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통하는 마음 - 제7회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
전우진 지음 / 마카롱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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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은 나와 맞지 않아서 거의 손대지 않았으나 이제는 편식하지 않기로 했다.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는 한국 고유의 고리타분함을 찾아보기가 힘들던데, 과연 문학계도 세대교체가 되긴 했나 보다. 암튼 내년에는 국내 문학을 많이 읽는 것이 목표이다. 이번 리뷰의 책은 있는 줄도 몰랐던 교보문고 문학 시상제의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리고 내가 식상해 하는 타임슬립 드라마였다. 개인적으로 먼 과거로 가는 설정보다 짧은 시간을 돌리는 편을 선호한다. 능력 발동시 곧바로 리스크가 생기는 후자의 경우가 전자보다 몰입이 잘 되기 때문. 단점은 능력을 쓰는 횟수가 잦다 보니 같은 장면 반복해서 틀어주는 예능 프로처럼 느껴진다는 거. 그래도 대상작이면 이름값할 거라고 믿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 스토리는 좋았는데 주인공이 밥맛이다. 읽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나는 추천하지 않겠다.


주인공 정숙은 손바닥을 찔러 관통하면 15분 전으로 시간을 돌리는 능력자이다. 약간의 과거로 돌아가도 손의 통증은 그대로 남기에 어지간해서는 능력 없이 살아왔다. 남편의 퇴직금으로 편의점을 차린 그녀는 초 잘생긴 신입 알바생하고 바람난다. 난생처음 겪는 사랑 감정에 정신 못 차리는 정숙은 알바생 때문에 여러 번 손을 뚫고 시간을 돌린다. 그렇게 사랑에 눈먼 정숙은 알바생의 먹구름을 보지 못했고, 소나기에 온몸이 젖었을 때쯤 정신이 든다. 그러나 더 큰 먹구름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숙은 주책의 아이콘이다. 그리고 감정 컨트롤이 전혀 안되는 사람이다. 이기적이다가 급 인간적으로 변하고, 화났다가 금방 시들어버리는 참 피곤한 유형이다. 그 때문에 온갖 해프닝을 겪는 그녀가 큐피드 화살까지 맞았으니 책 제목을 ‘정숙은 못 말려‘로 수정해야 할 판이다. 알바생과의 만남으로부터 가족보다는 자신을 위한, 아니 알바생을 위한 삶으로 전환한 정숙. 그녀의 늦바람을 보면서도 그러려니 한 것은 나름의 소녀감성 때문이었다. 순수함과 순진함 사이에서 나온 그녀의 행동들이 그나마 내 이해 범위 안에 있었다. 그러나 풋풋한 감정들이 끈적끈적한 더티 러브로 바뀌면서 이해 범위를 넘어섰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작품의 모티브인 듯? 심지어 남편의 외도로 가정이 무너진 미용실 언니를 매일같이 보고서도 외도를 한다는 게 문화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괜히 찔려가지고 남편에게 짜증과 면박 주기를 반복하는 정숙. 그래도 중반까진 인간미가 있었는데 어쩌다 인성 파탄 비호감이 되었을까.


늦깎이 사랑꾼으로 거듭난 정숙은 알바생 때문에 수차례 손을 찌른다. 문제는 본인과 링크되어있는 딸에게도 고통이 간다는 사실. 엄마가 손을 찌를 때마다 딸은 갑자기 찾아든 고통을 참아야 했다. 그러지 말라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숙은 시간을 돌리며 제 갈 길을 간다. 그러다가 미용실 언니에게 외도를 들키고, 유부남과 연애하는 언니의 딸을 알게 되고, 갑자기 임신 고백을 하는 정숙의 딸과, 편의점에서 터진 대형사고까지. 잇따라 발생한 사건들에 정신줄을 놓다가 마침내 콩깍지가 벗겨진 정숙. 이제 알바생은 퇴장하고, 정숙의 가족은 비정상회담을 시작한다. 아내의 바람을 알고도 모른척해왔던 남편은 정숙이 반성하길 바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나 반성하기는커녕 끝까지 당당한 그녀를 보면서, 이건 정숙보다 작가가 욕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인데 성깔을 고쳐주던가, 아님 참교육을 해주던가 뭐라도 했어야지. 아니면 반전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나. 더 허무했던 건 내쫓자마자 바로 떠난 알바생이었다. 왜 작가는 그렇게나 비중 있는 인물을 단칼에 잘라버린 걸까. 배드 엔딩이면 캐릭터를 막 다뤄도 되는 건가.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다. 혹시나 제 글을 읽고 계신다면 댓글 좀 달아주시길.


