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 제1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고요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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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달이었나, 택배 보낸 거래처 주소가 잘못되어 수령자가 연락을 준 적이 있다. 양해를 구한 뒤 회수 택배기사가 방문하면 전달 부탁드린다는 통화 및 문자를 남겼고, 그 일은 다행히 잘 해결되었다. 그리고 며칠 있다가 그 수령자의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 놀랍게도 가족들이 보낸 부고 문자였다. 생판 모르는 남의 일이긴 했지만 그분의 죽음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겨우 연락 한 차례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것 또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과 다름없었을까.


시작부터 죽음 얘기를 꺼낸 것은, 이번에 읽은 책이 온통 삶과 죽음을 둘러싸고 있어서였다. 서른을 앞둔 취준생 두 남녀가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간다. 우울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가뜩이나 쪽팔린 형편을 루저 인생으로 못 박아버렸다. 이 알바는 업무시간도 대중없을뿐더러 일이 매번 있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이 되어서야 일을 마친 두 사람은, 첫차가 운행할 때까지 서울 도심을 방황하거나 24시간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시간을 때운다. 하루 중 가장 버티기 힘든 그 시간대가 이들만의 자유이자 솔직해지는 순간이었다. 각자의 못났음을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시간.


나 하나만 힘들고 아프다면 차라리 다행일까. 집안도 문제 있고, 가족과도 소원하고, 또 그것이 내 탓이기도 한 참말로 노답 그 자체인 상황.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나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데 어디 가서 투정 부릴 수도 없는 노릇. 이 딱한 청춘들의 넋두리를 독자들이 들어주도록 하자. 엄마와 이혼한 남주의 아빠는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엄마가 이혼을 바란 것도, 아빠가 죽음에 흥미가 생긴 것도 다 누나를 죽게 한 남주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 서로 목조르기 게임하다가 그만 죽어버린 누나. 그 사건으로 가족들의 고장 난 시계는 그렇게 버려져있었다.


여주를 태운 남주의 스쿠터는 서울 곳곳의 맥도날드로 향한다. 햄버거를 씹으며 신세한탄도 좀 해주고, 소확행을 꿈꾸다가 이내 죽음의 주제로 돌아온다. 며칠 전에는 뒷집 아저씨가 돌연사 하여, 남주 아빠가 조촐한 장례를 치러주었다. 죽음은 이렇게나 우리 가까이에 서식하고 있다. 돈을 모으려면 사망자가 많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죽어달라 할 수도 없지 않냐는 두 사람. 현실에 발목 잡히고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허락된 건 겨우 두세 시간의 서울 일주 뿐이었다. 누구는 죽음을 보고 기나긴 여행이라고 하던데, 적막한 서울의 밤을 쏘다니는 장면들이 꼭 죽음을 여행하는 듯 보이더라.


이혼 후 새 가정을 꾸린 엄마는 어쩌다 한 번씩 집을 찾아왔다. 자유분방하고 막무가내인 엄마를 이해하기에는 떨어져 지낸 세월이 너무도 길었다. 그럼에도 뭐라 할 수 없는 것은, 누나의 죽음을 남주 탓으로 돌리지 않아서였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도 엄마의 방문은 누나가 그리워서일 거고, 그래서 아빠는 오래도록 이사도 못 가고 이 집과 누나 방을 보관하는 중일 거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너무 잔인한 처방이지 않나. 왕따를 당한 학생이 전학 가듯이, 또 답 없는 직장에서 이직하듯이, 고통스러운 공간에서 그만 벗어나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닐까. 보다시피 이런 경우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다행히 남주의 트라우마는 잘 해결되었다. 그리고 둘 다 상조회사에 정규직 면접을 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들과 나를 포함한 청춘 모두의 좋은 결과를 바래본다. 또한 죽음을 수용하고 작별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열린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어쩌면 그것이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비결일지도 모르니까. 아무튼 예상외로 나이스 한 작품이었다. 내내 우중충한 분위기에 저텐션이라 시큰둥하게 읽었는데, 이제 보니까 가랑비에 옷이 다 젖어버렸다. 우울하면서도 뭔가 기분 좋은 멜랑꼴리함을 잘 표현한 고요한 작가에게 삼삼칠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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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9-12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척 낭만적인 제목인데 내용은 슬프네요. 그래도 뭔가 긍정과 희망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전해져 저도 박수를!

물감 2024-09-12 10:00   좋아요 1 | URL
퇴폐미를 가진 배우의 아우라와 비슷한 느낌일라나요. 슬프긴 한데 또 낭만적인 작품입니다. 이건 읽어보셔야만 이해될 거에요. 가독성도 훌륭했습니다^^

coolcat329 2024-09-12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목조르기 게임을 하다가 누나가 죽었다니...기막힌 팔자네요. ㅠㅠ
너무나 센 팔자라 센 직업을 가져야 살 수 있나봅니다. 업상대체라고 하더라구요. 두 사람 다 상조회사 정규직! 됐겠죠?

