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파니 메일러 실종사건
조엘 디케르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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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사건‘이 들어간 것만큼 뻔한 작품이 또 어디 있냐고 했던 나님이 요 책을 읽은 것은 순전히 빠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근데 생각해보니 대부분 이러한 이유로 읽었었네. 내가 ‘OO 사건‘ 제목의 작품을 디스하게 된 데에는, 누구나가 뻔하고 똑같은 플롯을 다루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정해져있는 기승전결에 소재와 캐릭터 설정만 다를 뿐, 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나마 조엘 디케르는 요즘 현대작가에게서 보기 힘든 젊은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신뢰할 수 있었다.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이랄까. 고유의 개성도 가지고 있고, 대중들을 사로잡는 능력까지 갖춘 그런 작가이다. 헤밍웨이 같은 간결한 문체에 적당한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속도감과 무게감의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간다. 다만 ‘헤리 쿼버트‘에서 자주 사용했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강렬한 문체가 사라져서 좀 아쉽다. 아무튼 이 책마저 실패라면 다시는 ‘사건‘ 들어간 책을 읽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읽었는데 다행히도 책 덮을 일은 없었다. 근데 더 기괴하고 지저분한 책 디자인은 현대 미술인 건가?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네.


은퇴 준비 중인 형사에게 한 여기자가 찾아와 마음을 뒤집어 놓는다. 20년 전 종결된 살인사건의 수사 오류를 지적하며 주인공을 도발하고 떠난 그녀. 결국 은퇴도 미루고 재수사를 하려는데 여기자는 실종되었고 그녀의 집은 불타버렸다. 그녀가 무엇을 알아냈기에 이런 위험에 노출되었을까. 그리고 완벽했던 수사에서 그녀가 지적한 오류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주인공은 20년 전 사건 당시의 파트너를 찾아가 헬프를 한다. 작중에서 주인공 시점은 현재를, 파트너 시점은 과거를 조명한다. 그래서 여러 번 시점이 교차되지만 타 작품들처럼 심하게 정신없지는 않았다. 흐름이 끊어진다는 이유로 교차 플롯을 싫어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거북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도 과거를 제 삼자가 설명해서겠지.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보면 과거와 현재가 좀처럼 구분되지 않아 흐름이 깨지곤 했는데, 그게 다 한사람 시점으로만 썼기 때문이었다. 그런 타 작품들과 다르게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면서 퀄리티도 잃지 않는 것이 위에서 말한 봉 감독과 닮은 점이다. 넘버원은 언제든지 뒤바뀌지만, 온리원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며 존재감을 가진다. 이제껏 내가 봐왔던 온리원들은 규칙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서 조엘 디케르도 온리원이란 걸 느낄 수 있었다. 당신은 반드시 초대박 날 사람이야. 그러나 아직은 좀 더 분발해주셔야겠어요.


결과적으로는 우수한 작품이었지만 과정까지는 그렇지가 않았다. 방대한 분량만큼 여러 내용을 담고 있는데, 메인 사건보다 서브 스토리들이 더 비중 높고 흥미롭다는 게 단점이다. 게다가 진도가 너무 느려서 나중에는 스테파니 메일러가 무엇을 알아냈던 건지, 20년 전 사건의 수사 오류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주인공도 너무 존재감 없고 활약도 미미했다. 심지어 커크 하비가 더 주인공처럼 보인달까. 글쓴이가 얼마나 센스 있고 감각 있는지 알 수 있는 척도 중에 하나는, 멀티 시점을 다룰 때 이야기가 각자 노는지 아닌지로 구분할 수 있다. 메인 요리를 만드는 식당이 있고, 다양한 메뉴를 만드는 뷔페가 있는데 이 책은 후자이다. 물론 각각의 맛도 중요하다. 그러나 음식끼리의 조화로움 또한 중요하다. 짜장면에 휘핑크림이 웬 말이며, 소고기에 누텔라 잼은 그야말로 신성모독이다. 그러니까 결국 개연성의 문제라는 말이다. 메인 스토리와 연관도 없는 듯한데 어떻게든 끼워 맞추는 기분이 한 번이라도 들면 그다음부터는 계속 삐딱한 시선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이렇게 큰 그림을 그리는 플롯들은 서브 사건에서 중간마다 복선이든 암시든 넣어줘야 한다. 그래야 독자는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란 걸 알고 더욱 몰입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의 개연성과 이야기 간에 조화로움은 달나라에 가있다고 하겠다. 그나마 후반부에서 진실을 서서히 드러낼 때, 제프리 디버가 말했던 미스 디렉션 기법을 기똥차게 활용한 것에 박수를 주고 싶다. 모든 독자는 스테파니 메일러의 말처럼 눈앞에 있던 진실을 못 보고 지나치게 될 것이다.


