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귀 - 개정판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9
이종호 지음 / 황금가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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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학창시절에 학교괴담 한두 개쯤은 들어봤을 것으로 안다. 자살한 전교 1등, 폐쇄된 교실, 눈에서 피가 흐르는 동상 같은 이야기들. 나도 괴담의 진실을 확인하러 친구들과 자정 시간에 학교를 찾아갔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학교란 곳은 참 온갖 소문과 괴담으로 가득한 곳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괴담은 무서울수록 전달하는 화자에게 묘한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세대를 거듭할수록 이야기는 와전되고 완성도를 갖추어서 하나의 실화가 된다. 실화인 듯 실화 아닌 실화 같은 <모녀귀>는 떠도는 괴담들을 모아다 각색한듯한 느낌이라 처음 읽어도 낯설지가 않다. 이 책은 <분신사바>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인데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흡인력이 있다. 다만 이제는 워낙 익숙한 내용이라서 별로 무섭지가 않다는 게 단점이다.


왕따를 당한 전학생은 볼펜 점으로 귀신을 불러내어 가해자들을 저주한다. 가해학생들이 의문사를 당하자 학교와 마을은 뒤집어진다. 한편 전근 온 여교사에게 들러붙는 남자들은 30년 전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외지에서 들어온 모녀가 마을 주민들에게 살해되었고, 사건을 은폐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죽은 모녀를 불러온 전학생과 여교사를 마을에서 추방하려 하나 커져만 가는 귀신의 원한을 어찌할 수가 없다. Y읍의 비극은 모두가 죽어야만 끝나는 것일까.


단순하면서도 완성도가 있다. 30년 전 사건과 관련된 Y읍의 사람들은 마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설정이다. 알 수 없는 암묵적인 약속이 마을을 지배 중이었고, 과거를 쉬쉬하며 살아가는 주민 하나하나가 전부 비밀투성이였다. 독자는 외지인의 입장으로써 주민들이 무엇에 두려워하는지를 몰라 긴장하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폐쇄 지역인 Y읍은 외지인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모녀를 따돌렸고, 현재는 전학생 가족과 여교사를 밀어내려 한다. 외지인들이 마을에 귀신을 불러와서 물을 흐려놨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태의 근원은 주민들에게 있었고 모두가 그걸 알면서도 사실을 부인하는 중이다. 모든 이야기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가듯 이 작품 또한 그렇다. 주민들이 모녀귀의 한을 풀어줄 생각은 안 하고 신경만 긁어대서 죽음을 자초한다. 지난 잘못에 대해 뉘우침 없이 남탓만 해대는 어리석은 자들은 역시 몽둥이가 약이다.


괴담 이야기는 클리셰를 완벽히 비껴가는 게 불가능한가? 뻔한 전개이지만 나쁘지 않았는데 죽은 모녀의 환생이나 영혼의 빙의 소재는 역시나 진부하다. 아니면 클리셰를 멋지게 뒤집을 장치라도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나름대로 인과응보 이야기인데 그 끝에는 정의도 없고 승자도 없다. 배드 엔딩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게 끝났으니 해피엔딩이 되는 걸까. 여튼 마무리되면서 또 다른 괴담으로 남는 결말이 은은한 여운을 준다. 사실 호러물에는 교훈이나 주제가 없어도 된다고 보는데 이 작품으로 인식이 조금 바뀌었다. 괴담물은 성격상 작품 속 구멍들을 일일이 메꾸지 않아도 된다. 듣는 사람이 알아서 해석해줄 것이고 더욱 미스터리한 이야기로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오늘의 결론, 착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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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 탐정 아이제아 퀸타베의 사건노트
조 이데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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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해결사인 흑인 탐정의 탄생이라고 하여 냉큼 서평 이벤트를 신청했다. 흑인으로써 그 많은 제약과 걸림돌을 어떻게 극복하면서 사건을 풀어나갈지가 궁금했는데 과연 기존 경찰/탐정 소설들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맛이 있었다. 미국에서 이런저런 상들을 수상하고 드라마까지 확정된 시리즈라 하니 기대들 하셔도 좋겠다. 출판사는 더욱 열일해주시길!