이 작품이 왜 스토리 부문에서 대상을 받았는지 알겠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 지루할 새가 없는 플롯이다. 개인적으로 작가 본인을 완급조절 담당 캐릭터로 만든 설정이 신선했다. 작품 속 우진은 실제 작가의 프로필과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칠칠맞은 정숙을 잡아주기도 하고, 알바생의 묘한 냄새를 감지해내는 등 분위기가 고조될 때면 한 번씩 등장해 교통정리를 해준다. 그런 역할이구나 하고 넘길 수 있지만, 우진의 개인사를 통해 작가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떤 심정으로 버텨왔는지를 알게 한다. 이 분도 고생을 많이 하셨더만. 여튼 늦게나마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차기작은 제발 멀쩡한 캐릭터로 커밍해주세요. 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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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시리즈의 비밀
J.M. 에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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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번에도 풍겨대는 병맛 냄새에 끌려서 골랐건만 이건 뭐 순한 맛도 아니고 맹맛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냄새와 맛이 절대 비례하지 않는 델리만쥬같은 작품이랄까. 나는 B급 갬성을 정말 좋아하는데 어째 읽는 책마다 항상 실망하게 된다. 이왕 코믹 작을 쓸 거면 좀 제대로 망가져주고 해야 작품이 사는데, 늘 보면 적당히 웃겨주고 슬그머니 뒤로 내뺀다. 이렇게 수많은 B급 문학 작가들이 체면 생각해서인지 제대로 된 똘끼를 보여주지 못하더라. 그 바닥 사람들만의 고질병인가. 하여간 그 증상이 이 책에서는 유독 심했는데 이유는 뒤에 가서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줄거리부터 적어본다.


주인공 펠릭스는 하루 세 편의 아류 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블로거이다. 직업도 없이 방구석에서 취미생활만 전념하는 그는 오늘도 가족들의 무시 대상을 담당중이다. 어느 날 그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하자는 제작자를 만나고서 시궁창 탈출 예정에 들뜬 주인공. 기쁨도 잠시, 웬 형사가 찾아와 그를 살인범으로 지목한다. 놀랍게도 그의 시나리오가 실제로 일어난 살인사건이란다. 썩은 동아줄에 매달려 부들거리는 펠릭스는 이대로 추락할 것인가.


영화계에서는 저급한 아류 영화들을 Z 시리즈라 부른다. 그런 영화의 광인 1급 루저 펠릭스는 본인의 남다른 취향을 자부한다. 한데 그 자부심이 불씨가 되어 타인의 시나리오를 뺏고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게 된다. 이런 소설들은 대부분 비슷한 컨셉과 방식으로 인생을 말아먹는 듯하다. 여튼 초반까지는 작가의 B급 갬성이 나름 잘 먹혔다. 적당한 유머와 적절한 연출, 그리고 독자와의 소통 시도까지 다 좋았다. 그런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비굴한 작가 멘트가 중간중간에 계속 등장한다. 재미없어도 이해해달라느니, 딴 길로 새서 죄송하다느니.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독자에게 굽신거리는 게 정말 보기 싫었다. 미리 경고했으니까 독자들 실망에 본인은 잘못 없다 말하고 싶은 건가? 작품의 퀄리티에 실망하는 것보다, 자신의 작품을 싸구려로 만드는 그 태도가 더 실망스러웠다. 어차피 작품성으로 승부할 것도 아닌데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즐기면 되지, 왜 자꾸 돌 던지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하시능교?


그의 영화 시나리오에는 요양원에서 실종된 노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내용은 이내 현실이 되었고, 노인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그러나 형사가 말하길,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살인사건을 실종사건으로 공개했단다. 죽은 노인들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출한 채로 죽어있었고, 범인은 병원 관계자이며 영화광으로 판단했다. 하여 주인공은 영화광의 시각으로 단서를 잡아달라는 수사 협조를 부탁받는데, 사실은 의심스러운 주인공을 같은 편으로 만들어서 꼬리를 잡으려는 속셈이었다. 형사의 속셈도 모르고 미끼를 물어버린 주인공은 계속 내빼다가 점점 추리에 집착하여 형사를 난처하게 만든다. 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 플롯 아닌가? 그냥 추리소설로 갔어도 좋았을 것 같은데 대체 왜 살리지도 못할 코믹물을 고집하시능교? 