물감 2024-09-12 10:24   좋아요 1 | URL
누나의 죽음에는 여러 비하인드가 있습니다만, 기막힌 팔자는 틀림없네요 ㅠㅠ
작중에서는 일자리를 찾고 찾다가 결국 상조업체까지 온 것으로 나와요. 그리고 둘 다 상처만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알바 일도 무덤덤하게 하더라고요. 괜히 찡했습니다.
알바경력을 쳐주어서 아마 정규직 되지 않았을까요?! 열린 결말식 희망이긴 해요ㅎㅎ

stella.K 2024-09-12 1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읽어서 좋긴한데 말씀하셨던 그분은 어쩌다 돌아가셨을까요? 그분 가족은 어떻게 물감님께 전화를 한 거고요?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못 전하고 가족이 전한 걸까요? 어쨌든 좀 황망했겠어요. 죽음이 내게서 먼 것 같아도 참 그렇지가 않아요. 그죠?
책 물감님이 좋다고 하시니 저도 기억하겠슴다. 읽게될지는 모르겠지만. ㅋ

물감 2024-09-12 10:37   좋아요 2 | URL
전화가 온 건 아니고 돌아가신 분의 번호로 문자가 온 건데, 가족들이 핸드폰 통화/문자 목록으로 전부 연락을 돌린 거더라고요. 돌아가신 사유는 안 적혀있어 잘 모르겠지만, 짧게나마 애도는 표했습니다. 어제는 보험사에서 암 진단비가 너무 적게 들어있어 추가 가입을 권장하는 전화가 왔는데요, 평소같았으면 됐다고 할텐데 일단 제안서라도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이런 걸 걱정하는 날이 오네요. 하하하...
가볍게(?) 읽기 좋은 작품입니다. 생각거리도 풍부하고요. 시간은 잘 가던데요 ㅎㅎ

stella.K 2024-09-12 16: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물감님 방금 프사 바꾸셨네요. 먼저 프사 귀여웠는데. ㅋㅋ

물감 2024-09-12 18:36   좋아요 2 | URL
ㅋㅋㅋ 파란 배경이 다가올 계절과 어울리질 않아서 말이죵

stella.K 2024-09-14 2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핰, 그때는 스맛폰에서 봐서 몰랐는데 PC에서 보니까 이 프사도
되게 재밌네요. 이런 이미지는 어디서 구하시나요? ㅋㅋ
설마 물감님을 대변해 주는 건 아니죠?
어쨌든 들어 온 김에 추석 연휴 잘 보내십쇼.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책도 많이 읽고. 잠도 많이 자고요, ㅎㅎ

물감 2024-09-14 23:17   좋아요 2 | URL
원래 프사는 본인을 어느 정도 대변하지 않나요?ㅋㅋㅋ
스텔라님도 추석 잘 보내시길요😀😁😄

페크pek0501 2024-09-20 17: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 님이 바꾸신 프사 때문에 헤매다가 이제 찾음. 물감, 이란 닉네임을 쓰시는 분들이 많네요.
물감 님도 스텔라 님이 K를 붙이신 것처럼 뭘 붙여야 찾기 쉬울 것 같네요. 제 닉네임은 하나뿐인디...ㅋㅋ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니 기본은 너끈히 넘겠지요. 게다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고요.
저는 2024신춘문예 수상작품집을 읽고 있어요. 어떤 글이 뽑히는지 궁금했지요. 두 개만 읽으면 완독, 입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건 수상작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것, 입니다.ㅋㅋ

물감 2024-09-23 17:36   좋아요 2 | URL
하하하, 차라리 제 댓글을 찾아서 프사 누르는게 더 편하실 거에요.
저는 서재 방문을 다 그런 식으로 하거든요 ㅋㅋ
페크님도 추석은 잘 보내셨나요? 요새는 서재를 잘 안 와서 소식도 모르겠네요.
저도 수상작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그나마 나무옆의자의 세계문학상은 좀 괜찮게 보고 있어요. 읽을 건 많은데 독서는 잘 안되어 큰일입니다만.......
 
