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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그러니까 시대를 잘 타고 나야 한다고 했다. 연예인을 예로 들면, 90년대만 해도 장동건이나 송승헌같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남성미 짙은 얼굴이 먹혔었다. 지금은 그런 정석 미남보다는 동안에다 적당히 순둥해보이고 어쩐지 옆집에 살고 있어 우연찮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 썸탈 가능성도 좀 있어 보이는 훈훈한 얼굴을 더 선호하는 시대다. 나 같은 아재들은 연예계 비주얼이 하향 패치 되었다며 혀를 차지만, 요즘 친구들은 오히려 원빈, 신성우 같은 외모를 거부하니 과연 시대의 흐름이란 걸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를 읽으면서 그 같은 생각을 좀 했다. 이 책은 무조건 시대를 탈 수밖에 없겠다는. 브루스 리, 즉 이소룡에 대한 추억을 가진 분들은 현재 40대 이상은 되었을 터. 2012년 출간 때만 해도 많은 이에게 추억과 낭만을 선사했을 테지만, 특정 세대들만 누릴 문화는 얼마 못 가서 낡아빠진 문물이 돼버린다. 그래서 재미는 있을지언정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므로 시대를 탄다고 말하겠다. 막상 읽어보면 이소룡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겠지만 한국의 70년대부터 00년대까지의 현대사를 포괄하여, 독자마다 즐기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게 쪼까 안타까울 뿐. 그도 그럴게 스토리도 훌륭하고, 이끌어가는 힘도 좋고, 페이소스도 끝내주는 작품인데 하필 ‘이소룡‘이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독자를 봐가면서 소통하고 있어 누군가는 그저 시큰둥하게 넘길 수도 있단 얘기다. 나 같은 경우는 중딩 때 드라마 <야인시대>를 보고 자랐고, 고딩 때는 영화 <옹박>을 보고 자랐다. 요즘 친구들에게 김두한의 간지와, 옹박의 액션을 아무리 설명한들 어느 누가 흥미를 갖겠냐고. 문화적 요소를 소재로 쓸 거면 특정 세대가 아닌 전 세대가 공감할 만한 것이어야 하겠다. 여하튼 이소룡과는 무관한 서사였으나 주인공의 롤 모델이라 쭉 언급되므로 읽기 전에 인물 사전조사를 좀 하시는 편이...
날것을 좋아한다고 나름 자부했었는데 분량이 길다 보니 피로도가 쌓이긴 하더라. 그나마 속도감이 좋아서 망정이었지, 재미와 별개로 갈수록 기빨린다고나 할까. 알다시피 천명관의 스타일은 술자리에서 재미난 썰을 풀어놓는 식인데, 워낙 입담이 좋아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을 꼭 마디마다 한 번씩 비틀고 MSG 넣고 뻥카치니까 듣다 보면 물릴 때가 많다. 그럼에도 썰 자체가 흥미로우니 도중에 끊을 수가 없어 일단 들어나 보자 하다가 어느새 끝까지 듣고 말았으니 이거야 원 천상 이야기꾼이 따로 없다. 소설에서 필력보다는 잘 짜인 스토리가 낫고, 스토리가 약해도 흡인력 있는 게 백 배 낫다는 말씀. 나님은 해석이 꼭 필요한 작품을 우수하다고 보지 않거든. 자고로 좋은 재료는 가공되기 전에도 가치를 지니는 법이고, 그걸 볼 줄 아는 자가 천상 글쟁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천명관 작가의 팬은 아니지만 그의 악마적 재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구려.
워낙 긴 내용이라 적당히 간추려본다.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홀로 본가에 얹혀살게 된 삼촌. 비천한 출신이지만 이소룡을 흠모하여 무도인의 길을 걷는 삼촌과, 그를 따르는 동생들의 이야기이다. 말더듬이에다 사회성 부족이던 삼촌은 동네 건달들과 계속 엮이고, 원치 않던 여자와 만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서울로 피신하여 중국집 배달을 하다가 액션배우 오디션을 위해 홍콩으로 떠나지만 이마저 실패하고 돌아와 군 입대를 한다. 전역하고 충무로에서 비중 없는 조연으로 활동해보지만 시대는 점점 변하여 예전 같은 무술영화의 설자리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옛 건달들과 자꾸 얽히고,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문당하는 등 짠하기 그지없는 시련이 줄줄이 찾아온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나서야 삼촌은 자신이 빚어낸 무협지의 상상 속에서 살고 있었단 걸 깨닫게 된다.