몇 없는 캐릭터들이 전부 매력 넘친다. 먼저 늘 무게 잡는 형사의 허당 미가 눈에 띈다. 항상 탐정소설의 수사 법칙을 따라 하지만 건지는 게 없어 수사기록은 점점 유머 모음집이 된다. 그의 파트너이자 아들은 약간 모지리인데, 아들의 수사 일지는 부친보다도 더하다. 미행하다 삼천포로 빠지고, 길을 잃어 타국으로 가게 되는 등 전혀 형사답지 못한 모습들로 독자를 웃겨준다. 그리고 주인공을 무시하고 깔보는 아내와 친누나는 요양원에 직접 찾아가 노인협회 행세까지 해가며 범인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발연기는 정체를 감출 수 없었고, 노인들의 원성만 산다. 이렇듯 정신 산만한 인물들로 구성돼있지만 어떻게든 이야기가 굴러간다. 매력적인 캐릭터들로 얼마든지 화끈한 플레이를 보여줄 수 있겠고만, 작가님은 뭐가 그리 겁나서 MSG를 넣었다 말다 하시능교? 


사실 이 작품의 주연은 노인들이다. 대부분 나사가 풀려있지만 프라이드만큼은 대단한 요양원 노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살인사건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도 분량이 제법 많다. 이유는 작가 후기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작가는 이 작품을 빌려 오늘날의 노인문제를 말하고 싶어 했다. 그들도 한때는 열정 가득한 청년이었으나 은퇴하면서 열정까지 강제로 밀려났다. 늙었다는 이유로 사회에 설자리를 잃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뜨거운 노인들. 이 책은 그런 노인들이 무능력, 무 쓸모가 아님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나름 건재한 신체능력과 생식기능과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아무튼 작가는 버려지고 소외된 노인이 갈수록 느는데 이대로도 괜찮은가 하는 화두를 유쾌함 속에 담아냈다. 메시지는 진중하지만 작품은 절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눈치 못 채고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태반일 듯. 언젠가 나도 나이 들면 버려질 텐데 그 소외감을 견뎌낼 수 있을까 싶네. 그때도 지금처럼 독서하고 글 쓰고 있겠지 뭐.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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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0-12-31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2021년 새해 연하장 서재에 놓고 가여 ㅋㅋ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물감 2020-12-31 22:52   좋아요 1 | URL
ㅎㅎㅎ감사합니다. 새해 복많이받으세요!
 
빌러비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6
토니 모리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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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을 통으로 날려먹었다. 낮에는 직장 일로, 밤에는 집안일로. 그렇게 독서활동이 끊어진 한 달 동안 간신히 한 권 읽었는데, 하필이면 집중력을 배나 더 요구하는 작품이라 낭패를 봤다. 사실 나는 책을 못 읽는 것보다 글쓰기를 못해서 감각이 둔해지는 게 더 괴롭다. 보통은 독서를 하면서 리뷰에 쓸 말들이 저절로 떠오르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심지어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영감이 끊어진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여서 이제 나의 글쓰기는 끝나버린 걸지도 모른다는, 들어본 적도 없는 슬럼프에 갇혀버렸다. 그래서 지금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한데, 일단 손이 가는 대로 써보도록 하겠다.


토니 모리슨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흑인 여성작가다. 대단한 건 알겠는데 미안하게도 나한테는 흑인문학이 다 거기서 거기이다. 억압, 학대, 폭력, 차별이 기본 베이스라서 누가 썼든지 똑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고만고만한 흑인문학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 특유의 헤비한 감성이 나랑은 안 맞는달까. 그런데도 평점이 겁나 높은 책을 보면 괜히 또 궁금해져서 읽게 된다. 내가 봐도 참 모순이다. 이번 작품도 전형적인 흑인문학이었는데, 진심 가독성이 꽝이어서 산소호흡기가 필수였다. 근데 잘만 읽고 극찬하는 남들을 보노라면 허접한 내 독서 수준에 한숨이 절로 난다. 아직도 나는 갈 길이 멀다.


노예 신분을 청산하고 딸과 함께 살아가는 세서. 그녀를 찾아온 노예 시절의 남사친, 폴디. 그리고 이들 앞에 뿅 하고 나타난 의문의 처녀, 빌러비드. 이들의 불편함 가득한 동거가 시작되고, 빌러비드를 통해 세서와 폴디는 지금껏 덮어둔 과거의 잘못과 트라우마로 고통받는다. 자유를 얻고도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사람, 그리고 소외감 느끼는 딸 덴버. 세서의 가족을 왈칵 뒤집어 놓은 빌러비드,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꽈.


