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소녀
세라 페카넨.그리어 헨드릭스 지음, 이영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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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세계에서는 여럿이 한 작품을 공동작업하기도 하고 때론 그것이 엄청난 결과물을 낳기도 한다. 근데 소설 쪽에서는 공동작업으로 효과를 본 케이스를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많을수록 더 높은 완성도를 보여줄 것 같지만, 오히려 사공이 많은 탓에 읭?스러운 전개라던가, 무리한 개연성이라던가 하는 허술함이 작품을 망치게 되더라. 공동작품은 쉽게 말해 스타트업 같은 거다. 괜찮은 사업 계획이 있는데 혼자로는 부족하니 좋은 파트너를 구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보는 게지. 첨부터 기획을 잘 한 덕분에 작품성은 대부분 우수한 편이다. 그런데 알다시피 십중팔구는 망하고 한두 곳만 살아남는 게 스타트업 계의 현실이다. 그것도 간신히 운 좋게 말이다. 다행히도 이 작품은 무사히 살아남은 케이스였다. 솔직하게 공동작업을 할 거면 이 정도는 되어야 좋은 평가를 받는다. 참 잘했어요.


돈에 쫓겨사는 여주가 한 정신과 박사의 윤리 실험에 참여한다. 실험 질문마다 솔직하게 답해주고 돈을 받아 가길 수차례, 실험의 연장으로 그녀는 한 남자를 유혹하는 미션을 받는다. 돈이 궁한 여주는 그저 시킨 대로 했는데 알고 보니 이 남자, 박사의 별거 중인 남편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는 깜놀한 여주에게 아내를 조심하라 경고하였고, 그녀는 이제 그만 실험을 중단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자신의 약점을 쥐락펴락하며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는 박사에게 점점 두려움을 느낀다. 대체 이 해괴망측한 실험을 진행하는 박사의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달팽이 걸음마처럼 매우 느린 속도로 진행되지만 후반에 가서는 엄청난 텐션을 보여준다. 이렇게 전후반의 온도차가 확 다른 느낌은 아가사 크리스티 후로 처음이다. 이 작품은 흐름이 너무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게 장점이다. 어느 곳 하나 막힘없는 걸 보면 처음부터 다 계산된 플롯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등장인물을 최소화 함으로써 오로지 세 명에게만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하였다. 이렇게나 치밀한데 과연 성공할만하지 아니한가. 검색해보니 두 작가 모두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나는 베스트셀러를 안 믿는 편이지만, 이 책은 두 사람이 결코 거품 작가가 아니란 걸 증명해 보였다. 글솜씨도 훌륭하고 기승전결도 완벽한데다 특히 분위기를 연출하는 기교가 일품이다. 그런 두 사람이 손발까지 착착 맞다니, 독자들은 어서 풍악을 울리시오.


내가 베스트셀러와 출판사 마케팅에 낚인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평점 높은 작품을 읽을 때면 매의 눈으로 비평 거리 먼저 찾게 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말하면 박사 부부의 심리싸움에 여주 옆구리 터진다는 내용인데, 아무리 봐도 수박 겉핥기만 반복되어 진도가 도통 나가질 않는 거다. 박사는 여주를 데려다 단계별로 계획을 성취해가고, 여주는 그 속내를 모른 채 꼭두각시 노릇만 한다. 박사가 주는 돈맛에 길들여진 탓도 있지만, 앞서 실험 질문들을 통해 자신의 개인사와 비밀을 다 공개해버린 게 더 문제였다. 실험을 거부하려 할 때마다 자신의 약점을 건드리는 박사를 보며 진퇴양난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여주. 갈수록 박사는 무리한 요구로 그녀를 압박해오고, 여주는 점점 미쳐간다. 이렇게 한 사람을 실험 쥐로 삼고 정신을 망가뜨리는 사디스트 박사의 이야기가 전부인가 싶을 만큼 중반까지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러다 중반부터 박사의 남편이 여주와 동맹을 맺고부터 흐름이 크게 바뀐다.