마지막 사도 1
장용민 지음 / 재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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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민 작가 도장 깨기도 이제 다 끝나간다. <마지막 사도>는 2009년에 출간된 <신의 달력>의 개정판이다. 2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전혀 구식으로 느껴지지 않을 세련된 작품이어서 놀랬다. 작가의 전 작품을 통틀어 가장 높은 난이도라서 재미와 별개로 푹 빠져읽는 건 무리였다. 이번 테마는 민감하기 그지없는 ‘종교‘인데다 음모론에 종말론을 곁들여, 아무리 팩션이라지만 몰매 맞기 딱 좋은 모양새였다. 심지어 성경만 건든 게 아니라 각국의 신앙과 문명을 믹스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러나 읽어보면 이것저것 뒤섞은 산채비빔밥이 아니라 탄탄한 짜임새를 갖춘 20첩 반상이라고 느껴질 것이다. 다만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재미없을 거라 패스하는 게 낫겠다. 그나마 성경이라도 읽어봤다면 얼추 즐길 정도는 될 게다.


복잡다단한 서사를 어떻게 리뷰하면 좋을까. 요즘은 계속 이런 작품들만 걸리는 것 같다. 필라델피아에서 7년째 사립탐정을 하고 있는 하워드. 과거 역사 교수였던 그는, 딸아이의 납치 및 살해 사건 이후로 모든 게 풍비박산 나버렸다. 또한 자신의 절규를 끝까지 모르쇠 한 신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찾아와, 실어증 걸린 딸이 언급한 사람을 찾아달라고 의뢰했다. 정보는 겨우 사뮈엘 베케트란 이름뿐이었고, 하는 수없이 경찰 친구에게 목록을 뽑아다 일일이 방문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편, 딸아이의 납치범은 변호사들 보호 아래 지금도 멀쩡히 지냈는데, 그 배경에는 사탄 신봉 단체가 떡하니 버티고 있더랬다. 하워드가 어떻게 방해받을지 대강 짐작이 가는데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로다. 두둥탁.


마침내 수상한 사뮈엘을 발견한 주인공. 용의자의 주소를 찾아갔더니 이미 떠나고 없다는 건물주의 말만 돌아왔다. 근데 생판 모르는 사뮈엘이 하워드에게 남긴 내용 모를 편지가 있었다. 그렇게 하워드는 건물주한테 사뮈엘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계속해서 사뮈엘과 접촉했던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가게 된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사뮈엘의 기이한 점들이 드러나서, 그의 사회보장번호를 조회했더니 현재 나이가 133살이라고 한다. 헌데 관계자들은 사뮈엘의 모습이 삼십 대 초반의 젊은이라고 증언했다. 이제 하워드는 의뢰 때문이 아닌, 어떤 기묘한 힘에 이끌려 용의자를 찾고 있었다.


사뮈엘의 단서는 어느 과학 연구소로 이어지고, 한 경비원을 통해 50년 전 아인슈타인이 사뮈엘을 만난 일화를 듣게 된다. 사뮈엘이 여기 직원이었다는 말에 신상기록 열람을 신청했으나 거절되고,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아인슈타인의 편지 속에서 언급된 사뮈엘을 발견한다. 상대성 이론을 발견한 것은 자기가 아니라면서. 거참 몇 안 되는 단서마다 이만한 파급력을 보여주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근데 잠깐, 이대로 쓰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적당히 줄이겠다. 아인슈타인에 이어서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도, 오펜하이머의 원자폭탄 발명에도 전부 사뮈엘과의 접촉이 있었다. 이 용의자는 인류 문명 발전에 기여한 위인들을 만나 영감을 던져주고는 휙 사라졌다.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수백 년 전부터 찍먹하고 다닌 사뮈엘의 행적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하워드의 돌 같은 마음을 조금씩 깨 가는 중이었다.


이쯤 되자 의뢰인이 수상해져서 캐봤더니, 그녀의 뒤엔 미국 교회를 대표하는 원로 목사가 있었다. 병 때문에 오늘내일하던 그 목사는 놀랍게도 신을 믿지 않았으며 오직 돈 때문에 성직자가 되었음을 고백한다. 또 듣자 하니 목사 앞에 나타난 사뮈엘이 이제라도 신을 찾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단다. 하여 자신처럼 신을 믿지 않게 된 하워드를 고른 뒤, 자신이 죽기 전 사뮈엘을 데려와달라는 게 찐 의뢰였단다. 자네 또한 신에게 질문할 것이 있지 않냐면서. 약점이 긁힌 하워드는 목사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갈 때까지 가보기로 결심한다.


사실 하워드 이전에 목사가 고용한 탐정 D가 있었다. 갑자기 연락이 끊어진 D의 발자취를 따라 프라하로 날아간 하워드는 D를 언급한 이유만으로 철창신세가 된다. 사탄 추종자들과 얽힌 D가 제물이 된 소녀를 살해한 영상이 찍혔던 것. 어찌어찌해서 풀려난 하워드는, 그 사탄의 집단이 고대 이집트 신화로부터 영국의 크로울리(프리메이슨)까지 이어져내려온 배경을 발견한다. 그리고 크로울리가 쓴 사탄의 율법서인 ‘리베르 레기스‘를 추종하던 자가 마야문명에 빠져, 그들의 신인 케찰코아틀의 숭배 사상을 미국으로 들여와 지금의 사탄 신봉 단체가 생겨났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종교와 역사가 혼합된 본론으로 넘어가는데, 머리 아프니까 일일이 이해하려 하지 마시고, 작가와 주인공이 제기하는 신의 부재와 종교의 부패성을 중점으로 접근하시길 바란다.