기본 소개는 이렇지만 절반 이상의 내용이 과거에 머물러있다. 소개된 흑인들의 수난이 너무 많아서 뭐부터 적어야 할지를 모르겠다. 제일 먼저 백인들의 노리개가 되어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흑인 여성들이 가장 가슴 아팠다. 아비가 없는 노예의 자식들은 백인의 사유 재산이 되어 물건처럼 사고 팔렸다. 흑인 남성들은 이유 없이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다. 거리에는 신체의 일부가 없는 노예의 시신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숨이 붙어있는 노예들은 가축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갔다. 이렇듯 쉴 새 없이 학대 당한 흑인들의 삶은 세대를 걸쳐서 이어진다. 이 가운데서 임신한 몸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도망친 주인공 세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나긴 노예 생활에 지친 세서 가족은 철저한 계획 하에 차례차례 도망친다. 아들들을 먼저 보내고, 당시 막내였던 빌러비드와 탈출하던 세서는 백인들에게 들키면서 엄청난 결단을 내린다. 나는 괜찮지만 딸까지 노예가 되는 건 참을 수 없었던 세서는 제 손으로 자식의 생명을 끊는다. 이 끔찍하고 비정상적인 엄마의 사랑 방식이 꼭 틀렸다고 봐야 할까. 최근 개그우먼 모녀의 동반자살 사건이 있었는데, 자식을 따라간 모친의 위대한 사랑에 감명을 받았었다. 그와 같이 세서의 모성애도 무조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직접 죽였던 딸의 영혼은 갑자기 여인의 몸으로 세서 앞에 나타나서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죄책감에 괴로운 세서는 빌러비드의 막무가내 행동과 요구에 전부 맞춰주었다. 몸은 야위어가고 정신도 피폐해진 세서.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고전문학은 읽을 때마다 새롭고 느낀 바가 다르다고들 한다. 그래서 처음엔 별로여도 재독하면 또 다를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데, 솔직히 이 책은 재독할 엄두가 안 난다. 이 정신없는 플롯과 뒤죽박죽 문법들에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가 않다. 정말로 난 내가 난독증이 온 줄 알았다. 한 문단 안에서도 앵글이 수시로 바뀌므로 집중하지 않으면 나처럼 수렁에 빠져버린다. 여하튼 내 타입도 아니고 해서 그냥 넘어갈까 했는데, 타 리뷰들을 보니 아무래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막막했는데 어떻게든 리뷰를 끝마쳤다. 진짜 이번 리뷰는 의식의 흐름 속에 영혼을 모조리 갈아 넣었다. 어서 커피나 빨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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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1-30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저도 내년에 도전해보고 싶네요. 아주 예전에 제목만 보고 <재즈> 사서 읽다가 몇 페이지 읽지도 못하고 포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완독하신거 축하드려요~~🎉

물감 2020-11-30 19:25   좋아요 2 | URL
이 책은 진짜 도전이란 말이 어울립니다... 너무 고생했거든요ㅎㅎㅎ 도전해보고 후기 꼭 남겨주세요^^

나비종 2020-11-30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에는 좀 나아질려나 했더니 역시나 말일에 몰아쳐서 글을 쓰게 되었네요.^^;; 어쨌든 금요일부터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쓴 덕분에 무사히 해냈습니다.ㅋㅋ
다른 모임 도서가 워낙 묵직했어서 퇴근 후 두어 시간 넘게 근 한 달을 매달려서 겨우 완독하고 이 책은 금요일부터 폭풍 질주를 했어요. 허술하게 넘기기에는 너무 묵직한 주제라 잠들면서도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답니다.^^;
저 역시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는 목적이 커서 이러다가는 한 달에 한 편의 리뷰도 쓰기 어려울것 같아 간간이 시 몇 편 쓴 것이 전부였죠.

읽은 책이 별로 없어서 흑인문학은 처음 접한 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예전에 읽었는지 명확하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경험과 생각의 폭이 조금씩 넓어지면서 같은 책을 읽는다해도 매번 새로운 기분이 들어서 말이죠.ㅎㅎ
짜증나는 가독성이 아니라서 저는 그럭저럭 읽었습니다. 마감에 맞춰 스퍼트를 내다보니 저도 모르게 내달린 걸 수도 있구요.

저는 흑인 남성의 삶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가너‘씨 농장의 남자 5명의 이름부터 그렇더군요. 이름은 폴 A, D, F였잖아요. 그리고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너씨의 소유임을 나타내는 성을 붙였구요. 디가 수용소에서 개처럼 목에 사슬을 걸고 구덩이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많이 답답했습니다.
이름을 붙일 때도 작가는 매우 신중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덴버가 세서의 출산을 도와주었던 백인여자아이의 성이잖아요.