유명 래퍼의 크루한테 사건 의뢰를 받은 두 친구. 래퍼의 대 저택으로 초대형 핏불 개가 들어와 그를 공격하였고, 그 후로 래퍼는 정신이 나가버려 음반 작업은커녕 일상생활도 불가해졌다. 주인공들은 쉽게 핏불의 주인을 찾아내지만 그를 범인으로 지명하기엔 확증이 부족했다. 갈수록 상태가 악화돼가는 래퍼를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야 하는데 어째 범인이 두 친구의 계획을 파악하는듯한 기분이다. 게다가 래퍼에게 불만을 품고 있는 크루 멤버들에게서 구린 냄새가 난다. 이들 중 킬러를 고용한 내부자는 누구일까.


주인공도 등장인물들도 흑인인 참신한 시리즈의 탄생이다. 주인공 아이제아는 탐정이나 경찰 같은 직업도 수사권도 없는 평범한 청년이다. 가족을 다 잃고 일찍이 빈민가에서 방탕한 삶을 살아온 터라, 이제껏 봐온 시리즈물의 주인공 이미지와 다르므로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타 주인공들은 힘, 계급, 권력, 영향력 등을 갖춘 상태로 나오는 반면 아이제아는 밑바닥 말단 사원으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인맥이라고는 사고만 치는 무개념 친구 하나뿐이라 대체 시리즈를 어떻게 이어나갈지조차 걱정이 든다. 여튼 1편만으로 시리즈의 색깔을 논하자면 굉장히 자유분방하면서도 와일드하다는 점이다. LA 슬럼가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며, 흑인만의 문화생활과 가치관 그리고 특유의 음울한 분위기까지 잘 녹아있어 작가가 꽤나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느껴진다.


콤비로 활동하는 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이 책도 정반대의 캐릭터들이 만나 삐거덕댄다. 주인공 아이제아와 무개념 친구 도슨은 단순히 성격만 다른게 아니라 흑인의 대표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제아는 소중했던 형을 사고로 보내고 절망과 괴로움으로 살아온 슬픔의 아이콘이며, 도슨은 대마초 팔고 갱단 활동에 감방을 들락날락하는 화려한 무법자이다. 애증의 관계인 두 친구는 끊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데 본인들은 심각하지만 보는 사람에겐 구경거리인 케미를 보여준다. 이번 편의 내용은 두 가지로 압축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주인공을 입체화 시키는 것인데, 타 작품처럼 신체적 결함이 아닌 트라우마를 핸디캡으로 준 것이 특히 좋았다. 여러 번 말했듯 나는 질병이나 장애로 골골대며 수사하는 주인공들이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아이제아는 내가 질색해하던 설정을 따르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작가가 이 핸디캡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지가 아주 기대된다. 두 번째는 힘없고 빽 없는 주인공들의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사회성 제로인 아이제아를 대신해 파트너 도슨이 건수를 잡고서 함께 의뢰를 맡는다. 필요에 따라 물건도 훔치고 불법 침입도 하는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경찰/탐정소설의 수사와는 딴판이라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근데 맨땅에 헤딩하듯 날것으로 승부하니까 확실히 신선한 맛은 있다. 이제는 탐정형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더는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기 어렵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레드오션을 뚫다니, 작가의 센스가 참 대단하다.


메인 사건은 보기보다 간단하다. 사건 의뢰를 받자마자 핏불의 주인인 암살자의 정체가 금방 드러난다. 하지만 그에게 살해 동기를 발견치 못하자 여기에 조력자가 있다고 확신하나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비협조적이다. 근데 이들보다도 파트너 도슨의 비협조가 아이제아를 뒤집어놓는다. 도슨은 아이제아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했고, 갱들과의 총 난투극으로 시민들까지 죽게 만들었다. 이렇게나 상극인 두 사람이지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아이제아는 트라우마를 지워버리고 싶어서 일을 원했고, 돈이 필요한 도슨은 돈 되는 건수를 아이제아에게 물어다 줘야 했다. 지주였던 형의 부재가 남긴 고통과 방황으로 삶의 의욕을 상실한 채 살아온 아이제아의 모습은, 앞으로 그가 헤쳐나갈 파도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한다. 여튼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어수선한 감은 있지만 와일드한 감성이 디폴트라서 딱히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여차여차해서 사건이 끝난 뒤 방탕한 생활을 접은 주인공은 좋은 곳에 재능기부하며 살기로 마음먹는다. 아마 2편부터는 인물도 사건도 스타일이 크게 바뀔듯한데 이 역시도 기대가 된다. 작가에게서 투 머치 토커의 기운이 느껴지지만 1편이니 너그럽게 봐주도록 하자. 끝.