남편의 외도로 두 부부는 별거 중이었다. 그것이 괘씸했던 박사는 남편의 외도녀를 불러 여주와 똑같은 실험에 참여시켰고 끝내는 자살하게 만들었다. 그 사실을 알아낸 남편은 여주가 똑같은 꼴을 당할까 봐 보호해주고자 했다. 또한 그도 여주처럼 아내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박사와 잘만 지내는 그의 모습과 거짓말들을 보며 여주는 누가 더 위험한지 알 수 없었다. 반쪽짜리 동맹의 끝은 결국 박사에게 들통나버렸고 박사는 두 사람을 한자리에 불러 추궁하기 시작한다. 각자의 공방전이 시작되었으나 두 사람은 박사의 지략에 지도록 되어있었다. 분량은 다 돼가고 마무리는 멀어 보이고 대체 어쩌려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여주가 박사를 떠보는 질문을 하고 거기에 걸려 넘어진 박사는 그대로 녹다운이 된다. 과연 심리소설 답다고 하겠다.


냉정하게 말하면 엄청 참신한 스토리는 아니었다. 결국 이 작품도 캐릭터를 잘 만든 덕분이란 얘기다. 근데 겨우 셋 밖에 안되는 인물들의 매력과 존재감이 엄청나다. 작가들이 자신과 전혀 다른 캐릭터를 쓸 때 얕게 다루면 별 탈이 없는데 깊게 다루면 어색함이 딱 티가 난다. 그런데 이 세명은 다 다른 성격인데 실제 인물처럼 너무나 자연스럽다. 나는 이 점에서 공동작업이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박사의 점잖으면서도 역동적인 광기와 집착, 남편의 선량하면서도 묘하게 비밀스러운 태도, 그릇된 윤리 의식과 싸워서 외면해왔던 스스로를 찾게 된 여주의 인간미. 작품을 위해 과한 설정을 넣지도 않았고, 억지스러운 액션이나 쓸데없는 대사도 없었다. 한마디로 캐릭터 설정에는 흠이 없다. 분위기 고조가 느린 게 단점이지만 어느새 가랑비에 옷이 젖은 자신을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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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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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나는 글 쓸 때 가장 고민하는 구간이 도입부이다. 왜 그런 말 있지 않나. 병맛 같으면서도 멋있고, 심플하면서도 세련되고, 평범하면서도 개성 돋보이는 그런 거. 어떻게 써야 시작부터 읽는 이의 마음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도입부만 잘 해결되면 그 뒤로는 글이 술술 써지는 편이다. 반대로 잘 안 풀리면... 생각도 하기 싫군. 타인의 글을 읽을 때도 가장 눈여겨보는 게 도입부이다. 그 몇 줄에서 삘이 오지 않으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다. ‘좋은 글‘은 저마다 생각해둔 정의가 다를 터인데, 내게 좋은 글이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글‘이라 볼 수 있겠다. 또한 그런 글쓰기를 지향하고 있다. 온 우주의 감성과 창의력을 끌어모아 글을 쓰다 보면 때때로 참신한 표현이 나오기도 하지만 운빨이 매번 있는 게 아니고, 트레이닝으로도 한계가 있단 말씀.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작품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 나와 잘 맞는 책은 잘 맞는 대로, 안 맞는 책은 안 맞는 대로, 읽다 보면 저절로 쓸 말이 떠오르는 책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영감이 안 오는 책을 만날 때면 지금처럼 작품과 관련도 없는 내용으로 지면을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간단히 1절만 하고 끝내자는 심정으로 리뷰를 써본다.


주인공 랄레는 독일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입소자들의 팔에 번호를 새기는 문신가를 맡는다. 나치의 개가 되어 제 손으로 유대인 동포들에게 고통을 주어야 하는 괴로운 나날 가운데 어느 한 소녀에게 반하게 된 주인공. 간부의 도움을 받아 소녀와 가까워진 그는 이 지옥에서 반드시 생존하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매일 매시간 죽음의 소식이 들려오는 수용소에서 무엇을 바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오늘도 하늘은 타버린 시체들의 연기와 재 가루로 가득했다.


