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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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내 이야기가 소설로 나오면 잘 팔릴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내 사연들도 꽤나 복잡하고 다이나믹 했더랬다. 지난 과거에 경험하고 느낀 것들이 지금의 글쓰기 활동에 엄청난 보탬이 되고는 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할까. 멜로디를 만들고 설계도를 그리고 비디오를 찍고 나무와 돌을 깎고. 나는 이런 행위들이 내가 더 나일 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저 예술가의 혼이 나를 가만두지 않는 단순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여튼 다양한 형태의 예술 가운데서 유독 문학은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이다. 아무래도 글이란 게 누구나 쓸 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일 테고, 그래서 누구나 엄한 잣대를 쉽게도 들이대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반박하고 일침을 놓는 프랑스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 이 분은 문학에 대한 선입견들을 타파하고 예술에 대한 시각을 뒤집어놓았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소개해본다.


나는 외국인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 연락도 잘 없고 언어도 좀 안 맞지만 열렬히 그를 사랑한다. 내 삶에서 그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내 시간들은 오롯이 그에게 바치는 시간이어야 한다. 나의 존재는 그의 몸을 가졌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 그와 떨어져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내 사랑에 열정을 다한다. 그럼에도 그의 연락은 갈수록 뜸해지고 있다. 이제 내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입장이 곤란해서일까. 사랑하는 마음 외에 버렸던 것들이 어느덧 제자리를 찾아간다.


사랑에 막 눈을 뜬 사람처럼 안절부절하며 벅차오르는 감정들을 두서없이 작성한 일기장의 느낌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유부녀의 바람난 이야기가 그리 매혹적이거나 끌릴만한 서사는 아니다. 아직까지는 한국의 정서적인 이유도 있고 하니까. 그런데 이 책은 금지된 사랑을 다루고 있음에도 전혀 불편한 기분이 안 든다. 사랑에 흠뻑 젖은 주인공 시점으로만 썼기 때문에, 그녀의 허리케인 같은 감정 씬 외에는 어떤 것도 개입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딱 필요한 부분만 조명해주는 일인칭 플롯을 고른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금지된 사랑이 위험한 이유는 외부에서 오는 방해가 아니라 스스로를 갉아먹어 피폐하게 만드는 내부의 요인이 더 크다. 내가 사라져가는 그 감정, 겪어본 사람은 무슨 말인지 잘 알 거다. 사랑은 서로의 눈높이가 같을 때에 유지된다. 그런데 자신을 너무 낮추고 상대를 높게 여기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동경이 돼버린다. 그런 상황에 중독되면 주인공처럼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되므로 일상생활마저 불가해진다. 사랑 외에 다 갖다 버린 그녀가 기댄 곳은 글을 쓰는 행위였다. 그가 읽어주길 바람도 아니고, 자신의 슬픔을 달래기 위함도 아니었다. 대상도 목적도 없는 말 그대로 기록용 글쓰기를 하는 그녀, 그리고 책 밖에서 같은 글을 쓰는 아니 여사님.


살면서 겪었던 일들과 경험으로 작품을 쓴다고 유명한 작가더라. 자신의 성장과정이 모티프인 모든 작품은 자전소설이나 마찬가지이고, 이 책의 주인공도 작가를 그대로 빼다 박았다. 이 작품으로 자신의 불륜을 만천하에 공개한 셈인데, 그녀는 커다란 손실보다 작은 이익을 택하였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글이 ‘문학다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방식이 문학에 어떤 진보를 가져다줄 것을 예견하지 않았나 싶다. 사실은 나도 이 책에 어떤 깊이와 멋스러움이나 문학성을 발견하지는 못했는데 의도를 알고 나니 작가의 글쓰기 철학에 존경심이 생겼다. 이런 걸 보면 예술의 기준은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이 맞나 보다.


나는 이 책을 한 여인의 이야기보다 자신을 알아가는 글쓰기 쪽에 더 흥미를 갖고 읽었다. 작품 해설에는 자아의 상실을 다룬 책이며, 주인공과 작가가 글쓰기를 통하여 자아를 재확립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 말에 나는 작가가 성냥개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온몸을 다 태워서 불을 밝히고 이어 조용하게 사그라드는. 온갖 풍파를 겪어온 그녀에게 단순했던 것은 사랑하는 것과 글을 쓰는 행위뿐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건조한 문체를 안 좋아해서 별점은 높게 못 주지만 꽤 신선하게 읽었다. ‘소설에 대한 전쟁 선포‘를 했다던데 과연 그에 맞는 개성을 보여주었고, 이내 다른 작품들도 읽고 싶어졌다. 그녀가 자부하는 ‘문학다움에 미치지 못하는 글‘이 가진 개성과 위력을 알게 된다면 현대의 문학도 한걸음 더 진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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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2 00: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배경을 알고 읽어서였는지, 읽는 내내 생생했던 기억이 나네요 😀
이 책 읽고나서 ‘역시 프랑스는 다르군‘ 이런 생각도 들고 ㅎㅎ

물감 2021-07-12 00:23   좋아요 2 | URL
이제 저도 그녀의 작품들을 다르게 생각하며 읽을 것 같아요🙂 어쩐지 프랑스 여성들은 다 멋있을 것만 같은 환상이...ㅎㅎ

나비종 2021-07-22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문장부터 공감합니다!ㅋㅋ 계곡물 속에 담근 자신의 다리를 보는 상황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구에게나 스스로 내려다보는 다리는 실제보다 더 커보이고 떠올라 보이잖아요. 그래도 보편성에 의한 공감도 못지 않게 영향력이 크니 독특한 해석과 문체만 연마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시다고 봅니다만~^^
확실히 직접 경험한 감정이 담긴 문장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줘요.
예술가의 혼.. 우리 마음속에는 누구에게나 그런 영역이 존재하는 걸까요.
문학이 대중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예술 분야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아마도 이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예술에 개인적인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건 당연하다치더라도 미술 작품은 보자마자 짠! 음악 작품은 대개 몇 분 정도이고 영화나 연극도 몇 시간이긴 하지만 이건 시각적인 요소도 가미되니 흡수가 빠르겠죠. 그림책이 아닌 다음에야 저에게는 문학 작품이 가장 오래 걸리더군요.
확실히 아니 에르노의 글은 독특한 형식을 취한 작품이었습니다. 조개껍데기를 전부 발라버린 바지락국을 후루룩 마신 기분이랄까요.ㅎㅎ

일기장 느낌. 딱이예요~!ㅎ 예. 저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더라구요. 1인칭 시점의 서술 방식이 가장 적절한 형식이었다는 물감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핀 조명을 받으며 독백을 하는 무대 위 주인공을 보는 듯했거든요.

