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2-7 링컨 라임 시리즈 7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날도 덥고 그래서 친애하는 디버옹의 책을 집었다. 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읽은 게 2월이었으니까 약 6개월 만에 읽는다. 디버옹은 링컨 시리즈와 캐트린 시리즈를 번갈아가며 1년에 한 권씩 발표한다. 현재 국내에는 링컨 시리즈가 12편까지, 캐트린 시리즈가 3편까지 나왔는데 과연 작가가 완결을 계획하고 있는지가 의문이다. 50년생인 디버옹은 이제 예전만큼 집필 속도를 못 낼 텐데 작품의 세계관은 갈수록 커지고 있으니 말이다. 제발 완결 없이 타계하시는 일은 없길 기도한다. 차라리 모든 게 꿈이었다는 최악의 엔딩이라도 남겨주시길.


<콜드 문>은 링컨 시리즈 중에서 베스트에 손꼽히는 히트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소문에 너무 큰 기대를 해서였을까, 실망까지는 아니고 좀 심심하다고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을 매력적이게 하는 일등공신은 무시무시한 악역들이다. 주인공 링컨 라임이 사지를 못쓰는 장애인이므로 언제나 액션은 악역 담당이다. 디버는 추리소설처럼 범인 맞추는 플롯이 아니라 시작부터 범인이 등장해 주인공과 싸우는 대결 구도를 펼친다. 매 편마다 어나더 레벨의 범인이 나와서 링컨 일행을 가지고 놀았고, 이번 편에서도 그런 악역이 나왔다. 자칭 ‘시계공‘이라며 범행 현장마다 시계를 남겨두고 떠나는 범인. 시계의 역사나 기능에 대해서 해박한 범인이었지만 뭐랄까, 시계공이라는 캐릭터를 범행에 마음껏 활용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전 범인들과는 달리 연쇄살인도 안 하고 계획도 번번이 틀어지는 등 되게 포스가 없었다. 게다가 이전 범인들이 단독 플레이어였던 것에 비해 시계공은 늘 공범을 달고 다닌다. 그러면서 어떤 대단한 범죄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어서 이건 또 뭔가 싶어진다.


그나마 이번 범인은 준비성과 마무리가 빈틈없이 철저하다. 범인은 어디에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증거물이 없으니 라임의 추리력은 말짱 꽝이 돼버린다. 그래서 이번 편은 진짜 라임의 활약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파트너인 아멜리아 색스가 있지 않느냐 싶지만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이번부터 아멜리아가 형사로써 처음 정식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첫 담당이 무려 불법자들의 뒤를 봐주는 부패 경찰들을 잡아내는 일인데, 하필 그 명단에 순찰 경관이었던 부친이 포함되어 수퍼한 멘붕에 부딪힌다. 그런데다 시계공 사건까지 맡게 되어 몸도 마음도 붕괴된다. 주연들을 이렇게 안드로메다에 보내버리는 작가가 이해는 안 되지만 이쯤에서 혜성같이 등장한 캐트린 댄스 덕분에 어떻게든 이야기가 굴러간다. 캐트린 댄스는 ‘동작학‘으로 상대의 움직임, 눈빛, 음성 변화를 캐치하여 정보를 캐내는 일급 요원이다. ‘법과학‘의 라임과는 정반대 스타일의 수사관이지만 추구하는 목적이 같아서 두 사람은 금방 친해진다. 여튼 이번 편은 캐트린 댄스가 진짜 멱살 잡고 하드 캐리 했다고 봐야 한다. 범인을 만난 피해자들, 목격자들, 공범 용의자들을 대면하여 동작학으로 전부 까발리는 캐트린을 옆에서 구경만 하는 링컨 일행들. 아 정말 주인공들이 너무 밥값을 못한다. 캐트린에게 밥 두 그릇 주자.