​※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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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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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1] 테이크아웃 커피를 다 먹은 당신은 일회용 컵을 버리고 싶다. 때마침 쓰레기가 쌓인 곳이 있는데 ‘쓰레기 투척 금지‘라는 경고가 붙어있다. 당신이라면 일회용 컵을 버릴 것인가, 가져갈 것인가?

[상황 2] 놀이터에서 돈을 주운 당신은 자리를 뜨며 신나게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그런데 누군가 뛰어와서 여기에 돈 떨어진 거 못 봤냐고 물어온다. 당신이라면 모른 척할 것인가, 사실대로 말하고 돌려줄 것인가? 

[상황 3] 좁은 공간에서 주차를 하다가 옆 차를 긁어버린 당신. 주변에는 카메라가 없고, 긁힌 차는 블랙박스도 안 달려있다. 당신이라면 조용히 차를 끌고 떠날 것인가, 차주에게 연락할 것인가?


위 상황들은 모두 양심을 저울질하게 만드는 내용들이다. 재밌는 점은 양심을 지키면 손해를 보고 양심을 버리면 이득을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도덕과 윤리를 배우며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자라도록 교육을 받지만 현실은 양심껏 살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이 양심이 개인에게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는 이런 아이러니도 다 있는가. 실제로 양심 없는 인간들이 더 잘 먹고 잘 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도 요지경 세상이라고 봐야 할까. 이 같은 양심의 갈등을 종교 문제로 다룬 고전작을 읽었다. 어려운 내용은 아닌데 리뷰 쓰기 참 난해한, 내가 싫어하는 케이스지만 그래도 써보겠다.


이 대위는 유엔이 점령한 평양으로 파견대를 간다. 이후 북한의 기독교 목사들이 공산당에게 잡혀가 총살을 당한다. 거기서 빠져나온 두 목사를 통해 파견대는 사건의 정황을 알고자 한다. 하지만 한 명은 정신이 나갔고, 한 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북한의 교인들은 죽은 목사들을 거룩한 순교자로 보는 반면 생존한 두 목사를 곱게 보지 않는다. 모두의 비난을 받고도 가만히 있는 신 목사에게 뭔가가 있음을 감지한 이 대위. 마침내 신 목사가 사건의 진실을 밝히지만 변함없는 교인들의 태도에 이 대위는 할 말을 잃는다. 정녕 그들의 신은 백성들이 겪는 고통과 수난을 알고는 있는가.


알고 보니 동료 목사의 생일 축하를 위한 자리에 공산당이 습격해서 마구 쏴 죽인 거였다. 이들 가운에 불순한 사람이 섞여있었고, 그래서 체포되었던 것이지만 사건의 진실과 상관없이 장 대령은 희생자들을 고귀한 순교자들로 못 박아 공표하고 싶어 했고, 교인들도 그렇게 바라며 믿었다. 희생자들이 모두 순교자라는 타이틀을 받아선 안되었지만 이런 추악한 진실이 알려지지 않도록 신 목사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희생자들이 받게 될 비난을 자신에게 돌리고 끝까지 중립을 고집한 신 목사가 염려했던 건 아무도 진실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신도들의 신앙과 믿음을 꺾지 않으려 진실 아닌 진실을 믿게끔 놔두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은 신 앞에서 감추질 못했다. 진실을 밝히자니 신도들이 무너질 테고, 거짓을 그대로 놔두자니 신을 모독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양심을 외면하면서 괴로워하는 그의 수난은 한참 동안 이어진다.