금지된 사랑이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회적인 검열 이전에 자기 검열이 무의식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과정을 외면하느냐 직시하느냐의 차이겠죠.
사랑도 대화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일방적이면 외롭거나 괴롭다는 점에서요.^^

그게 과연 커다란 손실이었을까 생각했어요. 글은 사람들의 비난보다 오래 남으니까요. 그녀가 죽은 이후까지도요. 거시적인 안목으로 커밍아웃을 하신 아니 여사님!^^
그녀의 글을 보고, 작가 스스로 인정한 ‘문학답지 못함‘을 보면서 과연 ‘다움‘의 정의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에 너무 얽매이는 것이 아닌가 하구요. 장르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을 텐데, 표현하는 모든 문학 작품의 범주를 단지 편의상 묶어놓은 것 뿐일 텐데 말이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예술가는 스스로의 작품에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요.ㅋㅋ 천상천하유아독존 마인드로 내가 제일 잘 나가 포스를 고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ㅎ

저는 숯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본인은 이미 탔지만, 다시 불타서 승화되어 주변에 영향을 주는 그런 ㅋㅋ 문장 문장에서 숯의 뜨거움이 느껴졌거든요.
현대는 다양성의 시대이므로 물감님도 물감님 글의 장르를 한 번 개척해보시는 것이 어떠신지요?대까물...이라든지(대놓고 까는 물감의 장르물...)^^;;==33

물감 2021-08-06 15:59   좋아요 2 | URL
ㅎㅎㅎ나비종님은 정말 비유의 달인이십니다. 아니여사의 책을 읽고나니까 리뷰도 ‘문학다움에 미치지 않는 문학‘에 포함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록 작가 타이틀이 없고, 책을 내지 않았어도, 예술가의 혼과 인생의 경험이 담긴 리뷰를 쓴다면 그 사람도 예술가이고 문학인 아닐까요^^

책을 안 읽는 이들에게 문학은 지루함의 대상이고, 비문학만 읽는 이들에겐 시간낭비의 대상인듯 해요. 문학이 주는 기쁨도 느끼기 힘든데다 그게 뭐 밥 먹여주지는 않으니까요. 가뜩이나 성미 급하고 시간없는 한국인에게 예술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ㅎㅎ

중반까지는 뭐 이런 내용을 책으로까지 냈을까,하면서 읽었는데요. 일인칭시점이 아니었으면 작가의 의도를 전혀 모른채 껍데기만 바라보았을 거 같아요. 대단한 작가입니다ㅎㅎㅎ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하고 가치를 가지는 것들이 있죠. 어쩌면 아니 여사의 글들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요~ 지금 시대에 와서 레트로가 다시 유행하는걸 보면, 모든 분야의 장르는 크게 중요하지도 않아보여요. 그래서 말씀하신대로 자존감을 가져야만 해요🙂

숯같은 사람이라... 어쩐지 성냥개비보다 불쌍한데요? 죽어서까지 제몸을 불사르는 운명같은것이...ㅎㅎ 그것이 작가의 열정일수도 있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글은요, 어떤 유형이든 눈에 착 감기는, 소위 글맛이 있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딱딱하지 않고 통통 튀는 글을 써서 어린 친구들도 쉽게 읽고 이해시키는 게 저의 목적이랄까요? 그게 잔인한 혹평이라도요ㅋㅋㅋ

진짜 날이 느므느므 듭네요... 이러다 몸이 액체되어 흘러내릴듯요ㅜㅜ 건강 조심하시고요, 다음 선정도서로 인사드릴게요ㅋㅋㅋ

scott 2021-08-06 15: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에르노 여사님이 용돈 주쉼 ㅎㅎ

이달의 당선 축 👆

물감 2021-08-06 17:1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ㅎㅎ 알라딘은 영원하라~~~

초딩 2021-08-0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8-06 21:32   좋아요 0 | URL
축하 고맙습니다. 나이스한 8월이 되시길🙂

이하라 2021-08-06 1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4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고맙습니다ㅎㅎ
아름다운 밤이에요~~~!

thkang1001 2021-08-06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ㅎㅎ
8월도 부지런히 달려봐요!

서니데이 2021-08-06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8-06 21:38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당선작 발표일마다 가장 바쁘신 서니데이님께 이 영광을!

새파랑 2021-08-06 1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완전 축하드려요 별 3개 주신 작품을 당선시키는 이 필력이란 👍👍

물감 2021-08-06 21:40   좋아요 2 | URL
ㅎㅎㅎ그르게요. 보통 별4개는 되야 베스트 리뷰 주던데, 저도 의아합니다^^; 8월도 열심히 버닝하세요!

황후화 2021-08-06 1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8-06 21:43   좋아요 2 | URL
황후화님 감사합니다🙂🙂🙂
8월도 즐독하시고 건강하세요!

강나루 2021-08-06 2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당선 축하,축하, 축하드려요.