예상하다시피 아멜리아가 맡은 두 사건은 결국 하나로 이어진다. 명색이 경찰 소설인데 슬슬 부패 조직이나 고위 인사들을 건드릴 때도 됐지. 문제는 그걸 아멜리아의 개인사와 엮어버리니 그녀의 비틀대는 멘탈이 사건에서 오는 긴장감보다 훨씬 도드라져서 액션/스릴러 장르의 성격이 모호해져 버렸다. 희로애락이 없으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 한쪽으로 비중이 쏠려서야 어떡하나 싶다. 주인공은 활약이 없고, 파트너는 의욕이 없고, 범인은 매력이 없고, 스토리는 한방이 없다. 이렇게나 심심하기 짝없는 작품을 그나마 살려놓은 게 캐트린 댄스인데, 왜 전 세계 독자들이 캐트린 시리즈를 별도로 만들어달라고 요청을 했는지 알만하다. 여튼 그건 그렇고 시계공은 주인공이 처음으로 놓친 범인이다. 시계공이 괴도 루팡처럼 주인공들을 가지고 놀다가 유유히 떠났다면 멋있기라도 했을 텐데, 라임에게 뒤통수를 맞고 님좀짱이라며 편지까지 써준 걸 보니 간지는커녕 되게 구질구질해 보인달까. 적을 놔준 건 나중에 또 나온다는 말인데, 이렇게 멋없는 캐릭터를 또 쓰시게? ......야레 야레.


사실 이번 편은 재미보다는 앞으로의 방향을 정립하는 징검다리 역할이 더 크다. 뛰어난 수사력을 자랑하던 라임이 적을 놓친 것, 동작학이라는 법과학 외의 수단을 인정한 것, 아멜리아가 경찰의 본분을 확립한 것, 아멜리아를 보조할 후임 경관을 찾은 것 등등. 이제 이들의 수사는 더욱 신중해지고 치밀해질 것을 여러 가지 테마로 선전포고한 셈이다. 시계공한테 잔뜩 체면을 구긴 라임의 캐릭터가 이번 일로 조금은 바뀔 것인지 궁금하지만 별 기대는 안 한다.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역시 기본은 하는 디버옹이시다. 할 수만 있다면 불로초 먹인 다음 평생 책 쓰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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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8-10 0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디버옹에게 불로초 먹이라는데 한표 던집니다. ^^

물감 2021-08-10 07:06   좋아요 0 | URL
ㅎㅎ역시 바람돌이님🙂

다락방 2021-09-01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트린에게 밥 두그릇 🤭🤭

물감 2021-09-01 23:46   좋아요 0 | URL
아니 다락방님, 언제 제 글들에 좋아요 테러를 하신거에요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9-02 07:45   좋아요 0 | URL
어제 와인에 치킨 먹으면서 제가 테러 좀 했습니다... 흠흠.
 
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어려서부터 좋은 직장을 얻기까지 쌔빠지게 공부하고 스펙 쌓는 고생을 한다. 직장인이 되고 나면 쌔빠지게 일하다가 번아웃이나 매너리즘으로 고생을 한다. 어느새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죽지 못해 사는 얼굴이 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유독 멀쩡하게 사는 듯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똑같은 환경에서 누구는 맨날 울상 짓고 누구는 활력이 넘치는 이유가 뭘까. 이런 사람들은 삶의 균형을 잡고 유지하는 비결이 자기 관리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업무와 개인 시간을 정확히 구분하고, 건강한 여가생활을 즐기며, 발전하기 위해 자기계발을 멈추지 않는다. 배움에서 즐거움을 얻고, 즐거움에서 열정이 흘러나며, 열정에서 활력 있는 삶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껏 내가 멋있다고 느꼈던 분들은 다 그런 타입들이었다. 비록 내가 좋은 어른까지는 못되더라도 멋있게 나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 하게 된다. 운 좋게도 이번에 만난 소설가는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어른이었다. 57년생 기자 출신의 일본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라떼 시절을 소설로 만나봤다.