천재들이 전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내가 봐온 똑소리 나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융통성이 없었다. 아 물론 머리도 나쁘고 융통성도 없는 친구들은 더 많다. 아무튼 나는 이런 낭설이 한국에만 해당되는 줄 알았더니 서양도 같은가 보다. 조엘 디케르도 천재적인 면모가 분명 있다. 그래서일까, 불필요한 장면을 질질 끌어 분량만 늘린 갑갑한 구간이 많았다. 템포가 느린 플롯은 인간의 심리나 감정선을 다루는 작품에 더 적합하다. 하지만 이 책은 주인공이 형사이고, 실종사건에 연쇄살인까지 나오고 근근이 액션 신도 들어가 있다. 그런 장르에서 스피디함을 제거해버리고 인물에만 포커스를 둔다? 물론 이런 스타일을 지향하는 토머스 쿡 같은 작가들도 있긴 있다. 그렇더라도 완급조절만 조금 신경 써줬으면 좋았을 것을, 수사도 계속 제자리걸음인데 진도마저 민달팽이 걸음마 수준이었음. 융통성 없는 천재가 바보 코스프레까지 하면 어떡합니까. 어째 보면 볼수록 성대결절 걸린 이승철을 보는 느낌이다. 잘 부르긴 하지만 예전의 파워풀함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그래도 팬 탈퇴는 하지 않을 테니 차기작들은 분량 좀 줄여서 내줘요, 디케르 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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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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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부터 고양이 두 마리를 기르게 되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건 역시 보통 일이 아니지만 그 수고들이 귀여움으로 커버가 된다. 다들 이렇게 집사가 되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반려묘를 키우며 이 책을 읽었더니 주인공과 고양이의 공통점이 있더군. 첫째,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알 수가 없다는 것. 둘째, 언제 사고 칠지 모른다는 것. 셋째, 그럼에도 절대 미워할 수 없는 볼매의 소유자라는 것... 정도쯤 되시겠다. 몇 년 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으로 전 세계를 들었다 놨던 요나스 요나손이 후속작을 들고 컴백했다. 과거 젊은 시절, 전 세계를 점찍고 다녔던 노인은 이 책에서 또 한 번 여러 대륙을 방문하며 왈칵 뒤집어놓는다. 과연 작가의 유쾌함과 코믹함이 아직도 건재한지 한번 들여다보시라.


발리의 한 호텔에서 사기꾼 파트너와  열심히 돈 펑펑 중인 노인은, 101세 생일에 열기구를 타고 멀리 떠난다. 조종사도 없고 제동장치도 고장 난 열기구는 바다 한복판에 떨어지고, 마침 지나가던 북한의 배를 얻어 타 평양으로 들어간다. 자신을 핵 전문가로 속여서 우라늄이 든 가방을 들고 도망친 두 남자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에게 핵을 넘겨버린다. 그 후 어떤 여사님과 함께 관 사업으로 돈 좀 만져보던 이들은 웬 나치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여기에 노인들을 추격하는 독일 연방수사원까지. 갈수록 커지는 판을 과연 어떻게 감당하실려나. 


전작 100세 노인 편이 과거사에 더 많은 분량을 쏟았다면, 후속작 101세 노인 편은 현재진행형 스토리라서 좋았다. 김정은, 트럼프, 메르켈 등등 현재 활동 중인 정치가들을 다루어 팩션 장르를 선보였다. 팩션 물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다룰 때보다 실존 인물을 다룰 때 작품의 리얼리티가 산다. 팩션 물의 리얼리티가 살려면 실존 인물의 특징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어중간하면 금방 몰입이 깨져버리고 만다. 현실과 허구의 균형을 잘 잡으면서 스토리도 살리는 게 진짜 쉽지 않은데, 작가는 각국의 지도자들이나 대사들의 특징을 잘 캐치해서 캐릭터에 생명력을 멋지게 불어넣었다. 무엇보다 데드 풀 뺨치는 성격의 매력쩌는 주인공 할배께서 미친 존재감을 쉼 없이 발산하므로 심심할 틈이 없긴 하다. 일단 캐릭터는 합격인데, 소재는 그렇지 못했다고 본다. 핵을 들고 도망치다니, 이만큼 월드클래스 뉴스감의 소재가 어디 있나. 근데 읽어보면 북한의 우라늄을 훔쳐서 이걸 가지고 뭘 어쩐다는 좌충우돌 에피소드가 아니었다. 엿 바꿔 먹지도 못하는 애물단지를 잽싸게 처분한 다음 또다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유명인사들을 조우하고 온갖 위기를 겪지만, 이 땅에서 더 이상 겁날게 없는 우리의 침착맨은 ​미친 친화력과 말빨로 재치 있게 풀어나간다. 역시 인생은 이처럼 노빠꾸 라이프로 살아줘야 제맛이제.