2020년 9월 기준으로 <교보문고 10.0 / 예스24 9.2 / 알라딘 9.4>라는 높은 평점을 받은 작품인데, 과연 그럴만 한가 싶은 의심이 든다. 온갖 호평이 넘쳐나므로 나는 비평 위주로만 적겠다. 내 눈에는 저가 재료로 건축한 브랜드 아파트처럼 보였다. 외관은 그럴싸하나 내부는 영 부실하다는 말이다. 기본 베이스가 유대인 강제수용소인데 배경도 사건도 너무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였고, 문단의 호흡은 짧으면서 진행 속도는 매우 빠르다. 읽는 속도가 느린 나조차도 반나절이면 다 읽겠더라. 무엇보다 두 남녀의 사랑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너무 설렁설렁 써서 작품의 불균형이 심각하다. 수용소의 끔찍한 상황, 수용자들의 참담한 심정, 나치의 폭력과 야만성 등등. 이런 것들을 더 깊고 진중하게 다뤘다면 주인공의 사랑도 훨씬 가슴 절절해졌을 텐데. 살은 다 쳐내고 뼈만 가지고서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완성도도 떨어진다. 살 좀 덧붙이고 각색했더라면 나도 별 4개 줄 수 있었겠다. 최상급 재료가 있으면 뭐 하나. 재료 손질하는 방법부터 잘 모르는데 괜찮은 음식이 나올 리가 만무하다.


실제 인물인 주인공을 작가가 몇 년 동안 인터뷰하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텐데, 너무 사건 중심으로만 글을 쓴 것이 아쉽다. 지금으로서는 슬픔도 애환도 고통도 그저 텍스트로만 존재하고 있는 기분이다. 주인공 캐릭터는 그나마 입체적인데, 나머지들은 주연도 조연처럼, 조연은 카메오처럼 평면적이다. 비중의 높낮음을 떠나 하나같이 존재감이 없다. 전에도 말했듯이 그저 그런 스토리라도 잘빠진 캐릭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분위기 살릴 수가 있는데, 이 책은 좋은 콘텐츠와 소스를 그저 그런 캐릭터들이 잡아먹고 있다. 이 다운된 분위기는 주인공이 수용소를 탈출한 후로부터는 복구가 불가했다. 수용소 안에서는 그의 활동이 제한되어있었으므로 사건 중심의 진행이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러나 수용소 밖에서는 주인공이 사건을 이끌고 흐름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디테일 없이 두 남녀를 급 재회시키고 그대로 마무리해 버렸다. 이건 용두사미가 아니고 그냥 성의가 없는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작가의 역량이 이게 끝이라면 이후 나올 책들은 안 봐도 그만이겠다. 에고, 1절만 하려 했는데 어느새 글이 길어졌다.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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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09-18 21:01   좋아요 1 | URL
저도 요즘 홀로코스트 다룬 책들을 연달아 세 권 읽었는데, 저는 일단 이 책을 패스한게 수용소 안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게 너무 끔찍하잖아요. ㅠㅠ 이 문신가가 실존 인물이라죠? 근데 남녀가 만날 수 없었을거 같은데 사랑같은건 생각도 못할 환경이었는데 너무 소설적인거 아닌가...생각했네요.