장 대령은 사정을 다 듣고도 목사들이 순교자라고 주장했다. 비록 잘못한 게 있어도 그들은 칭송받을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무교인 주인공은 죄지은 자도 순교자가 된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이렇게 진실을 원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로 여겼고, 신 목사는 이것을 통찰했던 거였다. 제 양심을 버리면서까지 교인들의 믿음이 붕괴되는 것을 막았지만 교인들은 신 목사를 유다라고 욕한다. 그렇게 신 목사는 빨갱이한테 굴복하고 동료를 팔아서 살아남은 죄인 중에 죄인이 되었다. 이후 그는 모두 모인 자리에서 그날의 진실을 드러냈고, 예상했던 대로 진실을 원하지 않았던 신도들의 맹비난을 받게 된다. 그러나 다른 목사들은 오히려 신 목사를 용서하고 위로해주는 등 예상 못 한 모습을 보여준다. 거짓으로 헛된 희망을 주는 성직자가 되기보다 진실로 모두의 미움을 사고 죄를 신 앞에 자백하는 그의 뜻을 이해한 것이다. 드디어 신 목사는 신앙적 양심을 따라 기나긴 고통에서 겨우 해방되었다.


중공군이 평양까지 밀고 내려오자 파견대는 철수하고 신도들은 남한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몸이 불편해 못 떠나는 신도들이 있어 신 목사는 같이 남기로 한다. 이제야 신 목사도 순교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대위는 도망치지 않는 신 목사를 볼 때마다 복장이 터진다. 고난에 신음하는 신도들이 바라는 것을 해주는 것. 그들이 믿고 싶은 것을 계속 믿을 수 있게 해주는 것. ​내키지 않으면 그런 척 만이라도 해서 신도들을 구해주는 것. 이것이 이 대위가 바라본 기독교인의 진실이고 신앙의 방향이었다. 자신을 속여서라도 교인들의 소망과 화평을 주려는 신 목사를 끝까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런 시스템에 환멸을 느낀 이 대위는 더 이상 신은 없다고 판단하며 신 목사, 친구 박 대위, 고 군목에게서 등을 돌린다. 


갈 곳 없고 기댈 곳 없는 시민들에게 신을 의지할 수 있다는 건 유일한 희망인데, 그 빛줄기를 차단해버리는 진실을 아무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도들도 신 목사의 말이 진실임을 알고 있지만 살기 위해서 끝까지 부정했던 것일 테다. 끝까지 신앙을 고수하며 신을 따르는 신도들도 양심을 속여서 신을 모독한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어린 영혼들을 대신해 신 목사는 그들의 죄를 담당했다. 마치 인생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처럼. 본래 순교란 신앙 때문에 박해받고 죽는, 종교인의 거룩한 희생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뜻이 교인뿐 아니라 전시 중에 죽는 군인에게도 해당된다고 본다. 신을 위해 죽임을 받드는 목사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인이나, 소명을 따라 양심껏 행동하고 죽음을 맞기 때문이다. 무교의 주인공이 신 목사와 통하였던 건 두 사람의 처지가 비슷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튼 이 작품을 무교인이 소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온전히 알아야만 신자와 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양심의 줄다리기를 이해할 수가 있으므로. 다루지 못한 박 군이나 고 군목의 내용도 리뷰하고 싶지만 글이 길어져 생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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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21-03-21 2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거 읽고 리뷰쓸려다가 미뤘는데 못 쓸 듯 하네요 너무 오래되어서 ㅎㅎ잘 지내시죠? 안부전하고 갑니다

물감 2021-03-22 08:38   좋아요 2 | URL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죠? ㅎㅎ
어서 매력적인 리뷰로 컴백해주세요^^

그레이스 2021-03-21 23: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표시한 날짜보다 오래전에 읽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침묵>이란 책과 비교하면서 후기를 남겼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생각을 했던 책이었는데 여기서 보니 반갑네요.

물감 2021-03-22 08:44   좋아요 2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정리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 작품이더라구요. 하얀 거짓말도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지만 종교 안에서 그러기란 결코 쉽지 않으니까요.