1편과 가장 다른 점은 늘 유유자적하던 노인이 태블릿에 빠져서 전 세계 소식에 감동받아 찬호박도 고개를 절레절레할 정도로 그레이트 한 투머치토커가 돼버린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의 평이 좀 갈리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의 설정보다 작품에 메시지를 담으려 한 시도에서 평이 갈리지 않나 싶다. 작중의 실존 인물들이 다 정계 쪽 사람들이고 총선을 앞둔 시기인 걸 보면, 작가가 그쪽 세계에 대해서 할 말이 꽤 많아 보였는데 역자 해설을 보니 과연 그러했다. 세상이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은지 아닌지를 말하고 싶어 했단다. 제 입장과 밥그릇만 신경 쓰기 바쁜 각국의 지도자들은, 노인이 고민거리를 안겨줄 때마다 아주 바람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역시 세계 평화를 위하는 사람도 핵폭탄 급 멘붕에 빠지면 인간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마도 작가는 이 점을 꼬집고 싶어 한 건 아니었을까. 다 좋은데 예전처럼 가볍고 유쾌하게 쓴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풍자하려는 게 느껴졌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지 못한 장면도 꽤 많아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이 더 나은 점은 멤버들 간의 케미가 너무나도 훌륭했기 때문이다. ‘킬러 안데르스‘에서도 멤버들의 케미를 보며 감탄했었는데, 그 기쁨을 여기서도 볼 수 있어서 감동이었다. 이렇게 서브 캐릭터들이 열 일을 해줄수록 작품은 생기가 돋고 유연성이 더해진다. 딱 내 스타일이야.


요나손이 즐겨 사용하는 패턴이 있다. 먼저 오늘만 사는 하루살이 캐릭터와, 사고 회로는 나름 멀쩡한 허당 캐릭터가 기본 세트이다. 여기에 플러스알파가 있고. 일단 기쁘게 시작했던 일이 나중에 꼭 심각한 문제로 진화한다. 그러면 주인공이 재치와 운빨로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인데, 중요한 건 절대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없고 그저 회피만 하다 보니 꼬리를 문 사건들을 끝까지 가져간다. 그러나 위기감 따위 물 말아 밥 드시는 주인공들은 인생 뭐 있냐며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노래 부른다. 위기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말아라... 뭐 이런 건가? <킬러 안데르스>에서는 목사가 사람을 죽여주는 킬러 사업으로 막장의 끝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박람회에 가서 관을 판매하는 개노답의 끝을 선보인다. 이야, 진짜 뇌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감도 안 잡히는 작가이다. 관 사업이 망한 일행들은 죽은 자들과 교신하는 영매 사업을 한다며 이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닌단다. 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파악 좀 하던 중 훔쳐 온 핵 가방 얘기는 쏙 들어가 버린 걸 깨달았다. 끝에 가서는 다시 핵 얘기가 등장했지만 결국 이 책은 처분하기 난감한 애물단지로 인해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아니었고, 그냥 1편처럼 운빨포텐 펑펑 터지는 노인의 해프닝에 가까웠다. 확실히 이번에는 너무 산으로 가긴 했습디다.