격동하는 70~80의 현대사를 겪었던 분들은 무협지 같은 현실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인권은 바닥을 치고, 데모 운동이 끊이질 않고, 법보다도 주먹이 해결책이던 시절들. 가정과 사회, 나라가 안팎으로 불안정한데 멀쩡하게 내 하고 싶은 일만 하기가 어디 쉬운가. 특히나 예술 같은 건 굶어죽기 딱 좋다며 비난받기 일쑤지만 사실 실력만 검증되면 언제든 밥벌이가 가능한 법이다. 삼촌의 무술 재능은 자타 공인 상위 랭크인데다가 곁에서 돕고 힘써주는 지인들도 제법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사회생활에 젬병인지라 굴러오는 기회를 족족 말아먹어서 탈이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행동한 덕에 좋은 인맥도 여럿 생기긴 했지만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매번 빙빙 돌아가려니 주변에서는 융통성 없는 이 양반을 어쩌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 세월이 많이 흘렀으나 현재 시대도 사실 작중 배경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오늘날의 사회도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중이고, 먹고 살 걱정에 허덕이는 데다, 수년을 갈고닦아온 전공이 갑자기 무 쓸모가 되기도 하고,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는 참에 한 살 한 살 나이만 들어간다. 그것이 나와는 조금도 겹치지 않는 삼촌의, 정말 더럽게 꼬인 인생살이가 와닿는 이유였다.
시간은 계속 흘러, 주변인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간다. 그렇게 갈 사람은 가고, 남은 이들은 가정을 이루며 다음 세대를 맞이할 준비들을 한다. 반면에 가정과 사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혼자 붕 떠있던 삼촌은, 그나마 자신을 필요로 하는 조폭들과 지내면서 무술가의 꿈을 지워간다. 대체 어디서부터 삼촌의 앞날이 꼬였던 걸까. 어설픈 정의 실현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었나. 어째서 세상은 약자의 눈물을 모르쇠 하며, 개인의 꿈과 청춘을 한 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처럼 여기는가. 아무리 세상 물정을 모른다지만 그게 그렇게 욕먹고 손가락질 받을 일이냔 말이다. 가난하고 못 배웠다 해서 이들의 무한한 가능성까지 짓밟힐 이유는 없거늘, 가진 자들의 차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갈수록 그것이 당연한 사회가 돼가고 있다. 당장 초등학교, 유치원만 해도 아이들끼리, 또 부모들끼리 서로 급을 나누고 있지 않은가. 같은 부류가 되기 싫은 나 같은 사람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고 붕 뜨거나 최악의 선택지만이 주어질지도 모른다. 더 이상 무도인이 아니게 된 삼촌처럼.
그나마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면 역시 ‘사랑‘이려나. 저마다 제 짝을 찾아가고, 삼촌도 만년 흠모하던 여자와 잘 돼가는 분위기였다. 삶의 무게가 엇비슷하면 서로 통하는 법이니 결국 이것도 끼리끼리라고 해야 할까. 이제 삼촌은 자신의 우상보다 사랑을 더 많이 떠올리며 갖은 고난과 시련을 참아낸다. 조폭과 경찰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여 둘만의 추억은커녕 얼굴 보기도 힘든 사이가 되었지만 자신을 내어줄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이야, 남자의 순애에 대해서 뭘 좀 아시는 작가일세? 이 고리타분한 캐릭터에 울컥하는 걸 보면 나도 참 옛날 사람 맞나 보다. 난 아직도 첫사랑의 휴대폰 번호를 외우고 있거든. 아무튼 삼촌의 사랑은 계속해서 방해받다가 아주 그냥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했냐!!!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더라야.
솔직히 지금 와서 보면 케케묵은 이야기가 맞다. 앞서 시대를 탄다고는 했지만 그럼에도 평타 이상 치는 작품이라 읽어줄 만하다. 날것을 싫어하는 분들은 쪼까 피곤해할듯 싶지만서도. 근데 천명관 정도면 한국의 자연주의 작가라 불러줘도 되지 않을까 싶다. 대관절 이만큼 원초적인 감성으로 승부하는 작가도 없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