‘러너스 하이‘라는 마라톤 용어가 있다. 뛰다가 육체의 한계 지점을 넘어섰을 때 엄청난 쾌감이 뇌를 지배하게 된다고 한다. ‘클라이머즈 하이‘라는 암벽등반 용어 또한 등반 중에 흥분이 최고조가 된 상태를 뜻한다. 러너스 하이가 선수를 계속 뛰게 만드는 반면, 클라이머즈 하이는 흥분이 풀린 뒤에 오는 공포감으로 온몸을 마비시킨다. 그렇게 위험한데도 산에 목숨 거는 산악인들의 자부심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주인공 유키. 그는 등산 광인 직장 동료와 함께 죽음의 산을 오르기로 약속하지만 당일에 여객기가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나서 약속 장소에 가지 못했다. 기자이자 신문사 직원인 그는 여객기 사건의 총괄을 맡게 되어 정신이 없다. 그리고 들려오는 등산 동료의 식물인간 소식. 어째서 나쁜 일들은 다 한꺼번에 일어나는가. 누가 나 대신 울어주길 바라는 중년 남자의 외로운 투쟁이 시작되었다.


굵직굵직한 서사들을 다루고 있어 리뷰가 영 쉽지 않군. 강렬히 휘몰아치는 상황들에 비해 분위기는 다소 차분하여 폭풍전야 같은 기분이 든다. 클라이머즈 하이가 딱 이런 기분이려나. 매번 느끼는 건데 일본의 사회파 거장들은 이런 연출을 기막히게 뽑아내는 감각이 타고난 듯하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N각 관계의 달인이라면, 요코야마 히데오는 가히 장인 수준이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의 올드한 작품이지만 촌스럽기는커녕 겁나게 스타일리시하다. 작가가 기자 출신이라 그런지 나이를 먹어도 감각이 되게 예리하다. 이런 숙성도 높은 글맛은 언제라도 환영이다. 혹시 내 취향이 올드한 걸까...


실제 했던 여객기 추락사고를 다루고 있어 현장감이 넘친다. 주인공은 사건 총괄을 맡은 후로 직원들과의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 자신의 기사가 실리지 않자 유키를 원망하는 부하들, 신문 1,2면에 여객기 내용만 가득하여 윽박지르는 타부서들, 추락사고를 돈벌이의 기회로 삼는 간부들, 이번 사건을 평생의 훈장으로 삼으려는 교활한 직원들. 모두한테 미운털 박힌 유키는 시궁창 속에서도 기자의 본분과 사명을 다하려는 참된 언론인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을 위해, 고생하는 후배들을 위해 옷 벗을 각오로 상부와 싸워가며 사건을 지휘한다. 고생하는 후배들과 시기하는 윗선들 사이에서 멘탈 바사삭 중인 그에게는 레드불이 절실해 보였다.


밖에서는 이렇게나 인간적이지만 집에서는 전혀 아니었던 유키. 부친 없이 자란 유키는 어떻게 아버지 노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해 권위적으로 가족을 대해왔다. 그리하여 아들과 소원해진 그는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만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아들에 대한 애정은 식물인간이 된 동료의 아들에게로 향한다. 유키는 자신을 친부처럼 따르는 동료의 아들을 볼 때마다 친아들이 생각나 마음이 저리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힘든 신문사에서 있다 보니 서투른 인간관계는 전혀 나아질 낌새가 없었다. 차라리 은퇴해서 가족들과 쭉 있고 싶지만 형편상 그럴 순 없었고, 그랬다간 지금의 관계들마저 무너질지도 몰랐다. 부하들 지휘하고 신문 제작하고 조직을 상대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어도 아들이 계속 생각나는 건 어째서일까.