물감 2021-08-06 21:45   좋아요 2 | URL
연속으로 당선되다니, 올해는 운이 좋은가봐요ㅎㅎ고맙습니다. 강나루님의 독서를 응원합니다😀
 
진이, 지니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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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비평 위주로 쓰다 보니 칭찬에는 인색하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인간으로 종종 오해받지만 나님은 따듯한 도시 남자임을 밝혀둔다. 일단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쓰는 것도 아니거니와 많고 많은 칭찬 리뷰를 나까지 쓸 필요가 있나 싶을 뿐. 어떤 책이든 대부분의 리뷰가 복사/붙여넣기 한 것처럼 비슷한 내용에 글도 참 재미없게 써서 눈에 촥 감기는 맛이 하나도 없다. 그런 게 싫었던 나는 최대한 남들과 겹치지 않는 리뷰를 써야 했고 그 해답을 비평에서 찾아냈다. 그저 ‘좋아요‘밖에 모르는 독자들에 대한 반발심도 한몫했는데 아무튼 난 따도남이다. 오랜만에 애정 작가인 정유정의 책을 읽었는데 어머나, 내가 이 분을 까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유야호~


정신을 차렸을 땐 그녀의 몸은 보노보가 되어있었다. 아마 교통사고가 나면서 안고 있던 보노보의 몸으로 영혼이 옮겨진듯하다. 그녀는 사고 목격자를 통해 육체가 있는 응급실로 이동한다. 막상 반송장이 된 제 몸을 확인하자 멘붕이 온 그녀는 몸을 되찾기가 망설여진다. 인간으로 돌아가면 곧 죽을 것이고 보노보로 살자니 인간이길 포기해야 한다. 육체의 생명은 꺼져가고, 영혼은 보노보에 동화되어가는 야속한 상황. 하늘이여, 뭐 이런 X같은 시련을 주셨나이까...


오랜 시간을 흑마법사로 지내온 작가는 어떤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 같다. 구상 중인 작품이 있었는데 갑자기 떠오른 옛 기억, 중환자실에서 모친 곁을 지키며 느꼈던 것을 정리하다 보니 이 책을 먼저 쓰게 되었단다. 작가의 말을 통해 어째서 보노보 소설이 탄생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동물까지 동원하여 인간의 심연을 연구하는 작가의 태도와 열정에 박수를 안 보낼 수가 없다. 하지만 다른 때보다 준비기간이 짧았는지 곳곳에 부실공사 흔적이 가득했다. 아무리 전작들과 성격이 달라도 그렇지, 아픔을 담담하게 풀어내던 절제의 미학은 다 어디 가고 이렇게 감정에만 치우친 글을 쓰다니. 무엇보다 동물과의 정신 결합 설정은 작가의 스타일과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이 분은 상상력이 아닌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해서 작품에 녹여내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직선만 쓰던 사람이 곡선을 쓰려다 보니 어색해질 수밖에.


화두는 많은데 파악은 잘 안되고, 재미는 있는데 대중성은 없는 난해한 작품이다. 엔터테인먼트와 작가주의를 다 가져갈 거면 진지함과 가벼움의 비율을 제대로 나눠야 한다. 전반적으로 진지하다가 가끔 가볍게 환기를 시켜주던지, 아니면 가볍게 쭉 가다가 한 번씩 진지모드로 브레이크를 걸어주던지. 그 비율을 신경 쓰지 않으면 이렇게 작품 성격이 불분명해진다. 이외에도 문제는 많았는데 특히 작가 특유의 속도감이 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부분. 특정 장면에서 길게 머무르다 보니 진도가 드럽게 안 나간다. 문체도 시원시원하고 가독성도 좋은데 드럽게 답답하다. 이 경우는 한국인의 고질병을 논하기보다 작가의 스타일이 바뀐 탓을 하는 게 맞다. 작중 상황이 상황인지라 멘붕오는건 알겠는데 계속 거기에만 꽂혀있으면 우야꼬. 역시 정유정이라며 다들 치켜세우던데 내 눈에는 작가의 매력 발산이 절반도 안돼 보였다. 정유정의 네임밸류는 절대 이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단순히 몸 찾는 내용만으론 보여줄 게 없으므로 주인공이 보노보와 동화되는 과정에 분량을 채워 넣었다. 두 의식이 교차하며 몸의 주인이 되는데, 보노보에게 몸을 내어줄 때마다 그녀는 보노보의 감각을 인지하고 정보도 파악하게끔 변화한다. 그리고 보노보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 친구가 어쩌다 한국까지 오게 되었고 어떤 고통을 겪어왔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자신과 이 친구가 구면이라는 사실도 깨닫는다. 콩고에서 밀렵꾼에게 잡혀있던 이 친구를 구하지 않고 도망쳤던 그녀는 죄책감으로 사육사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때 외면했던 보노보를 이런 식으로 재회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결국 이 작품도 현대판 <죄와 벌>인 셈이다. 이 인과응보의 플롯은 오늘날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되었는데 그중에서 <진이, 지니>는 매우 신선한 작품에 속한다.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내용이 주제를 다 가린다는 것만 빼면 베스트가 될 수도 있었는데.


사육사로서 자격 미달로 벌받는 건 알겠는데 당장 문제는 그게 아니지 않나. 평생을 보노보로 살지 말지가 더 급선무일 텐데, 계속 보노보 사연에 집중하느라 본인의 처지는 잊어버리고 있다. 동화된 다음 사건을 역으로 보여주고 자신의 죄를 마주하는 연출은 좋았으나 이쯤 되니 그녀의 개인사는 그닥 중요치 않게 돼버린다. 주인공의 목표가 흐려진다는 건 매우 심각한 일인데 작가는 계속 보노보에게만 감정을 쏟아내고 있다. 어느덧 작가가 대중성은 포기하고 작가주의로 가려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참.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제 문제의 심각성을 생각하고 고뇌에 빠진다. 그 고뇌를 작품 내내 다루었어야지, 이제 와서 부랴부랴 말해봤자 흥미도 없어진지 오래이고 감정이입도 되지 않는다. 차라리 보노보를 콩고로 무사히 돌려보내는 게 목표였다면 어땠을까 싶다. 스토리도 엉켰으니 대중소설도 아니고, 주제가 전혀 부각되지 않으니 작가주의 소설도 아닌 이것은 제3의 장르입니까?