사뮈엘의 실마리는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항해일지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일가족에게로, 롱기누스의 창을 찾아다닌 히틀러에게로 이어진다. 그들 모두가 사뮈엘을 만났었고, 장래에 누군가가 자신들을 찾아올 것에 대한 암시를 받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대체 사뮈엘은 수 세기를 걸쳐 하워드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했을까. 일단 여기까지가 1권에 대한 내용이고, 2권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마침내 발견한 롱기누스의 창에 적혀있던 마야의 열 두문자를 분석한 결과, 글자 하나하나가 사뮈엘이 거쳐간 뉴턴, 콜럼버스 같은 문명을 책임졌던 인물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편 수감 중인 딸아이의 납치범이 면회 신청을 하여 찾아간 하워드는, 그에게서 사탄의 율법서인 리베르 레기스에 적힌 인류 종말 예언을 듣게 된다. 그 시일은 마야 달력인 촐킨에 의거하면 2012년 12월 21일, 즉 엿새 뒤에 벌어질 재앙이었다. 아무리 신을 믿지 않는 주인공이라도 이제는 흘려넘길만한 사태가 아님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마침내 리베르 레기스의 예언대로 6일간의 종말 징조가 차례차례 일어난다. 하워드 일행은 사뮈엘이 지금의 사태를 경고하려 메시지를 남긴 신이었다 믿는 반면에, 많은 종교단체들은 사뮈엘이 신이라는 사실을 거부하였다. 혹여 예수가 재림한다면 자신들의 설자리를 잃어버릴 것이므로. 그렇게 종교인들의 거짓된 믿음이 드러나고, 반대로 무신론자들의 의심병이 완쾌돼버리는 대역사가 펼쳐진다.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지만 이쯤에서 마치기로 하겠다. 개인적으로 종말에 대한 장면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재앙을 끌어다 쓰지 않아서 맘에 들었다. 만약 그랬다면 정말 실망했을 건데, 다행히도 예측불허한 전개를 끝까지 유지해 줘서 역시나구나 싶었다. 그건 그렇고 민감한 종교 소재를 이토록 깊게 파고든 이유가 뭘까 했는데, 작가도 힘들었을 때 묵묵부답이었던 신의 존재를 추적하다가 이 작품이 탄생했다고 한다. 정말 신앙의 여부를 떠나서 무조건 박수 쳐줄만하다. 꽤나 의미심장한 주제였지만 딱히 종교 얘기를 나누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읽어보라는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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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열린책들 세계문학 54
볼테르 지음, 이봉지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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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테르가 최상급 스토리텔러라는 말에 급 궁금해져서 냅다 읽었다. 스타일 면에서 살짝씩 아쉬움은 남았어도 최상급이란 타이틀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볼테르가 있다고나 할까. 인간계를 내다본 이들의 철학과 사상은 극문학으로 탄생하고 생산되었다. 볼테르가 쓴 <캉디드>는 순진한 주인공이 비극적인 상황을 연달아 맞으면서 깨달아가는 삶의 모순을 풍자한다. 어쩐지 <돈키호테>를 매콤한 맛으로 확 압축시켜놓은 듯한 이 작품을 어떻게 리뷰해야 할지 막막한데 일단 해보겠다.


독일에 어느 영주의 성에서 길러진 고아 출신 캉디드. 그는 철학자이자 가정교사인 팡글로스에게 받은 낙관주의 신봉 사상에 푹 빠져버린다. 철학자 말에 따르면,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라고 한다. 즉 어떤 사태가 일어난다 한들 그것이 최선의 결과였다는 의미이다. 뭐, 거기까진 좋은데 주인공이 영주의 딸과 스파크가 튀더니 결국 성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후로 캉디드는 유럽 곳곳을 배회하며 전쟁에 휘말리고, 정치에 얽히고, 도적들을 만나고, 감옥에 갇히고, 누군가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걷게 된다. 마치 하늘이 그의 낙관주의를 무너뜨릴 작정이라도 한 듯이.


성을 나온 캉디드는 불가리아 군대에 끌려가 미친 듯이 매 타작을 당한다. 그곳을 달아나 도착한 마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문전 박대를 받는다. 그러다 거지꼴로 다니는 철학자 팡글로스를 만나 듣게 된 소식은, 불가리아 군대가 영주의 성을 함락하고 사람들과 영주의 딸까지도 죽였다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불과 작품의 극 초반 내용인데, 이쯤 해도 철학자의 낙관주의는 틀려먹었다 느낄 법 하건만, 제대로 세뇌당한 캉디드는 계속해서 팡글로스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 한다. 이런 식으로 일어나는 소동마다 캉디드는 신념을 지키는 반면, 볼테르는 그 속에서 갖가지 모순을 집어내고 풍자하기에 바쁘다. 독자인 당신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면서.