이번 편에서 킬링 포인트는 충전하지도 않은 태블릿 pc의 절대 줄지 않는 배터리라 하겠다. 1편과 2편에서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노인의 설정 변화이다. 전작에서는 직접 몸소 전 세계를 탐방하고 다녔다면 이제는 태블릿으로 전 세계 소식을 듣는다는 것인데, 안 그래도 세상만사에 관심이 많은 그가 지독한 오지라퍼 수다맨이 되어 액션의 비중은 줄고 입으로만 분량을 채우고 있다. 그래서 율리우스와 사비네의 역할이 노인만큼이나 중요했다. 앞으로 나올 책들도 이렇게 끝내주는 멤버 조합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요즘 참 사는게 쉽지 않아 기분이 안좋은데 이렇게라도 피식하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한다. 계속해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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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02-11 09:05   좋아요 2 | URL
나름 현실 고증하고 싶어서 백한살짜리 노인을 밖으로 돌리는 대신 태블릿을 들려주었나 봐요ㅎㅎ 요나스 요나손 앞 세 권은 다 읽었는데 이 책은 망설이는 중이었어요. 리뷰 쓰신 걸 보니 읽고 싶어지네요ㅎㅎ 감사합니다.

물감 2020-02-11 10:42   좋아요 1 | URL
기존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아서 괜찮게 읽었습니다 ㅎㅎ 머리좀 식혀야할때 보시길 권장할게요^^

페크pek0501 2020-02-11 11:45   좋아요 1 | URL
인기가 있으면 꼭 후속작이 나와요. 근데 후속작이 더 괜찮은 경우는 드물지 않나요?

물감 2020-02-11 1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처음부터 시리즈 기획이 아니면 후속작은 실망이 크더라고요. 근데 실망하더라도 작가가 좋으면 그냥 읽게되네요ㅎㅎ
 
덕후의 탄생 -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8인의 성공기
김정진 지음 / 덴스토리(Denstory)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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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신청하여 읽게 된 책이다. 사실 내 취향은 100% 문학 쪽이지만 그렇다고 소설을 회사에서 신청할 수는 없잖어? 그나마 제목에 끌려서 보게 된 책인데 생각 외로 재밌더라. 알다시피 덕후의 기원은 오타쿠라는 일본어였다. 방안에 틀어박혀 애니메이션만 보고, 2 D 캐릭터와 사랑에 빠지며, 애니메이션 말투를 일상에 쓰는 음산한 분위기의 소유자들이 우리가 흔히 알던 오타쿠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들만의 장점을 대중이 알아주기 시작했다. 오타쿠들이 특정 분야에 대해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지녔다는 것이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증명되었고, 음지에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 인정받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양지로 나오게 되었다. 그쯤부터 오덕후라는 한글로 명칭이 바뀌면서 편하게 덕후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들의 큰 특징은 취미/업종/직업을 가리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므로 순수하게 즐기며 산다는 것이다. 세상 질타를 받던 자들이 어느새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자들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여기에 덕질로 돈까지 잘 버는 일명 ‘성공한 덕후‘들도 늘고 있다. 이제는 특이한 취향을 가졌어도 당당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모두 함께 숨겨왔던 덕력을 개방하여 잘 먹고 잘 사는 길을 찾아보자.


이 책은 순수한 덕질로 크게 성공한 8인의 사례를 다룬다. 하나하나 설명하는 건 귀찮으니, 그냥 자신이 잘하는 것이 아닌 좋아하는 것으로 살고 싶어 했다는 공통점을 참고하자. 자 그럼 덕후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빠지면 될까? 예를 들어 똑같은 게이머라도 누구는 중독자 소리나 듣고, 누구는 고수 소리를 듣는다. 그 기준이 뭘까? 본인만 즐거우면 전자가 되고, 남들도 같이 즐겁다면 후자가 되는 것이다. 즉 내 경험과 지식이 남에게 도움이 되고 영향력을 가졌을 때라야 진정한 덕후로 탄생한다. 저자는 덕질로 돈 버는 사람들을 소개하였지만 덕후의 타이틀은 그렇게 거창한 단계까지 갈 필요는 없다고 본다. 덕후들은 남들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삶의 활력을 얻기 때문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살면서 무언가에 미친 듯이 빠져 지내본 적이 있는가? 시간 날 때만 하는 취미가 아닌 온정신이 팔려서 그것만 생각하고 살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런 적이 있어서 저자의 마음을, 또 책에서 소개하는 덕후들의 마음을 너무 공감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트롬본이라는 나팔을 연주했다. 전공은 아니고 취미지만 그걸로 군악대까지 다녀왔을 정도로 악기를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했다. 취미였기 때문에 경쟁할 필요도 없었고 입시생들처럼 스트레스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전공생 급으로 연습했고, 온갖 경로를 다 뒤져서 연주곡 mp3 파일들을 수백 개 수집했으며, 소화도 못하는 악보들도 미친 듯이 모으고 그랬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 당시의 나는 저자가 말하는 덕후의 기질이 있어서 가능했던 거다. 아무튼 뭔가에 마음을 뺏긴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다. 물론 나도 나 혼자 즐기는 걸로 끝이 아니라 비전공자들을 아무 대가 없이 가르쳐주고 도와주면서 서로 즐거워하며 저자가 말하는 덕후의 레벨에 올라있었다. 어떤 대가 없이 내 정보를 알려주는 게 좋았고 같이 즐기는 게 좋았다. 그 시절이 나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생활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산다. 독서광이나 책 덕후의 레벨은 전혀 아니지만, 꾸준한 리뷰활동으로 블로그에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누가 읽고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고, 인기를 얻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고, 즐거우니까 계속하게 된다. 직장에서 내가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술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하고, 게임도 안 하면 넌 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냐는 말. 그런데 말입니다. 난 그런 말하며 인싸인 척 하는 인간들보다 수십수백 배는 더 재미있게 살고 있답니다. 술 마시고 게임할 때만이 즐겁다면 오히려 그게 더 슬프고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올해는 작년에 많이 못한 리뷰 덕질에 좀 더 힘을 내 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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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0-01-24 11:14   좋아요 2 | URL
와~ 책도 신청 받아주는 좋은 회사에 다니시는군요!!
제가 칭찬해 드리겠습니다!! (으잉?)ㅋㅋ 2020년 물감님의 리뷰 기대할게용~~