물감 2020-09-18 23:0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냥 패스할걸 그랬나봐요. 수용소의 문신가라 해서 그 일과 관련된 사건들을 기대했는데 사랑 내용 말고는 볼 게 없었어요ㅜㅜ 게다가 전반적으로 너무 가볍습니다. 그래선 안될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벤야멘타 하인학교 (무선) - 야콥 폰 군텐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
로베르트 발저 지음, 홍길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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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는 유튜버라는 뉴스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돈도 잘 벌고 인기도 얻고 힘든 직장생활 안 해도 되니 과연 그럴 만도 하겠다. 그런데 이제 유튜브는 레드오션이 돼버린 지 오래고, 살아남기 위해 그들은 매일같이 자극적인 영상을 업로드한다. 별 내용 없이 어그로끄는 영상도 넘쳐나지만, 어려운 지식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려고 자극적으로 만든 영상도 많다. 이처럼 틀을 깨버리는 방식은 관점에 따라 센스 있고 썩 괜찮은 마케팅이 된다. 이것은 문학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된다. 순문학 문체로 쓰인 스릴러소설, 일기장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 살인죄를 다루는 성장 소설, 심리학에 가까운 고전소설 등등. 장르 자체를 새롭게 해석한 경우도 있지만, 이야기 속의 캐릭터를 색다르게 다룬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된다. 그리고 제 점수는요, F 주려다 C- 드립니다.


귀족 아들이 집 떠나와 벤야멘타 학교에 입학한다. 이곳의 학생들은 학문이 아니라 하인이 되기 위한 양성교육을 받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라 실망한 소년은 점점 나사 풀린 행동들을 개시한다. 그리고 지금껏 본 적 없는 캐릭터에 뿅이 간 선생들에게 무한 애정을 받게 된다. 이후 친구들은 취업해서 하나둘 학교를 떠나고 소년은 최후의 취업 준비생이 된다.


보시다시피 줄거리는 정말 별거 없다. 이 책은 어떤 서사의 기록이 아닌 소년의 독백 일기에 가깝다. 근데 그 많은 독백을 읽고도 주인공의 세계관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렇긴 한데 이 책의 소년은 유독 별난 놈이었다. 소년은 인간이 규정을 위반할 때 기쁨과 활력을 얻곤 했다. 그래서 남들을 자극해대고 그들이 돌변할 때에 나오는 이중적인 모습 보기를 즐거워하였다. 그러면서도 아둔하고 무지한 이들을 사랑했고, 그런 친구들의 성공을 바라는 사차원 캐릭터였다. 암튼 속사포로 쏟아내는 그의 횡설수설 독백들 가운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신은 모든 것을 얻고 싶고 모든 걸 경험하고 싶다는 말. 이 부분에서 소년의 뇌구조를 얼추 알 것도 같았다. 규정대로 산다는 것은 반쪽짜리 경험이다. 그래서 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는 그 사람의 존재를 더 밝히 드러낸다. 금지된 욕망들은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이던가. 그런 것들을 경험해봄으로써 스스로 더 빛나게 된다면 소년이 왜 청개구리 행동을 했는지 알 것도 같고. 


벤야멘타 학교에서는 오직 강요, 규칙, 명령만이 전부였으며 개개인은 볼품없고 미미한 존재임을 각인시켰다. 그렇게 학생들은 세상에 나가기 전, 장차 만날 주인에게 수종들고 존경하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걸 배우지 않고도 윗사람을 섬기고 받드는 척을 할 줄 알았다. 반대로 동급생들 앞에서는 모자라고 덜떨어진 놈처럼 행세했다. 그래서 더 이상해 보였다. 보통은 윗사람에게 반항을 하고, 친구들한테는 잘난 척을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무튼 규정을 위반하는 행위는 그렇게 계속되었다. 인간의 이중적인 모습을 사랑하는 소년의 자아는 친구인 크라우스를 대하는 모습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크라우스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인간 교과서로, 소년과는 정반대 성향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소년은 틈날 때마다 그의 신경을 긁어댔고, 매번 흥분한 친구는 소년에게 화내고 잔소리한다. 이같이 인간의 격양된 감정과 태도에서 사랑을 느낀 소년은 크라우스가 학교를 떠날 때까지도 그 짓을 반복한다. 이 반사회적 행동들이 그저 심술쟁이 철부지처럼 보였는데, 지금은 꽉 막힌 사회와 세상을 향한 외침과 도약처럼 느껴진달까. 해설을 읽고 작가의 생애를 알고서야 왜 소년이 ‘반 영웅‘이라 불리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래를 구현하고 싶어서 하인 학교를 들어갔다는 말도 납득이 됐다. 영웅은 정말 힘든 직업이야.