문제를 마주하고도 행동 하지 않으면 잘못된 것. 이것이 내가 느낀 작품의 주제이다. 주인공 이진이는 보노보의 구조 신호를 무시했고 사육사를 그만둘 정도로 힘들어했다. 사고 목격자 김민주는 해병대 어르신의 구조 신호를 무시했고 그 죽음을 제 탓으로 돌리며 괴로워했다. 이제 두 사람은 피해서 해결될 문제 따윈 없다는 걸 안다. 결과가 죽음뿐이어도 이진이는 제 몸으로 돌아갔고, 아무런 득이 없어도 김민주는 끝까지 그녀를 도와주었다. 그녀가 행동하지 않으면 보노보를 두 번 죽이는 꼴이었고, 그가 행동하지 않으면 그녀를 두 번 죽게 하는 셈이었다. 나로 인해 누군가가 괴롭지 않으려면, 또다시 트라우마에 갇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두 남녀. 다소 급마무리한 느낌이었지만 엔딩은 좋았으니까 넘어가기로 한다. 나는 따도남이니깐.


정유정은 좀처럼 비평할 기회가 없는 작가라 이참에 쓴소리를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좋아하는 분이고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더 많은 피드백을 해주고 싶지만 이쯤 하련다. 솔직히 잘 나가는 작가들은 그만한 이유도 있겠지만 극성팬들 때문에 본인의 문제점을 몰라서 보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작가님들은 제게 연락 주십쇼. 매운맛이든 순한맛이든 원하시는 대로 도와드릴 자신 있습니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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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04 17: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의 이런 묵직한 리뷰 너무 좋은거 같아요~!! 사실 국내작품을 그렇게 즐겨읽지는 않아서 뭐라고 답을 못하겠지만 애정작가라고 하시니 찾아 읽어보고 싶네요 ^^

물감 2021-07-04 18:45   좋아요 3 | URL
오 새파랑님도 꼭 읽어보길 권합니다. (7년의 밤) 추천해요ㅎㅎ

페크pek0501 2021-07-07 1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잘 나가는 정유정 작가의 책은 좀 까도 됩니다. 다 좋을 순 없잖아요.
그런데 첫 책을 낸 아마추어 작가의 책을 까는 건 저로선 인색하단 느낌이 들더라고요.
첫 책의 저자에겐 응원과 격려를,
이미 베스트셀러 저자에겐 아쉬운 점을 지적해 주면 고마워 할 것 같습니다.(저의 개인적인 생각임.)

물감 2021-07-07 13:01   좋아요 2 | URL
오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신입작가의 책이나 기존작가의 처음 읽은 책은 그래도 유순하게 보려는 편이에요. 진짜 아니다 싶은것만 제외하면요🙂 이번 리뷰에 적었듯이 좋은 평만 가득한 경우는... 암튼 그렇습니다ㅎㅎ
 
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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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코로나 이전에도 나는 4인 이상 모이기를 꺼려 했다. 사공이 많으면 피곤도 하거니와 알맹이 없는 가벼운 대화만 하게 되는 게 싫었다. 아니, 가벼운 게 싫다기보다 진지함이 없는 관계가 싫은 것이지. 근데 그런 사이들은 알아서 다 떨어져 나가더라. 허무한 인간관계가 씁쓸하기는커녕 오히려 집중할 대상이 줄어드니 편했다. 아끼는 사람만 챙기면 되니까 시간도 절약하고 에너지 낭비도 막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걸러지고 남은 인맥들은 오랜만에 만나도 편안하고 늘상 대화가 즐겁다. 이처럼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을 주제로 하여 수상까지 한 작품을 읽었다. 완성도, 작품성, 대중성 중 어느 것도 빼어난 게 없는데 수상이라니 영 납득이 안 되지만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만약에 청소년문학상이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시골 모습이던 파주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고딩들의 이야기. 이만 줄거리는 생략한다. 놀 거리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확실히 친구를 만나는 횟수가 많았다. 하릴없이 동네를 쏘다니고, 남의 학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고, 졸업앨범을 구경하러 친구네 놀러 가고, 가까운 산에 올라 동네 구경하고 그랬다. 그냥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이 책 속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통 날로 보내고 있지만 개성 있는 절친들 덕분에 무료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은 것이다. 학업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진로 때문에 고민을 하고, 외모 콤플렉스로 힘들어하는 등 학생이라면 누구나 겪는 평범한 일상과 감정들을 담담하게 기록한 소설이다. 이토록 평범한 작품이 대체 어떻게 수상작으로 뽑혔을까나.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이 분명하다.


확실히 정세랑의 글은 명랑명랑하다. 이렇게 본인만의 탁월한 색깔이 있고 매력을 잘 가꿀 줄 아는 작가가 은근히 보기 어렵다. 어떤 작품이든 읽다 보면 비슷한 유형의 작가나 작품이 연상되는데 정세랑의 작품은 그런 게 없다. 이것은 양날의 검과도 같아서 독보적이라는 명성을 얻기도 하고 고만고만하다는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이 작가는 얼마든지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사람인데 왜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건지 모르겠다. 소설가는 자신의 주 종목만 잘하면 그만인 운동선수가 아닌데 말이다. 혹여 작가가 지금의 스타일을 고집하겠다면 본인의 장점을 베이스에 사용하기보다 히든카드로 썼으면 한다. 그렇게만 해도 스타일에 큰 변화와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아직은 한가지 캐릭터밖에 연기할 줄 모르는 배우처럼 느껴진다. 어떤 작품을 내놔도 찬양하는 팬들로 인해 타성에 젖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작품을 분석해보자. 이 책은 메인 사건도, 주요 인물도 없다. 고등학생들의 평범한 일상을 차례차례 소개하는 게 전부이다. 큼직한 에피소드가 없어 옴니버스 구성이라 볼 수도 없다. 그냥 여고생의 일기장을 들여다본 듯한 기분이랄까. 정체성을 알 수 없는 이 작품이 수상작에 뽑힌 건 어떤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아무리 봐도 평범하기만 하다. 일단 사건이랄 게 없으니 개성 있는 인물들의 티키타카 또는 케미스트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패션 취향이 확고하고 남들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친구. 인기 많은 남학생을 짝사랑하느라 맘 고생하는 친구. 딱딱한 가정에서 자라나 표현과 소통이 서툰 친구 등등. 지금도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고 누구나 공감할 흔한 감정들을 말하고 있다. 평범한 내용도 얼마든지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작가는 일기장 같은 형식으로 저텐션을 유지하였다. 그래서인지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몰입했다기보다 아무런 감흥도 없이 무심하게 읽혔다. 정말로 글만 명랑했다.