그는 동료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알게 되었고, 등산을 왜 그토록 좋아했는지, 친하지도 않은 자신을 파트너로 원했는지도 깨닫는다. 여객기 사건이 끝나고 수년이 흐른 뒤 동료의 아들과 함께 죽음의 산을 오르는 유키. 내려가기 위해 산을 오른다던 동료의 말을 약간이나마 이해하는 그였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 산에 오르고, 낚시를 하고, 바둑을 두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해서 답을 얻은 사람들이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멋있게 늙어간다. 왜 클라이머즈 하이가 제목일까. 흥분이 지나가고 밀려드는 공포를 조심해야 하는 건 인생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오르는 것만 생각지 말고 내려갈 것도 잘 준비하여 인생의 말년까지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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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러너스 하이 경험해 보고 싶은 1인이에요~ 근데 뛰질 않으니~ 하하하하!! 올라갈 때 내려오는 것을 생각하라는 말 잘 새겨야겠어요^^

물감 2021-08-03 23:59   좋아요 2 | URL
저보다 나으신데요?ㅎㅎㅎ
저는 침대위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새파랑 2021-08-04 1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문단이 인상적이네요. 러너스 하이만 알았는데 클라이머즈 하이도 있군요. 오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려가는 건 더 중요한거 같아요~!!

물감 2021-08-04 11:59   좋아요 2 | URL
올라간 적도 없는데 내려올 준비만 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도 인상적이었어요ㅎㅎ 새파랑님은 쭉쭉 올라가시고 조심히 내려오십시오^^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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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는 한때 <82년생 김지영>으로 전 국민을 들썩거리게 했던 논란의 아이콘이다. 나는 일부러 그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남들이 다 말해줘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이 왜 그렇게 비난을 했는지도 잘 안다. 나는 원래 좀 꼬인 사람이라 온통 칭찬글로 도배된 작품들은 의심부터 하고 본다. 그 반대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욕먹는 포인트를 알고는 있지만 감정이 일방적인 사람이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안 읽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이 작가의 신간이 나왔고, 나는 출판사의 서평 제안에 망설이지 않았다. 정말 논란의 작가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전을 정독하듯 한 장 한 장을 차분하고 신중하게 읽었다.


정말이지 모든 이야기가 너무도 좋았다. 나는 저자의 따스함에 물들었고, 그 안에서 작은 인류애까지 느꼈다. <82년생 김지영>처럼 여성의 서사들을 한 권으로 엮었다. 할머니부터 어린 소녀까지 주인공이 되어 들려주는 속 사정은 멀쩡한 사고를 가졌다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뿐이었다. 물론 이야기 어딘가에는 논란을 삼을만한 장면도 더러 있다. 남녀를 싸우게 하려는 글이 아님에도 꼬투리를 잡는 사람들은 인물을 그저 생물학적인 남자와 여자로만 인식을 해서 그렇다. 성별을 빼고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을뿐더러, 저자의 의도나 작품의 주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것이다. 모든 편마다 나이대에 겪는 애환과 고민을 담은 소설집인데 페미니즘보다는 휴머니즘에 가까워 나는 그렇게 좋았었나 보다.


등장인물마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다 보니 누군가는 또 남녀 갈등 조장한다고 할지 모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봐주길 바란다. 단편집 특성상 모든 내용을 리뷰할 수 없으니 공통된 점들만 짚어보자면, 작가는 잃어버렸던 혹은 잊고 있었던 자아를 되찾는 내용들을 다루었다. 인간은 혼자가 두려워서 관계를 맺고 집단에 소속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나를 알아가고 동시에 나를 잃는다. 그래서 관계를 정리하고 다시 혼자가 되어 나를 찾는다. 속박의 관계가 단절되고서야 내가 이제껏 음지에 있었음을 깨닫고 양지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자유와 평등은 생각만큼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오로라의 밤>은 남편과 사별한 아내와 시어머니가 과감히 해외여행을 나선다. <오기>는 악플러에게 시달리던 소설가가 자신의 상처를 작품화하여 두려움에 저항한다. <가출>은 집 나간 아빠의 권위에서 벗어난 엄마가 이제야 큰 소리를 뱉는다. <현남 오빠에게>는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사육해오던 남친에게 이별을 선포한다. <여자아이는 자라서>는 성희롱한 반 남학생들의 문제를 통하여 모녀간에 세대 차이를 극복한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참고 살았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눈에 보이는 인물들의 감정선만 따라가지 말고, 관계에서 벗어난 뒤 찾아오는 변화에 더 집중하길 바란다.