물감 2020-01-24 20:13   좋아요 0 | URL
칭찬 감사합니다ㅎㅎㅎ
붕붕툐툐님의 리뷰도 기대할게용~^^
 
모래그릇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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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는 살아생전 약 1천여 개의 작품을 쓴 장르문학계의 시조새 같은 인물이다. 오늘날 일본의 사회파 문학 작가 중에서 세이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이긴 한데 몇 권 읽어보고 내린 나의 판단은, 그의 작품성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사회파 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일본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한국인 취향에는 그닥 맞지 않는 것 같다. 세이초의 작품은 별점이 대부분 낮은 편인데, 나는 그 이유를 무지막지하게 건조한 문체와 초 느긋한 템포에서 찾을 수 있었다. 마치 한 음으로 부르는 노래를 듣는 기분이랄까. 한국인이 생각하는 담백한 맛이랑 달라도 너무 다르네. 읽다가 덮어버린 책들을 생각해볼 때 일본 고전문학이 나랑은 심하게 안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책도 작품성이고 뭐고 간에 얼른 끝내버리자는 심정으로 읽어서 작품에 대한 이해도는 많이 낮을듯싶다.


조차장 선로에서 발견된 신원 미상의 피범벅 시체. 주인공 형사는 피해자가 죽기 전에 만났던 한 남자를 용의자로 점찍는다. 그러나 단서는 잡히질 않고, 매번 허탕만 치던 수사는 결국 종료되었다. 한편 젊은 문화/예술인들로 만들어진 ‘누보 그룹‘의 활동으로 일본의 전역이 떠들썩했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모든 것을 부정하고 새로운 문화/예술을 만들고자 한다. 미제 사건을 독단적으로 수사하던 주인공은 어째선지 이 그룹이 자꾸 눈에 밟힌다. 연속되는 실패 수사로 자신감 잃은 노장 형사의 고군분투하는 이야기. 그것은 진정 ‘노인과 바다‘의 도시 버전이라 부를만하였다.


1권은 피해자의 신원을 파악하러 돌아다니는 내용이고, 2권은 허탕 수사를 무한 반복하는 내용이다. 독자를 말려 죽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진심으로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범죄소설은 범인을 조사하는 게 비중이 더 큰데, 이 책은 피해자를 조사하는 비중이 더 많았다. 피해자를 알아내야 용의자를 유추해보거나 할 텐데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시작부터 흥미가 뚝뚝 떨어진다. 임팩트 있는 시신의 등장씬으로 시작부터 제법 잘 차고 가는가 싶더니 그 후로는 쭉 내리막길이었다. 또한 수사의 방향을 잃었으니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인공이 늘 차분하고 무덤덤한 타입이라서 도통 텐션이 오르는 법이 없다는 거였다. 이렇게 양반 같은 경찰 소설은 처음 보네. 과연 그 작가에 그 캐릭터라는.