모성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더군요. 물감님의 생각처럼 저 역시 누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과 이전의 수많은 서사를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게 실화였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이 아팠구요.

정신없는 플롯과 뒤죽박죽 문법들을 소설 사이 사이에 들어간 추임새로 간주하고 읽으며 그런대로 넘어갔습니다. 이성적인 정신으로 읽다보면 휘휘 돌다 꼬로록 빠져버릴 것 같아서요.ㅎㅎ
어떻게든 의식의 흐름 속에 영혼을 모조리 갈아넣은 리뷰를 ㅋㅋㅋ 잘 마치셨군요.
올해의 마지막 책이 집어던져 버리고 싶을 정도의 작품이 아니라 다행인 거죠?^^

물감 2020-12-01 13:56   좋아요 3 | URL
이걸 질주해서 읽을 수 있다니, 대단하십니다ㅎㅎ 저도 이번엔 말일되어서 다 썼거든요. 뭔가 마감에 시달린듯한 기분이었어요. 이런 숨막힘을 나비종님께선 매월 겪으셨겠군요... 역시 내공이 엄청나십니다^^

이 작품속에 나오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라는 작품도 읽었었는데요, 그 책도 참 힘들게 읽었어요. 내용이 어려운게 아닌데, 흑인소설들은 문장을 어렵게 쓰는거 같아요. 번역의 문제인지.. 물론 잘 읽히는 구간도 있지만 전체로 보면 진도가 참 안나가요. 저만 그런걸지도 모르죠 머ㅋㅋ

저는 폴디에 대해 적지는 않았지만 정말 인생 짠하더군요. 끝에가서는 사람대접을 받아본 그가 얼떨떨 하는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제 삶에 끼여든 잠깐의 행복이 어색하기만 한 세서의 모습도 그렇고요.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이 이들에겐 결코 당연한게 아님을 느낀순간, 저절로 반성이 되더라고요...ㅜㅜ

지옥의 악순환을 끝내기 위한 세서의 행동이 그리 잘못돼보이지 않았어요. 다른 길이 있었다면 모를까,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었겠죠. 여튼 실화를 가지고 각색된 작품이라 신선하네요.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도 실화바탕인데 신선함은 없었거든요ㅎㅎ

저는 힘겹게 읽었지만 나비종님만이라도 잘 읽으셔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좋은 작품이어서 마무리가 나쁘지 않네요ㅋㅋㅋ
이렇게 올해의 모임도 다 끝났어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scott 2020-12-24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행복하고 따스한 연휴 보내세요.
물감님 서재에 트리 한그루 놓고 가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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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0-12-25 16:26   좋아요 1 | URL
scott님도 행복한 연휴 되세요^^
감사합니다!

씽씽걸 2022-01-25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이나 영화, 드라마에 감정이입이 과해서 현망진창이 되는 저는..
이 책을 읽고싶지만 감히 엄두가 안납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 할수 없는 그 무엇이 저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조만간 읽게 되겠죠..
리뷰만 봐도 이 책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물감 2022-01-25 18:32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용도 무겁지만 스토리를 풀어가는 과정도 썩 쉬운 편은 아니니 참고하세요. 즐거운 독서하세요🙂

씽씽걸 2022-01-25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되세요^^*
 
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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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가수 이효리가 후배 가수와 코인노래방에서 노래한 영상을 SNS에 올렸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은 이슈가 있었다. 하필 그때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3단계로 하냐 마냐 할 때라 전 국민의 예민함이 최고조였었다. 그날로 이효리는 대역죄인이 되어 대중의 돌팔매질을 맞아야만 했다. 근데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게 그녀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만한 범죄라도 저질렀나? 그게 다 같이 물고 뜯을만한 일이었냐는 얘기다. 물론 나도 이효리의 행동이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똑같은 잘못이라도 남들보다 더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란 게 안타깝기는 했다. 내가 보기에 그 사건은 잘못이라기보다 실수에 가까웠다. 잘못을 했으면 질책 받을 수도 있겠지만, 실수한 걸 가지고 똑같이 그러는 건 절대 성숙한 행동이라 볼 수 없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되려면 아직도 멀었다.


