력 등 날카로운 시선을 갖추었으며, 출판사 서평처럼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에 추가시켜도 합당하다. 요즘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이미 사회가 몰락하고 난 뒤의 내용을 다루는 반면, 과거 디스토피아 소설들은 사회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다루는 내용이 많은 것 같다. 이 작품의 발표 시기는 미국 대공황이 최고조였던 1935년이다. 당시 히틀러와 나치가 정권을 잡자마자 민주주의를 폐하고, 나치 돌격대를 만들고, 모든 당을 해체시켰던 실제 역사를 적나라하게 풍자하여 써낸 이 책은 발표되자마자 불티나게 팔렸단다. 읽어보니 과연 그럴만하다. 전문서적만으로 이해가 안 되는 정치나 경제 분야는 이렇게 문학으로 읽는 게 도움 된다. 일단 대중의 바람대로 버즈는 정말 신세계를 만들어주긴 했다. 자유국가에서 공산국가로  어떻게 갑자기 바뀔 수 있지? 이제 막 당선된 한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지식인, 지성인, 사업가들의 지능이 이 정도로 퇴화할 수도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건만, 얼마든지 가능하단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교육도 법도 언론도 전부 조작되어 진실이 사라진 땅, 믿는 도끼마다 발등 찍혀 아무도 믿을 수 없게 된 불신자들의 낙원. 이제 정권의 개가 되어 눈 가리고 아웅할 것이냐, 끝까지 투쟁할 것이냐. 선택해야만 한다. 


꽤 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나 메모하지 않아도 읽는 데에 어려움은 없다. 다만 뒤로 갈수록 문장의 호흡이 점점 길어져 이해하기가 버겁다. 그리고 대화체들이 어째 연극톤 느낌이 남. 영어 교과서 다이얼로그 읽는 기분이랄까. 여튼 버즈를 보면 독불장군 트럼프가 김정은을 따라 공산주의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상상된다. 공산주의는 멀리서 보면 오직 국가의 명예를 내세우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주인에게 재롱부리는 개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결여된 개인의 삶에 무슨 만족이 있겠나. 근데 지금 한국은 국민의 의견도 반영 안 해주면서 민주주의라고 불리고 있다. 위에서 지들끼리 맨날 탁상공론하는데, 공산주의랑 뭐가 다른 건지 참.


작가는 버즈보다 그를 무작정 따랐던 추종자들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은 ‘깨어있던‘ 국민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사실 호위대만 아니었어도 버즈가 그렇게 위험한 인물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젊은 층의 잘못된 사상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위상을 높인다는 이념은 알겠는데, 무슨 권리로 타인의 인권을 짓밟고,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되어도 된다니? 이게 민주주의로 살아온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일까? 그렇다면 원래부터 제 마음에 독재 성향이 심어져있던 거겠지. 오히려 옛 세대들의 잘못된 사상으로 고생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내용이라 이게 참 흥미로웠다. 지난 몇 년간 국내에는 이명박 다스, 최순실 게이트, 박근혜 탄핵과 촛불시위 등등 파란만장한 일들이 있었다. 그때만큼 국민 하나하나가 깨어있고 책임을 다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국가는 국민이 호소하고 청원 올리는 내용들에 가볍게 대처하지 좀 말았으면 좋겠다. 강서구 pc방 사건이나, 여중생 폭행 사건, 어린이집 원장 사건,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 등등 요즘도 핫한 뉴스가 끊이질 않는데, 예전과 다르게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관심 가지고 참여를 하잖나. 대한민국이여, 민주주의라면 제발 국민의 뜻을 위해 움직여줘. 제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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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29 14:40   좋아요 1 | URL
아, 마저 읽어야 하는데 읽다 말아 버렸네요 ...