옛날 배경이라서 지문검사 같은 건 나오지도 않는다. 휴대폰도 없고 차도 없어서 늘 고생하는 주인공은 나름 베테랑 형사인데 아무런 특혜도 없다니 그야말로 열정페이가 따로 없었다. 아무튼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한 수사에 재미들린 노장 형사는 독자들을 참 여러 번 김빠지게 하였다. 매번 엄청난 단서를 찾아낸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수사해보면 이딴 개미똥꼬만도 못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내가 머나먼 출장을 왔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하는 패턴이 지겹도록 반복된다. 그니까 수사 중에 이목을 끄는 것마다 대단히 중요하고 있어 보이게 풀어가다가 결국 별것도 아닌 것으로 끝내는 것이다. 이런 게 세이초 당시 일본의 밀당 기술이었나? 요즘 이렇게 썼다간 전부 손절해버릴걸요?


이 책이 철저하게 일본인만을 대상으로 썼다는 인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은근히 많았는데, 그중에 형사가 일본의 사투리를 수사하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피해자가 특정 지역의 사투리를 썼다는 정보에 입각하여 지역별 방언에 대한 수사를 한다. 그래서 방언의 유래와 특징을 상세히도 설명하는데, 사실 이런 건 일본인에게나 유익하고 재밌을 내용이지 타국에서는 별 와닿지도 않는다. 외국인이 한국 소설을 읽을 때, 표준어와 사투리의 차이점이나 방언의 맛깔스러움을 얼마나 이해할까? 안 그래도 양반같이 점잖고 또 점잖고 초 점잖은 분위기에 그런 내용들로 많은 지면을 할애하다니. 훈민정음도 이 책보다는 흥미진진할 거 같습니다요.


누보 그룹에 대해서도 몇 줄 써야지. 건축가, 작곡가, 평론가, 화가, 극작가 등등. 이 신세대 문화/예술인들은 자신들이 갈 길을 개척하는 데에 뜻을 두는 이상주의자였다. 모두가 예 할 때 아니오를 외치는 게 일반인이라면 왕따가 되지만, 유명인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누보 그룹의 영향력은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고, 전 국민의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들도 자신의 꿈과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성세대와 타협하기도 하고 교묘하게 말도 바꿔가면서 입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고귀한 뜻을 위해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작가는 누보 그룹을 통해서 오늘날 꿈과 성공을 위해 똥, 된장을 가리지 않는 자들을 풍자하고 있었다. 겉은 그럴싸 하나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재활용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이 예나 지금이나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자들이 외치는 혁신이 과연 옳은지 우리는 올바르게 분별해야 한다.


암튼 세이초의 작품은 스토리도 기법도 전부 단순해서 분석이랄 게 없다. 대개 장르소설은 스토리도 뚜렷하고 메시지나 작가 철학이 확고해서 리뷰 쓰는 게 어렵지 않은데, 이 작가는 뭘 써야 할지 몰라서 참 난감하다. 독자도 이러할진대, 세이초를 공부하던 작가들에게는 얼마나 연구대상이었을까. 장르소설의 큰 특징은 기승전결이 비슷비슷해서 전개가 대충 예상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쯤 되면 누가 등장한다던가, 이 문제가 해결된다던가, 더 상황이 악화된다던가 하는. 이것과 반대로 일반 고전문학들은 예측이 불허하다. 게다가 하드보일드 한 문체를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뱅뱅 돌려서 말하는 고전 속 문장들을 못 견뎌한다. 이러한 이유들로 많은 이들이 고전을 어려워하고 멀리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그랬으니까. 그나마 이 책은 그런 어려움이 없으니 이걸로 고전에 입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물론 나는 이제 세이초 월드를 떠날 생각이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은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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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2-10 00:22   좋아요 2 | URL
드디어 다 읽었습니다! 무지막지하게 건조한 문체와 초느긋한 템포, 한 음으로 부르는 노래에 격하게 공감합니다.ㅎㅎ 초저파 테러를 당한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속 터지고 답답해서 울렁거렸다는^^;
오~ <노인과 바다>의 도시 버전! 고군분투라는 커다란 틀에서 비슷하네요. 다만, 노인이 작살을 따발총처럼 쏘아재껴 다량의 불발을 양산한데다 상어를 맞추는 행운이 올라치면 치명상까지 입히는 행운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버전이랄까요.
사회 풍자와 비판에 선구자적 역할을 한 점은 인정하더라도 저 역시 세이초 월드는 두 번 다시 놀러가고 싶지 않네요. 그래도 무사히 출구는 통과했네요. 물감님과 저에게 박수를~ㅋㅋ

물감 2020-02-11 12:55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나비종님! 잘지내고 계신가요 ㅎㅎ
이번에도 완독하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노인과바다의 도시버전에 공감 하셨군요!
하나 고백하자면 지금까지도 제목이 뜻하는 의미를 모르겠더라구요.
모래가 풍성한 사막의 건조함을 느끼긴 했습니다^^ 솔직히 이번만큼은 읽었다는 데에 의의를 둘 생각입니다 하하하...
 
