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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의 작업실 - 김호연의 사적인 소설 작업 일지
김호연 지음 / 서랍의날씨 / 2023년 2월
평점 :
집 앞에 있는 매화나무에서 치토스 냄새가 난다. 그 덕분에 삼월의 봄날은 고소한 계절로 기억될 듯하다. 돌아보니 식욕이 줄어든지도 꽤 됐다. 작년에 그 일이 있고부터 지금까지 약 반년을 1일 1식 하고 있다. 그 한 끼마저도 살기 위해 먹을 뿐. 지금의 나를 붙들어매는 건 겨우 아메리카노 한 잔이다. 그리고 날마다 생각한다. 내가 붙잡고자 하는 것들은 왜 하나같이 멀어지고 떠나가는지를. 이래저래 해본들 결과는 다 정해져 있다 이건가. 생각의 과부하로 침몰해가던 그때에 한 연락을 받았다.
매번 잊지 않고 신간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작가님. 왜 내가 꼭 힘들어하고 있을 때만 맞춰서 책이 나오는 걸까. 그래, 이번에는 작가님 말씀대로 책에 대한 리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나의 글쓰기에 대한 얘기나 실컷 해야겠다. 본디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책을 정말 싫어했다. 삼십 대가 되고부터 바빠진 인맥들과 멀어지면서 시간 죽이기로 찾게 된 것이 독서였다. 솔직히 독서 자체로는 그리 흥미가 일진 않았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리뷰를 뒤져보다가 글 좀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십중팔구는 재미도 감동도 없는 글들이었지만 간혹 눈길을 확 사로잡는 내 스타일의 리뷰를 보며 나도 모르게 그런 글쟁이가 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해서 나의 ‘쓰기 위한 독서‘가 시작되었다.
내가 주로 읽는 분야는 문학, 특히 소설 쪽이다. 비문학을 리뷰해 봤자 뭔 재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 여튼 쓰기 위해 읽는 거라 독서 도중에도 틈틈이 메모 앱에다 쓸 말을 적어두고 나중에 다시 정리하고,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를 병행하느라 완독하기까지 시간을 너무 할애했다. 그렇지만 글쓰기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한 달에 한 권 읽는데도 아쉽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뭔가에 열중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했다. 겨우 몇 줄밖에 못쓰던 시절에도 나는 무조건 공개 글만 올렸고, 반응이 있든 없든 만족해하며 그 글쓰기 생활로 밑바닥의 자존감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글쓰기의 롤 모델도 있었고, 내가 원하는 문체나 감성도 정확히 파악했기에 방황 없이 순조로운 글쓰기를 즐겼으며, 그 시간들은 나의 메마른 광야 길에 플레이 리스트가 되어주었다. 글쓰기가 치유의 힘이 있다던데 정말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유행을 싫어했다. 나만의 선택이 남들과 겹치는 게 맘에 안 들었다. 그런 성향은 글쓰기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이제 막 글쓰기를 해보려던 때조차 남들과 똑같은 표현과 문체는 최대한 피하려 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그런 글은 절대 쓰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짧든 길든 문장과 글에는 작성자의 개성과 통찰이 담겨있어야 하고, 나의 롤모델이 했던 말처럼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남녀노소가 이해할 만한 글이어야 한다. 이렇게 저렇게 써보면서 나도 나름의 글쓰기 철학이 생겼는데, 딴 건 몰라도 무조건 쉬운 글을 써야 한다는 게 첫 번째 원칙이다. 위에서 말했던 십중팔구의 글들은 대부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퀄리티를 떠나 흥미조차 안 생기는 것이다. 기껏 공들여 써놨는데 정작 아무도 안 읽는다면 이 얼마나 허무한가. 비록 자기만족에 쓴 거라 해도 공개 글을 올리는 거라면 독자들 생각도 해가면서 써야 한다. 독자와의 호흡이란 전문 작가들한테만 해당되는 필수 값이 아니거든요.
이 독자와의 호흡이 뭔지를 몰라서 일방통행의 글을 쓰는 분들이 참 많은데, 간단하게 채팅하는 거라고 보면 된다. 지금 자신이 쓰는 글의 문체가 평상시 하는 말투인지 돌아보시라. 물론 전혀 똑같을 필요도 없지만 그 차이가 심하게 벌어진 것도 원인이 된다. 흔히 노래를 할 때에도, 말하듯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의 고유성을 하나하나씩 교정해나가는 것이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재창조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많은 글쟁이들은 이 글쓰기를 너무 신성시한다거나, 소위 있어 보이고 싶어 안달 난 태도를 하고 있다. 그런 계산적인 글쓰기 말고 평소 본인의 말과 생각들을 잘 정돈해서 대화하려는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한 번 물어보자. 당신은 본인이 쓴 글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내 손을 떠난 글들을 때때로 읽긴 하는가? 분명히 그 글들도 작성할 당시에는 갖은 애정을 담았었을 텐데 그리 쉽게 잊혀져도 상관없단 말인가? 나는 주기적으로 내 지난 글들을 읽어준다. 오만하게 들리겠지만 남들보다 내 글을 읽는 게 더 재밌긴 하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어떤 도피처였다. 늘 진심이었고, 그래서 지금 봐도 버릴만한 글이 하나도 없다. 내 글의 독자 1호는 나 자신이어야 한다.
대체로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유형이 글쓰기도 많이 한다. 혼자 있는 만큼 생각 또한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그 많은 생각들을 방치해두면 언젠가는 골병이 난다. 그래서 글로 정리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다만 치유하는 글쓰기에서 멈추느냐, 내 안의 우주를 확장하는 글쓰기로 넘어가냐인데, 이 후자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그만큼 글감도 많아서 좋겠다고들 한다. 그러나 세상과 단절된 이가 저만의 세상에서 내린 정의와 판단의 글은 위험하다. 좋든 싫든 남들과 섞여도 보고 부딪혔을 때라야 사회의 민낯과 인간의 본성과 자기 연민 등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고립된 글쓰기를 고집한다면 이 확장하는 글쓰기에 필시 한계가 온다. 본인이 쓴 글을 본인도 읽지 않는다는 것도 그 증거이다. 나 역시 생각의 저주에 갇힌 사람으로서, 열린 사고를 갖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세상을 배우고 있다. 내 맘 같은 사람은 보기 어렵고 현실은 여전히 외롭지만, 읽고 쓰는 삶이 계속되는 한 어떻게든 살아지겠지 뭐. 오랜만에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았던 시간이었다. 점심 뭐 먹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