물감 2018-10-29 14:57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적이 많아서 이젠 한 권을 완독하고 다른걸 읽어요...다시 도전하기엔 버거운 책이네요😐
 
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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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동안‘소리 듣는다면야 좋긴 하겠지만 죽을 나이가 돼서도 그 얼굴이면 과연 좋을까? 주변 사람들이 다 늙어가는데 나 혼자만 어린 얼굴이 과연 기쁜 일일까? 누구나 장수하고 싶고 한살이라도 어려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작 늙지도 죽지도 않는 입장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천년을 살아가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주인공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자 하나 없는 책 같은 처지이며, 진절머리 나는 후렴구 노래에 갇힌 기분이라고 한다. 칠팔십 년을 사나, 칠팔백 년을 사나 인생의 굴레는 변함이 없나 보다. 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라는 제목의 책도 있지 않던가. 장수 인간이 얘기하는 인생의 수고로움과 삶의 애환을 들어보자.


먼저 주인공은 초 핵폭탄 급 동안을 가진 439살 할아버지이다. 그는 늙지 않는다. 정확히는 정상인보다 노화되는 시간이 15배쯤 느리게 흐른다. 이런 자신의 병을 치료받으러 유명 의사를 찾아갔으나, 그 의사는 자신처럼 늙지 않는 자들이 만든 한 단체에게 살해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가 노출되면 세상에 혼란을 가져올 것이고 신변이 위험해지기 때문에, 나름의 규칙을 세우고 세상으로부터 서로 보호를 주고받는다. 이 단체에 소속되고부터 수 세기 동안 다양한 신분으로 살면서 인간들을 지켜본 결과 사는 것에 특별함이란 없었다.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는 주인공이 꿋꿋이 사는 이유는,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함이다. 자신과 똑같은 시간의 저주에 갇혀버린 딸과 상봉할 날을 위해 몇 백 년이라도 자신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견디고 견뎌야 한다.


​저자가 동화작가라는 티가 나는 게 문장이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고, 동화에도 어울리겠다 싶은 비유법이나 특정 표현들이 자주 보인다. 이 책도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진행되는 구성 방식인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여러모로 비교되었다. 그 책의 문제점은 과거의 화려한 내용들이 현재와는 하나도 연결성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과거 내용은 완전 별개로서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되어 의미 없는 분량만 차지한 꼴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과 다르게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주인공이 과거 만났었던 위인이나 유명인의 생생한 묘사라던가, 어릴 적 겪었던 마녀사냥 당시의 배경을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장면들. 이처럼 지나온 과거가 현재의 일부분이 되고, 또는 그 기억이 두통을 낳는 장면들이 반복되는데, 이런 기교들이 작품의 균형을 이루고 몰입을 돕게 한다. 여기서 저자의 내공을 볼 수 있었지.


보통 일인칭 시점의 소설은 독자가 직접 주인공이 되어 읽는 맛이 있다. 근데 이 책은 일인칭이면서도 제삼자 입장에서 읽혔다. 그래서 아쉬웠다. 왜 주인공 입장이 될 수 없었냐면 계속 과거로 점프하니까 빙의되려는 걸 방해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 시점도 계속 왔다 갔다 해서 상황 파악하느라 리듬마저 중단된다. 매력적인 구성이지만 이런 리스크가 따르는군. 무엇보다 그토록 찾아다니던 딸이 아무 언급도 없다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태연하게 아빠와 마주하는 건 좀 아니지 싶다. 몇백 년 만의 재회인데 일주일 만에 만난 것 같은 연출에, 감정선도 너무 약했어. 좀 더 드라마틱한 전개를 원했는데. 뭐, 요것들 빼면 다 좋았음. 주인공이 발견한 시간을 멈추는 방법은 시간의 지배에서 해방되는 것,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시간을 멈추는 법이 아니다. 나 외에 소중한 사람들의 시간을 멈추게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과거에서 미래가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발 맞출수 있단 걸 깨달은 거지. 평생 거짓말해야 하고, 누구와도 친해져선 안되고, 도망 다녀야 하는 인생이라면 차라리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게 나을 듯. 여튼, 너무 잘 읽었다. 분석할 것도 많았고, 재미도 교훈도 빵빵한 작품이다. 우리의 닥터 스트레인지께서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시니 완전 기대된다.


이제 나에게 묻는다. 지금 이 순간은 미래를 맞이하는 시간일까, 과거로 지나 보내는 시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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