연예인만큼이나 꾸준히 욕먹는 대상이 바로 엄마들이다. 우리 사회가 바라는 오늘날의 엄마는 조건이 엄청 까다롭다. 맞벌이도 해야 하고, 내조도 잘해야 하고, 애들 교육도 신경 써야 하고, 똑똑하면서 조신해야 하고, 외모 관리에 자기개발까지 해야 한다.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도마 위의 생선이 되어 난도질당하는 걸 보면 요즘 엄마들이 얼마나 극한직업인지 알 수 있다. 욕먹어도 싼 맘충들이야 그렇다 쳐도 멀쩡한 엄마들은 좀 너그러이 봐주자. 암튼 이번 책은 잠깐의 일탈로 전 국민의 마녀사냥을 받게 된 철부지 엄마들의 이야기이다. 육아에 지친 맘 카페 회원들이 기분전환을 위해 술집 모임을 가진다. 실컷 즐기고 있는데 한 싱글맘의 아기가 없어져 난리가 난다. 이 사건은 매스컴을 타고 미국 전역에 퍼졌으며, 회원들은 엄마 자격 미달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러나 수치심보다도 싱글맘에 대한 죄책감이 더 컸던 엄마들은 무능한 경찰을 대신해 직접 아기를 찾아 나선다.


재미도 없었지만 다 떠나서 너무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기 엄마들만이 느끼는 감정과 걱정들이 작품의 베이스를 이루어서 전 연령층이 즐길만한 작품은 아닌듯하다. 엄마가 아닌 독자들은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한다는 말이 아니다. 독특하게도 사건 중심이 아닌 감정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독자가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허용치를 넘겨서 짜증 유발과 반쯤 포기 상태를 가져다준다. 가장 실망한 점은 잃어버린 아기를 향한 엄마의 애절함보다도 각자의 개인사에서 오는 패닉의 감정들로 분량을 잡아먹은 것. 발 동동 구르는 엄마들의 심란함이 처음엔 확 와닿았으나, 가도 가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과 캐릭터들한테 확 질려버렸다. 책 뒤표지의 소개 글에는 아기의 납치 사건과 자격 없는 엄마들에 대한 내용으로 나와있다. 근데 막상 읽어보면 사건 수사에 대한 내용도 부실하고, 자격 없는 엄마들에 대한 비난 장면도 별로 없다. 결국 ‘퍼펙트 마더‘는 평범한 엄마들의 사건 수사력을 말한 게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 휘청이던 엄마들이 마침내 중심 잡고 일어선다는 걸 의미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스릴러보다 성장소설로 분류되어야 했다.


어떤 장르의 소설이든 메인 사건의 내용이 뼈대를 이루어야 한다. 서브 사건이 더 부각되거나 인물 위주로 흘러가면 어쩔 수 없이 골다공증이 생기게 된다. 이 책은 사건이 터졌는데도 엄마들의 일상과 고충에 대한 장면만 돌아가며 나온다. 세 엄마는 각자의 개인사와 가정사에 육아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지옥을 체험 중이다. 언론에서는 아기를 버려두고 술집에 놀러 간 자신들을 매일같이 저격해대서 편안할 날이 없다. 이번 일로 직장과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받고, 생계와 사회생활에도 타격을 입는다. 제대로 꼬여버린 일상은 회복이 불가했으나 아기를 생각하며 엄마라는 이름의 무게를 견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철없던 엄마들은 아기에 대한 사랑과 소중함을 깨닫고 배우면서 성숙해져간다. 결과만 보면 감동적이지만 과정은 감동 파괴 그 자체다. 누구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미친 라인업이다. 읽다가 피 말려서 돌아가실 뻔했다. 여하튼 아기 실종 사건과 연관도 없는 엄마들의 개인사가 분량을 다 잡아먹고 있는데, 누가 봐도 배꼽이 더 큰 상황 아입니까? 광고에 낚였다고 생각되는 건 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장 의아했던 건 싱글맘의 비중이 이상하리만큼 적다는 거였다. 직접 뛰어다니는 장면도 없고, 언론의 주목을 받아 힘들어하는 장면도 잠깐뿐이다. 가장 비중 있어야 할 인물인데 작가는 그녀를 드러내지 않고 계속 감춰두고만 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아기를 찾고 싶어 하지 않는 방향으로 몰아가는 게 느껴졌다. 아기를 잃고도 차분하기만 한 그녀의 독백에서도 수상함을 느꼈는데, 역시나 여기에 작가가 반전을 심어놓았더군. 근데 솔직히 반전이라기보다 페이크에 가까웠다. 독자가 방심하고 있을 때 짠! 하고 카드를 꺼내서 상황을 뒤집는 게 보통인데, 이 책의 반전은 ‘짜잔!‘이 없다. 조용히 카드를 꺼내기 때문에 상황이 역전되었다는 기분이 안 든다. 겨우 김빠진 콜라를 먹이려고 정성껏 공들인 작가님을 어떤 식으로도 이해하기가 어렵군요.