막시무스 2021-03-22 1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정말 여운 깊게 읽은 작품인데, 덕분에 다시 한번 리마인드 했습니다!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물감 2021-03-22 12:55   좋아요 2 | URL
정말 여운 깊은 작품이에요. 도움이 된 것같아서 다행입니다ㅎㅎ

나비종 2021-03-30 2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황 1] 가져가다가 때마침 ‘쓰레기 투척 금지‘라는 경고가 붙어있지 않은 쓰레기 쌓인 곳에 버린다.
[상황 2] 사실대로 말하고 돌려준다. 세상에 공짜가 없음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면서 신나게 주문한 배달음식의 주문 취소가 가능한지 알아본다.
[상황 3] 누군가 지켜봤을 지도 모르는 개방된 계임을 인지하고 굳이 조용히 사라지는 대범함을 장착하지 않은 인간이므로 냉큼 차주에게 연락한다.

‘양심껏 살면 바보‘ 이부분 격하게 공감합니다.ㅎㅎ ‘리뷰 쓰기 참 난해한‘ 공감 too!ㅋㅋ

그들의 신은 어느 편일까요. 고통과 수난을 겪는 백성 편일까요. 고통과 수난이 먹이사슬처럼 연결된다고 할 때, 가장 밑부분에 서는 걸까요. 아래는 갈구고 위로부터 갈굼을 당하는, 소위 중간에 끼인 인간들 입장에 서는 신은 있는 걸까요.

추악한 진실과 아름다운 거짓. 막상 선택의 기로에 서면 쉽게 선택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신 목사의 심리를 완벽하게 공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깊이 우러난 담백한 사골 국물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워낸 듯한 느낌이 들어 참 좋은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물감 2021-03-31 16:47   좋아요 3 | URL
오, 양심 상황에 대한 답변 잘 봤습니다 ^^
저는 2번 같은경우엔 모른척 할 수도 있어요 ㅎㅎㅎㅎ

이번 책은 진짜 다른 의미에서 쓰기가 힘들었어요, 공감하시죠? 내용이 결코 어렵지는 않았어요, 종교적인 내용도 크게 영향있지도 않았구요. 그냥 신과 신자의 갈등구도로 생각하고 읽었습니다. 사실 입장만 다를뿐 이런 갈등은 사회에서 자주 보는거라 그냥 더러운 세상 캭 퉤, 하고 마는데 신이 개입하게 되면 얘기가 좀 달라지긴 하는군요...

신자라면 자신의 1순위는 신이 되야하는게 맞겠죠. 그런데 윤리를 깨고 인간다움을 버리면서까지 신을 섬기는 게 맞다면 모든 종교는 욕을 먹어도 할말이 없을 거에요. 신도들이 거짓을 진실로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만, 목숨을 잃느냐 마느냐 하는 전시상황에서는 또 얘기가 달라지네요. 참 변수가 많아서 어려운 책이에요ㅎㅎ

바쁘신 건 여전해보이십니다 ^^ 4월은 쉬었다가 5월에 다시 달리시죠 ㅎㅎㅎ
3월도 고생하셨어요!
 
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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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소설 같다‘는 표현을 쓰거나 본 적 있으신가요? 영화 같다, 드라마 같다, 시트콤 같다는 표현은 자주 하지만 소설 같다는 말은 거의 안 쓰죠. 영화나 드라마도 그렇지만 소설의 장르가 얼마나 다양한데 그 많은 걸 하나로 퉁쳐서 소설 같다고 하다니, 어딘가 이상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그런 표현을 쓰는 건 각자 생각하는 ‘소설‘의 정의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제게 영화는 아름답고 화려하고 감동적인 느낌이 연상되고요, 드라마는 아련하고 로맨틱하고 유쾌한 이미지가 연상됩니다. 근데 소설은 허무맹랑, 허구적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소설 읽는 게 취미인 저조차도 소설의 이미지가 이러한데 소설과 친하지 않은 분들은 오죽할까요.