졸업한 친구들은 전부 흩어진다.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고 해외를 가고 이사를 간다. 가끔은 따로 만나기도 하고 모두 모이기도 하면서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한다. 이들은 사랑에 실패하고, 직장을 옮기고, 회의감도 느끼는 등 세상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적응해나간다. 힘든 세상에 이리저리 부딪혀보며 청소년의 탈을 벗고서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 드라마. 작품의 정체성은 그렇다 쳐도 수상할만한 관전 포인트는 여전히 못 찾겠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납득이 안되어서 그렇다. 그래도 수상작 타이틀만 빼면 썩 나쁘지 않았던 타 작품들에 비해 이 책은... 아직도 할 말이 많은데 더 썼다간 작가의 팬들이 가만있지 않을 듯싶다. 기호 1번 국민작가 정세랑을 뽑아주십쇼,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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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7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왠지 기대가 큰 만큼 실망하신게 느껴지네요 ㅜㅜ 정세랑 작가님 인기가 많으신 거 같은데 저는 아직 안읽어봐서읽어보고 싶은데 딴 책을 읽어봐야 겠네요~!

물감 2021-06-27 23:54   좋아요 2 | URL
정세랑 작가의 책을 몇 권 읽어본 바, 한 2프로 부족한 느낌의 문장을 즐겨쓰는 타입같더라고요. 저도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han22598 2021-06-28 00: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별로였어요 ..그래서 정세랑 작가에 관심이 제로였다가 보건교사 안은영 읽고 좋아하게
되었어요 ㅎㅎㅎ

물감 2021-06-28 07:11   좋아요 2 | URL
정말 꾸역꾸역 읽었네요..ㅎㅎ
안은영은 이거보단 낫겠죠 모...

Falstaff 2021-06-28 10: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윽. 물감 님하고 자꾸 의견이 겹쳐서.... 이거, 얘기하기 좀 민망하네요. 고의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전 유명세에 따른 계급장 떼고 <호밀밭...>하고 맞짱 한 번 붙여봤으면, 조건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만, 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물론 이긴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승부는 될 거 같아서 말입죠.

ㅋㅋㅋㅋ 재미있습니다.

물감 2021-06-28 09:57   좋아요 3 | URL
의견이 겹친다니 참 영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계급장 떼고 붙게 해야한다는 생각은 저조차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지 못할 말인데, 역시 고수님들은 다르단 걸 느꼈습니다ㅋㅋㅋㅋㅋ솔직히 호밀밭은 레베루가 너무 다르지 않나 싶다가도 한국의 팬덤이라면,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하핳

그보다 이 작가는 아직 국내용이라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좀만 더하면 국외에서도 먹혀들거 같은데 말이죠~
여튼 힘나는 댓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6-28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시원하네요.

˝완성도, 작품성, 대중성 중 어느 것도 빼어난 게 없는데 수상이라니 영 납득이 안 되지만 이런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이라야 말이지. ˝ ˝이 책은 미스터리 소설이 분명하다.˝ ㅋㅋㅋ 여러 번 빵빵 터집니다.

제가 그 수많은 팬들이 열화와 같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태 정세랑 작품을 1도 안 읽은 것이 왠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으로도 일단 이 작가 작품은 보류해 봅니다.ㅎㅎㅎ

물감 2021-06-28 11:55   좋아요 1 | URL
왜 그런거 있죠, 주변서 너무 극성이라 오히려 반감사는거요...ㅋㅋㅋ
저도 전혀 끌리지는 않았는데 회사에 있길래 함 읽어봤어요. 또 수상작이라니까 괜히 궁금해져서ㅋㅋㅋ

이 책만 본다면 정세랑은 정말 거품작가나 다름없습니다. 그러고보니 귀여니 작가가 생각나네요... 파급력 면에서요ㅋㅋㅋ
 
팔코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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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화장실에서 클래식 음악이 24시간 흘러나온다. 콘체르토, 앙상블, 소나티네, 서곡, 왈츠, 행진곡, 교향곡, 심지어 성악까지. 볼일 보는 맛이 나서 되게 좋았는데, 얼마 전부터 한 대여섯 곡으로만 계속 재생되더니 이제는 트럼펫 솔로곡 하나만 반복 재생 중이다. 근데 그 곡의 멜로디가 워낙 우울하여 화장실 가는 게 싫어지다 못해 없던 변비까지 생길 지경이다. 그래, 이 정도 낭만은 있어줘야 참된 직장생활이라고 볼 수 있지. 시작부터 변비 가지고 뭔 낭만 타령이냐 하면, 직장보다 더한 낭만으로 가득한 교도소 배경의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난 주인공은 슬기로운 깜빵 라이프의 낭만파이자 비호감의 조건을 골고루 갖춘 캐릭터였다. 늘 그랬듯 고전은 아무 기대 없이 읽을 때에 얻는 깨달음도 크므로 이번에도 그리했더니 아무것도 건진 게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형을 살해한 죄로 팔코너 교도소에 갇힌 주인공은 죄수들과 마음껏 더티 러브를 즐긴다. 또한 마약중독으로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를 보이며, 답이 없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몸소 증명한다. 이렇게 동공 풀린 주인공의 시점을 실감 나는 글 속에 반영시켜 놓았다. 환각에 빠진 것처럼 몽롱한 분위기에다 주어도 없이 횡설수설하는 문장들이 연속된다. 그리고 매번 삼천포로 빠지듯이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는데, 이런 불친절한 작품은 꽤 오랜만이라 마음이 두근두근하데? 단단히 혹평을 벼르고 있었는데 점점 읽을 만 해지더니 후반부에는 글이 멀쩡해지는 게 아닌가.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을 즈음에 주인공의 약물 중독 상태가 완치가 돼버린다. 그러니까 중독자에서 정상인으로 바뀌는 과정을 글의 변화로 보여준 것인데 이 그라데이션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크게 감탄했다. 근데 이거 말고는 글쎄, 뭐를 말하려는 내용인지 몰라서 그냥 해설에 의존해야 했다. 확실히 이럴 땐 해설이 있는 게 도움이 된다.