많은 독자들이 고전을 읽지 않는 이유가 솔직히 뭐겠나. 가장 먼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딱딱한 대화체, 지루한 분위기, 난해한 전개 방식과 흐름 등등. 이것들을 어떻게든 이겨내면서 내용과 주제를 파악해야 하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물론 고전문학이 재미로 읽는 책은 아니지. 누구 말대로 인생의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목적이 더 크지. 맞는 말이고 다 좋은데 소설인 만큼 최소한의 재미는 갖춰야 하지 않을까? 재미와 메시지 둘 다 갖춘 엑설런트한 고전 작도 얼마든지 있는데요. 현대문학이 이 정도로 노잼이라면 이미 출판사에서 컷 당했을 것을, 그나마 고전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출간도 되고 독자들이 읽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어떤 책이라도 죽어라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면 뭐라도 알게 되고 깨닫는 게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런 게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 됐고, 오늘 밤은 치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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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9-27 20:52   좋아요 1 | URL
적극 공감되는 네 글자, 횡.설.수.설!!!ㅎㅎ

<글자 감상평>
1글자: 헐!
2글자: 노잼ㅠ
3글자: 도대체!
4글자: 이게 뭥미?
5글자: 읽긴 읽었어.
6글자: 무슨 말을 할까~
7글자: 그래서 어쩌라고!
8글자: 어디서부터 어떻게
9글자: 이렇게 고개만 떨군 나.
10글자: 고전이고 나발이고 된장!

고전 극기 훈련 코스를 지나온 한 달이었습니다~ 그래도 저 혼자 재미없었으면 심히 억울할 뻔했는데 물감님 덕분에 위로받고 갑니다~ㅋㅋ

물감 2020-09-28 10:39   좋아요 2 | URL
오랜만이네요, 나비종님! 너무 오래 기다렸어요 ㅎㅎㅎ
책은 얇은데 의외로 골치아프게 하더라고요.
나비종님의 댓글을 보니 이제껏 고른 책 중에 최악이었음을 실감하는 바입니다 ㅎㅎㅎ
일반 소설이었다면 이미 책 덮고 다른 걸 읽었을 거에요 ^^

이 고전 시리즈는 해설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무리 연구해도 뭔 말인지 모르겠을때 지푸라기라도 잡도록 해주니까요 ㅎㅎ
전에 읽었던 ‘말라 온다‘의 주인공도 반 영웅 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야콥에게는 반 영웅의 타이틀이 영 공감 안되네요.
아무튼 무지 별로였던 작품이었습니다 ㅋㅋㅋㅋ

9월도 고생하셨어요, 앞으로 어떤 산을 넘어야 할지 두근두근하네요!
추석 연휴 잘보내시고 건강 또 건강하시길 바라요 ^^
 
임기종료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
빈스 플린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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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더위와 습기와 스트레스 때문에 집중이 바닥나 한 달 정도 독서를 내려놨더니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는 게 정말 쉽지 않다. 그렇게나 오랜 습관을 들여왔는데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면 인간이란 이토록 보잘것없고 나약한 존재임을 실감한다. 여튼 슬럼프에 걸렸을 땐 무조건 재미있는 작품을 읽어야 한다. 이번에도 그런 책을 골랐는데 워낙 들쑥날쑥하게 읽어서 슬럼프를 탈출했는진 모르겠다. 사실 독서 자체의 문제보다는 굳어져 버린 전두엽 땜시 글이 안 써지는 문제가 더 크다. 그래도 억지로 읽고 영양가 없는 리뷰를 쓸 바엔 푹 쉬는 게 더 낫다고 조용히 합리화해본다. 내가 뭐 1년에 100권 읽기 할 것도 아니고요.