소설의 리뷰를 전문적으로 쓰는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작품의 이야기, 즉 스토리텔링을 중요시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재미가 있어야 하는 거죠. 작품의 시대 반영, 주제의식, 필력, 철학... 이런 것들은 다 옵션이고요, 소설은 일단 재미가 먼저입니다. 작품성이나 예술성으로 소설을 찾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재밌겠다,는 판단으로 책을 고를 테니까요. 독서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참 소설답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어요. 오로지 스토리만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작가의 파이팅이 담긴 경우입니다. 그런 책들은 내용이 복잡하지도 않고요, 기승전결도 굉장히 깔끔합니다. 웬만한 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가물가물해지거든요? 근데 할머니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들은 안 그래요. 한번 듣고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게 스토리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재인, 재욱, 재훈>은 제가 얘기하는 ‘소설 다운‘ 소설입니다. 딱 스토리텔링만으로 승부하고 그 외에는 별다른 장치가 없어요. 마치 누가 나에게 재미난 ‘썰‘을 들려주는 기분입니다. 재미를 더하려고 살을 덧붙이지도 않아요. 그저 사건을 일어난 순서대로 말했을 뿐인데 재미있게 들리거든요. 이 책이 그랬습니다. 구조가 단순하고 적당히 재미있어서 한번 읽으면 안 잊어버릴 내용입니다. 삼 남매가 칼국숫집에서 식사한 뒤로부터 이상한 능력이 생겨요. 능력이라기보단 기이한 현상에 가까워서 별일 아닌 듯 잊어버립니다. 이제 세 사람은 서울 집을 떠나 뿔뿔이 흩어집니다. 재인은 대전 연구소로, 재욱은 아랍 사막에 파견 근무로, 재훈은 미국 조지아에 교환학생으로 가면서 타지 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매에게 출처불명의 소포가 와요.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물과 ‘save‘가 적힌 쪽지가 들어있습니다. 딱 견적이 나오죠. 각자의 능력과 소포 속 물건으로 누군가를 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입담 좋은 친구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듯 단순하면서도 흡인력이 대단해요. 저한테는 이런 게 소설답다고 느낍니다. 최소한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뽑아내는 작품이죠. 이렇게 가성비가 좋으면 작가도 독자도 윈윈 아닐까요.


앞에서 언급했던 ‘옵션‘이 이 책에도 있습니다. 스토리가 볼거리라면 옵션은 생각거리가 되겠네요. 다행히도 삼 남매는 타지에 가서 마음 맞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재인에겐 룸메가, 재욱에겐 계약직 인도인이, 재훈에겐 또래 학생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홀로서기를 합니다. 그리고 삐걱대던 가족들과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하고요, 누군가를 구하게 되면서 이타적으로 변합니다. 저밖에 모르던 세 사람이 남을 생각할 줄 알게 되었다는 건 큰 변화입니다만 본인들은 잘 모릅니다. 어쩌면 독자들도 못 느끼고 그냥 넘어갔을 거예요. 겨울이 봄으로 넘어가듯 아주 천천히 바뀌거든요. 소설에는 이런 옵션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어요. 물론 옵션만 좋으면 안 됩니다. 물건을 살 때 디자인을 먼저 본 다음에 기능성이나 실용성을 따지는 것처럼요.


요즘 정세랑 작가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죠. 작품마다 히트를 치고 <보건교사 안은영>이 드라마화되면서 팬층도 커졌습니다.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알 것도 같아요. 한국인들이 딱 좋아할 만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작품 레벨이 높지 않아서 독서가 어려운 분들도 입문하기 쉽겠어요. 개인적으로 휴가지에서 읽을만한 국내 소설이 많았으면 했는데 그런 감성 코드를 가진 작가가 드물어서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한 명 찾아서 반갑네요. 이런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전 이제 고양이들 밥 주러 가볼게요. 리뷰 쓰느라 무시했더니 옆에서 울고불고 난리네요. 이만 리뷰를 마칩니다.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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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두 남자가 수상하다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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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빨래가 하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봄이 오긴 하나보다. 봄은 사계절 중에 가장 여유로움을 가졌다. 정신없이 바쁜 이에게 봄바람을 불어서 한숨 돌리게 하고, 근심 가득한 이에게 꽃잎을 휘날려서 마음을 달래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계절이 내게는 마치 공부 빼고 다 재미있는 시험기간과도 같아서 독서만 빼고 모든 게 즐거워진다. 이럴 땐 햇살 내리는 창가에 앉아 허니브레드 한입, 커피 한 모금씩 하면서 가벼운 책을 읽어주면 독서가 더 잘 안된다. 그냥 하던 대로 화장실 변기에서 읽어야겠다. 사람은 갑자기 바뀌면 안 된다더니 과연 맞는 말이다.