캉디드는 영주의 딸을 탐한 죄목 때문이라지만, 이유 없이 고통받은 철학자의 신세를 이해할 수 없어 세상을 탓해본다. 그러나 철학자는 그 모든 과정들이 최선의 세계를 위한 필수 요소라며 반박했다. 심지어 선인이 악인으로 변하여 서로를 죽이는 것마저도, 개인의 불행은 공공의 이익이 된다는 결론으로 이 또한 최선임을 강조했다. 내게는 그 주장들이, 도망치기에 급급한 궤변론자의 헛소리로 느껴졌다. 볼테르 또한 그렇게 느끼도록 이런 패턴을 반복한 듯하다. 두 사람이 도착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는 대 지진이 일어나 국토의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고, 여기서도 최선이 어쩌구 필연이 어쩌구 하는 말을 내뱉자, 그걸 들은 종교 재판소의 비밀 요원이 두 사람을 끌고 가 감옥에 집어넣는다. 교수형에 처하겠단다.


어찌어찌해서 캉디드는 도망쳤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영주의 딸을 만나 자초지종을 듣는다. 그녀는 불가리아 군인에게 끌려갔다가 유대인에게 팔린 상태였다. 그 유대인을 살해한 캉디드는 재판소장까지 죽이고서 그녀와 멀리 달아난다. 놀랍게도 아직 초반 내용인데, 이 같은 미친 전개가 한참 남아있어 일일이 썼다간 시간이 부족할 테니 몇 가지만 더 쓰고 마치겠다. 여행 중에 혼자가 돼버린 캉디드는 다시 영주의 딸과 만나기 위해 유럽과 남미를 돌고 돌게 된다. 파라과이에서 만난 신부가 알고 보니 그녀의 오빠였는데, 자신의 결혼 계획에 반발하자 홧김에 오빠를 죽여버린 주인공. 이렇게 우발적인 사고조차도 어떻게 필연이라 부를 수가 있을까. 이런 일들이 계속되자 캉디드의 강한 사상도 조금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엘도라도에서 막대한 돈과 보석을 얻은 캉디드는, 그것으로 여행 중의 위기에서 벗어나곤 했다. 그의 선한 마음과 달리 사람들은 캉디드의 등골까지도 빼먹을 심산이었다. 이 시기에 같이 동행하던 철학자 마르틴은, 팡글로스와 반대되는 비관주의로 캉디드의 어수룩함을 지적해댔다. 캉디드의 재물을 훔친 사람의 배가 침몰하자 인과응보라며 기뻐하는 주인공과, 배에 타고 있던 무고한 승객들은 어떻게 설명할 거냐는 마르틴. 두 사람은 끝까지 동행하며 갑론을박을 멈추지 않는데, 확실히 마르틴이 등장하고부터가 읽는 맛이 난다. 여튼 너무 길어져 이만 쓰기로 하겠다. 분량이 많지도 않는데 전개 속도가 너무 빨라서 좀 산만했던 작품이다. 차라리 길게 늘려서 템포 조절만 해줬으면 아주 완벽했을 터. 결말이 어떻게 나는가가 너무 궁금했는데, 이렇게 깔끔하고 간단명료한 마무리라니, 진짜 볼테르는 넘사벽이다. 헌데 그에 비해 또 읽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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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04 19: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짜 볼테르는 넘사벽이다. 헌데 그에 비해 또 읽고 싶지는 않다.
참 귀여운 마무리군요. ㅋㅋ
이래서 고전을 쉽게 읽겠다고 덤비지 못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당대에서는 재밌게 읽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읽으면 재미없거든요.
문법도 다르고 수사도 다르고.
암튼 고생하셨습니다.
근데 물감님 여름엔 끝내주게 재밌는 책을 읽어줘야 한다고 하면서 큰 소리치시더니
어째 막상 읽는 책은 좀...ㅋㅋ

물감 2024-09-04 22:59   좋아요 2 | URL
지금 나오는 현대 문학들도 후손들한테는 고전이 될 테죠. 그리고 되게 촌스럽다고 한 소리 들을 거고요. 적당히 배울 점만 뽑아먹는 게 똑똑한 독서 아니겠어요?ㅋㅋㅋㅋ
그러게요, 재밌는 거 읽어야 하는데 요즘 독서 운세가 영 별로입니다 ㅋㅋㅋㅋ 에효

coolcat329 2024-09-05 06: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고전을 읽으셨네요. 18세기 책 중 읽은 게 있나 생각해봤는데 떠오르는 게 없네요. 이 책 내용이 산만할 거 같았는데 역시 그렇군요. ㅎㅎ 마지막 문장 알 거 같아요. 😅