보통 스타 작가는 남녀노소에게 인기 있거나 여성들에게 인기 많은 타입으로 나뉘지만, 아주 간혹 남성들에게 사랑받는 타입도 존재한다. 빈스 플린이 그런 사람이다. 고인이 된 그는 이 책을 시작으로 CIA 미치 랩 시리즈를 탄생시켰는데 주로 정치, 군사, 첩보물을 다루고 있어 남성들은 열광하고 여성들은 시큰둥한 편이다. 책을 거의 등한시하는 대다수의 남성들 가운데서 소수에게 인기 좀 있어봤자 뭐 얼마나 대단하겠냐마는, 남성들의 팬심이란 단순한 빠돌이 수준을 넘어서 충성을 맹세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작가에게 큰 이변만 없다면 평생 꾸준한 사랑과 응원을 받게 되는 법이다. 당연한 말을 쓸데없이 길게도 쓴다고 생각한다면 순전히 기분 탓이니 그런가보다 하십쇼.


시리즈의 프리퀄 작품으로써 미치 랩이 등장하기 이전의 배경을 다루고 있다. 저자의 소개 글을 잠깐 적자면, 작가는 60곳의 출판사에서 외면받았고, 자비로 이 책을 출간하여 초대박을 치게 되었단다. 초반 몇 장만 읽어봐도 이렇게나 흥미진진한데 왜 출판사들이 거절을 했을까. 작품 보는 눈이 없었던가, 시장을 파악하는 감각이 없었던가, 아님 작가가 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가, 혹은 셋 다인 건가 싶다. 여하튼 다른 리뷰에서도 말한 바, 이 시리즈는 장르문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정치 스릴러이다. 스릴러 장르에서 의학, 과학, 법정물이 상위 랭크를 차지하고 있지만 빈스 플린의 작품을 읽으면 역시 정치물이 최상위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상위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대보자면, 정치물은 언제나 안팎으로 적들뿐이고, 무조건 기싸움 즉 심리전이 일어난다. 여기서 판이 커지면 안보 문제도 생겨서 액션도 첨가되고, 자연스레 무대나 배경의 스케일마저 커지는데 이 모든 요소를 개연성 있게 풀어나가면서 재미까지 책임져야 하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 어려운 걸 해내고 시리즈까지 만들어 매번 대박 터뜨리는 빈스 플린은 솔직히 마이클 코넬리나 제프리 디버보다도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미국 대통령의 재선 준비가 한창일 때, 유명 정치인들이 하나하나씩 암살당한다. 늘어만 가는 나라의 빚과 대통령의 불필요한 예산안을 지적한 범인들은 어느새 의적이 되었고,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FBI가 수사에 나서고 국가와 기관마다 협조전을 날리지만 하나같이 커트당해 이상히 여긴다. 지금 같은 초 비상사태에 위에서는 대체 무슨 꿍꿍이들이실까.


이 책까지 총 5권을 읽었는데, 어떻게 매번 심각한 빅 스케일의 음모론을 이리도 잘 다루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첫 번째 이유가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을 두어 배경과 캐릭터를 쓰기 때문에 실제 같은 생동감과 현장감이 든다는 점이다. 이게 팩션물과는 좀 다른데, 팩션이 실존 인물이나 실제 역사와 사건을 적절히 융합하고 비트는 반면, 이 시리즈는 실존하는 기관과 조직의 체계, 다양한 직업군들의 행사와 영향력,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태와 국가 안보 위협 등을 가지고 쓰여지는 스토리이다. 마치 학자들이 설명하는 지구 종말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처럼 믿기지 않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해보면 이해될 것이다. 근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인들은 똑같은가 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더러움을 마다하지 않는걸 보면. 그들은 전부 범죄하고 은폐하고 거짓말하고 위장한다. 그렇게 남모를 비밀을 한 가지씩 늘리다 보면 어느새 사회를 쥐락펴락하고 국가의 안보를 흔들만한 자리까지 올라가있다. 그러니 인성 밥 말아먹고 부패한 정치인일지라도 함부로 건들 수가 없다. 이 책은 그런 위치의 사람들로 일어난 사달을 다룬다. 일은 외부에서 터졌지만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그걸 눈치채면 뭐 하나. 같은 배를 탄 사람들끼리는 서로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이다. 스팀 오르지만 정말 재미있게 돌아간다는 뜻.