산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 이상 모든 관계를 칼같이 자를 순 없다. 하지만 누군가로 인해 자신이 희미해지고 있다면 그게 건강한 사이가 맞는지 돌아봐야 한다. 만남이 제한되는 이 시국에 방치했었던 나를 돌아보고 홀로서기를 연습해보자.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어려운 일도 직접 해결해보자. 어느샌가 스스로를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여태 우리가 써온 것에는 내가 없었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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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든 읽다 보면 글쓴이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 저자의 성격, 가치관, 성장 배경, 직업, 경험들이 결과물의 인풋이기 때문이다. 대개 글 좀 쓴다 하는 사람은 이 양념들을 잘 버무려서 맛있는 글을 써내곤 한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재능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므로 부러워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누구든지 살아온 방식에 따라 고유의 글맛을 가지는 법인데,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떤 자극을 받으면 몇 배나 되는 능력을 발휘하곤 하는데, 트라우마는 순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극을 주기 때문에. 강력한 자극은 넓고 깊은 생각과 사고를 갖게 해준다. 트라우마가 썩 좋은 경험은 못되지만 나는 확실한 효과가 있었는데, 많은 글쟁이들의 선망인 헤밍웨이도 나와 같은 케이스 중에 한 명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가 군인이고 기자였을 때 온갖 끔찍한 상황과 더러운 꼴을 보고 들으며 받은 자극들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단편 몇 가지와 중장편과 노벨상 연설문,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여행 에세이가 담겨있는 종합선물세트이다. 헤밍웨이의 팬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고, 헤밍웨이를 알고 싶은 책린이들에게도 입문용으로 알맞은 책이다. 여러 가지가 실려있지만 <노인과 바다>가 실려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별 다섯 개이다. 그 작품으로 수상하기도 했고, <노인과 바다>가 헤밍웨이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드보일드 문체의 원조인 그의 작품들은 장편도 단편처럼 빠르게 읽힌다. 이 책에는 그의 문체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일화도 담겨있으니 꼭 읽어보시라. 깨알재미가 쏠쏠하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장편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단편소설의 대가라고 한다. 짧은 호흡을 싫어하는 나라서 헤밍웨이의 단편은 이 책으로 처음 읽게 되었는데 장편만큼이나 무게감이 있어서 놀랐다. 그런 무게감이 모든 글에 담기는 이유를 나는 작가의 관심사에서 힌트를 얻었다. 헤밍웨이의 관심사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생명‘이다. 헤밍웨이는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이 작품에 실린 소설들과 그 외의 작품들도 전부 생명, 즉 삶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쓴 톨스토이와는 결이 다르다. 톨스토이는 인간에게 깃들어있는 본질을 꼬집었고, 헤밍웨이가 다루는 것은 존엄에 훨씬 가깝다. <노인과 바다>를 예로 들어보자. 청새치와의 사투에서 노인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상황에서도 노인은 자신이 어부임을, 그 위험한 낚시질로 자신의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던 노인이 곧 작가이고 그의 평생 관심사가 아니었을까. 이걸 염두에 두면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이 대강은 이해가 될 것이니 참고하시길.