물감 2024-09-05 10:36   좋아요 2 | URL
한 번으로 족한 작품, 느낌 아시죠? ㅋㅋㅋ
지금보다 허영, 허례허식이 가득했던 옛 시절에 대놓고 풍자한 깡다구가 대단했습니다. 볼테르는 멋진 사람이네요. 이렇게 유행이나 분위기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거겠지요 ^^
 
복수해 기억해 모중석 스릴러 클럽 48
섀넌 커크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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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보다 고전문학을 더 높게 쳐주듯 장르소설 또한 마찬가지이다. 한 2010년대 이후로 나온 스릴러소설들은 영 재미가 없거나 그냥저냥이다.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살짝 비틀고 살점을 붙여서 재탕에 재탕을 한다는 인상만 받는다. 그럼에도 읽는 재미나 있다면 다행인데 그 정도로 칭찬할 만한 작품은 정말 구경하기도 어렵다. 2015년작인 <복수해 기억해>는 변호사 출신의 저자답게 퍽퍽한 감성으로 쓴 이과형 소설이었다. 쉽게 말하면 가전제품 매뉴얼을 읽는 기분이랄까. 노력이 가상해서 별 셋 주려다가 영 성의 없는 전개와 결말에 그만 별 하나 깎아드렸다. 어째 모중석의 작품 고르는 클라스가 갈수록 떨어지는듯해?


나님은 걸작보다 망작의 리뷰를 쓸 때에 전투력이 차오르는 편인데 이번 작품은 그럴 의욕조차 들지가 않는다. 아마도 비평할 가치마저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싶은데 일단은 써보겠다. 10대 임산부가 납치된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의 주인공은, 부모의 똑똑함을 물려받은 대신 감정의 스위치를 맘대로 껐다 켰다 할 줄 아는 희귀한 병 같은 게 있었다. 하여간 현대 작가들은 진짜 별별 설정을 다 갖다 붙이느라 고생 깨나 하는 듯. 여태껏 읽었던 장르소설의 인물 설정 중, 이건 좀 과했다 싶으면 하나같이 똥망이었다. 그도 그럴게, 신박한 캐릭터를 짜내느라 스토리 구상은 뒷전이 돼버리니 완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얼레, 점점 전투력이 솟아나는듯해?


폐쇄 건물 감옥에 갇힌 주인공 리사. 그곳의 담당 간수는 음식을 대령하고 험한 말 뱉는 게 다였다. 리사는 쫄지도 울지도 않고 차분히 슬기로운 감옥생활을 보낸다. 방안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을 탈출 도구로 지정하면서 도망칠 계획을 구상 중인데, 적절한 타이밍은 안 보이고 남는 건 시간이다 보니 가전제품 매뉴얼 같은 TMI를 연달아 읊어댄다. 리사가 워낙 감정이 없는 데다, 별다른 사건사고도 일어나지 않아 스릴감이 제로에 가까웠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더니, 이건 뭐 소문조차 난 적도 없었네?


한편 바깥에서는 FBI 이 인조가 납치된 10대 임산부들을 찾고 있었다. 남자 요원은 시력이랑 기억력이 좋고, 여자 요원은 후각과 청각이 좋다는 설정인데, 그런 얘기만 늘어놓느라 정작 수사 다운 장면은 거의 나오질 않는다. 뭔가 꼬리를 밟은 듯도 한데 딱히 FBI가 뭘 하는 게 없어서 그냥 엑스트라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아무튼 가만히 있으면 리사가 알아서 탈출하고 경찰에 연락하고 범인과 대치하고 끝난다. 놀랍게도 이게 전부다. 이것은 독자기만이나 조롱 수준만도 못하다. 그나마 주인공이 뱃속의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또 다른 임산부 소녀를 만나면서 스위치가 켜지고 잠깐 동안 감정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대로 돌아오는 리사를 보며, 감정 선의 빌드 업은 뭐하러 한 건가 싶더라. 이 작가는 기초 플롯부터 좀 배우셔야겠던데?