인간이 지닌 본성의 이중성을 다룬 작품으로 유명하댄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자들을 모아놓은 것은 그들의 결함, 결핍, 타락, 부작용도 삶의 일부분이란 것을 강조하려는 뜻일 거다. 그러나 이 책을 작가주의로 분류하기엔 여러 가지로 장벽이 높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선택지를 마주하고, 언제나 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되는 길로 결정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 방향은 곧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 사회에서 완벽하게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사회가 묵인하는 범위 안에서만 나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유지할 수가 있다. 반대로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될 수 없는 영역, 즉 공동체의 모습에서 벗어난 행동을 보인다면 살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럼 마약, 살인, 동성애 같은 경우는 어떨까. 이것들이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준다 한들 사회는 절대 용납지 못한다. 그런데 교도소에서는 그것조차도 존중을 받는다. 뜻이 맞는 자들끼리 모였으므로 감옥만큼은 온전히 나다운 모습일 수가 있다. 그래서 죄수들은 자유롭던 바깥 생활에서 자신을 감출 때보다, 억압된 감옥에서의 자신을 더 좋아하고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의도는 알겠으나 동성애 장면이 투머치할 필요는 없었는데.


주인공은 본인의 할당량인 약물을 받지 못하자 난폭하게 변한다. 한때는 교수였으나 지금은 한낱 광인에 불과한 그의 상반된 모습으로 저자는 숨어있던 또 다른 자신을 끄집어냈다. 사람들은 빛 가운데서도 방황할 때가 있고, 어두움에 속해서 분간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팔코너의 죄수들도 그러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옆에서 사진을 찍은 죄수들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애틋해진다. 이렇게 인간의 양면이 드러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데, 이만하면 인간 자격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작가의 음성이 내내 맴돌았다. 여기에 동의하는 건 죄수들을 옹호하는 기분이 들어 찝찝하단 말이지.


애인이었던 조디가 탈옥을 하면서 스토리의 방향이 팍 꺾인다. 인생이 끝났다고 보는 다른 죄수들과 달리 조디는 이 막다른 길에서 절망하지 않았고 목표를 가졌다. 그리고 계획을 보란 듯이 성공해내자 주인공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였다. 저 또한 새 삶을 살아도 된다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에. 다시 세상에 나간다는 것은 진짜 나로서 살아갈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결국 그도 팔코너를 탈출하고 세상에 발을 내디디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열린 결말이면서도 납득할만한 엔딩을 보여주고 있어 묘하게 여운이 남는다. 그건 아마도 탈출 직전에 형을 죽인 이유가 밝혀져서 그에게 연민을 품게 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평과 작품의 주제가 많이 동떨어졌을 수도 있는데 그냥 작품에서 부각된 것들만 적어봤다. 존 치버도 꽤나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던데 이 작품만으로는 잘 모르겠네. 좀 더 지켜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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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0 20: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첨들어보는 작가라니 ㅜㅜ 물감님 별3개이면 이건 정말 3개인듯 하네요😌 전 책 다읽고 해설읽으면 ‘아 이게 이런거였어?‘ 하는 순간이 많더라구요 ㅎㅎ 해설없는 책은 뭔가 좀 아쉽더라구요~~

물감 2021-06-20 20:20   좋아요 3 | URL
너무 제 평을 믿진 마세요ㅋㅋㅋ
취향은 다 다르니깐요😎
저는 고전을 해설때문에 문학동네 꺼만 읽는데, 다른 출판사 고전들도 해설이 있나요?

미미 2021-06-20 20:28   좋아요 5 | URL
민음사도 해설이 제법 잘 쓰여져 있습니당ㅋㅋㅋ😎

새파랑 2021-06-20 20:39   좋아요 3 | URL
전 요즘 ‘열린책들‘ 이 좋더라구요. 해설도 있는데. 양장이어서 좋아요 ^^

미미 2021-06-20 20:43   좋아요 3 | URL
열린책들이 사이즈도 아담하고(그립감 굿) 표지도 더 이뿌죠ㅋㅋ

물감 2021-06-20 20:47   좋아요 3 | URL
역시 고전은 해설이 필수군요. 양장본이 좋긴한데 책장에 자리를 너무 차지해요...ㅋㅋㅋ

coolcat329 2021-06-20 21:4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은 책인데 내용이 좀 하드코어일거같아 나중에 사야지하고 미뤄뒀네요.

횡설수설 삼천포>점점 읽을만>글 멀쩡 ㅋㅋ 이건 내용을 떠나 가독성이 좋다는 거죠?
열린 결말이면서도 결말이 납득도 된다니 다행입니다 🤭
리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물감 2021-06-20 21:55   좋아요 5 | URL
뭐 그렇게 매운맛은 아닙니다만, 동성애가 싫은 분들에겐 비추합니다...ㅋㅋㅋ

가독성의 변화는 놀라워요. 중반까지는 한 내용이 계속 이어지고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요, 그러다가 갑자기 챕터가 나뉘더니 문장이 또렷해져요. 그 변화를 잘 못느끼고 있다가 주인공의 약물치료가 끝났다는 내용이 나와서 소름돋았어요. 그 직전부터 읽기가 수월해지고 있었거든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비종 2021-06-21 0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무척 당황했던 자로서 격하게 공감합니다~‘아무것도 건진 게 없어서‘에ㅋㅋㅋ

성욕에 대해서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어요.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는 말에 대해서 꽤 오래전부터 의구심을 품고 있거든요. 전문적인 서적을 뒤적거린 게 아니라 별 신빙성은 없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여기저기 찾아보니 ‘성욕‘이 기본 욕구에 포함된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도 하고. ‘배설욕‘이 대신 들어간다고도 하고. 이 책에서 이성애자로 보였던 주인공이 교도소 안에서 동성애에 빠지는 것을 보면 역시 기본적인 욕구에 속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성직자분들을 떠올리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성적인 정체성을 뒤늦게 깨닫는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타고난 본성인가 싶기도 하고. 그냥 커다란 테두리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끌리는 걸까 싶기도 하고. 매력을 느껴보니 남자였다, 여자더라 뭐 이런?ㅎㅎ
중독자의 관점에서 쓴 글이라... 오~~ 신선한 관점이십니다!! 다시 한 번 그라데이션을 짚어보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역시 재미는 없는 작품이라 냉큼 포기했습니다~ㅋㅋ