이 작품이 ‘걸 온 더 트레인‘, ‘나를 찾아줘‘와 함께 삼대 도시 여성 스릴러라고 하더군. 어쩌다 보니 세 권 다 읽었는데 전부 별로였다. 내 취향도 참 한결같구나. 여튼 올챙이 시절 기억 못 하는 개구리들은 반성 좀 하자. 다들 얼마나 완벽하길래 타인을 쉽게 평가하고 상처 주는 거지? 남의 약점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게 그렇게들 좋은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에 누군가는 생명을 끊기도 한단 말이다. 소설에서는 사건 중심으로 진행되는 게 맞지만, 현실에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게 정답이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도 제대로 낚이고 말았는데, 언제쯤이면 작품 선별하는 안목이 생기려나. 테스형,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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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1-11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 문단에 동의.
2문단에도 동의. 엄마가 슈퍼우먼인 줄 알아요. 그래서 엄마들 중 괜한 죄의식을 가진 이들이 많아요.
4문단의 이 문장에 빵터짐. - ˝읽다가 피 말려서 돌아가실 뻔했다.˝
끝문단의 이 문장. - 내 취향도 참 한결같구나.
재밌는 표현이라 웃었어요. 한결같으니 취향인 거죠.

님의 글을 읽으니 저는 오히려 이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이건 또 무슨 반전인지...)하하~~
재밌게 읽고 갑니다. 지루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리뷰입니다.

물감 2020-11-11 13:38   좋아요 2 | URL
지루한곳 없는 리뷰라니, 과찬이십니다ㅎㅎㅎ
이책의 엄마들은 잘못과 실수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라 무조건 너그럽게 봐주자 하긴 애매한데요, 작가가 너무 극단적으로 마녀사냥을 연출한 느낌이 없잖아있네요. 저만 별로일뿐 다른분들은 다 잘읽으셨으니 읽어보셔도 될 것 같아요ㅎㅎㅎ
 
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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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서 책을 집어 든 건 진짜 오랜만인데? 나 같은 독자도 있으니까 작가분들은 제목 좀 신경 써주시길. 알다시피 반전이란 게 장르문학에서는 필수라서 그 한 방에 목말라있는 독자를 위해 작가들은 머리를 쥐어짜내지. 그러다 보니 반전이 없거나 약한 작품은 상대적으로 밋밋해 보이고, 저자만의 감성은 홀대받는 듯해. 근데 나는 언제부턴가 유독 반전으로 유명한 작가들이 싫어지게 됐어. 반전에 강박관념이 있는 건지 연속으로 빵빵 터뜨려대는 플롯에 질렸거든. 그런 작가들은 강약 조절도 잘 못한다? 강속구만 던지면 그저 멋있다고 생각하나 봐. 또 반전에만 몰빵해서 만든 작품들은 개연성도 엉망이고 완성도는 뭐 말도 못해. 그런데도 과대광고하는 출판사들이 너무 많아. 꼴 보기 싫어 아주. 안타깝지만 이 책에도 과대광고가 좀 있었는데 그 부분은 뒤에서 설명할게. 그럼 스탓뜨.


책 뭉치로 얼굴을 두들겨 맞아 죽은 살인 사건이 생겼어. 피해자는 집안에서 우비를 입은 채였고, 주변에는 반전 페이지가 뜯겨진 추리소설들이 굴러다녀. 이 같은 사건이 계속 발생했고 피해자들은 모 출판사의 관계자들이란 걸 알아냈지. 뭔가 싶어 조사해보니 20년 전 누군가가 거액의 돈을 들고 날랐다는 거야. 아무래도 범인은 그 사건에 엮인 누군가가 아닐까? 안되겠는지 경찰은 휴직 중인 노장 형사를 찾아가서 사건을 맡아달라고 해. 근데 이 형사는 말년에 안면인식장애가 생겨버렸어. 가족 얼굴도 못 알아보는 그가 수사에 뛰어든 건 자신이 좋아하는 추리소설이 살인무기인데다 찢겨진 반전 페이지들 때문이었지. 그런 이유로 노장의 위태로운 쇼 타임이 시작된다는 얘기.