좀 더 찰지게 욕하고 싶은데 이제는 예전만큼 쓴소리가 안 나온다. 성격이 죽은 건지, 필력이 죽었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이번 독서로 옛것이 좋은 것이라는 꼰대스러운 생각이 자리 잡아버렸다. 출판사의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후진 작품을 기획물에 끼워 넣는 건 쪼까 거시기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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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4-08-29 10: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하나라, 물감 님의 전투력 때문에 궁금한(?) 소설이네요 ㅎㅎ

물감 2024-08-29 10:31   좋아요 1 | URL
읽는 동안 화조차 나지 않던 책이었어요. 이게 뭐지... 어쩌자는 거지... 그래서 뭐한 거지... 등등 이런 생각으로만 읽혀졌던 소설 ㅎㅎㅎㅎ 제 눈에는 아마추어만도 못한 사람이 쓴 것 같았습니다 하하하핳

구단씨 2024-09-02 21: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망작의 리뷰에 전투력이 차오르지도 않는다니, 진짜 망작인가 봅니다...
책 제목 보고 뭔가 갸우뚱 하다가 찾아보니,
제가 예전에 읽었.......
그런데 말입니다.
물감님 리뷰가 아니었다면 책 제목도 생각이 안 났을 것 같아요. ㅎㅎㅎㅎ
책 내용이 생각도 안 나는 건 너무 당연하고요.

근데 저도 종종 느끼는 게, 고전문학처럼 장르소설도 예전 작품이 재밌는 게 많은 듯해요.
그 흔한 말, 구관이 명관이라는 게 문학에서도 통하는 걸까요?

물감 2024-09-03 11:28   좋아요 1 | URL
ㅋㅋㅋ 보통은 나만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책은 누가 읽어도 별로다 싶은 평을 내려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기존 작품들을 흉내내려다 이도저도 안된 설정/장면들이 꽤 있고요. 근데 다 떠나서 재미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그런 생각도 합니다. 지금의 현대문학들이 언젠가는 또다른 고전문학으로 등극될텐데, 그때의 후손들은 이 작품들을 과연 좋다고 평가할까 싶은... 입장은 다 다를테지만요 ㅋㅋㅋㅋ 구관이 명관이란 말도 맞으면서 틀리지 않을까도 싶고 ㅋㅋㅋ
 
노생거 사원 을유세계문학전집 73
제인 오스틴 지음, 조선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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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님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한다. 주로 남녀의 썸씽을 다루는 작가라, 감수성 부족한 수컷들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남성 독자가 오스틴을 읽는다면 뭐랄까, 여성 회원들과 함께 플라잉 요가를 배우는 남정네의 부끄러움이 몽글몽글 솟아나는 것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나이 좀 들고 여성 호르몬이 많아진 다음에 읽어보기를 권하겠다. 아 글쎄, 소멸 직전의 연애 세포가 다시 살아난다니까요?


몰란드 가문의 차녀인 낭랑 17세 캐서린 양은 이웃집 부부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캐서린은 사교 활동으로 다양한 인연을 맺어가며 알지 못했던 세상을 배운다. 작중에서는 그녀가 다가간 T가문과, 그녀에게 다가온 S가문이 등장한다. 플러팅 폭격으로 캐서린 오빠와의 약혼이 확정된 S녀와, 이에 질세라 캐서린에게 냅다 들이대는 S남의 눈꼴 시린 콤비 플레이를 볼 수 있다. 그러다 T가문의 초청으로 노생거 사원을 가게 된 캐서린은 T남과 진도 나갈 생각에 막 좋아 죽는다. 헌데 그녀의 뾰로롱 샤랄라 한 망상을 가만히 보고있을 친절한 작가가 아니란 말씀이야.


딱 중반부터 노생거 사원의 배경으로 넘어간다. 책에서만 보던 사원의 매력에 푹 빠진 캐서린. 우쭐해진 T남의 부친께서 몸소 가이드를 해주는데, 그 친절함 속에서 느껴지는 쎄함은 대체 무엇일까. 결국 제멋대로 해석하여 부친의 명예를 먹칠한 캐서린과, 그 사실을 알게 된 T남의 애정 그래프가 급 하강해버린다. 그리고 얼마 뒤, 급히 어딘가로 떠나게 된 T가문은 캐서린을 집으로 돌려보낸다. 거의 뭐 내쫓기듯 사원을 나온 그녀는 T가문의 매몰찬 대우와, 돌변한 T부친의 태도에 눈물 수도꼭지가 고장 나버린다. 거기다 S녀의 바람으로 약혼이 깨진 오빠의 소식까지 더해져 집안 분위기는 아주 그냥 초상집이었다. 이런 말 해서 좀 그렇지만 진짜 볼만하더라.