사람들이 고전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품에서 무슨 교훈이나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해서이다. 그런 부담감을 버리고 헤밍웨이의 책으로 고전에 입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절대 글을 어렵게 쓰지도 않을뿐더러 복잡한 내용을 다루지도 않는다. 솔직히 다른 고전 작가들에 비하면 헤밍웨이는 아주 양반이다. 그가 줄곧 얘기하는 인간의 존엄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독자가 많아지길 바란다.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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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4 0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좋아하는데 이 책 소장하고 싶어지네요. 책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줘도 좋을것 같아요. 헤밍웨이는 단편도 좋고 단편도 좋고 👍👍

물감 2021-07-24 07:39   좋아요 1 | URL
가격이 좀 쎄긴 하지만 값어치하는 선물이 될거라고 장담합니다. 굳이에요🙂
 
페이즈 2 - 굶주린 사람들
마이클 그랜트 지음, 공보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1편에서의 대전투 이후 3개월이 지났다. 페이즈 구역의 아이들은 점점 식량이 바닥이 나고 있어 비상사태를 맞게 된다. 얼마 없는 식량을 마을 전체 인원에 소량 배분한다 해도 일주일 정도면 끝날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채소밭에는 식인 벌레들이 득실거렸다. 어떤 아이들은 공복감 때문에 먹은 후 곧바로 토해버려 음식 낭비가 끊이질 않았다. 아이들의 불만은 주인공 샘 일행에게 쏟아졌고, 읍장으로써 온갖 뒤치다꺼리를 맡던 샘은 점점 번아웃이 온다. 한편 지난번 전투에서 패한 케인 일행이 마을 전체의 전기를 끊어버리고, 방사능 발전소를 찾아가 우라늄을 훔쳐내려 한다. 케인 일행을 저지하느라 주인공들이 마을을 비운 사이에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난다. 초능력이 없는 아이들이 합심해서 초능력자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것이다. 외부에서는 적들의 침공이, 내부에서는 아군의 비협조가 반복되는 상황. 모두가 굶주려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고, 샘은 이 모든 것들이 이제 지겹기만 하다.


큼직한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어 숨 쉴 틈이 없다. 일단 초능력자들과 정상인들의 사이가 너무 벌어져서 주인공들의 맘고생이 극에 다다른다. 정상인들은 주인공들이 식량 배분해주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위에서 식량을 독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적의 침략을 못 막은 것도, 마을에 전기가 끊어진 것도 전부 샘 일행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정상인 아이들. 굶주림으로 폭력성이 깨어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심지어 샘 쪽이나 케인 쪽이나 배고픔으로 아군을 배신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이성을 놔버리거나 놓기 직전인 상태의 아이들이 끝없이 나온다. 이렇게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작품은 처음이다.


케인 일행이 우라늄을 빼내어 ‘어둠‘에게 갖다 바치려 한다. 이 페이즈 사태의 중심에는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어둠‘이 있었고, 몇몇 초능력자들의 정신을 지배하며 명령을 내리고 있다. 어둠에게 놀아난 케인과 샘 일행은 지독한 중상을 입어가며 어둠과 맞선다. 적과 싸우면서도 샘의 머리에는 마을의 폭동과 식량문제와 다친 부하들의 생각으로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나도 연약한 어린애에 불과하다며 리더고 뭐고 때려치우겠다지만 머리 좀 식고 나면 마을 꼬라지를 눈뜨고 볼 수가 없어서 괴로운 주인공. 또한 자신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아이들을 외면하기도 어려워하는 어린 친구가 얼마나 짠한지. 원래 성장물 주인공은 굴려야 제맛이라지만 중딩한테 이건 너무 한다는 생각만 든다. 근데 겁나게 재미있어서 어쩐지 나 변태 된 기분...


총 6편의 페이즈 시리즈는 국내에 2편을 끝으로 더 이상 안 나오고 있다. 드라마 제작으로 만나는 게 더 빠를 듯하다. 여하튼 이 쪄죽을 듯한 더위 속에 스피디한 독서를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완결을 볼 수 없는 작품이므로 리뷰도 걍 대충 썼다. 읽었다는 데에 의미를 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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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1 0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충쓰셨다고 하셔도 완전 재미있네요^^ 완결을 볼 수 없는 작품이라니 왠지 서글픈 기분이 드는군요 😔

물감 2021-07-21 07:03   좋아요 2 | URL
마케팅만 잘했어도 잘 팔렸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소량이라도 전권 출간을 해줬다면 중고책이 돌아다닐텐데 아쉬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