‘언제나 내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되는 길로 결정한다. 결과가 어떻든 그 방향은 곧 나 자신이라는 의미이다.‘ 이 부분 좋습니다. 많이 생각하게 되네요.^^
똑같은 행위라도 속해있는 공동체에 따라 죄가 되기도 하고 용인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 과연 절대적인 선이나 악이 존재할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동성애 장면을 읽으면서 본능을 따라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말하고 싶은 걸까, 작가는 이걸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많이 생각했어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만ㅎㅎ^^;

‘사람들은 빛 가운데서도 방황할 때가 있고, 어두움에 속해서 분간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저는 물감님의 이 문장이 왜 이리 찡한 걸까요. 많이 공감이 되는 문장입니다.
누구도 악인이지 않지만 악인이 될 수 있으며 악인이 되는 건 건조기 속 빨래 같이 랜덤으로 발생하는 실수일 뿐이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탈출하는 방식도 뭔가 의미심장하기는 해요.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새로운 삶을 얻는 컨셉이니까요.
이번 작품을 통해 고전과 나비종의 장르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널리 읽힌다고 반드시 나와 맞으리라는 법은 없구나, 인간 본성이고 나발이고 나란 인간은 이런 거 싫어하는 인간이로구나 하구요.ㅎㅎ

물감 2021-06-21 10:09   좋아요 3 | URL
해설이 있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요ㅋㅋㅋㅋ

식욕, 수면욕과 달리 성욕은 절제가 가능한 걸로 봐서 저도 갑자기 의구심이 드는데요? 성 정체성은 원래 있는것인가, 만들어지는 것인가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아내를 사랑하고 잘지내왔던 사람이 어느날 한순간에 동성을 사랑하게 된다는 게 그럴수가 있나 싶어져요. 근데 미국은 뭐든 다 가능할 것 같단 말이죠 ... 하하하

폭력은 나쁜 것이지만, 악인에게 휘두른 폭력을 보며 통쾌한 마음이 들때마다 생각해요. 선악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것이라고요. 동성애도 그렇고 형을 살해한 죄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신념 까지는 아니라도 쉽지 않은 선택을 한 건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니까... 누가 어느 길을 가던지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

사람은 실수도 하고 잘못도 저지르고 크게는 죄를 범하기도 하면서 성장하곤 하잖아요? 또는 패러것처럼 자신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 어두움에 있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동료의 죽음이 새삶을 생각하게 된 계기인 것도 같은 맥락인듯해요. 역시 말년에 쓴 작품이라 그런지 심오하네요 ㅋㅋㅋ

역시 다양한 작품을 만나봐야 독서력이 느는 기분이 들어요~ 항상 운좋게 좋은 책만 읽을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ㅋㅋㅋ 여튼 잘 안맞는 책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다음 독서모임으로 또 뵈어요 !

Falstaff 2021-06-21 09:2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전 이 책을 꽤 근사하게 읽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이 갈리는 것, 이게 바람직한 일 아니겠습니까. ^^

물감 2021-06-21 09:42   좋아요 5 | URL
아마도 저의 내공이 낮아서 음미하지 못한게 아닐까 합니다^^;
저도 사실 제가 제대로 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ㅋㅋ
다른 장르들도 그렇지만 고전은 참 여러 갈래로 나뉘는 감상이 묘미인 것 같아요. 그래서 다른 분들의 평들도 신선해서 좋습니다. 근데 고전은 확실히 어려워요... ㅋㅋㅋ

잠자냥 2021-06-21 10:02   좋아요 5 | URL
저도 이 책을 꽤 근사하게 읽은 1인 중 하나입니다.
아마 제가 존 치버를 좋아해서 더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만, 전 그 동성애자의 고통을 굉장히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작가의 동성애+알코올 중독 경험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 절절하게 다가온 것 같고요. 암튼 폴스타프 님 말씀처럼 다른 의견이 있어야 바람직하지요. ㅎㅎ

물감 2021-06-21 10:26   좋아요 6 | URL
고수님들이 몰려오니 저 점점 작아지는데요.. ㅎㅎㅎ
높다고 느꼈던 동성애의 장벽이 갑자기 높게 느껴지지 않네요.
어쩐지 재독하게 되면 잠자냥님처럼 좀더 동성애자에게 몰입할 수 있을것도 같아요. 일단 세월 좀 지나서 다시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coolcat329 2021-06-21 12: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위에 고수님 두 분 같이 다니셔서 넘 웃겨요 ㅋㅋㅋ

물감 2021-06-21 12:27   좋아요 1 | URL
고수들이 워낙 많아서 일반인 되기도 쉽지 않은 알라딘 마을이에요...하핳

coolcat329 2021-06-21 12: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점심 시간이라 기뻐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물감님 고전 리뷰 저는 늘 재미있게 읽습니다. 물감님의 개성있는 감상문이 저에게 자극이 되네요.

물감 2021-06-21 12:17   좋아요 1 | URL
알라디너 분들은 다 상냥하시네요ㅎㅎ덕분에 힘이 납니다! 이맛에 글쓰는가봐요😎😎😎

잠자냥 2021-06-21 13:05   좋아요 3 | URL
저도 물감 님의 그 특유의 날선 비판 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모두가 좋다고 할 때 아니라고 하는 그 리뷰! 좋아요! ㅎㅎ