대통령의 목숨까지도 위협해대는 암살자들의 플레이를 보면서도 대통령과 측근들은 거짓말로 상황 모면하고 국민에게 이미지메이킹 하느라 분주하다. 오만함과 멍청함과 교활함으로 중무장한 이들을 보며 정치계는 진짜 개판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FBI와 CIA의 수사를 방해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며 참 정치인답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어째서 그게 당연한 사실처럼 돼버렸을까. 여튼 수사기관들이 똥줄 타고 개고생을 하든 말든 본인들의 숟가락만 챙기기 바쁜 그들은 폭력과 살인으로 민주주의를 더럽혔다며 범인들을 욕하였다.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건 분명 잘못된 방향이다. 당연히 법과 질서가 먼저고 우선이다. 그러나 그 법이 사회적 붕괴를 막아주지 못하고 질서가 혼돈을 잡아주지 못한다면? 물리적인 힘이 오히려 꿩 먹고 알 먹는 효과라면 어떨까? 생각해보라. 6조로 늘어난 나라의 빚을 메꾸기 위해 정치인들은 세금을 더더욱 늘린다. 또한 그들은 이 국가부채의 문제를 개혁할 마음도 전혀 없다. 당신이라면 그들을 확 갈아엎고 쿠데타 일으키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렇게 상상만으로 그쳤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다루고 있으니 그야말로 초 센세이션 한 작품이다. 근데 사실 지네 나라 비난하는 내용이라 당시 미국 출판사들이 떨떠름할 만도 했겠다야.


그런데 시리즈 프리퀄이라면서 왜 미치 랩은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은 걸까. 이 책만 보면 CIA보다 FBI가 더 비중이 높은데 이후 작품부터는 어떻게 CIA가 주축이 되어 스토리가 진행되는지, 미치 랩이 어떻게 시리즈 주인공으로 자리매김한 건지 알 길이 없다. 프리퀄이면서 스핀 오프 느낌이 든달까. 미치 랩이 없어서 재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박살 내버린 대단한 작품이다. 그리고 저자가 부패한 정치와 사회에 할 말이 참 많았다는 걸 느꼈다. 사실 몇 권 읽어보면 국뽕이 대단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지만 까야 할 때는 확실히 까고 깐데 또 까는 멋진 작가다. 이런 작가들이 많으면 좋겠는데 정말 가뭄에 콩 나듯이 보기가 힘들더라. 요즘 출판사에서 줄기차게 광고하는 외국의 신인 작가들에게는 거장의 그랜드 한 맛이 없다. 나는 순한 맛보다 매운맛을 더 좋아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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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의 색 오르부아르 3부작 2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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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코로나로 힘든데 날씨마저 최악이라 요즘은 뭘 해도 의욕이 없다. 톱니바퀴가 군데군데 고장 나버린 일상은 밤낮을 가리질 않고, 내 육체는 좀비처럼 숨 쉬고 움직이는 중이다. 가뜩이나 독서활동도 뜸해지는데 골라든 책마저 재미가 없었으니, 근 한 달 동안을 슬럼프로 보내고 있다. 아무리 노잼이라도 내가 웬만해서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스킵 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마구마구 점프하면서 읽었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나름 흥행 보증수표 같은 작가인데 어쩌다 이렇게 핵노잼으로 전락한 걸까. 전작인 ‘오르부아르‘에 비하면 냄비받침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의리상 완독은 했으나 실망이 커서 리뷰는 패스할까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읽은 책은 전부 기록을 남기는 피곤한 성격의 소유자인 나님은 일단 뭐라도 남겨보기로 한다. 이제껏 모든 글에 영혼을 갈아 넣었지만 이번에는 그냥 손이 가는 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써보련다.