버려진 통조림을 먹고 죽은 고양이 사체들이 발견된다. 통조림에는 석시콜린 약물이 투입돼있었고, 이 사건들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한 예행연습 일지도 몰랐다. 동물의 안락사를 위해 쓰이는 약물을 인간에게 쓴다는 건 장기밀매 밖에 없었다. 위험을 직감한 여주 일행이 찾아간 경찰을 통해 듣게 된 사실. 장기기증 신청자들의 정보가 유출되었으며 석시콜린을 머금은 시신이 발견되었단다. 장기밀매 조직의 소탕을 위한 지역 경찰들과, 약물 살인범을 추론해내는 여주 일행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코지 미스터리답게 시작은 평범한 일상 코믹물로 시작했다가 점점 추리소설의 형태를 갖춰나간다. 분위기가 진지해지려고만 하면 시답잖은 유머와 개그를 남발하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나중에는 유머가 안 나오니까 참고 볼만하다. 처음 만난 손선영 작가는 이 작품만으로도 내공이 탄탄한 게 느껴진다. 플롯이나 구성도 그렇고 캐릭터 설정과 연출, 장치 등등 장르소설의 표본 같은 작품을 써낼 줄 아는 사람이다. 코지 미스터리는 일반인 여성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고 하며 이 작품 또한 그러한데, 여주를 대놓고 단무지로 만들어놔서 툭하면 성질내고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시종일관 보여준다. 비호감의 조건을 다 갖춘 여주는 중반부터 비중이 줄고 경찰들이 바통을 넘겨받는다. 왜 이렇게 주요인물이 자주 바뀌나 했더니 작가가 에드 맥베인의 <87분서>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더라. <87분서>는 매 편 주인공이 바뀌는 시리즈물인데 그걸 스탠드얼론에 적용하면 어떡합니까. 나는 작가가 여주 일행을 까먹은 줄만 알았으요.


두 내용이 교차하다 마침내 하나 되는 흔한 플롯이다. 한쪽은 불을 붙이는 자들의 내용이고, 또 한쪽은 불을 끄려는 자들의 내용인데 한 사람이 쓴 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양방의 명암이 다르다. 먼저 고양이 사체가 장기밀매 조직으로 연결된다는 점이 일상 추리물 다워서 좋았다. 구제역이 돌때 사용했던 약물이 소재로 쓰인 것도 대단했다. 다만 일행 중에 똑똑한 추리소설가가 있어서 전개가 너무 빨랐고, 좀비물처럼 다소 뻔하게 흘러가는 것도 흠이었다. 반대로 불 붙이는 쪽은 볼거리가 꽤 많았다.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와 보호자들. 기증자도 없고 돈도 없어서 안절부절하는 병실 안 사람들. 무너진 가족의 신뢰, 타인에 대한 질투, 생명에 대한 윤리 의식 등등. 보이지 않는 싸움들이 그 좁은 병실에서 매일같이 발생한다. 그리고 벼랑 끝에 몰린 보호자들은 영혼을 팔고 장기밀매와 약물을 택한다. 불법이고 범죄인 줄 알면서도 가족을 살리기 위해 발악하는 이들을 마냥 욕할 수가 없다. 뭐 이렇게 무거운 주제의식을 다룬다냐. 난 그저 가벼운 독서가 하고 싶었단 말입니다요... 


기대와는 전혀 다른 작품이라 정리도 못하고 그냥 손가락 가는 대로 적었다. 산만한 분위기에다 정체성도 모호한 작품이었지만 이만하면 낫 배드이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걸 다 때려 넣은 작가의 기념비 같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도 읽어보기로 하자. 그보다 산만한 작품을 읽어서 그런가, 리뷰도 산만해지는 거 같네. 에혀. 당분간은 얇은 책 위주로 읽어야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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