남겨진 자들 메두사 컬렉션 2
제프리 디버 지음, 남명성 옮김 / 시작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내 사랑 제프리 디버의 작품으로 2019년을 장식하려 했는데 벌써 해가 바뀌어버렸네. 이제는 책도 잘 못 읽고 글 쓰는 것도 줄어서 리뷰 쓰는 게 어려워진다. 잘 쓸려고 하면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나는 잘 쓰려고 하지도 않는데 어려워하는 걸 보면 점점 머리가 굳어지는 게 실감이 난다. 최근에는 리뷰 쓰기가 막막한 작품이 엄청 쏟아져 나오는데, 고차원 작가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님은 그냥 이런 대중소설이 더 잘 맞는 것 같다. 이 작가는 ‘링컨 라임 시리즈‘로 이름 날렸지만 스탠드 얼론도 여러 권 발표했는데, 이번 작품은 솔직히 ‘빅 재미‘ 타입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재미 오브 재미‘ 타입이랄까. 다른 작가의 책이라면 대박이라고 느꼈을 텐데, 제프리 디버가 썼다고 하니 평범하게만 느껴지는군. 맨날 자극적인 것만 먹다 보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더 맛있고 그런 거지 뭐. 나 지금 무슨 말하고 있는 거니. 진짜 뇌가 안 돌아가네. 퇴화한 게 확실함.


인적 없는 호숫가의 별장에서 두 킬러에게 부부가 살해된다. 그곳을 방문한 여경찰 브린은 킬러들의 다음 타겟이 된다. 차도 고장 나고, 휴대폰도 잃어버리고, 무기마저 없어 곤란한 상황. 여기에 피해자 친구까지 보호해야 한다. 주인공은 산악 지형을 이용해 킬러들을 속이고 따돌리지만 철없는 동행인 때문에 사태가 점점 악화된다. 한편 연락 두절된 아내를 구하러 별장으로 달려가는 남편과 경찰들. 그리고 이들 외에도 주인공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감시자가 있다. 숨 막히는 추격전과 함께 드러나는 흑막의 실체. 과연 브린은 죽음의 그림자를 끊어내고 무사할 수 있을까.


단순한 소재에 평범한 플롯이라서인지 주목받지 못할만하다. 그런 조건에서 이 정도의 퀄리티라니, 박수받아 마땅하다. 일단 스릴감은 충만하나 임팩트가 약한 것은 산속에서 써먹을만한 무대 장치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면 별 자극 없는 밋밋한 전개가 되는데, 이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작가가 캐릭터 설정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정말 캐릭터만 잘 잡아도 웬만큼 스토리가 산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었다. 많은 작가들이 전체 줄거리를 먼저 구상하고 나서 캐릭터를 만드는데, 디버는 반대로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줄거리를 짠다. 근데 이렇게 되면 스토리보다 개인의 성장에 더 비중이 커져버린다. 내 식대로 표현하자면 캐릭터는 3D의 느낌이지만, 스토리는 2D의 느낌이라서 양쪽이 섞이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는 구간이 꼭 생긴다. 그러나 디버는 어느 지점에서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모든 작품에 위화감이 없고 작위적인 기분도 들지 않는다. 증말 인간미 없는 알파고 같으니.


주인공 브린은 완벽한 모범 경찰이었지만, 가정에서는 온통 불안함 투성이였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고, 재혼한 남자는 딴 여자와 바람난 상태다. 게다가 문제만 일으키는 아들 소식으로 정신이 없다. 그녀가 남편의 외도와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바로잡지 않는 이유는 집안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아서였다. 내 감정에 솔직하고 싶어도, 나만 참고 희생하면 모두가 편해지는 걸 알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아, 이거 너무 공감되는데? 살면서 총대를 메야 하는 때가 왜 그리도 많은 건지 참. 암튼 일이나 훈련에는 그렇게 적극적이면서 개인의 문제는 상황을 회피하기 바쁜 그녀는 전형적인 외강내유 컨셉이다. 이랬던 그녀가 킬러들과의 생존게임을 통하여 약점을 극복해내는 모습으로 성장한다. 이렇듯 진짜 액기스는 따로 있으니 너무 액션 쪽만 보지 마시고 인물의 불안함 쪽에 더 주목하시길. 