이렇게 나이 든 사람이 주인공을 맡아도 나쁘지 않은듯해. 솔직히 요즘의 젊은 형사들은 너무 완벽해서 현실감이 없어. 그래서 작가들이 꼭 핸디캡 한두 개씩은 부여하는데,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주인공이 골골대는 게 너무 싫어. 딱딱한 형사들의 인간미를 꼭 질병이나 트라우마를 통해서만 끌어내는 방식도 이젠 좀 식상하지. 그렇지만 이 책도 클리셰 가득한 구식을 따라 했어. 안면인식장애를 가진 형사라. 치매 걸린 형사의 뉴 버전이라 해도 되겠네. 휴직임에도 후배들이 찾아오는 걸 보면 왕년에 좀 날리셨는가 봐. 매번 부탁에 못 이기는척하는 모습이 귀여우시더라고. 전형적인 형사 성격이지만, 티 나지 않게 남들을 챙기는 게 주인공의 매력이었지. 후배들을 쥐락펴락하면서도 얼굴들을 몰라 깨갱하는 이 캐릭터가 반전 그 자체였던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 조영주 작가도 똑같은 병이 있다네? 그러니까 주인공 이꼴 작가란 말인데, 자신의 치부를 공개하면서까지 이 책을 썼다는 거잖아? 다 같이 물개 박수 쳐주자.


그럼 이제 실망한 것들을 읊어볼까.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사건보다 주인공이 가진 장애의 설정이 더 중요하다고 봐. 형사의 예리한 감각과 내면의 불안이 계속 부딪히는 건 좋아. 문제는 그 병이 핸디캡 역할에만 충실했을 뿐, 사건을 추리하는 매개체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거. 그 장애를 수사에 이용했더라면 초 특별한 히트작이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기존 작들하고 또이또이야. 그리고 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는 김나영 형사도 솔직히 설정 미스야. 오토바이를 타며 밤낮없이 출동하는 모습에 행동대장인 줄 알았는데 이렇다 할 액션이 하나도 없는 거야. 차분한 성격에 기억력도 좋아서 지략가 쪽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드만? 실적도 없는데 일찍 출세했고 빵빵한 집안을 가진 설정이 다 무슨 소용인지. 그리고 동료의 약점과 빈틈을 보완해주는 게 파트너의 역할 아닌가? 주인공 혼자 다 해 먹으라고 옆에서 추임새만 넣고 있던데 비중은 왜 그리도 많은 겨? 눈에 계속 거슬려서 혼났네.


이 책은 사건 말고도 추리소설에 대한 저자의 애정으로 가득한데, 그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유독 많이 나와. 주인공을 세이초의 열혈팬으로 설정했고, 세이초의 이름을 뒤집어 ‘초이세‘라는 한국작가로 오마주 했더라고. 게다가 카메오로 등장시켜 추리작가의 시각으로 수사를 돕기까지 해. 본인이 세이초 덕후란 걸 이런 식으로 인증하다니 참신하네. 또한 무대배경과 인물들을 출판업계로 설정한 것도 좋았어.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그쪽 바닥의 고충이라던가, 책을 대하는 자세나 순수함을 조명하는 저자의 의도가 느껴졌으니까. 근데 메시지 전달에 신경 쓰느라 메인 사건은 갈수록 부실해지는 게 보였어. 일단 범인과의 심리싸움이라는 광고부터가 틀려먹었어. 등장조차 안 하는 범인과의 핑퐁을 어디에서 봐야 할까? 범인이 반전 없는 소설책을 남겨둔 건 경찰과 술래잡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어. 다음 범행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 20년 전 사건의 진실을 위한 일종의 쇼였던 거지. 연속 살인 속에서도 전혀 촉박함이 느껴지지 않은 건 그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옛 사건의 관계자들을 컨트롤하지 못한 부분도 저자의 큰 실수야. 하나같이 어영부영한 태도와 어설픈 증언들로 어딘가 수상한 기색을 연출한 것 까진 괜찮았어. 근데 너무 뜸 들여가지고 밥이 그만 다 타버렸어. 독자의 흥이 가라앉은 뒤에 반전을 꺼내면 어쩌자는 걸까. 겨우 이걸 보여주려고 그렇게 질질 끌었나 싶던데. 이래서 추리소설은 타이밍도 잘 봐둬야 해. 암튼 구멍도 많고 곁가지도 많은 작품이지만 저자의 용기 있는 도전과, 반전 매력의 소유자인 주인공을 봐서라도 별 4개는 줘야겠어. 이제 그만 졸려서 자야겠다. 내일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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