<오만과 편견>처럼 이 작품도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원래는 활동 초기에 쓴 작품인데, 어쩌다 보니 한참 뒤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원제도 노생거 사원이 아니었다는데 어쩐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다 싶었다. 여튼 새내기 시절에 쓴 작품답게 풋풋한 맛이 가득해서 더 좋았다. 또한 <돈키호테> 2권처럼 작가가 화자로 개입해 이런저런 코멘트를 남기는데, 그게 그렇게나 통통 튀는 매력으로 작용할 줄이야. 서사의 재미 외에도 시대의 문화와 관습을 꿰뚫는 작가의 통찰과 비판, 풍자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한 가지. 오스틴의 작품에는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가 매번 나오는데, 한 번도 같은 패턴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잘 생각해 보면 여성 개인의 성장이나 홀로서기를 다루었지, 무턱대고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고로 남성들이여,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망붕토끼 가득한 연애물이 아니올시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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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4-08-22 0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을유에 <노생거 사원>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저는 제인 오스틴 작품을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두 개만 읽어봤는데, 사랑, 연애 소설은 자꾸 피하게 되네요. 늘 새로운 사랑의 패턴을 보여주는 제인 오스틴이라니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감님의 이번 리뷰도 통통 튑니다. 😆

물감 2024-08-22 10:48   좋아요 2 | URL
오스틴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남자는 나이 들어서 읽어야 하고, 여자는 어릴 때 읽어야 한다고요 ㅋㅋㅋ 여자분들이야 어려서부터 각종 드라마를 보고 자라기 때문에 다 커서는 시큰둥 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싶고요~
요즘 날이 더워서 머리가 잘 안도는 데 그럭저럭 글이 괜찮았나요? ㅎㅎㅎ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 2024-08-22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런 식으로 물감님이 어쨌든 예전보다 나이 들었다는 걸 드러내는 건가요? ㅋ 제인 오스틴은 저도 잘 안 끌리긴합니다. 전 요즘 광인이란 소설 읽고 있는데 진도 드럽게 안 나가는 소설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읽어 볼 생각이긴 합니다만 작가가 남자이기 때문이죠. 남자와 여자가 연애에 대해 쓰는 게 다르지 않나해서. 근데 둘중 하나겠더군요. 작가가 여성호르몬이 많은 사람이거나 독자인 제가 남자의 연애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거나. 근데 감히 추천은 못하겠더군요. 진짜 넘 디테일해요.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는데 계속 생각만하고 있으니. 거의 7백쪽 되는 거 같던데 못해도 150쪽은 쳐내도 될텐데 미치고 환장하겠더군요 이 더운 여름에 뭐하나 싶은게. 광인이 되어가고 있는 중. ㅠ

coolcat329 2024-08-22 15:18   좋아요 3 | URL
아 광인...작가가 위스키에 대한 전문지식 엄청 풀어놓은 소설이죠? 두꺼운데 글씨도 엄청 빡빡하더라구요. 재미가 없나요? 저도 읽을까말까하다가 맘 접었거든요.

물감 2024-08-22 15:48   좋아요 2 | URL
여성분들은 20대 중반만 되어도 오스틴을 안 챙겨보지 않을까 해요. 이유는 윗 댓글에 적었고요 ㅋㅋㅋㅋ 그리고 현시점에서 보면 유치한 점도 없지 않죠 뭐 ㅋㅋㅋ
여름은 진짜..... 무조건 재미, 재미만을 위한 독서여야 합니다. 요즘 제가 절실히 느낍니다요 ㅋㅋ 바로 앞전에 제가 프랑스 문학을 읽으며 느낀 인상을 지금 느끼고 계시군요 ㅋㅋㅋㅋ

stella.K 2024-08-22 15:55   좋아요 3 | URL
아, 쿨캣님, 일단 놀랍긴 하더라구요. 요즘에 이렇게 쓰는 작가가 있구나 해서. 근데 이 책이 평점이 높아서 조심스럽긴 한데 전 굳이 권하고 싶진 않아더라구요. 편집도 아쉽고. 따옴표를 따로 쓰지않아 말인지 생각인지 누가 말했는지 구분이 잘 안돼 읽다보면 피곤하더라고요. 그래도 마음이 가신다면 일단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고 나중에 구입을 하셔도 되지않을까 생각합니다ㆍ^^

coolcat329 2024-08-22 16:56   좋아요 3 | URL
아 그렇군요. 다시한번 마음을 잡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감님 말씀대로 여름엔 정말 재미난 거 읽어야해요. 저도 벽돌책 읽다가 후회했답니다.

페크pek0501 2024-09-03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을 오디오북으로 듣다가 완독을 못했어요. 재미가 없어서요. 종이책으로 읽으면 다를 것 같아요. 정말 이야기가 재미없는 책은 오디오로 듣는 데 집중이 안 돼요. 만약 몽테뉴의 책을 오디오로 들으면 집중이 안 되어 못 들을 거예요. 그러나 종이책으로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요.^^

물감 2024-09-03 17:43   좋아요 2 | URL
쿨캣님 댓글의 답변대로 성인 여성들은 이 책 재미없다고 느낄 겁니다. 아마 오디오북이라서가 아닐 거에요 ㅋㅋㅋ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심드렁했다는 평이 대부분이라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