내가 자주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쉴 때는 걱정하지 말고 그냥 쉬라는 말이었다. 내 성격상 처리할게 생기면 잠들면서도 내내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나는 할 땐 하고 놀 땐 노는 게 잘 안된다.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방지턱도 많고, 유턴 구간도 많고, 기름도 자주 바닥나는 걸까라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방지턱이야 살살 넘으면 되고, 길을 잘못 들면 돌아가면 되는 거고, 기름이 없으면 채우면 된다는 것을 작가가 상기시켜주었다. 긁어 부스럼이 싫다고 피하기만 하는 것은 전혀 도움 되지 않는다. 마주하고 부딪혀서 결론을 내야만 얽매임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니 주인공 브린처럼, 애써 모른 척 중인 미처리 건이 있다면 새해에 다 풀고 해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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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0-01-07 12:50   좋아요 1 | URL
<질문>제목의 ˝남겨진 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 살해된 부부를 제외한 나머지 기타 등등인가요? 왜 제목이 ‘남겨진‘일까요? 내용과의 연관성을 잘 모르겠습니다.^^;;

<동감>마지막 단락. 그 느낌 뭔가 알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처리할 일이 있으면 그것만 계속 생각했거든요. 자발적으로 생각한다기보다는 계속 생각이 나는 거요. 일이건 사람이건 어떤 대상이든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그런 성향을 보였다는ㅠㅠ 한 번 필 꽂히면 내 눈엔 너만 보여~이런 식이죠. 흠.. 은근히 지가 저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작년에 읽은 <스무 살 반야심경에 미치다>에 나오는 ‘방하착‘(放下着)이란 말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전부터 조금씩 노력은 해왔지만 이 말에 얽힌 일화를 읽고 나니 생각을 내려놓는 게 조금 더 잘 되더라구요. 새해에는 찜찜한 거 빨리 잊고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인간상으로 거듭나보려구요.ㅎㅎ

물감 2020-01-07 21:3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나비종님 ㅎㅎㅎ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목에 대해서 일부러 코멘트를 달지 않았습니다. 듣는 순간 바로 스포일러가 되는 작품이라서요 ^^;; 스포를 피하다보니 리뷰가 계속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는...

생각하기 싫어도 계속 생각나는 모든 것들이 나를 이다지도 갉아먹고 있었구나 싶어요. 전 완벽주의자도 아닌데 왜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ㅎㅎ
저 역시 내려놓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 걱정하는 습관을 줄이다보면 점차 마음에 평화가 오겠죠 뭐 ㅋㅋㅋ

참, 이번주부터 모래그릇 1권을 읽고 있는데요, 생각보다 가독성이 좋아서 2권다 금방 읽겠더군요. 전혀 무리하실 필요 없을듯 합니다. 2월에 몰아서 보셔도 될 듯해요 ㅋㅋㅋ

나비종 2020-01-07 22:17   좋아요 1 | URL
그렇게 깊은 뜻이!!^^ 그렇군요~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리뷰 쓰기를 조금 난감해하신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여전히 MSG 없는 국물맛이 느껴지지만, 뭐랄까 살짝 덜 끓인 김찌찌개 같은 맛이 나더라는 ㅎㅎ^^;;

갉아먹는다는 표현이 적절한 것 같아요. 저는 예전에는 완벽주의자였는데 요즘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구멍들이 생기더라구요ㅜㅜ 내려놓기가 잘 되지는 않지만 계속 노력하다보면 내려놓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금은 짧아지겠죠? 물감님과 나비종의 마음의 평화를 위해 화이팅!! 입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불안의 책>인데요, 가독성은 개나 줘버릴까 어느 순간 읽다 집어던질까 불안불안합니다ㅋㅋ 무모하게 도전했나 싶기도 하고..하아~
내일부터는 22일에 할 독서토론책 먼저 읽고, 독후감 쓰고, <모래그릇> 읽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가독성이 좋다니 다행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