‘오르부아르‘의 후속작이라곤 하나 배경만 같을 뿐이라 딱히 연결된 내용은 없었다. 전편에서는 똑같은 문제와 절망적인 상황을 재치와 유머로 넘긴 반면에, 후편에서는 웃음기 최대한 빼고 엄격/근엄/진지모드로 일관되게 헤쳐나간다. 너무 무거워질 때마다 종종 위트 몇 스푼 넣으시던데 오히려 그게 더 마이너스였다. 작품 분위기가 이렇게나 어둡고 심각한데 억지로 유머를 집어넣는다 해서 그게 재밌어질까? 웃기기는커녕, 눈치 없단 소리 듣기 딱 좋은데 과연 ‘오르부아르‘를 썼던 사람이 맞나 싶다. 그냥 적당한 텐션에 진지함으로 일관되게 썼으면 더 좋았을 텐데. 스토리와 소재도 되게 별로였다. 전반전은 은행가 집안이 경제 위기로 파산하는 내용이고, 후반전은 은행가의 딸이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구미가 썩 당길만한 스토리도 아닐뿐더러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밋밋해서 영 임팩트가 없다. 1부 마지막에 아들이 왜 건물 창가에서 뛰어내렸었는지 이유가 밝혀지고, 사업과 재산을 날려먹게 만든 주변인들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드디어 주인공의 피 튀기는 화려한 복수가 시작되려나 싶었다. 그러나 주인공의 복수혈전은 내가 원한 것과 딴판인 데다, 아들과 프랑스 여가수의 지루한 장면이 너무 많아서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다. 과연 프랑스인들은 이런 문학에 박수쳐주고 그레이트를 외치시는지 궁금할 따름.


그나저나 지지리도 인복 없는 주인공이었다. 부친은 떠나시고, 아들은 장애인이 되고, 절친이던 하녀는 돈을 빼돌리고, 기업 파트너는 교활한 방법으로 재산을 날려먹게 만들고, 국회의원인 숙부는 돈 꿔달라 협박하고, 아들의 가정교사였던 애인은 아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왔다. 자신은 갈수록 쫄딱 망해가는데 원수들은 잘 먹고 잘 살고 모든 게 잘 풀려만 가니 얼마나 괴로우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이 작품도 대충 보면 개그콘서트 같은데 자세히 보면 인간극장이라 하겠다. 여튼 이래저래 해서 시원하게 복수하고 막을 내렸지만 왜인지 통쾌한 맛은 없어서 기쁨은 반이 되고 슬픔은 배가 되는 애매한 기분만 남았더랬다. 아 진짜 하나하나 파고들어서 전부다 태클 걸고 싶지만 지독한 날씨에 까칠력을 다 뺏겼는지 더 이상 힘이 나질 않아 이제 그만 써야겠다. 이 책이 나를 잘못 만난 건지, 내가 이 책을 잘못 만난 건지 모르겠다만 머릿속에 뭐 하나 남는 게 없었던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제 그만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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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8-12 10:10   좋아요 1 | URL
<오르부아르>까지만 읽어야겠군요 -.-;

물감 2020-08-12 13:43   좋아요 0 | URL
모두 다 극찬하는 책이라 꼭 제 말을 들으실 필요는 없지만, 작가 명성에 비해 너무 별로였어요. 3편이 나올 예정이던데 봐야할 지 말지 고민되네요....

coolcat329 2020-08-12 22:05   좋아요 1 | URL
저는 <오르부아르>를 안 읽고 이 책은 읽었는데, 참 재밌었거든요 😅 근데 기쁜 건 오르부아르는 분명히 재미있겠다는 사실이에요. 읽어야지 하면서 자꾸 다른 책에 밀리는데 가을에 꼭 읽어봐야 겠네요.

물감 2020-08-12 23:04   좋아요 0 | URL
타 독자들의 감상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제 리뷰는 무시하셔도 되세요ㅎㅎㅎ 오르부아르는 정말 최고였는데요, 비교를 떠나서 이 책은 저와 맞지 않았습니다^^; 제 수준은 절대 높지않은데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