물감 2021-06-21 13:16   좋아요 3 | URL
오늘 무슨 날인가요?
이렇게 많은 댓글과 응원을 받다뇨...얼떨떨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잠자냥님^^ 더욱 분발하겠습니다ㅎㅎㅎ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김호연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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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면 글쓰기에 대한 강의나 작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 같지만, 한국에서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내용이었다. 부제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인데, 말 그대로 작가 개인의 생존기만을 기록했다면 굳이 책으로 출간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전업작가가 힘든 건 웬만큼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근데 본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저자가 영화사와 출판사 및 각종 프로덕션을 다니면서 체험한 업계의 사정이나 로직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쪽으로 진로를 생각 중인 분들에게 제법 유용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나처럼 글 쓰는 행위가 즐거운 일반인에겐 보다 더 글에 대한 갈증과 방향성과 보완할 점들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시나리오 공부, 작법 연구, 문장 연습 다 좋지만 부지런히 글만 쓰는 게 정답은 아니므로 이 같은 책도 읽어줄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히트친 작품들이 SF, 스릴러, 판타지 같은 장르소설인데 아직도 한국은 7080의 문학성을 최고로 여긴다. 작가도 그렇고 독자도 그렇고 한국인들은 상업을 목적으로 쓴 소설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점 사이트의 구매 순위나 독서 커뮤니티의 인기 리뷰들이 죄다 문단 소설인 것도 그 증거다. 최근에 우리나라 배우들이 가수들을 무시한다는 온라인 기사를 봤는데 딱 그런 느낌이랄까. 나도 또한 다년간의 리뷰활동으로 실감한 게 있는데, 장르소설의 리뷰는 유독 반응이 약하다는 것이다. 잘 보면 내 글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블로거들의 리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독자들보다 작가들이 더하고 평론가나 심사위원들은 더 더하다. 반응이 없다는 건 글쓴이의 입장에서 매우 기운 빠지는 일이다. 내가 자신 있는 쪽으로 도전했는데 전혀 먹히질 않는다는 현실을 깨닫고 좌절한 다음 많이들 하는 실수가 남이 좋아하는 글만 쓰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일시적인 반응과 효과를 볼지는 몰라도 나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있다. 김호연 작가 역시 좌절과 회생을 수없이 반복하고 이런저런 작업을 거치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깨닫게 된다.


결국 글쟁이는 자신의 오리지널을 갖추어야 하고 개인 브랜딩을 해야만 한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롤모델을 연구하되 나만의 것을 완성해야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 내 글이 살아남으려면 ‘나의 것‘으로 부딪혀야 먹혀든다. 반대로 독자들이 흔한 글을 싫어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는데, 타인의 공감을 얻어내려 작정하고 쓴 글이라면 그만한 성의를 보이라는 말이다. 나는 분명 영혼까지 갈아 넣었는데 반응이 영 별로다 싶으면 고치고 또 고치면 된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들 하니까 쓰레기가 아닐 때까지 수정하다 보면 소위 ‘팔리는 글‘이 된다. 이 책의 저자가 그것을 증명했으니까 참고해보시길.


본인의 내공 쌓기나 필력 향상, 감각 기르기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의 7~8할은 도움 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한데 그들이 먹고 살 길을 마련해줘서가 아니라, 작가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되어줘서 그렇다. 유튜브만 해도 편집자가 있고없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듯 글쟁이 또한 파트너의 도움을 받아야만 글과 그릇이 성장할 수 있다. 나는 본격적으로 리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주변인에게 꼭 피드백을 받고 있다. 단언컨대 필력을 키우기에는 이만한 지름길도 없다. 글이란 게 죽어도 안 써지는 날이 있고, 문득 영감이 떠올라 미친 듯이 잘 써지는 날도 있다. 글 쓰는 행위야 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런 리뷰글 말고도 편지, 공문, 협조전, 브로슈어, 이메일, 광고 디엠 등 살면서 중요한 글을 써야 하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정성이 들어간 활자들은 주목을 받든 외면을 당하든 자체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므로 글쟁이들은 반응의 유무와 상관없이 써야만 한다.


무산된 프로젝트, 공모전 탈락, 반려된 원고, 날아간 시나리오, 못 받은 계약금 등등. 온갖 고배를 다 마시고도 이 바닥을 뜨지 않은 저자는 고인물 중에 고인물이다. 자신의 길을 수도 없이 의심했지만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마침내 그를 소설가로 등극시켜주었다. 제 삼자가 본다면 독종이 따로 없다고 할 텐데, 이 책을 보면 그저 순수한 열정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수많은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비슷한 절차를 밟았을 테지. 그러고 보니 내가 세차게 혹평했던 작품을 쓴 작가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런데 저만큼 피드백 주는 독자도 없을 거예요.) 여튼 긴 시간을 돌고 돌아 소설가로 자리매김한 저자에게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 책 덕분에 나도 글 쓰는 게 한층 더 즐거워졌다. 앞으로도 쓰기 위해 독서하는 삶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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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6-13 23: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별 다섯! 물감님 글쓰기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든 이 책 장바구니로 ~@~@

물감 2021-07-07 16:13   좋아요 4 | URL
ㅎㅎㅎ이제 스캇님 댓글이 안달리면 어쩐지 허전합니다. 알라딘 지박령 스캇님😀😀😀

그레이스 2021-07-07 16:11   좋아요 1 | URL
그렇지요?!

물감 2021-07-07 16:24   좋아요 1 | URL
ㅋㅋㅋ올해들어서 가장 열일하는 분이시죠

scott 2021-07-07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 축!!

이책 내가 찜 👆

물감 2021-07-07 16:23   좋아요 2 | URL
오오 당선 되었군요, 소식 감사해요ㅋㅋ

새파랑 2021-07-07 16:45   좋아요 2 | URL
축하드립니다 물감님.언제나 멋진글 잘 읽고 있어요 👍

물감 2021-07-07 16: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저도 매번 새파랑님의 엄청난 독서 열기에 자극받고 있습니다.
알라딘 마을을 계속 달궈주세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1-07-07 16: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축하드려요^^

물감 2021-07-07 16:2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ㅎㅎ

서니데이 2021-07-07 16: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물감 2021-07-07 16:53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
어쩜 이렇게 다들 소식이 빠르신지 ㅎㅎㅎ

초딩 2021-07-07 2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물감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물감 2021-07-08 00:1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고수님들에 비하면 저는 낄자리가 못되는데 먼가 쑥스럽습니다^^;

황후화 2021-07-08 0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물감 2021-07-08 00:1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황후화님🙂🙂🙂

이하라 2021-07-08 0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물감 2021-07-08 08: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하라님^^